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Empire – 제국은 어떻게 몰락하는가?

:퇴위의 지정학과 세계체제의 전환

2026년 3월 30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글로벌 사우스, 제국, 제국주의, IMEC경제동맹, 중동, 영구평화, 영구 내전, 제국의 법(rule-based international order).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교통요충지(choke point), 세력권, 글로벌 동맹체제, multi-plex(다중구성)

제국이란 무엇인가?

제국(empire)은 단지 힘이 세다는 것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그 정치 공동체 내에서 ‘정당성’과 ‘합법성’을 획득하는 것은 이를 위한 정치적 수단들(국가 기구)를 전적으로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같은 수단들이 위협받았을 때 이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힘, 즉 폭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 관계에 있어서도 동일한 논리가 통용된다. 한 국가가 ‘제국’이라는 것은 그것이 전세계적 차원이든, 또는 지역적 차원이든 간에, 그 세력권 내에서 국가 간의 관계에서 폭력(무력, 군사력)을 독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 국가가 전혀 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무장이 제국의 무력에 비하면 무의미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제국은 ‘전쟁’을 통해서 이같은 무력의 독점을 확인시킨다.

미국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테헤란 거리를 모자가 걷고 있다. 출처 :<알 자지라>

이 확인의 과정(국제전)은 기술적으로는 유일하게 제국만이 전쟁을 개시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제국만이 유일하게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구성된다. 즉 전쟁의 시작과 끝을 독점적으로 선포하고 수행할 수 있는 힘과 권리가 제국의 징표다. 만일 제국이 전쟁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순간에 끝낼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제국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방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즉 폭력을 독점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란 사태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전쟁은 미국(그리고 미국의 역내 대리인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은 이란의 지도부를 몰살시켰고 수백 군데의 군사 및 민간 시설을 폭격했다. 미국은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마음대로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은 전황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돌아가지 않자, 전쟁을 끝내기를, 혹은 최소한 전쟁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란은 휴전 협상을 거부하였다. 협상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부한 것조차도 아니다.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협상하라는 압력이 노골화되기 이전에는 이란 외무부장관은 “제 3자를 통해 대화 제의가 왔지만, 우리는 (메시지의)접수 자체를 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아예 상종을 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피해나 전쟁의 승패 여부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이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다.

제국은 무력들 독점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전쟁을 개시할 수 있으며, 동시에 언제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전쟁 개시의 이유는 뭐가 되든 상관없으며(그냥 빡쳐도 된다) 그걸 뭐라고 정치적으로 포장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제국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전쟁의 종식도 마찬가지다. 제국은 마음껏 폭력을 행사한 다음에 아무런 근거가 없어도 그냥 전쟁을 끝내면 된다. 다만 유일한 부대조건이 붙는다. 제국이 전쟁을 종식한 이후에도 상대국은 어떤 일을 당했든 간에 동시에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사후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제국은 전쟁 과정 중에서 필요 이상의 과도한 폭력을 행사해 아예 상대방의 ‘전쟁 의지’를 꺾어놓아야 한다. 이것이 제국이 전쟁이 잔인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란이 ‘어긴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전쟁의 방식이나 개전이 아니라, 전쟁 종식의 논리, 즉 미국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으나 종식시킬 수 없다면, 이미 그것은 제국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력을 독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전쟁이 비대칭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즉 미국의 ‘승리’와 이란의 ‘승리’는 완전히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다. 미국은 그것이 레짐 체인지든 이란의 파괴, 약화든 간에 ‘파괴’하는데 목표가 있다. 이란의 목표는 훨씬 단순하다. 계속 전쟁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란은 그 내용 여부와 상관없이 승리한다. 그리고 지금 이란은 승리하고 있다.

 

칸트 철학자 vs 전략가

이는 단순한 추상적 비유가 아니다. 최소한 이란의 지도부는 자신들이 처한 조건을, 그렇게 어떻게 해야 제국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Vali Nasr의 <Iran’s Grand Strategy>에 실린 헨리 키신저와 이란 정치인의 대화는 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키신저와 라리쟈니의 대화가 실린 이란 분석서 <Iran’s Grand Strategy> 표지

“2015년 유엔 회의차 뉴욕을 방문한 이란의 관료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만났다. 키신저는 냉전 해체 과정에서의 소련과 중국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이란은 언제쯤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실용주의를 채택할 것인지 물었다.

이 대화는 두 대립 집단이 자신들의 힘을 모두 소모할 때 양자 사이의 갈등은 끝난다는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까지 이르렀다. 칸트는 국가가 이같은 순간에 이르면 전쟁보다는 평화에서 더 큰 가치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키신저는 이란 관료에게 물었다 : ‘이란은 이같은 완전한 소모의 단계에 도달했는가? 이란은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뿌연 안개 속을 뚫고 칸트의 이성을 볼 수 있는가?’

키신저는 자신과 대화하는 이란 관료가 칸트에 통달하고 있다는 점에 매우 놀랐다(실은 그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이란어로 번역한 인물이었다). 이란 관료는 역으로 키신저에게 물었다 : ‘미국은 자신의 힘을 모두 소모했는가? 미국은 언제쯤 중동에서 기존 노선을 변경하고 이성을 보게될 것인가? 그는 이란은 종교적 비젼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의 힘을 소진시켜 중동을 포기하고 이란을 가만히 놓아두도록 하는 거시적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으로서는 미국의 중동 정책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힘이다. 미국은 이란과 그 이란을 형성한 혁명적 이데올로기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이란의 노선을 포기하기 보다는, 차라리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연적 단계로서 미국에 저항한다. 그 길은 굴곡지고 때로 뒷걸음치겠지만, 그러나 어쨌든 이란은 전진할 것이다

2015년의 대화에서 어떤 미래가 올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던 미국과 이란의 두 정치인 사이에서 고려되고 있던 것은 더 이상 이슬람 이데올로기가 아닌 칸트였다.

