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제국의 숙정, 혹은 정화 : 미국의 soft power의 자진 해소, 그리고 전지구 시민사회의 허상

제국의 숙정, 혹은 정화 (The Empire Purge)

미국의 soft power의 자진 해소, 그리고 전지구 시민사회의 허상

2025년 2월 15일 / 글로벌 리포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행정개혁위원회(DOGE), 미국국제개발처(USAID),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 체제전환(regime change), color revolution, 비정부기구(NGO), 시민사, 재정 개혁,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soft power, 각성주의(Wokeism)

글을 쓰면서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취임하자 USAID (미국국제개발처) 예산 배정을 완전히 중단하고 전면 대개혁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놀랍지만, 그에 대한 반응들은 더 당황스럽다.
이 기금은 60년대 케네디 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 수출'(the democracy promotion) 기획, 70년대 말 이후 ‘저강도전쟁’ 등 주요한 국제적 변동에 연루된 것이 바로 이 기금이다. 이 기금으로 민주주의를 수출하고, 여러 나라에서 민주화 이행을 독려하고, 비정부기구를 지원하며 , 시민사회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이익과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폭력이 필요하다면 전쟁을 불사하고 전쟁을 용인하였고 전쟁을 지속하였다.

지난 70년대 말에 미국의 대외정책은 고강도전쟁이 아닌 저강도전쟁으로 돌아섰고, 국무부와 CIA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리고 미국국제개발처(USAID)와 민주주의재단(NED)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고강도전쟁의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이다.  2차대전이후 최초로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민주주의 수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USAID를 처음 만든 케네디 정부가 파나마 운하를 점령하고 이후 남미와 중미에서 반정부 세력에게 ‘전쟁자금’을 꾸준히 대거나 ‘콘트라 반군’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일삼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수십만의 수백만의 좌파, 운동가들과 노동자 민중을 총살하고 매장하고 수장하고 학살하는데도 미국의 ‘검은 돈’은 흘러들어갔다.
남한내에도 이들 기금의 원조-간접원조를 받아온 단체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USAID에 관련된 한국 내부의 인물들, 사회단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동아시아 국제연대”에 대한 공저에서 어떻게 비정부기구를 통해서 미국의 해외 국가 노조/운동 통제와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썼었다.

하지만 미국내 정치집단들 사이의 권력투쟁의 결과로 터져나오는 폭로들을 두고, 국내 언론들은 ‘심층취재’해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USAID에 대해서 거의 의문 자체를 제기하지 않는다. 트럼프 정권의 급작스러운 중단조처를 두고 나오는 반응이란 것이, 트럼프 ‘미치광이’ 정치란 식의 비판 일색이다. 이런 도착적이고 놀라운 상황이라니. ‘국제개발’이라는 명목, ‘해외 원조’라는 명목으로 단지 경제 개발자금을 대주는 것을 넘어서, 자국내의 사회운동, 비정부기구등에  자금을 대주면서 ‘돈’과 시민사회의 커넥션을 만드는 이 USAID라는 기구 자체가 괜찮다는 것인가. USAID 원조가 문제없다는 것인가.  더구나 그것이 국가에 대해서 ‘독립성’을 가져야하는 비정부기구와 사회운동조직들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에 집중되어 있는데 말이다. 자국의 국가로부터 자율성은 있어야하지만,해외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자율성 여부는 문제없을까. 

그렇다면 이런 반응이 전제로 하는 의식은 이런 것인가? 즉 미국의 대외원조중에서 ‘해외 국가들의 사회운동, 비정부기구에 대한 기금인 USAID 받는 것이 괜찮다? 그리고 동유럽부터 아시아까지 미국의 입김 속에서 내부 시민사회를 형성해야겠다? 심지어 그것으로 소위 사회운동을 해야겠다? 정말 이렇게 문제없이 바라볼 일인가. 이것은 제도적 포섭을 넘어서 미국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한 문제의식이 바닥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과도 같아서 씁쓸한 일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홈페이지와 <전망과실천>에 이에 대한 분석 글을 준비했다. 어마어마한 폭로가 미국 정부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 내용을 확인한 것까지 유형별로 분석하였다(국내에서는 처음이다). 그리고 왜 트럼프는 이 폭로를 하였는가의 맥락, 그 속에서 국가의 ‘당파화’와 제국주의 헤게모니의 의미에 대해서 다뤘다. 아직은 잠정적인 글이다. 다른 글보다 급하게 게재하려고 한다.

