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이후의 세계

- 제국 이후의 미국, 소프트 파워의 허상, 각자도생의 세계

2026년 4월 30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호르무즈해협, soft power, 전략적 자율성, 대서양동맹, 민주주의, rule by law, 글로벌 사우스, 저항정치(contentious politics), 전쟁권한법, 국제해양법조약(UNCLOS), 기술봉건주의(techno-feudalism), 대서양동맹

전쟁은 끝난건지 안끝난건지 애매하다. 휴전인지 종전인지 협상을 하는건지 마는건지, 호르무즈 해협은 누가 봉쇄하고 있는 건지 도대체 모든 것이 모호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긴 얘기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짧게 이 전쟁의 남긴 것들, 그리고 남길 것들부터 요약하자.

  • 미국의 이른바 soft power(대외 선전, 이데올로기전)는 끝났다. 더 이상 아무도 미국의 ‘스토리’를 믿지 않으며, 미국도 굳이 그럴싸해보이는 얘기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미국의 이야기는 막무가내이며, 아예 그런 막무가내가 목표이다. 따라서 전쟁의 당사자는 물론이고 참관자들조차도 도대체 이 전쟁의 목적, 수행방식, 종식 경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즉 이 전쟁은 만일 헤로도토스(고대 그리스 역사가)가 살아있었더라면,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즉 이 전쟁의 이야기들에는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 전쟁이 이렇게 엉거주춤한 것은 미국/이스라엘이나 이란이나 모두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양쪽 다 승리를 가져올 군사적 능력을 결여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 교착 상태를 외교적으로 타개할 정치적 능력도 결여하고 있다.
  • 따라서 전쟁은 여름날 엿가락처럼 그냥 늘어진다. 심지어는 소모전조차도 되지 못한다. 서로가 우기면서 대치하고 있을 뿐이다.
  • 전쟁의 재격화는 가능하기는 하지만, 만일 재연된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예컨대 미국이 공격을 재개했다가 호르무즈 해협 300km 해상에서 맴돌고 있는 전함이나 항공모함이라도 이란의 미사일에 격침된다면 미국은 위신(privilege) 때문에라도 지상군을 투입해야 하며, 이제는 진짜 전쟁이 된다. 이 때는 아무도 감당 못한다.
  • 미국이 엉거주춤한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최대 9월까지이며(이 때를 넘기면 중간선거에 참패하기로 작정했다는 뜻이다), 만일 중국과의 타협이 성사된다면 5월 말에는 종료될 것이다. 그 뒤에는 역시 시끄러운 외교적 협상 과정이 지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 미국은 전쟁에 앞서서 동맹을 형성하지 못했다. 전쟁 과정에서도 동맹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 공백은 미국 스스로가 대외 군사개입을 축소하려는 대전략 하에서 이란 전쟁을 기획한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 모순 때문이다. 즉 미국은 지구 전체를 커버하는 군사 전략은 포기하고 요충지만을 선택적으로 통제하는 대외 전략을 수립했으나 이같은 글로벌 전략 하에서는 그동안 미국에게 안보를 부분적으로 위탁해온(실은 미국의 군사적 협박 하에 동원되었던) 동맹국들이 미국만의 요충지를 위해 동원될 이유가 없어진다.
  •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중국 관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봉쇄를 위해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필요하지만, 유럽은 유럽 통합과 유럽 자본의 독자성을 위해 러시아를 적대하고 중국과 손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이같은 이해관계의 차이가 대서양 동맹의 균열을 가져왔고 이란 전쟁에 있어서 동맹의 형성을 저해했다.
  • 그런 점에서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 하에 행동했다. 사우디, 터키, 파키스탄 등의 서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을 대체할 역내 균형자, 혹은 역내 집단 안보 기구의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역설적으로 이란 전쟁은 단지 이란에 의해 중동 내 미군기지가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동에서의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마저도 파괴해버렸다. 미국은 ‘달러’를 미끼로 UAE를 끌어들이는데 그쳤다. 그러나 UAE의 지정학적 위치는 또 다른 역내 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 전쟁은 미국 국내 정치상황에도 영향을 미쳤다. MAGA의 균열은 심각하며, 반면 좌파populism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양당 체제에 부정적인 급진화된 개인들은 ‘고립적 테러’라는 방식으로 체제에 반응한다. 동시에 그동안 트럼프쪽의 MAGA 및 민주당 쪽의 Woke로 묶여있던 정치세력들이 다양하게 분기하여 서로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할 것이다. 이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즉, 앞으로 상당기간 미국의 정치적 안정성은 기대하기 힘들며, 따라서 일관되고 힘있는 대외정책의 수행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최소한의 법치와 민주주의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미국이, 즉 미국 경제가 더 이상 인민들을 먹여살리기 힘든 상태에 도달했다는 ‘경제이야기’가 숨어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것이라는 찬란한 경제적 성과는 단서도 보이지 않으며, 개인소득은 정체 상태다. 제국의 인민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로마제국을 생각해보라.