이 이란 정치인에 따르면 이란은 (혁명적)’대의명분이 아니며, 세계 무대에서의 이란의 행동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에 이란의 외교정책은 면밀히 계산되고 실용적인 것이며, 국가 안보에 관한 것이었다. 즉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적대적인 대의명분을 포기하고 이란을 봉쇄하려는 정책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대화는 이란의 논리, 목표, 예상과 정신상태를 보여준다. 이란의 정책은 전략적 계산을 반영하며 그 계산은 지속적 압박을 통해서 미국의 중동 정책을 무산시키고 미국의 대이란 봉쇄정책을 소진시키는 것이었다

이 대화는 이란이 ’이데올로기 집단‘(종교집단)이 아닌, 통상적 국가(conventional state)임을 보여주며,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국가 이성‘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전략적 관점에서 계산된 행위를 하는 존재로서의 이란이다.

이 대화에서 오히려 이 이란 정치인은 키신저에게 묻는다. “미국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의 대화는 전형적인 근대국가의 논법, 즉 ’이성적 계산을 기초로 한‘ 국가를 전제로 진행되며, 그 결과는 현실에서 상호간에 ’소진‘ 뒤에야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임을 예언한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같은 국가 이성 하에서는 평화를 위한 전쟁은 불가피하며, 그 전쟁은 지리한 소모전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란이 “이번 전쟁을 47년 동안 준비해왔다”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평화는 전쟁의 ’승패‘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저 더 오래 버티고 객관적으로 더 큰 손실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게 만드는 정도의 손실만으로도 쟁취된다. 따라서 양자의 전략적 계산이 다르다. 이란은 버티고 상대가 이런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지속해야 하는지 회의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승리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상대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분쇄해야만 한다.

이란의 완전한 분쇄, 이것이 미국의 이번 전쟁의 목표였다. 핵도 아니고, 원유도 아니었다. 핵은 핑계일 뿐이며, 원유는 부대적 피해(collateral damage)일 뿐이다. 미국이 ’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은 이란을 압살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란의 정치인이 물은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자신이 제국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가?

여기에 언급된 이란 정치인이 바로 ’알리 라리쟈니‘였다. 그는 지난 3월 17일 암살되었다. 79년 이란 혁명에 참여했고 혁명수비대 여단장 출신이며, 학부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철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테헤란대학에서 “수학의 칸트적 해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권의 철학저작을 출간했고 십여편의 논문을 썼으며,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했다. 10년 이상 이란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 되었고, 2월 28일 알리 하메네이 암살 이후에는 사실상 이란의 지도자였다.

위의 대화로 보면 라리쟈니는 이슬람 혁명주의자가 아니다. 세속주의의 대표자이며 전략가였다. 당연히 이런 칸트 철학자가 ’광신도‘가 될 수는 없다. 라리쟈니가 죽었을 때, 영국 외교관이 “대화가 통하는 합리적 인물”이라고 아쉬워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라리쟈니를 죽였을까? 라리쟈니는 협상이 가능한 인물이었다. 단, 그와 협상이 불가능한 한 지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은 이스라엘을 용납할 수 없다고 트위터를 남겼다. 그는 가자 학살 뒤에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용인하지 않았다. 따라서 라리쟈니가 살아있는 한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전에는 이란과 협상이 불가능하다. 그는 이스라엘 문제만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주의자의 도덕적 모토는, 칸트가 말했다시피, “하늘에 빛나는 별, 내 가슴에 영원한 도덕률”이기 때문이다. 즉 칸트주의자에게는 타협할 수 없는 것과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 그리고 라리쟈니에게는 가자가 그 경계선이었다.

이란 국가안보회의 전 사무총장 알리 라리쟈니. 칸트 철학자였던 라리쟈니는 지난 3월 17일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출처 : <Radio Farda>

그래서 그는 죽어야만했다. 즉, 라리쟈니의 암살은 미국이 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란 언론에 따르면 전쟁 발발 뒤 17일 동안 다섯 차례나 라리쟈니 암살 시도가 있었다. 그는 왜 피하거나 숨지 않았을까? 피하지 않은 것은 그랜드 아야톨라인 알리 하메네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무실에서 폭격으로 죽었다. 지하 대피소로 대피조차 하지 않았다. 이 이란 고위 인사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여기서 홉스와 칸트가 갈라진다. 홉스는 (전쟁 뒤에) 승자와 패자가 불평등계약을 맺으며 승자는 끊임없이 전쟁의 공포, 즉 절멸의 공포를 환기시켜서 패자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칸트는 전쟁법, 즉 전쟁의 이성을 얘기해. 전쟁에서는 승리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간들은 전쟁하에서도 훗날의 지배나 혹은 다시 패배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또는 보다 효율적으로(비용을 덜 들이고) 승리하기 위해서 전쟁의 수단을 합리적 이성적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홉스는 결과 이후의 이성을 말하지만, 칸트는 과정에서 이미 이성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전쟁법, 인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에게는 절대적 절멸이 없다. 왜냐면 그것은 비이성적이니까. ’절대적‘, 그 자체로 전쟁의 목적이 사라져버리고 말며 이것은 ’이성적‘으로 무의미하다(여기서 전쟁은 정치적으로 적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임. 따라서 절대적 절멸은 전쟁의 목적에 위배된다). 그래서 칸트의 전쟁은 상대적이며, 강자의 이성과 약자의 이성이 서로 충돌하는 변증법적인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의 과정이 이미 전쟁의 결과를 제한하고 있다(범주적으로).

라리쟈니와 하메네이의 정치적 전략, 동시에 종교적 신념은 홉스와 칸트가 어떻게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하메네이는 이란 방송이 보도한 바로는 대피하라는 권유를 받자 “9000만 이란 시민이 모두 대피할 수 있다면 나도 하겠다 “면서 거부했다. 시아파의 시조인 후사인 이븐 알리가 말했던 것과 동일하다. 알리도 적들이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고 피하라고 수하들이 권유하자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있다면 나도 피하겠다고 거부했고 포위된 상태에서 항복을 요구하자 불의와는 타협할 수 없다며 거부하고 죽었다. 여기서 이슬람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가 탄생한다: 순교와 정의. 하메네이와 라리쟈니는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이다.

