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독일 영년 (獨逸零年), Germany, Year Zero

민노연 창립식_087

독일 영년 (獨逸零年), Germany, Year Zero

- 잔치는 끝났다.

2023년 11월 23일 / 글로벌 리포트 Global Report
<전망과실천> 편집부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 금융화, 독일 녹색당, 조합주의 국가, 자라바겐크네흐트동맹(BSW), 독일대안당(AfD)

상영된 것은 1948년이었지만, 촬영은 그보다 한 해 앞선 1947년이었다. 베를린의 프랑스군 점령지에서 촬영되었다. 필름은 암시장에서 구했고, 배우들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다른 영화들이 그랬듯, 배우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들로만 이루어졌다. 베를린은 전쟁의 파괴에서 전혀 회복되지 않았고, 식량 조달마저 어려웠기 때문에 촬영 초기에는 출연자들은 비쩍 마른 상태였고 촬영이 진행되면서 배급이 원활해지면서 배우들은 살이 올랐다. 영화 속에서 그 차이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다. 영화 <Germany, Year Zero> (독일 영년 獨逸零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화 속에서 독일 사회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위대한 독일 제국’의 문화도, 콧대 높던 게르만의 교양도, 인간 사이의 관계도, 그리고 가족 사이의 유대조차 모조리 파괴되었다. 등장인물들은 살아남으려 몸부림치지만, 고작해야 지나간 과거의 흔적들을 다시 읊조리는, 미래없는 인물들에 불과하다. 주인공인 12살 에드문트 쾰러는 가족들에게도, 선생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배반당하고, 약한 자는 사라져야 한다는 나치의 논리를 신봉하는 선생의 말에 넘어가 병든 아버지를 쥐약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현실에 직면해서, 아버지의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로셀리니는 리얼리즘이란 “진실의 예술적 형태”라고 말했었다. 그가 만든 네오 리얼리즘의 걸작 시리즈인 전쟁 3부작(Rome-Open City, Paisa, Germany, Year Zero)은 그 시대의 진실이었으며, 너무 암담해서 직면하기가 거북스러울 정도다. ‘Year Zero (영년 零年)’는 ‘Ground Zero’라는 다른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이 끝장난 시간, 모든 외양이 다 떨어져 나가고 그야말로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뼈들끼리 부딪치는 가장 밑바닥의 시간을 말한다 (이탈리아어 제목으로도 anno Zero다. Anno는 year라는 뜻).


영화 <독일영년> 스틸 사진

전후 독일은 거기로부터 출발했다. 그 이후의 독일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의 신화를 비롯하여 근면하고 정확한 독일인, 믿을 수 있는 품질 좋은 독일제품이라는 신뢰는 Year Zero를 역사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래서 독일 점령하의 로마를 그린 영화 <Rome-Open City>는 아직도 종종 회자되는데 반해, <Germany, Year Zero>는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독일은 그렇게 ‘Year Zero’에서 벗어났다.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참 시끄럽던 2022년 8월말 쯤에 독일 <슈피겔>지에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연정 파트너인 자민당 소속)과 로베르트 하벡 경제부총리(연정 파트너인 녹색당 소속) 사이의 짧은 대화가 기사로 실렸다. 린트너 재무장관은 하벡 부총리에게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 것이다. 이 기사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당시에는 모호했다. 그 한 달 쯤 뒤에 어렴풋이 윤곽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North Stream 1,2가 폭파된 것이다. 이것으로 독일과 러시아 사이의 에너지 공급을 매개로 한 교류는 사실상 완전히 중단되었다.

사건이 난 뒤 1년 여가 지난 8월에는 독일 정부가 사전에 천연가스관 폭파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황상으로 본다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아마도 영영 확인되지 않을 것이다), 이 보도는 충분히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 이 무렵부터 9월 중순까지의 독일과 러시아 사이의 천연가스관을 둘러싼 논쟁을 본다면, 이미 두 나라 모두 폭파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혹은 지금이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인가를, 바깥에서 본다면 마치 선문답하듯이 대화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러시아도 독일도 천연가스 라인 폭파를 막을 수 없었다.

