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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 Meme: 어쩌다 체제 위협 요인이 되었나?

민노연 창립식_087

밈 Meme: 어쩌다 체제 위협 요인이 되었나?

2024년 9월 26일  / 한마디의 세상 Word of the World
<전망과실천> 편집부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 정부의 전쟁기금(War Fund)에 돈이 좀 남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명화 <Dr. Stranagelove>에서 핵무기를 끌어안고 떨어지던 미치광이 군인의 모델이 되었던 미 항공단 사령관인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이 돈으로 연구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Think Tank의 모델이 되는 ‘랜드 연구소’(정식 명칭은 Rand Corporation)이 만들어졌다. 이 연구소는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으며, 네오콘과 네오리버럴의 사상적 고향이기도 하다.

지난 7월, 랜드연구소는 “미국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기술적, 경제적 위협들”(Technological and Economic Threats to the US Financial System) 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잠재적 위협들을 다음과 같은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인공지능 기반 금융 거래 모델에 대한 공격
2. 해외 투자자들의 미국 국채 매각
3. 가짜 정보(misinformation)을 퍼뜨리기 위한 정보 위조(deepfakes)를 사용하는 것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4번째가 뜻밖이었다.
4. 신념과 행동을 조종하기 위한 밈 관련 엔지니어링(밈적 조작; memetic engineering)

우리 말로 적당한 번역어가 없어서 흔히 그냥 밈(meme)이라고 불리는 이 ‘밈’은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한 개인이나 집단에서 다른 개인이나 집단들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파될 때 매개 역할을 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문화적 단위”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근데 랜드연구소 보고서는 왜 밈이 왜 금융 시스템에 위협이 된다고 할까?

랜드 연구소: “선진화된 밈적 조작은 시장 안정에 급격한 붕괴라기보다는 지속적이고 누적적인 충격을 가해 시장 기관들과 제도에 대한 신뢰를 점진적으로 훼손한다”.
즉 이 위협은 직접 미국의 금융 시장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미국의 금융 시장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켜 불안정을 야기하는 사회적 문화적 공격이다; “밈적 조작은 특정한 심리적 혹은 물질적 결과를 확보하기 위한 구전적 또는 문화적 밈을 설계하는 것과 관련된다”.
즉, 밈적 조작이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밈을 통해 인간들의 사고 방식과 신념을 변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밈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예컨대 다음 사진을 보자.

위의 사진은 온라인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컷이다. 각기 다른 두 장면을 하나로 합성한 것인데 그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수만 가지 경우에 이 사진을 쓸 수 있다. 다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한 쪽에서는 억울하다거나 혹은 속았다는 감정을 표시하지만, 다른 한 쪽(고양이)에서는 “니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잖아”라고 응수하는 여러가지 상황에 공통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밈은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포함하며, 또한 그 전달 효과로서 ‘해방감’ 혹은 ‘전복적’이라기 보다는 ‘희화화’ 또는 ‘사소화’(trivialization)를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밈은 거창하게 랜드연구소가 우려하는 체제 전복적 위협 요소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놀이거리이며 서로 간에 정보를 주고받는 특수한 양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놀이거리가 특정한 조건에서는 전복 위협이 될 수 있다; 즉 그 이전에 이미 사람들 사이에 갖고 있는 신뢰와 믿음이 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 밈적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일 경우에는 역으로 기존의 밈적 조작을 전복하는 새로운 밈적 조작은 체제 위협 요인이 된다.

랜드연구소는 밈적 조작이 실제로 금융 위협이 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가 딮페이크를 확산시키고 밈적 조작을 통해 금융 섹터를 공격한 사례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GameStop 숏스퀴즈(역공매도 공세, 공매도된 주식의 가격을 띄워 기존 공매도 세력이 대규모 손실을 보도록 만드는 것)를 들고 있다”.

그러나 숏 스퀴즈는 월가에서는 밥 먹듯이 벌어지는 일이다. 한 때 죠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동업자였던 전설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내가 월가 트레이더 초년병 시절에 6개 주식을 공매도쳤는데, 모두 가격이 급등해서 빈털털이가 되었다. 내가 망하고 6개월 이내에 그 6개 기업이 모두 파산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게다가 실리콘밸리은행(SVB)는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망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은행이었다. 물론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SVB만 망했으니 밈 탓을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밈이 통한 것은 그 밈에 상응하는 현실이 존재했기 때문이지, 단순히 밈이 밈을 전복시켜서는 아니다.

랜드연구소가 역설적으로 ‘밈적 조작’을 경고하며 말하고 있는 것의 이면은, 실은 시장에 대한 신뢰나 믿음, 인식이 이미 현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밈을 통해 구성된 허구라는 사실이다. 밈이 중요한 것은 이 모래 위의 허구가 드러나지 않도록 통제하기 위해서이며, 눈가리고 아옹할 수 있는 한 허구는 현실이 된다는 완고한 믿음이기도 하며, 인식을 통제하면 현실도 통제할 수 있다는 종교적 신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왜 기껏해야 10대, 20대들이 낄낄거리고 노는 밈의 온상인 Tiktok을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빼앗아 직접 통제하려는지도 알 수 있게 해준다.

랜드연구소는 밈적 조작의 공격을 둘로 구분한다. 하나는 단기적인 것으로 특정 섹터에만 작동하는 급격한 변동이다. 장기적인 것은 “금융 기관들이나 시장에 대한 신뢰 및 이데올로기, 신념의 장기적 저하”다. 그리고 이를 기후 위기에 빗대서 “금융기후 변화”라고 명명한다; “가장 심각한 위협은 금융 9.11 같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금융 기후 변화’와 같은 느리고 지속적인 과정이다”.

근본적으로 ‘밈’ 혹은 ‘인식소’(認識素-이 표현이 밈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번역어이다)에 대한 강조는 이같은 밈의 생산자이자 전달자인 인간들이 밈에 의해 인식과 신념이 좌우된다는 행태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그 뿌리는 1930년대 구소련의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이론적 관점에서는 동시대의 구소련 민속학자 츠베탕 토도로프의 민담 분석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구조주의 기원이다). 밈이 인간을 흔든다는 발상은 종이 울리면 개처럼 침을 흘리는 인간상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랜드연구소는 인간이 유인원이라기 보다는 개과 동물쪽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한국식 밈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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