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그리고 사회적인 것

(The Political, the Economical, and the Social)

2026년 7월 30일 / Review & Preview
글 및 번역: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

익살스럽기는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전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혹은 더 적극적 형태로서의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ism)에서 만사형통으로 쓰이는 ‘자유방임’(시장에 맡긴다)의 기원이 되는 ‘laissez faire’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18세기 프랑스 중농학파의 창시자인 프랑수아 케네가 중국 도가의 ‘무위’(無爲)를 프랑스어로 의역한 것이 바로 laissez faire였다. 도가의 무위의 위(하지 않음으로서 행한다)가 유럽에서 ‘자유방임’이 된 것이다. ‘무위’라는 말의 원저작권자인 장자로서는 다소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든 개념의 팔자이기는 하다.

물론 케네는 ‘도가도면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나, ‘양생’(養生) 등 도가에는 일도 관심이 없었고 ‘무위’의 배경이 되는 도가사상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으며, 훗날 도가와 불교 인식론이 합쳐서 생긴 선종의 객관적 물화론(모든 인간적 요소를 배제하고 인간이 완전히 자연적 질서에 동화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케네의 laissez faire는 근대적 문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
케네는 근대에서 처음으로 아주 명시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켰던 것이다. 케네 이전에는 특히 절대주의 군주제 하에서는 경제는 정치의 일부였다. 케네는 경제를 독립적인 영역으로 간주했고 이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아담 스미드와 더 나아가서는 맑스로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케네 이전, 즉 경제가 정치의 일부이던 시절의 정치는 어디에서 왔을까? 정치가 인간의 생사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개념 자체도 서구에서는 근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17세기 홉스는 ‘계약’의 이름을 빌어, 사적인 계약을 뛰어넘는, 따라서 그 계약을 보증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국가(리바이어던)을 제시했다. 즉 홉스가 처음 정립한 자유주의 질서는 경제와 정치 모두를 사회로부터 ‘비자연적으로 분리’해내는 데 의존했다. 그리하여 경제와 정치는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경제는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반면, 정치는 공적인 문제로 인식된다.

여기에서부터 개념사의 관점에서는 정치와 경제와의 관계(the political and the economical), 또는 양자 중에 어떤 것이 우선하는지에 대한 이론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즉 정치가 경제로부터 분리되게 된 것, 또는 사회가 정치로부터 분리되게 된 것은 근대적 현상이다. 근대 이전에는 이같은 지적인 혹은 기능적인 분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단지 근대 사회가 발전하고 확대됨에 따라 그에 따른 다양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해졌다거나 또는 기능적 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예컨대 중국 송나라의 경우에는 인구가 이미 거의 1억에 달했고 초기적인 임노동도 존재했지만, 그같은 지식의 분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같은 이론적 분화와 대립들은 각 시대의 계급적 상황과 역사적 조건들에 따라 다양하게 서로 충돌하고 보완해가면서 발전한 것이다. 근대에서 정치의 새로운 상이 정립되면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가 문제화되고, 곧바로 경제가 정치와 분리된 것은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과 국민국가의 출현, 그리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연결을 통해서 ‘자유주의적 질서’화가 이뤄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중국 복건성 청원산의 노자 석상. 출처 :Britannica

여기에 소개하는 John Milbank의 논문 “THE ECONOMIC AND THE POLITICAL: RETHINKING THEIR RELATIONSHIP”은 이같은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개념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조망한 것이다. 글 중간에 나오는 맑스나 푸코에 대한 평가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다고 보이지만, 이 두 가지 단어의 개념적인 변화,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한 시대의 지적/인식론적 패러다임을 설정하게 되는가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이 글이 제시하고 있는 ‘신조합주의(New Corporatism)’는 신자유주의의 패퇴와 더불어 새로운 이념체를 구성하려는 유럽 우파의 주요한 논리 중의 하나로 앞으로 주목해야할 지점이기도 하다. 이전 유럽에서 전간시기(1차대전과 2차대전)에 등장하여 전후 냉전체제하에서 사회민주주의 정치체제하에 ‘사회조합주의’로 불렸던 사회적 이념적 세팅에 비교하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신’조합주의를 주목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체제와 사회조합주의는 20세기 말에 오면서 ‘조합주의’적인 성격, 즉 사회적 산업적인 이해관계를 결집한 체제로서 한계를 보이고 그 자체가 ‘배제적’ 시스템이자 또 하나의 불평등체제로 전락하였다. 이 가운데 다양한 이해집단의 대표성을 우선시하자는 저자의 ‘신’ 조합주의는 과연 조합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조합주의를 대안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는 더 나아가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분리를 넘어서고,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서 ‘사회적인 것’을 통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자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John Milbank는 영국의 신학자이자 정치 철학자로 ‘급진적 정통주의’의 창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하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출간한 <National Institute Economic Review> 2026년 1월 호에 실린 ‘The Eonomic and The Political; Rethinking their relationship“을 전문 번역한 것이다.

THE ECONOMICAL AND THE POLITICAL; RETHINKING THEIR RELATIONSHIP

- John Milbank

논문 요약

홉스가 처음 정립한 자유주의 질서는 경제와 정치 모두를 사회로부터 ‘비자연적으로 분리’해내는 데 의존했다. 경제와 정치는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경제는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반면, 정치는 공적인 문제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매개하는 집단들은 배제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재산권은 본질적으로 최초의 점유 문제일까, 아니면 법적 보장의 문제일까? 경제가 정치를 장악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의 코포라티즘(조합주의)다. 유일한 대안은 사회, 그리고 집단과 그들의 대표성을 우선시하는 ‘바람직한 코포라티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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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제는 ‘트럼프 2기’의 출범을 겪으며, 토니 블레어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예견했던 1990년 이후의 세계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당분간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경제 논리가 정치 논리에 의해 압도되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여러 국가 주체들은 이상적으로는 무제한의 자유 무역을 지향하는(실제로는 완전히 실현된 적이 없지만) 글로벌 자유 시장의 이익이 다양한 측면에서 자국의 국익과 상충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수입과 수출 간의 무역 불균형으로 인해 일부 국가가 과도한 부채를 떠안거나, 혹은 (미국의 경우처럼 사실상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과도하게 신용 공여 역할에만 치중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제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여 금융 시장의 변동성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타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며, 무엇보다 군사적 자위(自衛)에 필요한 물적 자원이 결핍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나아가 국제적 분업 체계가 가장 ‘성공적인’ 채무국 및 채권국 내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을 빈곤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국가들은 대개 서비스 수출이나 금융 정보를 포함한 정보의 세계적 독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이 또한 미국에 가장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는 빈곤층만의 문제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로 인한 사회적 분열이 국가의 내부 결속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이미 여러 나라에서 목격했듯이) 빈곤층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 ‘포퓰리즘’ 성향의 정부가 집권하게 될 때 더욱 그렇다. 동시에 포퓰리즘 정치 운동은 자금과 정치적 리더십 면에서 이단아적인 자본가 과두 세력의 지원에 의존한다. 이들은 국제 무역의 비교적 질서 정연하고 합법적인 규범에 의존하기보다는, 국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자본을 보다 무질서하고 통제받지 않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데서 이익을 찾으려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소규모 국가에서 집권한 포퓰리스트들은 혼란스러운 정책만을 내놓았을 뿐, 적어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실질적인 변화를 거의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전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던 바로 그 ‘글로벌 질서’에 의해 지나치게 제약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를 포퓰리즘 세력이 장악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모든 국가, 특히 중국을 상대로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미국이 지금까지 속해 있었고 또한 미국이 주도적으로 구축하고 유지해 온 국제 자본주의 체제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으로 인식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최근까지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가 사실상 동일시되었던 현상은, 자유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이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려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과 비교해 상황이 급변한 오늘날, 폭락하는 세계 증시가 보여주듯 이 두 영역은 더 이상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자유주의 질서 내에서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간의 정확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자유주의를 (역사적 자유주의의 복잡성은 차치하고) 개인과 그 개인의 이익, 두려움, 욕망을 규범적 단위로 삼는 사회 이론의 한 형태로 정의한다면, 정치와 경제 중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우선하는지를 두고 일정한 긴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바로 드러난다.