누가 범인인가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North Stream 파이프라인 폭파 직후 나온 온갖 언론 보도들(러시아가 폭파했다는 주장)은 실은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엘리트들(특히 선진국의 주류언론인들)의 지능지수를 의심케 만드는 사례일 뿐이다. 이 사건은 단지 독일이 러시아로부터 이제는 더 이상 천연가스를 공급받지 못한다는, 무역상의 작은 결함 또는 경제적 관점에서의 난처함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이 사건은 지난 90년대 이후의 독일의 발전 모델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점에서 린트너의 발언은 정확했다. 풍요의 시대는 가버린 것이다.

독일영년이후 독일 경제성장의 비밀

‘독일영년’의 바닥 이후 독일의 성장은 80년대 말까지는 대외적으로는 강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수출 주도 경제, 대내적으로는 국가를 매개로 한 자본과 노동의 타협으로 조합주의적 복지 국가를 지향했다. 그러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대두와 함께 독일의 발전 전략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압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92년의 영국 파운드화 위기는 흔히 영국의 통화 위기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당시에 독일의 마르크화도 동시에 공격을 받았으며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

이에 대한 독일의 해법은 금융상으로는 유로화의 창설 및 대외적으로는 EU의 확대 강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EU를 확대/강화하여 역내 시장을 만들면서도 독일 산업이 역내에서 계속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또한 효율적인 노동 동원을 위한 조합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독일 노동대중의 삶의 수준을 일정 정도 보전해줄 필요가 있었으며, 따라서 독일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자원’ 공급처가 필요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독일의 이해관계는 소비에트 해체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일치했다. 러시아는 독일과 아주 낮은 가격으로 장기적인 천연가스공급 계약을 맺었다.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채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가격은 2차적 중요성밖에 없다. 소비에트연방 시절에도 러시아는 바르샤바 동맹국들에게 헐값으로 천연가스와 원유를 공급했으며 소비에트 해체 이후 폴란드 대통령이 “소련은 우리에게 물보다 싼 값으로 원유를 제공했다”고 아쉬워한 적도 있다. 즉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에게는 에너지는 동맹을 유인하는 당근이며 대외 전략적 도구로서의 역할이 1차적이다.

90년대 이후의 독일의 발전 전략은 역외 전략으로는 러시아산 값싼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중국의 광대한 시장을 겨냥한 기존 수출 산업 산업의 경쟁력 유지, 역내 전략으로는 EU 확장을 통한 역내 식민지 확대와 이를 통한 값싼 노동력 인구(이민 노동자) 확보, 이로 인한 임금의 상대적 하락 압력 유도와 중국 및 주변부 동구권으로부터의 값싼 생필품 수입을 바탕으로 한 기존 독일 대중(특히 조직노동)의 삶의 수준 유지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었다. 메르켈이 이 체제를 완성한 인물이며, 그 성과는 유로화의 상대적 약세(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독일 산업 경쟁력이나 무역 흑자에 비교한다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유로화는 약세룰 유지했다)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무한 보증을 바탕으로 한 금융 산업의 확대로 나타났다.

North Stream 폭파 장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North Stream 파이프라인의 파괴는 바로 독일의 지난 30년간의 체제의 등뼈가 부러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일 독일이 더 이상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다면, 독일 기업들이 더 싼 노동력과 인센티브를 찾아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는 기업만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인플레이션으로 표현되지만, 실은 독일 대중들의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린트너 재무장관의 말은 맞다;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

독일 녹색당의 부상과 추락

지난 2021년 가을 총선에서 승리한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합 정권은 기존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지지기반은 각기 조직노동(이제는 해체되어 가는 조합주의 국가의 잔재), 금융/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한 신흥 엘리트 세력(녹색당), 그리고 기존 체제 하에서 소외되었던 중소자본가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자민당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중 가장 주목할만한 정당은 80년대 반전평화 환경 운동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호전정당 (war party)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독일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90년대를 거치면서 급진적 생태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사이에 격렬한 노선투쟁 끝에 2000년대 초반부터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급속하게 변모해갔다. 그러나 단지 ‘이념’이 이들을 만든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명백한 물적인 기초가 존재한다.

