세대와 계급 사이: 특권, 분노투표, 그리고 읍소
- 무엇이 20대를 ‘극우’로 만드는가?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조건
2026년 6월 15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계급, 세대, 극우파청년, 공정, 차별, 불평등, 민주주의체제, 순자산 지니계수, 전세계 주택부담지수, 노동시장, 연령별 고용율, 청년실업, 자산불평등, 자산 고령화
그들은 절박하다. 그러나 그들은 ‘단일’하지 않다. 불행하게도 20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온라인이라는 유령 공간뿐이며,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조건을 스스로 속이고, 혹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윤되어 속고, 갈 곳 없는 청춘들은 분노와 좌절을 난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같지 않으며, 같을 수도 없고, 스스로 같은 무리라고 인식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청춘들이 자신들이 한 묶음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들의 비극은 더 커질 것이며 그들은 영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그 부모들의 좌절을 몇 배로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극우 파시스트, 혹은 애국청년으로 스스로 동일시하거나 불리지만, 실은 대다수는 지난 수십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특혜받은 자산계급의 후손들과 그 과정에서 착취당하며 여전히 바닥을 뒹구는 하층 노동자 계급의 자식들과 일자리도 희망도 없는 지방에서 서울로의 탈출밖에는 꿈꿀 것이 없는 통계상 ‘그저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이름조차 없는 젊은이들과 그리고 온라인에서 ‘교육’받은 룸펜 프롤레타리아라는 각기 다른 존재들의 불분명한 인구집단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20대(혹은 20-30대)라는 ‘세대’(집단 Cohort)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시작부터 그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DNA의 노화 정도가 비슷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같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정, 나의 권리의 사회경제적 근거
20대의 구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공정’과 ‘상식’이다. 이 공정을 영어로 fairness라고 번역해야 할지, justice라고 번역해야 할지 망설여지는데, 그것은 20대의 공정은 이 두가지 중에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20대의 공정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신들이 당연히 차지해야할 몫을 ‘누군가’가 뺏어갔으며, 또는 미래에 가져야만 할 몫을 가지지 못하게 미리 누군가가 이를 선취했으며, 그러므로 자신들의 빼앗긴 몫을 되찾는 것이 공정이다.
따라서 이들의 출발점은 개인적 이해관계이며, 이 이해 를 보장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다. 즉, 자신들이 당연히 차지해야 할 권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것이 20대들이 현 한국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담론은 매우 특이하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권리를 보장’하는 절차를 지칭할 뿐이지, 그 결과로서 그들의 몫이 보장되었는가, 그 몫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80년대 민주화를 겪은 세대나, 그 이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다는 세대들(특히 40-50대)은 20대의 공정을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해주기 어렵다.
그러면 이들의 ‘공정’에는 근거가 있는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세대적 근거가 아니라, 계급적 근거다. 20대의 비극은 무엇이 그들을 ‘박탈’하고 ‘상실’하게 만드는지 구별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어쨌든 이들의 ‘불만’에는 확실한 객관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근거가 있다.

위의 챠트는 한국은행이 지난 6월 11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우리 경제 가계 양극화의 실태와 파급영향’에 실린 것이다. 여기서 순자산 지니계수란 가구들이 소유하고 있는 순자산(부채를 제외한 자산) 사이의 불평등 정도를 말한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자산 불평등, 즉 자산 빈부 격차가 심하다는 뜻이다.
이 챠트를 보면,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순자산 지니계수가 계속 하락하다가, 2017년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즉, 2017년부터 자산 격차가 심해지기 시작했으며, 2025년에는 2012년 수준을 넘어섰다. 즉, 역대 최악의 자산 불평등의 시기다. 그리고 순자산 지니계수가 상승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한 시점과 일치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계의 순자산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부동산(주택)이다. 그러니까 “문재인이 부동산 가격을 올렸다”는 주장이 아예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챠트를 다시 보라.
2017년부터 순자산 지니계수가 상승하기는 하지만, 2020년을 전후해서는 상승 곡선의 기울기가 눈에 띄게 완화된다. 그것이 정책 탓이든, 아니면 코로나로 인한 외부적 요인 때문이든 간에, 2020년부터 2022년 초까지는 부동산 가격 급등세는 진정되었다. 그러다가 2022년 하반기부터 다시 순자산 지니계수가 급등하기 시작한다. 이 때의 상승 기울기가 가장 가팔랐다. 무슨 뜻이냐면, 윤석열 정권 때 자산 불평등 진행 정도가 가장 극심했다. 그러다가 2025년에는 진정 추세를 보였는데, 한국은행 통계 수치는 2025년 말까지만 표시하고 있지만, 아마도 2026년에는 다시 급등했을 것이다.
