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노동계급은 자신의 법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

노동계급은 자신의 법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

2024년 6월 20일 / Review & Preview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헌법, 헌정주의, 뉴딜 제도(settlement),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노동입법, 법을 둘러싼 투쟁,
계급의 언어

1980년대 전두환 군부 정권 시절에 언론 칼럼의 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소크라테스를 원용해 “악법도 법이다”라는 주장을 담는 것이었다. 당시의 ‘법’(5공화국 헌법을 포함해서)이 법적 정당성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언론을 ‘기레기’라고 하거나 ‘애완견’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록 최근에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역사는 오래 되었다, 80년대 당시에는 ‘어용언론’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심한 욕일까. 누구는  지금은 ‘확신을 가진 기레기’이기에 ‘어용언론’이라고 불려질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근데 그 누가 누구냐면 필자가 미국 유학시절에 대학원 친구이자 미국 노총의 활동가였다. 미국 언론은 이미 어용도 못되는, 국가와 자본에 포섭되거나 스스로 그 일부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악법도 법’이라는 구절의 기원은 지금은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 학자의 주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80년대 ‘악법의 법’을 주장한 학자, 지식인들은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언명은 전부가 플라톤의 저서에 기록된 것이다)을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도 용감하게도 ‘날조’했고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소크라테스가 하지도 않은 말을 날조하여 악법을 줄줄이 만들고, 판결하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읖조리며 ‘준법’과 법치를 외쳤던 얼마전 한 시대의 모습이다. 하지만 과연 80년대, 그리고 민주화 이행이전의 한국 사회만일까?

소크라테스가 ‘시민적 의무’를 강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의 시민적 의무란, ‘시민으로서의 의무’라기보다는 ‘시민이 되기 위한 의무’였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 사형선고를 받고 독배를 받기 직전에 “이웃에게 빌린 닭 두마리를 갚아달라”고 했다는 부탁은 종종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인용되곤 하는데, 그 진정한 의미는 “나는 노예가 아닌 시민이다”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의 규범상 시민은 ‘자유로운 주체’였고 자유롭기 위해서는 노예가 아니어야 했다. 그리고 노예가 아니기 위해서는 부채가 없어야만 했다. 즉, 그리스에서는 부채가 있는 자는 시민이 아니었다. 따라서 닭이든 개든, 빌린 게 있으면 노예라고 비난받을 것이 분명했다(소크라테스의 죄목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 것’이었다). 그리스의 기준으로 본다면, 오늘날 한국 시민의 80%는 ‘노예’에 속한다. 그것도 스스로 노예가 되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자발적 노예다. 

“악법도 법”이라는 구절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은 없었지만 그리스에 그와 동일한 취지를 가진 생각들은 일찍부터 존재했다. 소크라테스보다 100 여 년 전의 인물이자 ‘개혁’의 시조인 솔론은 당시 아테네에서 빈부격차와 토지 독과점으로 시민들이 채무 노예가 되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심지어는 부모가 자녀를 팔아넘기는 상황이 벌어지며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계급내전’ 직전에 이르자 대대적인 개혁을 수행했다. 그는 토지 독과점은 그대로 놔두었지만, 전면적인 부채 탕감 정책을 수행했다. 이 때 부자들이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항의하자 솔론은 “그런 내전을 하겠다는 거냐”고 맞섰다. 내전으로 너 죽고 나 죽자 하기 싫으면 내가 만든 법을 지켜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악법도 법이다’의 원조는 솔론이었던 셈이다.  

