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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서 동원으로, 그리고 체제 변화 regime change로 – 민주주의와 혁명 : 최근의 연구동향 리뷰에 대한 비판적 리뷰

저자는 논문에서 ‘체제'(regime)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이며 상대적으로 항구적인 사회적관계라는 것을 거의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단지 ‘정치 제도'(그리고 그에 부수된 사회, 경제 제도)라는 관점에서 체제(Regime)을 접근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혁명’의 18~19세기적 의미(심지어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즉 혁명의 ‘혁명적’의미는 소실되고 ‘정치 반동’으로 사회화 되는 효과를 낳는다. 실은 이것이야말로 Clarke이 분류하려고 했던 혁명이라는 개념과 정의들의 난립들을 불러온 근본적인 이유이다.
이런 지적인 운동적인 풍토속에서 어쩌면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혹은 가능한 접근의 출발점은 ‘혁명’을 이 논문처럼 ‘대중기반의 체제변화’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접근하면 적어도 혁명은 우리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포괄적인 ‘집합행위들’, 혹은 ‘사회운동’의 일부이자 구별되기도 하는 ‘혁명’혹은 ‘혁명 운동으로 배제당하지는 않을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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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위기(constitutional crisis)는 왜,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가?

법을 결정하는 정치적 의지는 일상적으로는 의회(혹은 궁중정치)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가장 최상위법인 헌법을 결정하는 정치적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최초의 헌법을 만드는 힘, 이른바 제헌권력(constitutional forces)은 제도적으로는 제헌의회를 뜻하지만, 그러나 이 제헌의회조차도 그 이전에 그 제헌의회를 만든 힘들의 반영물일 뿐이다. 이 최초의 시원적 권력으로서의 제헌권력은 평화로운 타협과 계약의 산물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이 힘은 전쟁(국제전, 내전)의 산물이었으며, 따라서 이 투쟁의 결과에 의해 만들어진 제헌의회는 그 제헌의회가 통치하려고 하는 공동체 내의 불평등한 세력 균형을 반영한다. 즉, 헌법이라는 최상위의, 그리고 최초의 계약은 ‘불평등한’(또는 홉스의 표현을 빌자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계약이었다…
왜 헌법(법치)과 민주주의가 충돌하는가, 또는 헌정위기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여기에 있다. 즉 (제도화된)정치가 각 사회세력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을 더 이상 완충하지 못하는 순간, 문서화된 형태로 정치를 규율하던, 정치의 외부에 존재하던 최초의 계약(헌법)은 정치와 충돌한다. 이것이 헌정위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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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시스템은 작동하고, 위기는 봉합되고 : 윤석렬 탄핵과 “촛불의 운동정치와 87년 체제의 이중전환”(2018)의 현재성

2016-17년의 박근혜 탄핵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공화국은 수호되었다’, 또는 ‘87체제는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윤석렬의 계엄 이후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 역시, 동일한 관점에서 평가될 수 있다.
2018년 <경제와사회> 3월호에 실린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의 논문 “촛불의 운동정치와 87년 체제의 이중전환”, 이 논문을 다시 꺼내든 것은 단지 사건의 유사성(탄핵) 때문만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연속성 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다음 단계로 ‘진전’된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질적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이 논문이 가지는 의미는, 가장 낙관론이 팽배한 시기에, 심지어 촛불 시위를 ‘촛불혁명’으로까지 격상시키려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의 주도권이 가장 강력하던 시기에 이미 그 허상과 그에 따른 위험을 지적하고 환기시켰다는데 있다..
박근혜 탄핵 퇴진 운동(촛불시위)를 불러온 근본적인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를 이중적 의미의 ‘87년 체제의 위기론’으로 요약한다. 87년 체제는 단지 정치적 의미에서 불완전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는 더욱 불완전했다. 이것이 87년 체제의 근본적 한계이자 내재된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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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파국주의(capitalist catastrophism)와 생태 아파르트헤이트

자본의 위기는 이제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보편적 위기, 더 나아가 인류의 위기 혹은 전지구적 위기로 자신을 내세운다.. 물론, 현재의 ‘기후 위기’ 또는 ‘생태 위기’가 근거가 없다거나, 또는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불과할 뿐이며, 따라서 노동자 계급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의 위기 속에서 자본은 어떻게 자신을 재구성하고 있으며, 거기에 ‘대중’은 어떻게 동원되는가 혹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어지는가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본주의 위기의 본성과 그 위기의 역사들, 그리고 그에 대응한 인간들의 행동과 실패들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파국주의는 자본주의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본주의적 파국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자본과 인간 및 비인간적 본성의 신진대사 관계를 극적이고 비대칭적으로 파국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생태 아파르트헤이트의 지지를 받아 당분간은 “작동”할 수 있는 재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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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은 자신의 법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

한국은 이른바 ’민주화‘ 이후 놀라울 만큼 ’법‘을 둘러싸고 사회가 재편되고 있다. 고소와 고발은 폭주하며 법이 만능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를 규정했던 ’소송사회‘는 소송의 폭주를 경험중인 한국 사회에 대한 규정으로 더 적절해보인다. 그리고 이는 법의 언어가 정치적인 언어가 될 뿐 아니라, 투쟁의 언어까지 잠식하게 만들고 있다.
과연 한국 노동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언어, 정치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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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Change’는 체제전환이 아니다!

한국에는 기존의 체제전환론과 다른 ‘체제전환’론이 크게 일어나고 있고, 우파부터 좌파 일부까지 이 개념을 공용하면서 이 개념 자체가 시대적 유행어가 되고 있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점은 여기서 체제나 체제전환은 흔히 사회과학에서 사용하고 한국어로 주로 번역되어온 regime(체제)이 아니며, 체제전환도 regime transformation(transition)이 아니라 system change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번역의 혼용으로 인한 개념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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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vs BRICS : 권력투쟁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현재 G7과 BRICS 사이의 권력투쟁은 두 블록 내에서 진행되는 계급투쟁과 상호 작용할 것이다. 두 블록의 지도자, 이념가, 대중 매체는 주로 이러한 권력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급 변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중 의식과 행동주의를 계급투쟁에 집중하려면 권력투쟁과 계급투쟁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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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이론의 역사

현재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주춤하고, 미국의 헤게머니가 위협을 받으면서 종속 이론은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살릴까? 종속이론의 핵심 테제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불평등 교환이나, 그로 인한 중심부 노동자 계급의 상대적 지위 향상(이것이 이른바 ‘가든(garden)’의 실체다)에 대한 논의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종속’에 대한 주장들이 다시 빛을 볼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는 더욱 강고한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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