1. 아무도 너를 믿지 않는다

전쟁이 남긴 최초의 결과들은 이제는 아무도 미국의 이야기(narratives)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미국이 발표하는 전황만이 아니다. 그 전황에 대한 해설들, 그리고 이 전쟁을 둘러싼 온갖 도덕적, 전략적, 정치적 설교들도 함께 힘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중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조차도 이 전쟁의 목적을 모른다. ·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한 시민이 트럼프의 휴전기간 연장 발표가 실린 신문을 읽고 있다. 출처: AFP


미국은 왜 이란을 공격하는가? 제국의 헤게머니를 위해서? 달러를 수호하기 위해서? 종속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직 미국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 모든 해설들은 약간씩은 일리가 있지만, 그러나 결국은 팔리지 않는 싸구려 소설에 불과하다. 위의 설명들 중에 어느 것도 딱 들어맞지가 않는다. 그래서 다시 결론은 트럼프가 “미친 놈이라서”로 돌아온다. 물론 그것조차도 아니다. 트럼프는 미치지 않았으며, 미치지 않고서도 저런 짓을 한다는 점에서는 미친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계산적’으로 행동하며 말한다. 다만 그가 보여주는 ‘계산’이 현실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의 지지자건 비판자건 간에 실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음모론의 함정에 쉽게 빠져든다.

물론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전쟁은 단순히 원유나 서아시아에서의 세력 균형, 혹은 페트로달러와 같은 개별적 사안을 뛰어넘는 원대한 전략적 배치의 일환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그 최종적인 목표가 단지 중국인 것도 아니며, 글로벌 사우스를 ‘재식민지화’하려는 단순한 강탈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간단히 이라크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이라크 의회가 누리 알-말리키 전총리를 다시 총리로 추대하려 하자 이를 극력 반대했다. 알-말리키가 친이란계 인사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라크 의회는 한달을 표류하다가 지난 28일에서야 알리 알-자이디를 신임 총리로 추대키로 결정했다. 아직 미국의 공식적 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사전에 이라크와 미국 사이에 협의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알-자이디 총리 추대를 굳이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알-자이디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시아파 종파세력들이 합의해서 추대한 인물이다. 당연히 시아파에 속한다. 그런데 그는 이라크의 재벌, 그것도 신흥재벌이다. 정유회사에서 슈퍼마켓 체인에 이르기까지 여러개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불과 몇주일 전만 해도 미국과 전투를 벌였던 이라크내 시아파 민병대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라크내 시아파 세력들이 알-자이디를 추대한 속내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시아파지만 미국의 입맛에 맞는 인물일 것이다. 미국에게는 시아파냐 수니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무슨 종교를 가지고 있든 무슨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든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그가 자본의 이익에 복속하는 한, 설혹 그것이 피상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국가적 이해’에 반할지라도 미국이 수용가능한 인물이다.

이는 미국이 협상과정에서 이란의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아니라 모하마드 갈리바프 국회의장을 사실상의 이란과의 협상 파트너로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갈리바프는 혁명수비대 출신이며(혁명수비대의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철저히 반미노선을 걷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실권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경제통’,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융통’이라는 점이다. 갈리바프는 손익을 따지는 인물이다. 미국이 암살한 이란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인 알리 라리쟈니가 합리적이지만 동시에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데 반해, 갈리바프는 ‘미국 증시와 원유 선물시장’을 논하는 사람이다. 흥정하는 사람과는 협상이 가능하다. 그것이 라리쟈니는 죽어야했고, 갈리바프는 살아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즉 미국은 여전히 ‘자본가의 국가’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 있어서는 이것만이 유일한 행동 기준이다.

2. 민주주의, 법치, 그리고 저항정치(contentious politics)

우습지만, 그리고 서글프게도 트럼프는,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다. 트럼프가 ‘제왕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회가 공모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악인’처럼 보인다면(실제로 악인이기는 하다), 그것은 미국 정치권에서 그가 역할 분담해서 맡은 역이 악인이었기 때문일 뿐이다. 미국 의회는 언제라도 트럼프의 행동을 중단시킬 수 있다. 단지 ‘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안하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가 이란전쟁을 기획했는가? 아니다. 바이든 정권의 국무장관이었던 토니 블링컨은 지난 4월 초에 TV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권 마지막 해인 지난 2024년 중반 대이란 전쟁 전략이 수립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은 그것보다 훨씬 오래됐다. 지난 2008년 대선 캠페인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미국 해병대를 해상봉쇄 및 선박 나포 작전에 동원할 수 있도록 편제를 재구성하고 훈련을 한 것은 바이든 정권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작전’은 이미 민주당 정권 시절에 수립되었다. 전쟁의 ‘수행’만 공화당 정권에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이를 수없이 지적하고, 수없이 시간적 배열의 에피소트와 사실들을 나열하였는데 왜 이 사실을 자꾸 믿지 못하거나 부정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4월 말에 전 미국무부 차관인 랜디 셔먼은 ”가자 학살(genocide)“을 인정했다. 언제 가자 지구에서 가장 많은 학살이 이루어졌는가? 바이든 정권 때인 2023년 가을부터 24년 말까지였다. 바이든 정권은 학살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무기를 공급하고 정보를 제공했으며 방위비를 무상 지원했으며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을 행위를 옹호했다. 즉, 학살을 막기는커녕, 방조도 아니고 공조했다. 즉 공범이다.

