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거결과2 (프랑스 영국 선거)
폭탄 돌리기: 출구(exit) 없는 유럽의 도박
2024년 7월 10일 / 글로벌 리포트 Global Report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출구없는 민주주의, 세계화, 포플리즘, 유럽 정당정치, 계급투쟁, 극우파, 극단주의자, Neo-Liberalism on Steroid(뽕 맞은 신자유주의)
수렁 속의 유럽
미국 미주리-캔자스시티 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저명한 맑스주의 이론가인 마이클 허드슨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러시아를 매개로 한 미국의 대유럽 전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 미국 정보분석관인 알렉 스 메르쿠리스나 미군 정보장교 출신인 스콧 리터 등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실은 이같은 인식은 이른바 ‘친러’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분석가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의 진정한 목표가 러시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서 유럽이 독자적인 발전 노선을 구축하는 것을 저지하고 미국의 속국(vassal state) 상태를 지속하도록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분석가들도 대체로 이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독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독일은 미국의 속국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독일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
물론 이같은 종주국-속국 관계는 단순히 일방적이거나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판 속국에 해당하는 국가, 지역에서 종주국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지역 엘리트들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재생산 되는 메카니즘이 존재하며, 동시에 반대로 이에 대항하는 지역적이고 특수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 집단, 즉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분파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길항작용이 바로 지금 각 유럽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른바 ‘민주주의 선거’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권력 투쟁’이다. 하지만 권력투쟁은 계급투쟁은 아니다. (참조: “권력투쟁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덧붙여 유럽의 보이지 않는 두번째 손은 금융시장이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거나, 혹은 그 중요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지난 4일 총선에서 영국 노동당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향후 영국을 재편하게 되는 것은 노동당의 정책이 아니다. 5일자 글로벌 경제뉴스 <블룸버그통 신>의 컬럼니스트인 John Authors에 따르면, “유권자가 아니라 (금융)시장이 노동당의 정책을 지배한다”.
이는 단지 이번 프랑스와 영국 총선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10월 취임 40여일 만에 실각하여 “상추보다 수명이 짧은” 총리로 역사에 기록된 리즈 트러스의 정치 생명은 사실 의원내각제의 의원들이나 유권자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트러스는 불과 몇 주 전에 압도적인 표차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트러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영국 국채 시장이었다. 트러스가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하여 ‘재정 확대책’을 언급한 순간, 그의 수명은 끝났다. 영국 국채의 금리(수익률)은 급등했으며,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개입했고 투자자들은 트러스의 이름을 death note에 올렸다.
보수당 의원들은 정책이나 대중들의 반응과는 아무 상관없이, 국채 시장에서 선고하는대로 따랐다. 트러스는 그 이주일 뒤에 실각했다. 보수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집권 연장)와 대금융가들의 이해(긴축 및 제국주의적 대외 개입의 강화)가 서로 대립할 때는 여지없이 금융자본의 이해를 추종했다.
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살신성인’, 혹은 더 정확히는 ‘살신성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보리스 존슨 전총리의 실각의 이유였으며, 트러스가 조롱을 받은 이유였고, 그 스스로 금융자본의 일부인 리시 수낙이 ‘인종적’(그는 인도계 아프리카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영국 제국의 인종적 평등함인가) 차이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며, 도대체 어떤 근거에선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급작스러운 영국 의회 해산의 이유였으며, 효과적으로 당내 좌파(제레미 코빈 전 당 대표)를 제거한 노동당이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의 충실한 하인인 키어 스타머를 대표로 추대하고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총선 포스터 출처: <The Wire>
소위 좌파의 임무
스타머 총리는 ‘재정 확대책’과 ‘부자 증세’를 기치로 내걸고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이 선거 어젠다가 실현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는 노동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조차도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업체인 YouGov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당에 투표한 유권자들 가운데 단지 5%만이 노동당의 정책을 지지 했다.
