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황제’가 노동자 파업을 격려할 때, 제국은 다 속셈이 있다

민노연 창립식_087

'황제'가 노동자 파업을 격려할 때, 제국은 다 속셈이 있다

: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자동차파업 지지 시위 배경

2023년 10월 4일 / 국제 노동/운동 동향
<전망과실천> 편집부

미국자동차노조(UAW), 임금인상투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차등임금제

지난 9월 27일(현지 시각)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디트로이트에서 파업중인 미국자동차노조(UAW)의 피켓팅 시위에 참가하여 노조를 격려하고 파업을 지지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바이든만이 아니다. 차기 대선의 유력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UAW 파업 지지 의사를 지난 주에 밝힌 바 있다.

관례적으로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노사관계에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 보다는 ‘중재자’로서 자신을 내세우기 때문에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블룸버그통신).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금의 미국 노동체제를 형성하는데 있어 가장 큰 공헌을 한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항공관제사 파업에 직접 개입하여 노조를 분쇄하는데 앞장섰다. 영국 대처 전 총리의 탄광 파업 분쇄와 항만 노조 분쇄와 더불어 이 사건은 서구의 노동체제를 재구조화했으며, 그 결과는 지난 40여년에 이르는 장기적인 노조 가입율 하락 및 노동쟁의의 감소 그리고 정치적으로 노동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은 미국 대통령은 노조의 파업에 가장 노골적이고 선동적인 외부 행위자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 UAW 피켓시위 동참 현장. 옆에 선 이가 숀 페인 UAW 위원장. 출처: UAW 홈페이지

그렇다면 이번 미국자동차노조 (UAW) 파업에 바이든 대통령이 파업 노동자들과 함께 피켓팅 시위에 동참한 것은 어떤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만들어낼까? 바이든의 ‘노동 투쟁 지지’의 정치적, 구조적 의미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이번 파업을 둘러싸고 UAW와 자동차 3사(GM, 포드, 스텔란티스-구 크라이슬러) 사이의 쟁점을 살펴보자.

서구 언론에서 가장 크게 부각하는 것은 임금이다. UAW는 향후 4년에 걸쳐 40%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애초에는 46% 인상을 주장했다가 다소 후퇴했으며, 바이든 방문 직후 UAW가 임금인상 요구액을 30%로 낮췄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동시에 UAW는 주당 32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동차 3사는 각기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향후 4.5년에 걸쳐 최대 약 20%의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고 있다(이를 매해 임금인상률로 나누면 5% 미만이 된다). 주당 노동시간은 가변적이다. 이 사안 자체는 협상 테이블에서 ‘결정적’인 것이 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쟁의의 성격이 단지 임금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임금만큼이나 노조에서 중시하는 사안은 이른바 노동자의 고용형태 지위에 관한 것, 즉 비정규직 문제다. UAW는 비정규직은 90일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하며, 비정규직 기간 동안에도 성과급과 4대 보험등(미국에서는 fringe라고 불린다)은 모두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임금에 대해서는 자동차 3사는 상당히 유화적이지만(GM의 파인 CEO는 노동자들의 40% 인상 요구안에 대해 심정적으로 공감한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고용 형태에 대해서는 거의 접점을 찾기 힘들다. 포드를 제외한 GM과 스텔란티스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포드도 부분적으로만 정규직 전환을 수용한다. UAW가 파업 확대를 경고하면서도 포드차 공장에 대해서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고용 형태에 대해 훨씬 수용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른 쟁점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제도에 관한 것이다. 미국 자동차 회사의 임금 지급 방식은 연공서열제는 아니지만 숙련도나 일정 기간의 근무 연한에 따른 차등 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다(tiers system). UAW는 이 차등 임금제를 완전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비숙련공도 90일 지나면 동일 임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자동차 3사가 모두 거부하고 있다.

