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계급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

계급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

- - 1987년 민주화이행이후 민주, 진보, 그리고 좌파

2024년 2월 22일 / 권영숙의 낯선 새로움
권영숙 (노동사회학자,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민주, 진보, 좌파, 진보정치, 계급정치, 동맹정치, 자유-노동동맹, 자유-시민동맹, 자유주의 헤게모니

한국의 진보정당사는 1987년이후 패배와 비루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조금의 세를 얻은 후의 모습은 외려 최악을 향한 경주같았다. 모두의 동의에 기반했다고 착각하기도 하는 ‘국민승리21’(민주노동당의 전신)의 시작은 전노대의 후신인 민주노총이 창립한 후 그 초대위원장이 1대 위원장 임기조차 채우지 않고서 이뤄진 소위 ‘민주노조의 정치세력화’였다. 그리고 이렇게 산하 민주노조들의 동의를 정상적으로 구하는 과정에 기초하지 않은 채 지도부가 주축이 되어 정치방침을 내지르는 관행은 이 최초의 선례가 결국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대세는 그 결과로 인하여 일부 정당화되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은 국회의원 10석 (곧바로 선거법 위반으로 1석 줄어든 9석)으로 국회 진출이라는 수확을 이뤘다. 이는 좌파운동과 사회주의정당을 말살시키고 수립한 분단국가 대한민국 정치체제 하에서, 그리고 87년 민주화 이행이후 최초로 ‘노동정당’의 원내 입성이라는 ‘쾌거’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은 노동계급정치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노동계급정치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씁쓸하게 확인해야할 것은, 이 성과가 바로 노무현탄핵 반대운동, 즉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정치를 구사하면서 대표적인 반노동정권으로 기록되어질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정치전선에 일부 탄핵반대운동 좌파를 제외하고 다수의 ‘진보’세력과 민주노총 주류가 모조리 함께 했던 이른바 ‘노무현 살리기’ 캠페인으로 만들어진 결과였다는 점이다. 우파정당의 노무현 탄핵 시도 불발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결과는 마치 전리품의 공유와 배분과도 같은 의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반탄핵운동의 여세를 몰아, 다가온 총선에서 이룬 승리였으니.

결국 이것은 이른바 노조정당의 최초 원내 진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른바 진보/좌파/노동, 그 무엇이라 불리든간에, 바로 이들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결탁 혹은 나의 규정으로 한다면 ‘자유-노동 동맹(lib-lab coalition) 정치의 명실상부한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이 바로 한국 해방후 최초의 좌파정당의 의회진출이라고 일컫던, 빛나는 승리의 뒷그림자였다. 그리고 2004년 선거이후 오늘날까지 진보정치의 흐름과 행로를 보라 (이렇듯 오늘 하는 정치적 선택은 오늘의 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오지않은 미래에 대한 빚이기도 하고, 나아가 미래의 질곡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2024년 2월21일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을 위한 합의문 서명식과 국회 기자회견. 민주당, 진보당, 새진보연합이 서명하고 ‘연합정치시민회의’가 참관보증인으로 합석했다.

근데 여기까지 언급한 역사는 단지 민주화이행이후 ‘진보정당의 역사’일 뿐이다, 정치사회학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노동계급정치(working-class politics)’는 한국에서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유-노동동맹정치 역시 2004년의 반노무현 탄핵운동이후 지지부진하였을 뿐 아니라(이는 비례대표제 실시에 대한 민주당의 사보타지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난다), 조직노동의 끊임없는 구애 혹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정치는 노동 포섭보다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자유-시민동맹(lib-civic coalition) 정치에 기초한 범민주연합정치를 지속했다. 그것의 정치체제적인 표현이 ’노동배제적인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without a working class)였다.1)