말하자면 이번 영국 총선에서는 ‘위임 사안’(공약, mandate) 따위는 없었다. 시간상의 제약(너무 급작스 럽게 의회 해산과 총선 일자가 잡혀서 공약이고 뭐고 내놓을 겨를이 없었다. 선거 2주를 앞두고야 얼기 설기한 정책공약이 나왔다)은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시간을 빌미로 ‘공약’이 정치적 무게를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한 보수/노동 양당의 암묵적 합의에 의한 정치공학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규정, 즉 유럽이 처한 지정학적 지위와 금융 시장으로부터의 압력이 두 가지가 유럽을 ‘밖에서’(external) 규정하고 있는 두 가지 힘이다. 특히 금융시장의 압력은 당면한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EU의 대응은 올해부터 재정 긴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EU 규정상 회원국은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줄여야 한다. 2023년 기준으로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GDP의 5%를 넘는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핑계로 군사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
결국 (1) 증세를 하거나 (2) 복지 예산을 감축하거나 (3) 인플레이션율을 낮춰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국채 수익률을 낮추어 각국 정부가 시장의 압력에서 다소나마 벗어나는 것만이 현재의 정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이다. 그리고 이같은 사안들은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국내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누가 이 ‘개혁’을 하느냐다. 보수의 이름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저항이 그나마 누그러질 ‘좌파’의 이름으로 할 것인가의 선택이 남았다. 그리고 이런 ‘dirty job’은 전통적으로 ‘좌파’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좌파들은 엄숙한 얼굴을 하며 “국가와 공동체의 번영과 생존을 위하여“ 기꺼이 반노동계급적인 개혁자임을 자처한다.
그리고 이 두가지 양상을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힘은 지난 197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동학, 즉 자본의 전지구적 팽창(세계화)이며 이 속에서 유럽은 글로벌 자본이 새로운 시장으로 ‘확정’한 중국에 밀려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상실해가면서 이를 상쇄하기 위해 글로벌 역외달러 시장으로 전화하거나 혹은 내부적으로는 유럽시장을 단일화하고(EU), 동진정책(구 동구 공산주의 국가로의 유럽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흡수하면서 기존 정치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2008년은 그같은 메카니즘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신호였으며,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는 역외 달러 생산기지로서 역할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2016년의 브렉시트를 필두로 드디어 유럽은 지난 50여년간의 ‘통합’의 시기를 지나 다시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유럽 정당들의 2가지 선택지: 민주주의에 출구는 없다
이같은 외적 조건 하에서 유럽 각국의 정당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각 지역에서 글로벌 자본 유통에 편승하거나 혹은 그같은 기류에 반대하는 자본들 사이의 권력투쟁의 담지자로서의 유럽의 정당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이들은 다음 두 가지 경로 중의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1. 글로벌라이제이션 혹은 지난 50여년간의 자본의 팽창의 시기는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각 지역적으로 제한된 고전적인 착취체제(민족국가 하의 자본주의)로의 귀환을 요구하는 세력들. 이들이 이른바 ‘극우’(far right) 혹은 ‘극단주의자’(extremist)라고 불리는 유럽의 정당들이다. 이들은 그 동안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인구집단들(전통 산업 노동자들 및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중소 자영업자들)을 기본 지지세력으로 삼고 있으며 영국의 Reform Party, 독일의 독일 대안당(AfD), 프랑스의 민족단결당(RN) 등으로 상징된다. 헝가리나 슬로바키아 같은 경우에는 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 다. 이들의 발흥은 세계화가 더 이상 최소한 유럽 내에서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지지받을 수 없는 정책이라는 것을 또는 세계화로 인한 피해를 대중이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 준다.