그동안 이란 내부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둘러싸고 내부 노선투쟁이 있었어. 강경파와 온건파, 개혁파 세 갈래로 싸웠는데 하메네이와 라리쟈니는 철학적으로는 스스로 절대적 절멸의 대상이 되면서 동시에 종교적으로는 순교와 정의를 구현했다. 하메네이의 순교는 그동안 이란, 더 넓게는 지난 수십년간 국제사회의 이성이었던, 전쟁의 이성, 즉 수단의 제한성을 한순간에 돌파했다. 시아파로서는 자신들의 정치노선이 어떻든 간에 지도자가 순교했는데, 게다가 각기 다른 노선 지도자들도 동시에 순교했는데 서로 간에 차이로 대립하는 게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노렸던 건 이란 엘리트 내부의 대립이었는데 그걸 무화시킨 것이다. 동시에 하메네이는 스스로 절멸의 대상이 됨으로써 전쟁의 이성을 무화시켜버렸다. 이란은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다. 즉 수단의 제한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사우디 바레인 UAE 카타르 어디든 맘대로 폭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자신들은 정치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란의 지금의 행동은 철학적으로는 이성적으로 정치적으로 계산 안하는 이성이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칸트철학자(라리쟈니)가 옳았다.
이란 전황을 비유하자면, 죽은 공명이 산중달을 내쫓고 있는 중이다.

 

전쟁의 시작

개전 일자는 2026년 2월 28일이지만, 이 전쟁의 발발이 확실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가장 확실한 징표는 지난 2025년 11월 한국 배치된 대공미사일 포대를 빼돌려 중동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즉, 이미 지난 2025년 11월에는 전쟁은 예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직전인 25년 10월 말에 한국 경주에서 열린 AIPAC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이 회담한 것을 감안할 때,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은 시-트 회담에서 중대한 ‘결렬’이 있었음을 추론케 한다. 즉 처음부터 미국의 핵심 목표는 이란이 아니었다. 이란을 계기로 한,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목표였다.

물론 이란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 중요하게 된 것은 이란이 중동에서 갖는 위치와 이란이 보유한 천연자원(원유와 천연가스) 때문이지, 이란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대해 갖는 ‘적대감’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대공미사일 포대의 중동으로의 전환 배치는 이런 전후 맥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첫째로, 미국은 이미 이란과의 전쟁에서 대공 요격미사일의 부족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포대를 빼간 것이다. 한국이 미국 국방전략에서 갖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이 사건은 매우 놀라운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로, 이미 지난해 11월에는 세상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미국은 전쟁을 할 결심을 굳혔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뒤의 사건들, 이란 내에서의 소요 사태나 핵을 둘러싼 협상들은 모두 사전 준비 공작이나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미국은 훨씬 이전부터 이같은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평가해야 한다.

외교적으로 자레드 쿠슈너(트럼프의 사위)나 위트코프(트럼프 동업자, 부동산 시행업자) 같은 인물이 핵 협상과 같은 중요한, 그리고 전문적 지식을 요하는 협상에 대표를 맡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트럼프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미국의 지배세력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이유이며, 트럼프는 전혀 전문지식이 없는 큐슈너와 위트코프를 협상 대표로 내세운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대화가 파탄이 나고 전쟁이 들이닥치더라도 그것은 고작해야 ‘트럼프 개인의 잘못’ 또는 ‘협상 대표의 무지’ 탓으로 그 이유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켓팅 전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damage control’ (위험 통제) 전략에 해당한다. 즉, 몰라서, 또는 바보인 척 해서 책임을 면탈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작업에는 역사가 깊다. 당장 지난 2003년 이라크 침공만 하더라도,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핑계를 댔으며,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단지 분석가들의 기술적 실수 탓으로 돌렸다. 무려 40만이 넘는 이라크 인민들이 죽었어도 ‘아 실수’라고 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됐기 때문이다. 이 ‘실수’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처벌을 받은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다른 말로 해서, 미국의 대이란 핵 협상 대표가 비전문가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 협상 여부와 상관없이 이란을 공격할 시나리오를 꾸미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핵협상 내용이 실은 그다지 기술적으로 복잡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국 협상 대표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후행적으로 변명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핵 관련 전문가를 협상 대표단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즉 협상은 처음부터 전쟁을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하기 16시간 전인 2월 27일 밤에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협상을 중재했던 오만의 외무장관은 미국 CNN TV에 출연하여 “협상은 다 이뤄졌으며, 타결 직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 바로 그 다음날 이란을 폭격한 것은, 차라리, 더 시간이 지나가면 협상 타결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 2003년의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되었다. 당시 이라크는 UN 사찰단으로부터 화학무기 보유 여부를 조사받고 있었다. 훗날 UN 사찰 대표가 밝힌 바에 따르면, UN 사찰단은 85%의 사찰을 진행했으며 이라크는 화학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었다. 즉 이라크에는 화학무기가 없었으며, 미국도 유럽도 이를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안심하고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태의 진행 과정을 되짚에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명백해진다. 첫째, 미국은 협상할 의도가 없었으며 큐슈너나 위트코프는 나중에 일이 잘못됐을 경우에 대비한 ‘변명용 카드’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이란 공격 청사진 격인 2009년 브루킹스연구소의 전략보고서 ‘Which way to Iran?’에는 아예 이 점이 명시되어 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거나 부추겨서, 만일의 사태에 이스라엘에게 그 비난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런 걸 plausible denialbility(핑계거리용 희생양)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미국을 ‘오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이스라엘 때문에 전쟁에 끌려들어간 것도 아니다. 미국에게 이스라엘은 그냥 발판에 불과할 뿐이다.

 

미국은 어쩌다 이 모양으로 전락했을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가장 수치스러운 장면은 바레인의 미 5함대 기함지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콩가루된 때도 아니고, 아브라함 링컨 항공모함이 이란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이란 영해 700km밖으로 꽁무니를 뺀 순간도 아니고,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이 화장실의 난으로 똥내가 진동하던 순간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3월 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민병대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건 순간이었다.

