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노동계급정치와 ‘노동자정치세력화’는 같은가? (1)

노동계급정치와 ‘노동자정치세력화’는 같은가? (1)

: 노조 반대파는 무엇을 해야했는가

2023년 11월 23일 / 권영숙의 낯선 새로움
권영숙 (노동사회학자,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민주노총, 국민파, 노조 반대파, 계급정치, 노동자정치세력화, 패권주의, 조합주의

한국 노조운동의 정치적 지형

여전히 반대하는 세력이 나아가는 것을 저지하는데서 딱 멈춤하는 적대적(?) 공생! 이것이 지난 4월24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의 모습에 대한 요약이다. 4월24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대대)는 양경수 위원장이 직권상정한 정치방침안을 단일 안건으로 하고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최직전에 위원장이 안건을 철회하면서 ‘표결안건 없는’ 대의원대회에 무려 700명에 이르는 대의원들이 모이는 아주 희한한 대의원대회였다. 그럼 이 자리는 무엇을 위한 자리였을까? 4월24일 대의원대회는 안건이 사라진 대의원대회였고 대의원대회의 존재이유인 대표성 있는 표결 절차가 없었던 대의원대회였지만, 다음해 2024년 4월10일 총선 방침을 사실상 결정한 것이기도 했다. 표결없이 결정이 가능했다. 더 구체적으로 이후 드러날 과정으로 보자면 그렇다.

지난 4월24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출처: 공무원U신문, 2023년 4월25일

먼저 민주노총 집행부를 배출한, 민주노총내 최대 정파인 국민파(전국회의-진보당)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치전술을 민주노총 전체의 ‘대의’에 의한 합의를 통해서 이끌 교두보를 마련했다. 고로 이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뿐이다. 이제 이 대의원대회의 ‘표결없는 결의’에 따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중집)가 이후에 하나의 단일한 정치방침을 내놓으면 이는 표결을 거친 ‘합의’로 기정사실화될 것이었다. 4월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 직권상정에 대해 그렇게 격렬하게 반대토론을 하던 중집은 더 이상 4월 대의원대회처럼 안건 표결처리를 유예할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더이상의 반대는 대중적인 명분을 상실할 것이다. 민주노총 내부의 범 반국민파등은 이후의 대의원대회에서도 4월 대대에서처럼 위원장이 낸 정치방침을 반대만 한다면, 반대를 일삼는, 반대를 위한 반대파로 조합원들에게 낙인찍힐 것이다. 이미 당시 임시대의원대회 때 유튜브 창에서 이런 논조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었다(나는 이런 댓글이라도 유심히 보면서, 노동자들의 정치적 풍향과 정서를 읽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반면 앞에서 언급한 범 반국민파, 이른바 좌파와 현장파, 혹은 ‘비전국회의 정파들’은 임시대대에서 자신들의 반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나 매우 제한적인 내용으로 줄곧 얘기하다가 다른 얘기를 거의 하지 못한채 끝내고 말았다. 최소한 저지했다고 자기만족하면서 혹은 뭔가 이상하다는 찜찜함을 안고서.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최악’을 저지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차악’도 저지하지만, ‘최선’이 무엇인지, 우리가 왜 ‘최선’인지를 말하지 않는 것. 혹은 말할 것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혹은 분명히 인식하거나 실천하지 못한 상태로 말이다. 이 점에서 이 대대에 대해서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가 “질서있는 분위기에서 토론”이라고 보도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표현이다.

마치 프랑스혁명이후 온갖 공화파와 사회주의자들이 득실거리고, 이후 1848년 혁명이 혁명이자 동시에 반혁명으로 치닫았을 때의 구도를 구체제(앙상 레짐) 대 새로운 체제가 아니라 “질서 대 사회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내년 총선과 그이후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정치전략을 정하는 데 아마 가장 중요한 대회로 기록될 4월의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는 노동계급정치가 거의 실종하다시피한 시간 속에 ‘질서있는 토론’으로 끝났다. 마치 모든 쟁점은 조직노동의 조직적 질서 속에서 화해적으로 기화될 수 있다는 착각을 남기고서. 그리고 이후 민주노총 중집은 여하튼 단일안을 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다음에 열리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싱겁고 형식적인 ‘결집’과 정파와 정당들간의 가식적인 ‘합의’의 날이 될 것임은 이 때 기정사실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질서 있는 토론’의 요체였다. 결국 내부적 사상적 이념적 적대를 가장하거나 포장한 ‘공생’의 질서 말이다.