1. 그것이 우파든 좌파든 지난 50여년간의 세계화 물결 하에서 정권을 주고 받으며 기존 체제에 편승했던 세력들. 대부분의 유럽 정당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조차도 지난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 이후에는 자기 재편이 불가피해져서 합종연횡이 난무했다. 프랑스의 마크롱이 주도하고 있는 조화당 (ensemble)도 원래 프랑스와 올랑드 전 대통령의 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다. 스페인의 인민당이나 죠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당은 사회당의 후신인 민주당,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의 힘 등 여러 정당들에서 이탈한 잡다한 세력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독자적 노선의 위축과 세계화로 인한 혜택보다는 폐해가 더 커지는 것이 명확해져 더 이상 기존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에는 유럽의 인민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지난 4일 투표했던 영국의 인민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것을 얻지 못했다. 7일 투표한 프랑스의 인민들은, 그들이 투표했던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패배했다. 아무도 승자는 없었다. 선거에서 이긴 ‘의원’들은 존재하지만, 선거에서 승리한 인민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분적으로는 대의제 제도 자체의 문제 때문에,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의지 를 담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민주주의는 이미 균열이 난 글로벌 자본주의 동학 하에서 유럽의 지 위가 흔들리는 것을 ‘인구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지 ‘피지배 인간들’(인민들) 만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 지배자들도 패배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제도 자체도 패배했다는 것을 드러 냈다. 그리고 그것을 인민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이미 더 이상 문제가 되지조차도 않을 것이다. (참조: 유럽의 변신(Metamorphosis): “중앙은 지키고 있다”(Center Holds) )
Neo-Liberalism on Steroid(뽕 맞은 신자유주의)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까지의 신자유주의는 ‘외부’로 향해 있었다. 초과이윤은 외부에서 나온다. 이것이 지난 20세기 후반의 제국주의의 ‘관대함’의 원천이었다. 식민지에서의 ‘성장’은 곧 제국의 과실이 다. 2008년의 금융위기, 그리고 2011년의 유로존 부채 위기는 이 ‘팽창’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시장’의 고백이었다.
그래서 제국의 자본은 한편으로는 이제는 부쩍 커버린 외부의 경쟁자들을 배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단된 세계화로 인한 이윤의 감소를 ‘신산업’(그것이 대체에너지든, AI든) 같은 특별 잉여가치의 수취에 서 찾으면서도 동시에 내부적인 착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정작 globalization은 중단되었는데(이른바 공급 충격; supply shock), 그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는 더 강화되고 심화되며 이 ‘이념’과 ‘가치’는 그나마 남은 제국의 신민들을 바닥까지 털어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국채 시장은 ‘긴축’을 요구한다. 영국 국채를 소유한 투자자들은 더 많은 국채가 시장에 나와 기존 국채의 가격을 떨어뜨리기를 원치 않는다. 만일 노동당이 확대 재정 정책 을 취한다면 국채 시장은 즉각 보복에 나설 것이다(이를 bond vigilante라고 부른다. 국채 자경단이다). 따라서 스타머의 노동당 정권이 쓸 수 있는 재원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 정도가 아니라, 과거보다 GDP 대비로는 재정 적자를 더 감축시켜야만 한다. 그러면 완만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상태가 유도 되는데, 지난 80년대 이후의 상품 디플레이션과는 달리 이번 디플레이션은 부채 감소의 결과이기 때문 에 성장률은 낮아지고 낮은 물가 하에서도 임금은 더욱 낮아지며, 전면적인 빈곤의 문제가 대두된다.
노동당은 이를 어떻게 돌파할까? 국채시장을 무시하고 재정 확대책을 쓴다? 이건 역사적 사례가 있다. 그렇게 했다가 지난 70년대 후반 노동당 정권이 무너지고 영국은 IMF 구제금융을 맞았다. 그 뒤에 들어선 것이 대처 정권이었다.
결국 노동당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이든 간에, 시장이 원하는 바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노동당의 눈에는 ‘국가와 인민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다른 정책도 국가 부도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사전 정비 작업은 이미 2019년부터 이뤄졌다. 노동당은 지난 2019년 총선 패배 빌미와 반 유대주의라는 누명을 씌워 당시 노동당 대표였던 제레미 코르빈을 축출했다(그는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영국의 한 억만장자는 “노동당은 스스로 좌파를 모두 축출했다”면서 “노동당을 지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노동당이 갈 수 있는 길은 뻔하다 : 인민의 빈곤화를 가속시킬 ‘긴축’과 지난 2차 대전 이후의 복지국가 체제의 완전한 해체, 그리고 이른바 민관 협력(public-private governance)라는 이름의 일방적인 민영화 혹은 국가 털어먹기다.