젊은 세대의 ‘반민주당’ 기류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기사인 <주간조선> 6월 13일자의 “여 외면한 서울 2030 세대의 진짜 속내. 우리에게 민주당은 격차 만든 정치 기득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2016년 총선에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이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면서 행정부(대통령)는 달라졌을망정, 의회 권력은 민주당이 계속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민주당 책임론을 편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한 석 뒤진 122석으로 원내 제2당으로 뒤쳐진 것은 맞지만 당시에는 3당 구도였다. 지금은 국민의힘 의원인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38석으로 제3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안철수의 국민의힘과 새누리당의 ‘자산’ 정책이 얼마나 달랐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부터는 이른바 ‘여소야대’였으며, 아직도 기억력이라는게 남아 있다면 당시에는 문재인 정권의 정책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다는 푸념이 실린 기사가 한 트럭은 된다는 사실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권이 여소야대 때문에 ‘못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 당시 부동산 가격 급등의 진짜 원인은 국내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글로벌 합의의 부산물(혹은 주요 목표)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글로벌 금융 자본과 정부는 양적완화(QE)를 통해 은행을 건전화시키기로 결정했고, 대신에 QE에 따른 화폐 신뢰도 저하 현상(즉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들은 재정 긴축 정책(austerity)를 펴기로 합의했다. 자고 깨면 미국이 정부 폐쇄(government shutdown)한다는 협박이 횡행하던 시절이었고, 단어도 어려운 sequestration(재정 동결)이 지면을 장식하던 시절이었다. 이같은 재정 긴축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니까 박근혜 정권 시절의 순자산 지니계수 하락(즉 자산 불평등의 완화)는 박근혜 정권이 ‘평등주의적’이어서도 아니고, ‘서민 친화적’이어서도 아닌, 글로벌 합의에 따른 국내 정책 수행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같은 재정 긴축은 미국의 연방 준비 은행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QE를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키로 합의한 2016년 하반기 이후부터는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재정 확대 정책이 수행되면서 금리 상승 싸이클이 시작되었다. 흔히 금리가 상승하면 부동산에 마이너스 효과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경제에서는 모든 것은 ‘조건절’이다.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금리를 인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2017년부터는 전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 추세가 지속되었다. 이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막을 수 있느냐는 별개 문제다(정작 당시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 정책실장은 토지공개념론자인 김수현이었다).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제도나 세금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금융적/재정적 현상이었기 때문에, 2017년의 조건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금융 산업부터 손을 대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재인 정권의 계급적, 정치적 조건상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첫째로는 한국 자체가 통화주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합의 사안에 정면으로 맞설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해외 압력 유인으로 인한 자산 유동성 버블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과 대출 제한, 세금 인상 등의 일련의 조치가 필요했지만, 이는 한국 경제를 일시적으로 곤두박질 치게 했을 것이며 따라서 선거 승리를 목표로 하는 정당 집단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자에게 고통을 감내하라는 구조조정은 가능하지만, 자본가와 자산가 계급에게 고통을 감내하라는 구조조정은 가능하지 않다. 문재인 정권이 뭐가 더 나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자본주의 정권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어디 가서 살라고?
그리고 이는 단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최근 UN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자.

위의 지도에서 짙은 황토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은 가계의 연간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9배가 넘는 지역들이다. UN 보고서는 이들 지역을 ‘죽었다 깨나도 부담 불가능’(impossibly unaffordable)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전세계 무려 99개국이 여기에 해당한다. 2008년 이후 다시 주택 가격이 상승하여 2008년 금융 위기 수준을 넘어서서 다시 주택 버블 논란으로 시끄러운 미국조차도 단지 ‘심각하게 부담 불가능’ 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다. 다시 말해서 이들 99개국에서는 ‘죽었다 깨나도’ 집 못산다.