지난해 말 현재 독일에서 부동산 관련 부문은 전체 GDP 가운데 약 20%를 차지한다. 여기에 금융 및 보험 부문이 추가로 4%를 차지한다. 이른바 FIRE(금융 보험 부동산 finance, Insurance, Real Estate) 섹터가 GDP의 1/4이다. FIRE 섹터가 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에 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2차 대전 이후 독일 부흥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던 제조업 부문은 27%까지 떨어졌으며, 갈수록 그 비중이 줄고 있다. 녹색당의 정치적 기반은 사회경제적으로 바로 이들이다. 여기에 이른바 ‘기후 위기’, ‘탄소 중립’을 기치로 내걸면서 신생 산업에 관련된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점이 왜 반전평화운동에서 출발한 녹색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그토록 호전적인지를 설명해준다. 녹색당은 21년 총선에서는 15.9%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상승해서 22년 7월에는 25%까지 치솟아 사민당을 앞지르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인권과 정의를 내세웠지만, 이 정의로운 열광의 이면에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종속에서 벗어난다면 대체에너지 산업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이권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독일이 세계 경제의 미래를 선도한다는 장밋빛 전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온갖 과학적 담론이 마치 이것이 가능할 것처럼 뒷받침했다.

그러나 급등한 에너지 가격이 소비자들의 전기료, 가스료 고지서에 실려날라오기 시작한 22년 7월을 넘기면서 녹색당의 지지율은 하락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무한 청정 에너지로 각광받았던 풍력 발전의 효율이 기대에 못미칠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결코 ‘청정’하지 않고 풍력발전 풍력발전 생산업체들은 잇따라 부도 위기에 빠져 구제금융을 받는 지경에 이르며, 당초 폐쇄 예정이었던 원자력 발전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석탄발전소까지도 연장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탄소 제로의 구호도 지금은 허황한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제는 총선 당시의 득표율보다도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대략 13% 정도).

아마 가장 희극적인 일은 청정 에너지인 ‘전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리튬이 그 생산과정에서 그 어떤 광물보다도 더 환경에 유해하며, 실은 전 지구를 바닥까지 다 긁어도 탄소중립을 이룰만한 매장량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익살맞게도, 새로 제시되는 대안이 ‘de-growth’(탈성장, 정확히 말하자면 축소재생산)론인데, 차라리 19세기 후반 맑스가 조롱했던 ‘절욕설’을 다시 되살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독일 녹색당의 위축은 지난 수년간 선진국, 또는 신흥 자본가와 이들에게 동조했던 이른바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대안이 좌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한국에서는 뒤늦게 박수가 쏟아지고 있지만, 실은 이미 멈춰버린 열차인 것이다.

신호등 연정의 또다른 파트너, 자민당의 위기

또 다른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FDP)은 좀 더 가혹한 구조적 위기에 처해있다. 독일 자민당은 중소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그리고 이들 중소자본가들의 돈줄이 바로 독일에서 도이치뱅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금융기업인 Commerzbank다. 그런데 Commerzbank의 신임 CEO인 Manfred Knof는 지난 9월 미국의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독일은 잘 지내왔고, 아마도 주위를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했던 것 같지만, 구조적으로 필수적인 변화들을 다루거나 현대화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잠에서 깨어 변화할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변화’, ‘현대화’가 무엇인지 가늠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Knof는 독일의 중소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위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중소기업이 ‘자본 투자’로 대기업이나 해외의 기업들과 경쟁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노동’을 쥐어짜야 한다. 좋은 말로 해서, 구조조정이다. Knof가 세계 최대 보험기업 중 하나인 Allianz에서 일할 당시의 한 동료에 따르면 “Knof는 노조를 다루는 가장 좋은 도구는 쇠파이프라고 말했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같은 ‘변화’가 독일 정치에서의 극우세력(독일대안당, AfD)을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를 쇠파이프로 다스리는 것이 극단적 우경화를 막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유력한 수단이라는 사고방식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은 전후 독일의 체제는 이같은 ‘전투적 민주주의’라는 이념하에서 구축된 것이다. 이것이 나치 헌법 이론가였던 Carl Schmidt가 독일 전후 헌법을 적극 찬양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말로 구조조정을 해줘도, 이는 단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중소자본가들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당연히 이런 정책을 펴는 연정에 참여한 자민당의 지지율이 좋을 리가 없다. 자민당은 지지율은 총선 당시의 10%의 절반에 불과한 5%선을 오락가락하고 있는데, 자칫하면 다음 선거에서 5%를 넘지 못해 연방의회에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민당은 21년 총선 당시의 25% 득표율에서 꾸준히 하락하여 대략 17%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 조합주의 체제가 해체되어 가는 마당에 과거의 잔재에 목숨을 걸고 있는 사민당이 지지율을 올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체제 위기는 자본가들이 먼저 안다. 지난 6월 독일 산업연맹(German Industry Federation)의 수장인 Siegfried Russwurm은 “(높은)에너지 가격이 독일 기업들을 역외로 몰아내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독일 경제 관련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Ifo Institute의 Hans-Werner Sinn 의장도 독일 정부의 지속성장 정책의 유효성을 의문시하면서 유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독일 대중들은 정치적으로 우편향하고 있으며, 이는 분명히 (기존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독일대안당(AfD)의 성장배경: 이민 문제