 

자유주의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 개개인은 합법적 폭력의 독점권과 법의 궁극적 보증에 대한 배타적 권한을 지닌 주권적 권위 아래 살기로 합의하지 않는 한, 잠재적 갈등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이러한 법은 통상적으로 개인의 신체와 자유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아야 하며, 그 보호의 범위는 사유 재산이라는 ‘보철적 확장물(prosthesis)’에까지 미친다.

 

사람들과 그들이 소유한 영역 간의 관계는 계약, 즉 법적 뒷받침을 받는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자발적 합의라는 관점에서 해석된다. 아드리안 파브스트(Adrian Pabst)와 로베르토 스카치에리(Roberto Scazzieri)가 지적했듯이, 르네상스 이후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결사 계약(pactum societatis)’은 모든 개인과 통치 권력 간의 ‘복종 계약(pactum subjectionis)’에 의해 보증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Pabst and Scazzieri, 2023).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는 주권적 ‘국가’에 의해 통치 가능한, 특정하고도 이미 주어진 지리적 영역 내에서 주권과 법이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의 규범을 넘어선 특정 상태에 전형적이면서도 문제적으로 ‘내재(embedded)’되어 있다. 이러한 ‘이미 주어진’ 상태는 흔히 공유된 문화나 민족성에 대한 인식을 수반하기 때문에, ‘국가(state)’가 ‘민족 국가(nation state)’로 진화하는 결과를 낳으며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문화적 일체감에 대한 인식은 종종 계약이라는 유대를 상호 ‘공감(sympathy)’의 유대로 이론적으로 보완하는 흐름(아담 스미스의 경우처럼)과 결부되어 왔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적 복지 프로그램의 발전을 촉진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특히 이탈리아의 전통에서 볼 때, 계약은 이미 특정 사회 집단 내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신뢰’와 ‘신의성실(good faith)’이 선행적으로 존재할 때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18세기 초 나폴리의 사상가 파올로 마티아 도리아(Paolo Mattia Doria)의 경우, 나폴리를 지배하던 스페인의 근대적 절대주의에 대한 가톨릭적·플라톤주의적 보수적 저항 의식이 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갖게 했다. 즉, 번영하는 시장 경제는 다원적 관계망이 유전적으로 이어지며 형성된, 비공식적이고 점진적으로 습관화된 유기적 유동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Pabst and Scazzieri, 2023, 46–7, 139–45; Pagden, 1989).

 

그러나 자유로운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 합의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보다 무정부주의적인(anarchic) ​​측면은 국가, 하물며 국민 국가라는 개념과 반드시 ​​그리고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그것이 신뢰를 촉진하는 선행적 사회 관계에 반드시 내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비록 신의성실을 저버리는 것이 자본주의적 성공에 있어 ‘문화적 모순’이 될지라도, 계약은 훨씬 더 가혹한 필요성에 의해 강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산권이 어떻게 확립되는가는 아포리아(aporia,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적 성격을 띠는데, 이는 재산권이 규범인 동시에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자를 강조하면 이를 공인되거나 관습적인 권리로 볼 수 있지만, 후자를 강조하면 그 근본적인 무정부주의적 성격을 부각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17세기 초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시민법이나 제정법에 선행하는 자연법에 근거하여, ‘최초 점유(first occupancy)’의 권리를 재산권의 궁극적인 정당화 근거로 제시했다. 그로티우스의 사상에서 이러한 강조점은 (근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또 다른 핵심 창시자인 홉스의 견해와 대조적으로) 곧바로 보다 국제주의적인 관점과 연결된다. 사유 재산은 세계화하는 성격을 띠며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이는 사유 재산이라는 ‘자연적’ 개념이 결여된 부족들의 거주지인, 겉보기에 ‘주인 없는(unoccupied)’ 땅을 제국이 점유하는 행위가 즉각적인 자연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Milbank, 2020).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자연적’ 사유재산과 ‘권원(entitlement)에 기초한’ 자연적 재산 중 어느 것이 역사적·개념적으로 우선하는가의 문제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와 정치 중 무엇이 선행하는가의 문제와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토마스 홉스의 경우에도 절대 권력의 영향력은 사적 계약을 무효화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는 자기 이익에 따른 계약 체결이야말로 ‘리바이어던’으로서 국가가 지닌 권력의 궁극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홉스의 비서였던 윌리엄 페티는 고용주의 관점을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방식으로 정치경제학의 초기 형태인 ‘정치 ​​산술(political arithmetick)’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Milbank, 2020; Goodacre, 2018). 만약 이러한 담론이 권리만큼이나 효용(utility)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는 원자적 개인의 정신적 자유 못지않게 물질적 신체에 주목하는 자유주의적 관심의 자연스러운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주의에 있어 경제는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이는 경제가 개인에서 출발하여 개인의 ‘사적 영역(privacy)’을 일종의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제학은 국가라는 공적 영역과 구별되는 ‘자유롭고’ ‘사적인’ 영역—훗날 헤겔에 의해 ‘시민사회’라 불리게 되지만 그 명칭은 다소 왜곡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어원적 의미에서 볼 때 경제학이 상대적으로 ‘국내적(domestic)’ 영역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바로 그 성격 덕분에 경제학은 자신을 포괄하고 승인하는 외피인 정치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마치 수학에서 부분집합이 전체 집합의 틀을 벗어나 대각선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국경 너머의 외국인들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국제 무역은 본질적으로 ‘해적적(piratical)’ 성격을 띠며, 사유재산과 계약의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주체인 자유주의 국가와 복잡하고도 본질적으로 모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국가가 그러한 보증자로서 기능하는 한, 결국 자유주의에게 있어 일차적인 것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법의 지배, 나아가 개인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하는 것은 오직 국가뿐이며 국가를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는 없기 때문에, ‘리바이어던’이라는 형상이 시사하듯 국가는 그 자체로 ‘초개인(super-individual)’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홉스는 국가 간의 관계와 계약을 개인 간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했으나,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은 이번에는 그 계약을 강제할 궁극적인 집행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Milbank, 2020).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구도는 정치의 내부적 우위가 국제 관계의 모델을 ‘경제적’인 것으로 만들게 하는데, 여기서 경제적이란 곧 ‘해적식(piratical)’ 계약—즉 가변적이고 신뢰할 수 없으며 종종 강압에 의해 맺어지는 계약—이 궁극적인 성격을 띠게 됨을 의미한다. ‘외교’란 단지 이를 점잖게 표현한 말에 불과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제국적 성격을 배제하고 주로 경제 중심의 ‘세계화된’ 질서로 이행하려는 현대의 움직임은 자칫 질서 그 자체의 포기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Galli, 2010).

