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결과 분석

:이재명 대선 2.0의 패배와 민주대연합의 소멸, 그리고 세대 이념 없는 세대투표

2026년 6월 15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6.3 지방자치단체장선거, 보궐선거, 동진전략, 내란 척결, 민주대연합, 동맹정치, 지방분권, 우경화, 막스 베버, 급진적 중도주의(redical centralism)

지난 6월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 뜨거웠던 곳은 서울시장과 평택을과 부산 북구 갑의 국회의원 보궐 선거였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곳은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와 충남 공주부여청양 국회의원 보궐선거, 그리고 인천 연수구청장 선거였다. 그리고 세 곳 모두 민주당이 패했다.

 

이재명 대선 2.0?

이 세 곳이 중요한 이유는, 이재명의 말을 그대로 빌자면, “이겼어야 했는데 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는 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진 곳이기 때문이다. 성남시는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계에 입문을 한 곳이다. 성남시장 선거에서는 이재명 정권의 첫 정무보좌관 출신인 민주당의 김병욱 후보가 국민의 힘 신상진 후보에게 패했다. 게다가 김병욱은 분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도 있다. 즉 지역 연고, 기반이 모두 단단했다. 따라서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정치 구호가 ‘통’했다면 당연히 김병욱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패했다. 이른바 ‘이재명 pick’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천 연수구청장 선거에서는 현직 구청장인 이재호 국민의힘 후보가 정지열 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연수구는 인천시장으로 출마해 당선된 박찬대 민주당 후보의 지역구였다. 정지열 후보는 4선 시의회 의원 출신이었으며 박찬대 후보의 정무특보를 지냈다. 그런데 간발의 차이기는 하지만 패했다. 음주, 여성의원 폭행 등의 전력이 문제가 됐다. 이는 이른바 ‘바람’(민주당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선거에서는 바람이 불면, 후보자 개개인의 성품이나 능력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충남 공주부여청양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김영빈 후보가 국민의힘 윤용근 후보에게 패했다. 윤용근이나 김영빈 둘 다 지역 연고는 있지만, 지역 활동은 전혀 없었던 ‘낙하산’ 후보였다. 게다가 국민의힘 윤용근은 지난 24년 총선에서 성남 중원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갑자기 꼽힌 인물인데도 승리했다. 공주부여청양은 충남지사에 당선된 민주당 박수현 의원의 지역구이다. 여기서는 ‘인물’은 상관이 없다. 이 곳의 박수현의 충남도지사 득표율은 60%에 육박했지만, 그러나 정치적인 ‘후계’에 대해서는 주민들은 전혀 동의해주지 않았다. 이는 유권자들이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의 정치적 성격을 구분하여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언론에서 말하는 ‘줄투표’의 소멸 현상이다.

이 세 곳이 왜 중요한가? 이번 6.3 선거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선거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1) 이재명 정권에 대한 여론조사 상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거에서는 이재명의 ‘정치’ 혹은 이재명이 선택한 인물에 대한 맹목적, 또는 일방적인 지지는 없었다. (2) 유권자들은 정치적 선택(국회의원 보궐 선거)과 행정적 선택(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구분하여 선택적으로 지지했다.

여기서 세 번째에 해당할 수 있는 질문을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번 선거는 이재명에 대한 중간평가, 즉 이재명 정권의 정치 방식과 정책에 대한 평가의 자리였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선거 결과로 드러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6.3 지방선거 정당별 광역단체장 득표율. 출처 : 연합통신

 

2018년 지방 선거와의 차이점

이번 선거는 이재명 집권 1년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아니지만, 이재명의 정치노선 또는 정책에 대한 평가였다. 그리고 ‘내란’과 ‘경제성장’, ‘행정개혁’이라는 엄청난 구호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제한적으로만 이재명 정치에 동의했다. 만일 과거 사례(박근혜 탄핵 직후의 지자체 선거)와 비교한다면, 부분적으로만 동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부인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2017년의 박근혜 탄핵에 이은 문재인 정권의 출범과 2018년의 지방 선거에서의 민주당의 압승은 탄핵 이후의 선거라는 점에서는 이번 선거와 유사하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적 균형 속에서 진행되었다. 박근혜 탄핵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에서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당 안철수가 첫 주창자였으며, 곧 이어 당시 새누리당 내부에서 다수의 반란의원이 나온 다음에야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이 받았다. 즉, 박근혜 탄핵의 주동력은 여당 내부의 강력한 분열이었다.