그나마 이들 지역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아직은 월세 부담 정도가 낮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나마 월세가 가계 소득의 30% 미만 수준에 속한다. 짙은 황토색 지역은 월세가 가계 소득의 60%가 넘는 지역들이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의문일 지경이다. 그런데 이 챠트를 보고 금융 자본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월가의 펀드 매니저라면 당연히 “파란색 지역들은 월세를 더 올릴 여지가 있겠군“하면서 희희낙락할 것이다. 즉 아직 더 쥐어짤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금융자본을 결코 우습게 보지 말라. 주택 가격 상승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그것은 중심부(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의 수습책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며, 따라서 개별 국가의 특정 정권이 책임을 지네마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집은 못구해도 당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A Better Tomorrow
이제 한국 청년층의 노동 지표를 보자. 먼저 노동시장 전체부터 보자.

청년층은 고사하고 노동시장 전체로 실질 임금은 지난 2020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가 2021년 잠깐 반등한 이후 다시 2022-2024년까지 마이너스에서 떠돌았다. 즉,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2025년이 되어서야 다시 플러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2026년 들어서는 다시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6월부터는 다시 마이너스가 될 것이 확실하다(2026년 1분기 전체로도 실질 임금 상승률은 0.4%에 불과하다)
그럼 청년층은 어떨까?

청년층의 고용률은 지난 24개월 연속으로 하락했다. 전체 15-64세의 고용률은 거의 변동이 없는데도, 청년 고용률은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에도 1.5% 포인트 하락했다. 즉,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청년들의 숫자는 계속 감소 중이다. 20대 여성의 고용률은 1년 전에 비해 1.3% 감소하는데 그쳤지만, 20대 남성의 고용률은 무려 3.2%나 감소했다. 20대 전체의 실업률은 2025년 5월의 6%에서 2026년 5월에는 7.1%로 상승했다.
게다가 그나마 가장 양질의 일자리인 제조업 고용인구가 14만명(3.2%)이나 감소했기 때문에 일자리의 질은 악화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경제활동 참가율도 노동가능 인구 집단도 하락 중이기는 하지만,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25년 5월에 비해 무려 2.3% 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는 아예 구직활동을 단념하는 인구 집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계층별 ‘쉬었음’ 청년층은 1년 전에 비해 2.6% 감소했지만, 그 내역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의 절반은 초급대학 졸업 이하 학력이지만,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저학력자의 쉬었음이었지만, 이제는 고학력자도 쉬었음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흔한 오해와는 달리, 청년 쉬었음 집단은 일자리에 대한 눈 높이가 높은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향후 취업 희망 직장이 ‘중소기업’이라고 대답한 비중이 48%로 가장 높았다. 일반적인 구직 희망 청년층에서는 중소기업 희망은 30%대에 불과하다. 이는 쉬었음 청년 인구가 눈높이가 높아서, 또는 단지 기업에 적응하지 못해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동시에 지방에서는 쉬었음 청년 인구 비중이 높고, 수도권에서는 청년 실업 비율이 높다. 이는 구직을 위해 서울과 경기 인천으로 유입되는 젊은 층 때문에 수도권의 실업률은 높지만, 지방에서는 아예 일자리가 희소해서 찾을 엄두조차 못낼 유인이 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쉬었음은 개인의 특성이 아닌, 사회적 현상, 그것도 강제된 사회적 현상임을 뜻한다.
그러니까 청년세대들이 ‘분노’하는 ‘불공정’에 객관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얼마나, 어떻게 불공정할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주택가격은 지난 2012년 이후 수도권에서 가장 많이 상승했다. 대략 30% 가량 올랐다. 지방은 사실 그다지 많이 오르지 않았다. 10%가량 올랐을 뿐이다. 그리고 주택 가격이 순자산 지니계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자산 불평등’은 수도권의 주택 가격의 상승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위의 지표들은 전주택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그보다 훨씬 크게 올랐다).

따라서 서울에서 민주당을 향한 청년층의 ‘분노’가 가장 극심한 것은 당연한 것일까? 아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는 연령별 순자산 지니계수라는 것이 있다. 나이에 따라서 평균 순자산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분석한 것이다.

