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경제, 노동 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한계에 봉착한 한국형 발전 모델

이슈리포트_창간1주년 특별기획(2)

경제, 노동 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한계에 봉착한 한국형 발전 모델

2024년 12월 30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세계화, 노동소득분배율(labor’s share), 이윤율, 자본소득, 불균등등교환, Global South, 한국형 발전모델, 경제성장율, 노동시장, 비정규직, 자동화, 파업일수, 노조가입율, 계엄국면, 윤석열퇴진주체

1. 세계화의 막다른 길

“일반적으로는 안정적이고 건강했던 민주주의 국가들(프랑스, 독일, 일본, 그리고 남한)은 이제는 종말을 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전후의 팍스아메리카나 경제 질서의 가장 큰 수혜 국가 명단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만일 세계화의 궁극적 모범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남한일 것이다. 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커다란 시험에 직면해 있으며, 정치인들과 정치적 기득권들은 압력 하에서 부스러지고 있다”
– John Authors,‘한국의 위기는 더 큰 그림의 한 부분일 뿐이다’ 12월 3일자(현지 시각) <블룸버그>

Authers는 매우 재기발랄한 경제평론가이기는 하지만, 이 칼럼은 지난 12월 3일 한국에서 계엄 발동과 해제의 드라마가 벌어진 뒤 고작해야 하룻밤도 안된 시간에 공개됐다. 다른 말로 한다면, 최소한 한국경제를 들여다 본 비평가라면, 또는 현재의 세계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니, 어떻게 좌초하고 있는지 추적해온 전문가라면, 위에서 언급된 국가들이 처해있는 경제적 압력들이 어떻게 그 사회 내부에 분쇄적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떤 방향이든 정치적 변동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 지난해 말부터 미국의 정보조직들에서 한국발 위기 가능성이란 루머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나 방식은 몰랐더라도 무언가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고 추측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Authers가 말하고 있듯이, 남한은 분명 지난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 과정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발전을 해온, 그래서 가장 큰 수혜를 받았다고 간주되는 국가이며(실은 최대수혜국은 중국이다) 만일 세계화 과정이 중단되거나, 심지어는 역전된다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국가임에도 분명하다. 

그런데 이 ‘최대 수혜국’에는 외부의 눈에는, 그리고 심지어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도 자주 보이지 않는 ‘이면’이 숨어있다. 이제 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자.

< 한국과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labor’s share) 추이 (1970년-) >

파란색 실선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추이, 붉은색 실선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추이, 1970년- 2019년
                                                                                                  출처 :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세계화의 과정에서 미국 내의 사회구성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노동소득분배율(labor’s share)의 만성적 하락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그 사회에서 발생한 전체 잉여(소득) 가운데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임금)을 백분위로 표시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 1970년 0.65에서 지난 2013년에는 0.52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다소 반등하여 지난 2023년에는 0.59를 약간 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그건 자본의 몫이다. 즉,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사회에서 발생한 잉여 가운데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났고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했다. (“지나간 미래, 오지 않을 과거, 제국의 망령: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과 전세계 질서”, 2024년 11월 14일 참조)  

자본의 소득은 단순히 기업 이윤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지난 2013년 노동소득분배율을 분석한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연준)의 리포트에서는 기업이윤, 이자, 지대, (자산) 소유자 이윤, 세금감면, 감가상각등이 자본 소득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한국의 경우에는 지난 2016년 노동연구원 이병희 연구원의 논문에서 ‘기업이윤과 지대, 가계 이윤’으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은 이처럼 노동소득분배율이 감소하는 가장 큰 이유를 “기술발전”(자본집중)으로 보고 있다. 자본재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정치경제학의 용어를 빌자면 ‘불변자본/가변자본, 고정자본/유동자본’의 비율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동의 약화’는 사회적으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인구집단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자본가계급’, ‘노동자계급’이라는 도식으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세계화의 수혜를 받는 경제 섹터는 국내 수요를 넘어 팽창하게 되며(일국적 관점에서는 과잉생산),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소득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금융산업, 그리고 러스트벨트의 전통제조업의 예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국내에서 정치적인 변동을 야기한다.(“미국 노동조합의 얄팍한 정치, 공허한 미래-미국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대선“, 2024년 09월 26일 참조) 

