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 권영숙

권영숙의 테제11

사법 중립의 환상과 독립의 신화 : ‘계급 사법’과 사법권력의 민주적 통제

87년 헌법은 87년의 헌법 조문 속에 고정되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변용’과 ‘창조적 날조’ 속에, 그 안에서 이뤄진 수많은 정치적, 계급적 갈등 속에서 나날이 개정되고 있는 어떤 것이다…
기존의 사법권력의 독립성과 중립성 논리는 사법이 외부의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외부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이며, 그 독립성은 ‘중립성’을 담보한다고 주장한다. 즉, 독립은 중립의 전제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독립된 결과, 누적적으로 법률가 집단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키워왔으며, 심지어는 외부로부터의 감시에서도 자유로운 채, 자신들의 이해를 위하여 ‘흥정’이 가능한 단계까지 발전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립성’에 대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설사 사법권력이 자신들이 이해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순수한 양심적’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중립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경사로에서 중립이란 늘 어느 한쪽 방향을 선택할 것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독립은 되어도 중립은 보장할 수 없는게 ‘사법권력’이다…
‘공정’을 말하기 위해서는 법정에서 공정이 실현되는 방도를 찾기보다는, 사회에서 불공정을 제거하는 방안을 먼저 말해야 하며, 아마도 그것이말로 법에게도 그리고 공정한 법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매우 위험하지만 근본적인 운동이 될 것이다. 법이 인민주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권력이 법을 만든다.

이슈 리포트

사상 최저 분배, 사상 최고 이윤 – 미국식 이윤 모델과 글로벌 국채시장의 동요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1970년대 이후 장기적인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0년 직전 일시적인 반등을 보인 이후로는 하락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대비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이는 기업에서 창출되는 잉여 가운데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큰 폭으로 미국 이윤(율)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정부 재정 적자와 배당금의 증가다. 즉 미국 재정 적자가 증가할수록 미국 기업 이윤은 증가하며, 동시에 이는 미국 노동자계급의 임금 투쟁 유인을 감소시킨다. 역으로 이같은 물질적 조건은 미국의 노동자 대중이 생산 현장에서 직접 자본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을 둘러싼 정치적 경쟁(즉 자신들이 지지하는 자본의 정치적 대표가 투표에서 승리하도록 동원되는 것)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게 만든다…
국채 수익률 상승은 단지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전세계 주요국가의 국채 수익률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지난 1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 상승폭을 기록한 국가가 한국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일시적인 해외발 수익을 국가가 ‘횡재세’ 등의 형태로 국가가 흡수하여 이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거나 혹은 재정 적자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만, 현 정부는 ‘사적자본 소유자의 절대적 소유권’을 광신하는 순수한 자본가 혈통인 때문인지, 이를 고스란히 사적 자본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이재명 정부의 수도권 부동산 정책은 바로 이 정책이 부분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즉 그나마 조금 모아놓은 가계 자금조차 모두 자본의 이름으로 가져가야만 이 체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대신 거시 항목에서는 ‘배당금’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사회운동

미국판 사회주의 정치 실험의 시작과 끝은 어딜까?: DSA made in the USA, 그리고 미국 진보정치 실험의 한계적 재연

홍 스스로도 “인민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홍은 분명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아직 ’계급적‘이거나 ’혁명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지난 예비경선은 이 정도의 ’급진성‘, ‘사회주의성’조차도 미국 민주당 정당정치는 물론 DSA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극단적’인 것으로 취급받았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제도 속의’ 민주주의자들이지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유럽식으로 우경화된 사회민주주의의 21세기 미국 버전이다…이같은 정치적 스탠스는 애초 DSA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DSA가 민주당 내 ‘좌파’ 분파로 자신들의 위치를 이동하면서 중요하게 대두된 것이 이른바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이다…
최근 맘다니 뉴욕 시장이 뉴욕경찰청과 이스라엘 경찰청 사이의 대테러 공동 훈련 계획을 용인하는 것도 이같은 사례에 속한다(다만 그는 이 문제는 시 의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반면 맘다니가 시 정부 내에 ‘노동권력국’을 설립하여 노동쟁의를 비롯한 노동계급 이슈에 시 차원에서 개입하려는 것은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지만 실제 이 조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홍의 정치적 유효성은 그가 ‘급진적’이라는 것의 위치를 뒤집었다는데 있다…한국은 ‘급진적’인 것에 대한 의미를 자의적으로 부여하기 이전에 ‘진보’가 무엇인가부터 이 나라의 ‘민주주의자들’에게 되물어야할 시간이다. 민주로부터 진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급진정치’는 더욱 요원하다.