연령 집단간 순자산 지니계수를 보면, 부동산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오히려 연령간 순자산 지니 수는 하락했다. 즉 세대간 자산 불평등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뜻이다.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 초기 단계에서는 아직 미주택자의 주택 구매 가능성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신규 주택 구매자의 자산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연령 집단간 순자산 지니계수는 2022년부터는 급등한다. 즉 세대간 자산 불평등이 커진다. 그리고 이 구간은 바로 윤석열 정권 시기다. 따라서 ‘공정’을 말하고 싶거든 제일 먼저 윤석열 정권을 비판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동시에 청년층이 금과옥조로 삼는 ‘꼰대’ 40-50대에 대한 비난도 좌표가 틀렸다. 우리나라에서 순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집단은 이른바 ‘민주화 운동’ 세대인 40-50대가 아니다. 산업화 세대인 60대 이상이다.

우리나라 부의 50%를 60대 이상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2017년 이후 60대 이상의 순자산 보유 비중은 증가 추세이며, 반대로 40-50대의 순자산 보유 비중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즉, 청년들에게서 ‘공정’을 빼앗아간 세대, 청년들의 미래를 이미 독식하고 있는 세대는 6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그러나 이 노년층조차 단일하지 않다.

60대 이상 세대 내에서의 순자산 지니계수는 0.63에 달한다. 즉 6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노인 자살율이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며, 허무주의가 팽배해서도 아니다. 경쟁에서 탈락한 노년층의 삶이 그만큼 고단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그 지표가 바로 연령대 내 순자산 지니계수다. 즉 소수의 늙은 부자와 다수의 늙은 빈민이 존재한다. 따라서 청년세대가 분노하고 싶거든 60대 이상의 ‘부자들’을 겨냥해야 한다. 그런데 투표 행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청년 세대는 자신의 ‘몫’을 이미 가로채 간 늙은 부자들과 동일한 투표 성향을 보인다. 적어도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그랬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먼저 청년 세대라고 해서 다 같은 청년 세대는 아니지만, 그나마 청년층 내에서도 고자산, 고소득자의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상향 이동 전망도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청년층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지배층이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적어도 해결하는 척 흉내라도 내려고 하는 것은 청년들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이기 때문이거나, 또는 공동체에서의 최소한의 책임 때문이 아니다. 청년층이 살기 힘들면 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을 하지 못해서 노동기능을 갖지 못한다거나 정치적으로 체제 불안정 요인이 되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정책 함의 분석을 그대로 옮겨보자:
”자산 불평등이 확대될수록 경제주체들이 기술 개발과 혁신 대신 자산 가격 변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이로 인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낮아져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저하된다. 국가 패널 데이터를 활용한 동태패널 분석결과에 따르면 상위 10%의 자산 점유율이 1% 포인트 상승할 경우, 2년 후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 0.16%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총자본으로서의 국가의 입장이다. 자산 집중이 심화되면 생산성이 하락한다. 생산성이 하락하면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휘청거린다. 이것이 정책 당국이 자산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진정한 이유다.
그런데 원인 분석은 틀렸다. 경제 주체가 자산 투기 놀음에 빠져서 자원 배분 효율성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자산, 특히 부동산 자산은 죽은 노동, 즉 미래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과거의 축적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과잉 축적되면 효율이 하락한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자본 청산이 일어나야 한다. 좋은 말로 하면, 슘페터식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이고 제대로 말하자면 자본 파괴를 통한 자본주의의 갱신이다. 즉 자본 축적 싸이클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주기적 파괴 과정이다.
게다가 노년층의 자산 축적은 소비성향을 떨어뜨려 내수경기를 위축시키고 청년층의 재무 여건을 악화시켜 경제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확대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재명 정권이 부동산을 반드시 잡겠다고 천명하는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명식 태평성대의 불평등 해결책
그러면 총자본으로서의 국가는 이에 대해 어떤 처방을 제시하고 있을까?
일단 전제는 ‘성장 잠재력 잠식 우려’다. 그리고 기존 해결책들(분배, 기본 소득)은 근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재정 여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재명정부는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1) 가계 자산 구조 개선 및 생산적 자산 형성 기회 확대를 위해 부동산의 과도한 기대 수익을 낮추고, 주식시장의 안정적 투자 환경 조성한다. 즉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증시 부양은 단순한 표심 잡기용 정치 선전이 아니라, 국책 사업이다.
(2) 기술발전 성과의 확산을 위한 재분배 체계 재설계 및 인적 자본의 기술 적응력 제고- 인공지능 관련 산업(ICT 산업군)의 고소득이 사회 전체로 분배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노동시장을 여기에 맞추어 재편한다는 뜻이다. 정책 용어로 이렇게 표현되면 비ICT 산업군은 죽었다 복창해야 한다.