노조 반대파가 했어야할 일

지난 4월 임시대대에서 현 집권파에 대한 반대파들은 줄줄이 일어나서 위원장의 안건 직권 상정에 반대하는데 많은 발언을 할애했다. 하지만 의장인 위원장 스스로 총선방침에 대한 안건 표결을 철회하겠다고 발언한 직후에 이게 무슨 실효가 있었을까? 그리고 왜 노조 반대파들은 안건 직권상정에 대한 쟁점을 부각하는 이상의 것을 하지 못했을까? 문제는 이것이다.

일단 이미 개회전에 ‘긴급 상황’은 종료됐다. 하지만 노조 반대파들은 직권 상정에 대한 반대 연서명을 전날까지 하느라 바빴을 뿐 다른 것을 준비하진 못한 것 같다. 이는 연서명한 성명서 내용을 봐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제 상정 철회한 마당에 대회장까지 들어와서 줄곧 직권상정을 비판하는 것은 위원장 흠집내기로나 보이지 과연 무슨 효력이 있었을까. 혹은 다수파에게 소수파에게도 일정한 ’지분‘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보였을까. 게다가 대대에서 안건을 상정하지 않기로 하고, 표결없는 ‘찬반토론’에 들어갔는데, 여기서도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문제에 대한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논의에 그쳤다. 집권 다수파는 위원장이 이렇게 전체 조직을 위해서 직권 상정을 철회했으니, 하나로 뭉쳐 잘해보자로 ‘대승적으로’ 임했다. 반면 반대파의 발언은 민주노총의 최대 정파가 이렇게나 패권적이면 안된다는 지적으로 수렴된다. 이건 결국 직권상정에 대한 재비판으로 수렴되어 순환적인 논법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반대파의 비판중 핵심인 패권주의에 대해서 살펴보자. 민주노총이라는 노조 조직에서 다수파가 패권적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조직활동이나 정치에 있어서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당파적 입장을 내세우고 그것을 중심화하려고 하고 조직의 방침으로 채택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아니 노력해야한다. 그런데 그 정치방침을 패권적으로 진행하면 안되고 “강제” 직권 상정” 말아야한다라는 주장이 노조 반대파에 의해서 제기됐다. 그래서 현 집행부는 인정하고 물러섰다. 그렇다면 이 다음 스텝은 어찌 할 것인가?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서로 ‘질서있는 토론’을 해서 현재 집행부 제안을 위한 분위기 조성으로 끝내련가?

적어도 노조 반대파는 현장에서 표결없는 찬반 토론을 잘 활용하여, 정세에 대한 입장, 노동계급정치에 대한 입장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리고 노조와 정당의 관계에 대하여, 원론적이지 않고 기본적이면서 정세적인 방향과 내용을 제시했어야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안에서 노조 반대파들, 좌파나 전투적 조합주의자들은 모두 다음과 주장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첫째, 현 전국회의가 민주노총내 의사결정구조에 있어서 패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문제이며, 둘째, 민주노총은 하나이므로, 극구 분열은 피해야하고 하나가 되기 위한 토론과 모양을 끝까지 지향해야하고, 셋째, 정치방침에 있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아니 노조중심의 정치세력화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조합원들과 정파세력은 없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계속 보였던 모습이나 주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파의 위와 같은 입장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차별성이 있다는 말인가? 좌파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더 정확히 드러내고, 다수파에 대해서 입장으로서 분리 정립하고, 내부의 투쟁을 거쳐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말하자면 소수파 (즉 러시아의 볼세비키) 역시 그러면 영원히 다수파, 멘세비키들에게 절대 패권적이면 안되고, 러시아 좌파는 하나여야 한다고 공염불만 외쳤어야하는가? 혹은 지금 남한 민주노총의 ‘노조 반대파’는 다수파 멘세비키에 맞서서 민주노총은 하나여야한다는 공염불만 외칠텐가?

그리고 과연 이게 소수파의 정치적 노선과 메시지로서 타당한가? 이런 주장이야말로 어쩌면 다수파가 할 주장을 소수파가 하는 것 아닌가? 과연 역사상 어느 나라에서 어느 좌파, 소수파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동단결을 외칠지. 아니면 입장을 가지고 다수파에 대한 자기 정립과 태도로 대중을 향하여 설득하는 일에 매진할지. 이는 좀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다수파가 아닌 소수파, 노조 반대파가 과연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과연 다수파를 향한 내적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에서 입장을 정립하여, 반대만 일삼는 반대파가 아니라 내용있는 반대파로 정립 가능할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정확한 질문이 정확한 답에 이르는 출발점이다.