이미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인 BlackRock의 CEO인 래리 핑크는 선거 막바지에 노동당과의 ‘민관 협력’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의 일부 좌파들은 노동당(labor party)은 ‘자본당’(capital party)으로 차라리 개명하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참조. “부자들을 위한 노동당”이 되겠다).
영국 노동당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과업은 국영의료보험(NHS; National Health Service- 한국의 의료보험공단에 해당)의 ‘재편’이 될 것이다. 스타머 총리가 임명한 보건부 장관 웨스 스트리팅의 취임 일성은 “NHS는 파산했다”는 것이었다.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90년 대 후반의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권 이래 NHS는 지난 30여년간 지속적인 투자 부족, 관리 부실로 인해 거의 형해화되었 다. 그런데 지난 30년간의 고의적 파괴로 만신창이가 된 NHS를 긴축 하에서 재원도 없이 어떻게 ‘개혁’한다는 것인가?
스트리팅 장관은 지난 5월 “NHS는 단순한 병원 차원을 넘어서는 민간 섹터와 파트너쉽을 형성할 것” 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New Labor“(신노동)라고 불리는 스타머의 노동당 정권은 이 점에서 ’새롭다‘.
과거의 민영화가 단순히 국가 및 공공 기능의 일부를 민간에게 넘겨 영리화하는 것이었다면, New Labor는 블레어 정권 당시 탄생한 ’거버넌스‘를 되살려내서 강화한다. 민간 자본의 관점에서 민영화의 난점 중의 하나는, 민영화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부실화하거나 혹은 이후의 정치적 압력으로 말미암아 이윤율이 감소하는 위험이 있었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는 이같은 ’한계‘를 돌파한다. 손실은 국가가 지고 자본을 투하하는 투자자들은 이윤만 챙긴다. 그리고 의료사업은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며, 영속적인 사업이다. 게다가 미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번 의료 민영화가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은 영국의 예를 뒤따를 것이다. 한국의 의사 증원 문제도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의료’민영화‘로 나아가기 위한 밑밥깔기에 불과할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과연 ‘압승’했을까?
실은 아마도, 스타머는 그조차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노동당은 정치적 지지를 받아 서 총선에서 승리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신 중해질 필요가 있다. 득표율을 보면,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의 득표율(33.7%)은 지난 2019년 총선에서 ’극좌파‘ 제레미 코르빈이 노동당 대표로 있던 지난 2019년 총선에 비해 고작 1.7% 증가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노동당은 고작 1/3의 득표율로 전체 의석의 60%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럼 노동당은 어떻 게 승리했을까? 단선 순수지역구제인 영국 선거구제 하에서는 단순 다수 득표자가 선출된다. 참패한 보수당은 2019년 총선의 43.6% 득표율에 비해 무려 19.9% 감소한 23.7%에 머물렀다. 제3당인 자유민주당은 의석수는 60여석이 증가했지만 득표율은 고작 0.6% 늘어나는데 그쳤다.
그렇다면 나머지 표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강경 브렉시트 주장자인 닐 파라지의 Reform UK가 의석은 고작 5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득표율은 무려 14%에 달했다. 결국 보수당과 Reform UK의 득표율을 합치면 38%로 노동당보다도 높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수당 계열의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실망해 보수당보다 더 선명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Reform UK에 투표한 결과가, 그래서 보수 분열이 일어난 결과가 영국 총선이다. 즉 노동당이 잘해서, 또는 노동당에 기대해서, 심지어는 기존 정권인 보수당에 실망했는데 그 반사행동으로 노동당에 투표해서조차도 아니다. 따라서 ’제도‘(단선 순수지역구제)의 결과의 승리이지, 인민의 의지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영국 대의제는 원래 이랬다.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한데에는 스콧틀랜드에서 스콧틀랜드독립당(SNP)이 노동당 표를 분산시켰기 때문이다(당시 SNP는 4%의 득표율로 11%의 의석을 얻었다).