1. 트럼프 개혁의 주체

트럼프 정권의 첫걸음은 예상대로 요란했다. 그러나 타겟은 예상 밖이었다. 트럼프의 오른팔인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행정개혁위원회(DOGE :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 ;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를 급습하여 ‘개혁’의 시범 케이스로 삼았다.(한국 언론에서는 이 부서를 정부효율부라고 직역하는데, 이는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이 부서는 department라는 명칭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직급이나 편제가 ‘부’는 아니며, 의회에서 법적인 성격을 부여받지도 않았다. 대통령 행정명령에 의해 설립된 조직이다. 따라서 한시적인 특수목적을 가진 위원회 성격에 더 가까우며, 행정개혁위원회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DOGE가 단행한 것은 단지 ‘행정 효율화’가 아니다. 신임 트럼프 정권의 대내외 정책과 ‘정치’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변화의 한 자락이었으며,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제국의 재구성이었다. 그것은 과연 제국의 숙정일까 정화일까? 엠파이어의 숙정은 뱀파이어이길 멈추는 첫걸음일까?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USAID 폐쇄 정책에 항의하여 소속 공무원이 USAID 본부 건물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Columbia Journalism Review>

먼저 말썽 많은 DOGE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DOGE는 ‘임의 기구’다. 즉 의회를 통과한 법에 의거해 설립된 정부 기관이 아니다. 단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의해 설립된 임시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이같은 임시기구가 법률에 의거한 정부기구들(각 부를 포함하여, 외청등의 독립기구들)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민주당에서는 DOGE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이들의 행동이 ‘불법적’이며,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근본 문제는 대통령이 내릴 수 있는 ‘행정명령’에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거의 ‘선출직 황제’에 버금간다. 게다가 200여 년 전에 건국할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직면하기 때문에, 여전히 법적으로는 ‘회색지대’에 남아 있다. 대통령의 권한과 의회의 권한 사이에 헌법적 충돌(consititutional crisis)이 발생할 때는 ‘정치적 타협’에 의해서나 혹은 대법원의 판례에 의해 결정되곤 했다. 전자의 역사적인 예로는, 19세기 후반 미국은 대통령 선거인단을 확정짓지 못하고 민주/공화 양 당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달아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려고 한 사건도 있었다. 이는 결국 민주당 후보가 자진 사퇴하면서 해소되었지만, 그 대신에 민주당이 지배하는 남부의 인종차별체제 (짐 크로 체제)에 대한 공화당의 묵인이 뒤따랐다. 후자의 예로는 우리가 잘 아는, 조지 W. 부시 주니어의 대통령선거 부정선거 논란을 대법원이 당선으로 확정한 일이 대표적이다.

최근 가장 핫한 이슈인 USAID (미국국제개발처)의 경우에는 좀 더 특수하다. USAID는 지난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설립된 부서다. 따라서 공화당은 행정명령으로 탄생한 부서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해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USAID는 지난 1968년 의회에서 법률로 그 존재를 보장한 부서이기도 하다.
따라서 설립이 법률에 의거한 것은 아니지만, 존재 자체는 법률로 보증된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머스크의 DOGE가 마음대로 USAID를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결국 최종 결정은 연방대법에서 내려지거나, 혹은 트럼프가 적당히 양보해서 완전 해체는 아니고 다만 그 기능을 대폭 축소시키는 선에서 타협을 볼 수 있다.

또한 USAID는 부서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감독 권한은 의회(상원 외교위원회)에 있다. 따라서 미국 의회가 DOGE가 ‘발견’했노라고 난리치는 이 사안들을 몰랐을 리가 없다. 즉 내부적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심지어는 일부는 그동안 외부로 노출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다만 비판자들을 ‘음모론자’, ‘극단주의자’로 치부했을 뿐이다). 여기서 DOGE의 ‘기능’이 확인된다; 즉 DOGE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알려져 있었던, 그리고 서로 담합했던 내용들을 대중들에게 ‘폭로’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만 폭로의 방식과 타이밍에는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USAID만큼 스캔달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80-90년대에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했던 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거의 뉴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 (머스크의 DOGE는 NED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지난 10일 트럼프가 NED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만, 필리핀 등의 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이룬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USAID보다는 NED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 내 기구이기는 하지만 USAID와 NED는 각기 다른 조직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 USAID는 국무부 산하 기구이며 국무부의 대외공작 외곽기구인데 반해, NED는 CIA의 공개적 대외 공작기구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집합기억과 연대성,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2018) 참조)

애당초 DOGE의 목표라고 알려진, 행정개혁(효율화)나 예산절감, 중앙정부 축소는 실은 처음부터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연방공무원 숫자는 지난 1980년대 레이건 정권 이래 거의 변동이 없으며(지난 40여년간 350만명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증가한 것은 주 및 시, 군 공무원들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방정부는 이같은 주, 시, 군의 공무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실제 DOGE의 목표는 DOGE가 이뤄낸 성과들을 정치적으로 뻥튀기하여 그 여론을 바탕으로 관료주의 ‘철밥통’을 뒤흔드는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트럼프는 ‘Schedule F’라는 행정명령을 통해 공무원 해고 및 고용조건 유연화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장치들을 준비하고 있다. 즉, 공무원 숫자 감축 및 정부 축소는 그저 ‘수단’에 불과한 것이며, 기존 관료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에 동조하는 새로운 인물들로 대체하기 위한 밑밥깔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DOGE와 마찬가지로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들고 나온 교육부 해체는 이와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주에 교육 관련 정책 결정권을 돌려준다는 것(교육부는 지난 1978년 카터 대통령에 의해 창설되었다), 다른 하나는 교육부 해체를 통해 대학 지원을 차별화함으로써 기존 대학 교수, 연구자들을 대체하는 제도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트럼프 정권의 눈에는 기존 대학은 신자유주의자(따라서 트럼프주의자들의 눈에는 극좌), 프로그레시브(극좌), 그리고 극히 소수의 극좌 및 anti-zionist(따라서 극좌)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이를 새로운 전문인력으로 대체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걸릴 뿐만 아니라, 실은 거의 가능하지조차도 않다.
따라서 아예 대학(특히 인문학 관련)을 약화시켜 물갈이를 하고자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미국의 지성계는 보다 단순하며, 보다 더 무식해질 것이다. 어차피 인공지능이 더 뛰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차후에 빚어질 인간적 현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인다.