하지만 자유주의 정치가 ’노동을 배제하는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원칙적인 기조로 지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운동, 조직노동, 진보정치운동은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벗어나지 못한채 한편으로 정당은 계급정당 아닌 ’진보정당‘운동을, 다른 한편으로 조직노동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합주의(unionism)와 노동자주의(workerism)에 매달려서, 좌파- 노조의 결합으로서, 좌파중심의 노동계급정치가 시작되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이중의 의미에서 ‘주체’의 문제가 있다: 이른바 ‘민주노조’가 만드는 노동정치의 한계와 좌파로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진보좌파’의 문제, 두 가지가 다 문제다. 세계정치사속에 한국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한편으로 87년 민주화이행이후 등장한 민주노조운동과 좌파/정당운동이 맺는 관계라는 문제가 있다. 알다시피 자본주의 역사에서 대중조직인 노동조합 자체는 좌파정치든 노동계급정치든 이것들과 자연발생적으로 결합하거나 보증하지 않는다(이에 대해서 ‘외부론(혹은 전위론)’ 그리고 ‘양날개론’ 등 다양한 관계론이 제기된다). 특히나 한국같이 노동조합운동이 좌파운동보다 과잉발육된 나라에서는 노동정치운동을 노조가 주도하거나 정치운동에 나선 좌파는 약체화되거나 나아가 허약하다. 그에 비하여 조합주의와 노동자주의는 강화되게 된다. 이는 한국의 87년이행이후 민주노조운동을 추적해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사례는 노조-좌파 관계의 비대칭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증좌이자 그 사회정치적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다. 이 관점에서 87년이후 노동운동과 노조운동의 역사를 복기해보자.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노동운동’은 당시에 결성된 민주노조 결성 붐을 타고 만들어진 2천여개의 민주노조를 주축으로 하였지만 노동자정치운동 조직들까지 망라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광의의 노동운동이었다. 노조와 비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 그리고 나아가 노조와 노동단체, 그리고 변혁적 노동정치운동까지 포함한 노동운동.  노동자대투쟁이후 발족한 전노협에는 민주노조뿐만 아니라 전노운협등 노동단체들도 가입해있었다. 그러나 이후 전노협을 해산하기도 전에 발족한, 사무직 업종회의와 대기업 노조들이 주도하여 만들었던 민주노조들의 연합체였던 전노대는 노조만 가입하는 ‘노조운동’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이후 전노대를 계승한 민주노총의 조직적 성격이 되었다. 심지어 민주노총의 산별 조직들은 해고자와 ‘초기업적인 고용관행에 놓인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문제에 대해서 갈수록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가 박근혜 정부에서 ‘법외노조’사태로 터졌다. 하지만 이 문제 이전에도 노조 가입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수많은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그리고 근로기준법에서도 배제된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외부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은 이미 노동운동에서 노조운동으로 전화를 거쳐, 노조운동에서  ‘이익집단정치’로 전환하는 자기 전화를 거의 마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2)

민주노총의 이익집단정치- 주로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모습으로 등장하는-에 비판적인 현장조직들 역시, 노동자주의(생디칼리즘)를 강하게 드러내며 노조운동을 전투적 정치기관으로 보기도 했다. 이는 어쩌면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는 비교사적으로 노조의 정치활동, 노동의 정치적 채널이 노동의 산업적 채널(즉 노조 결성, 단체행동, 단체교섭)등보다 지연되거나 유보됐던 나라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앞서 말했듯이, 노동운동, 노조운동 자체는 계급운동으로 정립이나 좌파의 문제의식을 보증하지 않으며 동일체도 아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계급형성((class formation)‘과 계급의 경제적 구성을 구분하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하에서 등장하고 성장하고, 87년이후 조직화된 노동계급은 경제적으로 형성되었을 뿐, 여전히 ‘계급형성 ’의 문제를 미완의 과제로 안고 있다.

게다가 남한 사회에서 계급 형성은 민주화 이행으로 민주노조운동이라는 대중적 노조운동의 시작으로 해서 좋은 출발점을 가졌으나, 그 성공이 오히려 계급형성의 문제의식을 희석시키는 ‘의도됐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이행이후 민주노조들의 경제투쟁이 70년대 80년대 민주화를 거친 어떤 국가들보다 눈부신 임금인상 및 소득재분배를 가져왔으나 이는 동시에 역으로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의 배타적 내부시장 형성, 자본의 비정규직 도입과 이에 대한 노자 담합의 구도 형성을 가져왔고, 이는 계급형성을 위한 정치적 통일성의 기초를 현저히 악화시켰다. 경제주의와 노동자주의는 조합주의로 귀결되었고, 문제는 언제나 조합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주의’인 것처럼 포장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회적 합의주의일뿐 아니라 조합주의다. 그리고 노조가 조합주의와 노동자주의로 머무는 한, 조직노동의 이익집단정치는 언제나 사회적 합의를 일정정도 인정하게 된다. 민주노총안의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세력이 사회적 합의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노정교섭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지만 서유럽 식의 ‘사회조합주의’와 사민주의를 기각하지 않는다.  