글로벌 리포트

독일 삭소니-안할트주 지방선거의 의미- 유럽의 방화벽(firewall)은 깨질 것인가?

이번 선거는 단순히 극우의 준동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선거 결과는 삭소니-안할트주의 경제와 사회는 몰락해가고 있는데, 기존 정당들이 주민들에게 아무 것도 제시해주지 못한데 대한 분노 투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독일 지역적 차원에서의 브렉시트 투표라고 할 수 있다. “우파는 체제를 공격하고, 진보는 오히려 체제의 수호세력이 되는 현상. 브렉시트에서 보듯 유럽 사민주의자들은 유럽체제의 수호세력이 되어 자본이 짜놓은 프레임을 유지하고 그 체제의 생존을 연장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5.3%의 지지율로 의회 진출에 성공한 좌파 정당 BSW의 선거공학적 전략은 제도권 우파 정당들에게만 유리한 ’방화벽‘전략 자체를 해체함으로서 우파 정당들을 제외한 정당 정인들의 ’당선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제도화된 회의‘를 먼저 불식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의 전략과 성공여부는 ’극우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좌파에 대한 방화벽을 치고 있는 남한의 정당정치에서 자립해야하는 진보 좌파정치에게도 시사적이다.

글로벌 사회운동

[인물]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죽었다 – 미국과 전세계 반공 자유주의적 ‘2차 페미니즘 물결’의 상징

1차 페미니즘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되거나 그 일부였다. 2차 페미니즘은 2차대전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적 반공주의 운동의 첨병이었고, 심지어 CIA 역공작(Cointel)의 일환이었다. 그 중심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있었다…
스타이넘은 1958년 CIA에 프락치로 채용된 뒤, Independent Research Service라는 단체를 설립한다. 1967년 뉴욕타임즈가 스타이넘이 CIA 프락치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스타이넘은 이를 순순히 인정하면서 “CIA는 대중적 이미지와는 달리, 비폭력적이고 리버럴하며 명예로운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Review & Preview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그리고 사회적인 것

20세기 후반 이후 전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혹은 더 적극적 형태로서의 ‘자유방임주의’에서 만사형통으로 쓰이는 ‘자유방임’(시장에 맡긴다)의 기원이 되는 ‘laissez faire’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개념사의 관점에서 정치가 경제로부터 분리되게 된 것, 또는 사회가 정치로부터 분리되게 된 것은 근대적 현상이다. 근대 이전에는 이같은 지적인 혹은 기능적인 분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홉스가 처음 정립한 자유주의 질서는 경제와 정치 모두를 사회로부터 ‘비자연적으로 분리’해내는 데 의존했다. 그리하여 경제와 정치는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경제는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반면, 정치는 공적인 문제로 인식된다.

이슈 리포트

자산시장의 실패와 자산계급정치의 좌초 :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베이스 형성과 정책 전개 과정

이재명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추구하는 국가는 ‘영리국가’(for-profit state)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아예 국가를 영리 단위로 사고한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서 적어도 이들 대 자본가계급과 손을 잡은 것은 확실하다. 그 증거가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기도 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인공지능은 매우 그럴듯한 청사진이지만 국가 경제 나아가 국가 체제 전체를 오로지 인공지능에 모두 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다만 인공지능은 이들 ‘신자본주의 주체들’에게는 매혹적인 유혹이다… 김용범의 실패는 이같은 전략을 모두 무화시킬 위험을 야기했다. 기존의 가계 자산 구성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전환하는데는 이미 실패했다. 이제 아무도 증시의 ‘장기적’ 상승을 믿고 돈을 집어 넣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그 길에는 너무 많은 시체들이 쌓였다. 코스피 지수가 다시 10,000을 간들 청산된 계좌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며 오직 ’믿는 자들‘만의 잔치가 될 뿐이다…
결국 한국의 주택 문제는 서울로의 집중, 즉 서울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단지 행정수도를 지방(세종)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 이상의 분권화 정책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완전히 서울을 깨버릴 정도의 급진적인 분권책이 나오거나, 아니면 서울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주택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
증시에서 털린 대중은 다시 한번 지붕없는 하늘 아래 눕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등에 식칼을 꼽던 구자본주의만큼이나 나쁘며, 영생교주만큼이나 허황되다. 이재명 정부의 리버럴 헤게모니하에서 87년 체제는 이렇게 비열하게, 또는 추잡스럽게, 허무맹랑하게 끝나가고 있다.