2. 무엇이 ‘폭로’되었는가?
– 트럼프는 미국의 해외 공작을 어떻게 ‘누설’하였는가?

USAID에 대한 전면 개혁을 단행하면서 트럼프 정권은 그동안 USAID의 해외활동 전체를 폭로하는 행위자가 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즉 ‘폭로’된 내용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NGO 관련이고, 둘째는 언론 관련이며, 셋째는 가치(value)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심해야할 점이 있다. 현재 ‘폭로’라고 나온 내용들은 USAID에 관한 한, 그 활동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며, 지난 행적 전체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머스크와 공화당은 ‘선택적’으로 정보들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활동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같은 폭로가 갖는 정치적, 전략적 의미를 가늠해 볼 수는 있다.

다음은 DOGE에서 확인된 USAID의 예산 지출 내역 가운데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다 (필자 번역).
– 몰도바에서의 ‘포괄적 참여적 정치 과정’을 위한 2100만 달러와 인도에서의 유권자 투표 증대를 위한 2100만 달러를 포함한 ‘선거 및 정치 과정 강화 컨소시엄’에 4억 8600만 달러.
– 방글라데시에서의 정치 지형 강화에 2900만 달러.
– 네팔에서의 ‘재정 연방주의’를 위해 2000만 달러.
– 네팔에서의 생물학적 다양성 대화를 위한 1900만 달러
– 리베리아에서의 ‘유권자 신뢰’를 위한 150만 달러.
– 말리에서의 ‘사회적 응집’을 위한 1400만 달러.
– ‘남부 아프리카에서의 포괄적 민주주의’를 위한 250만 달러.
– 코소보, 이집트 등에서의 사회/경제적 응집 강화를 위한 ‘지속가능한 재순환 모델’ 개발에 200만 달러
– 체코 프라하 ‘Civil Society Center’ 건설을 위한 3200만 달러.
– 캄보디아에서의 독립적 목소리를 강화하기 위한 지원 230만 달러.
– 캄보디아 청년들에게 기업 운영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UC Berkeley 대학에 위탁 지원금 970만 달러.
– 젠더 동등성과 여성 지위 강화 거점 센터에 4000만 달러.
– 세르비아의 공공조달 개선에 1400만 달러.

이외에도 수십억 달러가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및 동구에서의 ‘시민사회’ 건설과 ‘서구적 가치 함양’ 관련 사업에 쓰였다. USAID의 활동을 크게 3가지 나눠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폭로 1. 비정부기구(NGO) 지원

DOGE는 약 420억 달러에 이르는 USAID 전체 예산 가운데 180억 달러가 ‘의심스러운’(questionable) 비정부기구에 지원되었으며, 전액 삭감되고 관련 활동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왜 정부 예산으로 비정부기구(NGO)를 지원하느냐 하는 것이다. 당연히 머스크가 선동하듯이, “정부 지원을 받는 기구가 비정부기구라고 불릴 수 있느냐?”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즉, 그동안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립적, 객관적, 독립적(각 정파에 대해서)으로 인정되었던 NGO들이 과연 중립적, 객관적, 독립적일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여기에서 트럼프 정권이 노리는 ‘효과’는 비정부기구(사회단체)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거나, 혹은 여론을 나쁘게 만듦으로서 이 단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간다. 서구에서도 오늘날처럼 비정부기구가 ‘활성화’된 것은 지난 8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사회운동조직(social movement organizations)으로 불렸다. 세계화와 더불어, 그리고 레이건 이후 정부의 업무를 민간에 ‘위탁’(outsourcing)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NGO가 성장하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필요 때문이기도 했다. 정부가 사회를 ‘통제’하는 일을 사회 내부의 기관에 맡김으로써 정치적 억압이라는 본질을 숨기고 비용을 절감하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에 위탁하게 되면 이같은 작업은 정부의 업무처럼 ‘중립적’이거나 혹은 순수하게 ‘절차적’인 관점에서 행해지기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사회 내의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정치적 편향을 갖는 것을 억제할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사회 단체 사이에 암묵적 타협이 이뤄지는데, 그것은 당대의 보편적 정치적 이념으로 여겨지는 가치들의 범위를 넘지 않는 한, 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정파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outsourcing 작업을 하기 위한 플랫폼이 USAID였다. 부서 명칭과는 달리, USAID는 해외를 대상으로 한 업무만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미국 내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개입한다.
예컨대 DOGE가 ‘의심스러운’ USAID 예산 집행의 사례로 꼽은 “DEI(다양성, 동등성, 포괄성)에 대한 군인들의 커뮤니케이션 어려움을 교육하기 위한 가상 훈련” 업무에 수백만 달러가 지출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정치적 각성주의(wokeism)을 군인들에게 세뇌시키는 훈련 코스에 USAID 예산이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위탁받은 교육 기관은 독립적인 비정부기구인가, 정부 기구인가? 이 예산은 특정한 가치(DEI)를 전파하는데 쓰였는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루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정부의 해외재정지원 수급단체 등록법에 항의하는 비정부기구 회원들이 성조기와 EU 깃발,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Geostrategy>