반대파 주장의 공허함

그럼 이제 이 반대파의 주장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 순간부터 ‘악마의 변호사’가 되어보려고 한다. 도대체 그러지 않고선 쟁점화도 안된채 문제는 미궁속으로 더욱 빠질 듯할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첫째 다수파가 패권적인 것이 문제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다. 그 점에서 위원장의 직권 상정을 비판할 순 있다. 하지만 그가 철회하는 순간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했던 많은 반대파의 말들은 공허해졌다. 아니 직권 상정에 대한 ‘비판’ 말고 과연 반대파들의 정치방침이나 실천지침이 있긴 했나 싶다. 그리고 다수파라는 것을 방패삼아 정해진 절차를 무시한다면 그것 자체는 문제이지만, 패권 추구 자체는 어느 정파나 추구할 것이다.

패권이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이렇게 순화해보자. 어떤 정파나 당파든, 첫째 정세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부단히 정련해야하고, 둘째 그 입장을 가진 좌파는 노동계급운동과 결합을 절대적으로 게을리 하지 말아야하며, 셋째 그 입장을 정치적 프로그램과 전략으로 삼아 다수파가 되기 위한 노력을 집중해야한다. 즉 대중조직인 노조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으로 정치화하기 위해 애쓰고 내부의 ‘다수파’가 되도록 노력하여야한다. 다수파가 아닌 소수 정파들이라고 해서, 계속 소수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수파가 되기 위한 이념투쟁과 실천투쟁으로 대중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나? 반대파의 패권주의 비판은 현 다수파인 전국회의에 대한 비판치곤 옹색하다.

둘째, 민주노총은 하나이므로 분열을 피해야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도 분열을 피해야한다? 이 주장이 민족주의파등 대동단결주의자들이 아닌 좌파, 현장파들에서 터져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스스로 조합주의 (unionism)내에 머물고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말할까? 즉 노동조합을 금과옥조, 지상 최대의 선으로 보지 않고서야, 무조건 단결과 하나됨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진짜 문제는 분열 혹은 분리가 아니라 분열을 억지로 만들고, 목표없이 분열을 일삼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가 아니며, 지금 한 정파의 입장이 절대적 다수의 입장이 되어 관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구성면에서도 민주노총 내 조합원들간에, 산별 업종들의 ‘내부 차별’과 ‘격차’도 심하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라는 조합주의의 기치아래 몰아넣는 것은, 다양한 격차와 차별을 축소하는 것은, 정치적 방침에서도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결국 이런 경제적인 조건과 산별 업종의 차이는 정치적인 이견과 차이로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존재조건이 다른데 어찌 정치적인 입장이 같을 수 있을까. 이런 차별과 차이를 축소하거나 은폐하고 여전히 “우리는 하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내부의 차별과 이견을 봉쇄하고 미봉한 것일뿐이다.

의미있는 분열을 두려워말아야 민주노총이 계급적 노조로, 나아가 계급적 정치방침을 갖도록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전국회의가 정파적으로 나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좌파 혹은 노조 반대파는 어떤가?  다수파에 대한 반대만 일삼고, 전국회의등 다수파가 능동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사사사건 발목 잡기를 언제까지 할것인가? 만약 이러한 비판이 민주노총 다수 조합원들의 입에서 터져나올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입장이 없는 것, 패권만을 문제삼는 앙상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셋째, 마지막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과연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무엇인가?그리고 과연 정치방침에 있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노조중심의 정치세력화를 당연시하는 것은 맞는가? 즉 이것이 과연 ‘계급적 정치방침’과 동일시될 수 있을까?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이 계급정치의 중심이고 계급정당의 행위자가 되는 것이 과연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인가?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비판과 지적을 넘어서 능동적으로 했어야할 발언,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 세 사람이 일어나서 ‘토론’하며 구체화했어야할 발언은 이것이었다. 아마 그랬다면 이 ‘안건없는 대의원대회’, ‘표결없이 토론하는 대의원대회’는 그렇게 ‘질서있는 토론’이 될 리도 없었고, 그런 오명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분별에서 정립으로

지금 ‘계급정치’를 주장하는 좌파들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한다. 물론 이미 조합원들, 그리고 임시대의원대회 현장의 발언자들 중에선 슬그머니 그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이를 둘러싼 이견들이 은근히 드러났다. 그러나 은근히 말이다. 다수파와 노조 반대파 그들 양쪽은 모두 서로 치열하게 이견을 드러내며 반박할 쟁투의 지점, 아니 예각적인 쟁점화를 해야할 순간에 이르자, 슬쩍 정면 대결을 거부하거나 피하였다. 반대파가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서 모호하게 대했다. 이른바 패권주의 반대 담론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과연 노동계급정치와 노조정치세력화라는 문제에 대한 노조내 좌파의 입장 정립과 발언 없이 과연 이 문제를 싸고 현재의 다수파 국민파 집행부를 넘어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결국 다르지 않으니 분별이 되지 않고,
분별이 되지 않으니 차이가 없어진다.
차이가 없으니, 정립을 하지 못한다.

(다음호에서 “노동계급정치와 ‘노동자정치세력화’는 같은가?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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