트럼프는 쿠르드족 민병대 지도자들에게 이란 공격을 요청했다. 이 사건을 서구 언론들이 범상하게 보도한 것조차도 실은 엄청난 기사 왜곡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사건의 의미와 맥락을 제대로 보도하는 것도 언론 기사가 수행해야 할 기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국가 수반도 아닌, 일개 민병대의 지도자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로 급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이래, 미국에 과연 이런 전례가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게다가 이들 쿠르드족 민병대는 지난 2019년과 2025년 봄 두차례에 걸쳐 미국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두번 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이다). 미국은 쿠르드족 민병대에게 독립을 약속하고서는 알 카에다 부사령관 출신의 아부 모하메드 알-줄라니에게 시리아 정권을 넘겼고, 알-줄라니 정권의 쿠르드족 토벌을 방관하여 수천명이 사망했다. 그러니 이번 이란 침략전쟁에서 도대체 얼마나 다급했길래 미국 대통령이 이런 짓까지 한단 말인가? 심지어는 이같은 도움 요청 전화를 받고도 쿠르드족 민병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전화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초의 이란 공격 계획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며, 둘째는 이 실패한 공격 계획 중에는 이란 내부의 ’소요‘ 유도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이란 내부에서는 아무런 소요도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하메네이의 자발적 순교와 같은 종교적으로 거룩한 장면들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전면적인 폭격을 하면서 내부의 국민들이 ’외국‘에 호응해 현체제에 적대적 소요를 벌일 것으로 기대한 것 자체가 지능이 의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가 통했던 1918년의 제정 러시아는 외부의 침략을 받아서 방어전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니콜라이 2세가 영국과 프랑스의 압박과 회유(그리고 내부 귀족 및 자본가 계급의 이해)에 따른, 그러나 인민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삶과 전혀 무관한 살육적인 전쟁을 치렀을 뿐이었다. 그래서 볼셰비키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가 통했다. 즉, 염전(厭戰 – 전쟁 혐오)은 사회주의 혁명의 기본 조건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전쟁반대는 “전쟁을 내전으로” 삼아 체제를 변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이란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 즉 침략에 해당한다. 심지어는 미국이 자랑하던 리버럴 데모크라시조차도 이미 한참은 맛이 간, 더구나 트럼프 하에서는 미국 스스로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떠벌이고 있는 ’선진 문물‘일 뿐이다. 이란 인민들이 자신들의 체제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던 간에 미국의 공격을 정당화해 줄, 지지 가능한 미국적 ’가치‘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부의 봉기나 소요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두번째 가능성, 즉 지난 1월 초의 폭동과 같은 외부 세력이 개입한 소요의 가능성(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확인되었다)도 현재의 조건에서는 얼토당토 않은 얘기였다. 그래서 미국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북부에 퍼져있는 쿠르드족을 이용해 ’소수민족의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것이며, 이를 계기로 이란을 ’발칸화‘, 즉 영구내전화를 유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 어떤 것도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쿠르드 카드는 미국의 중동정책의 역사에서 늘 쓰고 버리는 카드에 불과했기 때문에 신뢰가 없었고, 게다가 이란 내의 쿠르드족은 소수민족이라고 차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독립을 추구할 유인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는 전쟁 발발후 터져나온 뒤늦은 한탄이나 폭로처럼, 단순한 미국의 계산 착오였을까? 현실적으로 이란 내부에서 소요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계산 착오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다 중요한 측면이 있다. 즉 미국이 만들려고 한 이란의 체제는, 단순한 레짐 체인지나 혹은 인물 교체가 아니라, 이란이 장기간 내부 각 세력들 간에 불화를 겪는 것, 즉 시민사회적 의미의 내전이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의 ’발칸화‘였다는 점이다. 이것만이 유일하게 이란이 스스로 약화될 수 있는 구조적 방안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 첫날의 ’여자 초등학교 폭격‘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이 폭격으로 7살에서 12살 사이의 여자아이 165명이 사망했다. 폭격 방식도 이른바 ’double tap’, 즉 첫 폭탄이 떨어지고 사상자가 발생한 뒤 구조 인력이 오기를 기다려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 포탄을 떨어뜨리는 잔악한 방식이었다. 미국은 처음에는 자신이 폭격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다가 사용된 폭탄이 토마호크 미사일임이 확인되자, 조사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미국은 이란 공격 첫날인 지난 2월 28일 이란 민납 지역의 여자 초등학교를 폭격하여 165명의 여자 아이들을 죽였다. 출처 : <The American Prospect>

전쟁 중일지라도 민간 시설을 폭격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미국은 여자 초등학교를 폭격했을까? 몰랐을까? 실수였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의 인공위성은 자칭타칭 길바닥의 골프공 크기 물체도 식별할 수 있다. 모를 수가 없다. 그것도 황급한 폭격도 아닌, 준비된 폭격인데 모른다는 건 그냥 거짓말로 우기기에 불과하다. 아이들을 살육하는 것은 군사적으로도 아무 효과가 없으며, 정치적으로는 비난거리밖에 안된다.

그런데 왜 죽였을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이 학교는 이란의 혁명수비대 장교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라는 점이다. 즉, ‘감정이 실린’ 폭격이었다. 고의적인 가족 살해인 것이다. 둘째는, 이슬람에서는 아이를 죽이는 자를 용서하는 것조차 교리에 위배되기 때문에, 이란 지도부는 이같은 행위를 한 세력(미국)과는 타협할 수 없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이란의 지도부를 모두 살해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세력을 새 지도부로 올리면, 이들은 국민들에게 아이를 죽인 세력에게 굴복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당성을 상실한다. 즉, 미국은 레짐 체인지를 하면서 동시에 새로 들어선 지도부가 국민들로부터 불신받을 조건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이란의 레짐 체인지가 아니라, 내부의 영구적 불화 즉 영구 내전을 통한 이란의 약화였다. 그것을 한편으로는 민족 분열 내전,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 내전이라는 방식으로 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일차적으로는 미국이 자신들이 원하는 세력을 새 지도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즉 미국은 자신들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면 이란의 엘리트들이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타협을 선택할 것으로 믿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같은 정치적 계산은 빗나갔다. 이란 엘리트들에 대한 계산도 빗나갔으며, 이란 대중들의 반응에 대한 계산도 빗나갔다. 그래서 이는 군사적 실패라기보다는 정치적 실패라고 해야 한다. 분명히 인공지능으로 수백번도 더 시뮬레이션을 했을텐데도 이런 전략이 나왔다는 것은 인공지능의 ‘지능’이 모자란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미국의 전략 입안가들은 당연히 인공지능보다 지능이 낮다).

