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퀴어의 자긍심과 미국의 하이브리드 외교

퀴어의 자긍심과 미국의 하이브리드 외교

: 퀴어 퍼레이드와 소수자 정체성, 소수자연대의 방향

2024년 6월 7일 / 권영숙의 낯선 새로움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퀴어 퍼레이드, 미국 공공외교, 국가안보, 하이브리드외교, 성소수자, 소수자(minority) 의식, 소수자 연대

미국의 성조기와 퀴어의 상징 무지개 기가 함께 펄럭이고 있다. 출처: global dissident
미국의 성조기와 퀴어의 상징 무지개 기가 함께 펄럭이고 있다. 출처: global dissident

 

미 국무부의 전세계 퀴어 퍼레이드 예산 지원

최근 미 국무부의 예산 집행 사이트
(https://www.usaspending.gov/award/ASST_NON_SBU80024GR0019_1900)
를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올해 불가리아의 성소수자 지원 단체인 Glas Foundation에 약 14천 달러를 지원했다. Glas Foundation은 불가리아 성소수자 축제(퍼레이드)을 구성하는 조직위원회의 주축 멤버 중의 하나이다. 미 국무부는 “TO SUPPORT SOFIA PRIDE 2024” (2024년 소피아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자금의 출처는 미 국무부가 관장하는 공공외교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미국 정부 및 시민들과 다른 나라 시민들 사이의 관계를 확장하고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대외 정책 목표 실현을 지원하고 미국의 국가 이익을 증진하며, 해외 대중에 영향을 미치고 정보를 제공하여 미국의 국가 안보를 고양하는 데 있다.
단지 불가리아의 퀴어 퍼레이드와 성수소자 단체만 지원한 것이 아니다. 미국은 체코, 호주등을 비롯하여 중남미와 서남아시아, 동유럽 국가 등 수십개국의 단체들의 유사한 성소수자 행사들에 지원한다.

이같은 해외 민간단체에 대한 자금지원의 법적 근거는 지난 1961년 케네디 정권 하에서 통과된 대외지원법에 근거하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의 평화봉사단도 이 법에 의거한 것이다. 이 자금의 경우는 관련국가의 민간단체가 해당국의 미국 대사관에 직접 신청을 하고, 미 국무부의 심사를 통해 지원된다.

그렇다면 올해 미 국무부의 지원을 받은 불가리아 Glas Foundation는 어떤 곳일까? 지난 2014년 창설된 성소수자 지원 재단이며, 이 재단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해 1016불가리아의 유태인 조직인 ‘Shalom의 기도회에서 우리는 지난 107일 테러리스트들(하마스)의 도발되지 않은 공격(unprovoked attack)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아이들, 부모들 그리고 평화로운 거주자들에 대해 우리의 애도를 표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자에서 죽은 아이들이나 여성들(퀴어 피플 포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전체적으로 미 국무부가 말하는 공공외교와 그를 실현하기 위한 기금 조성, 국무부 예산 집행 홈페이지의 자료가 말해주는 것은 이른바 민주주의의 가치’, 또는 서구적 가치가 단순한 가치나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국가 안보의 일환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공식적 관계(정부간 관계)가 외교의 거의 전부였던데 반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이 대외 정책 수행 방식은 과거의 전쟁 혹은 외교라는 이분법적인 단선적 구도에서 벗어나, ‘경제 제재, 민간을 통한 압력의 형성,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자본을 통한 대정부 로비등으로 다양화되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hybrid) 외교 노선이다.

그리고 인권과 성소수자 문제는 여기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 페미니즘도 중요한 지렛대 혹은 매개체 역할을 한다. ‘사회적 가치이슈는 특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등에서도 대대적인 쟁점이자 전략이 되기도 했다. 전세계적인 거물급 자본가들까지 나서서 페미니즘을 사회적 가치 투쟁으로 만들면서 자본주의의 성장에 이롭게만들 수 있다는 논의가 분분하였다.