그리고 보수당과 Reform UK는 이념상으로는 사실상 한 몸이나 다름없다.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정책이라기보다는 출신(기득권과 인민주의)과 정책을 수행하는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만일 보수당과 Reform UK 사이에 연합이 이뤄진다면, 노동당은 어느 때라도 무너질 수 있다. 스타머 정권이 임기 5 년을 다 채울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는 아래로부터의 압력(확대 재정과 부자 증세, 사회개혁)과 위로부터의 압력(긴축 및 이민 억제, 민영화) 사이에 끼어 갈짓자 행보를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래로의 갈지자는 속임수 동작일 뿐이다.
들라크루아의 혁명화
프랑스 총선 결과
프랑스의 사정은 좀 더 곤란하다. 사실을 정확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1차 투표에서 마리 르펭의 민족단결당(RN)이 압도했다는 것은 가짜 뉴스이며, 결국은 2차 투표에서 급조한 좌파 선거연합인 신인민전선(NPF)이 승리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그나마 마크롱의 승부수가 부분적으로는 통했다는 평가도 엉터리다. 프랑스에서는 모두가 패했으며, 시계 제로다.
우선 1차 투표에서 RN은 33.2%를 득표했다. 2위는 NPF의 28.2%였고 3위는 Ensemble의 21.28%였다. 근데 이번 총선이 모두에게 망한 결과인 것은 2차 투표의 득표율 때문이다.
”극우는 안된다“는 프랑스 정치전통과 가치에 의기투합하여 선거연합을 한 NPF와 Ensemble의 득표율을 보면 NPF는 25.8%로 오히려 1차 투표 때보다 감소했다. 반면 Ensemble은 24.5%로 늘었다. 즉 2차 결선 투표에서는 ’선거연합‘이라는 명분 하에 일방적으로 Ensemble만 덕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당초 여론조사와는 달리 Ensemble이 그나마 선전한 이유다.
이 결과를 보면 마치 마크롱의 승부수가 어느 정도 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정치 문화를 간과한 분석이다. 현재의 투표 결과 (NPF 180석, Ensemble 159석, RN 142석)로는 내각을 구성하지 못한다. 선거연합처럼 NPF와 Ensemble이 연정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 이도 불가능하다. 이미 선거 과정에서 마크롱과 현 총리 아딸은 NPF, 특히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극단주의자 ‘로 규정하면서 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정책상으로 보면 마크롱대통령의 앙상블과 멜랑숑을 총리로 내세울 NPF 사이의 연정은 불가능 하다. 멜랑숑은 마크롱의 연금개혁을 되돌리고 소득세를 대폭 인상하며 재정확대책과 노동시간을 단축하 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 중에 어떤 것도 마크롱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그는 로스차일드 은행 출신이다), 설사 마크롱이 받아들이고 싶더라도 국채 시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미 프랑스는 지난 5월부터 국채 위기를 겪고 있으며, 재무장관은 선거 결과에 따라 전면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프랑스의 GDP 대비 국채 비율은 100%에 달한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재정 축소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폭은 여전히 GDP 대비 5%를 넘으며 그나마 아프리카와 태평양의 식민지 국가들이 더 이상 프랑스 국채를 보유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크롱과 르펭의 연정(Ensemble+RN)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르펭의 경우 경제정책이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급진적인 반EU 정책이 문제다. 게다가 이미 ’극단주의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손을 잡을 명분이 없다. 남은 유일한 길은 NPF에서 이른바 ’온건파‘(사회당 및 그린)들을 끌어내고 공화당(64석)과 연정을 꾸리는 것이다. 이 때는 NPF는 붕괴할 것이다. 즉 인민연합전술은 실패한다.