임금에 관해서는 이른바 ‘COLA’라고 불리는 표준생계비 모델을 적용할 것인가도 쟁점이다. 임금 인상율과는 별개로 표준생계비 모델에 따른 임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기업이 이를 수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사안은 노조와 회사의 안이 매우 근접해 있다. 이밖에도 퇴직자에 대한 의료보험 제공, 자사주 매입과 성과급의 자동 연계 조항등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요약하면, 이들 사안들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은 임금과 고용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언론 보도대로 UAW가 임금인상폭을 30%로 낮췄다면, 표준생계비 모델 적용에 따른 추가 인상 예상분을 감안하면 회사쪽의 제안폭이 25% 정도에 달하기 때문에 의외로 타결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바이든 대통령도 피켓 시위 현장에서 기자들이 “UAW의 40% 임금 인상 요구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했는데 적어도 ‘임금’에 관한 한, 현 민주당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인상’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 봄의 철도노조 파업에서도 미국 행정부는 중재과정에서 임금 인상안에 대해서는 노조의 편을 들었다. 반면 철도노조 일반 조합원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했던 유급병가 사안이나 인력 확충 문제는 강력하게 회사안을 지지했고 결국 노조는 이 요구안을 관철시키는데는 실패했다(이 때문에 평조합원들이 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UAW 노조 조합원들이 “차별임금제 철폐”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UAW 홈페이지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왜 임금 인상을 지지할까? 심지어는 대통령이 직접 파업 시위 현장에 찾아와서까지. 이것을 친노조 행보라고 단순히 해석하는 것으로 그쳐도 될까? (한국의 친노조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미국의 오바마든, 바이든이든 친노조 행보를 보일 때마다 거두절미하고 찬사를 보내고, 한국의 정치를 비교하곤 한다만)

단기적으로 정치적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29일부터 미 하원은 공식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비록 의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지는 못하겠지만(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바이든으로서는 정책적 실패나 재임기간 중의 부정 행위보다는 그 이전 오바마 정권하에서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개인적 비리와 특히 차남인 헌터 바이든의 범죄 행각을 입증할 자료들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내년 대선에 출마를 강행하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지지세력’을 새삼스럽게 확보해야 한다. 더구나 디트로이트(미시간주)는 미국의 러스트벨트(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인해 산업공동화된 지역)의 대표적 도시이며, 차기 대선에서 결정적 변수가 되는 곳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바이든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프로그래시브'(진보)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재포장하려는 기획을 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노조를 자신의 정치적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인플레이션 하에서 실질 임금이 하락하는 노동자 대중들에게 ‘임금’이라는 당근을 던지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노동자 파업 대열에 동참하는 대통령만큼 ‘진보적’인 것은 없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었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조차도 그런 적은 없었다(자본가들의 노동파괴에 동참한 대통령은 일일이 거명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넘쳐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이든이 ‘임금’을 넘어선 고용형태나 임금 결정 방식에까지 노조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미 철도파업 때 다 드러난 사실이다. 동시에 임금 인상은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금융통화정책에서 ‘inflation anchor’라고 불리는 개념이 있다. 인플레이션 심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만일 인플레이션 심리에 불이 붙는다면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압하기 매우 힘들다.

바이든 행정부는 ‘노동’을 빌미로 삼아서 이 심리를 조장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로는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충격과 지난 2020년 3월 이후 약 2년 여에 걸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무분별한 통화 공급 정책의 결과이지, 임금이나 소비와는 무관하다. 그런데 만일 현재 조건에서 인플레이션 심리의 고삐를 풀어버린다면(노동이 적당한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금리는 지금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민주당에 유리한가? 또는 미국에 유리한가? 바이든 정권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반면 월가의 대표격인 JP Morgan 은행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 요인(추가적 인플레이션)이 생긴다면, 금융 시장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며, 그 결과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27일 CNBC 인터뷰). 즉, 미국의 자본가들 사이에서도 서로 완전히 동의된 정책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의 노조는, 노동운동은 과연 이런 정치경제학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들의 행동과 전략을 결정할 수 있을까? 얼마나 이런 맥락을 고려하고 있을까?  또는 아예 그런 것들이 고려조건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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