솔론은 부자들이 추대한 통치자였다. 그리고 그는 계급간 내전을 회피하기 위한 ‘계급 타협’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부자들도 당연히 손해를 봤다. 그것은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당시 반발도 강력했다. 결국 이후에 솔론은 해외로 망명을 떠난다. 솔론의 과업을 이어받은 것은 솔론의 친척이자 추종자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였다. 그는 아테네의 가난한 시민들을 선동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세습 참주(행정 독재자)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법’은 솔론이 제정한 그대로를 따랐다. 그리고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참주제를 폐기하고 아테네는 진정한 민주정으로 전화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오늘날 우리가 ‘포풀리즘’(인민주의)라고 불리는 것의 시조이기도 하다. 솔론의 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독재라는 ‘비민주적’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일컫어지는 아테네의 교훈.  그 역사는 독재가 민주주의를 낳았고 길렀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역사는 그리스의 발전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솔론의 개혁으로 강력한 도시 공동체를 결성했던 아테네는 이후 그리스 전체의 패권도시국가(hegemon)가 되었으며 그로 인한 상업적 이익 및 전쟁을 통한 노예 공급으로 인한 풍요를 통해 ‘민주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즉 내부를 착취하지 않고 외부에서 수취한 잉여로 인해, 더 이상 자체 시민들을 노예화하지 않고서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외부의 수탈과 착취야말로 내부의 정치적경제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것은 그리스 시대에나 자본주의에서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반면 ‘닭 두마리’라는 씁쓸한 유언을 남기고 죽은 소크라테스 시절의 아테네는 이미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패해 몰락해 가는 중이었고 노예사회에 기초한 민주정의 유지가 위태로운 순간에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기록한 플라톤은 ‘인민 민주주의’에 격렬히 반대하는 엘리트주의자였고 동시에 근대 독재 이론의 선조로 꼽히며,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다(그런 점에서 근대 군국주의의 시조이기도 하다).   

솔론의 개혁의 역사는 후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근대 민주주의와 법 철학의 시조이자 리바이던을 쓴 토마스 홉스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홉스에 따르면 그 ‘합의’는 단지 말과 이성으로 행해지는 합의가 아니라, 전쟁의 결과 얻어진 승자와 패자(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불평등한 계약’이다. 이것이 법과 민주주의의 기원이다. 그래서 홉스는 법 이전의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적대 상태’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민주주의 시조인 장 자끄 루소는 이 명제를 다시 뒤집었다. 그는 인간들은 원시상태(제도 이전의 상태)하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법과 제도(이 경우는 프랑스 절대 왕정 하의 법과 제도)가 인간들을 불평등하고 사악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테제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루소는 인민의 의지가 평화로운 공존을 제시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래서 ‘만일 인민들이 집합적으로,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겠다고 한다면(즉 왕정 복귀) 어떻게 되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반면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긴 하지만, 그리스 철학과 역사에 정통했던 칼 마르크스(그는 그리스 자연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라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내전을 피하기 위한‘ 계급 타협으로서의 ’개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리스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것은 외부에서 착취가 가능할 때만 유지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그런 시기들조차도 그 최초의 개혁을 가능케했던 정치적 힘이 사라지면 그 개혁은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초기부터 ’정치적 해방‘(계급 타협으로서의 민주주의)이 진정한 해방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법에 대한 철학적 인식은 오늘날 운동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 단적으로 지난 6월 15일 미국 <New York Times>에 실린 스타벅스 노조 결성 활동가인 재즈 브리사크의 기고문은 최근의 미국 연방대법원의 ’반노동적 판결‘을 예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맺고 있다; “노동자의 힘은 전국노동관계위원회나 법원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운동이 정부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을만큼 강할 때만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한국은 이른바 ’민주화‘ 이후 놀라울 만큼 ’법‘을 둘러싸고 사회가 재편되고 있다. 고소와 고발은 폭주하며 법이 만능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를 규정했던 ’소송사회‘는 소송의 폭주를 경험중인 한국 사회에 대한 규정으로 더 적절해보인다. 그리고 이는 법의 언어가 정치적인 언어가 될 뿐 아니라, 투쟁의 언어까지 잠식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도 예외가 아니다. 노동쟁의는 결국 언제나 법정에서 끝나며, 법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투쟁은 법원 앞에 당도하여 법정에서 사회적 정치적인 올바름이 아니라 법리적인 정당성을 증명하여야 하고 투쟁하는 당사자는 원고가 되거나 피고가 된다. 그리고 법과 그 법을 구현하는 판결이 투쟁의 결과를 확정한다.
 