미국의 ‘하이브리드 외교’

하지만 미국의 하이브리드 외교는 이를 상대하는 국가의 관점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해당 국가의 전통적 문화 및 가치와의 충돌이다. 이와 관련해서 문화적 다양성 대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구도의 논쟁이 꽤 오랫동안 이론적으로 운동적으로 치열하게 펼쳐졌다. ‘다문화주의역시 이 프레임의 일부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인권과 소수자 권리의 보편성을 국경을 넘어서 긍정하는 것이 정체성의 정치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캐나다의 인디언 부족은 자신들의 보편적인 정치적 시민권(인권)을 인정해주는 댓가로 종족의 삶의 방식이 파괴되는 문제 앞에서 스스로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보장받은 대의제 민주주의는 소수민족이 의회에 가서 자신의 문제를 자신들이 결정하도록 만들지 못하게 하는 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11표제인 한 그렇게 된다물론 여기서 과연 이 종족의 이해가 단일한가, 내부의 소수자들의 문제는 없는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종족자체가 내부적으로 복수적이고 이질적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같은 민간(시민사회단체들)을 통한 우회적 압력 행사 방식이 그 국가의 체제와 대외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의 문제, 즉 국제관계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성소수자 인권을 매개로 한 서구의 개입에 대해 비서구권 국가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는 내부적인 차이와 차별을 더욱 예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그 과정은 필요한 진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자체로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회적 가치‘, 혹은 서구적 가치규범들을 세계화하는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인권, 권리, 시민권, 소수자, 정체성 등의 개념들은 결코 사회정치적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서 사회정치적 상태는 단지 국내적일 뿐 아니라 국제적이다. 즉 지정학적이고 지경학적이다.

나아가 이 두 가지 측면, 즉 내부의 전통적 가치의 균열과 투쟁이 외부의 전파와 강제‘(때로 인도주의적 군사적 개입까지 포함한)와 교묘한 조합을 이룬다면 때로는 매우 심각한 체제 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1970대 후반 이후의 이른바 ‘3차 민주화 웨이브는 단지 정치적인 체제의 이행으로만 그친 경우는 없으며, 정치적 투쟁만으로 점철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현존사회주의의 체제적 취약성의 문제였지만, 이후에는 그리고 사실은 그 당시에도 서구적 가치의 문제, 즉 사뮤엘 헌팅턴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문명의 충돌1세계와 2세계(소련과 동유럽) 사이에, 그리고 1세계와 3세계 사이에 서구적 자유주의적 가치를 둘러싼 문제를 배태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그루지아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구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그루지아에서는 지난해 여름부터 민간단체(NGO)들의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수만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른바 ‘color revolution’이 그루지아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기도 했다.

이 시위의 원인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대외지원단체 등록법때문이다. 그루지아 정부는 일정액 이상의 해외 지원을 받는 민간 단체들은 지원 내역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민간 단체들은 이같은 조치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해치고 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특히 LGBTQ 관련 단체들의 저항이 거셌다. 미국과 유럽 정부들도 그루지아 정부의 조처를 비난하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태의 전개였다. 해외지원을 받는 민간단체의 등록 및 신고 관련 법안의 선구자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 직후부터 다른 나라가 자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려해 이를 엄격히 통제하는 조처들을 취했다. 이른바 해외 대리인 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 of 1938)로 불리는 이 법은 해외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상세한 피지원 내역과 사용처 및 단체 관계자 명부를 정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1970년대 미국 정가를 흔든 박동선 게이트’(한국 정부의 에이전트인 박동선이 미국 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했던 사건)도 이 법을 근거로 처벌했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씽크탱크 중 하나인 Brookings 연구소 이사장이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사임하기도 했다. 그는 카타르로부터 거액 기금을 후원받고 카타르 정부의 이해를 위해 미국 정부 및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한 혐의를 받았다. 미국이 준동맹국인 카타르를 건드린 것도 흥미로운 사건이었지만, 육군대장 출신의 이사장을 조사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정보업계에서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내부 노선 다툼 끝에 벌어진 사건, 즉 숙청이라는 루머가 파다했다.

하지만 서구에서조차 해외의 이익을 대변하는, 혹은 국내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자국 내 민간 단체들은 엄격하게 관리한다. 대신에, 만일 비서구 국가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자유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행위가 된다. 이것이 국제지정학이다. 가치와 규범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모순적인가를 보여준다.

