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유럽의회 선거 결과 분석

유럽의회 선거 결과 분석

유럽의 변신(metamorphosis): “중앙은 지키고 있다”(center holds)

2024년 6월 20일 / 글로벌 리포트 Global Report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EU 선거, 프랑스 신용등급, 극우정당, 이민자 문제, 우크라이나전쟁, 유럽통합

EU의 어제와 같은 내일

지난 6월 10일 EU(유럽연합) 의회 선거가 끝난 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예상과는 달리 “중앙은 지키고 있다”(center holds)고 말했다. 표면적인 선거 결과로 본다면, 그의 발언은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지역별로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지난 2020년 EU 선거 결과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EU 의회 선거 결과. 출처: 유럽 의회EU 의회 선거 결과. 출처: 유럽 의회

2019년 선거에서 다수당이었던 중도우파 계열의 EPP(European People’s Party group)은 이번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0.2% 포인트 높아진 21.2%를 기록해 3석이 늘어난 190석을 차지했으며, 기존의 최대 정당이었던 사민당 계열의 S&D(Progressive Alliance of Socialists and Democrats)는 19.2%의 득표율을 기록, 이전보다 0.7% 포인트 증가했지만 의석수는 12석이 감소한 136석을 기록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Renew(Renew Europe)에서 발생했다. 프랑스의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중도 자유주의 분파인 Renew는 득표율이 2.5% 포인트 감소했고 의석수도 17석이 감소한 80석에 그쳤다. 또 녹색당 중심의 Green/EFA도 득표율은 2.9% 감소했으며 의석수도 15석이 감소하여 52석에 머물렀다. 반면 보수 정당 계열인 ECR(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는 득표율은 4.0% 늘어난 12.2%, 의석수는 14석이 늘어난 76석을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비록 의석수의 변동은 다소간 존재했지만, 유럽을 대표하는 기존 주류 정당 계열(보수당과 사민당) 연합이 전체의 80%를 넘으며 의석수에서도 큰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녹색당 및 대륙식 제3의 길을 지향했던 신유럽 운동 계열 정당들의 후퇴는 명확해진다. 

따라서 앞서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평가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은 아니다. 요란했던 언론의 해석들과 달리, 선거 과정과 결과는 ‘그저 그랬다’. 투표율(50.6%)도 2019년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어디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열광적인 정당도 없었다. Globalist들 중에서 프로그레시브 분파를 대표하는 씽크탱크인 페터슨경제연구소(PIE)도 ‘(기존 구도의) 연속(continuity)’라고 평가를 내렸다.

게다가 유럽 의회는 ‘권력’이 있는 곳조차도 아니다. EU의 핵심 사안들은 유로그룹회의(EU 회원국 수뇌들의 정상회담)에서 결정된다. 핵심 산하 기구인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독립적인 기구들이며 다른 산하 기구들은 로비스트들로 득실거리지만 의회의 감독권은 거의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유럽 의회는 입법권조차도 없다. 고작해야 집행위에서 올라온 법률안에 대해 찬반 투표만 할 뿐이다.

고로 허울뿐인 권력이며, 따라서 천지개벽을 해서 어느 정파가 유럽 의회를 완전 장악한다고 해서 EU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인민들의 의지’가 관철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 EU(유럽연합)였다. 유권자들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현실 변화를 기대하는 ‘진지한’ 투표행위도 없다. EU 선거에선 권력도 투표도 그저 상징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번 선거에 대해 그렇게 호들갑이었을까? 그리고 프랑스의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은 불과 총선이 치뤄진지 2년 만에 전격적인 의회 해산과 총선 실시라는 ‘승부수’를 던졌을까? 

프랑스의 사정 – 신용불량자의 몸부림 

지난해 12월 프랑스 정가를 뒤흔든 것은 이민법안과 관련된 내각 붕괴 사건이었다. 지난 2022년 선거에서 마크롱의 르네상스당은 과반수를 넘지 못해 소수파 내각을 구성했다. 지난해 12월 이민자 규제 법안을 둘러싸고 마크롱 대통령이 정부안과는 달리, 르펭 민족단결당 당수의 견해가 대폭 반영된 이민법안을 추진하여 의회를 통과시키자 이에 반발한 각료들이 사임했고, 결국 총리 해임으로 이어졌다. 이미 이 사건을 계기로 마크롱의 권력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프랑스 정국은 격동이 불가피했다.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열린 '유럽의 미래' 주제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 출처 : Getty Images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열린 ‘유럽의 미래’ 주제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 출처 : Getty Images