트럼프가 자신이 가자 학살을 막았다고 노벨평화상을 달라고 칭얼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들이 1000명을 죽일 때 자신은 100명밖에 안죽였으니 평화의 사도라고 주장하는 것을 미친 놈으로 치부하면서 1000명을 죽인 학살자를 추켜세우면 100명밖에 안죽인 미친 놈이 훨씬 정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근데 리버럴들은 이도 믿지 않는다- 한국의 리버럴도 마찬가지다). 대신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과 레바논에 대한 공격으로 이란에서만 약 4천여명, 레바논에서는 250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가자의 7만 5천여명에 비하면 노벨평화상을 주어도 된다.

지난 2024년 2월 가자 지구에서 아이들이 구호단체가 나눠주는 식량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 Shutterstock.com


이는 그냥 말장난이 아니다. 이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은 ‘트럼프라서’도 아니고, ‘이스라엘이라서’ 때문도 아니라는 점이다. 학살과 침략전쟁은 미국의 정책이며, 유일한 전략이고 초당적인 거사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거든 2011년의 리비아를 보고, 1999년의 세르비아를 보라.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왜 지난 2월달에 무려 700만명이나 모여 ‘No King’ 시위를 했는가(한국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100만명이 시위를 한 셈이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왼손과 오른손이 각기 역할을 나누어 학살과 학살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분담하는 사례에 불과하다. 이것이 ”투표는 유권자들이 하지만 메뉴는 우리가 정한다“는 미국 정치 격언의 진정한 의미다 (그런데 도대체 왕조사회도 아닌 사회에서 ”왕은 없다“라는 구호를 건 시위에 700만명이 모였다니?)

미국의 ‘민주시민들’이 “No King!” 시위를 하는 한,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으며, 기존의 학살을 멈출 이유도, 압력도 없다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다음에 들어설 민주당의 ‘no king’이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새로운 학살과 착취를 할 것이며, 그 때는 의회 내 공화당이 엄숙하게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 건국 이후 지난 250년간 일관된 역사였다.

그리고 심지어는 트럼프의 이 ‘광기’는 모두 법적인 근거가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외곽에서 나포한 이란 선박들은 모두 미국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선박들이다. 즉 미국 국내법에 의거하여 나포한 것이다. ‘법률 없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권위주의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미국의 행위가 국제법에 위배되는 권위주의적 처사라고 비난하려거든 트럼프만 욕할 것이 아니라, 미국 법원과 그런 법을 만든 미국 의회도 함께 탓해야 한다.

따라서 오는 11월의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트럼프의 삽질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주/공화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도는 약 5% 포인트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9일 선거법상의 인종 근거 선거구 획정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시했기 때문에 선거구가 다시 획정되면 공화당에 보다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따라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따놓은 당상은 아니다. 상당수의 선거구에서 매우 근소한 차이로 결과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선거는 미국의 대내외 정책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가? 그것 역시 아니다. 단지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여 의회를 장악한다고 해서 이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뿐이다. 예컨대 지난 바이든 정권에서 이란 특사보를 지낸 Richard Nephew는 ”어떠한 종류의 협상도 반대“한다. 그는 트럼프의 요구를 이란이 모두 받아들이더라도 전쟁을 끝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미국의 제재가 끝나면 이란은 다시 재건될 것이며 다시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란의 완전한 파괴, 즉 석기시대로의 회귀를 원한다. 그리고 이것이 애초 지난 2월 28일 전쟁을 시작했을 때의 미국의 입장이기도 했다. 즉 민주당의 입장이기도 하다.

전쟁 하루 전까지도 이란은 미국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은 결국 전쟁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미국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전쟁과 파괴 그 자체였으며, 이란을 발판으로 삼아 글로벌 사우스를 견제하고 아시아의 산업국가들을 위협할 고리를 만드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Nephew는 트럼프 정권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바이든 정권의 이란 정책 입안자 중의 하나다.

그리고 트럼프는 다만 여러 정치분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그중에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어 그것을 정부의 업무로서 수행할 뿐이다. 다만 원래 사람이 좀 지저분할 따름이다.

이란, 가자, 베네수엘라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자유민주주의자’ 또는 ‘신자유주의자’로 여겼으나 어느 순간 갑자기 ‘권위주의’ 또는 ‘제국주의’가 되어버렸다는, 새삼스럽고 놀라운 불쾌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자유주의자로서 활보할 적에 준비되고 기획되었으며(심지어는 이미 수행되었으며), 지금은 단지 더 이상 자유주의자로서 행세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외관을 벗어던진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의 놀라움과는 달리, 미국은 원래 그랬다. 신자유주의는 잘 나갈 때의 파시즘의 다른 이름이며, 파시즘은 망한 신자유주의의 원래 이름이다. 본성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상황이 달라진 것뿐이다.