챗GPT, 제미니, 클로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란은 이 모두를 알고 있었으며 대비를 하고 있었다. 실은 조금만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미국이 이를 ‘계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생각‘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반증한다.

 

마지막 전쟁 이란이 전쟁을 지속하는 이유

지난 24일 영국 BBC-TV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대외첩보부(MI6)의 전 국장은 “미국에게는 선택의 전쟁, 이란에게는 생존의 전쟁”이라고 이란 사태를 요약했다. 정확하다. 미국에게는 ’하지 않았어도 될 전쟁‘이다. 반대로 이란으로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이다. 미국은 단지 하늘 위에서 폭탄을 던지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어나가지는 않는다. 미 본토가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니며, 미국의 시설들이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란에게 있어서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위협은 미국이 맘대로 폭격을 하고서는 언제든지 발을 빼는 것이다. 즉 “mission complete”(임무 완수)라고 선언하고는 물러서면 그만이다. 물론 이 경우에 트럼프는 ’TACO’(Trump Always Chickend Out: 트럼프는 늘 꽁지를 뺀다)라는 정치적 조롱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애초에 트럼프는 이런 조롱을 받아내기 위해서 미국 기득권 권력 집단에 의해서 선택된 인물이다. 트럼프에게는 이 정또의 조롱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반대로 이란으로서는 미국이 맘껏 이란 내 시설을 폭격하고 지도부를 살해한 뒤 발을 빼버리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다. 단지 버티고 살아남았지만, 수시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란은 장기적으로 약화된다. 그래서 라리쟈니가 말한 것처럼, 국가 이성으로서의 이란이 소모전을 통해 미국을 완전히 소진시켜 더 이상 전쟁을 할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려면,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 즉 휴전은 이란의 목표가 아니며, 오히려 이란 전략에서 가장 위험한 요인이다. 이란은 자신들이 아무리 큰 피해를 입더라도 미국도 피해를 입도록 계속 미국을 전쟁터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야만이 미국을 ‘소진’시킬 수 있다.

이것이 이란이 휴전을 거부한 이유이며, 동시에 이 전쟁을 이란에 국한하지 않고 ‘역내전’(regional war)로 확대시킨 이유이다. 또한 역내에 미국의 이해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이유이며,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아예 이스라엘을 말살시키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을 전쟁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트럼프는 정치적 타격 따위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란은 중동 전체를 전쟁터로 확대시키는 방안을 강구했다.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기지가 있는 모든 지역을 타격해서 미국에게 타격을 입힌다. 미국도 여기까지는 계산했다. 그래서 미리 취약한 군사기지에서는 미군을 철수시켰고, 바레인을 기항지로 하고 있던 5함대는 정처없이 인도양을 떠돌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은 미국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첫 사흘동안 드론과 구형 미사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공방어망을 소진시키고 마치 건물 철거하듯이, 차례차례 미국의 레이다 시설들을 파괴했다. 이란 IRGC의 텔레그램 채널에서는 전쟁 7일 차인 3월 6일 무렵에는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공방어망은 무력화되었다고 판단한다. 이 때부터는 굳이 많은 미사일을 쏠 필요가 없다. 소수의 첨단 미사일만으로도 이란은 자신들이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란의 전략이 이렇게 펼쳐지는데도 미국은 이란의 미사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란은 미사일 기지를 땅 속 깊숙히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스라엘 같은 대공방어망은 하나도 없지만, 모든 것을 땅 속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 깊이는 400-700미터에 달한다. 미국이 가진 가장 파괴적인 벙커버스터조차도 기껏해야 60m 정도가 한계다. 미국이 가진 폭탄으로는 무려 27곳에 달하는 이란의 미사일 도시(단지 미사일 발사, 저장 기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는 도시형 지하기지다. 수백km의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다)를 파괴할 도리는 없다. 핵폭탄으로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막무가내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 시기부터 이란은 레바논, 이라크 등의 친이란계 민병대 조직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과 싸우고 이라크의 친이란계 시아파 민병대들은 이라크에 섬처럼 고립된 미군 기지들을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같은 비대칭적 공격으로 미군은 인명 손실을 크지 않았지만, 작전 운용 능력은 크게 제한되었다. 더구나 이라크 내의 미군 기지가 이제는 고립된 공격 목표가 됨으로써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결국 미군은 지난 25일 쿠르드족 자치 구역을 제외한 이라크 전지역에서 모든 미군을 철수시켰다. 미국이 이란을 침공한지 23년 만의 일이다. 뜻밖에도 이란은 이라크를 해방시킨 것이다.

칸트 철학에 따르면, 영구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은 모두를 소진시켜야만 한다. 그러려면 이란으로서는 미국을 계속 전쟁터에 붙잡아 놓아야만 한다. 즉, 이란은 무려 1만 회에 달하는 폭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호르무즈 해협이 등장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란은 자신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했고, 이를 외부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통과세를 징수할 것이며, 어떤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지 심사권을 가지겠다고 발표했다. 국제법상으로는 이는 말이 안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징수할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 그러나 이란은 국제법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이란이 ‘국제법적 근거가 있어서’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며,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이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했을 때 국제법적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쿠바에 대한 미국의 해상봉쇄(국제법상 전쟁 행위에 해당한다)에 무슨 국제법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선언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법을 결정한다. 억울하면 들어와서 뺏어가 보라. 이것이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한 진짜 이유이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통제하면 미국은 이를 그냥 놓아두고 물러날 수 없다. 왜냐하면 호르무즈에는 제국의 법, 곧 rule based international order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원유 공급의 20%를 차지하는 해상통로를 제국이 통제하기는 켜녕, 발도 못들인다는 것은 미국 스스로가 자신이 제국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미국은 호르무즈 통제권을 ‘탈환’해 와야 한다. 문제는 군사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공군만으로는 호르무즈 통제권을 가져올 수 없다. 왜냐면 이란은 단지 몇 대의 드론 만으로도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지상군을 투입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인공지능이 생각치 못한 영역이다. 인공지능은 ‘정상적’인, 즉 정상분포 곡선에 따른 사고 이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란이 자신의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확대하며 이를 위해 호르무즈를 장악하는 행위를 할 것이라고 추론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인간은 추론 가능하다. 1990년 대 이후 모든 미국의 이란 공격 작전 계획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작전이 포함되어 있다).