그루지아 사태는 특히 시사적이다. 왜냐하면 그루지아는 구소련의 일원으로서 지난 2008년 이른바 ‘1일 전쟁’(미국의 사주를 받은 대리전쟁이었다)을 러시아와 치른 끝에 패배하여 거의 국가가 붕괴 직전에까지 몰렸었다철저한 반러시아주의자였던 당시 대통령 미케일 샤카슈빌리는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메이단 쿠데타가 발생한 뒤 포로센코 정권 하에서 우크라이나 국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돈바스 지역 주 지사를 맡기도 했다(그리고 신나치 민병대조직인 아조프 연대가 러시아계 주민들의 학살을 지원, 방조했다).
그루지아 정치권은 2008년 전쟁 뒤 서구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간단체를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등록법을 추진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에 격렬히 저항한 것이다.

그루지아 사태가 가리키는 정치적 의미는, “만일 국내의 민간단체들이 서구적 가치를 주장하며 전통적 제도와 대립하면서 기존 정치 세력을 전복시키고 친서구 정권을 수립하여 서구의 이해에 복속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로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칼 슈미트는 전쟁 동안에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와 외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무기가 될 수 있으며, 어떠한 것도 동원될 수 있다. 그것이 인권이든, 소수자의 권리든, 민주주의든, 아무리 숭고한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은 동시에 총칼이며 무기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허수아비이기도 하다.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 퀴어 프라이드(자긍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에서도 지난 61일 퀴어 퍼레이드가 서울 중심가에서 15만명이 참여하는 가운데 대규모로 열렸다. 규모와 내용으로만 보면 이는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내적인 면에서는 매우 균열적이다, 심지어 문제적이다. 올해 퀴어 퍼레이드는 6월을 퀴어의 자긍심의 달로 선정하였지만, 오히려 퀴어의 자긍심(Queer’s pride)은 과연 무엇이어야하는가를 질문하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이 양적인 규모보다 더 중요한 질적인 의미일 것이다.

필자는 2014년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린 소규모의 퀴어 퍼레이드를 기억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귀국한 후 몇 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전세계적으로 이뤄진 행진에 맞춰서 신촌 연세로에서 딱 1시간동안 짧게 열린 퍼레이드. 서대문구청이 행사장소 승인을 취소하는 바람에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그 해프닝 자체가 퀴어 퍼레이드의 필요성을 외려 웅변한 셈이었다. 반동성애 집회 참가자들의 위협은 소란스러웠고,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위축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당당하게 소수자의 정체성과 프라이드를 퍼레이드로 실현하였다.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2014년 그 해 이후 나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가 일종의 핑크워싱의 장소가 되는 것을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5년 미 대법원은 동성애 유니온’(결합)에 대해 합법화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던 백악관은 무지개로 물들여졌다. 페이스북은 무지개 깃발 걸기 캠페인을 벌였고, 한국의 페이스북 이용자들도 무지개 깃발을 내걸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백악관을 무지개로 물들이고, 주커버그가 소유하는 페이스북이 이를 캠페인으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는 모호한 지점이 있었다. 핑크 워싱은 이렇게 SNS 세상으로 슬그머니 넘어왔다. 그 이후 핑크 워싱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회자되기 시작하엿다.

그리고 2015년 서울의 중심인 시청광장에서 드디어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그 해 퀴어 퍼레이드에는 미국 대사 리퍼트도 참석했다. 그 해 미국이 비밀리에 남한에 탄저균 도입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에 항의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일부가 용산 미군기지와 평택 미군기지를 항의방문했지만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환영받았던 리퍼트 미국 대사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근데 우리는 탄저균을 잊을 수 있는가?

어쩌면 백악관이 무지개로 물들어도, 내가 페이스북 프로필을 무지개로 바꾸어도, 그래서 그 색이 같아져도, 페이스북에 많은 글들처럼 당시 나는 오바마를 상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그 점만으로 그를 지지하거나 긍정하지도 않는다.
오바마 재임 시절에 전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이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쌓였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바마의 추악한 위선이다! 이것이야말로 핑크워싱이었다.

물론 미국 대법원 판결은, 미국의 동성애자 운동이 지속적으로 투쟁하여 이룬 결과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에 그들의 실천을 가까이서 조금은 살펴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명암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게이 레즈비언 운동이 기층민중운동과 연대와 관계 맺기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점, 성소수자운동이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냉담하다는 점, 성소수자운동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남성 게이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계급적인 문제도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점등. 이런 문제를 단순히 교차성이라고만 기술하고 방치할 수 있을까?