외적인 조건도 전혀 다르다. 당시 미국은 거의 노골적으로 박근혜 탄핵 시위를 지지했다. 아마도 이것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탄핵 주장에 동조한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극도로 분열되었고 검찰을 비롯한 사법당국도 탄핵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즉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모두에서 탄핵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

이같은 상황 하에서 치뤄진 2018년 지방 선거는 민주당의 유례없는 대승을 가져왔다. 처음으로 민주당의 동진전략이 가시화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에 반해, 윤석열 탄핵은 전혀 다른 국면 속에서 진행되었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의 반란의원 숫자는 극히 적었으며, 미국은 국회에 상정된 첫 탄핵발의안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탄핵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으며,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2018년과 같은 힘 관계는 기대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차이는 문재인 정권은 새누리당에 대한 적극적인 포섭 전략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적어도 2019년 조국 사태 이전까지는 이른바 ‘중도/우경화’ 노선을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당의 기존 지지층 내부에 균열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조국 사태 이후에는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중도/우경화 스탠스를 취했지만, 그러나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 힘입어 2020년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정치 지형상으로는 이재명은 문재인이 누렸던 이점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문재인 집권 1년 뒤인 2018년 지방 선거는 오히려 중간평가적 성격이 희박했던 데 비해, 2026년 지방선거는 중간평가적 성격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예상 밖으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선거 전략이 가져온 자기 모순내란 척결과 동진전략의 한계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선거 전략은 ‘내란 척결, 지방분권, 행정개혁’이었다. 이 가운데 ‘행정개혁’은 명시적인 슬로건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재명이 서울시장 후보로 사실상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선택하면서 ‘행정 능력’을 최우선적 장점으로 꼽았기 때문에 이것이 주요한 마켓팅 포인트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행정개혁(또는 유능한 행정)은 단순히 지방선거용 슬로건만은 아니다. 이는 동시에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를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완충장치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4일 광주시에서 지방선거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출처 : 연합통신

 

민주당의 선거전략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전제해야 할 점은 민주당의 선거전략은 당의 전략이라기보다는, 이재명 정부의 구상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서울시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 참모진들을 지자체 및 국회의원 보권선거에 내보는데서도 드러난다. 따라서 6.3 지선 결과는 단지 민주당의 ‘승패’일 뿐만이 아니라, 이재명 정권의 중간평가이기도 하며, 나아가 이재명 노선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슬로건이 좋은가 여부와는 별개로, 실은 이 슬로건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사실상의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내란 척결은 두 가지를 겨냥하고 있었다. 하나는 국민의힘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을 환기시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를 기반으로 이른바 ‘동진전략’, 즉 기존의 국민의힘의 아성이었던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을 공략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를 수행한 방식은 정공법이 아니라, 우회포섭 전략이었다. 즉, 직접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국민의힘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정책적으로 기존 세력들을 포섭하는 우경화 전략을 통해 구사되었다. 이는 이재명 스스로 여러차례 언급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해당 지역구의 유권자들에게는 이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치적 차별성이 아니라, 인적 차별성에 불과했다. 단지 해당 지역(대경, 부울경)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서 이같은 차별성의 소멸의 영향이 미쳤다. 민주당의 ‘정책’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은 민주당은 중앙정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정권이 민주당으로 바뀌면 중앙 정부 예산을 해당 지역으로 더 많이 배분해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즉 이재명 정권의 우경화는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적 정통성에 대한 민주당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만일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이미 윤석열 정권은 흘러간 물이라면 동진정책의 대상이 되는 유권자들에게는 인물이 바뀐 것말고는 아무런 차이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에서는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지원’(예산)에 대한 기대 말고는 민주당에 대한 메리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동진전략의 실패의 원인이었고, 동시에 전체적인 선거 판세에서 민주당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전혀 민주당 바람이 불지 않은 이유였다), 동시에 ‘줄투표’가 사라진 이유이기도 했다(예상을 뒤엎고 국민의힘이 승리한 지역의 후보들은 국민의힘 중앙당의 태도와는 달리, 거의 모두가 계엄령을 비판했다). 즉 유권자들은 ‘내란 척결’, ‘민주주의 수호’라는 정치적 구호를 노골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 슬로건이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결정적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는 ‘내란 척결’이라는 선거 슬로건은 부분적으로만 유효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같은 선거 전략의 반대쪽 함의, 즉 민주당이 내란 척결을 내세우면서도 동시에 중도보수(우경화) 전략을 취한 것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차별성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일 민주당과 국민의 힘 사이에 이념적 차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지역 현안에 이기적으로 반응하거나, 혹은 보다 전국적인 인물이 될 후보를 선택한다. 부산 북 갑의 한동훈 후보는 그렇게 해서 당선된 것이다. 물론 민주당 하정우 후보의 선거 운동이 부실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그가 하필 그 지역을 택했는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실패 원인이었다.