폭로 2. 가치 동맹의 네트웤

두 번째 문제는, 그리고 이것이 이론적으로, 국제적으로는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시민사회’와 NGO(비정부기구) 자체에 관한 것이다.
USAID의 예산 집행 내역을 보면 특히 동유럽에 관한 한은 동유럽 국가들의 시민사회 형성은 외부, 즉 미국과 EU의 자금 지원으로 운영되는 비정부단체들의 활동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이후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그루지야(죠지아)의 경우, 핵심 쟁점은 해외지원을 받는 NGO에 대한 정부등록법이었다.

날마다 수만명의 시위대가 거리를 메우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미국과 EU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 사회단체 소속 회원들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주요 자금줄 중의 하나가 USAID인데, 만일 USAID가 자금 지원을 중단한다면 이들의 세력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들이 주장해온 EU 가입이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도입 주장도 약화될 것이다.

출처: https://www.azernews.az/analysis/231192.html

이는 언뜻 ‘민주주의의 후퇴’ 또는 ‘권위주의의 부활’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일 이같은 ‘민주적 가치, 제도’의 도입 자체가 외부의 ‘매수’(왜냐하면 이는 대중에게 공개되거나 합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나처럼 인권에 대한 좀더 급진적인 이해 방식을 제출하는 이들은, 이를 ‘강제’와 ‘합의’의 메카니즘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인권 역시 ‘전파’와 ‘유통’의 기제를 가진다고 본다. 나는 이러한 국제 인권 규범들의 등장과 확산, 그리고 그에 연동되는 온갖 조직들과 네트웍과 인물들을 ‘인권 체제’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마치 근대 이후 서구 제국주의가 ‘선교사’를 식민지에 보내 ‘교화’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이같은 민주주의를 ‘제국주의의 선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이미 1970년대 초반에 서구식 제도 및 가치의 이식을 옹호하는 신제국주의 이론들이 등장했었다. 이 이론들은 오늘날 ‘Alt-Right’론의 기반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Bill Warren의 <Imperialism: Pioneer of Capitalism>).

그리고 이같은 ‘매수’, 또는 지금 현재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표현을 따르자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비정부기구’라는 현실은 단지 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 경로를 밟은 동구권 국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USAID의 집행 내역을 보면, 유럽 선진국의 NGO에 대한 지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예컨대 USAID는 노르웨이의 난민 구호 단체에 수백만 달러를 지원해왔다. 그리고 이 단체는 국제적으로 난민 구호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DOGE가 USAID의 활동을 중단시킨 직후, 이 단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20여개국에 대한 난민 구호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미국인들에게 떠오르는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왜 미국은 난민 구호 활동을 지원하는가? 그리고 왜 미국 자체 기구가 아닌 돈 많은 서구 국가인 노르웨이의 NGO를 통해 지원하는가? 이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UJSAID가 미국의 대외정책 수행을 위한 ‘전위기구’, 즉 soft power의 실현 수단이며, 동시에 동맹을 만들고 유지하는 네트웍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재정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 단체(NGO)의 성격이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NGO들이 정부의 용역사업을 수탁받아 이를 수행하고 거기서 할당되는 인건비로 단체를 운영하며 사회적 권력을 유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지원없는 ‘사회’ 단체로만 이루어지는 시민사회가 어떤 모습이며,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질지는 몹시 의문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지원을 받는 NGO가 해외, 그것도 개발도상국에 존재하고 있다면 더욱 복잡한 질문들이 제기된다.

폭로 3. 프로파갠더 네트웤

아마도 가장 심각한 사례는 언론 분야라고 할 수 있다. DOGE에 따르면 USAID는 지난 회계년도에 약 4억 5천만 달러를 600곳이 넘는 전세계 언론사와 약 7,000여명의 언론인들에게 지원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약 90%의 언론사가 USAID의 지원을 받았다. USAID의 언론 관련 자금 지원은 개발도상국보다는 주로 선진국의 legacy media(신문, TV 등)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로이터통신사가 약 9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받은 것이다(USAID와 국방부 예산 포함). 그런데 지원 항목 명칭이 ‘large scale social deception/social engineering’(대규모 사회 기만 및 사회공학)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언론사가 ‘사회 기만’ 사업 명목으로 미국 정부 기구로부터 자금을 받는다? 자세한 사업 내용은 공개가 되어있지 않다(자금을 받은 곳도 로이터통신 본사가 아니라, 산하 자회사다). 어쨌든 제목만으로도 ‘언론’과는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트윗(X)으로 “극좌파 로이터는 돈 토해내라”고 말했을 정도다. BBC도 자금 지원 대상에 포함되었다. 논란이 일자 BBC는 자신들의 연간 수입의 약 8%에 해당하는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스스로 공개했다. 미국이 BBC에 자금을 지원할 이유가 있는가?