교육 선전

15년의 노동연대운동사 (2011~2026)- 연대와 투쟁의 굴곡과 진퇴의 시간들

결국 관건은 “one for all all for one” 입니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를 어떻게 실천하고 구체화하는가입니다. 이 구호는 산별화의 정신이자 구호일뿐 아니라 개별 투쟁과 연대에도 해당합니다… 소위 가능한 목표란 이름하에 투쟁의 구호와 목표가 괴리를 빚고, 나아가 ‘허구적 구호’를 남발하면 당연히 투쟁의 승리가 운동적 의미를 가지는 데 한계가 있고, 투쟁이 전체 노동계급을 위한 투쟁이 되지 못합니다. 즉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는 두번째로 불가능해지는 악순환에 돌입합니다… 마지막으로 투쟁과 연대는 이중주이긴 한데, 여전히 병렬적 혹은 산술적 합 이상이 되지못합니다…
사회적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으로, 사회적 연대를 사회정치적 동맹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더 많은 이들의 문제의식,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된다”는 실천력, 비관 속에서 낙관을 잃지 않는 “희망을 모읍시다”를 구체화하면서 이뤄질 것입니다.

이슈 리포트

이재명 정권 1년, 자본과 정치- ‘개혁’에서 버블로 가는 길: 한국 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진화

한국 정치에는 이상한 신화가 있다. ‘중도’라는 환상이다. 그런데 다시 묻자.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정말로 ‘중도’라는 인구 집단이 존재하는가?.. 존재한 것은 ‘중도’가 아니라 ‘정치적 기회 구조’였던 것이다.

이재명 정권의 정체성은 ‘먹사니즘’이다. 내용도 아주 쉽다 ; “잘 먹고 잘 살게 해줄께”다. 문제는 그래서 먹고 살만해졌나? 고소득 노동자는 이재명 정권의 ‘성과’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저소득노동자 또는 자영업자의 경우는 윤석열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오히려 더 삶이 고달팠을 뿐이다. 물론 이보다 더 큰 혜택을 본 것은 기업들이다…

집권 1년의 부진을 돌파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전면화하는 승부수를 던졌다…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대동하고 발표한 인공지능 투자 계획은 단기적 투자가 아니라 국가의 발전 모델과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인공지능 투자 계획은 단기적 투자가 아니라 국가의 발전 모델과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반도체 입국’의 성장 모델은 다음과 같은 4대 노선을 야기할 것이다; 전자산의 버블화, 전산업의 반도체화, 전국토의 투기화, 전인민의 투기꾼화. 먹고 사는 문제라는데 반대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을 것이다. 뒷감당은? 뒷사람이 할 것이다…
금융 자본주의로의 본격적 전화가 예상되며 국가는 자본의 성장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 버블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구(특히 대서양 동맹, 이른바 NATO 3.0)에 더 의존하게 되며 이는 한반도 북방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다…

이른바 ‘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왜 파시스트가 됐는지도 모른채 타자를 절대적으로 적대화하면서 그것이 민주주의이며, 중도이며 실용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민주당의 분열이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노선 투쟁이었으며, 87년 체제가 아주 흉악한 방식으로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조종임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슈 리포트

