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 권영숙

Review & Preview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그리고 사회적인 것

20세기 후반 이후 전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혹은 더 적극적 형태로서의 ‘자유방임주의’에서 만사형통으로 쓰이는 ‘자유방임’(시장에 맡긴다)의 기원이 되는 ‘laissez faire’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개념사의 관점에서 정치가 경제로부터 분리되게 된 것, 또는 사회가 정치로부터 분리되게 된 것은 근대적 현상이다. 근대 이전에는 이같은 지적인 혹은 기능적인 분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홉스가 처음 정립한 자유주의 질서는 경제와 정치 모두를 사회로부터 ‘비자연적으로 분리’해내는 데 의존했다. 그리하여 경제와 정치는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경제는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반면, 정치는 공적인 문제로 인식된다.

이슈 리포트

자산시장의 실패와 자산계급정치의 좌초 :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베이스 형성과 정책 전개 과정

이재명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추구하는 국가는 ‘영리국가’(for-profit state)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아예 국가를 영리 단위로 사고한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서 적어도 이들 대 자본가계급과 손을 잡은 것은 확실하다. 그 증거가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기도 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인공지능은 매우 그럴듯한 청사진이지만 국가 경제 나아가 국가 체제 전체를 오로지 인공지능에 모두 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다만 인공지능은 이들 ‘신자본주의 주체들’에게는 매혹적인 유혹이다… 김용범의 실패는 이같은 전략을 모두 무화시킬 위험을 야기했다. 기존의 가계 자산 구성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전환하는데는 이미 실패했다. 이제 아무도 증시의 ‘장기적’ 상승을 믿고 돈을 집어 넣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그 길에는 너무 많은 시체들이 쌓였다. 코스피 지수가 다시 10,000을 간들 청산된 계좌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며 오직 ’믿는 자들‘만의 잔치가 될 뿐이다…
결국 한국의 주택 문제는 서울로의 집중, 즉 서울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단지 행정수도를 지방(세종)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 이상의 분권화 정책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완전히 서울을 깨버릴 정도의 급진적인 분권책이 나오거나, 아니면 서울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주택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
증시에서 털린 대중은 다시 한번 지붕없는 하늘 아래 눕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등에 식칼을 꼽던 구자본주의만큼이나 나쁘며, 영생교주만큼이나 허황되다. 이재명 정부의 리버럴 헤게모니하에서 87년 체제는 이렇게 비열하게, 또는 추잡스럽게, 허무맹랑하게 끝나가고 있다.

교육 선전

15년의 노동연대운동사 (2011~2026)- 연대와 투쟁의 굴곡과 진퇴의 시간들

결국 관건은 “one for all all for one” 입니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를 어떻게 실천하고 구체화하는가입니다. 이 구호는 산별화의 정신이자 구호일뿐 아니라 개별 투쟁과 연대에도 해당합니다… 소위 가능한 목표란 이름하에 투쟁의 구호와 목표가 괴리를 빚고, 나아가 ‘허구적 구호’를 남발하면 당연히 투쟁의 승리가 운동적 의미를 가지는 데 한계가 있고, 투쟁이 전체 노동계급을 위한 투쟁이 되지 못합니다. 즉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는 두번째로 불가능해지는 악순환에 돌입합니다… 마지막으로 투쟁과 연대는 이중주이긴 한데, 여전히 병렬적 혹은 산술적 합 이상이 되지못합니다…
사회적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으로, 사회적 연대를 사회정치적 동맹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더 많은 이들의 문제의식,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된다”는 실천력, 비관 속에서 낙관을 잃지 않는 “희망을 모읍시다”를 구체화하면서 이뤄질 것입니다.

이슈 리포트

이재명 정권 1년, 자본과 정치- ‘개혁’에서 버블로 가는 길: 한국 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진화

한국 정치에는 이상한 신화가 있다. ‘중도’라는 환상이다. 그런데 다시 묻자.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정말로 ‘중도’라는 인구 집단이 존재하는가?.. 존재한 것은 ‘중도’가 아니라 ‘정치적 기회 구조’였던 것이다.

이재명 정권의 정체성은 ‘먹사니즘’이다. 내용도 아주 쉽다 ; “잘 먹고 잘 살게 해줄께”다. 문제는 그래서 먹고 살만해졌나? 고소득 노동자는 이재명 정권의 ‘성과’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저소득노동자 또는 자영업자의 경우는 윤석열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오히려 더 삶이 고달팠을 뿐이다. 물론 이보다 더 큰 혜택을 본 것은 기업들이다…

