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추락하는 미국의 기대 수명

민노연 창립식_087

추락하는 미국의 기대 수명

: 미국은 이제 제3세계 국가인가?

2023년 11월 23일  / 오늘의 챠트 Chart of the Day
<전망과실천> 편집부

기대 수명(life expectancy), 사망율, 청장년 사망률, 건강기대수명, 포스트코로나

기대 수명(life expectancy)이란 0세 신생아가 향후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예상 수명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기대 수명이라고 할 때는 0세의 예상 수명을 말한다. 하지만 태어난 연도가 다른 연령별로 기대 수명은 달라지게 된다. 오래 살려고 노력한 끝에, 일본 이탈리아 한국 등 일부 장수 국가들의 기대 수명은 80대 중반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최근 미국의 유명 의료저널 Lancet에 수록된 논문은 2030년 한국 여성의 기대 수명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90세가 넘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여하튼 이렇게 국가별 기대 수명에는 큰 편차가 있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기대 수명이 50세가 안되는 곳도 있다(나이지리아). 하지만 일단 한 사회의 기대 수명이 증가하면, 전쟁, 대규모 자연재해, 폭발적인 전염병 등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는 법은 좀처럼 없다. 천재지변이 아닌데도 기대 수명이 감소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90년대 러시아였다.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인한 국가/사회 구조의 붕괴로 인해 러시아의 기대 수명은 특히 남성의 경우에는 거의 10세 가까이 감소하기도 했다.

미국의 기대 수명–서유럽 대비 (1980-2021)
출처 : Health System Tracker

최근에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미국이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2020년 미국인들의 기대 수명은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유럽)들과 마찬가지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이한 점은 그 다음이다. 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의 기대 수명은 2021, 22년도에도 계속 감소했다. 물론 2021년도에도 코로나는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이스라엘, 뉴질랜드 정도가 1921년도에도 기대 수명이 감소한 국가들인데, 이들 국가는 코로나가 뒤늦게 확산되었거나 혹은 아예 방역을 포기하다시피한 국가들(이스라엘이 대표적)이었다. 더구나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2022년까지 소폭이나마 기대 수명이 감소한 것은 단지 코로나가 기대 수명 감소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식 확정 통계는 아니지만, CDC(미국 질병관리청) 통계로는 22년 말 현재 미국의 기대 수명은 21년 대비 0.1세 감소한 76.3세로 발표되었다).

2021년 각국의 기대 수명 증감 추이
출처 : Washington Post, 2022년 4월

이런 현상은 연령대별 사망률 추이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고령자의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지만, 미국에서는 2021년 60세 이상의 고령자의 사망률은 낮아져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근접한 평균적 추이로 되돌아갔지만, 20-59세까지의 청년, 중장년층의 사망률은 오히려 2020년보다 높아졌다. 이는 기대 수명 감소 현상의 원인이 코로나19 이외의 것이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미국의 연령별 사망률 추이
출처 : Saint Louis 연방은행

뿐만 아니라, 챠트 상으로는 구분하기 힘들지만 미국의 기대 수명은 2010년 이후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다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도부터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이같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미국의 기대 수명 추이는 코로나가 주요한 감소 요인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요인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엇이 작용했을까?

미국의 학력별 기대 수명 추이
출처 : Angus Deaton, 2023년 8월 강연 초고, <Boston Review>에서 재인용

위의 챠트는 미국인들 가운데 대학 졸업자와 미졸업자 사이의 기대 수명의 추이를 표시한 것이다. 대학 미졸업자의 기대 수명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학력은 인종과 소득을 모두 아우르는 지표이기도 하다. 유색인종일수록(아시안 제외), 그리고 빈곤할수록 학력이 낮다. 그리고 낮은 만큼 수명이 짧다. 무려 8년이나 차이가 난다. 기대 수명의 보조지표인 ‘건강 기대 수명’(healthy life expectancy;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예상 수명)도 2010년대 초반에 66.7세로 정점을 찍고 이후 완만하게 하락하기 시작해, 21년 말 기준으로 66.1세까지 떨어졌다.

2000년대 초반 CDC는 20세기 100년간 미국의 기대 수명이 30년 증가한 것을 두고 “30년 가운데 25년은 공중 보건 위생의 개선, 삶의 질의 상승, 백신의 확산” 때문이라고 평가했었다. 즉 ‘의학’의 공헌은 늘어난 수명 30년 가운데 5년분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코로나19의 영향을 넘어서는 미국의 기대 수명 감소 추세는 이같은 지난 100년간의 개선이 다시 퇴행하고 있다는 것, 즉 공중 보건 위생의 악화, 삶의 질의 악화, 백신의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비록 완만하기는 하지만, 구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기와 마찬가지로, 미국 국가/사회의 시스템이 해체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균열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여러 사회문제와 사회 통계들로부터 꾸준히 한 가지 질문이 대두되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제3세계가 되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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