(3) 전략 산업 정책적 지원 및 성장 동력 다변화, 양질 일자리 창출 기반 확대 – 일부 선도 기업의 성장 성과가 산업 전반으로 파급되어… 이건 산업화 시절인 지난 1960년대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얘기다. 그리고 한번도 된 적이 없으며, 될 수도 없다. 1970년대 이래의 중화학공업 우선 정책은 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이 없었더라면, 즉 외부적 요인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내수 확대나 양질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독점 재벌을 더 강화시켜 전국민을 살려내자는 구호와 다르지 않다.
위에서 (20, (3)은 산업정책에 관한 이야기니까 나중에 다른 기회를 통해 다시 살펴보겠다. 여기서는 먼저 국가적 사업으로서의 증시 부양이 자산 분배 개선에 어떤 효과를 갖는지만, 한국은행이 직접 분석한 자료로 살펴보자.
한국은행은 지난 5월에 BOK 이슈노트로 ‘우리나라 주식 자산 효과에 대한 평가’라는 분석을 공개했다. 아주 흥미로운 분석 보고서이다.
(1)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는 전체 자산의 7%만을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부동산은 가계 전체 자산의 60%가 넘는다.
(2) 2025년 이후 증시 상승과 주식 투자 증가로 2024년까지는 연평균 20조원 수준이던 주식 자본 이득(미실현소득 포함)이 2025년에는 과거 평균의 22배에 달하는 429조원에 달했다.
(3) 가계는 주가 1만원 상승시 130원을 소비에 활용한다.
(4) 한국의 주식 자산 효과는 유럽 미국 등의 0.03-0.04에 비해 크게 낮은 0.013에 불과하다.
(5) 주식 자산이 자산 효과가 작은 고소득, 고자산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주가 상승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여향은 제한적이다.
(6) 주식 투자로 얻은 수익(차익 실현 자금)은 부동산 등 여타 자산으로 재투자된다.
(7)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 증가 및 참여 계층의 다양화로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지만, 여건 변화로 주가 하락시 역자산 효과가 더 큰 경향과 맞물려 부정적 영향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간단히 한국은행의 분석 결론을 요약하자면, 한국에서 주식 투자로 인한 자산 배분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하위 20%(1분위)가 주식으로 10만원을 벌 때, 상위 20%(5분위)는 206만원을 번다. 20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자산 불균등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게다가 주가가 하락하면 부정적 영향은 배가될 수 있다. 그런데 어쩌다 주가 부양이 국가 사업이 되었을까.
이윤은 우리가, 부담은 너희가
내가 운이 나쁘면, 심지어 내가 하지않은 것도 물어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억울하지만 그렇게 된다. 이는 지금의 젊은 세대, 나아가 하위 80% 세대가 겪고 있으며, 더 심하게 겪게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9일 발표한 ‘2026년 1/4분기 국민소득(잠정치)’ 추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에 한국 경제(GDP)는 전분기 대비 1.8%(전년 동기 대비로는 3.8%) 성장했다. 눈부신 성장이다. 충격적일 정도로 더 놀라운 것은, 명목 GDP 성장률이 1분기 중에 전분기 대비 무려 10.5%(GNI-국민소득 계정-상으로는 무려 11.1%나 성장한 것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7.1% 상승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GDP 성장률은 이같은 명목 성장률에 물가 상승분(GDP deflator라고 부른다)을 제한 실질 값이다. 1분기 중의 GDP 디플레이터는 12.9%에 달했다.