흔히 언론에서 ‘극우’라고 묘사되는 독일대안당(AfD)이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은 바로 이것이다. 기존의 정당들이 대중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미 그같은 이해관계의 유지가 불가능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대중들은 반사적인 구호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AfD는 극우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념상으로만 따진다면 스웨덴의 제1야당인 민주당이나 핀란드의 진짜핀란드인당(true Finn), 혹은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이 훨씬 우편향이며 아예 노골적으로 파시스트 색채를 내비친다. 영국 보수당도 AfD에 못지 않지만, 여기는 이념으로 따지기 보다는 제정신인가를 따지는 편이 더 적절하기 때문에 논외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좌우를 가르는 기준이 의사당에서 어느쪽에 앉았느냐에 불과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만일 60년대의 이념적 내용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현재 유럽의 사민당 중에 ‘사민주의’ 이념을 가진 곳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극우정당이다.

AfD에 파시스트 분파가 참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AfD내에서 주류라고 말하기는 힘들며, 일종의 연합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이들이 ‘극우’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민 문제’ 때문이다. AfD는 반이민 노선을 명백히하고 있다. 동시에 독일 우선주의도 내세우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나치 시절의 게르만 민족주의와는 다르다. AfD는 EU나 유로화 도입이 독일 대중들에게 오히려 손해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차라리 미국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 지지자들)에 더 가깝다.

독일에서 이민자 문제는 매우 까다로운 이슈다. 독일도 다른 선진국처럼 출생율 저하로 곤란을 겪고 있으며(이탈리아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출생율이 낮다), 그게 아니더라도 임금을 낮추어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부에서 노동력이 공급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만일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민 문호를 개방한다면, 정치적 부담도 클 뿐만이 아니라 임금을 낮추는 효과도 반감된다. 그런데 만일 ‘난민’으로 혹은 ‘불법이민’으로 노동력이 공급된다면, 전자는 정치적 명분이 서고 후자는 생산성이 낮은 섹터의 임금을 낮추는데 훨씬 효과적이다. 이같은 노동시장 정책은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독일이 90년대 헬무트 콜 정권 이래 끊임없이 동진정책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놀랍지 않게도, 구바르샤바조약국가인 폴란드를 비롯해 루마니아 불가리아 발틱3국 세르비아 등 거의 모든 동구권 국가에서 인구가 91년 대비 감소했다. 이들은 EU에 편입되어 ‘통행자유’(쉥겐조약)를 얻으면서 소리소문없이 서유럽의 잉여노동력으로 흡수되어 갔다. 심지어는 같은 ‘서구권’에 속해 있었던 그리스에서도 인구 감소는 심각할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 부채 위기 이후 약 400만에서 700만에 이르는 젊은 층이 서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보수 세력인 메르켈이 ‘이민 제한’에 극력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권과 보편성이라는 아름다운 정치 구호가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유럽에서의 이민과 난민 문제는 노동시장 정책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며, 체제 수호를 위한 핵심 과제이기도 했다. 동구에서의 이민 노동력 유입이 한계를 보이던 즈음에 ‘아랍의 봄’을 빌미로 서구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인구를 겨냥했으며 그 결과가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리비아 침공이었다. 따라서 구호에 쓰인대로 자유평등박애를 순진하게 기대한다면, 되돌아 오는 것은, 맑스의 표현을 빌자면, 보병 기병 포병일 뿐이다.

