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보수적 남성, 자유주의적 여성

보수적 남성, 자유주의적 여성

: 전세계 20대 남녀의 성별 이념적 편차, 그리고 한국 특이성의 분석

2024년 2월 22일  / 오늘의 챠트 Chart of the Day
<전망과실천> 편집부

20대 성별 이데올로기 편차, 보수적남성, 자유주의적여성

지난 30여년 동안 전세계에서 벌어진 가장 흥미로운, 공통적인 사회현상 중 하나는 성별(gender)로 사회적, 정치적 지향이 역사상 유례가 없을만큼 각기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해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정치의식에 간극이 커지고 있으며, 그 발현 양상은 때로 전쟁의 방식(폭력)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선봉에는 흥미롭게도 한국이 있다.

Gallup, Financial Times 

위의 챠트는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Gallup이 지난해 가을 전세계 주요 국가를 상대로 18-29세의 젊은 층 남녀간에 정치적 태도에 차이가 있는지를 조사해 올해 초 발표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특히 지난 10여년 사이에 젊은 남성들은 보수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그에 반해 젊은 여성들은 오히려 점점 더 자유주의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allup의 조사 결과는 언론 및 사상, 표현의 자유, 인종 및 LGBTQ 이슈와 낙태권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설문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따라서 나라마다 그같은 질문에 대한 기본적 사고가 다르기 때문에 각국별 상대 비교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영국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젊은층 남녀 간에 이같은 사회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의식에 큰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 중에서도 특이하다. 젊은 층 남녀간에 이데올로기적 정향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Gallup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 층 남성은 단지 급격히 보수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보수화의 정도도 세계에서 가장 극심하다.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에는 이민자 문제와 인종 갈등이 심각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젊은 층의 보수화를 설명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이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민자나 인종 갈등이 핵심 이슈가 된 적이 없다.

<Financial Times>는 이 현상에 대해서, 한국의 경우는 2015년을 전후해 불붙기 시작한 MeToo 운동의 여파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서유럽의 국가들 대부분 이미 MeToo 운동 이전부터 젊은 층 남녀 간의 이데올로기 간극이 커져가고 있었다. 따라서 MeToo가 ‘핑계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이 운동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갈등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젊은 층이 다른 나라의 젊은 층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인구압력’이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남아선호 사상에 의해 단지 낙태만이 아니라 선택적 낙태가 2000년대 초반까지 극심하게 행해졌다. 이 시기 남녀 성비는 평균 1.10:1을 넘었으며(자연성비는 대략 1.06:1), 대구 등 일부 지역은 1.35:1까지 벌어진 적도 있었다.다른 말로 해서 한국의 20대와 30대 중,후반까지는 남녀 사이에 ‘인구학적 숫자’ 차이가 극심하다. 이들 세대가 짝짓기 연령이 되면 당연히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여성의 ‘가치’가 상승한다(이것이 페미니즘의 숨겨진 인구적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짝짓기에 실패하거나 혹은 도저히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한 집단 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첫째는 ‘강탈’이다. 이는 단지 강간과 같은 물리적 폭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집합적으로 남자를 선택하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파손’이다. 어떤 필수적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자들은 이 재화를 ‘훼손’함으로써 그 가격을 떨어뜨려 자신이 그 재화가 필요 없다는 것을 과시하거나, 혹은 아주 싼 값에 획득하려고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이른바 ‘반페미’ 담론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짝짓기 경쟁에서 실패한 ‘도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 이면 싼 값에 많은 재화를 획득하려는 것이 집합적 목표이기 때문에 매우 ‘멀쩡한’ 남자들도 이 흐름에 동참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웃지 못할 역설에 도달한다. 

<Financial Times> 한국 세대별 성별 가족 구성 의사 

위의 챠트는 한국에서 각 세대 별, 성별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의식을 알아보기 위한 문항에 대한 답변이다. “여성들은 직장이 있으면서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를 원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세대별 성별로 조사한 것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은 여성들이 그렇다는 의견이, 한국 남성은 여성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나이 불문하고 더 높다. 그 중에서도 특히 18-44세의 이른바 결혼 적령기, 가임기의 여성들은 같은 또래의 남성들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로 그같은 견해에 동의했다. 반면 이른바 ‘결혼 적령기’의 한국 남성들은 같은 연령대의 여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직장과 결혼(가족)을 동시에 원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훨씬 낫다. 

이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한국 여성들은 결혼하고 가족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데, 한국 남성들은 “한국 여성들이 결혼, 가족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남성들이 한국 여성에 대해 갖는 편견, 또는 피해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일 이것이 근거없는 피해의식의 결과가 아니라면, 이 조사 결과를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설명은, 젊은 남성들이 보기에 “한국 여성들이 결혼과 가정을 원하기는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한국 남성들을 상대로 하는 욕망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여성들은 더 나은 남성들을 원하며, 이 기준에 못미치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일반(또는 결혼 및 가정)을 거부한다고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한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편의적 왜곡에 따른 젠더 갭gender gap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남녀간의 적대를 야기한다.

나아가 이런 의미에서 한국 남성의 ‘보수화’는 전통적인 ‘가치’의 수호, 예컨대 가족을 이루고 세대를 지속하려는 열망과는 거리가 있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기 때문에 더욱 ‘보수적’인 의식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 의식은 단지 인구 압력과 사회적 이동의 희박성(자산계급이 고착화되면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사실상 박탈된다) 때문에 자연 발생적으로 튀어나온 ‘반자유주의적’ 의식에 불과하다.

만일 이들이 전통적 가치를 지향하는 측면에서 여성에 비해 ‘보수적’이라면, 이들 세대가 전체 인구 중 중심이 되는 십여년 뒤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이들이 위의 맥락에서 ‘반자유주의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이들은 더욱 파시스트화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왜냐하면 집합적으로는 개인적 욕망의 해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을 넘어서는 더 높은 존재(국가)에 자신을 위탁해서 성적, 세대적 착취를 실현하는 경로가 가장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개혁 신당’, 이른바 ‘이준석 돌풍’으로 일컬어지는 한국 정치 지형 변동의 인구학적 배경이기도 하다. 이들은 ‘개혁적’ 집단이 아니라 짝짓기에 눈이 멀어, 혹은 짝짓기 실패로 인한 패배감으로 인해 하체가 뇌를 지배한  bandit에 불과하며, 사실 그런 점에서는 매우 ‘새롭다’. 그리고 이들의 씨앗은 이미 수 십 년 전에 뿌려진 것이며,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그 떡잎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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