2. 투자가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위의 챠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보다도 남한의 노동소득분배율은 더 큰 변화를 보인다. 1970년에는 미국과 동일한 0.65 수준이었지만, 산업화가 진전되고 세계화의 물결에 올라타면서부터는 미국보다 훨씬 가파르게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며, 지난 2000년 이후에야 비로소 하락추세가 진정된다. 단, 한국은 개인사업자에 대한 범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포괄적이기 때문에 노동소득분배율이 과소계상되었다는 분석은 수긍할만하다 (예컨대 화물연대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절대 수준에 있어서도 세계 최하위권일 뿐만 아니라, 지난 90년대 이후의 하락폭에 있어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점 매우 강조해둔다.

< 각국의 노동소득분배율 변화 추이 >

출처 : OECD 

한국보다 노동소득분배율 하락 폭이 더 큰 국가는 아일랜드밖에 없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EU 가입 뒤 글로벌 다국적기업들이 조세 감면을 위한 역외 기지로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실제 아일랜드 국내의 잉여 분배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노동소득분배율에 대한 자료는 연구자나 기관에 따라 상당히 큰 편차를 보인다. 이는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의 연구 중의 하나인 ‘Perspectives on the Labor’s Share’(Loukas Karabarbounis, NBER 2024년 3월)에서는 세계 각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을 다음과 같이 계산하고 있다.

< 각국의 노동소득분배율 >

러시아, 브라질,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은 장기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며, 특히 다른 연구들과는 달리 일본에서도 노동소득분배율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으며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 하락 추세는 기존에 알려진 2001년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인 1970년대 초반부터 이미 시작된 현상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의 변동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술발전(상대적으로 낮은 투자재 가격에 따른 자본집중)과 교역상의 이점이 결합할 때 나타난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같은 원론적 분석은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매우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자본투자의 증감과 자본소득의 증감은 반드시 동행하지는 않는다. 

< 자본투자와 자본 소득 >

붉은색 점선은 GDP 대비 투자 비율, 검은색 실선은 자본소득분배율
출처 : Perspectives on the Labor Share

예컨대 중국이나 인도는 자본소득과 투자증가율이 동행하지만, 독일이나 일본은 정반대로 투자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소득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양자간에 그리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노동력 인구의 변동이나 자본투자의 효율과도 상관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문재인 정권 때 시도되었던 ‘소득주도성장론’의 기반은 실은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려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소득분배율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자본집중도가 강화될수록 노동의 상대가격은 낮아지기 때문에 총노동소득의 상대적 비중은 감소한다. 

동시에 이는 자본 재생산도식 하에서는 매출 감소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본의 이윤율을 떨어뜨리거나 혹은 이를 저지하기위해 노동에 대한 착취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착취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이윤율 감소가 불가피해진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자본은 일국적 한계를 돌파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되며 외부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인위적(정책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려는 정부의 정책은 이런 조건하에서는 국내시장에서 생산성이 낮은(따라서 저임금인) 서비스직을 양산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며 역설적으로 자본의 해외이탈을 가속화시킨다.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근본적으로 이론적으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 실패가 지난 2020년의 코로나와 같은 일시적 비상사태 때문이었는지 혹은 다른 요인이 작용했는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후 들어선 윤석열 정권은 노동시장 유연화(노동시간 연장)를 적어도 선언적으로는 강력하게 추진하려 했으며 이후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소득주도성장론은 대중적 지지를 상당부분 상실했다. 

3. 국제노동분업 체제하의 불균등 교환    

그런데 이처럼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노동의 몫이 상대적으로 감소한다면, 그것도 세계적 차원에서 감소하고 있다면 고도로 산업화가 진전된 즉 자본집중도가 높은 국가들에서는 왜 노동의 저항이 적게 나타날까? 그것은 지난 30여년 간의 세계화가 저개발국 노동자들보다는 선진국 노동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확인해보자.