이같은 법의 범람 속에서 이제는 법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가 과제가 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같은 인식은 여전히 ’법‘의 내부에 머물고 있다. 사회적 요구가 제도나 정책을 넘어 법으로 입법되는 것이 최종적인 관문이 되었고, 투쟁의 힘이 법을 바꾸는 압력판이 되어서 법을 바꾼다면 그 자체가 최종적인 승리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또 법이 정당하면 노동이 승리할 것이라는 환상이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거나 증대하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법, 그리고 법을 수행하는 사법기관이 옳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적 인식은, 그러나 여전히 ’법‘ 내부에 머무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여전히 초보적이기도 하다. 민주화이행이후 한국 사회에서 노조운동은 자신의 이해를 계급적 정치적 언어로 만드는데 주저하는 반면, 자신의 요구를 법의 언어로 받아 쓰고 바꿔 쓰기에는 온 힘을 집중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향한 투쟁은 여전히 중요한 ’투쟁의 장소‘가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법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그것을 어떻게 노동의 투쟁과 연관시킬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과연 한국 노동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언어, 정치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의문이다.

아래 논문은 미국 노스웨스턴대 법대 교수인 케이트 안드리아스의 “Labor’s Constitutional Vision in the Face of Capital’s Attack”(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을 번역한 것이다. 안드리아스는 최근의 노동 운동의 성과들이 미국 헌법 해석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즉, 노동자 투쟁에서 관찰되는 법률적 성격들을 헌법적으로 어떻게 옮길 수 있는가를 분석한다. 저자의 보다 이론적인 분석은 올해 초 발표한 장문의 논문 “constitutuional clash: labor, capital and democracy’를 참조하기 바란다.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 (Labor’s Constitutional Vision in the Face of Capital’s Attack)

by 케이트 안드리아스(Kate Andrias)
Law and Political Economy Project, 2024년 5월 20일

번역: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원문: https://lpeproject.org/blog/labors-constitutional-vision-in-the-face-of-capitals-attack/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 (Labor’s Constitutional Vision in the Face of Capital’s Attack) by 케이트 안드리아스(Kate Andrias). 출처: Law and Political Economy Project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의 헌법적 비전 (Labor’s Constitutional Vision in the Face of Capital’s Attack) by 케이트 안드리아스(Kate Andrias). 출처: Law and Political Economy Project

올해 초 스페이스X는 대담하게도 100년 가까이 존재해 온 기관인 (미국) 전국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의 존재 자체가 위헌이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Space X와 이후 Space X의 주장을 반영한 Amazon, Trader Joe’s, Starbucks와 같은 다른 기업에 따르면 NLRB의 구조는 제 2조 권력 분립과 수정헌법 제7조의 배심원 재판권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Space X의 소송 이후에 미 상공회의소, 전국 제조업협회, 기타 우파 기업단체 및 싱크탱크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노동자 권리에 헌법적 도전을 제기하는 수많은 다른 사례들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그들은 수정헌법 제5조(* 재산권 및 자유권 보호 조항)가 노동조합 조직가들이 농장 노동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농장에 접근토록 허용하는 주 정부의 방침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 조항)는 정부가 기업에 근로자의 법적 권리를 알리는 포스터를 게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평등보호 조항은 도시가 임시직 근로자와 같은 특정 근로자 그룹에 대한 급여를 인상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상권 및 휴면 상거래 조항은 특정 주 내에서 운영되는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정당 근거 보호(*just cause protection; 강제 해고를 규제하는 법률)조항과 같은 기본 고용기준을 지역이 설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야와 기타 법률 분야 전반에 걸쳐서 미국 기업들은 노동권을 방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헌법 조항을 원용하고 있으며, 직장, 경제, 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의 힘 안에서 통제하려고 한다. 