여기에는 단지 내부 정치의 문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프랑스의 구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사헬 지역 국가들이 잇달아 반프랑스 기치를 내걸고 러시아와 협력 관계를 강화했으며 결국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에서 프랑스군이 철수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북아프리카에서의 프랑스의 영향력 약화는 단지 ‘외교적’ 후퇴만은 아니다. 프랑스나 다른 유럽 국가들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까지도 불사하는 것은, 과거 식민지 독립 시절 강요했던 ‘경제, 금융적 이해 관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의 과거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은 프랑스 국채를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그리고 그 국채는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관하고 있다). 만일 이들 국가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나는 원자재를 ‘제 값’을 받고 프랑스에 팔고 프랑스 국채 매입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프랑스는 단지 ‘산업상의 손실’만이 아니라, 금융상의 위기를 맞게 된다. 최근의 뉴칼레도니아에서 프랑스가 군대를 동원하여 식민지를 수호하려는 것도 결국은 ‘돈’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 때문에, 의회가 해산되고 마치 ‘민주주의’가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무대가 열렸다 (참조, “가든과 정글”). 

프랑스 정치는 전세계 주요 언론 어디에나 나온다. 그러나 프랑스 국채 시장 사정은 극히 일부의 경제 언론에서만 다룰 뿐이다. EU 선거 직전인 지난 5월 31일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프랑스(국채)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AA에서 AA-로 하향했다. 등급 하향의 이유가 중요하다; “S&P는 예상보다 큰 재정 적자와 정치적 파편화가 등급 하향의 원인이라고 밝혔다”(<Politico.EU>). 이 때문에 프랑스 국채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국채 금리가 급등(국채 가격 하락)했고 유럽 증시가 일시적으로 급락하기도 했다.

국채시장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 사례를 보면, 일국의 발전 노선을 외부로부터 강제하는데 있어서는 전쟁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비군사적 수단’(이른바 ‘제재’ sanction)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아파르트헤이트로 악명높은 남아공의 백인 정권이 붕괴한 것은 내부에서 ANC(만델라로 대표되는 남아공 흑인 저항운동 세력)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탓도 아니었고, 외부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인종’ 문제를 둘러싼 일반적인 ‘인권적 제재’에 대해서 남아공 정부는 자체적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심지어는 이를 외부에(이집트와 이스라엘)에 팔아먹으려고까지 하면서 정면 도전했다.

사실 남아공 백인정권이 붕괴한 진짜 이유는 국제 금융 시장에서 돈줄이 완전히 막혀서 국채를 판매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비공식적’인 국제 금융자본가 카르텔이 남아공의 국채 시장을 무너뜨리자 백인 정권은 항복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나 1998년 러시아 디폴트의 진정한 원인은 해당 국가들의 국채 시장 붕괴 때문이었다. 이른바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1976년 영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때, 영국 재무부와 영란은행 관료들은 당시 노동당 정권에게 재무제표를 속였다. 영국 재무부에는 실은 아직도 현금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은 국고가 텅 비었다고 보고했고, 노동당 정권은 IMF에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도 이제 그 경고장을 받은 것이다. S&P의 등급 하향 이유 중에서 재정적자 확대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적 파편화”(political fragmentation)? 신용평가사는 ‘정치’도 평가한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고, 늘 그래왔다. 단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면 프랑스가 추가적인 등급 하향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정치적 파편화’의 반대말을 찾으면 된다; 바로 정치적 단결.

정치적으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당이 안정적인 과반수를 획득하면 된다. 기존의 소수파 내각으로는 이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 단지 그 시점을 유럽 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득세했어요’라는 담론이 팽배했을 때를 틈타서 ‘프랑스도 그래요‘라고 편승하면 될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이건 선례가 있다. 1980년대 미테랑 사회당 정권하에서 공화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자 공화당이 주축이 된 내각을 구성했고, 이를 이른바 ’(좌우)동거정부(cohabitation)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은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 기회를 틈타서 권력의 일부를 ‘양도’하려고 하는 중이다. 어차피 자신의 당(르네상스)이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그렇다고 현재의 소수파 정권을 지속해 나간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오히려 멜랑숑의 좌파 정당(LFI,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지난 2022년 총선에서 최대 승리자는 멜랑숑의 LFI였다. 심지어 1차 투표 득표율은 마크롱의 르네상스당보다도 높았다).