이를 1인당 국민소득계정(GDI per capita)으로 추적해 보면, 지난 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기’나 2000년 초반의 IT 버블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위의 챠트를 보면 1인당 GDP와 GDI 사이에 큰 격차를 발견할 수 있다. GDP는 국내총생산을 나타내며, GDI는 수출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득 증가(구매력 증가)분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난 1분기 들어 반도체 수출 가격 폭등으로 인한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한국 경제는 생산이 증가해서가 아니라, 일부 수출 상품(반도체) 가격이 폭등해서 어마어마한 ‘국민소득 증가’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일시적이고 외부 요인으로 인한 명목 국민소득 증가가 발생하면 국가는 세수 증대로 큰 덕을 보지만(세금은 명목 성장분에 대해 부과된다), 동시에 이는 경제 체제 전반에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게다가 이 외부적, 일시적 소득 증가가 전부문에 걸친 것이 아니라, 반도체 관련 부문(이른바 ICT 부문)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소득 증가의 혜택을 받는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관련 소유주나 노동자들만 이 소득 증가의 수혜자가 된다. 근데 문제는 이렇게 소득 증가가 한 집단에게 집중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혜자가 있으면 비수혜자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선 거시적인 경제상황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나머지 – 비수혜 ‘국민들’에게 또다른 경제적인 ‘부담’ 혹은 ‘손실’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명목 소득의 편중되고 급격한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과 이에 따른 금리 인상압력이 발생한다.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시장 금리가 상승하게 된다. 이 경우 국채 수익률 상승-즉 국채가격 하락-으로 나타난다. 결국 수치로 통합적으로 나타나는 ‘국민소득의 증가’은 사실은 일부 자본소유자와 해당기업 노동자들에게 국한되지만,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의 압박은 고스란히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즉 혜택은 소수에게만 돌아가지만, 부담은 전체가 지게된다.
물론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등 관련 기업의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도 덕을 본다. 그러나 개인투자자가 심지어는 이른바 ‘대세상승기’에도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주식 투자는 기본적인 초기자금(seed money)가 있거나, 혹은 부채를 낼 수 있는 일부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정부는 이같은 ‘일부’의 소득 증가가 실물 경제로 흘러 들어가 총수요를 자극하여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간 가계 부채는 금리 인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 ‘공돈’이 주로 금융시장 내에만 머물고 전체 경제로 확산되는 것을 오히려 저지하려고 한다. 정부가 삼성전자 자본과 노동 사이에 합의된 ‘이익 공유 합의’를 우려하며, 앞으로는 ‘주주들의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증시를 더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대한 주가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과 시장을 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총자본으로서의 국가의 눈에는 주택 자산이 아니라, 주식 자산이 ‘생산적’인 미래를 위한, 그리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이 비싸 보이면, 주식 가격을 더 올려라. 그러면 아파트의 상대 가격은 하락하며 자산 불평등도 완화된다. 놀라운 해결책이다.
챠트에서 나타난 ‘GDI 급등’은 다음과 같은 현상으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1)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소득) 격차를 확대한다. 이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과거에는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선으로 나타났다면, 이제는 일부 수출 첨단산업/내수 및 정체산업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진다. GDI 급증은 경제 전체에서 ‘생산품의 가격’을 자극한다. 즉 기업발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한다.
이같은 추세는 지난 6월 10일 발표된 한국은행의 ‘2025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속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025년의 기업의 수익성(이윤율)은 크게 개선되었는데, 매출 증가는 2024년에 비해 2.5% 증가에 그친 반면(24년은 23년에 비해 4.2% 증가),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4년의 5.4%에서 25년에는 6.2%로 증가했다. 즉 매출 증가세는 244년에도 못미쳤지만, 이윤율은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이는 기업이 원가 상승분 이상으로 출하 가격을 인상하여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시켰거나, 혹은 생산비용(노동비용 등)을 줄였다는 뜻이다. 올해 1분기 지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같은 경향은 더 확대될 것이다.
(3) 자산 불평등이 심화된다. 기존의 한국 자산 불평등의 핵심 고리는 부동산이었다. 이제는 이것이 ‘주식’이라는 유동자산으로까지 확대된다. 초기 투자금이 다르기 때문에, 주식 가격 상승은 투자자들에게조차도 공평한 이익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아예 투자 자체가 불가능한 계층에게는 부동산에 이어, 주식으로 인한 자산 및 소득 격차가 더 확대된다.