가장 많은 자금을 받은 곳은 AP통신으로 지난 5년 동안 무려 5,200만 달러를 받았다. 미국내 언론사들은 매우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원받았다. 구독료 명분이었다. 예컨대 NASA는 온라인 정치웹진인 <Politico>에게 연간 50만 달러를 지불했다. NASA가 컴퓨터만 켜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Politico>에 특별 구독료를 내는 것은 실은 구독료를 빙자한 ‘뇌물’이다. 그것도 NASA를 위한 뇌물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를 위한 뇌물이다.
<New York Times>, CNN, Washington Post, 월스트리트저널 등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이러고도 공정한 언론일 수 있느냐는 상상에 맡긴다(한국 언론들도 정부 지원을 받는다).

3. 국가기구의 ‘정치화’

DOGE의 행동과 선전선동은 직접적으로 미국 정치권에서 민주당, 더 넓게는 프로그레시브(신자유주의자 포함)를 겨냥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가치들을 부정부패로 몰아 공격할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그 사회적 기초인 NGO의 재정적 뿌리를 끊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반부패’, ‘예산절감’, ‘행정효율성’, ‘미국인을 위한 미국 세금의 투입’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수만명의 해고가 예정되어 있다.

트럼프 정권이 국가 기구와 관련 인사들을 ‘숙정’함으로써 초래되는 결과는 국가기구가 정권을 잡은 정당과 인물에 따라 줄을 서게 되며, 따라서 기존의 ‘중립적 국가’라는 환상이 깨어지고 ‘당파적(혹은 정파적) 국가(기구)’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전혀 새롭지 않다. FBI의 ‘전설’인 에드가 후버 국장은 창설 때부터 국장을 맡아 40여년간 정치인에 대한 사찰 정보를 움켜쥐고 죽을 때까지 미국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케네디, 존슨, 닉슨도 그렇게했고 포드, 카터, 레이건, 부시 부자, 클린턴, 오바마도 그렇게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여기에는 매우 미묘한 차이가 있다. 2016년 이전에는, 최소한 1970년대 포드 정권 이후에는, 국가 기구의 ‘당파화’에 한계가 있었다. 즉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갈등이 있더라도 그것은 밀실의 담합이나 타협, 흥정에 의해서 ‘해결’되었으며, 대중적으로 그 갈등을 노출하는 것은 최소화했다. 따라서 겉으로는 민주/공화 양 당이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은 그들은 정해진 대본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국가의 중립성’ 혹은 ‘관료제의 독립성’은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다(미국에서 ‘관료제의 독립성은 1880년대 후반 이후 확립된다).

흥미롭게도 이같은 ’협치‘의 관행을 깬 것은 트럼프가 아니다. 그 관행은 지난 2016년 대선을 거치면서 민주당에 의해서, 그리고 민주당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던 정보공동체(intelligent community; 미국내 외교 안보 관련 관료, 기업인, 학계 인사들을 총칭하는 용어)를 주도하던 안보업자들에 의해서 깨어진 것이다.
2016년 대선 선거 과정에서 튀어나왔던 ‘러시아 게이트’에서부터 시작하여 결국 1기 집권 말기 우크라이나 관련 탄핵 추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바이든 집권 하에서는 트럼프의 기밀누설 혐의 및 2021년 1월의 의사당 시위사태에 대한 특검으로 트럼프를 ‘사법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은 모두 민주당에 의해 정치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과거의 관행에서는 벗어난 것이었다.
심지어는 ‘불법’이 너무나도 분명했던 닉슨조차도 ‘사면’받았던데 반해, 트럼프는 아무런 ’협치‘의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즉 기득권의 담합이라는 관행을 깨고 트럼프를 ‘정적’으로 간주하여 완전히 말살하려 했던 것은 민주당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민주당이 했던 것을 그대로 되갚아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정치가 ‘경쟁’의 단계를 넘어서 ‘적대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최종적 결과가 국가기구의 당파화(partizanship)로 나타나고 있다. 일단 정치 세력들 사이에 이같은 ‘상호 배타적’ 정치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과거의 ‘정치’, 즉 엘리트들 사이의 협상 과정은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타도해야 하는 ‘절멸의 과정’으로 전화한다. 이는 근대 정치의 기원인 ‘내전을 회피하기 위한, 법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이같은 정치적 메카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이 궤도에서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다. 왜냐하면 엘리트들 사이의 타협으로 사태를 마무리짓기에는 이미 대중들의 분열이 너무 커져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정파는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자신들에 반대하는 정파를 법적, 도덕적, 경제적 수단을 총동원해서 ‘억압’하려고 한다.