 

분명 이 지점에는 모순적이고 불만족스러운 무언가가 존재하며, 바로 그 때문에 자유주의의 대안적 선택지는 언제나 제국(이미 홉스의 제자 페티가 추구했던 바와 같이)이 된다. 이때 제국은 이상적으로는 ‘총체적 제국’, 나아가 ‘국제적 리바이어던’을 지향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해적 행위가 전 지구적 주권으로 연금술적 전환을 이루게 되면, 이러한 궁극적 정치 질서와 그로티우스적 관점에서의 경제의 궁극성—즉, 미개척지나 ‘저개발’ 영토에 대한 해적적 약탈이자 원초적 축적으로서의 경제—이 서로 융합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처럼 기묘한 방식으로, 자유주의는 정치와 경제의 엄격한 분리를 전제로 삼으면서도—소유권의 기원에 내재된 아포리아(그것은 최초의 노골적 약탈인가, 아니면 최초의 명목적이고 법적인 것인가?)로 인해—실제로는 그 둘을 온전히 분리해내지 못하며, 이 둘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개입한다. 이러한 상호 개입이야말로 자유주의라는 체제를 은밀하게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점은, 이러한 분리와 그 분리의 위반은 오직 자유주의에만 해당되는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전근대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는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표현했듯이, 더 광범위한 사회적 목적을 지닌 더 큰 사회 질서 속에 ‘배태(embedded)’되어 있었다(Polanyi, 2024). 당시에는 ‘경제적’ 생산성이 해방되거나 이윤 추구가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폴라니가 파악했듯이 정치 영역 또한 사회 속에 배태되어 있었기에, 확립된 사회적 위계와 대립하는 전문화된 기구로서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Milbank, 2009a). 정치적·법적 통치는 개인적 차원의 사회적 통제와 결부되어 있었으며, 경제적 질서 또한 이와 마찬가지였다. 정치와 경제 모두가 이처럼 사회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주권과 정부, 혹은 ‘통치(ruling)’와 ‘경제 활동(economising)’ 사이에도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았다(Agamben, 2011). 후자(경제 활동)는 어느 정도 통치 행위의 파생물이었던 반면, 전자(정치적 통치)는 ‘봉건적’ 질서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적 기능 전반에 분산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봉건제’의 경우에서처럼 경제적 계약 또한 사회적 의무이자 정치적 참여와 통제의 통로로서 기능했다.

 

파브스트와 스카치에리가 설명하듯이, 정치와 경제 사이에 엄격한 경계가—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확실히,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실제에 있어서도—설정된 것은 근대 특유의 현상이지만, 그 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 이후로도 경제 영역을 상호작용적 관계보다는 ‘성향적(dispositional)’인 것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즉, 경제(oikonomia)란 개인의 정념, 가계의 자원, 또는 국가 공동체 전체의 자원을 현명하게 관리하거나 ‘절약적으로 운용(economising)’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당시에는 통치성(governmentality) 또는 ‘폴리스(police, 공공 질서 유지 및 관리)’의 개념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버나드 하코트(Bernard Harcourt)가 강조했듯이, 생산과 교환에 대한 규제는 형법 집행이나 처벌과 같은 공공 질서 유지의 다른 사안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초기 아담 스미스 또한 정치경제학을 다룰 때 이러한 ‘폴리스’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Harcourt, 2011).

 

동시에 정치경제학은 개인과 집단 간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교환에도 이미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부의 축적’ 과정을 ‘오이코노미아(oikonomia)’가 아닌 ‘크레마스티케(chremastikē)’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는 점차 비고전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방식으로 해석되었는데, 즉 열정을 조절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하나의 이기적 이익과 다른 이기적 이익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Harcourt, 2011, 53–62).

 

당시에는 국가가 이러한 측면에서 사람들의 본능에 호소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논리는 18세기 후반 이탈리아 계몽주의 사상가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가 형벌에 대해 취한 ‘경제적’ 접근 방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사회적 분노를 단순하고 흔히 신체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던 야만적인 형벌 관행과 결별하고, 비례적이며 강제력 있는 억제책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이었다(Harcourt, 2011, 92–102). 이처럼 경제 영역에서 베카리아가 자유 시장을 허용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관방주의(cameralism; 절대군주제 하의 국가 개입주의)’로 그와 균형을 이루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역으로 형벌 정책에 관한 그의 국가적 규율 중심 공리주의 또한 사적 및 공적 차원에서 작용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이라는 경제적 고려 사항에 의해 일정한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버나드 하코트(Bernard Harcourt)가 프랑수아 케네(François Quesnay)의 사상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더 이상 ‘경제’는 ‘공정한 가격’ 등과 같은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고려 사항을 포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국가 조직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았다. 대신 케네는 피에르 드 부아길베르(Pierre de Boisguilbert)의 영향, 특히 인간의 타락과 부패가 거의 전면적이라는 쟝세니스트적(Jansenist) 관념을 바탕으로, 경제를 완전히 탈정치적인 ‘자연 질서’로 새롭게 인식했다. 이 질서는 미덕에 호소할 필요 없이 인간의 악덕과 이기심을 섭리적으로 유익한 방향으로 전환하며 작동하는 것이었다.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그 어떤 개입도 본질적으로 이러한 자연 질서의 유익한 작동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념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훗날 칼뱅주의 이후의 스코틀랜드에서 애덤 스미스(Smith)에게로 계승된 생각이기도 하다(Harcourt, 2011, 78–91).

 

자유 시장의 발생적 기원은 경험적 증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는 지금까지 본질적으로 정부의 기능이었던 ‘경제적 관리(economising)’가 그러한 영역에서 분리되었음을 의미했다. 그 결과, 경제적 관리는 법 집행이나 (프랑스의 고등법원[parlements]과 같은 지방 차원이든 중앙 차원이든) 헌법적 숙의와 같은 다른 질서 형성 활동과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더 이상 간주되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케네에게 있어 헌법적 차원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데, 이는 정치적 기능이 개인과 재산, 그리고 사적 계약을 보호하는 법을 집행하는 수준으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표에 의한 동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며(모든 동의는 이제 시장 거래를 통해 표출되므로), 정치적 전제 정치는 자연스러운 경제 질서로 간주되는 것의 자연스러운 동반자가 된다(Harcourt, 2011, 92–102).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장기적 전조를 엿볼 수 있다. 충실한 휘그(Whig) 당원이었던 애덤 스미스는 케네의 원칙을 그토록 극단적인 수준까지 밀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물 규제법(police des grains)’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은 그 원칙을 수용했다. 사실 이러한 규제는 식량의 품질을 보장하고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특히 식량 사정이 어려운 시기에—식량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음에도 말이다(Harcourt, 2011, 45–8, 174). 농업 분야에서의 전면적인 ‘자유무역’이 지닌 어리석음은—튀르고(Turgot)가 리무쟁(Limousin) 지역의 지방 장관(Intendant)으로 재직하던 시절(1761–74) 도입했던 자유무역 조치에서 이미 드러났듯이—훗날 아일랜드 대기근 등을 통해 여실히 입증되었다.