3. 준법 트럼프이란 전쟁의 위법성?

미국에는 전쟁권한법(war power act)이 있다. 지난 1974년 통과된 법으로 대통령이 의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법안이다. 모두 90일간 대통령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으며, 60일 동안은 ‘공격’을 할 수 있으나, 이 시기가 지나면 의회에서 추가로 승인을 받아 기간을 연장하든지 아니면 나머지 30일 동안에 철수해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28일에 이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따라서 4월 29일이 전쟁권한법에서 정한 60일이 되는 날이다. 이날까지도 트럼프는 전쟁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철수할 것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물론 법이 있다고 해서 지키라는 법은 없다. 지난 2011년에 미국 오바마 정권이 리비아를 공격했을 때도 90일을 넘겼다. 당시 오바마의 변명은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법이 이런 지경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바마 정권의 전례를 빌자면, 트럼프도 자신도 이란에 대해 전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대신에 이 법조항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면,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상하원 모두에서 직접 전쟁권한법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미군의 이란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은 모두 부결된 바 있다. 그러니까 미국 의회는 공격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제한하는 것을 반대함으로서 트럼프 정권의 군사행동에 면죄부를 주었고 전쟁권한법은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면 된다.

이것은 ‘민주적 의사/행동 결정’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의회는 기술적으로 ‘전쟁’ 문제를 회피함으로서 정치적 의사표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원들이 ‘비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는 증거는 없다(비록 당사자들이 선거부정을 주장하고 있기는 하더라도). 그렇다면 이 행위들은 ‘권위주의적’(authoritarian)인가? 아니다. 어디서도 명시적으로 행정부가 법을 어기고 권한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다. 트럼프는 단지 ‘법의 정신’을 짓밟았을 뿐이지, 기술적으로 ‘법 조항’을 어겨가면서 행정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행태는 비단 트럼프가 유별난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입법 과정을 보면, ‘법의 정신’ 자체가 매우 의문스러운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므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쟁’을 법의 관점에서 혹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무용한 일이다. 왜냐하면 트럼프의 전쟁은 국내법의 범주 안에 있으며, 국제법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법의 범주 안에 있다. 그리고 친절하시게도, 미국 의회는 트럼프의 전쟁을 ‘반대 결의안의 부결’ 방식으로 정당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광기 또는 이란의 ‘광신’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형식적으로나마 미국이나 이란 모두 ‘법적인’, 그리고 ‘민주적인’ 절차와 규정들을 준수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간과한다. 예컨대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흔히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먼저 이란의 경우를 보자. 이른바 선박이 바다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자유항행’에 관한 유엔 법 조항은 국제해양법조약(UNCLOS) 38조다. 그런데 38조에는 예외규정이 있다. 본토와 도서 사이에 대륙붕이 걸쳐져 있으며 그 안의 해역은 12해리 내에서는 해당국가의 독점적 영해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중간에 조그만 섬이 3개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절반 이상은 국제법에 따르면 이란의 독점적 영해라고 보아야 한다. 즉 UNCLOS 38조에 따르면 이 해역은 자유항행 대상이 아니다. 대신 나머지 반쪽, 즉 오만과 이란 영유 섬 사이의 해협은 자유항행 대상으로 볼 수 있다. 근데 거기는 수심이 얕아서 대형선박은 사실상 통행 불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이란은 UNCLOS 가입국이 아니며, 미국도 아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미국이나 이란이나 국제해양법 조약 비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조항을 준수할 의무가 없으며, 설사 준수하더라도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절반을 ‘통제’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이른바 통과비(toll fee)를 받는 것은? 전례가 있다.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관장하는 터키도 관리비 명목으로 선박통행료를 받는다(선적 화물 중량 대비로 볼 때 대략 이란이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은 몬터레이협약에 의해 흑해 내에 군사분쟁이 생기면 터키가 선박 통행을 차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란은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외곽에서 이란 통과 선박들에 대한 ‘봉쇄’를 선언한 것은? 이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대신 미 국내법상으로는 불법이 아니다(이른바 역외 사법권).

”이러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론은 차치하고라도, 아직까지는 전쟁을 하고 살육을 일삼는 인간들이 법적인 외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민주적 절차도 준수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법(법치)과 민주주의가 전쟁, 학살, 강탈, 착취를 저지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법과 민주주의는 최악의 국면, 즉 무제한적인 전쟁을 방지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해서, 이란 전쟁을 둘러싼 법적, 민주주의를 둘러싼 갈등은 법과 민주주의가 인민의 삶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중이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태를 평가하고 한정짓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내부의 ‘법치’ 또는 ‘권리’에 대한 논쟁은 단지 이란 전쟁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지난 4월 미국 상원은 악명높은 해외정보수집법(FISA) 702호 3년 연장안을 통과시키고 하원으로 내려보냈는데, 선거 캠페인 기간 중에는 이 조항을 악법이라고 주장하며 철폐를 선언했던 트럼프가 오히려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법 조항은 트럼프가 찬성해서 문제가 있는 법안인 것은 아니다. FISA 자체는 지난 70년대 닉슨 행정부의 대외 불법 활동이 하도 극심해서 이를 법적으로 제한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다. 그러나 몇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미국의 대외정보공작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로 기능했으며, 지난 2001년 911 사건 이후에는 아예 대폭 수정되어 이제는 단지 해외 기관, 외국인 대상 정보수집만이 아니라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장없는’ 사찰이 가능해졌다.