만약 한 사람의 정체성이 복수적이라면 그 복수의 정체성은 결국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부딪히게 되고 중첩된다. 이 문제를 한국의 성소수자운동은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퀴어 퍼레이드야말로, 퀴어의 자긍심이 어디서 비롯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직감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국의 동성애자 운동의 전철을 한국은 밟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에도 퀴어 퍼레이드는 서울에서 열렸다. 이 해에 한국은 미국의 사드 배치 문제로 떠들썩했다. 성주의 원주민들은 사드 배치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하였고, 전국의 많은 연대자들이 성주로 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16년 퀴어퍼레이드에도 역시나 주한미대사관 부스가 있었다. 배당번호는 50. 마지막 부스들이 거기 있었다. 주한미대사관, 주한캐나다 대사관,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부스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퀴어퍼레이드에 대해서 한국 주재 구미 대사들의 집단적 지지 선언이 발표되었다. 퀴어 퍼레이드 조직자들은 이를 선전했다. 과연 그 집단적 선언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이 든다.

뿐만 아니라 미대사관 부스 근처에서, 그리고 리퍼트 미대사가 행진할 때 양키 고홈!’ 1인 시위를 한 사람이 혐오 조장발언이라고 주최측에 의해 5분만에 쫒겨났다고 한다. 정말인가? 그리고 퀴어퍼레이드에서 미 대사를 향해 양키 고홈!을 외치는 것이 혐오 발언인가?

그리고 당일 대한문 쪽에서는, ‘동성애자 반대집회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경찰은 양쪽의 충돌을 막는다는 이유로 많은 진입장벽들을 만들었고, 좁은 길을 따라 가야만 시청 광장 집회와 부스들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내 눈길을 더없이 끈 것은 이것이었다; 주한미대사관 부스와 전쟁없는 세상부스가 몇 부스 건너 나란히 있는 모습이 모습만큼 퀴어 퍼레이드의 한계와 문제의 지점을 보여준 모습이 있을까?

전지구사회에서 침략전쟁을 일삼고, 혹은 침략전쟁의 배후에 있고, 많은 국지적인 내전들을 만들어내는 미국. 그리고 국지전을 만들어내는 군벌들(warlords)과 모의 작당하였다는 사실들이 사후에 폭로되어도 문제없이 넘어가는 미국.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부대를 알 카에다부터 IS까지 만들어, 중동 민중의 민주주의를 막으려 나섰던 미국. 유고 코소보에서 보듯 인종청소와, 대량 난민 발생과 여성 인신매매와 납치, 그리고 쿠바 동쪽 콴타나모의 치외법권적인 불법 감옥과 강간등 고문행위들.

이렇듯 수많은 전쟁을 일으켜서 전쟁없는 세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미국. 수많은 전쟁범죄의 가해자들이자 살인자인 미국. 그래서 그 나라 국무장관, 대통령이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됐던 나라 미국(심지어 미국은 자국민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체포되면 군사력을 동원해 구출하도록 하는 법률까지 통과시켰다. 이른바 헤이그 침공법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전쟁없는 평화가 퀴어정신이라고 해서 퀴어 퍼레이드에 부스를 설치하고 그 성명서도 내보내면서 한편에선 미국대사관 부스가 설치된다.

과연 전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에 미대사관 부스가 등장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미 대사가 나와 퀴어 행진을 구경하고 그 곁을 따라 행진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른 사회에서 심지어 반(anti) 동성애자까지 포괄하여 행진하는 경우를 봤으니.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이 퀴어의 정신이라는 말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퀴어퍼레이드 주최측이 미대사관에게 부스 설치를 허용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퀴어 퍼레이드는 핑크 워싱을 왜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였는가?

올해도 여지없이 미대사관 부스는 설치됐다. 하지만 작년 10월 이후 2024년 올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행위가 전세계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가자지구에는 퀴어도 살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혐오 정서와 서구적 가치를 아주 적절히 이용해왔다. 아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친퀴어적인 국가라고 자국을 선전한다.