 

따라서 하코트가 주장하듯이, 미셸 푸코가 경제 영역이든 형벌 영역이든 ‘규율’을 소위 ‘좋은’ 제약으로부터의 자유와 단순히 반대되는 개념으로 해석한 것은 오류였다(하코트, 2011, 151-90). 이러한 이분법은 ‘소극적 자유’라는 자유주의 모델에 갇혀 국가의 규율이 실제로는 생계 유지를 보장하고, 정직한 시장 거래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며, 잔존하는 ‘봉건주의’의 불공정한 측면들을 극복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하커트의 주장에 덧붙이자면, 봉건주의는 선물 교환이 현대에 와서 더욱 엄격하고 강압적인 계약 관계로 변모하면서 더욱 경직되고 잔혹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체제에서든 중앙 정부는 때때로 최하위 계층을 중간 계층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조성의 원칙은 역설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반대로 푸코는 베카리아의 ‘징벌적’, 즉 표면적으로는 교육적인 처벌 접근법이 어떻게 순수한 사법 폭력의 ‘경제적’ 변형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벤담의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접근법(총체적 감시 등을 포함)에 의해 실제로 변형되거나 심지어 포기되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Harcourt, Reference Harcourt 2011, 103–20).

 

따라서 고대의 공적 야만 행위와 대등하거나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새롭고 현대적인 공식적 야만성'(푸코가 보여주고자 했던 ‘관타나모로 가는 길’과 같은)은, 경제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완전히 분리된 케네(Quesnay)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후자(정치적 기능)가 국가 내부 또는 국가 간의 경제적 자유 영역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이 영역에 대한 모든 침해는 자연 질서의 외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 결과 그러한 침해는 ‘예외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온갖 종류의 징벌적 조치를 감수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사실상 이는 영구적인 비상사태와 같은 상황을 초래하며, 이에 따라 완전히 일탈적이고 심지어 테러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모든 위반 사항에 대해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이 적용된다. 이는 범죄가 일반적인 민사 위반이나 개인 간의 분쟁과 훨씬 더 밀접한 연속선상에 있던 전근대 및 근대 초기와 대조를 이룬다. 당시에는 범죄를 법과 주권 자체에 대한 위반으로 보아 완전히 수직적이고 의무론적인 관점에서 다루기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수평적’ 조정이라는 성격으로 처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트럼프와 함께 변형된 신자유주의가 케네(Quesnay)가 남긴 유산의 바로 이러한 측면 또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더 근본적으로, 앞서 언급했듯이 파브스트와 스카치에리는 정치와 경제 사이에서 현대에 들어 심화된 분리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분리는 정치와 경제가 ‘사회적 영역’으로부터 인위적으로 분리(disembedding)됨으로써 초래되는데, 여기서 사회적 영역이란 고립된 개인보다 존재론적으로 더 근본적인, 다양한 종류의 결사체들이 중첩되어 이루어진 기존의 다원적 영역으로 이해될 수 있다.

 

‘봉건적’ 체제에서와 같이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개인적 관계의 통치와 물질적 자원 및 역량의 조직화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모든 사회적 집단은 인간의 번영(전형적으로는 의례적·종교적 차원에서의 번영)과 관련된 어떤 목적론적 목표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해진다. 이러한 목표는 특정 경계 내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적 동기나, 축적과 안정을 향한 무한한 경제적 추구 모두를 뛰어넘는 것이다(Pabst and Scazzieri, 2023, 13–37, 125–55).

 

이러한 사회적 집단화의 성격과 관련하여, 파브스트와 스카치에리는 그 본질이 정치학과 경제학을 서로 분리하여 탐구할 때 흔히 이들 학문을 괴롭히는 이분법적 구도들과도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예리하고 독창적으로 지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의도된 결과와 의도되지 않은 결과 사이의 대조가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종종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실체의 목표는 마치 일종의 집단적 예술 활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 이러한 예술 활동에서 예술가는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대략적으로만 감지할 뿐이며, 작업 과정 자체가 그가 염두에 둔 목표에 대한 인식을 수정하고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실체는 특정한 목적을 위한 도구적 존재인 동시에, 결사(association) 그 자체의 성취라는 비도구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사는 목적의 유연한 변화와 진화를 포함할 수 있다. 이는 ‘포이에시스(poesis, 창조적 행위)’를 넘어선 ‘프락시스(praxis, 실천적 행위)’의 문제이자, 특정한 ‘시적(poetic)’ 결과를 성취하는 것을 넘어 포이에시스의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영역은 개인적 기반보다 집단적 성격이 더 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발전하는 상호 관계,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이되는 습관들로 구성된다.

 

집단 간 연대의 상호 교환적 네트워크 속에 사회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면, 정치와 경제는 무의미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조를 통해 서로를 구분 짓는 경향이 있다. 즉, 정치적 의도성·집단주의·비도구성(그 자체로 목적인 국가 권력) 대(對) 경제적 비의도성·개인주의·도구적 목적이라는 구도다. 이러한 구분은 인간의 결사(association)를 한편으로는 권력 그 자체를 위한 추구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골적인 탐욕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좋은 삶’의 성격에 대한 인간적 이해를 한층 더 고양하는 것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즐거움이나 우정, 사회적 인정조차 시야에서 사라지기 십상이다.

 

파브스트와 스카치에리가 주장하는 핵심은 사회적 맥락이 없다면 ‘정치경제학’은 사실상 정치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로 분리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도리아 이후 비코를 거쳐 안토니오 제노베세로 계승된 나폴리 전통의 ‘시민경제학’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적 없는 진정한 정치경제학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미스와 리카르도의 전통에서 정치경제학이 완전히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되지는 않았다는 점도 시사한다.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스미스는 도리아의 신뢰와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경제 영역 자체에 대한 공감보다는 외재적인 차원에 국한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몽테스키외에서 토크빌에 이르기까지 여러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중개자적 관계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인식했는데, 이는 (덧붙이자면) 폭정을 제한하려는 자유주의적이고 근대적인 공화주의적 이유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버크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발전했는데, 그는 보다 전통적인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법의 지평을 제시했으며, 이는 (아마도 리처드 후커의 영향으로) 도리아에게 영향을 준 커드워스와 샤프츠베리(나폴리를 방문했던 인물)의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적 관점과 다소 유사했다. (각주 2) 이러한 관점에서 공감은 이기적 투영이나 타인과의 자발적인 ‘동물적’ 동일시에서 궁극적인 영적 목표에 대한 공유된 감각으로 확장된다(Pabst and Scazzieri, Reference Pabst and Scazzieri2023, 62–95, 145–55; Milbank, Reference Milbank2009b).

 