인공지능이 배제한 가능성ㅇㄹ 정도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는 그 자체로서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며,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마치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수많은 잠재적 적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에 이해관계를 가진 수많은 국가들을 생각해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호르무즈 승부수를 던진 것은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미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서둘러 공수여단과 해병대를 불러들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자체는 공격하기도 어렵고 설사 공격에 성공하더라도 이란 단지 기뢰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기간 통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미국은 이란의 원유 하역기지인 쿠웨이트, 이라크, 이란의 접경 지대 섬인 하르즈 섬을 점령하겠다고 공언하겠지만, 이야말로 이란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한국의 민희진 식의 표현을 빌자면, ‘드루와 개저씨들아’ 정도에 해당한다. 모든 군사 전문가들이 하르즈 섬이 됐든, 호르무즈가 됐든 미군의 지상군 투입은 ‘재난’(disaster)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데, 반대로 여기서 아무 것도 안하고 ‘승리했다’고 주장한 채 물러나는 것 또한 누구에게나 뻔히 보이는 ‘연극’(theater)이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만일 미국이 여기서 발을 빼면,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지역에 대해서 미국이 아니라, 역내 국가가 ‘룰’을 정하는 첫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즉 미국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 된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시나 미국이 그래도 발을 뺄까 봐 이란은 한술 더 떴다. 모하메드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24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이란인들을 공격하는 군자금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미 국채에 투자하는 역내 국가들의 금융기관들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아랍토후국연방(UAE)만 해도 7400억 달러의 국부펀드 가운데 약 1500억 달러 이상을 미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이란의 으름짱은 미국의 돈줄을 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상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관세 소동 중에서 사우디, UAE,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은 미국에 1.5조 달러의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이란은 이를 막으려 한다. 그래서 이란이 UAE에 상륙할 수 있다고까지 나간다. 당장 25일에 UAE는 “영토, 영공, 영해에서 이란을 공격하는 모든 군사적 행위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하고 절대 중립을 천명했다. 카타르는 이미 지난 19일에 절대 중립을 선언했다(그 뒤로 이란은 단 한 번도 카타르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런 법이 어디있냐고? 미국에 가서 따져라. 이것이 이란의 대답이다. 이 구역의 법은 내가 정한다. 여기는 미국의 ‘세력권’이 아니다. 이것이 이란의 대답이다. 미국이 제국이고 싶다면 지상군 보내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이란의 대답이다.

동시에 이같은 이란의 소모전(war of attrition)은 역내에 이제까지 고려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을 야기한다. 중동에서 ‘민주적 형태’를 가진 국가는 이란, 이라크, 터키, 이스라엘 네나라에 불과하다 (이란이 포함돼서 놀라운가? 선거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이들 나라들이다). 나머지는 모두 ‘왕정’이다. 따라서 내부 반란에 취약하다. 즉 정권의 정통성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걸프만의 소국들(바레인, 카타르, UAE, 오만, 쿠웨이트)은 대부분의 노동력을 이주노동자(약 1100만명, 주로 파키스탄과 인도 출신)로 채우고 있다. 바레인 같은 경우는 주민의 70%가 이란계 시아파 교도로 구성되어 있다(원래 이란 영토였다가 영국이 UAE의 부족을 끌어들여 식민지로 삼았다).

만일 시아파 주민들이 왕정 체제에 반기를 들면 왕정이 붕괴하거나 내전이 발발한다. 즉 이란이 아니라, 다른 중동 국가에서 역 레짐체인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란은 지난 40여년간 이를 은밀히 추진해 왔다. 역내 국가들 역시 모두 이같은 위험을 알고 있다. 이것이 역내 국가들이 이번 전쟁에서 표면적으로나마 ‘중립’을 표방한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중동에서 역 레짐체인지가 발생하면 미국은 중동에서 동맹을 모두 상실한다. 이건 호르무즈 해협보다 더 큰 문제다. 최종적으로 이 역 레짐체인지는 미국이 알 카에다 부사령관에게 권력을 쥐어준 시리아로 향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또 다른 고리는 이스라엘이다. 헤즈볼라가 건재하고 이란이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한, 이스라엘의 평안한 내일은 없다. 동시에 가자 휴양지 계획도 사라진다. 이스라엘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파리아 pariah’ 국가로 전락하고 미국은 중동의 핵심 교두보를 상실한다. 즉, 중동 전체를 상실하는 것이다.
중동이 없는 제국은 제국이 아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이것이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의 핵심은 핵도 아니고, 문명 충돌도 종교도 아니고, 더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미국은 왜 동맹을 구성하지 못했는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은 이제 더 이상 저지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억압적 방식(전쟁)으로는 사우스, 특히 중국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 역 실크로드 전략을 택했다. 즉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여 이를 종착지에서 봉쇄하고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인 BRICS를 내부로부터 약화시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AUKUS 등으로 표현되며, 경제적으로는 중동-인도 경제공동체(IMEC)로 나타난다. IMEC공동체는 특히 중요하다. IMEC는 인도의 노동력과 미국과 이스라엘의 IT 기술, 그리고 중동의 에너지와 자금을 결합하여 중국의 진출을 저지하고 BRICS를 약화시키는 전략이다.