그럴 바에야 적어도 경제적으로 흥정할 수 있는 우파 정당인 르펭의 민족단결당이 차라리 파트너로서는 낫다. 게다가 지금 당장으로서는 지난 봄의 연금 개혁 과정과 가자 위기를 둘러싸고 멜랑숑은 공격받을 건수가 여럿 있다. 그가 매우 불투명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언뜻 보기에, 핑계는 여러가지로 갖다댈 수 있다. ‘포풀리즘’의 폐해로 치부할 수도 있고, 마크롱의 ‘실책’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마크롱을 권력자로 만든 배후의 세력들(마크롱은 로스차일드 은행 출신이며, 그의 출세 과정은 수수께끼 투성이다)에게는 민족단결당은 차선의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르펭은 이미 기존의 강경 민족주의적 노선을 상당 부분 수정했다. 이민자 문제나 사회적 이슈들을 제외하고는 과거 공화당이나 현재의 마크롱의 정책 노선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마크롱의 ‘총선 승부수’에 프랑스 정치권은 들썩였다. 공화당은 민족단결당과 연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사회당도 멜랑숑의 LFI와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 지형이 급격히 재편될 것은 명약관화하지만, 실은 그것은 과거 드골 정권 당시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에 불과하다. 드골도 식민지를 상실하자(54-62년간 150만명의 사망자를 낸 알제리 독립전쟁과 1957년 비엔반푸 전투에서 호치민의 민족해방군에 패배했다), 드골 헌법(한국 유신헌법의 모델이다)을 선포하고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이제 프랑스에는 누가 다음 드골이 될 것인가를 간택하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사실 이건 아주 초보적인 정치 기술이다. 이걸 보고 ’승부수‘라느니, 유럽의 격변이라느니 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실은 더 신기하다. 심지어는 사마천의 <사기>나 사마광의 <자치통감>,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이 정도 정치적 술수는 널렸다.  

누가 유럽의 미래를 묻거든 이탈리아를 보라

이번 유럽 의회 선거에서 이른바 ’극우파가 득세했어요‘라는 주장에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의 죠르지아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형제당‘(Fd’I)의 약진이다(다른 하나는 독일의 독일대안당 AfD). 이탈리아형제당이 ‘극우’냐 하는 문제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먼저 왜 이들이 대승을 거두었느냐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요인으로 간주되는 것은 이탈리아의 낮은 투표율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탈리아의 투표율은 48%에 그쳤다(독일은 65%). 이탈리아에서는 ‘정치적 무력감’이 팽배해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모른다’와 ‘관심없다’가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인민들이 살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난 10여년 동안(실은 2차 대전 이후 계속) 수십개의 정당들이 떴다 졌지만, 어느 것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삶의 수준은 악화되어 왔다.

심지어는 1인당 GDP가 지난 2007년 수준에도 못미친다. EU에 가입하고 유로화를 도입한 초기에는 혜택이 있었지만, 그러나 지난 15년 이상 경제는 정체 상태인 것이다 (이탈리아판 ‘잃어버린 20년’이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의 1인당 GDP 출처: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이탈리아의 1인당 GDP 출처: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수많은 정당들이 명멸하는 과정 속에서 공통된 특징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정당은 바로 가장 최근에 결성된 정당, 즉 신생 정당이라는 점이다. 한때 ‘극우파’라고 지칭되던 ‘5성운동’이 그랬고, 그보다 앞서 사회당을 해체한 ‘민주당’이 그 역사를 되풀이했으며,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의 힘’이 그랬고, 지금은 멜로니의 ‘이탈리아 형제당’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낡은 역사를 마치 처음인 것처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현재의 이탈리아 정치 지형에서는 ‘야당’이 매우 취약하다. 왜냐하면 이미 바닥이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투표율은 낮은데 대신할 정당도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열광한 정치병자들만이 투표하고, ‘신상’과도 같은 신생정당들이 승리한다. 그래서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형제당‘(Fd’I)의 EU의회 선거 승리는 ‘이념’ 때문만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정치적 구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일은 이번 선거에서 어땠는가.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의 경우, 현재의 신호등 연정(사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 연정)이 가능했던 것은 메르켈 전 총리가 은퇴하면서 발생한 기민/기사당 연합 내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담 투즈 콜롬비아대 교수는 EU 의회 선거와 관련하여 사민당의 이념과 철학의 부재를 논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은 이미 지난 선거 때에도 마찬가지였으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사민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미 상실해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분석은 구태의연하다.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독일의 특징은 사민당의 일부 지지층이 이른바 ‘극좌파’로 꼽히는 BSW(사라 바겐크네흐트 동맹)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기존의 좌파 블록인 Die Linke까지 합치면 좌파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 9%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녹색당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녹색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는 최고 25%의 지지율을 기록하여 연정 주축인 사민당보다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지만, 그러나 22년 하반기부터 전쟁의 실제적인 여파가 미치면서(에너지 가격 폭등)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당(war party)로서, 그리고 아이덴티티 폴릭틱스에 충실한 LGBTQ 정당으로서, 그리고 급진적 대체에너지 전환 정당으로서 아젠다를 설정하는데는 오히려 사민당보다도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의 패퇴로 이후 국내 정치에서의 영향력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 (참조, “독일 영년”).