즉 이번 선거를 휩쓴 진정한 화두, 그러나 보이지 않았던 숨은 화두는 ‘지역주의’, 또는 소지역주의였다. 이는 한편으로는 지방 분권화를 기치로 내세운 현재 정치 세력들의 전략하에서는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소)지역주의였기 때문에 선거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주제를 설득하거나, 혹은 선거 결과에서 그같은 주제를 추출해내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이같은 추세는 단지 이번 지방선거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며 28년 총선과 30년 대선까지도 오히려 그 추력이 더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정치 지형은 전통적 의미의 ‘서울 중심 권력’과 ‘지방 분권 세력’ 사이의 대립이라는 형태를 띌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선거는 바로 그 전초전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대연합의 소멸

동시에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내란 척결’(민주주의 회복/심화)를 기치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서는 이른바 ‘중도보수’(우경화)를 택함으로써 기존의 ‘민주대연합’(즉 진보를 표방하며 중도를 포섭하던 전략) 노선을 폐기했다. 그같은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 평택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였다.

검찰 출신인 민주당의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의 조국 후보가 단일화 논의 없이 각개 약진했으며, 결국 국민의힘의 유의동 후보가 어부지리로 승리했다. 이는 단지 개별적인 사례나, 개인적인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민주당이 새로운 노선과 수행 방식을 추구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시에 이는 지난 90년대 이후 김대중의 정치 노선인 ‘민주대연합’ 노선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김대중과 민주당은 90년대 초 3당 합당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DJ식의 동맹정치를 민주대연합9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집권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선택한 정치 노선이었다. DJ-JP 연합, 노무현-정몽준 연합, 그리고 2012년의 문재인-안철수 연합등은 후보 단일화, 또는 정당간 선거 동맹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이념노선에서 발휘된 동맹 정치였다. 민주당은 기존의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을 ‘반민주정당’으로 규정짓고 87년의 민주화를 완성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대연합을 지속적으로 천명해왔다. 실제야 어떻든 간에, 이같은 민주대연합은 이른바 ‘진보’ 혹은 ‘좌파’ 사이의 독자적인 정치 운동을 크게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민주당의 독자 집권이 가시화된 2018년 이후에 정의당이 상당히 선방했지만, 그러나 윤석열 정권과 같은 반민주 정권이 도래하면 이같은 독자적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약화되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깨뜨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민주당은 다당제 하에서도 충분히 절대 우위가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또는 이재명 정권이 추구하는 중도보수화에 기존의 ‘진보’적인 민주대연합 분파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판단 하에 지난 30여년 간의 대연합 동맹의 일부였던 세력들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의 합당 논의 실패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민주당 내 기존의 민주대연합파(정청래 대표로 대표되는)들은 이같은 경향에 반기를 들고 있으며, 이같은 민주당 내부의 분열이 지방 선거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민주당은 단일한 선거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대 투표는 있지만, 세대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구조사에 의하면, 20대 남성은 지역적으로 전혀 다른 투표 성향을 보였다. 즉 서울에서는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70대 보다도 높다. 그러나 이른바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에서는 20대 남성은 민주당에게 국민의힘보다도 더 많이 투표했다. 20대 여성들은 심지어 경북에서조차도 국민의힘보다도 민주당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출구조사 자체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왜냐하면 출구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정원오 민주당 후보가 더 많은 득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20대 투표 성향이 지역적으로 다르다고 충분히 추정 가능하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물론이고, 지역적으로 20대 남성이 다른 투표 성향을 보였다는 것은, 이들이 ‘단일한’ 의제를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단순히 ‘20대남=우경화(또는 극우화)’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지난 대선과 비교했을 때,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높았던 개혁신당이 이번에는 전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이미 당시에도 예측했듯이 이준석의 ‘정치’는 파편화된 일시적인 바람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서울 지역에서는 개혁신당지지 20대 남성이 대거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쏠렸는데(대선 당시 이준석을 지지했던 20대 남성의 절반 이상이 오세훈에게 투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20대의 극우화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이번 선거에서 서울에 부과된 특수한 성격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방 선거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약 52%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43%를 기록한 국민의힘보다 9% 포인트 앞섰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이 얻은 49.42%에 비하면 약 3% 포인트 가량 늘어난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김문수 후보가 대선에서 받았던 41.15%에 비해서 다소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개혁신당(지선에서 약 1.15% 득표)과의 합산 득표율은 43.3%로 지난 대선에 비해 약 6.5% 포인트 가량 감소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주요 전략 거점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전체 선거에서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기대에 못미쳤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록 민주당이 사실상 민주대연합 구도를 스스로 깨버리기는 했지만, ‘내란 척결’ 혹은 ‘민주주의 수호’라는 정치적 슬로건 자체가 선거에서 부정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민주대연합 해소에 따른 민주당 내부의 분열,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의 갈팡질팡이 전반적인 부진을 야기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2024년 정기국회 당시 이재명 정청래 김민석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 사이에 본격적인 노선 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뉴스핌

