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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emerging market)의 선진시장(developed market) 추월: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의 선진시장(developed market) 추월

: 글로벌리즘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2023년 12월 21일 / 글로벌 리포트 Global Report
<전망과실천> 편집부

신흥시장(EM emerging market), 선진시장(DM developed market), 국채, 달러화, 기축통화, 통화 헤게모니

팬데믹(covid 19)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경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글로벌 경제에서 선진시장(서구)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수십년 동안 국제 금융/무역 거래에서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던 미국 달러화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차트1. 출처 : Gavekal Research      

위의 챠트1은 신흥시장(EM: Emerging Market) 의 수출 가운데 신흥시장 국가들 사이의 교역의 규모(붉은색; 12개월 누적)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파란색 실선; 3개월 이동평균)을 표시한 것이다.

신흥시장 국가들 사이의 교역은 2020년 이전만 해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반등기의 고점인 38% 선을 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 급증하기 시작해 2022년 말에는 45%, 금액으로는 4.5조 달러에 달할 정도로 늘었다. 이는 이제 신흥시장 전체 수출 가운데 55%만이 선진시장 (DM developed market)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이며, 점차적으로 신흥시장의 선진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금융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20년 이후 신흥시장 국채(정부 부채)의 가격이 선진시장 국채보다 더 많이 상승했다 (EM outperformed DM).

차트2. 출처 : Gavekal research   

위의 챠트2는 2020년 이후의 미국 독일등 선진시장과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주요 국가들의 국채 수익(total return; 국채 시장 가격 변동분+이자 수익분)을 나타낸 것이다. 2020년 초를 100으로 했을 때, 마이너스 영역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채 금리(yield)가 높아졌다(금리 상승)는 것을 의미한다(금리가 상승하면 국채 시장가격은 하락한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시장 국채 수익은 모두 감소했다. 반면에, 중국 인도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 국가들의 국채 수익은 상승했다. 즉 신흥 시장 국채의 상대 가격은 선진시장 국채에 비해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채 수익률은 상승하며, 따라서 국채 수익(total return)도 감소한다. 그런데 21년 하반기 이후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신흥시장과 선진시장 국채 사이에 이처럼 현격한 차별화가 발생하는 것은 단지 ‘물가’나 ‘정책금리 변동’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인상이 신흥시장 국가의 금융 시장에 사실상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결과,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특히 신흥시장에서 글로벌 연쇄부도가 날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3.5% 수준으로 미국 연준의 정책 금리(5.25%-5.50%)보다 훨씬 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달러화 유출(그리고 그로 인한 원화 가치 하락)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같은 차별화는 금융 시장에서 신흥시장 경제가 선진시장 경제보다 더 양호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포한다.

심지어는 금융시장은 신흥시장 우량 국채를 미국 정부의 국채보다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차트3. 출처: Gavekal research

위 챠트3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주요 신흥시장 국가들의 우량 국채를 모아 구성한 투자등급 신흥시장 국채 수익률 인덱스와 미국정부 국채 5년물 수익률을 비교한 것이다. 올해 7월을 기점으로 미국 정부 국채 5년물 수익률이 신흥시장 우량 국채(동일만기) 수익률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 국채가 신흥시장 우량 국채보다 그 가치가 더 낮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뜻한다.

국채 금리(수익률)는 그 나라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드는 이자비용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국채 금리가 높다는 것은 곧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며, 경제 성장에 저해가 된다(고 적어도 현대의 경제 이론은 주장한다).

금융시장에서는 이같은 역전 현상에 대해 두 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즉, 국채 발행액이 너무 많아져서 수요를 넘어서거나 혹은 신용 위험(credit risk)이 생겼다고 보는 해석이다. 예컨대 2023년 IMF가 추정한 미국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GDP의 5.4%다. 세계 대전을 제외하고는 이처럼 높은 재정 적자 비율을 기록한 예가 없었다. 막상 전쟁 중인 러시아의 올해 재정 적자는 GDP의 2%에 불과하며, 헌법재판소가 연방정부 재정 적자 증가를 위헌으로 판결해 난리가 난 독일도 올 추정 재정 적자는 GDP의 2%를 살짝 넘는 정도에 불과하다.