이탈리아 밀라노 건물 벽에 그려진 죠르지아 멜로니 총리 벽화. 성모마리아상으로  묘사되었다. 출처 : <Altri Mondi Gazzetta srcset=” width=”697″ height=”472″>

이탈리아 밀라노 건물 벽에 그려진 죠르지아 멜로니 총리 벽화. 성모마리아상으로  묘사되었다. 출처 : <Altri Mondi Gazzetta>

이탈리아의 멜로니로 다시 돌아와 본다면, 왜 멜로니 총리가 인기가 있는지 설명하기는 실상 그다지 용이하지 않다. 왜냐하면, 멜로니 총리는 선거 이전의 공약들을 대부분 파기했는데다가(러시아와의 우호 관계 지속 공약 및 중국의 일대일로 지속 공약 등을 파기했다), 실제로 구체적인 정책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이민 정책에 있어서는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했고, 이것이 대중적 지지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알바니아로 보내 수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는데(알바니안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이것이 ‘참신한’ 정책으로 꽤 인기를 끌었다. 

이민 정책을 제외한 다른 정책들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할 것 같지 않은 ‘신자유주의’의 확대 강화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멜로니 총리는 단지 ‘민영화’에 머물지 않고 아예 적극적으로 국영기업들을 해외에 매각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국영통신사인 Telecom Italiato의 네트웍을 사모펀드인 KKR에 매각 추진 중이며, 철도회사 국영에너지기업 우체국 등을 민영화 및 해외 매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맨체스터 대학의 데이빗 모나코 교수는 “이탈리아에서의 반기득권적 극우 세력의 발흥 -새로운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화?”라는 논문에서 “반이민 정책과 국수주의적 복지의 혼합 과정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진전시킨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념적 친연성으로 따진다면 독일의 AfD는 이탈리아의 멜로니나 프랑스의 르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르펭 스스로도 AfD와의 연대는 거부했지만, 멜로니와는 동맹을 추구하고 있다. 멜로니는 마치 대중의 요구를 반영할 듯한 공약으로 출발했다가, 나라를 팔아먹는 노선으로 돌아섰다. 대신에 화끈하게 국수주의를 광고했다.

오는 7월 4일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시되는 영국의 노동당(제3의 길의 신버젼)이나, 그 직후 역시 승리가 유력한 프랑스의 민족단결당과의 공동정권일 프랑스의 미래도 이탈리아에서 멀지 않다. 유럽의 미래가 궁금하거든 이탈리아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럽연합(EU) 국기

유럽연합(EU) 국기

과거의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확대를 목표로 했다. 더 이상 세계화가 통하지 않는 세계, 즉 자본주의의 외형적 확대가 불가능한 세계에서는 이제 자신의 사지를 잘라내서 팔아먹는 내향적 신자유주의화, 말하자면 선진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의 강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영국에서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후임인 엘리자베스 트러스 총리가 실각한 것도 영국 국채시장에서의 반란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유럽 의회 선거가 보여주는 것은 우경화가 아니다. ‘중심’은 유지(center holds)되고 있지만(유럽 통합은 더 이상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중심은 자본의 압력 하에 굴복(center folds)하고 있다. 영어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center holds, but center folds.

소설가 카프카는 <변신>(metamorphosis)에서 징그러운 벌레로 변태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장례식을 끝내고 가족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썼다. 그런데, 유럽의 잠자는 이제 막 태어났으며,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징그러운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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