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민생회복지원금’이 아니라 대대적인 ‘K-민생’이 필요하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아니라 대대적인 ‘K-민생’이 필요하다

2024년 6월 20일  / 연구자의 시선
글 김공회 연구위원 (경상대 경제학과)

현재 우리 경제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민생’을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돌이켜보면 애초 이 점을 가장 날카롭게 인지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던 것도 같다. 그가 지난 1월 4일부터 3월 26일까지 무려 스물네 번에 걸쳐 전국 각지를 뛰어다니며 연 ‘민생토론회’를 떠올려 보라.

총선을 앞둔 ‘선거 개입’이라는 혐의를 무릅쓰면서까지, 그리고 재벌 대기업 회장들을 동원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준비한 이 자리에서 그는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공약을 남발했고, 상당 정도 그것의 결과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야당의 압승으로 점쳐지던 선거의 판도를 빠르게 바꿔 나갔지 않은가.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불행하게도 이런 분위기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분수령은 3월 18일이었다.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그가 한 손으로 대파를 집어 올리며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했을 때, 그간 그가 내놓은 민생 약속들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모두 알다시피 총선은 범야권의 압승으로 끝났고, 바야흐로 야권의 시간이 왔다. 민생에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권이 대답할 차례다. 무엇이 나올까. 야권의 선두에서 민주당이 내놓은 카드는 ‘민생회복지원금’이었다. 이 당의 이재명 대표는 지난 4월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단둘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이 카드를 내밀며 협조를 구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30일 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담은 「2024년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22대 국회가 출범한 당일에 자당 소속의 모든 의원의 서명을 받아 마련한 첫 번째 법안이니만큼 그 상징성이 지대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날 민주당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25만 원 내외’의 액수를, ‘지역사랑상품권’의 형태로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꾀하는 것 같다.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정책으로 제시된 이래, 22대 국회 들어서도 이 당의 첫 번째 당론 법안으로 제출되었다. 출처: 한국일보 2024.5.16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정책으로 제시된 이래, 22대 국회 들어서도 이 당의 첫 번째 당론 법안으로 제출되었다. 출처: 한국일보 2024.5.16


그러나 민생회복지원금을 둘러싼 여론은 그것의 순항에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달 21-23일에 실시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1%가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찬성은 43%에 그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직 큰 표본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대 기류가 한층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마치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이 현 상황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그것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들을 조직해 내고 그것을 대체할 정책을 내놓을 정치세력─민주당의 왼쪽이든 오른쪽이든─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왜 문제인가? 흔히 제시되는 반대의 근거로는, 첫째, 단 한 차례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만 13조 원이 들 정도로 국가재정에 부담을 줄 것이다, 둘째, 가뜩이나 치솟은 물가의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셋째, 굳이 민생회복지원금을 쓴다면 보편 지급보다는 선별 지급이, 균등 지급보다는 경제 사정에 따른 차등 지급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등이 제시된다. 제각각 일리 있기도 하고, 동시에 현재의 한국경제는 민생회복지원금이 야기하는 정도의 재정압박이나 물가상승은 너끈히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되받아치는 것도 얼마든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민생회복지원금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민생회복을 위한 핵심 정책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이 민생회복에 기여하더라도 그 기여는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20년 7월에 ‘한국판 뉴딜’이 발표되고, 그로부터 1년 뒤 ‘한국판 뉴딜 2.0’이 발표되었다. ‘휴먼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과 함께 뉴딜의 세 기둥으로 여겨졌다. 출처: 교육부 홈페이지 카드뉴스 2021.9.
지난 2020년 7월에 ‘한국판 뉴딜’이 발표되고, 그로부터 1년 뒤 ‘한국판 뉴딜 2.0’이 발표되었다. ‘휴먼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과 함께 뉴딜의 세 기둥으로 여겨졌다. 출처: 교육부 홈페이지 카드뉴스 2021.9.


민생회복지원금은 곧잘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시행되었던 긴급재난지원금을 연상시킨다. 전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상당 정도로 후자의 성공에 기대고 있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특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된 1차 긴급재난지원금(4인 가구 100만 원)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것이 소비의 진작이나 불평등의 감퇴에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기여는, 엄밀한 계량적 분석에 입각해서 보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을 정도로 ‘화끈’하지는 않았다. 외려 그것의 힘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정체불명의 글로벌 감염병에 상처 입은 우리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는 것, 굳게 걸어 잠근 문 뒤에서 두려워하던 사람들을 바깥으로 끌어내 우리의 지역공동체를 되살렸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역경을 헤쳐 나갈 힘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의 진정한 기여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 새삼 강조되어야 할 것은, 그러한 성과가 긴급재난지원금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려 거기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의 역할은 부차적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성과는 전 세계가 극찬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방역, 특히 의료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방역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K-방역’이 없었다고 해도 당시의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금처럼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방역이 엉망인 채로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더라면 어땠을까? 4인 가구의 100만 원은 두 번째, 세 번째의 100만 원 요구로 이어졌을 것이고, 거듭된 지원금 지급에도 불구하고 가구와 공동체의 활력이 복원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와 사회는 구조적 취약성에 노출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이번 달(6월)에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겠다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성공으로 만들어 줄, ‘민생의 K-방역’ 대책을 민주당은 가지고 있는가? 후자가 마련되지 않은 채로 전자만 얘기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생의 K-방역’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사실 거기에 별다르게 새로운 건 없다. 다시 코로나19 국면을 떠올려 보자. 역학적 방역뿐 아니라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경제적 방역을 시행하면서, 당시 우리는 우리의 경제·사회 제도가 얼마나 허술하고 근로대중을 보호하기에 얼마나 부족한지를 절감했다. 자영업자나 저소득층의 소득을 신속하게 파악할 체계가 미비해 빠르고 효율적인 정책 시행이 시작부터 막혔다는 것, 그리고 고용보험망의 포용성이 형편없어서 다양한 유형의 비정규·특수고용직 노동자, 또는 예술인들은 보호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는 것 등은 여전히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런 사항들 가운데 몇몇은 코로나19 당시에 ‘한국판 뉴딜’이라는 프로젝트에 종합적으로 담기기도 했으나, 윤석열 정권 들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다.

이렇게 보면, 지금 극심한 경제 침체에 대응해 전 국민에게 25만 원의 지역상품권을 지급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정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 부차적인 정책마저도 과거의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과 범야권이 할 일은, 민생회복지원금 하나에 사활을 걸고 그에 대한 찬성-반대라는 협소한 틀로 국민을 편가르기할 게 아니라 저 ‘민생의 K-방역’을 위한 큰 대책을 마련하는 대대적인 정치 운동을 벌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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