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미국 노동조합의 얄팍한 정치, 공허한 미래-미국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대선

민노연 창립식_087

미국 노조의 얄팍한 정치, 공허한 미래

- 미국판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대선

2024년 9월 26일 / 국제 노동/운동 동향 Intl Labor & Resistance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전미자동차노조(UAW), 미국트럭노조(Teamster), 보잉 파업, 뉴딜동맹 (NewDeal coalition), 이익집단, 인민주의, 세계화 

지난 8월 19일 카말라 해리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결정 당 대회(DNC)에서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겠다고 천명했을 때,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숀 페인 위원장은 연단에 올라 해리스를 ‘투사’라고 찬양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를 ‘scab’(파업 배반자)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9월 18일에는 미국트럭노조(Teamster)의 션 오브라이언 위원장이 트럼프를 대선 후보 결정한 공화당 전국대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Teamster 지도부는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지지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조합원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6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오브라이언의 참석은 사실상 ‘지지’에 해당한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이 지난 8월 민주당 대선후보 결정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PBS.숀 페인 UAW 위원장이 지난 8월 민주당 대선후보 결정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PBS.

페인과 오브라이언의 연설을 들어보면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페인은 “지금은 어느 편에 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과 UAW는 해리스-바이든 편에 서 있다고 천명한다. 왜냐하면 해리스-바이든은 ‘좌파’(left)이며, 바이든은 파업 라인에 동참하기까지 했고, 노동관계위원회(NLRB)는 노조에 유리한 판정을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오브라이언은 “노동자는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를 어떻게 관철할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오브라이언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모두 똑같다“면서 ”(양당 모두) 대기업, 거대은행에 노동자들을 팔아먹었다”고 말했다. 오브라이언이 RNC 참석하기 직전에 열린 Teamster 지도부 회의에서도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그 명분은 “Teamster가 요구한 파업권을 포함한 노조의 핵심 이해에 민주 공화당이 개입하지 않을 것을 서약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둘 다 거부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트럼프가 자신을 RNC에 초청해서 발언 기회를 준 것을 높이 평가했으며, 공화당 내 노조지지 세력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공화당도 친노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션 오브라이언 Teamster 위원장이 지난 18일 공화당 대선 후보 결정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출처 : CBS.션 오브라이언 Teamster 위원장이 지난 18일 공화당 대선 후보 결정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출처 : CBS.

미국 노동조합 정치: ‘좌파’ 혹은 ‘인민주의’를 표방한 이익집단 정치

페인과 오브라이언의 발언과 행동은 현재 미국 노동운동 내에서의 정치적/이념적 조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페인은 지난 1930년대 루즈벨트 정권 이래 지속되어온 전통적인 뉴딜동맹(New Deal Coalition)의 전통하에 서 있다.
New Deal Coaltion은 노조와 이른바 ’진보적‘인 시민사회를 민주당의 하위파트너로 삼아 느슨한 조합주의적 국가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진보‘(progressive) 혹은 ’좌파‘(left)로 인식하며 미국의 ’가치‘가 보편적이며 따라서 전세계에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UAW만이 아니라, 미국 노동조합 전국조직인 AFL-CIO도 동일한 근거를 가지고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 지지를 천명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공화당 계열에 가까웠던 Teamster는 인민주의(populism) 성향을 보여준다. 기득권층(establishment)이 미국을 쇠락시키고 미국의 노동자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원흉이라고 인식하며, 따라서 기득권을 뒤흔드는 세력이라면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당 전당대회는 네오콘 세력들이 대거 입성하여 민주당이 ’전쟁당‘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한 잔치이기도 했다.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나 전세계를 핵전쟁의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어떠한 평화적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호전성을 더 강화시켰다.
공화당 전당대회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원칙을 재천명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심지어는 달러화 기축통화를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100% 무역관세를 매기겠다고 협박했다.

물론 노동조합의 수준에서 노동운동이 ’국제주의적‘이고 ’보편적‘인 원칙과 가치를 실현하거나 행동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의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좋게 말하자면, UAW든 Teamster든 간에 ’좁은‘ 또는 ’국가적‘ 이해의 관점에서 노동조합에 이익된다고 판단되는 정치적 노선을 선택할 뿐이다. 문제는 과연 이것이 가능한 전략인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좌파‘(인용부호) 노동조합이든 혹은 ’인민주의‘ 노동조합이든 간에, 이들이 현재와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은 단지 ’정치‘ 혹은 ’정권‘을 뛰어넘는 자본주의의 힘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보잉사 파업: 자본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현재 그 ’힘‘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2주째 3만 3천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보잉사라고 할 수 있다. 보잉 노동조합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Machinists and Aerospace Workers)은 지난 13일부터 향후 4년간 40%의 임금 인상과 퇴직연금 충당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4일 회사쪽에서 제시한 최종 타협안(임금 30% 인상)을 거부함으로써 파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보잉이 흥미로운 사례인 것은 지난 40여년 동안 보잉은 단지 ‘세계화’(공급망의 세계화)의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의 금융화(financialization)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캐치프레이즈 중의 하나인 이른바 주주자본주의(stock holder capitalism)가 보잉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보면 왜 미국의 제조업이 ‘망’했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파업 중인 보잉 노동자들이 미국 시애틀 공장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 <NPR>.파업 중인 보잉 노동자들이 미국 시애틀 공장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 <NPR>.