두 저자가 서술하듯이, ‘한계주의 혁명(marginalist revolution)’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치경제학’은 폐기되고 그 자리를 ‘경제학’이 대신하게 된다. 이는 경제학이 이제 합리적 심리학—즉, 고립된 개인의 공리주의적 선택과 그 가능한 조합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시간적 맥락이나 사회적 상황과는 무관한 순수한 과학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점에서 경제적 선택을 제약하는 사회적 공감이나 기존의 사회적 집단과 같은 ‘배경’ 요인조차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한편, 한계주의자들은 ‘정치적인 것’을 기이하게도 ‘사적인’ 문제로 간주한다. 즉, 정치란 단지 국가 내의 권력자와 그 파벌, 그리고 타국의 권력자와의 관계에 국한된 사안으로 치부되는 것이다(Pabst and Scazzieri, 2023, 18). 정치적인 요소가 경제 영역에 다시 개입하는 것은 케네(Quesnay)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직 개인의 신체와 재산, 그리고 계약을 보호하기 위한 강제력을 행사하는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뿐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통화 공급, 재산권법, 독점 금지법, 정당한 이자, 노동자의 권리 등을 통해 특정 시장의 성격이 정치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이 이러한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이후에는 경제 과정의 ‘수요 주도적’ 측면뿐만 아니라 ‘생산적’ 측면과 함께 이러한 정치적 형성 과정 또한 본질적으로 억압되거나 간과되었다.Footnote 3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파브스트와 스카치에리가 제안하듯이, 우리는 한계주의적 유산뿐만 아니라 영국의 페티(Petty)와 프랑스의 쟝세니스트(Jansenists) 이래 지배적이었던 현대의 관점 전체를 넘어서야 한다. 즉, 정치나 경제보다 사회와 결사체(association)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경제적 척도로 포괄할 수 있는 ‘전반적인 가치’의 지표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중반 케임브리지의 조안 로빈슨(Joan Robinson)과 이후의 케임브리지 경제학자들(1970년대 케임브리지 경제학이 신고전파에 굴복한 것을 개탄했던 이들)이 지적했듯이, 자본과 노동의 ‘총생산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의 구성 요소는 노동의 투입, 그 생산물의 교환, 그리고 (여기에 덧붙이자면) 투기적 투자의 결과라는 측면에서만 측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노동가치론에 따라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리카도주의적 사회주의’ 식의 분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맥락에서의 노동 가치는 시장 교환 과정에서 생산물과 노동 그 자체가 상품 교환으로 ‘전환’되는 것을 통해서만 측정되기 때문이다(Harvey, 2005; Cohen and Harcourt, 2003).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 그 자체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유형의 소유주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투쟁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며, 이 사회적 투쟁은 지배적인 정치적 통제 방식, 국가의 개입, 그리고 법의 형성 과정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상호 호혜적인 탈자본주의 경제는 경제 내의 모든 사회적 주체가 생산적 기여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기여에는 물리적 자본에 대한 관리적 소유나 생산적으로 획득한 자금의 투자 수익도 포함될 수 다. 단, 전자는 항상 인간의 번영과 공동선을 지향해야 하며, 후자는 기업 활동에 따른 위험을 진정으로 공유하는 것을 수반해야 한다(각주 4).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17세기 독일 개혁파 철학자 요하네스 알투시우스(Johannes Althusius)와 같은 소수파 ‘다원주의자’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 질서와 더불어 정치 질서의 궁극적인 토대를 지배적 통제가 아닌 교환(‘사물, 노동, 법의 교환’)으로 간주했으며, 정치의 목적을 ‘사회적 삶의 공동 이익’으로 보았다(Pabst and Scazzieri, 2023, 65, n. 1).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진정한 의미의 ‘정치경제학’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계약적’ 관계가 지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어진 인간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재구성하려는 ‘헌법적(constitutional)’ 원리를 우선시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재구성 과정에는 통치와 분배, 그리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생산과 교환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 모두 본질적으로 포함된다(Pabst and Scazzieri, 2023, 26–31). 정치와 경제는 구별될 수는 있어도 분리될 수는 없다. 만약 이 둘이 분리된다면, 역설적이게도 현대 서구의 경우처럼 경제가 정치를 포섭하거나, 혹은 오늘날 중국의 경우처럼 정치가 경제를 포섭하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는 곧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로 귀결되는 결과를 낳는다(이에 대해서는 곧 논의하겠다). 즉, 목적의식을 가진 인간 집단 간의 결사(association)와 선물 및 미덕의 자연스러운 교환을 우선시하는 것으로서의 ‘사회주의’를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자유주의 내부의 정치적 영역과 경제적 영역 간의 긴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영역을 우선시하여 자유주의를 순수하게 재구성하려는 극단적인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전후의 ‘내재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와 결별하고자 했다. 이 전후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로부터 구하고, (현재와 마찬가지로) 1930년대에 자본주의 내부의 복합적인 긴장과 국제 시장 및 각 계급·국가의 열망 간의 갈등 속에서 대두했던 전체주의적 도전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와 경제 모두를 사회라는 토대 위에 다시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정치와 경제를 더욱 밀접하게 결합하려 했던 체제였다(각주 5).

 

또한 전후 질서는 (유럽연합의 사례에서 두드러지듯) 법적으로 보장된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민주적 선거를 통해 독재가 초래될 위험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때 기본권의 범위는 소유권을 넘어 교육과 복지로 확장되었으며, 정치적 민주주의를 비공식적으로 보완하는 차원에서 노동조합이나 기업과 같은 협력 집단의 정치적 참여 또한 확대되었다(Moyn, 2015; Lind, 2020).

 

그러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추종자들은 경제 규제, 국유화, 그리고 온건한 조합주의(corporatism)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정치 문화 속에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로 이어지며 결국 강압적인 전체주의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는 ‘연성 전체주의(soft totalitarianism)’만을 보았다.

 

그들은 20세기에 겪은 일련의 재앙으로부터 사뭇 다른 교훈을 도출해냈다. 즉,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에 철저히 종속되는 것이며, 만약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달성할 수 있다면(훗날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불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었다. 케네(Quesnay)의 사례가 있긴 했지만, 기존의 자유주의는 내가 여기서 전문 용어로서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순수한’ 자유주의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헌법적 통치와 공정한 법규에 따른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규범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규범들은 근대 초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Anderson, 2005). 그러나 이제 신자유주의는 훨씬 더 순수한 형태의 개인주의를 내세웠고, 이는 필연적으로 경제와 국제적 차원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했으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완전히 우회하는 국제 기구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는 언제나 유토피아적인, 그리고 위험할 정도로 유토피아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이는 모든 질서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연대 방식(가족, 지역 공동체, 중간 매개 기관, 국가적 정체성 등)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가 궁극적으로 정치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직시하지도 못했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특정한 ‘오르도자유주의(ordoliberalism)’적 방식으로) 계약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배제한 채 국가가 법적으로 순수한 ‘자유’ 시장을 조성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국가(민족 국가), 국제 법원, 혹은 국제적 제국 중 무엇을 궁극적인 주체로 삼을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민족 국가는 쉽게 폐지될 수 없으며 절대적인 주권 질서는 ‘국민(people)’의 정체성 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자유주의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합리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했다. 즉, 시장의 객관적인 흐름이 특정 국가의 번영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때, 그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고 시장의 이익을 따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는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극한 상황에서 국가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 무역 대신 전쟁이라는 수단을 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며, 오늘날 러시아의 사례에서 우리는 바로 그러한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가 결국 ‘역사의 종언’이 아님이 입증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역사는 종교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자유주의 그 자체가 지닌 갈등적 성격의 차원에서도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적 국민국가는 필연적으로 그에 맞서는 우위를 다시금 확립하게 되었다. 법을 제정하는 주권적 주체는 오직 성찰적 정체성을 지닌 ‘인민(peoples)’이 존재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정치적·사회적 도구로 이용되는 종교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종교가 쇠퇴하는 상황에서, 그 정체성이 아무리 시대착오적인 형태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여기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그토록 그럴듯해 보였던 이유가, 수십 년 동안 거대한 주권 국가인 미국의 특수한 이해관계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리카도의 ‘비교우위’(국제적 분업)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단지 그것이 자국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은 제품을 제조하고 수출하는 역할에 머물렀고, 그 덕분에 미국은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문화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수출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은 유럽을 자신의 군사적 목적에 종속시키고 달러가 가장 강력한 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겉보기에는 ‘외부’ 거래로 보이는 수많은 거래가 실제로는 달러로 이루어짐으로써 미국의 내부적인 금융 이익으로 귀결되었다.