< 글로벌 사우스/노스간 임금 격차 추이(숙련도에 따른 분류) >

출처 : <Nature Communications> 2024년 7월, ‘Unequal exchange of labor in the world economy’, Jason Hickel, Morena Hanbury Lemos, Felix Babour 공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동일한 숙련도를 가진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해 보면 양자 사이에는 단지 압도적인 격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격차가 오히려 점차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위 논문은 “지난 2021년 한해에만 선진국(global north)의 경제는 약 8260억 노동시간을 개발도상국(global south)에서 전취(appropriation)하고 있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6.9조 유로(약 2경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다른 말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교역은 ‘불균등 교환’이며 개도국들은 자국 산업 발전에 쓰일 수 있는 노동시간을 선진국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개도국 노동자들은 세계 경제를 추동하는 노동의 90%를 차지하지만, 세계 총소득의 오직 21%만을 가질 뿐이다”.

만일 이같은 불균등 교환이 중단된다면, 선진국 노동자들은 (현재의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거나 혹은 더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해당 국가 내에서 직접적인 계급투쟁의 격화로 나타날 것이다.

동시에 이같은 불균등 교환은 왜 선진국에서 (특히 1980년 이후에) 노동운동이 약화(노조조직율, 쟁의건수)되며, 세계화를 추진하는 정치세력들과 그 이데올로기(신자유주의)에 대해 소극적으로 저항하거나 혹은 자포자기적으로 수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세계화의 혜택은 단지 선진국의 대자본가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노동자들에게도 주어졌던 것이다.(“중심부와 주변부 국가 노동계급의 파업은 무엇이 다른가”, 2023년 11월 09일 참조)

그 결과가 GDP상으로는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 

< 각 지역별 1인당 GDP 추이 >

출처 : World Inequality Lab. 

남한은 어디에 위치할까? 위의 챠트에서 북미와 유럽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East Asia’ 그룹(중국, 일본, 한국, 대만)에 포함되어 있다. 즉 세계화는 남한의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남한의 일부 노동자들에게도 ‘포괄적 의미에서는’ 유리한 것이었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남한의 정치 집단에서의 승리자는 개별적으로는 노동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정책을 썼을지언정, 대외정책상 신자유주의적 중상주의 정책을 수행하는 한은, 정치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는 노동계급 내부에도 심대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대표적으로 노동시장의 중첩화(흔히 말하는 양극화) 현상은 이같은 구조적 압력에 의한 분기였으며, 노동자들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또한 기존 제도권 자유주의 정당에 포섭되는 근본 조건이 되기도 했다.
다만 남한의 노동소득분배율의 급격한 하락이 보여주듯이 남한에서의 노동자들에 대한 상대적 착취 강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강력했으며, 이것이 분산적이나마 노동자들의 투쟁을 유지시키는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4. 이윤이 감소하면 도박이 시작된다.  

다시 Authors의 글로 돌아가자. Authors는 세계화 체제 내에서의 남한, 독일 등의 수혜 국가들이 ‘압력’ 하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그 압력은 세계화의 중단, 역전, 혹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세계화에 따른 기존 발전 모델의 한계를 말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 압력은 손쉽게 한국 지표에서 찾을 수 있다. 

< 한국의 가계 실질 노동소득, 기업 매출 및 영업 이익 >

위의 지표들을 보면 지난 4월 총선에서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패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18년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 압력하에 놓였던 한국경제는(이는 글로벌한 현상이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전폭적인 금융 및 재정 정책으로 위기를 넘기고 이후 지체되었던 수요가 폭발하면서 2021-22년에 급성장세를 보인다. 그러나 2022년 1분기에 경기 상승 추세는 정점을 찍고 이후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인플레이션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경기 하락 기울기가 매우 가팔랐다.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명목임금 상승률 – 인플레이션률)은 2023년 1분기에 크게 감소했으며 약간의 반등에도 불구하고 3분기부터 다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24년 1분기까지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2024년 제 22대 총선 분석 – 선거와 계급: 누구의 승리인가?“, 2024년 04월 18일 참조)

자본 부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침체기(불황)에나 볼 수 있는 기업 매출 감소가 발생하여 2023년 내내 지속되었다. 동시에 영업이익률도 급격하게 낮아졌다. 동시에 한국 경기와 고용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건설부문도 2022-23년 초의 짧은 반등기를 지나 수주잔고 기준으로는 코로나 시절만큼 악화되었다. 