 

민주당의 정체성과 분열

실은 이번 선거는 선거 그 자체보다도 선거 이후가 훨씬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결과가 애매했기 때문에 민주당 내의 각 파벌이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게 결과를 해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분열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같은 분열의 진원지는 바로 이재명 자신에게서 출발한다.

이재명은 유럽 순방 중이던 지난 13일 장문의 트윗을 통해 막스 베버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여당은 과감하게 다양한 세력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트윗은 기괴한 바가 있다. 먼저 베버에 대한 소개부터가 틀렸다. 베버는 철학자가 아니다. 막스 베버는 사회학자, 정치가였지 단 한 번도 철학자로 인정받은 적도 없고 스스로 자처한 적도 없다. 바쁜 대통령이 각잡고 베버의 저작을 읽었을리는 없을테니 도대체 주변의 어느 학자 나부랭이가 베버를 소개해줬는지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듯하다.

이재명이 소개한 베버의 견해는 그의 강연문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요약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이 연설은 1차 대전 종전 전후에 로자 룩셈부르크등의 혁명봉기가 실패하고 그가 중도정당인 독일민주당 창립 멤버로 참여한 뒤 의회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 했던 것이다. 그는 이 연설 뒤 얼마 안지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었다.

연설 내용은 고답적이지만, 그러나 독일적 특성을 고려하고 읽어야 한다. 독일에서는 전통적으로 ‘리버럴’ 혹은 ‘중도’라는 정치 개념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맑스가 직접 간여했던 독일 사민당의 이념이 강력했던 탓에, 그리고 융커를 중심으로 한 구귀족과 대자본의 힘이 강력했던 탓에 각 정당들은 굉장히 선명한 이념적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베버가 ‘무한책임’ 운운했던 것은 이같은 이념 정당을 비판면서 정치가 아닌 행정 위주의 ‘배려’를 강조하면서 나온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베버의 주장은 씨도 안먹혔고, 독일에서는 여전히 베버의 정치 노선을 계승하는 정당은 없다(고작해야 지난 사민/녹색/자민당의 신호등 연정에 참여했던 자민당이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기껏해야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하는 정당이며, 지난해 총선에서는 5% 문턱을 넘지 못해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는 베버의 주장은 영미 식의 다원주의에 기초한 리버럴리즘이라기 보다는,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에 훨씬 가깝다.

더 큰 문제는 ‘포용’은 헌법에 명시된, 그리고 정치적 성격상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추구할 수 있는 가치지만, 정당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정당은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다. 만일 포용을 할 것이라면 굳이 ‘정당’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다(레이건 시절 이른바 만물정당 : catch-all party이라는 프레임으로 한 때 유행하기는 했다). 즉 결과에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무한 책임은 이념적 동질성과 그 동질성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포괄하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대통령이 이를 아무리 소속 정당이라고 할지라도 정당에게 요구할 권한은 없다.

이재명의 주장은 직접적으로는 민주대연합을 고수하는 정청래 대표와 과거 민주화 세력을 겨냥한 것이며, 간접적으로는 중도보수를 확대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 내에서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이며, 이재명에 실망한 일부 이탈 세력이 나올 수 있다. 이같은 분열상은 민주당 전당대회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재명의 스탠스는 최근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급진적 중도주의’(radical centralism)의 한국어 버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라크전 전범이자 영국 노동당을 말아먹은 주범인 블레어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고 반포퓰리즘(ant-populism) 선전에 열중하다가 최근에 급진 중도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들고 나왔다(총리 시절에는 이른바 제3의 길, 즉 개량 좌파주의를 들고 나온 바 있다).

급진 중도주의는 기본적으로 제3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요하게는 보다 노골적으로 엘리트들 사이의 타협과 협치를 강조한다.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밀실 야합이다. 최소한 50년대 후반 맥카시즘 해체 과정에서 나온 다원주의는 훗날 리버럴리즘으로 발전하면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긍정성은 가졌었다. 이제 리버럴리즘이 쇠락하면서, 그마저도 문이 닫힐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21세기의 민주주의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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