한국의 민변쯤에 해당하는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지난 2008년에 FISA는 위헌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FISA는 911 이후 제정된 공안 관련 법률들, 특히 애국법안(partiot act)에 비하면 약소하다. 애국법안은 한국의 국가보안법, 아니 이승만 시절의 반공법에 더 가까우며 이 법을 보고나면 왜 미국을 ‘자유주의’ 국가라고 부르는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4. 못살겠다, 갈아보자 DSA, MAGA, 외로운 늑대들, 억만장자들

이같은 법적,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일부 급진 민주주의자들은 현재의 미국 상황을 민주주의가 아닌 것으로 규정한다. 이들 중 기존 제도정치권에 포섭된 일부는 민주사회주의(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맘다니 뉴욕시장)로 나타나며, 다른 일부는 순수한 형태의 인민주의(populism) 형태로 나타난다.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예비선거에서 뜻밖의 무명인사들이 승리하는 사례가 대거 나타나고 있는데, 이들은 미국에서 이른바 ‘좌파 포퓰리즘’을 대표하는 세력들이다. 미국의 좌파 포퓰리즘은 1950년대 매카시즘 시절에 거의 씨가 말랐으며, 1980년대에는 우파 포퓰리즘(이들은 80년대 후반 민병대로 진화했다)에 흡수되어서 사실상 사라졌었다. 이들 인민주의자들이 얼마나 중간선거에서 선전하느냐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체제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보는 보다 근본적인 개인들은 비조직적, 자생적인 ‘개별적 폭력’의 형태로 저항한다. 예컨대 일련의 정치적 테러라든가, 최근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킴벌리 화장지 창고 방화사건(”먹고 살만큼은 월급을 주지 그랬어“라는 대사로 유명해졌다), 민영의료보험회사 CEO 살해사건, 그밖의 소소한 모방 연쇄 방화 사건들은 체제에 대한 사적인 저항의 표출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4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킴벌리 공장 창고가 노동자의 방화로 불타고 있다. 출처 : Yahoo.com


반대로 공화당, 우익 계열에서도 현재의 체제가 자신들의 이해나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지 못한다는 의식은 팽배하다. 트럼프 2기 집권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선거부정 등의 제도화된 음모론 틀안에 갇혀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트럼프가 재집권하기만 하면 이같은 미국의 ‘비민주적, 따라서 반국가적’ 정책이나 행동들은 모두 해소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해결은커녕, 오히려 삶의 조건이 더 악화되자 이들 사이에서도 분화가 발생했다.

첫번째 그룹은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그룹에서 이탈하여 중도로 돌아선 공화주의자들이다. 전 하원의원인 매조리 테일러-그린, 언론인 출신으로 잘 나가는 유투버인 터커 칼슨, 역시 유투버로 젊은 층에 영향력이 큰 닉 푸엔테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대중적(popular) 영향력이 크다. 트럼프의 지난해 관세 소동 이후 공화당이 각종 지역 선거 및 보궐선거에서 거의 전패를 한 것은 MAGA 세력의 분열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실제적인 위험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트럼프 지지세력의 다른 한 축인 IT 억만장자들(IT 군산복합체)가 독자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정가에서 화제가 된 Palantir의 CEO인 Alex Carp의 ‘기술공화국 23개조 선언’은 이같은 위험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Carp의 선언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미국이 진정한 ‘자유’ 체제를 구가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민주주의에 의존할 수 없으며 소수의 특권적 ‘재능’을 가진 인물들이 미국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주장은 한국에서도 디시인사이드만 가봐도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좀 더 세련되기는 했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가장 유사한 전례는 1920년대 파시스트 이론가였던 Robert Michels일 것이다. Michels는 ‘과두정’을 주장하면서 과두정만이 주권과 국민의 권리, 재산을 지킨다고 주장했다. Carp의 주장은 이같은 ‘과두정’이 기술적 진보로 말미암아 가능하다고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결국 Palantir 회사 제품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Carp는 IT 투자자인 피터 티엘과 더불어 이른바 ‘기술 봉건주의’(techno-feudalism)의 주창자로 꼽힌다. 그는 철학과 출신이다. 독일 괴테대학에서 ‘생활세계에서의 공격성’이라는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마도 그의 가장 뛰어난, 그리고 유일한 업적은 철학과 나와서도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일 것이다(그의 재산은 약 200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은 이 IT 철학자들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왜냐하면 티엘은 자신들은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대중적인’ 인물과 연합하여 배후에서 조종하는 수밖에 없다고 솔직히 고백한 바 있는데, 이는 기껏해야 배후의 음모자는 될 수 있어도 현실의 정치적 브로커는 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점지한’ 그 ‘대중적 인물’이 바로 JD Vance다. 이란에 한창 폭탄이 날아들던 지난 3월 중순에 트럼프는 마라라고에서 백만장자들을 모아놓고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트럼프는 참석한 백만장자들에게 차기 대통령으로 Vance와 Rubio 국무장관 중에 누구를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압도적으로 Rubio였다.