이같은 경기 침체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단지 인플레이션이나 금리를 보아서는 안된다. 남한이 ‘압력’하에 놓여있다는, 보다 직접적인 지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한국의 산업별 기업 매출 증감 추이 >

출처 : 한국은행

2023년은 경기가 부진했다는 것 이외에도 산업별 현황을 보면 중요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산업별로 보았을 때, 경기 부진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석유화학산업 및 전기전자산업이었다. 특히 석유정제/코크스 관련 기업의 경우에는 매출이 2022년 대비 23년에는 무려 14.1%나 감소했다. 물론 여기에는 원유 및 석탄 가격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급등했던 에너지 가격이 다시 하락하면서 관련 산업군의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석유화학산업군은 중국이 지난 2017년 이후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것이 2022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하면서 경쟁력을 잃은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롯데그룹이 롯데타워를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 롯데케미칼에 자금을 긴급 수혈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자.영상.통신장비 산업은 15.8%라는 매출 감소율을 보였으며 심지어는 2023년 영업이익율이 마이너스 3.8%를 기록하기도 했다. 즉 산업 전체가 적자였다.

석유화학이나 전자 등의 산업군은 한국 국내 수요를 겨냥하지 않는다. 이들은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하며, 따라서 이들 산업군의 매출이 감소했다거나 심지어는 손실을 보았다는 것은, 글로벌 경제 자체가 심각한 침체 국면에 돌입하지 않는 한, 상상하기 힘들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들 산업군의 급격한 매출 감소는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유화학산업은 지난 2014년 남한의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그동안 전략적으로 한국에 부여했던 이 부문에 대한 대규모 국내투자를 단행하여 지난 2022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감에 따라 경쟁이 가속화되었고, 전자산업의 경우 디스플레이와 휴대폰 등 일부 제품군은 이미 중국이 자체 생산 뿐만 아니라 해외수출까지도 한국기업을 앞지를만큼 성장했으며, 반도체부문은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생산확대가 막혀버린 상태이다.

즉, 2023년 이후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한국의 산업군들은 지난 기간 세계화의 수혜대상(미국발 자본과 중국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기업들)이었고, 이제는 반대로 미-중 대결에 따라 가장 큰 타격대상이 되고 있다. 만일 미국이 중국에 대해 전면적인 경제봉쇄에 나선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조만간 어느 편에 서야 한다. 그같은 국제적 대립의 축소판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 12월 18일 발표한 2023년 기업활동조사 결과(잠정)는 보다 암울하다. 50인 이상 고용한 14,5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매출액 1,000원당 조사대상 기업의 법인세 차감전 순이익은 지난 2015년 수준에도 못미친다. 

< 기업의 세전 순익 > 

출처 : 통계청

같은 기간에 매출은 약 50% 증가한데 반해서, 순익 증가율은 제자리에도 못미쳤다는 것은 기업의 투자 유인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코로나와 같은 비상사태를 감안하여 2019-2023년 5년간의 평균 순익을 계산해 보아도, 연평균 매출 1,000원당 순익 58원으로 2016년 수준에 약간 못미친다. 여기에 윤석렬 정권은 OECD, IMF의 권유를 받아들여 긴축재정을 추진했기 때문에 내수 소비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것이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자영업자들의 반란의 경제적 배경이기도 하다. 