Steven Levitsky(하바드대)와 Lucan A. Way(토론토대) 교수는 <Foreign Affair> 2월호에 게재한 “The Path to American Authoritarianism”(미국식 권위주의에 이르는 경로)라는 논문에서 이를 ‘competitive Authoritarianism’(경쟁적 권위주의)라고 불렀다.
이 정치 체제 하에서는 노골적이고 전면적인 독재는 행해지지 않지만, 각기 경쟁하는 당파들은 권위주의적 수단들을 동원하며 이를 위해 국가기구를 ‘정치화’(당파화)하려고 한다. 예컨대 사법과 행정의 정략화, 교육의 당파화 같은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과거에는 ‘시민사회’가 주요한 투쟁의 장이었다면, 앞으로는 국가기구가 저항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이같은 예상과 기대는 아담 셰보르스키의 최근 논문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그는 ‘Defending Democracy’(2024)에서 “대중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려고 할 때는, 민주적 기구들(democratic institutions)들이 그같은 위협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논리이다. ‘민주적 정권’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사법기관 등 국가기구와 사회단체 등)이 저항의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간에, 민주주의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선택이 나타나면 ‘민주주의 밖의’ 제도들이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뒤집어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는 자신의 존립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도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같은 역설은 이미 민주주의의 초기 이론가인 장 쟈끄 루소에게서도 발견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국가기구(즉 테크노크라트)나 NGO와 같은 ‘중립성’을 표방하는 제도들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마치 미국이 전례없는 새로운 ‘전체주의’ 체제에 들어갈 것 같은 우울한 전망인데, 역사적으로는 Levitsky와 Way가 정식화한 미국식 경쟁적 권위주의는 이미 한차례 행해진 적이 있었다. 이른바 ‘맥카시즘’ 시절의 미국(1947-1960)이 경쟁적 권위주의 체제였다.

그리고 맥카시즘 시절에는 Levitsky와 Way가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국가 기구들(state apparatus, 혹은 political/social institutions)들은 이같은 ‘덜 민주주의’(less democracy) 혹은 권위주의에 전혀 효과적으로 대항하지 못했다(예컨대 맥카시 상원의원이 흔든 정체불명의 세 페이지짜리 ‘간첩명단’으로 수 만 명의 관료 및 학자들이 쫒겨났다).
따라서 이른바 ‘민주주의자들’(즉 자유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미국의 향후 정치적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못할 것이다.

경쟁적 권위주의라는 개념틀에서 본다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사건들은 매우 흥미롭다. 한국의 현재 상태는 마치 2차 대전 이후의 헌법을 가진 193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정치적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가상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4. 트럼프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 이데올로기의 얽힘, 동맹의 협소함

DOGE 사태로 인해서 빚어지는 이데올로기적 혼선은 매우 심각하다. 예컨대 트럼프의 대외특사인 리챠드 그레넬은 <Radio Free Europe>과 <Voice of America>을 적시하면서 이들이 ‘국영언론’이며, ‘극좌파(ultra-left)들의 소굴’이라고 주장했다(그리고 이 트윗을 일론 머스크가 리트윗했다).

그런데 이 두 매체는 극좌는 커녕, 반공(anti-communism)을 모토로 하고 있다. 이같은 황당함은 한편으로는 트럼프 세력이 자신들의 이념을 ‘반공산주의, 친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세계관과 이해관계에 반하는 다른 정파들을 모두 ‘극좌’라고 규정하면서 벌어지는 희극이다.

이들에게는 Globalism(internationalism)은 극좌이며, LGBTQ는 극좌이고, woke도 극좌이며, 기후 위기 주장도 극좌이고, 복지국가(welfare state)도 극좌이며, (인종, 여성)차별반대도 극좌고, 재정적자도 극좌이며, 난민 허용은 극좌고, 이민문호 확대도 극좌이며, 무역적자도 극좌다. 즉,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극좌다(다만 회색지대로 fanatic, 즉 이슬람 광신도가 존재한다).

보다 요약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1970년 대 이후 50여년간의 신자유주의가 지칭하는 모든 것이 극좌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정권의 반신자유주의적 성격은 분명하지만, 반면에 자신들의 외연을 넓힐 가능성, 즉 새로운 동맹을 만들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이것이 아마도 이들의 가장 큰 약점일 것이다.

DOGE의 활동은 다층적이다. 국내적으로는 그동안 민주당의 하부 조직의 역할을 수행해온 국가기구 및 사회네트웤들을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단지 USAID나 NED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 단체와 연관된 수많은 언론 및 비정부단체(NGO)들이 해당된다. 이들 전부를 해체하거나 무력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상당기간 동안은 이들을 활동을 위축시키는 역할은 할 수 있다.