Vance와 Rubio는 공화당 내에서 각기 다른 정치 세력을 대표한다. Vance는 Techno 업계의 ‘파시스트들’의 지원을 받으면서(아예 티엘이 정치 초년부터 키운 인물이다) 공화당내 populist 분파를 대표하며, 이에 반해 Rubio는 공화당 내에서 전통적인 주류 세력들, 즉 기존 월가 투자자, 독점자본들과 제휴한 의회내 세력이다(즉 구태 정치인이다).

트럼프가 이런 질문을 한 것부터가 공화당 내부에 기류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며, 참석한 백만장자들(즉 차기 선거에서 정치자금을 대줄 후원자들)이 Rubio를 선택했다는 것은 공화당 내에서 MAGA의 지위가 격하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Carp의 선언문은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는데, 즉 자신들이 지지하는 공화당내 정치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한 경고성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Vance는 이란전쟁에 대해서도 소극적이었으며(MAGA의 대중적 기반도 전쟁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파키스탄에서 열린 이란과의 1차 휴전협상에 Vance를 내보낸 것은 전혀 임의적인 사건이 아니다. 즉 트럼프로서는 Vance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휴전 협상 타결시 정치적 성과로 남는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협상은 결렬되었으며(이란쪽 반응을 보면 사실상 사전에 거의 합의된 휴전조건이 미국측에 의해 갑자기 일방적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으로 Vance 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져버렸다.

Rubio의 이란 전쟁에 대한 입장은 분명치는 않다. 일부 보도에서는 Vance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부정적인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이 점은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루비오가 정치적 기반을 둔 월가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제이미 다이먼 JP Morgan 은행 CEO는 1차 휴전 협상이 결렬된 직후, ”시장이 흔들리더라도 이번에 이란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가가 폭등하고 증시가 하락하며, 국채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이란을 확실히 파괴시켜야 한다는 주문이다.


5. 써커스는 했는데 빵이 없다

제국의 제일 큰 과제는 인민들을 먹여살리는데 있다. 그리고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도 실은 여기에 있다. 먹여살리기가 힘들다. 지난 2025년 4분기 미국 GDP 성장률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가 그동안 관세와 인공지능 선투자로 앞당겨 쓴 호시절이 다가고 급격히 경기가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보여줄 것이라고 떠들썩한 생산성 향상 증거는 아직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투자는 증가했지만, 대신에 다른 산업의 투자는 부진했다.

더 큰 문제는 개인소득(personal income) 지표다. 미 경제분석국의 발표를 보면 미국의 자영업자/농민의 소득은 지난 3년째 정체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대료 수익도 정체 상태다. 또 정부 이전 소득(government transfer; 연금 및 의료 복지)도 정체 상태다. 심지어는 이자소득도 정체 상태다. 지난 3년간 누적 인플레이션률이 거의 10%에 가깝기 때문에 자영업자, 농민, 연금 및 금리생활자, 임대료 생활자는 실질 소득이 마이너스였다는 뜻이다. 이러면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반면 노동소득은 기존 추세를 유지하며 여전히 증가했다(기업의 부외 노동 소득-기업의 퇴직금/연금 지출도 증가했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 증가 추세를 보면, IT 서비스 기업을 제외한 다른 업종은 모두 이윤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는 IT 서비스업을 제외한 기업들이 조만간 노동비용 증가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며, 결국 고용 축소로 반응할 것임을 시사한다.

물론 이 통계는 개인의 투자소득(주식 및 채권 투자로 인한 잉여소득)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당신이 계속 고용상태에 있지 않은 한, 주식에 투자해서 추가 수익이 생기지 않았다면 지난 3년 동안 생활수준이 계속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약 62%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다른 항목의 소득이 감소하는데 만일 증시마저도 하락한다면 미국인들의 개인소득은 매우 처참해진다.

또한 그동안의 미국 자산시장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임대소득, 이자소득, 자영업자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득 증가 효과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자산 버블이 발생해도 일반 개인들에게는 소득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상태로 진입하고 있다.