 

동일한 정책 기조가 아시아로도 확장되었으나, 중국의 경우 예상치 못했던 과학기술 기반의 제조 역량과 신용 우위를 활용하여 (비록 변형되긴 했어도) 여전히 경쟁적인 문명적 가치관과 결부된 군사력을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그 정책은 난관에 봉착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상황이 내부 계급 갈등과 결합하여 미국이 현재의 보호무역주의 노선으로 선회하게 된 주된 원인이 되었다. 갈수록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을 고립시키고,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중국식의 변질된 공산주의와 미국식의 새로운 내향적 경제 자유주의적 준(準)파시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미국 국가 자체에 대한 직접 투자를 늘림으로써 달러의 세계적 위상을 위태롭게 할 각오를 포함하여, 모든 정황은 어떤 의미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물론 달러의 세계적 영향력이 여전한 만큼, 설령 달러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세계가 이를 지키기 위해 결집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공산주의’와 ‘파시즘’ 간의 직접적인 대결 구도로 전개될 수 있는 제3차 세계대전을 거론하는 것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체주의적 국가 통제 체제 내에서 자유 시장을 허용하는 것이 중국만의 새롭고 독특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기 때문이다(Bockman, 2011). 사실 이러한 구상은 공산주의 진영 내 일각에서 이미 초기부터 고려되었던 것으로, 이는 ‘오르도자유주의(ordoliberalism)’와 일정한 유사성을 띠고 있다.

요한나 보크만(Johanna Bockman)이 밝혔듯이, 이미 1890년대에 ‘보이지 않는 손’과 ‘지령 경제(command economy)’는 하이에크가 생각했던 것처럼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이상적 공리주의적 합리적 선택(생산이든 소비든 간에)’ 이론을 각각 ‘섭리(Providence)’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국가’라는 대상에 적용한 모델임이 인식되었다(Bockman 2011, 1–132, 157–214). 신이 인간을 그들 자신의 죄악된 행위대로 내버려 둠으로써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있듯이, 전체주의 국가 또한 어느 정도는 이와 유사한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종교적 사회주의와 달리 공산주의는 그 자체를 위한 ‘공동체’나 ‘결사체’, 혹은 ‘박애’에 대한 신념을 갖지 않으며, 보편적 인간 창의성에 대해서도—마르크스가 ‘장인적 우둔함(craft idiocy)’이라 일축했던 것처럼—러스킨(Ruskin) 식의 가치를 거의 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에 의한 경제의 포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경제화’된 것이며, 이는 반대로 (현 미국 행정부에 의해 심화된) 경제에 의한 정치의 포섭이 철저히 ‘정치화’된 것과 마찬가지다. 즉, 이윤 극대화는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권력 추구가 되고, 국가의 치안 유지 활동뿐만 아니라 경영과 상업의 영역에도 ‘주권적 예외 상태’와 ‘위협적인 파괴’라는 슈미트(Schmitt)적 논리가 적용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트럼프 시대에 접어들어, 자유주의 정치가 다시금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개인들처럼 서로 경쟁하는 국민국가들의 세계로 회귀했으며, ‘현실주의’가 다시금 시대의 주류 담론이 된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거대 ‘문명 국가’들 사이의 분열이—비록 앞서 언급했듯 그것이 ‘수렴하는 대립’의 양상을 띠더라도—여전히 강력하고 대립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는 문화적 이념의 문제라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 이상주의가 겉보기만큼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파브스트와 스카치에리의 견해를 빌려 주장하자면, 자유주의의 경제적 양태는 그 자체로 내적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경찰(police)’적 성격의 오이코노미아(oikonomia, 가계 관리 및 통치)로서 국가에 봉사하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국제적 약탈 행위(international piracy)’와 연결되는 수평적 ‘교환주의(exchangist)’ 양태로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능하는 측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정치적 자유주의 또한 이러한 약탈적 양태와 명백히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사실상 하나의 기업처럼 변모해 갈수록, 국가는 경제를 생산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역할에서 벗어나 산발적이고 점진적인 거래, 즉 ‘딜(deal)을 성사시키는’ 행위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가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의 가장 지배적인 원동력이자 가장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투기적인 형태인 금융 자본주의가, 본래 18세기 영국 휘그(Whig) 정권의 전쟁 관련 국채 및 무담보 대출을 위한 법정 화폐(fiat money)의 증발(增發)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Sonenscher, 2022; Ingham, 2004, 2020; Graeber, 2014). 마찬가지로, 영국이 19세기에 자유무역을 선호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초기에는 해적 행위(이후 점차 정치적으로 순화됨)를 통해 ‘바다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한 자유무역은 실질적으로 거대한 세계 제국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는데, 이 제국은 자국 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를 기반으로 한 미국, 그리고 뒤이어 독일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경쟁 구도에서 상대국들이 성공을 거두자, 영국은 제국 영토에 대한 공식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해짐에 따라 ‘제국 특혜(imperial preference)’ 체제로 전환했다(Hutton, 2024).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정치 산술(political arithmetick)’이 추구했던 본래의 주된 목적이었던 중상주의는 결코 사라진 적이 없으며,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소위 ‘규범에 기초한 질서(rule-based order)’가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 대영제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중국이 이러한 비공식적 미국 제국에 대항하는 경쟁자로 부상하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이 더 이상 기존의 ‘규범’에 순응하지 않게 되면서, 보다 노골적이고 솔직한 보호주의 조치들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영국의 사례와는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영토와 법률, 문화를 인접 지역으로 전면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의, (로마 모델을 따른) 엄격한 ‘공화국적(republican)’ 성격의 고전적이고 국지적인 육상 제국 형태로 회귀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새로운 전략은 자국 영토(확장된 범위 포함) 내에 풍부한 천연자원과 운송로를 확보함으로써 생산 시설을 국내로 복귀(onshoring)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캐나다, 그린란드, 북극, 파나마에 대한 관심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트럼프가 국제 자본주의 질서의 신자유주의적 우위 원칙을 저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리는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약탈적(piratical)’인 측면이 금융 부문과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나아가 결국에는 정치 국가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오직 정치 국가만이 무력(guns)을 통해 경제 외적인 방식으로 자본의 힘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생산 부문보다 금융 부문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사실(마르크스는 이를 비교적 간과했으나, 사실 생산을 오로지 이윤 추출에 종속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위성이다)(Milbank, Forthcoming; 주 6 참조)이야말로 미국이 오랫동안 제조업 기반의 상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러한 태도에 균열이 생긴 것은 오직 군사 안보상의 이유와 사회적 불만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빅테크(big tech)’의 금융 및 독점 기업 이익 집단이 어떻게 트럼프의 편으로 돌아섰는지도 목격했다(Higgins, 2025). 이는 단순히 트럼프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압승을 거두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극단적이고 ‘약탈적인’ 세력이 (브렉시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가신 국내 규제뿐만 아니라 성가신 국제 규제로부터도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한편으로는 경쟁적 무역을 통한 완전한 평화 질서를 구상하는 신자유주의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활동을 사실상 범죄에 가까운 영구적 준(準)전쟁 상태로 간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세력 간의 구분을 상정해 볼 수 있다. 후자의 세력은 정치를 경제 영역으로 완전히 흡수·통합함으로써 순수한 기업 지배 체제를 강화하는 것을 선호하며, 이들에게 민족주의는 단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또한 이 집단은 자유주의를 넘어 허무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다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순수한 시장 경쟁에 제약을 가하려는 이른바 ‘워크(woke)’적 시도에 맞서, 인종·성별·문명 간의 위계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는 ‘초(超)다윈주의적’ 자연관을 내세워 경제 경쟁의 규범적 토대를 마련하려 하기 때문이다(Slobodian, 2025).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대안 우파(Alt-Right)’는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이 결합한 산물로 이해될 수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 슬로보디안(Quinn Slobodian)의 견해와 달리, 이러한 포섭이 포퓰리즘의 본질을 완전히 규정하거나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다. 포퓰리즘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적 전유에 의해 아무리 유혹받는다 해도) 여전히 신자유주의 경제의 결과에 대해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포퓰리즘이 ‘워키즘(wokery)’에 저항하는 것은 그것이 반자본주의의 새로운 피난처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좌파가 추구했던 계급적·인간적 연대의 증진을 가로막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직 결코 확실하게 패배하지 않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지향 세력은 ‘다양성’을 기꺼이 수용했으며, 이를 기업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유리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초기에 신자유주의 내부의 허무주의적 전환을 주도하던 이들은 조세 회피처로 도피했으나, 이제는 정치 영역의 완전한 경제화를 위해 미국의 거버넌스, 법체계, 규제, 고등교육 시스템을 해체할 기회를 얻었다(Slobodian, 2024). 이는 하이에크(Hayek)가 꿈꾸던 수준을 뛰어넘는 구상이다. 틸(Thiel)과 머스크(Musk)가 (지구든 다른 행성이든) 자신들이 직접 통치하는 국가 형태의 기업을 설립하려 할 때—이상적으로는 미국 그 자체까지 포함하여—소유권의 아포리아(aporia)는 악몽과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된다. 케네(Quesnay)의 시대를 넘어, 범죄 대응조차 기업의 경제적 통제 영역으로 편입된다. (자유주의 좌파가 초래한) 공적 치안 유지 기능의 쇠퇴 속에서,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경단이 그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의 완전한 경제화란 곧 돈이 직접적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금전적 거래가 마피아식으로 총구를 겨누는 위협을 통해 강제되고 뒷받침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시점,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 하에서 이윤 추구는 곧 법이 되며, 계약(또는 ‘거래’)은 오직 ‘대부(godfather)’와 같은 권위가 강제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마찬가지로 과학과 대학의 독립성 또한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과학 활동이 오로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기술 연구(또는 행성 탐사)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종속되기 때문이다.