(4) 임금 인상 투쟁의 격화가 예상된다. 노동자 계급 내부에 소득 및 자산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내수 및 정체산업 분야에서는 물가 상승분을 따라가지 못하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대적 격차에 대한 불평등을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5) 그러나 지난 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기의 노동자 대투쟁이나, 2000년을 전후한 IT 버블기와는 다른 노동자 투쟁이 진행될 것이다. 왜냐하면 80년대의 3저 호황기의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력 부족(노동력 가격 상승)이라는 거시경제적 조건 하에서 진행되었는데 반해서, 지금의 노동자 계급의 조건은 노동력 부족 상태가 아니라, 단순히 임금 상승분을 초과하여 상승하는 생계비를 보전하기 위한 생계 임금 투쟁이거나, 혹은 다른 산업군에서의 초과 임금 상승에 의한 격차를 메워줄 것을 요구하는 ‘차별 해소 투쟁’, 또는 자산 불평등에 항의하는 ‘반불평등 투쟁’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며, 따라서 분산적이고 국지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6)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가) 특정 분야의 초과 소득 증가분을 세금 등의 형태로 흡수하여 재정을 건전화하거나(즉 국가 부채 축소) 혹은 전국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 전자는 현 정부의 성격상 가능하지 않으며, 후자(전국민 분배)는 앞으로도 각종 ‘지원금’ 명목으로 쥐꼬리만큼 분배되기는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세수로 걷어들인 돈을 ‘지원금’ 몇푼 쥐어주는 정책을 계속 단행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이유이다. 이는 한국 영화의 대사를 빌리자면, ‘살려는 드릴께’가 될 것이다. 살려는 줄테니 감사해야겠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이 초과 소득의 부담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의 형태로 부담하고 혜택은 받지 못하는 국민들은 정부를 비난할 것이며, 정부는 이렇게 훌륭한 경제인데도 왜 대중이 자신들을 비난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러니까 청년층에서는 지금 살기 힘들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살기 힘들고, 집은 영영 못사며
그러나 심지어는 꽤 잘 사는 청년세대도 집은 사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고소득 청년세대는 ‘강남, 마용성’에 집을 구하려 하며(한국에는 사회적 허우대라는 굉장히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 그들의 연봉이 1억을 넘어도 강남, 마용성에 집을 사는 것은 갈수록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부모의 증여나 투기적 소득의 증가가 없이는). 따라서 누군가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으로서의 한 평짜리 집도 못구해 전전긍긍하며, 다른 누군가는 강남에 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그들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언어적으로는’ 동일하다. 모두 부동산을 꿈꾸고 동시에 부동산 정책을 탓한다.

게다가 청년들의 고용 사정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4/4분기와 올해 1/4분기의 각 시도별 청년 실업률을 보면 5.7%에서 7.4%로 증가했다. 1개 분기(3개월) 사이에 실업률이 1.7% 포인트나 증가했다는 것은 급격하게 고용 사정이 악화되었다는 뜻이다. 아주 급속한 경기 침체기에나 나올 법한 지표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의 제조업에서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6.3 지방선거에서 청년: 분노 투표와 읍소 사이에서
– 내일을 향해 쏴라!
따라서 이재명 정권이 ‘단군 이래 최대 코스피 지수’, 인공지능 태평성대를 자랑하는 동안에, 실제 청년 세대의 삶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반민주당/반이재명 정서가 팽배한 것은 전혀 이해못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의 전체 투표성향은 지난 대선 때보다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늘었다(서울 제외). 청년층의 삶이 전혀 나아졌다고 볼 지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가 늘어난 것은, 현 정부와 민주당이 칼자루를, 더 솔직히 말하면 ‘돈 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청년 실업률은 지역별로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고용 사정이 가장 악화된 곳은 전라남북도 지방이었다. 만일 민주당의 텃밭인 이들 지역에 대항 세력이 존재했다면 민주당은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다. 전북 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한 김관영이 나름 선전한 데는 경제적 배경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구나 부산광역시의 경우에는 청년 실업률은 악화되지 않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이들 지역에서의 청년층에서는 민주당/이재명에 대한 반감이 강화될 요인이 희박했다는 것을 뜻한다. 대구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의 김부겸 후보가 청년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민주당이 ‘예상외로’ 고전한 지역을 보면 청년 실업률이 악화된 지역들이 대부분이다. 즉,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재명 정권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의 전체 투표 성향을 보면, 오히려 지난 대선 때보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지역에서 청년층의 민주당 투표율이 상승했다. 따라서 ‘20대의 우경화, 혹은 극우화’라는 표현은 온당하지 않다. 오직 서울에서만 그같은 현상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나름 이유가 존재한다.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의 기본 국가 전략의 한 축은 ‘권력의 지방 분산화’이다. 다른 정권들도 유사한 슬로건을 내걸기는 했지만(예컨대 노무현 정권의 수도 이전) 이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갖춘 것은 아마도 이재명 정권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지금은 ‘특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자치시/도가 여럿 있지만, 서울만이 50년 이상 ‘특별시’라는 명칭을 부여받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지방에 비하면, 정말로 ‘특별’한 곳이었다. 온갖 기회와 특혜가 모두 서울에 모여 있었다. 그러므로 인구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60-70년대에는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였던 이촌향도(移村向都), 또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격언이 있을만큼 서울은 한국의 모든 자원과 기회를 빨아들였다.