만일 이처럼 미국내 자산가격과 소득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이는 다시 자산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며, 이를 선제적으로 예측하는 해외 투자자들(특히 해외 연기금과 사모펀드들)은 보유하고 있는 미국 자산을 매각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산 가격 붕괴를 가속화시킨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어려운 경로다. 따라서 달러 부족 상태를 유도하여 달러 초강세를 만들고 이를 근거로 해외투자자들의 미국내 자산 매각을 중지시키든지, 아니면 연방준비은행이 최종 구매자로 나서든지(양적완화, QE)해야 한다. 둘 다 불편한 선택이며, 전자는 전쟁을 부르고, 후자는 내전을 부를 것이다.


6.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

JP Morgan의 제이미 다이먼이 이란 전쟁 북소리를 울리던 비슷한 시기에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연일 대이란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베센트는 전쟁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동안 암암리에만 거론되던 이란전을 계기로 함 중국에 대한 압박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첫 중요 관료다. 베센트의 발언 이전에는 이란 전쟁은 이란에만, 기껏해야 서아시아에만 머물렀다. 베센트는 이를 중국과 연결시켰다.

미 해군 정보장교 출신인 Brian Berletic은 이를 두고 미국이 처음부터 중국을 압박하고 봉쇄할 목적으로 이란전을 벌였다고 지적한다. 즉 중국의 에너지 운송로를 차단함으로써 중국의 발전을 저지하고 중국의 대외 동맹들을 이탈시키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Berletic의 분석에는 한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다. 설사 미국의 목적이 중국을 고립/봉쇄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미국 단독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지구적 동맹, 무엇보다도 유럽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는 유럽의 이해와 미국의 이해는 일치하지 않는다. 중국을 압박/견제한다는 최종 목표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경로가 다르다.

중국 자금성 벽면 출처 : Matadornetwork.com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배후의 에너지 기지인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분리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유럽의 입장에서는 비록 러시아로부터의 값싼 에너지를 얻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구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로의 EU의 진출이 더 중요하며 EU의 ‘연방국가’체제로의 진화가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EU는 외부의 적이 요구되는데(단순한 내적 동기만으로는 국가를 형성할 수 없다), 러시아가 그 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이다.

Brad Setser에 따르면 유럽의 대미국 경상수지 흑자에서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의약품 기업의 이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투자수익(자본수지)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유럽은 미국에 대해서 ‘흑자’를 기록 중인 것이 아니라, 유럽의 투자자들이 미국에 투자하여 투자수익(이자, 주식 상승분 차익, 임대료 수익 등)을 크게 얻고 있는 것이다. 즉 유럽 자본가들의 대미 투자수익은 달러화 가치와 미국 자산가격의 상승에 달려 있다. 유럽의 실물 경제의 경쟁력이 이들의 수익을 좌우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의 자산 가격에 반응한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현재 유럽의 지배 엘리트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유럽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므로 유럽은 러시아와는 불화할 수밖에 없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4년째 수행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유럽으로부터의 배제를 중국과의 연대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진출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 트럼프는 이를 분리하고 싶어했고 유럽은 동의하지 않았다. 유럽이 동의하지 않는 중국 봉쇄는 불가능하다. 이란과의 전쟁도 허덕이는 판에 중국과 전쟁 수준의 대립을 자초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이것이 바로 그린랜드로 대표되는 대서양 동맹의 분열, 즉 미국과 유럽의 불화의 근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무역상의 관점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이해는 일치하지 않는다. 유럽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크지만, 그 대부분은 아일랜드에 서류상의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의 매출일 뿐이다. 즉 미국 기업이 유럽에 와서 장사하면서 미국에 수출한 것이 유럽의 흑자로 잡힐 뿐이다. 이를 제외하면 경상수지에서의 유럽의 대미 흑자는 거의 대부분이 ‘투자수익’, 즉 유럽계 자본이 미국 자산에 투자하여 거둔 수익이다.

반면 유럽은 중국과의 교역에서는 2025년 기준 무려 3600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지만, 대신에 중국은 유럽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며, 더구나 지난해 연말 이후 유럽 국가수반의 잇딴 중국 방문에서 이들은 차후 중국이 대규모 대EU 투자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게다가 유럽은 유로화가 달러화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화폐, 나아가 달러를 대체하는 글로벌 화폐가 될 야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돈’의 관점에서는 유럽은 미국이 원하는 대중국 봉쇄에서 남는 것이 없다. 이것이 곧 대서양 동맹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은 동맹보다는 자신들의 이익, 즉 EU의 강화와 유로화의 강화가 더 중요하다고 선언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유럽은 갑자기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셈이다.