글로벌 자본가 연합인 OECD, IMF의 부채 억제 권고는 특히 민간가계부채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는 재정긴축이 장기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과제임을 말해주며, 따라서 한국의 자본가와 정치엘리트들은 대중의 반발을 분쇄할 수 있는, 기존과는 다른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의 권력계급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중립적 위치를 표방하는 것은 이미 미국이나 일본의 이해관계에 밀접히 뿌리박고 있는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1) 기존 한국형 모델, 즉 수출주도 정책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거나 (2) 기존 경제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미국 일본의 전략적 하청기지로 전화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1)의 경우에는 환율(원화 가치 하락)이 가장 중요하며, 동시에 내수 소비를 붕괴시켜 부채 디플레이션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반발이 나타나기 때문에 강제적 규율(민주주의의 정지)을 부과해야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것이 계엄의 경제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즉 IMF 외환위기에 준하는 경제 위기를 통해 착취도를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2)의 경우에는 단지 내부의 강압적 통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의 자본가의 상당수는 중국이나 글로벌 사우스와도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계엄 정도가 아니라, ‘외환’과 같은 외부적 충격이 요구된다. 이 때는 전시계엄의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은 해봤을지언정 실행은 포기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계엄(내란) 사태는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갖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수성과 국제노동분업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이제는 오히려 위험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정치적 사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성공비결, 한국형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에 나타난 정치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만일 이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지난 2023년 12월에 발간된 한국은행의 장기 전망 보고서 ‘한국경제 80년(1970-2050) 및 미래 성장 전략’(조태형)은 지난 1970-2022년의 연평균 한국 경제 성장률은 6.4%였으며, 이 가운데 자본 투입이 3.4%포인트였고, 노동투입은 1.4%포인트 그리고 총요소생산성(TFT; total factor productivity; 노동과 자본뿐만 아니라, 사회인프라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을 모두 포함하는 생산성 정의)는 1.6%포인트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갈수록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그 원인은 1990년대는 노동투입 둔화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 대에는 자본투자 부진이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TFT 정체가 주된 요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 보고서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 하에서도 2050년 이후에는 성장률이 0%대에 접어들며, 비관적 시나리오 하에서는 이미 2030년대 후반기에는 0%에 돌입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아마도 조용한 안락사가 될 것이며, 끊임없이 가치증식을 해야하는 자본의 본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보고서는 노동력 인구가 2030년대 초반에는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같은 노동력 감소를 자본투자 증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의 한계생산성도 이미 정체 상태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 공급이 감소 추세에 접어들면, 자본은 인간을 기계로 대체시킨다. 이것이 ‘자동화’의 주요 추동력이다. 노동력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이미 이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제조업 노동자 10,000명당 로봇 수 >

출처 :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

한국의 제조업 현장에서의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배치 숫자는 한국보다 훨씬 일찍 노령화와 인구 감소기에 접어든 일본의 두배가 넘는다. 압도적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로봇이 이렇게 많은데도 한국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5. 노동 – 비정규직, 20대 여성, ‘쉬었음’ 

지난 2023년의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은 표면적으로는 커다란 변동은 없었다.
고용률(전체 인구 대비 취업자 수)는 69.9%를 유지했으며 실업률도 2.2%로 큰 변동이 없었다. 취업자 절대 숫자는 약간 증가했다. 이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동시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노동시장의 내부 구성의 변화(비정규직 증가)가 나타났을 뿐이다. 이는 노동시장이 경기 후행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남자 취업자 숫자는 지난 2023년 11월 대비 2024년 11월에는 11만 4천명 감소했는데 여자 취업자 숫자는 19만 7천명 증가했다는 점이다. 

또 이른바 ‘쉬었음’ 인구, 즉 구직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노동시장에 참여할 의사도 없는 인구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15-20세 사이에서 2024년 10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로 5만2천명이나 증가하여 41만 8천명에 달했으며, 전체적으로는 20만 7천명이 증가한 244만 5천명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제조업 월평균 임금 추이(달러 환산, 통계청 집계)를 보면 그 실패가 명백해진다.
한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지난 2017년 3,234달러에서 2018년에는 3,500 달러로 늘었다가 2019년에는 오히려 3,405달러로 감소했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면서 글로벌 경기 부진이 타나났는데 그같은 추세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즉, 소득주도성장은 글로벌 경기 추세에 반응했을 뿐이다. 코로나로 비상사태가 발생한 2020년에는 다시 3,313달러로 감소했고 2021년 3,549달러로 큰 폭으로 반등하지만, 2022년에는 다시 3,394달러로 급락했다. 지난 시기 노동시장에서 총고용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임금과 고용 형태에 있어서는 주목할만한 변동이 발생했던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노동자 1인당 총생산(output)은 2016년 55,749 달러(2015년 불변가격)에서 2024년에는 62,584달러로 증가했다. 즉, 노동자들은 더 많이 생산하고도 더 적게 받았다. 