집권 1년의 부진을 돌파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전면화하는 승부수를 던졌다…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대동하고 발표한 인공지능 투자 계획은 단기적 투자가 아니라 국가의 발전 모델과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인공지능 투자 계획은 단기적 투자가 아니라 국가의 발전 모델과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반도체 입국’의 성장 모델은 다음과 같은 4대 노선을 야기할 것이다; 전자산의 버블화, 전산업의 반도체화, 전국토의 투기화, 전인민의 투기꾼화. 먹고 사는 문제라는데 반대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을 것이다. 뒷감당은? 뒷사람이 할 것이다…
금융 자본주의로의 본격적 전화가 예상되며 국가는 자본의 성장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 버블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구(특히 대서양 동맹, 이른바 NATO 3.0)에 더 의존하게 되며 이는 한반도 북방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다…

이른바 ‘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왜 파시스트가 됐는지도 모른채 타자를 절대적으로 적대화하면서 그것이 민주주의이며, 중도이며 실용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민주당의 분열이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노선 투쟁이었으며, 87년 체제가 아주 흉악한 방식으로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조종임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슈 리포트

6.3 지방선거결과 분석:이재명 대선 2.0의 패배와 민주대연합의 소멸, 그리고 세대 이념 없는 세대투표

이번 선거는 이재명에 대한 중간평가, 즉 이재명 정권의 정치 방식과 정책에 대한 평가의 자리였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선거 결과로 드러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지난 90년대 이후 김대중의 정치 노선인 ‘민주대연합’ 노선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김대중과 민주당은 90년대 초 3당 합당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이같은 민주대연합은 이른바 ‘진보’ 혹은 ‘좌파’ 사이의 독자적인 정치 운동을 크게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깨뜨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재명 정권의 우경화는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적 정통성에 대한 민주당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만일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이미 윤석열 정권은 흘러간 물이라면 동진정책의 대상이 되는 유권자들에게는 인물이 바뀐 것말고는 아무런 차이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이재명의 주장은 직접적으로는 민주대연합을 고수하는 정청래 대표와 과거 민주화 세력을 겨냥한 것이며, 간접적으로는 중도보수를 확대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의 스탠스는 최근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급진적 중도주의’(radical centralism)의 한국어 버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급진 중도주의는 기본적으로 제3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요하게는 보다 노골적으로 엘리트들 사이의 타협과 협치를 강조한다.

이슈 리포트

계급과 세대 사이 청년: 특권, 분노 투표, 그리고 읍소 – 무엇이 20대를 ‘극우’로 만드는가?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조건

20대의 공정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신들이 당연히 차지해야할 몫을 ‘누군가’가 뺏어갔으며, 또는 미래에 가져야만 할 몫을 가지지 못하게 미리 누군가가 이를 선취했으며, 그러므로 자신들의 빼앗긴 몫을 되찾는 것이 공정이다… 이재명 정권이 ‘단군 이래 최대 코스피 지수’, 인공지능 태평성대를 자랑하는 동안에, 실제 청년 세대의 삶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반민주당/반이재명 정서가 팽배한 것은 전혀 이해못할 바가 아니다…
이들은 동일하지 않다. 아니, 청년층은 동일하다. 절박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그 절박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달리 나타났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애당초 그들의 존재 조건을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이재명의 주식이 자산 불평등을 해결해주지도 않을 것이며, 윤석열의 강압적이고 퇴행적인 한국 발전모델 사수(노동억압을 통한 경쟁력 유지)가 청년층의 내일을 보장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보장은커녕 오히려 착취도가 상승할 따름이다…
청년들도 그것이 분노든 읍소든, 공정이든 상식이든 현재 자신들이 처한 문제가 ‘세대’적인 것이라고 이해하는 한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만일 정말로 세대의 문제라고 믿거든, 솔직하게 청년세대의 미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강남의 60대 이상으로부터 자산을 탈취하라. 만일 민주당이 그 원흉이라고 믿거든, 지난 30여년 동안 민주당과 ‘협치’ 관계에 있었던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 그같은 협치를 가능케했던 자본주의를 전복하라.

글로벌 사회운동

선거민주주의에 대항한 제헌주체의 저항 – 미국 뒷마당의 ‘붉은 판쵸들‘, 볼리비아 민중의 반제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부정선거도 하지 않았고 계엄이나 쿠데타를 시도하지도 않은 대통령의 즉각 사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이 ‘시위’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인가? 이 시위는 ‘내란’인가? 볼리비아 민중은 자신들이 주권자로서 새로 만든 헌법을 정부와 국가가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볼리비아 시위는 민주냐 반민주의 관점에서 전혀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다. 민주적 선거로(비록 그 과정이 의심스러울지라도) 집권한 정치세력이 추진하는 제도적 변화를 ‘제헌적 정신’에 입각한 인민들이 거부하면서 기존의 사회주의적 체제의 존속을 요구하는 일종의 ‘헌법적 충돌’ 사건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이는 우선 파즈 현 대통령의 임기 중단과 사임 요구로 나타난다.
요약하면 이번 볼리비아 민중의 시위는 형식적 민주주의, 선거 민주주의에 대항한 헌법적 주체의 집단저항이다. 그러므로 아민자드가 19세기 유럽의 시위가 1871년 파리코뮨을 마지막으로 ‘바리케이드에서 투표함으로’라고 말한 것에 견줘서 표현하면, 이제 ‘투표함에서 바리케이드로’의 역전환이 일어날 조짐이다.