대신에 이 경우에 사회당으로서도 위험부담이 상당하다. 게다가 사회당이 NPF에서 탈퇴하여 마크롱과 연정을 꾸리고 긴축정책을 실시한다면 대중의 반발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게다가 간신히 과반수를 넘기 때문에 언제라도 연정이 붕괴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정치적 차이는 길 위에서 해소된다
결국 요약하면, 마크롱은 승부수를 던졌고, 자신의 생각과는 약간 다르게 ’신인민전선‘이 꾸려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중간에서 스윙 파워를 과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섰지만, 현재 구도 안에서 정작 스윙 파워를 써먹을 수 있는 데가 별로 없다. 그리고 만일 마크롱이 이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경우에는, 프랑스 정국은 얼어붙고, 정치는 의사당이 아닌 길 위로 나올 것이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의 정치사이다. 프랑스의 역사는 해소불가능한 정치적 차이는 의회가 아니라 길 위에서 해소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정을 구성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설사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크롱의 목숨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어느 경로를 택하든,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가장 큰 패배는 멜랑숑이라고 할 수 있다. 멜랑숑의 NPF는 2차 투표에서 지난 2022년 총선 때보다도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것이 패배다. 언론도 식자들도 신인민전선이 1위를 한 것만으로 ’승리‘라고 하지만, 정작 득표율, 즉 유권자의 지지도는 왜 보지 않을까? 민주주의라면서 말이다. 인민의 의지는 당선이 아니라 지지도에서 드러나는 것인데 말이다. 이도 의문이다. 2차투표에서 소위 ’좌파‘는. 명분상으로는 지난 1970년대 이후 프랑스 제도정치권을 규정해 온 이른바 방역선(sanitary cordon; 극우 RN을 단합하여 배제하는 것)에 충실한 전술을 택하고 성공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 자체는 인민전선전술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으며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이런 결과는 그들이 자신을 지지한 인민들의 계급 적 성격을 배반한 탓이기도 하다.
표. 소득별 각 정당 지지층(france election social class)
검은색은 르펭의 RN, 청색은 공화당, 황색은 마크롱의 Ensemble, 적색은 멜랑숑의 NPF.
출처 : <Financial Times>
르펭의 RN은 압도적으로 빈민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또한 노동자 계급의 지지율도 멜랑숑의 NPF보다도 약간 높다. 소득이 높을수록 RN에 대한 지지율은 하락하는데, 이는 RN이 전형적인 ’서민 정당‘혹은 ’인민주의‘(populism) 정당임을 보여준다. NPF(신인민전선)는 노동자계급의 지지율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소득 여부와 무관하게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NPF가 사회당 등 기존 정당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마크롱의 Ensemble과 공화당은 부유층의 정당이다.
그런 점에서 멜랑숑은 충분히 계급적이지 않았다. 볼셰비키 혁명을 두고 ”절대적 적대“라고 칼 슈미트가 규정한 것처럼,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계급투쟁을 ’게임‘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래서 레닌은 1차 세계대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쨔르 니콜라이 2세)를 무너뜨렸다. 서구의 ’민주적 자본가들‘이 두려워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멜랑숑은 극우 방역선이라는 논리를 따름으로써 정치를 게임으로 만들었으며, 마크롱을 내세운 자본가의 정당(Ensemble)에게 스스로 양보했다. 하지만 이런 게임조차 자본가들이 훨씬 잘 하며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다음 선거에서는 인민전선에 동원되었던 ’인민‘들은 멜랑숑의 인민전선이 아니라 르펭의 ’민족전선‘(이게 RN의 원래 명칭이었다)에 표를 던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거다. 이번에는 웃고 다음에는 울고, 이번에는 연합해서 승리하고 다음에는 분열해서 패배하고. 하지만 결과는 계속 자본가들이 꽃놀이패를 쥔 게임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갑작스러운 의회 선거를 결정한 것은 7월 9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을 겨냥한 내부 의견 정비의 기회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이번 나토 정상회담에서 (예컨대 우크라이나 관련 중요한 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새롭게 들어설 정권(트럼프)에 대비한 유럽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둘 다 그다지 탐탁치 않은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영국 노동당이든 프랑스의 마크롱이든 선거의 결과에 따른 권력의 재편은 잠정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따라서 다시 19세기의 복잡다단한, 권모술수가 넘치는 대서양 양안의 엘리트들 사이의 궁정정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시계는 쉬지 않고 째각거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집권 엘리트들은 다가오는 위기의 냄새를 맡고 정권을 떠넘겼다. 또는 최소한 자신들 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는 자리로 퇴각했다. 떠넘겨진 폭탄을 들어올리며 승리를 외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며 끝이 좋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 노동계급정치가 자신의 정치를 제대로 구사하지 않는 한 선거는 스윙 게임이고, 유권자는 한 순간 ’주권‘의 행사자로 만족하며 체제를 견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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