전 러시아 공산당 의장인 세르게이 글라지예프는 최근 글에서 “유럽은 왜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자해적 정책을 내놓는가?”라고 곤혹스러움을 표명하면서 이를 오래된 ‘러시아 혐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같은 문화적 정조(mentality)는 부수적이며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결과에 가깝다. 실제는 유럽의 엘리트들은 금융상으로는 미국의 자산 가격 변동에 자신들의 이해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유럽의 확장, 즉 EU가 연방국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외부적인 ‘적’의 존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공안적 통제가 요구된다. ‘적’의 존재야말로 유럽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민족, 국가, 자본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악화되는 것을 저지하고 EU 확대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이자 실제적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상대국 내부에 미국과 동질적인 정치세력을 양성하는 것에 유럽의 지배층이 반발하는 것도 주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헝가리의 오르반 정권은 Vance 부통령이 직접 헝가리를 방문하여 지지 선언을 할 정도로 MAGA의 포퓰리스트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유럽의 기존 엘리트들의 성향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게다가 지난 4월 16일 선거 총선에서 대패하여(개헌선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동안 EU의 골칫거리였던 헝가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유럽판 MAGA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국-이란 휴전협상이 결렬된 것도 헝가리 선거 결과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 내의 우파 포퓰리스트 분파가 더 이상 국제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헝가리를 통해 분명해지면서 Vance의 정치적 중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즉 트럼프로서는 굳이 이란 종전 협상과 같은 정치적 성과를 Vance에게 안겨줄 유인이 사라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좀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년 이상 공석이었던 주한미대사 자리에 미셸 박 스틸 전 연방하원의원(공화당)을 임명했는데, 이 사람의 경력으로 보면 골수 MAGA에 초강경 반중/반북주의자이며 대중국 봉쇄에 한국이 동참하도록 압력을 넣을 인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유럽에서 실패한 MAGA 모델을 이식하려는 기획을 숨기지 않고 있다. 노골적으로 평가하자면, 주한 미대사로 지명한 스틸은 외교관이 아니라 극우정치 활동가다.

물론 한국에도 오르반 정권처럼 미국의 MAGA세력에 동조하는 정치집단(국민의힘, 윤어게인)은 존재하지만, 현재까지는 이들은 소수인데다가 오히려 점점 더 힘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틸 미 대사의 임명은 미국이 한국판 MAGA세력을 최소한의 지렛대로 쓰려는 용도이거나(이 경우 한국에서의 개헌을 염두에 둔 포석), 혹은 극적인 한반도 긴장 조성 정책을 유도하여 아예 한국의 민족주의 분파를 내부적으로 말살하려는 정치공작의 전초전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훗날 다른 기회가 생기면 다루겠다.


7. 적은 많고 친구는 없다. 그러길래 진작에 잘하지 그랬어 – 한반도?

최근 남북한 관계는 “cold peace”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빅터 챠는 미국의 전체적인 대외전략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남겼다. 그것은 미국은 적이 너무 많으며, 따라서 미군의 흔적을 줄여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주독미군 감축 검토를 시사한 것도 이같은 대외정책의 일환이다(한국은 해당 안될 것이다. 미 군부가 극력 반대하고 있다).

챠의 발언에서 흥미로운 것은 ‘미국은 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외정책 씽크탱크에서 종종 보이는 발언이기도 한데,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국처럼 미국이라면 죽고 못사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다. 일본이 그 다음이다(일본은 최소한 자신들이 미국의 식민지인 줄은 안다). 그러나 한국을 벗어나면 미국의 이미지는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그냥 힘이 세서 참고 있는 것뿐이지, 미국이 약화되면 달려들 원한에 사무친 인민은 지구상에 넘치고 넘쳤다.

미국은 왜 적이 많아졌는가에 대한 답변은 미국의 대외전문가들은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미국이 자신들이 정하는 질서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사건건이 개입을 했던 결과라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암묵적으로 자신들이 ‘옳은 행동’을 했다는 편견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개입의 결과로 원수를 많이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국의 처방, 즉 미국의 대외 군사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앞의 ‘글로벌 원수론’과는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외 군사개입 축소는 트럼프의 용어를 빌린다면, “미군이 용병처럼 쓰였다”는 것인데, 즉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동맹국들이 원하는 무력을 동원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동맹국이 주도한 국제 분쟁은 적어도 1960년대 이후에는 거의 없다(고작해야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뿐이다). 즉 미국은 분쟁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분쟁의 주체였다.

적이 많다는 것은 미국이 현재의 글로벌 포지션을 유지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외 군사개입을 줄이겠다는 것은 기존의 제국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경쟁자들의 타겟이 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정확히 지난 2000여년 전에 진나라가 무너져갈 때 조고가 취한 정책이기도 하다(조고는 2세 황제 호해를 죽인 뒤에 진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라 제후국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했다. 이는 각지에서 거병한 군웅들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미국의 집권 세력이 어디까지 계산하고 이란 전쟁이라는 도박수를 던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라는 전략까지는 플랜B로 구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플랜A는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메르쯔 독일 총리는 ’굴욕스럽다‘고 표현했다). 문제는 1차 계획이 망하자 우격다짐으로 플랜B는 시행했는데, 그 다음은 답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트럼프편이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를 알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제는 외관이 벗겨진 제국을 뒤로 하고 각자가 자기 몫을 챙기려 할 것이며,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뭔가 또 다른 이벤트를 벌여야 한다. 그리고 이벤트가 되풀이되면 면역이 생긴다. 그러면 미국은 더 큰 이벤트가 필요해진다. 트럼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희망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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