하지만 문제의 틀이 과연 이 정도에서 그칠 수 있을까. 그리고 단지 팔레스타인 가자 학살만이 문제일까. 왜 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인도주의적 파괴행위 앞에서만 제국주의를 말해야하는가.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지난 수년간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에 미국 대사관등이 참여하여 부스를 차리고, 행진을 하고, 인증샷 놀이를 하는 그 공간 자체를 허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것 자체가 핑크 워싱이다

핑크 워싱(pink washing)은 국가 또는 기업이 자신들이 자행하는 차별과 착취와 폭력등을 감추거나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핑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핑크로 핑크를 워싱하는 것. 즉 퀴어의 이름으로 퀴어의 소수자로서 프라이드를 훼손하는 것.

하지만 동시에 퀴어의 자긍심을 곧추세우는 것 역시 퀴어의 소수자 정체성과 소수자 연대를 분명히 할 때이다. 결국 핵심은 퀴어는 무엇을 자긍심으로 생각하는가이다. 사회적 공민권을 인정받고 큰 퍼레이드를 여는 것, 소수자로서 퀴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모순과 참상을 외면하는 것은 자긍심이 아니다. 소수자로서 모든 소수자에게 연대를 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소수자 정체성이 아니다.
결국 퀴어의 자긍심은 단지 퀴어만으로 머물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교차성을 넘어서 연대의 운동은 어떻게 일으켜 세워야하는가의 문제이다.

소수자 의식과 소수자 연대의 방향

소수자 정체성은 무엇일까? 좁게는 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시민적 공민권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좁은 정체성이다. 각각의 정체성이다. 퀴어의 정체성, 여성의 정체성, 여러 성정체성등하지만 이들 모두를 자긍심있게 만드는 것은 내가 가지게 되는 소수자로서 의식이 아닐까. 내가 소수자이기에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세계, 경험으로 알게 된 세계, 그리고 깨닫게 된 세계. 그것 자체가 소수자 의식이다.

다수자가 되기 위해서 소수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다수자의 규칙을 존중하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소수자로서 인식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것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소수자(the minority)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소수자가 된 것이 아니다약자냐 강자냐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이와 차별의 체제 속에서 다수 대 소수의 구도가 배치되고 재편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소수자는 또 다른 소수자로 대체된다. 그러므로 소수자는 약자연하면서 강자의 논리, 강자의 인정을 찾고 좇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소수자의 의식을 견지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소수자 의식과 정체성이다.

지난 6월1일 서울 퀴어 퍼레이드 도중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미국, 독일 대사관 부스 앞에서 진행한 항의 피켓팅. 출처: Studio R
지난 6월1일 서울 퀴어 퍼레이드 도중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미국, 독일 대사관 부스 앞에서 진행한 항의 피켓팅. 출처: Studio R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는 과연 소수자의 정체성을 퀴어 퍼레이드 속에서 녹여내고 있는가? 왜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는 미국 대사관등에 프리미엄 멤버쉽을 부여하여 퍼레이드에 동참시키는가?
조직자중 한 사람이 페이스북에 쓴 글은 한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후원비용을 쉽게 만들지 않는다면서 미 대사관을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심지어 신청받아서 엄선했다면 과연 이들 대사관은 어떻게 통과되었는가 묻고 싶다. 특히 관타나모 감옥의 사령관이었던 해리스가 주한 미대사였을 때 어떤 기준이었길래 그는 퀴어 퍼레이드 단상에 올라갈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위에 밝혔듯이, 미 국무부가 공공외교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각국의 퀴어 퍼레이드를 지원하고 있다면, 한국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입장은 특별히 다를 수 있을까 의문이다. 한국 퀴어 운동이 어떤 연유로 미대사관 등에게 자리를 허여했든간에, 단지 부스 비용 100만원만 받았던간에, 주한 미국 대사관은 미 국무부의 공공외교 프로그램과 그 목적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고, 올해 퀴어 퍼레이드 참여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상대 국가 시민들과 관계를 넓히고, 대중에 영향을 미치고 정보를 제공하여 미국의 국가 안보를 고양하려는 목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올해 2024년은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대규모 학살 앞에서,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고조되면서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원하는 미국 대사관의 퀴어 퍼레이드 참여 재고요청이 비등했다. 하지만 결국 그 요청은 실현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퀴어퍼레이드 조직위원회가 그들을 다양성의 이름으로 포용한 것이야말로 핑크위싱의 성공이었다. 아닌가?
서울 퀴어퍼레이드 조직위원회는 핑크워싱을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나아가 퀴어의 자긍성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단지 놓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행사가 핑크워싱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는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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