근데 또 다른 문제로 소위 좌파가 가진 허약한 당파성과 문제의식이 있다. 이행이후 한국 좌파의 허약성을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는 바로 스스로 좌파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정치없는 정파세력으로 존립하면서 계급의 정치화를 오랫동안 시도하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정치운동은 스스로 ‘진보’라고 주장하는 정치정당운동으로 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좌파’와 ‘진보’의 애매한 혼융이 바로 그것이다- 좌파는 진보좌파이면서 진보를 좌파 너머 외연으로 인정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80년대에 변혁운동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를 향한 체제변혁을 지향하던 운동)으로 불렸던 것이 좌파였다면, 87년 민주화 이행 이후에는 정초선거에서 집권한 노태우 정권 하에서 한편으로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강고한 가운데에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깨고 진보 대 보수의 구도를 만들어 갈 때 이들은 그래도 스스로를 유일한 진보로서 좌파, 그래서 ‘진보좌파’라고 자임하였다. 그러나  좌파는 이후 오랫동안 민주 대 반 민주의 구도를 무너뜨리거나 약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기는 커녕 ‘진보’라는 이름하에 민주세력과 범진보를 형성하면서 수렴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결과 역설적으로 진보는 좌파와 분리되었다. 좌 좌파는 진보의 일부이고, 진보는 좌파와 우파를 포괄하는 포괄적인 개념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하여 민주(개혁), 진보, 좌파의 3자의 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계급적인 좌파정치가 정파운동과 정당정치로 분화하면서 좌파중심의 계급정치의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 좌파는 정파로만 존재하고, 정치정당화의 길을 한참동안 모색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어느덧 민주노조운동에 전적으로 기대는 ‘정파’ 조직들이 되었다. 그들은 민주노총 중심의 노조정당이나 ‘노동자정치세력화’란 개념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민주노총이 노조운동에서 조직노동으로 자기전화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반계급적인 성격, 나아가 노조 내부의 반노동적 행위들 앞에서 침묵하거나 방관하였다. 정파조직들은 노조 선거에서 패권을 장악하는데 골몰했을뿐, 민주노총을 좌파적인 계급적인 노총으로 만들겠다는 정확하고 원대한 플랜이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이런 경향을 보이는, 즉 노조의 조합주의와 노동자중심주의 앞에서 좌파로서 자신의 독자성도 지도력도 가지지 못하고 노조에 의존하거나 기생하거나 독립적이지 못한 좌파를 ‘노조좌파’라고 부른다. 결국 정당정치가 아닌 정파운동으로서  오랫동안 민주노총 옆에 존속해왔던 현존 좌파 역시 좌파로서 정치적으로 구별 정립하는데 실패하였다. 심지어 이들 역시 지금은 스스로를 ‘진보좌파’ 혹은 진보/ 좌파라고 두 개의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한국에서 진보와 좌파는 분리될 수 있는가. 아니 좌파 아닌 ‘진보’가 가능한가? 좌파는 스스로 자신을 좌파로 주장하기 위해서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주장 아니 정체성부터 명확히 정립해야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운동의 분화를 보면, 87년 민주화이행후 한국에서 진보정당운동은 노동없이, 노동의 문제설정이 치열하지 못한 채, 지식인과 학자들과 돌아온 운동권들이 노조운동과 병행하여 독립적으로 진행해왔다. 그래서 이들중 일부는 ‘강단좌파’ 혹은 ‘시민적 좌파’라는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현장 노동과의 연계도 사실 부실하다. ‘진보’정당 역시 마찬가지다. 90년대 초까지 진보와 좌파가 하나였던 시절을 거쳐 이제 ‘진보’라는 외연은 갈수록 넓어지고 막연하지만, 이는 소위 진보진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노동정치’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노동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노동 현장과 일상적인, 조직적인, 투쟁적인 결합력도 약한 진보정당세력이 어떻게 노동에 대한 좌파적, 진보적 지도력을 갖겠는가. 선거때만 나타나서 표 달라고 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자유주의 정당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승리 21, 그리고 민노당은 노조 기반의 정당이고, 노조가 가장 많은 내부 발언권을 행사하지만, 그 정당도 결국 ‘노동’없는 진보정당의 하나가 돼버렸다. 사실 민노당의 사례는 흥미롭다. 노조기반의 정당, 사실상 조직노동이 주축이 되어 만든 정당이지만, 이 정당이 노조현장과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인가는 그 강령과 활동방식, 의정 활동등 여러 면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노동자 농민 쁘띠부르조아지를 포함한 계급연합정당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할듯하다. 또한 NL(민족해방)계열, 즉 민노당의 주류였던 분파가 가진 ‘민족문제’와 노동에 대한 모호한 입장 탓도 있다. 민주당 다수파였던 이들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을 이유로 ‘김대중 퇴진’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 또 그 과정에서 심하게 의회주의정당으로 변질되면서 현장과의 결합이 약한 탓도 있다.