모험이 됐든 기회가 됐든 서울로 이주한 청년세대는 서울이 지방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즉, 서울의 권력이 약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서울 권력의 약화야 말로, 그들이 피해 도망쳐온 지방의 재현으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차피 다르지 않은 두 후보 사이의 불편한 선택에서, 즉 유럽식 베를린이나 비엔나를 꿈꾸는 민주당 정원오나 미국식 뉴욕 맨하탄을 꿈꾸는 국민의힘 오세훈이나 인데(이원호, ‘만국의 노동자, 세입자여 단결하라’, 2025. 05. 29 민노의창) 그들에게는 교수형이냐 총살형이냐의 차이밖에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강한 서울’, 즉 전국적인 중량감을 가진 후보를 선택하고자 했다. 그것이 ‘민주주의’나 ‘계엄/내란’을 넘어서 오세훈에게 투표한 이유였으며, 여기에 기존의 서울 청년 집단, 즉 강남과 마용성을 중심으로 물려받을 부동산과 자산이 있는 청년집단들이 가세하여 오세훈의 승리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단지 20대, 30대 남성들뿐만이 아니라, 20대, 3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유였다. 즉, 그들은 서울 권력에 투표한 것이다.
20대(특히 남성)의 정치적 성향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이들의 존재 기반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구에서 비록 투표율은 낮지만, 김부겸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 20대 남성이 더 많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인데(출구조사의 부정확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표현해주고 있다. 지방을 떠나 살 길을 찾아 서울로 온 청년층은 서울에 투표하는 것이 자신들의 살 길이었으며, 지역색을 떠나 민주당의 동진전략에 동의한 대구의 청년층은 그것만이 살 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동일하지 않다. 아니, 청년층은 동일하다. 절박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그 절박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조건에 따라 이번 6.3 지방자치선거에서 지역적으로 달리 나타났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애당초 그들의 존재 조건을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이재명의 주식이 자산 불평등을 해결해주지도 않을 것이며, 윤석열의 강압적이고 퇴행적인 한국 발전모델 사수(노동억압을 통한 경쟁력 유지)가 청년층의 내일을 보장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보장은커녕 오히려 착취도가 상승할 따름이다.
동시에 기성세대들, 산업화 세대나 이른바 민주화 세대인 베이비부머들, 그리고 X세대와 같은 버블과 풍요를 누려봤던 세대들은 청년층들에게 “우리도 다 겪어봤어”라든지, “젊을 때는 다 그정도 고생은 하는거야. 우리는 더 했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세대들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오류를 범했으며,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다시 겪게 하지 않으려고 싸웠던 세대이며, 실은 그 싸움에 실패했기에 오늘날 다시 청년 세대들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청년세대들도 그것이 분노든 읍소든, 공정이든 상식이든 현재 자신들이 처한 문제가 ‘세대’적인 것이라고 이해하는 한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만일 정말로 세대의 문제라고 믿거든, 솔직하게 청년세대의 미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강남의 60대 이상으로부터 자산을 탈취하라. 만일 민주당이 그 원흉이라고 믿거든, 지난 30여년 동안 민주당과 ‘협치’ 관계에 있었던 국민의힘이 아니라, 그같은 협치를 가능케했던 자본주의를 전복하라. 기껏해야 공정과 상식에 머물고 만다면, 그것은 지난 60여년 동안 왼발 오른발을 반복하며 눈가리고 아옹했던 지배층의 ‘useful idiots’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청년세대가 몇십년 뒤 노년이 되어서는 지금의 세대가 겪고 있듯이 노인 자살과 고독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이 비난하는 세대들은 이미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으며, 앞으로도 절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끊어라. 그것이 지금보다 덜 고통스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너희 다음 세대들에게는 덜 힘들고 덜 아플 것이다. 그것이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젊은 세대들에게 늘 부과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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