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식민(植民)에서 사민(徙民)으로“ – 지난 120년간 영국 이민 유출입 현황

식민(植民)에서 사민(徙民)으로

지난 120년간 영국 이민 유출입 현황

2024년 7월 18일  / 오늘의 챠트 Chart of the Day
<전망과실천> 편집부

영국 이민, 식민, 사민,난민, 식민주의, 브렉시트,우경화

백성은 예나 지금이나 살기 힘들다. 역사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700여 년간 지겹게 싸웠던 중국 고대 춘추전국 시대에는 이처럼 떠다니는 백성들을 지칭하는 표현들이 달리 있었다.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해 땅을 빼앗으면, 그곳에 자국의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내쫒았다. 이를 식민(植民)이라고 불렀다. 문자 그대로 백성을 심는 것이다. 식민주의는 여기서 나온 말인데, 서구의 식민주의(colonialism)와는 실은 의미가 좀 다르다. 서구의 colonialism은 colony(동일 形狀)에서 나왔다. 즉 자국의 체제 문화 언어를 그대로 다른 나라에서도 재생산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반드시 ‘民’이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제국의 체제의 소규모 재생산이 colonialism의 진정한 의미다.

식민(植民)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점령했지만, 점령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주민들을 자국으로 강제로 옮기는 정책들도 광범위하게 쓰였다. 이를 사민(徙民)이라고 불렀다. 즉 인구 뺏기 정책이었다. 이 때는 전쟁의 목적이 땅(영토)이 아니라 ‘인구’ 자체에 있었다. 당나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한 뒤 그곳 주민들을 대거 끌고 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민도 아니고, 사민도 못돼서 그저 난리나 혹은 자연재해를 피해 이리저리 떠도는 백성들도 있었다. 이들을 유민(流民) 혹은 유맹(流氓)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바로 근대의 ‘난민’(refugee)에 해당하는 인구들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민(維民)이라는 범주도 있었다. 앞에 유민과 한자가 다르다. 망한 왕조(이전 왕조)의 백성들을 유민이라고 불렀다. 예컨대 청나라의 관점에서 명나라의 백성들은 유민이었다. 청 옹정제 때 십만 명에 이르는 유학자들이 참살당한 유명한 ‘문자의 옥’은 유민소지(維民所止)라는 한 구절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유민(維民)은 근대에 이르러 새로운 변형을 겪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維新)이나 박정희의 유신은 집권층이 기존 체제(왕조)가 망했다고 선언하면서 그 망한 나라의 국민들을 가지고 자기갱신(self-renovation)을 수행한 정치적 사건이다. 그래서 이름하여 ‘유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유신 주도 세력은 자신들이 새로운 건국을 한다는 암묵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현 국민의 힘 집권층의 국가에 대한 관념적 태도로 본다면, 한국은 제1공화국(해방 뒤- 1972년), 제2 공화국(유신 및 전두환 집권기)에 이어 1987년 이후의 점진적 이행기(제3공화국)로 분류할 수도 있다.

서구의 colonialism이, 앞서 말한대로 인구 그 자체를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고 해도, 인구의 유출입은 가장 뚜렷한 현상이었다. 다음의 흥미로운 그래프는 지난 120년동안 영국의 장기 인구 유출입 현황이다. 

영국 장기 인구 유출입(emigration, immigration) 현황. 출처: Ian Welsh https://www.ianwelsh.net/the-uks-housing-and-immigration-crisis-in-charts/링크 재인용

영국 장기 인구 유출입(emigration, immigration) 현황. 출처: Ian Welsh  https://www.ianwelsh.net/the-uks-housing-and-immigration-crisis-in-charts/
링크 재인용

영국의 인구 유출입 현황을 보면 대영제국의 절정기인 19세기 후반 내내 유출 인구가 유입 인구보다 더 많았다. 이들 유출 인구는 식민지 경영을 위한 이주민들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식민’적 성격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영국 내의 인구 증가율이 폭발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인구 유출에도 불구하고 영국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영국이 글로벌 헤게머니 자리에서 내려온 1920년대 이후에도 인구 유출은 계속되며,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영국 150년 역사상 볼 수 없었던 현상이 관찰된다. 유입 인구가 더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영국이 EU에 가입하여 입출국이 자유로와지면서 인구 유입이 더욱 늘어난다. 놀라운 것은 2020년 이후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영국으로의 인구 유입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즉 지난 150년 사이에 영국은 앞서 분류에 따르면 식민에서 사민으로 전화했다.

하지만  2020년 이후의 영국의 이민 인구 급증의 원인은 brexit(영국의 EU 탈퇴)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brexit 직후에는 인구가 유출되었는데 이는 기존 영국 노동시장에 편입되어 있던 유럽인들의 역이민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2020년 코로나 이후의 이민 인구 급증은 유럽 주변부(북아프리카,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한 ‘유민’의 대규모 발생 때문이다. 동시에 영국 정부의 이민 장려 정책도 주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고대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같은 사민은 평화적, 일상적 형태가 아니라, 전쟁과 해당 지역의 파괴로 인한 유민의 생성 때문이라는 것은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같은 현상은 단지 영국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미국과 독일 등 서구 전체에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즉 식민이 아니라 사민 현상이다. 이는 최근 자본주의 경제를 ‘착취’와 ‘수탈’(혹은 추출)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이론적 경향에 대해서도 암묵적인 이론적 시사를 준다. 그러나 그 논지에 대한 입증 증거라기보다는 논지의 교정을 요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민 인구가 갑작스럽게 급증하면 국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노동시장이 크게 흔들릴 뿐만 아니라, 주택시장도 요동친다. 나아가 복지체제에 하중이 커지고 새로운 범죄등 사회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으로 인종주의적 반이민 정치세력의 확산을 예고한다. 오늘날 이른바 ‘서구의 우경화’ 또는 ‘극우’라고 불리는 정치 현상의 이면에는 이같은 인구적 변동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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