국내적인 또다른 기능은 연방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제스쳐’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이미 GDP의 100%를 넘었으며, 지난 회계연도의 경우 2.5조 달러에 달했다. 올해는 3조 달러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고작 수백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받는 USAID나 NED, 교육부 및 국제기구 분담금을 절약한다고 해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미 정부회계극(GAO)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정부 예산 가운데 약 2300억-5100억 달러는 유용되거나 낭비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만일 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그 때는 연방정부 재정에는 보탬이 되며, 이는 국채 수익률과 연준의 금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즉 금리 인하가 용이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난관이 있다. 미국 연방정부 예산은 극도로 경직적이다. 국방부 예산 및 복지 관련 예산(사회보장 부문)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따라서 여기에 손을 대지 않고서는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1조 달러 가까운 예산을 집행하는 국방부는 지난 8년 내내 회계감사에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 예산을 감사하려면 내부에서 엄청난 반발이 뒤따를 것이다(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단일 규모로는 최대의 이른바 ‘deep state’다). DOGE의 성과로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며 이미 케네디 정권 때 드러난 사실이지만, 미 군부는 정권의 영향을 제한적으로만 받는다.

트럼프 1기 때는 미 군부는 거의 노골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무시했다(바이든 전 대통령이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에게 선제적 사면권을 행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법대로 하자면 밀리 전 합참의장은 반역죄로 기소되더라도 할 말이 없다).

어쨌든 간에 트럼프의 전략은 국내적으로는 행정을 효율화하고 군부를 정치에 복속시키며, 민주당의 인프라 스트럭쳐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기구들을 해체하는데 있다. 이는 경쟁자인 민주당에 대한 정치보복이자 동시에 부후화한 기존 체제를 개혁하는 ‘정화’운동이며,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다층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5. Soft Power의 해체

DOGE의 USAID 활동에 대한 폭로는 실은 지난 60여년간 미국이 추구해 왔던 이른바 soft power 전략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을 의미한다.
그동안 미국은 ‘미국적 가치’를 외부에 이식하는 대외전략을 구사해왔다. 그것은 LGBTQ나 DEI와 같은 도덕적, 사회적 가치에서부터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제도, 그리고 이를 위한 컬러 레볼류션(color revolution) 및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형성 등의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USAID와 NED는 이같은 활동의 중심부에 있었다. 말하자면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귀중한 ‘자산’이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USAID 감사를 빌미로 그동안 미국이 해왔던 대외 개입 및 매수를 공공연하게 폭로/인정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이같은 soft power 전략의 한 축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동시에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같은 미국의 대외 개입 전략의 포기/축소는 다른 헤게머니 국가들과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구를 예로 들자면, 그동안 USAID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지역들, 즉 그루지야, 루마니아, 불가리아, 몰도바, 폴란드, 발틱 3국 등은 모두 과거 소비에트연방에 속한 국가들이었거나 혹은 바르샤바조약 동맹국들이었다.

1992년 구 소련 해체 이래 미국과 유럽은 이들 지역을 ‘식민지화’하는데 대외전략의 초점을 맞추어왔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방법이 soft power를 통한 체제 전환(regime change)이었다.
트럼프의 USAID 해체는 이제는 미국이 더 이상 이들 국가에서 체제 전환(전복)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언어로 된 약속이 아니라 확실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에게 가장 큰 당근일 수 있다. 러시아는 단지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판도를 재편하려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soft power 행사를 적대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있었다(대표적으로 우크라이나).
따라서 미국의 정책 수정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포함한 국제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에게 미국과 대화할 기회를 제공한다. 심지어는 이미 미-러 사이에 주고받기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은 구 바르샤바 조약국가에서 손을 떼는 대신에 중동에서는 러시아가 시리아를 포기한 것으로 상호 타협이 이뤄졌다는 강력한 의혹을 제기한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트럼프 안보 자문관 내에 대중국 타협론자들이 자리잡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USAID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는 그동안 ‘중국 민주화’ 혹은 ‘위구르 인권 문제’를 제기해온 활동가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었다. 트럼프는 이 지원을 끊어버림으로서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쳐를 보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이같은 접근법이 아시아 지역에서도 적용된다면, 조만간 한반도에서도 ‘군축’을 둘러싼 논의(주한미군 철수와 북한의 핵 문제)가 나타날 것이며, 지난해 가을 한국계 출신 미국 안보 관련 씽크탱크 인사들(예컨대 빅터 차)이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경고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더 중요한 국제적 의미는 ‘동맹’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민주당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가치들’(LGBTQ, 인권, 페미니즘, 기후 및 환경, 민주주의 등)을 전파하고 공유하던 각국의 정부 기구 및 시민단체들은 트럼프 정권의 이번 조치로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당장 재정지원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며, 두번째로는 이같은 서구적 가치에 대항하는 전통적 가치들(가족, 종교 등)을 옹호하는 여론 선전전이 강력히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신자유주의 동맹, 혹은 민주당의 국제적 동맹자들의 위축을 야기한다. 동시에 미국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도 약화된다. 즉,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이는 스스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일론 머스크를 내세운 트럼프 정권의 행정개혁위원회(DOGE)는 개혁과 부정부패 일소를 명분으로 민주당의 이념과 물적 기초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밈이 된 DOGE 풍자화. 출처 <Fortune>

6. 미국은 ‘제국주의’를 포기한 것인가?