문재인 정권이 야심차게 비정규직 해소를 들고 나왔을 때, 현실은 다음과 같았다

< 비정규직 증감 추이 >
출처 : 통계청, 2024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문재인 정권 하에서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비중은 약 5% 포인트 증가했다. 오히려 윤석열 정권 하에서는 정체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코로나 이전에 이미 비정규직 비율은 급증하고 있었다. 정책이 잘못 되었든지, 아니면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한국 경제 구조의 문제이든지, 어느쪽이든 간에 ‘노동자의 호민관’으로서의 문재인 정권이라는 수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서도 ‘시간제 노동자’의 증가폭이 가장 크다. 이는 이른바 ‘알바’ 직업이 확산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비정규직 증가분 가운데 성별로는 24년 8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남자가 5만 8천명 증가하여 총 361만 5천명이며, 여자가 27만 9천명 증가한 484만 4천명을 기록하고 있다. 즉 비정규직의 57.3%가 여성이다. 

< 비정규직 성별, 연령별 증감 추이 > 

출처 : 통계청

연령별로는 60대가 281만 2천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50대가 166만 1천명, 29세 이하는 160만 4천명 순이다. 그런데 지난 22년 경기 침체 이후에는 60세 이상의 비정규직은 여전히 증가했지만, 이하 연령층은 소폭 증가하거나 오히려 감소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과 비교했을 때, 60세 이상 비정규직의 비중은 28.7%에서 33.2%로 늘어났다. 이는 22년 이후의 침체기에 생겨나는 일자리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중장년층조차도 지원하기를 꺼리는 아주 낮은 수준의 일자리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산업별로는 보건사회복지(요양사, 간병인)의 증가폭이 가장 컸으며, 직업별로는 단순노무직과 서비스직의 증가폭이 가장 컸다.
비정규직 선택자 가운데 ‘자발적 선택’의 비중이 가장 높고(66.6%), 근로조건에 만족한다는 대답이 59.9%나 되는 것은 60세 이상 무기능 노인층의 취업(특히 여성노인)이 가장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노조 가입률을 보면, 임금 노동자의 20.5%가 노조 가입이 가능한 지위에 있지만, 이 가운데 72.1%는 해당 사업장에 노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노조 가입 가능자 가운데 실제 노조 가입 비율은 61.0%로 2023년 대비 1.0% 포인트 하락했다. 노조 가입이 가능한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노조 가입 비율은 49.3%에 불과하다. 

< 파업 건수와 파업일수 > 

출처 : 통계청

노조 조직율이 낮을뿐만 아니라, 지난 10여년 사이에 파업 건수와 손실일수 그리고 참가인원도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지난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이 전농의 트랙터 행진을 가로막자 20대 여성들이 연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비정규직 증감 추이를 보면, 20대 여성과 60대 여성의 증가폭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현재의 경기나 더 나아가 경제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소득은 낮으며 안정적 직업 전망도 없고 이들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대변해 줄 노동조합이나 정치적 단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이 계엄 사태 이후의 대중 시위 과정에서 각각 남태령(20대 여성)과 태극기(60대 여성)로 대표되는 상반된 시위대의 주력이기도 하다. 20대 여성들은 정치적 기회 공간이 열리자, 자신들의 계급적 지위에서 겪어야 하는 억압에 대해 ‘시민’ 혹은 ‘민주주의자’, ‘주권자’의 이름으로 싸웠다. 그러나 실은 그들은 ‘노동자’로서 싸운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60대 여성들은 탄핵 이후의 정치적 공간에서 ‘애국자’의 이름으로 싸웠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 것일 뿐이었다. 

그럼 20대 남성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방안에 있었다. ‘쉬었’다. 그들은 방 안에서 농성하고 있을 때, 20대 여성들은 거리에서 공성하고 있었다. 이 두 집단의 사회적 결합(결혼과 연애)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구조를 변혁해야 사회적 결합력도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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