연구자의 시선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 마르크스주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언제가 가장 최근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였는가? 그것은 지금 바로 당장, 지금 이 순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며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미래의 바로 그 순간이다. ..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해석의 권한은, 즉 자본론에서 무엇이 과학적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당대에 인식된 정치적 현실이었다는 점이다…
전향은 흔했으며, 지금 흔하고, 앞으로도 흔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이 전향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예측되었으나 오지 않는 현실에 대한 실망은 이론에 대한 좌절로 나타나며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인으로 나타난다…
자본가들이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와중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예측되었지만 오지 않은 노동계급의 혁명에 좌절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시민의 승리는 민주화의 완성, 즉 부르조아 자유민주주의 공고화(consolidation)의 결과였으며 동시에 ‘민중’이 포섭하고 있었던 미분화된 계급 개념을 완전히 폐기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민중을 폐기하고 시민으로 대치하는데 있어서 이른바 좌파 이론가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Review & Preview

한 세대 전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오늘의 마르크스주의

프레드릭 제임슨이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또는 ‘죽음’은 자본주의가 재편되고 엄청나게 확장된 바로 그 시기와 동일한 때에 발생했음이 분명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전환’과 동시적으로, 혹은 최소한 궤를 같이 하며 발생했다. 이는 이 ‘위기’라는 인식 자체의 본질이 마르크스주의가 기존의 자본주의를 ‘전복’하기는 커녕 해명하지도 못한 채 이미 과거의 이론들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현상들을 직면하기에 이른 ‘이론적 무능력’에 대한 지적 공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30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으며, 앞으로 30년 뒤에도 여전히 지금같이 ‘위기’를 중얼거리고 있지 않으려면, 지금 어떻게 문제의식을 설정해야 하는지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실천의 통합, 즉 어떻게 혁명적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차례다.

이슈 리포트

호르무즈 이후의 세계 – 제국 이후의 미국, 소프트 파워의 허상, 각자도생의 세계

학살과 침략전쟁은 미국의 정책이며, 유일한 전략이고 초당적인 거사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거든 2011년의 리비아를 보고, 1999년의 세르비아를 보라… 미국의 ‘민주시민들’이 no king 시위를 하는 한 미국의 지배 엘리트는 걱정할 것이 없으며, 기존의 학살을 멈출 이유도, 압력도 못 느낀다. 이게 미국 건국 이후 지난 250년간의 일관된 역사였다… 미국의 행위가 국제법에 위배되는 권위주의적 처사라고 비난하려거든 트럼프만 욕할 것이 아니라, 미국 법원과 그런 법을 만든 미국 의회도 함께 탓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이제는 외관이 벗겨진 제국을 뒤로 하고 각자가 자기 몫을 챙기려 할 것이며,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뭔가 또 다른 이벤트를 벌여야 한다. 그리고 이벤트가 되풀이되면 면역이 생긴다. 그러면 미국은 더 큰 이벤트가 필요해진다. 트럼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희망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글로벌 사회운동

NGO 산업 – 자본가 세상의 선교사들

한 사회의 계급적 발전 수준을 뛰어넘는 NGO가 육성되면, 특히 그것도 해외자본의 지원에 의해 육성되면, 이들은 하나의 준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을 뿐만 아니라, ‘비계급적인’ 보편적 정치적 가치를 설정하고 전파하며 정치적으로 과대대표된다… 한국에서 87년이후 시기는 ‘계급’이 사라지고, 즉 노동자 농민이 사라지고 정치적 인간들이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슈 리포트

Broken Empire – 제국은 어떻게 몰락하는가? : 퇴위의 지정학과 세계체제의 전환

제국(empire)은 단지 힘이 세다는 것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그 정치 공동체 내에서 ‘정당성’과 ‘합법성’을 획득하는 것은 이를 위한 정치적 수단들(국가 기구)를 전적으로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같은 수단들이 위협받았을 때 이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힘, 즉 폭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미 패배했더라도 패배한 것으로 보여서는 안되며, 따라서 승산없는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 이것이 지금 전쟁이 장기화하는 유인이다. 현재 미국의 유일한 탈출구는 다른 글로벌 헤게몬들의 ‘중재’(특히 러시아와 중국)에 의해 어느 정도 정치적 명분을 얻고 중동에서 퇴각하는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든 간에, 미국의 퇴위는 다시 미국 내부로 향할 것이다. 그 결과는 처음에는 아노미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마도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지형상, 급진적인 파시스트화의 길을 밟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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