6.3 지방선거결과 분석:이재명 대선 2.0의 패배와 민주대연합의 소멸, 그리고 세대 이념 없는 세대투표

이번 선거는 이재명에 대한 중간평가, 즉 이재명 정권의 정치 방식과 정책에 대한 평가의 자리였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선거 결과로 드러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지난 90년대 이후 김대중의 정치 노선인 ‘민주대연합’ 노선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김대중과 민주당은 90년대 초 3당 합당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이같은 민주대연합은 이른바 ‘진보’ 혹은 ‘좌파’ 사이의 독자적인 정치 운동을 크게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깨뜨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재명 정권의 우경화는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적 정통성에 대한 민주당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만일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이미 윤석열 정권은 흘러간 물이라면 동진정책의 대상이 되는 유권자들에게는 인물이 바뀐 것말고는 아무런 차이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이재명의 주장은 직접적으로는 민주대연합을 고수하는 정청래 대표와 과거 민주화 세력을 겨냥한 것이며, 간접적으로는 중도보수를 확대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의 스탠스는 최근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급진적 중도주의’(radical centralism)의 한국어 버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급진 중도주의는 기본적으로 제3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요하게는 보다 노골적으로 엘리트들 사이의 타협과 협치를 강조한다.

이슈 리포트

계급과 세대 사이 청년: 특권, 분노 투표, 그리고 읍소 – 무엇이 20대를 ‘극우’로 만드는가?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조건

20대의 공정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신들이 당연히 차지해야할 몫을 ‘누군가’가 뺏어갔으며, 또는 미래에 가져야만 할 몫을 가지지 못하게 미리 누군가가 이를 선취했으며, 그러므로 자신들의 빼앗긴 몫을 되찾는 것이 공정이다… 이재명 정권이 ‘단군 이래 최대 코스피 지수’, 인공지능 태평성대를 자랑하는 동안에, 실제 청년 세대의 삶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반민주당/반이재명 정서가 팽배한 것은 전혀 이해못할 바가 아니다…
이들은 동일하지 않다. 아니, 청년층은 동일하다. 절박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그 절박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달리 나타났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애당초 그들의 존재 조건을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이재명의 주식이 자산 불평등을 해결해주지도 않을 것이며, 윤석열의 강압적이고 퇴행적인 한국 발전모델 사수(노동억압을 통한 경쟁력 유지)가 청년층의 내일을 보장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보장은커녕 오히려 착취도가 상승할 따름이다…
청년들도 그것이 분노든 읍소든, 공정이든 상식이든 현재 자신들이 처한 문제가 ‘세대’적인 것이라고 이해하는 한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만일 정말로 세대의 문제라고 믿거든, 솔직하게 청년세대의 미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강남의 60대 이상으로부터 자산을 탈취하라. 만일 민주당이 그 원흉이라고 믿거든, 지난 30여년 동안 민주당과 ‘협치’ 관계에 있었던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 그같은 협치를 가능케했던 자본주의를 전복하라.

글로벌 사회운동

선거민주주의에 대항한 제헌주체의 저항 – 미국 뒷마당의 ‘붉은 판쵸들‘, 볼리비아 민중의 반제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부정선거도 하지 않았고 계엄이나 쿠데타를 시도하지도 않은 대통령의 즉각 사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이 ‘시위’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인가? 이 시위는 ‘내란’인가? 볼리비아 민중은 자신들이 주권자로서 새로 만든 헌법을 정부와 국가가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볼리비아 시위는 민주냐 반민주의 관점에서 전혀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다. 민주적 선거로(비록 그 과정이 의심스러울지라도) 집권한 정치세력이 추진하는 제도적 변화를 ‘제헌적 정신’에 입각한 인민들이 거부하면서 기존의 사회주의적 체제의 존속을 요구하는 일종의 ‘헌법적 충돌’ 사건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이는 우선 파즈 현 대통령의 임기 중단과 사임 요구로 나타난다.
요약하면 이번 볼리비아 민중의 시위는 형식적 민주주의, 선거 민주주의에 대항한 헌법적 주체의 집단저항이다. 그러므로 아민자드가 19세기 유럽의 시위가 1871년 파리코뮨을 마지막으로 ‘바리케이드에서 투표함으로’라고 말한 것에 견줘서 표현하면, 이제 ‘투표함에서 바리케이드로’의 역전환이 일어날 조짐이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