왜 우리는 지금 이같은 주장들을 보게 되었을까? 이러한 주장은 거의 100년 전에 대법원에서 기각되었지만, 현재 기업들은 행정법 일반과 나아가 특히 노동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보수가 압도적인 다수인 현 대법원 앞에서 우호적인 청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파업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에게 걸린 부하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최근 발표한 논문(”constitutuional clash: labor, capital and democracy“)에서 주장했고 아래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은 단순히 노동정책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의 헌법적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은 우리 경제와 사회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비전, 즉 민주주의, 평등,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뿌리를 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사회로서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즉, 항상 의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학자들이 흔히 헌법 구성 또는 소헌법주의(small constitutionalism)라고 부르는 흐름에 참여하여 헌법 질서를 바꾸려고 한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20세기 초 투쟁을 연상시키는 노사간 헌법적 충돌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노동의 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는 진보적인 헌법적 정치경제학 주장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아지즈 라나(Aziz Rana), 조셉 피쉬킨(Joseph Fishkin), 윌리엄 포바스(William Forbath)와 같은 학자들이 쓴 훌륭한 역사서에서 탐구된 토론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법원의 역할과 헌정주의를 포함하여 추상적인 LPE (Law and Political Economy) 학술지의 논의를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노동의 현장 경험은 사법권의 우위를 약화시키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만 법원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거나 헌정주의를 포기하라는 주장에는 이견을 제기한다. 결국 노동의 헌법적 비전은 기업의 우익적 헌법뿐 아니라 뉴딜의 헌법적 타협에 대한 대안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노동의 헌법적 비전  

물론 노동은 단일체가 아니다. 그러나 더욱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정치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실질적이고 성장하는 노동자 운동과 그 동맹자들은 피켓 라인, 행정 기관, 입법부, 때로는 법정을 통해 표현되는 독특한 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의 헌법적 비전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요 활동 분야에서 나온다.  

첫째, 역사적인 조직화 및 파업 승리에서 스타벅스 바리스타부터 자동차 노동자, 헐리우드 작가부터 Uber 운전사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은 단결권, 교섭권, 파업권을 근본적으로 옹호하고 있으며, 이 권리들은 현행법 하에서는 충분히 보호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또한 노동자들이 직장에 들어갈 때 기본권을 모두 잃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직장이 권위주의적 통치의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노동계는 고용주가 근로자들에게 고용 조건으로 정치적 연설을 듣도록 강요하는 비공개 청중 모임을 금지하는 워싱턴 주 법안을 성공적으로 지지했다. 
코네티컷, 메인, 미네소타, 뉴욕, 오리건에서도 유사한 금지령이 제정되었다. 한편, 최근에는 법으로 금지된 파업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명의 교사가 파업에 참여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노동계는 표현과 결사의 자유, 헌법에 따른 자유 노동 보장 등 기본권 개념을 현장에서 재정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권리는 개인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이며 공적인 지배뿐만 아니라 사적 지배의 행사로부터도 보호한다.  

둘째, 노동자들은 현재 경제를 정의하는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살기 좋은 임금과 적절한 혜택, 기업 이익 분배의 평등성 강화, 사회 서비스 및 돌봄에 대한 권리에 기반한 요구들을 하고 있으며, 단체 교섭과 새로운 주 및 지방 법률을 통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노동계의 촉구에 따라 전국의 주와 지방에서는 심지어 공화당세가 강한 주에서도 최저 임금을 인상했으며 다양한 산업 분야의 노조 노동자들은 자신과 지역 사회 모두를 위해 상당한 폭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다. 이러한 이득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기본적이고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셋째, 노동자들은 역사적으로 미국 노동 시장을 특징지어 온 배제와 위계를 근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성과 유색 인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문(농업 및 가사 노동에서 임시직 또는 플랫폼 노동에 이르기까지)에서는 오랫동안 평등권 지위가 거부되고 있었다. 홈케어 노동자, 가사 노동자, 농장 노동자, 공연 노동자는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노동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보편적인 노동권을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은 누가 “우리 국민”(we the people)으로 간주되고 무엇이 법에 따라 동등한 보호로 간주되는지 재정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남북 전쟁 뒤 약속된 ‘재건’(Reconstruction)이 이뤄지도록 입법자들에게 비자유 노동 시스템을 근절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정책 결정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경제 영역을 더 큰 민주적 통제에 종속시키는 보다 민주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을 위해 싸우고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패스트푸드 근로자와 미네소타의 요양원 근로자는 고용주와 함께 산업 전반에 걸쳐 임금과 근로 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새로운 행정 구조를 제정했다. 간단히 말해서, 노동계는 시장의 힘을 민주적 통제에 종속시키면서 정부의 권한, 의무, 참여 구조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동은 주로 법원 외부, 즉 입법부, 기관, 공공 영역에서 비전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때로는 명시적인 헌법적 용어로 자신의 주장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일들은 그다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들에는 중요한 헌법적 차원들이 존재한다. 이같은 노력들은 종합적으로는 거버넌스와 권리(정부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이러한 공권력의 기초와 제약을 도덕적 사고를 지향하도록 연계시킬 것이다.