미국이 BRICS와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하여 구상하고 있는 중동-인도 경제공동체(IMEC)

이란 전쟁 발발 사흘 전에 인도의 모디 총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인도는 모국, 이스라엘은 부국(father’s country)‘라고 발언하여 인도 내부에서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의 IMEC 경제동맹체 구상에 따르면 인도는 중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의 일원으로 자리잡게 된다. 중국의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인도가 차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인도의 대외전략에는 암바니, 아다니 같은 인도의 재벌들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이들은 이스라엘 하이파의 항구 시설을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텔아비브의 IT 기업들에 투자하고 동시에 미국의 뉴올리언즈에 3000억 달러를 투자하여 정유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는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IT 서비스업의 재편으로 가장 타격을 받을 인도의 IT 산업을 대체하여 인도가 본격적인 제조업 국가로 도약할 기회를 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는 또한 지난 2월에는 UAE와도 안보동맹 협정을 체결했다. UAE 국왕이 공식방문도 아니고 인도 공항에 두시간 머물면서 합의한 shotgun marriage다. 지난해 12월에는 사우디는 파키스탄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는데(대신에 63억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파키스탄은 현재 IMF 구제금융 중이다), 이번 전쟁 과정에서 이란이 사우디 내의 미군 기지를 공격할 때 파키스탄은 이란에게 “사우디와 방위동맹을 맺은 우리 입장도 좀 고려해 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

IMEC는 인도에서 출발해서 그리스의 피레우스 항에서 끝나는 통행로이기도 하다. 즉 인도와 유럽을 잇는 공급망이자 교역로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교역로에 속한 국가들 중에서 3개 국가가 BRICS에 속해 있다; 인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와 사우디가 IMEC에 기울어지면, BRICS는 그 자체로 약화되고 분열된다.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를 대체하는 이른바 BRICS 통화체제가 지지부진한 데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인도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었다. 인도는 처음에는 서구와 글로벌 사우스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가 지난 24년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미국에 기울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950-60년대 비동맹의 중심이었던 인도의 대외정책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인도의 발전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초 미국의 국무부장관이 인도를 방문하여 아예 노골적으로 “인도는 향후에도 중국과 같은 지위를 갖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인도의 제조업 강국화에는 미국이 미리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대신할 공장이 필요했지, 중국과 같은 또 하나의 라이벌을 만들 생각은 없다고 처음부터 한계를 설정했다. 외교적으로는 매우 모욕적인 발언인데, 인도가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곤궁한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기는 하다.

어쨌든 인도는 미국-이스라엘을 선택했으며, 그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당장 인도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막자 당장 원유와 천연가스가 부족하여(재고가 2주치밖에 안된다), 이란에 읍소를 하고 있는 중이다. 불과 닷새 사이에 모디 총리가 두 차례, 외무장관이 4차례 이란에 전화를 걸었다. 글로벌 동맹체제의 재편기에 줄을 잘못 서면 이렇게 된다.

IMEC를 보면, 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데 동맹을 구성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IMEC에는 유럽이 없다. 유럽으로서는 또 하나의 중국이 생길 뿐이다. 즉 유럽에게는 이란을 공격하는 것이 아무런 이점이 없다. 오히려 유럽으로서는 중국과 교역하고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과 중국의 자금을 노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게다가 중동 국가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만큼, 유럽으로 돌아올 몫은 줄어든다. 이란을 공격해서 유럽에 돌아오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해관계가 달랐다. 따라서 유럽은 미국과의 동맹에 참여할 유인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만일 중동이 불바다가 되어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막힌다면 유럽은 다시 러시아에 손을 벌려야 한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EU는 지난 25일 소리소문 없이 당초 발표했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금지법안을 철회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이란 공격에서 ’전시동맹‘을 구성하지 못한 이유다. 즉 동맹은 ’이해공동체‘인데 미국으로서는 동맹 후보국들에게 제시할 ’이익‘이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같은 동맹 구성의 실패는 미국의 힘이 제공하는 이익을 제시해야만 동맹을 끌어올 수 있을 정도로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란을 공격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감행한 결정적인 이유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사우스 분쇄 전략인 IMEC 동맹체 구성을 위해서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여전히 제국으로서 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현실에서는 둘 다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전쟁을 일방적으로 끝내지 못한다면,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이제 역사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될 것이다. 제국은 이렇게 붕괴하게 된다.

 

글로벌 경제 충격국제 유가의 정치경제학

라리쟈니는 칸트 철학자였지만, 미국이 대화 상대로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무하메드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산업경영학 전공이다(system management 박사학위). 전공탓인지 그의 발언은 주로 중동 사태의 경제적 측면, 특히 유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이 차단된다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국가들에 대해서는 해협 통과를 승인한다고 밝혔고 부분적으로 선박들이 통과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말한 “해협 차단시”는 미국의 공격으로 해협이 전면 차단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국제 유가를 말할 때 거의 북해의 브렌트유 현물이나 선물 가격을 보도하는데 이것 한국 쌀 값 오르는데 인도 쌀 값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두 상품을 섞어서 얘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동산 원유는 ‘두바이 현물/선물’ 가격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중동산(페르시아만) 원유의 85%가 아시아에서 소비되며 그 원유가 거래되는 시장이 두바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바이유 선물 가격은 변동이 심할 뿐만 아니라, 실물 원유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른바 ‘페이퍼 마켓’과 ‘피지컬 마켓’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 것인데, 두바이 마켓에서 페이퍼 가격이 얼마로 표시되든 간에 실제로 선적된 원유의 배럴당 가격은 170달러를 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중동 사태는 일차적으로는 아시아의 문제다. 그런데 정작 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은 가장 조용하다. 그나마 중국, 일본, 한국은 전략 비축유가 있어서 향후 6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지만(실 비축량과 발표된 수량이 같을지에 대해선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은 그다지 평안치 못하다. 특히 호주는 비축유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심각한 유류난을 겪고 있다. 인도도 원유 비축분이 고작 2-3주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심각한 위험에 놓여있다. 인도의 가장 큰 문제는 화학비료 생산이다. 4월부터 파종기에 돌입하여 수요가 몰리게 될 화학비료는 천연가스를 원료로 해서 생산된다. 그리고 중동 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도의 천연가스 수입길은 완전히 막혀버렸다.