이미 독일 대중의 불만은 커질대로 커진 상태다. 독일의 Common research organization의 지난 8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대중의 80%는 현재의 독일 경제가 ‘불공평’하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 2022년보다 무려 32% 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또 60%는 독일이 부자와 빈자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0% 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따라서 이미 정치적으로 기존 정당들은 대중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더 이상은 불가능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대중들의 정치적 불만이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더 이상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Commerzbank의 Knof의 말을 빌자면,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 준비를 해야할 때다. 이는 독일이 기존의 외부로의 팽창을 통한 시장 확대와 노동력 유입이나, 값싼 자원의 획득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내부’를 쥐어짜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누가 이 총대를 멜 것인가? 정치가 전면에 나서기 곤란할 때는 법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지난 21일 독일 헌법재판소는 독일 연방정부의 예산 계획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코로나 확산기에 배정했다가 남은 예산을 다른 목적으로 전용해서 사용하는 것은 ‘(비상시가 아니고서는) 연방 재정적자가 GDP의 0.9%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원래 독일 연방정부는 이 예산을 대체 에너지 개발 등에 쓰려고 했었다. 이 판결에 따라 연방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의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더구나 재정적자폭의 한계를 설정했기 때문에 사실상 내년 예산안은 올해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등으로 정부 예산이 확대되지 않으면 대중들의 생활 수준이 악화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체에너지 예산 확대를 주장하는 연정파트너 녹색당과의 교통정리 문제도 심각하다. 최악의 경우는 연정이 붕괴해 조기총선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조기 총선에서 대중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때는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그리고 온갖 대외 정책 이슈가 한꺼번에 터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BSW 대표 자라 바겐크네흐트 (Sahra Wagenknecht)

좌파당으로부터 나온 좌파‘ BSW (자라 바겐크네흐트 동맹)

지난 10월 말 창설된 BSW(Bundnis Sahra Wagenknecht-for Reason and Justice; 자라 바겐크네흐트 동맹-이성과 정의를 위하여)는 이 이런 조건 속에서 나왔다. BSW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정당‘은 아니다. 정당 주비위적 성격과 전선체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단체의 주도자인 자라 바겐크네흐트는 동독 출신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동독 공산당에 입당했다. 초기 맑스로 학사 논문을 썼으며, 선진국에서의 저축률과 생계비 결정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의 좌파 정당인 Linke의 핵심 멤버였지만, 노선 차이로 결국은 탈당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매우 높다. Linke의 지지율은 고작해야 5%를 밑돌지만, 개별 정치인 인기도를 조사하면 20%가 넘게 나온다. 사민주의자나 이미 신자유주의화한 구좌파가 아닌, 정통 공산주의자인데도 그 정도 수치가 나온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바겐크네흐트의 능력 때문이기도 한데, TV 토론이나 논쟁에서 탁월한 지적 수준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못한다.

바겐크네흐트는 기존 Linke 지도부와 갈등 끝에 이들을 ’무늬만 좌파‘(life-style left)라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 모임을 꾸렸고 여기에 기존 Linke 소속 연방의원 10여명이 동참했다. 이 단체 명칭이 바겐크네흐트라는 개인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은 기존의 좌파(left)라는 용어가 이미 그 의미를 퇴색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과거와 같은 방식의 이념 구분으로 자신들을 규정할 수 없다고 암암리에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의 정치 이념은 지금의 ’좌파‘ 혹은 ’진보‘라는 단어로 말할 수 없다. 좌파나 우파 모두 이들을 ’반이민론자‘라고 비판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바겐크네흐트는 독일의 팽창적 대외정책을 비판하면서, 그 결과로 무분별한 난민 유입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놀랍게도 BSW를 포함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들은 녹색당보다도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AfD와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좌우파에서 모두 BSW로 합류하는 대중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독일 연정이 붕괴한다면 BSW는 총선에서 깜짝 놀랄만한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매우 높다(창당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BSW에 투표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이 27%나 나온 적도 있다).

제국의 호시절과 영년

말이 안되는 세상에서는 이성은 정치적 구호가 된다. 이성이 사라진 곳에서는 세상은 0 ()에 수렴한다. 7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독일의 지난 시절은 바닥에서 풍요로 올라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시절은 끝났다.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다시 Year Zero로? 아니면, ’정의와 이성‘을 향하여?

풍요는 독일에서만 끝난 것은 아니다. 지난 10월 말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정치자금 모금 연회에서 ”damn good era is over“(좋던 시절은 끝났다)고 말했다. 린트너의 ’잔치 끝‘에 버금가는 발언이다. 역사 속에서 ’good era’는 제1차 세계화이자 제1차 자유주의의 전성기였던 1880-1914년을 말한다. 바이든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미국의 제국의 호시절이 끝난 것은 확실하다. 미국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제2의 North Stream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슨 폭파가 남았다는 말인가?

댓글 남기기

Social media & sharing icons powered by UltimatelySocial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