트럼프 정권이 기존의 제국을 포기하고 새로운 동맹을 구축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방법과 대상은 어떤 것인가를 지금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독일에서의 징후들을 보면(이른바 우파민족주의 정파인 독일대안당에 대한 공개적지지), 트럼프 정권은 상대국의 사회를 배후에서 조작하기 보다는, 19세기 이전의 방식이었던 ‘공식적 외교’를 통한 개입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아무리 ‘내정간섭’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어쨌든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통로를 통한 행위이며 기존 권력을 ‘공작’으로 전복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해당 국가의 엘리트들 사이에서의 반발을 오히려 최소화할 수 있다. USAID의 지원을 받는 수많은 개발도상국 국가들 중에서 단 한 곳에서도 이번 지원 중단 조치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국제적인 반미동맹의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짊어져야할 부담도 완화시킨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조치는 단지 민주당만을 겨냥한 ‘숙청’(정치보복)은 아니며, 세계 전체를 상대로 미국이 자기정화 중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 정권이 도덕적 정화를 선창할 수 있을만큼 도덕적이거나 양심적인 집단일 리는 없다. 따라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들의 ‘자기 정화’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동맹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이유에 대해 푸틴 내각의 대외경제담당장관이 ”동맹국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막대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소련이든 미국이든 간에 동맹을 유지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소비에트를 해체한 이유, 즉 공산주의를 스스로 포기한 이유와 소비에트연방을 스스로 해체한 이유는 서로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별개의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도 그 부담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트럼프는 입버릇처럼 ”동맹국이 미국을 뜯어먹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대외무역적자는 단지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유럽과 일본, 한국도 미국에서의 무역 흑자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금융자본화에 따른 당연한 부대적 결과이기는 하지만, 미국민의 관점에서는 손실로 비친다. 만일 미국이 동맹국(식민지국가)에 대해 균형수지를 요구한다면, 이들 국가의 자본가들은 굳이 미국에 얽매일 유인이 감소한다. 
즉, 식민지 국가의 자본가들에게도 다른 대안이 존재한다면, 미국을 동맹으로 유지할 필요가 줄어든다. 그리고 지금은 이른바 ‘global south’가 대안시장으로 존재한다. 이미 명목 GDP상으로도 미국+유럽+일본을 뛰어넘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재정적자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금융자본주의의 멈추지 않는 증식을 위해서, 달러화의 국제적 순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달러화가 무역적자의 형태로 동맹국들에게 흘러들어가야만 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미국은 재정적자 축소, 무역적자 축소, 달러화의 국제적 순환 축소라는 3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구도하에서는 미국과 ‘혈맹’이 되기를 원하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조건 하에서도 계속 동맹이기를 강요할 수 있는 힘은 이미 미국에게는 없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우리는 더 이상 헤게머니 국가가 아니다“라고 취임 직후 선언한 것은 적어도 이번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둘째는, 당장 발 등에 떨어진 불인데, 미국 국채 시장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총액 기준으로는 GDP의 120%에 달하며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marketable debt 기준으로도 80%가 넘는다. 특히 올해 한해에만도 9조 달러가 넘는 국가 부채를 차환해야 하며 상반기에만 6조 달러의 차환이 몰려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해외 중앙은행들의 협조 없이는 국채 시장이 무사하기 힘들다. 일본이 취했던 해결책, 즉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QE)는 결코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트럼프 정권은 알고 있다(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일본중앙은행의 QE는 실패했다고 단언한 바 있다).

군사적으로도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은 이라크전쟁, 아프간전쟁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도 패했다. 부통령인 JD Vance는 ”내가 태어난 뒤 미국은 단 한 번도 전쟁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40년 간이다).
즉, 미국은 힘을 과시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아직 힘이 있는 척할 정도의 힘은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냉정하게 아예 우크라이나를 제쳐놓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선언했다. 그는 협상 참여를 요구하는 젤렌스키에 대해 ”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게다가 좋게 말해줘서 지지율도 별거 아니더라“고 비웃었다. 즉 젤렌스키는 그저 장기판의 졸에 불과할 따름이다.

EU는 자신들도 종전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유럽의 향후 거취는 이미 푸틴이 말한 바 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멀지 않아 트럼프 발 앞에서 꼬리를 흔들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즉 분할은 주변 당사국들의 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측면에서 EU는 한 자리는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체면치레용으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이미 지난 2023년 가을 BRICS 정상회담에서 비공개로 논의된 바 있다. BRICS 평화유지군(혹은 global south 평화유지군)이 파병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유럽은 옵저버 형태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왜 트럼프 정권은 안팎으로 모두 자신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개혁’ 조치를 취하는가? 왜 수십년 동안 공들여 쌓은 soft power를 스스로 해체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재편하려 하는가? 그것을 ‘regime change’라고 불러야 할지, ‘유신’이라고 불러야 할지, 혹은 ‘정화/숙정’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선도적인 자본가들은 무너져 가는 제국인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바닥부터 다시 쌓아올리기로 작정했으며 세계는 이제 그 첫걸음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많은 것들이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와 외연들을 갖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민사회, 제국, NGO, 민주주의 등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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