보잉은 지난 1998년에서 2018년 사이 20년 동안 무려 61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을 실시했다. 이 금액은 같은 기간 동안 보잉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81.8%에 달한다. 여기에 별도로 실시한 배당금을 합치면, 보잉은 이 기간 내에 무려 영업이익의 120%에 달하는 금액을 주주들에게 지불한 셈이다. 즉, 회사는 번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주에게 지불했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당연히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망한다. 그러나 보잉은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기법’이 있었다. 공장들을 해외로 이전해 원가를 절감하거나, 혹은 아예 공장들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이 때는 특별이익이 발생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

지난 2005년 보잉은 위치타 소재 부품 공장을 Onex라는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Onex가 공장을 인수하자마자 첫번째로 한 일은 기존의 노동계약을 모두 해지하고 노동자들에게 재계약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리고 50세가 넘은 노동자들은 모두 재계약을 거부했으며, 재계약 노동자들은 10%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했다. 2014년에 Onex가 이 공장을 다시 매각했을 때, Onex는 무려 900%의 투자 수익을 남겼다. 그러나 숙련공이 사라지고 저임금 단순 노동자로 채워진 공장의 제품들은 부실해졌다.

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의 최종 귀착지는 전쟁과 대량학살

Onex는 캐나다의 억만장자인 게리 슈와츠가 소유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번 돈으로 ‘Heseg Foundation for Lone Soldiers’라는 자선 재단을 창립했다. 이 재단의 임무는 유태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 이스라엘 군대에 입대하도록 권유하는 일이었다. 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의 최종 귀착지는 전쟁과 대량학살이었던 것이다.

서구의 주류언론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보잉은 지난 2020년에는 보다 참신한 경영기법을 선택했다. 기존의 ‘세계화’와 노동착취를 통한 원가 절약(제품 질 저하)만으로는 더 이상 쥐어짤 이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CEO였던 데이브 칼룬은 무려 470억 달러의 자금을 월가에서 빌렸다. 이 가운데 100억 달러는 공장의 운영 및 신규 투자에 쓰였다. 그러나 370억 달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투입됐다. 금융 상품에 투자(회사채 매입)한 것이다. 비행기 만드는 회사가 회사채를 살 때는, 비행기를 만들어서 생기는 이윤보다는 금융상품에 투자했을 때 생기는 이윤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산업자본이 왜, 어떻게 금융자본으로 전화하려고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 회계보고서를 보면 여기서 5억 달러의 수익을 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럭저럭 성공적인 투자인 것 같다고? 370억 달러를 빌린 이자비용에만 무려 20억 달러를 지불했다. 15억 달러를 손해본 것이다.

보잉은 산업자본이 왜 금융자본으로 전화하는데 실패하는지도 동시에 보여준다(지난 2008년 파산한 GM도 같은 길을 밟았다. (‘제조업’의 미국을 대표했던 제네럴일렉트릭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다른 회사의 채권을 사는 제조업 기업의 상품이 제대로 나오거나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회사 경영진부터가 기존 제품이 주주들을 만족시킬만한 상품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잉 파업에 대한 두 노조의 관점: 노동착취 혹은 금융화의 폐해?

보잉의 파업상황을 UAW의 관점에서 진단하면 자본가들의 노동착취이며, Teamster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세계화’와 ‘금융화’의 폐해가 된다. UAW에게는 이럴 때 노조편에 서서 파업 피켓라인에 동참해주는 대통령이 ‘진보’이며 ‘좌파’이고, Teamster에게는 애초에 이같은 상황을 만든 것이 현재의 정치권 전부이기 때문에 이들을 일소하고 세계화와 은행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종식되면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다시 치솟을 것이며 은행들이 분쇄되면 달러화는 폭락하거나 혹은 대공황 같은 디플레이션 사태가 벌어진다. 만일 UAW의 노선을 따른다면 보잉의 이윤율은 더욱 하락하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더욱 뒤쳐지며 투자 유인은 더 감소하고 현재의 독점적 시장 지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른 국가의 경쟁 기업에 밀릴 것이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가는 다른 경쟁력을 가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힘으로 억압하도록 요구받게 될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여지는 미국 노동조합들의 모습은 ‘이익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어떤 레토릭을 쓰던지간에, 그들은 결국 이익집단정치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가)’에 맞서 싸울 의지도 이론도 없으며 ‘자본주의’를 폐기할 의사도 없다. 그리고 이들은 이같은 자신의 노골적인 비계급적 의식을 ‘좌파’라고 부르거나 혹은 ‘인민주의’라고 짐짓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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