 

다극화, 혹은 어쩌면 양극화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과거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방식이 단순히 되살아나거나, 미국이 다시금 이를 지지하려 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트럼프의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특히 중국은 관세로 인해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며, 상호 호혜적인 무역 협정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게 해줄 탄탄한 내수 시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주의 내부의 포퓰리즘 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 간의 긴장은 지속되겠지만, 대외적 보호주의와 대내적 규제 완화는 기묘하게 결합할 수 있다(이는 실질적인 사회적 평등 조치 없이도 노동계급의 일자리를 일부 회복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결합은 파시즘적 성격을 띤 새로운 경제적 자유주의 형태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념적 차원에서 볼 때, 국제주의자들의 미래지향적 생존주의(이들은 환경 파괴를 피할 수 없는 일로 여기며, 실존적으로 포기할 수 없거나 포기해서는 안 될 기술적 진보를 위해 치러야 할 필수적인 대가라고 생각한다)는 더 민족주의적인 세력이 지닌 종교적 종말론 및 개신교 시오니즘과 융합한다(Klein and Taylor, 2025; Butler, 2024).

 

이러한 이유로 마틴 울프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트럼프에 대한 향수 어린 자유민주주의적 저항은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또한, 그러한 저항이 불평등과 세계적 불균형을 조장하는 과도함이야말로 포퓰리즘적 반발과 기업 변혁을 초래한 원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저항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는 경제와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는 파시즘적 양상을 역사적으로 극복하려면, 이 두 차원 사이의 자유주의적 긴장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긴장 관계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으며, 제가 앞서 언급했듯이 끊임없는 인간 갈등을 야기해 왔다.

 

폴라니가 통찰했듯이, 우리는 상호주의적 사회주의와 (폴라니가 특히 지지했던) 기독교 사회 교리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여 경제를 사회 속에 다시금 ‘재배치(re-embed)’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재배치 과정은 필연적으로 경제와 정치의 유기적 결합을 수반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국가의 장려를 받는 생산적 경제에서 비롯된 ‘더 공정한 경제적 분배’ 요구를 회피하려는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자본이 생산성 중심에서 벗어나 본래 더 큰 비중을 두었던 지대(rent)와 부채(debt)로 회귀하는 모습을 목격해 왔다. 이러한 자본의 회귀는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생산성 하락세보다는 완만했음에도 불구하고)을 초래하는 동시에 그 하락세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었다(Brenner, 2002; Piketty, 2017). 또한 국가 간의 경제적으로 불필요하고 문제 소지가 있는 정치적 경쟁도 이러한 상황에 일조했다.

 

수십 년간 지속된 공급 중시 정책이 이윤과 생산 모두를 저해했기에 수요를 재진작하는 케인스주의적 해법을 다시 도입해야 할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러한 시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불만이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그러한 지원이 공익을 위한 시장 경제의 영구적이고 탈(脫)자본주의적인 안정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은 지나치게 크다. 이는 부분적으로 대처주의(Thatcherism)로의 전환을 촉발했던 요인이기도 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정치적·계급적 이해관계는 체계적인 부채 경제를 통해 수요를 다소 미약하게나마 부양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으며, 이는 동시에 더욱 효과적인 ‘신봉건적’ 사회 통제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 이 모든 것은 사회민주주의적 재분배가 더 이상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에 그러한 재분배는 본질적이고 필연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간주되는 시장 과정을 윤리적으로 길들이려는 비현실적 시도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이 지닌 이러한 성격 탓에 시장을 길들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며, 자본은 국가의 압도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금융이라는 요새로 후퇴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양적 완화를 통한 은행 구제 조치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늘날 국가와 국민이 이러한 초자본주의적 질서에 의해 위협받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그들은 포퓰리즘이라는 안이하고 위험한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약탈적인 과두 세력의 주도하에 전개될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전체주의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세계 대전으로 향하는 길을 닦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가 더 평등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안은 뉴딜 정책과 전후 유럽 체제가 보여주었던 온건한 조합주의(corporatism)를 보다 급진적인 방식으로 재구상하는 것이다.

 

정치가 순전히 경제적 목적에 포섭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관료주의적 장부 관리나 비인격적인 관료 기구로 인해 경제 생산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경제적 과정을 사회적 책임을 수반하는 것으로 재인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통치(거버넌스)를 개인주의적 가정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노동조합, 기업, 종교 및 문화 단체 등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정치 이전 단계의 집단(pre-political groups)’ 간의 협력, 그리고 이들의 국정 참여 및 대표성 확보라는 관점에서 재구상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그 산물인 자유주의 국가 및 시장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립된 개인으로 여기도록 부추기는 반면, 전통적이고 정치 이전 단계에 있는 모든 집단은 공유된 문화적 지평과 공동선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뿐만 아니라 이러한 집단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직장이나 지역사회에서 형성된 공동체적 태도를 정치 공동체 전체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 계약은 단순히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주체들 간의 타협에 그쳐서는 안 되며, 객관적으로 타당하고 공유 가능한 ‘번영의 가치(shared goods of flourishing)’를 식별하고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한 모든 기업은 명확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소비자를 공정하게 대우하며, 투자자뿐만 아니라 노동자와도 이익을 공유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되어야 한다(참고로 이상적인 투자자라면 기업의 성공에 대해 지속적이고도 개인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사회적 인정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숭고한 과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상호적인 유인책으로서 정부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개인과 지역사회의 민주적 대표성을 보완하여 민주주의를 더욱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신(新)조합주의(neo-corporatism)’를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형태의 ‘봉건적’ 질서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오직 이러한 개선된 형태의 ‘봉건주의’만이 우리에게 이미 닥쳐온 전체주의적 과두제 성격의 ‘신봉건주의(neo-feudalism)’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자유무역이나 순수하게 ‘정치적’인 보호주의가 아니라,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어느 정도 시도되었던 것과 같은 ‘상호 보호주의’다. 이러한 방식은 리처드 닉슨에 의해 폐기되었는데, 그는 통화 질서의 혼란(monetary anarchy)—실상은 달러 패권에 종속된 상태—를 명분으로 내세워 미국 주도의 세계적 보호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처음 열었다.