여기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한다. 관계 당사국들의 원유 위기가 심각해지자, 미국은 러시아와 이란산 원유 및 천연가스에 대한 제재를 일단 한 달간 유예했다. 러시아나 이란이 요청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자발적으로 유예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지상군 투입 카드에 대한 이란의 대비책은 중동 전역의 에너지 인프라를 날려버리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시아는 에너지난으로 경제적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유럽과 미국도 이로부터 전혀 안전할 수 없다. 게다가 에너지 인프라가 파괴된다면, 미국의 대이란침략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단기간 내에 복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카타르의 천연가스 채굴시설이 부부 파손되자 카타르는 3-5년 정도의 수리 기간을 예상했다). 즉 장기적인 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중동 사태는 아시아 지역에 주로 영향을 미치고 유럽이나 미국에는 실제로 거의 영향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산 원유 수입에도 나설 것이다 (원유 구성이 달라서 정유사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다급해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면 곧바로 유럽의 원유시장도 요동친다. 곧이어 EU가 그동안 끈질기게 추구해왔던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의 독립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되며, 다시 유럽-러시아 간 통로는 열릴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 결과, 그동안 반러시아 정책을 내세워 정권을 유지해왔던 유럽 여러 국가들의 기득권 엘리트층과 산업군들은 찬밥 신세가 될 것이다. 유럽의 현 집권층으로서는 영 탐탁치 않은 미래다. 미국도 결코 안전치 않다.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유가 상승과 더불어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것이다. 미국처럼 정부부채가 많은 국가에서는 단순히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것만으로도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예컨대 1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하려면 지난 2021년에 비해 지금은 두 배 이상의 프리미엄을 제공해야 한다. 미 정부가 지출을 줄여도 이 요인만으로 미 국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자본 흐름이 저지되는 것이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를 비롯하여, 중동발 달러 자금이 청산되기 시작하면 이는 달러 순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페트로 달러 자체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25년 말 현재 국제외환거래의 약 6%를 차지한다), 중동발 자금환수는 훨씬 큰 후폭풍을 남길 수 있다. 더구나 지난해 말부터 private credit(은행이 아닌 사모펀드 등을 통한 부채 발행 및 투자) 시장에 위기가 발생하여 잇따라 투자금 상환 중단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유동성 자체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만일 유가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유동성 위기 발생하면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과연 예전처럼 양적완화 등의 유동성 공급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지 많은 전문가들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만일 연준이 금융 상품의 ‘최종 구매자’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면, 전세게 금융시장은 유지되기 어렵다. 그 때는 비로서 달러 버블의 붕괴가 시작될 것이다.

요약하면, 중동 사태가 현재 상태를 유지하거나, 혹은 더 악화된다면 단지 실물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장의 충격은 헤아리기 어렵다. 만일 극단적인 달러 유동성 위기 발생한다면, 차라리 많은 국가들이 달러 부채 상환을 포기하고(디폴트), 차라리 새로운 국제통화체제의 수립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전쟁의 프레이밍

이란 전쟁을 둘러싸고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아무도 이 사건을 ‘반제국주의 투쟁’ 혹은 ‘문명충돌’로 프레이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민족자결운동’으로 프레이밍하지도 않는다. 반미투쟁이라고는 하지만, 반서구투쟁으로 확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도덕적, 정의적 관점에서 사태를 이해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즉 이란의 ‘정당한 방어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프레이밍에는 분명히 근거가 있다.

이란 전쟁은 미국이 제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저지하려는 지중해-중동-인도 공동체 구성 전략과 이란의 생존권,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도 아니며 민족주의적 성격을 띄지도 않는다(이란은 심지어 다민족국가다). 폭사당한 칸트철학자 라리쟈니의 마지막 메세지는 ‘Islam Ummah’(이슬람 공동체, 이슬람 단결)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종교운동인 것 역시 아니다.

이는 글로벌사우스가 지난 1960년대의 비동맹운동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갖는 느슨한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미국이 승리하든 패하든 간에, 미국이 ‘소모’된다면, 그 자체로 미국은 이미 제국이 아니며, 더 이상 자신의 의지를 타국에게 강요할 수 없고, 세계는 ‘다극화’(multi-polar) 체제로 진입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은 이 다극화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다극화조차도 아니고, 오히려 ‘multi-plex’(다중구성, 복합)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즉 이 세계는 여러개의 상영관을 가진 영화관이며, 큰 상영관도 있고 작은 상영관도 있다. 그리고 거기서 상영되는 영화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히트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번 중동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미국의 공격과 이란의 대응은 내재적으로는 반제국주의적이며, 지정학적으로는 글로벌 헤게머니에 대한 지역적 저항이지만, 그것에 대한 ‘프레이밍’은 극히 단순한 단 한가지 질문으로 귀착된다 :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그 수명을 여기서 다하는가? 이것은 제국의 ‘퇴위’인가?

이 때문에 미국은 이미 패배했더라도 패배한 것으로 보여서는 안되며, 따라서 승산없는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 이것이 지금 전쟁이 장기화하는 유인이다. 현재 미국의 유일한 탈출구는 다른 글로벌 헤게몬들의 ‘중재’(특히 러시아와 중국)에 의해 어느 정도 정치적 명분을 얻고 중동에서 퇴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문제는 남는다; 미 국내정치가 정치적 충격으로 뒤틀릴 것이다. 이는 단지 다음 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고 민주당이 승리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이 사이좋게 ‘왼발, 오른발’로 미국 인민은 물론 전세계 인민을 착취하던 정치적 메카니즘은 이란발 충격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미국은 지난 1차 대전 이후, 단 한 번도 ‘패배’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며, 글로벌 제국의 위치에서 내려와 본적이 없다고, 미국은 영원하다고 스스로 각인시키며 100년을 지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든 간에, 미국의 퇴위는 다시 미국 내부로 향할 것이다. 그 결과는 처음에는 아노미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마도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지형상, 급진적인 파시스트화의 길을 밟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에필로그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실은 팔레스타인에서 출발한다.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예수는 어떤 언어를 썼을까? 흔히 헤브류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예수 생전에는 헤브류어는 일부 문서에나 쓰이는 사어(死語)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람어(alamaic)를 썼다. 고대 페르시아어, 즉 이란어다. 지금도 아람어를 쓰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나마 이란 이라크 북부에 남아있다.

예수가 아람어를 썼던 것은 성서 기록에도 남아있다. 신약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구절인 “엘리 엘리 라마 나박사니”(나의 주여,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는 아람어다. 최초의 기록된 성경은 희랍어로 쓰여진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이 대목은 아람어를 그대로 옮겨왔다.
아람어에서 신(god)은 뭐라고 불렀을까? ‘야훼’라고 하지 않았다. 알라(allah)라고 불렀다. 예수는 알라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In Shallah(신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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