뉴딜 제도(settlement)의 해체

노동의 헌법적 비전은 우파 성향의 대법원이 채택한 기업이 해석하는 헌법뿐만 아니라 뉴딜 정책 이후 도달한 헌법적 합의와도 대비된다는 점은 중요하다. 특히 대법원의 현재 및 최근 판사들에 의해 수십년 동안 발전되고 정교화된 헌법적 체제와 대비된다. 

경제 입법에 관한 한, 뉴딜 합의(agreement)는 처음부터 광범위한 의회 권한에 대한 약속과 사법부에서 정치 부문에 대한 존중을 수용했었다. 또한 자유에 대한 로크너 시대(Lochner era; 1897년에서 1937년까지의 연방대법원의 경제자유 우선주의)의 형식주의적 접근 방식을 거부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렌퀴스트 법원의 등장으로 1970년대 초 뉴딜 타결이 축소되기 전에도 법원은 오랫동안 미국 헌법의 특징이었던 고전적 자유주의 헌법 교리를 흔들지는 않았다. 특히 진보, 노동, 좌파 뉴딜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뉴딜 타결은 전통적인 계약과 재산권을 집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국가가 개인이 누리는 자연권을 축소한다는 의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게다가, 뉴딜 이후의 헌법 질서는 계속해서 사적 권력의 존재와 운영을 헌법의 핵심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간주했으며, 보다 일반적으로는 권력 관계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다. 또한 거의 개인의 권리에만 초점을 맞춰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권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했고, 경제를 공유된 민주적 통제에 맡기려는 노력을 정당한 절차와 권력분립에 위반되는 것으로 거부했다. 1970년대에는 평등에 대한 반카스트 또는 반종속적 접근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경제적 권리에 대한 개념도 단호히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극단적인 사법 우위  시스템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다.  

위에서 설명한 노동의 비전은 대조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한다. 의도적인 국가 개입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는 보다 사회민주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수용한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시장 세력에 대해 합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즉 진보적인 사회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희망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사적 권력이 기본적인 헌법 가치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민주주의와 언론 및 결사의 자유 원칙을 직장과 경제로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노동의 헌법적 비전은 물질적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정치적 자유의 필수 전제조건이라고 본다. 평등과 자유노동 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종속과 배제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사법심사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헌법 해석의 유일한 권한을 대법원에 부여하지 않고 대신 입법적, 행정적, 대중적 입헌주의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한다.

노동계의 노력은 희망의 이유를 제공한다. 물론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 조직화 및 파업 활동의 증가, 기록적인 수준의 노동자에 대한 대중의 지지, 지방, 주, 연방 행정 차원의 정책 성공에도 불구하고 노동계는 새로운 에너지를 주요 조직적 승리로 전환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연방 입법 차원에서는 경제 또는 사회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개혁은 커녕 노동법 개혁도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의 노력은 헌법질서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하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중요한 일이 된다. 지지하는 법원의 과반수나 의회의 유효 다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노동계가 거둔 성공은 강력한 세력이 사회 정의와 해방적인 사회 변화에 적대적일 때에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계의 노력은 낡은 것의 틈새에서 새로운 헌법 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그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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