교과서적으로는 선진시장 국가의 국채는 신용위험(부채 미상환 위험)이 없다. 왜냐면 부채가 자국 화폐로 발행되기 때문에, 자국 중앙은행이 언제든지 구제금융(bail-out)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도 국가 부도 위험(sovereign risk)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미국의 국채 시장에서는 해외발 수요(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무역 흑자국이 잉여달러를 미 국채에 재투자하는 것)가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일 이들 국가들이 달러화를 recycling하지 않는다면, 또는 이제까지는 제3국과의 교역에서도 무역 흑자가 달러화 통화로 얻어졌던 것과는 달리, 달러화 이외의 제3의 통화로 잉여 화폐를 축장하게 된다면 미국에 유입되는 달러화의 양은 감소하며 따라서 미국 국채 시장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신흥시장 국가에서 ‘성장’이란 해외에서 달러화로 자금을 조달(부채 발행)하여 이를 국내에 도입해 투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차트4, 중국의 공적 부문 부채 구성 변화 추이. 출처 : Gavekal research

그러나, 중국의 공적 부문 부채는 2014년 이전까지는 거의 90%가 달러화 표시 부채였다. 그러나 그 뒤에는 위안화 표시 부채가 급증하기 시작해서 2022년에는 달러화 표시 부채 규모를 추월한다. 이는 중국이 기존의 달러화 부채를 갚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 통화인 위안화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지배적인 형태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일대일로’(one belt and one road; BRI) 정책이었다.

따라서 흔히 주장되는 것과는 달리 중국에서 달러화 자금이 ‘이탈’하는 것이 반드시 중국에 ‘위험한’ 일인 것만은 아니다(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진통이다). 달러화 표시 부채를 위안화로 대체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중국에게 유리한 방안이다. 중국은 달러화 표시 부채가 감소하는 만큼(여기에는 부채 상환과 중국에서의 자금 이탈이 모두 포함된다) 새로운 ‘화폐’를 금융 시스템에 주입하기 위해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준 금리를 인하했다.

러시아의 사례는 더 흥미롭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금융 봉쇄(러시아 자산 압류 및 국제결제시스템인 SWIFT에서의 러시아 은행 축출)를 제3통화를 통한 무역 거래로 돌파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성공적이다.

차트5. 출처: Gavekal research   

러시아는 ‘달러 없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 거래는 올해 말까지는 100% 위안화나 루블로 결제하도록 목표로 하고 있다. 즉 달러가 전혀 필요없는 성장 모델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전례가 있다. 1918년 볼쉐비키 혁명 이후에도 서구 국가들은 당시 소비에트연방에 대해 경제 및 금융 봉쇄를 가했지만, 스탈린은 결국은 독자적인 경제 발전을 성공시켰다(물론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다).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의 전면 봉쇄에도 대기권 밖에 유인우주선을 먼저 쏘아올린 것(‘스푸트니크 쇼크’)은 소련이었다. 즉 아우타르키(자립경제 모델)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지금과 같이 중국이나 BRICS 국가들 같은 교역 가능한 발전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은, 더욱 용이하다.

이에 대한 반론이 무역흑자국이 잉여 달러를 다른 곳에 쌓아둘 곳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미국내로 유입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우크라이나 전쟁을 핑계로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약 3,000억 달러의 자산을 압류한 것도 달러 순환을 강제로 지속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무역흑자국들이 잉여 달러를 자신들이 지고 있는 달러화 부채를 청산하는데 사용한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미국의 달러화 약세가 불가피해지고, 따라서 인플레이션 압력도 높아지며, 연방 정부는 재정 긴축을 하든지 혹은 상대적 고금리를 유지하든지 해야 하는 불편한 선택에 놓인다.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단지 ‘경제적(금융적)’ 수단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포’는 늘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글로벌리즘의 끝에는 역사적으로 대규모 지정학적 위기(19세기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의 양차 대전)가 발생했는가? 이는 평화시의 통화 헤게모니(파운드 헤게모니, 달러 헤게모니)를 통한 착취가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때 강제적 폭력적 수단을 통해 이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비극이었던 첫 번째도 겪었고 소극이었던 두 번째도 겪었는데, 무려 세 번째인 이번에는 웃을 것인가 울 것인가? 안면인식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울어서도 웃어서도 안되며 어떤 표정도, 말도 해서는 안되는 때가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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