 

상호 보호주의는 정치나 경제보다 사회적 가치, 문화적 관계성, 그리고 문명적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전 지구적 공감대를 전제로 한다. 이는 기업 이윤의 우선성을 철칙처럼 고수하는 세계적 분업 체제의 요구에 굴복하여 한 국가의 온전한 번영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의 협상을 가능하게 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이윤 우선주의로 인해 때때로 초래되는 사회적·경제적 불균형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국가 내에서 항상 분업을 시행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는 점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셔우드 숲의 러다이트(Luddite)들이 주장했던 바는 본질적으로 타당했다. 즉, 기술은 노동자나 노동자 집단의 창의성, 자율성, 자립성을 저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브스트와 스카치에리가 주장하듯이, 산업혁명기에도 프랑스의 ‘자카드 직기(Jacquard loom)’가 지닌 기술적 성격은 영국의 증기기관—혹은 적어도 증기기관이 주로 활용되던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Pabst and Scazzieri, 2023, 62–95). 자카드 직기는 다목적 활용이 가능했고 다양한 작업이나 유행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또한 이는 서로 다른 인간의 역량이 협력하고 다양한 유형의 생산물이 결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반면, 자본주의적 목표라는 압박 속에서 도입된 증기기관은 하나의 작업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수행하도록 유도했으며, 그 결과 개인의 창의성과 노동의 존엄성,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협력을 저해했다.

 

역량과 자재 간의 분업은—비록 자본주의가 언제나 이를 단순한 효용과 이윤의 관점에서만 착취하려 할지라도—도리아(Doria)의 견해를 따라, 단순한 실용성이나 이익 추구가 아닌 서로 다른 미덕과 재능의 협력(성경 속 바울의 모델과 같은)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저자들은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t)’ 생산 모델이 한때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분업을 제시하는 듯했던 양상에 대해서도 고찰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모델 역시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말았다. 그 결과 정보 경제의 세부 업무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저임금 노동력에게 외주화되었고, 아마존의 포장 노동자들은 현대판 공장과도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우리 모두는 노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그 자체로부터 소외되는 새로운 형태의 소외를 겪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이력과 조작된 감정은 모두 순간순간 이윤을 증대시키는 상품화된 원천이 되었으며, 이는 ‘신봉건주의(neo-feudalism)’ 체제 하에서 인간 행동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는 과정과 사실상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를 극복하려면 경제 활동을 사회적 관계 속에 체계적으로 다시 통합해야 한다. 즉, 모든 경제적 분업이 오직 미덕과 재능의 협력으로만 이해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 착취는 정의상 더 이상 경제적 행위가 아닌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착취는 개인, 지역사회, 공동체, 나아가 인류 전체가 누려야 할 ‘가정적(household)’ 자치권을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국가 내부와 국가 간 관계 모두에 ‘경제적 보충성의 원칙(economic subsidiarity)’을 적용해야 한다. 최대한의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는 협력이란 본래 개인과 공동체의 선(善)을 미덕을 통해 확장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제3의 길’이다. 이는 고립된 주체들(국가 차원이든 국제적 차원이든) 간의 끝없는 갈등과 경쟁, 혹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로운 인격체 간의 진정한 관계 맺기를 파괴하는 업무 및 공급망의 무한한 분절화와 세계화, 이 두 가지 대안 모두를 넘어서는 길이다.

 

마침내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역사의 종언’이 막을 내리는 시점에 도달했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은 단지 과거의 악령들이 되살아난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지난 세기 중반 우리를 어둠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자유주의 내부의 모순이 다시금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당시의 혼란은 정치와 경제 사이에 벌어진 자유주의적 간극을 메우려 했던 일종의 급진적 보수주의에 의해서야 비로소 종식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문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간극을 완전히 없애야만 한다.

 

 

Footnotes

1

It is significant that Doria stressed the extra-rational role of habit, in keeping with Vico’s emphasis both uponsensus communisand his view that ‘knowing is making’. See Pabst and Scazzieri (2023, 44–7).

 

2

For this reason, I would see, contra Quentin Skinner, ‘Roman’ but actually mainly modern Republican liberty understood as independent ‘self-government’ as still a mode of negative liberty, if rather less so than liberalism as ‘absence of restraint’. See Skinner (2025) and Milbank and Pabst (2016).

 

3

As Harvey argues in ‘On Sraffa’s Trail’, Piero Sraffa and Joan Robinson’s accusation of ‘tautology’ against Smithian economics (total value is capital plus labour, when in fact neither are fixed independent variables) applies equally against marginalism where the measurement of need rather than product fails to see that the value of demand depends upon socially mediated processes of production and exchange. For Sraffa as for Marx, both Smith and Marshall give only partial accounts of the capitalist spiral which is, as it were, socially and political embedded in a disembedding way—in Polanyian terms.

 

4

This perspective, then, does not involve the triumph of one class over another, even if it drastically redefines the legitimate role of owners and investors.

 

5

See David Harvey (2005). Contradictions internal to capitalism include over-working needed workers, reducing surplus value from labour via automating to outcompete rivals, loss of required demand by lowering wages to maximise surplus value, unrealisable capital resulting from international competition, over-investment in fixed capital and ‘consumption funds’ to support domestic life, besides tensions between finance and productive capital.

 

6

‘Weber’ has to balance ‘Marx’ in this regard.

 

7

It is true that the accumulation of vast suns of ‘banked’ money was partially enabled by the reduction in England of agricultural labourers to wage slaves (‘agrarian capitalism’ which perhaps has to remain in scare quotes), but this accumulation in Europe as a whole precedes that reduction and initially depended upon ‘feudal’ surpluses and on merchant capital much linked to usurious lending. To a degree Eighteenth Century funding in England remained dependent on these sources of abstract accumulation of money in the merchant-finance nexus. While Marx rightly understood capitalism as a complex spiral of conversion between very different capital uses, he underrated the way in which it was the (politically linked) rise of created money and unreal wealth through financial speculation that most strongly drove industrial production in the direction of pure profiteering and so made the exploitation of labour and the generation of surplus value (after the agricultural example) seem inevitable. David Harvey remains too simply Marxist in this regard.

 

8

Whether ‘Trumpery’ points to an eventual showdown with China or instead a co-existence of two or three big areas of global interest is not, however, as yet clear.

 

9

In this respect Joan Robinson was entirely right to deny that there is any economic law of or tendency to equilibrium. The latter could only ensue to a relative degree from re-embedding. By contrast, the capitalist economy is inherently unstable because always constituted by an asymmetrical and biased process that is never ultimately reciprocal. See David Harvey (2005).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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