대표적으로 민노당이 내세웠으며 가장 인기를 모았고 스스로 가장 중요시했던 정책 강령인 ‘무상급식’, ‘소상인 살리기’, ‘금리 낮추기’등등이 어떻게 노동강령일 수 있는가. 그외에 노동시장의 개혁,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시도, 그리고 노동과 연계된 조세개혁, 부동산개혁, 교육개혁등등이 체계적으로 있었는가. 심지어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직 도입 과정에서 민노당의 갈짓자 행보는 과연 노조정당의 의회주의에 어떤 기대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을 뿐 아니라, 이 정당이 계급정당으로서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요약하면 민주화이행이후 민주주의는 겉으로 보면 노동없는 진보정치, 진보없는 노동정치의 역사다. 그리고 그 초창기에는 노조가 주도한 정당화의 문제가 부각됐고, 그 과정상에는 진보정당에서의 노동 부재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둘 다 문제다. 결국 ‘때늦은’ 노동정치의 시작과 ‘때이른’ 진보의 ‘신좌파’화 혹은 탈노동화의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동안 진보와 노동이 서로의 존재 부재로 인하여 고통받았을 때, ‘노동없는 진보정치와 진보없는 노동정치’의 표면을 걷고 보면, 정작 시야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은 조합주의와 조직노동을 넘어서는 ‘계급’의 문제의식, 그리고 진보와 노동자주의 양자를 뛰어넘는 좌파의 이념적인 지도력(헤게모니)이다. 결국 정치적으로 계급정치 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라는 두 가지 정치세력화의 방식만이 쌍생아처럼 나란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어느 것도 좌파 중심의 계급정당은 아니다.  ‘
진보정치’라는 단어 앞에 아무리 여러 새로운 주체들, 즉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민주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를, 그리고 이제는 그 모두를 버무린 ‘민주개혁진보’ 연합을 붙인들, 그것은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들 단어들, 즉 민주 개혁 진보는 이미 오랫동안 ‘자유주의 정치’안에 포섭된 ‘기표들’일 뿐이다.3)

지금은 계급없는 진보정치를 벗어나 계급정치와 계급정당을 세우고, 좌파없는 노조정치를 벗어나 좌파중심의 계급정치를 세워야할 때다. 자유주의 정치로부터 벗어나는 독자적인 한국의 노동계급정치(working-class politics)의 시작은 여기에 달려있다. 나아가 계급적 관점의 좌파정치가 바로 설 때야말로, 자본주의 철폐를 향한 사회적 계급적 동맹정치도 가능하다.


1) 이상 논지에 대해서는 권영숙, “한국 자유주의의 한계와 노동좌파의 위기: 87년체제 전환 이후의 방향과 가능성”(2022, 민교협 정치대토론회), “한국 자유주의의 한계와 연합정치의 가능성”(2011, 비판사회학대회), Young-Sook Kweon (2008, Columbia Univ. Diss.) 참조.

2)  이 글에서 ‘노동운동’은 단지 노조 혹은 노조운동으로 한정하지 않고, 노조운동, 정치적 노동운동, 그리고 노동의 정치적 사회적 동맹정치로 넓혀서 보는 개념이다. 그리고  필자는  ‘노동’ 혹은 노동운동’은 하나의 단일한 전체(entity)이나 통일체 혹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시각에 서 있다. 즉 “노동운동, 노조운동, 조직노동은 모두 질적으로 구분해야하는 개념인 동시에, 이들 간의 경계는 상호 유동적이며 시간 속에서 그 질은 변화할 수 있기도 하다. 대체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노동운동은 노동3권이 보장되고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로 제도적으로 포섭되어 가는 가운데 점차 ‘노조운동’으로 일원화되고( 혁명운동, 변혁적 정치운동과 분리), 나아가 노동조합원들의 조직된 이해를 배타적으로 우선적으로 대변하는 ‘조직노동(organized labor)’으로 좁혀진다. 하지만 때로 역진적인 방향, 즉 조직노동에서 ‘노동운동’으로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혹은 일국적 노동운동 내부에서 3가지 경향성이 혼재돼 상호 긴장하고 갈등하고 경쟁하기도 한다”. 권영숙 (2017), “민주화이행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전환과 시기 구분, 1987-2006”, <사회와역사> 115집 참조. 위 출처 286쪽. 

3) 그 점에서 2024년 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위성정당으로 내세우며, 진보정당 일부와 ‘시민사회’를 끌어들여서 만든 정당의 이름이 ‘민주개혁진보연합(가칭)이라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름마저도 민주,개혁,진보세력등 모두를 끌어들인 정당을 위성정당으로 만들어서 민주당이 ’맏형‘이 되어 구사하는 자유주의 헤게모니하의 민주개혁진보정치, 이것이야말로 내가 자유-노동동맹(lib-lab coalition) 정치라고  분석하였던 것이다 (2008년 박사논문 및 2012년 “한국 자유주의의 한계와 연합정치의 가능성” 발표문). 이것이 이름이나마 가시화되기까지 12년이 흘렀다. 그만큼 민주화이행이후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정치는 민주화의 효과를 홀로 독점하고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을 제한하여도 문제없었고, 그동안 급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중 소위  ’386‘은 독점적인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한 부분일 뿐이다.  왜 자유주의 비판이 아니라 386 비판이 득세하고, 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비난이 이들에게 집중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이다)

댓글 남기기

Social media & sharing icons powered by UltimatelySocial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