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자산기반 자기복지구조를 바꿔야한다

세금으로 뭐하는 건데요?

: 자산 기반 자기(self)복지 구조를 바꿔야 한다

2024년 8월 22일  / 연구자의 시선
글 이상협 연구위원 (인제대 정치외교학과)

다시 한번 부자 감세 논쟁이다. 윤석열정부 들어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부자 감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7월 세법개정안은 ‘초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는 경제의 역동성 지원, 민생경제 회복 등 ‘중산층의 세 부담 완화’를 위해 피할 수 없는, 그리고 경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합리적인 개정안이라고 주장한다.

내용을 살펴보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고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 평가 역시 전면 페지한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상속 부담을 크게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동안 이중과세라고 주장하던 재계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더불어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2년 유예되었고, 법인세 세액 공제도 대폭 확대한다. 전반적으로 기업이나 자산가에 대한 감세 기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세수 감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법인세 수입이 감소하면서 세수 펑크가 올해 상반기 10조원에 육박했고 올해 말까지 40조의 감소가 예상된다고 한다. 특히 상속-증여세에서 향후 4조가 덜 걷힌다고 한다. 세법 개정안 시행 기준 연도를 대비해서 세수의 총합을 집계하는 누적법으로 계산하면 앞으로 5년간 18조 4천억원이 덜 걷힌다는 계산도 들린다. 당연히 9월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큰 충돌이 있을 예정이고 최소한 일부 수정되거나 아예 좌초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자료: 기획재정부 2024년 세법개정안

자료: 기획재정부 2024년 세법개정안

사실 부자 감세나 친자본적 감세 기조의 연장이라고 보면 크게 놀랍지 않다. 다만 상속-증여세 개정안은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다. 간략히 내용을 보면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에서 40%로 인하되었고 자녀 공제 역시 1인당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되었다. 과세 표준도 조정되었고 최저세율 구간도 확대 적용되었다(그림 참조). 최근 상속세 조정이 2000년이었으니 24년만에 바뀌었고 물가 상승분에 의한 피할 수 없는 조정이라고 정부는 말할 수도 있겠다.

자료: 기획재정부 2024년 세법개정안

모든 정책은 정책 승자(policy winner)와 정책 패자(policy loser)를 동시에 만들어 낸다. 이번 상속세 개정안에서 정책 승자는 누가 될까? 다시 말해 상속세 조정을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50%의 과세율을 부담하는, 30억원 초과의 초고액 자산가들이 최대 수혜층일 것이다. 정부안대로라면 상속세를 10%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최고세율(50%)을 적용받는 사람들은 전체 상속인의 6.3%(1251명)였다. 이들이 낸 상속세는 전체 상속세수의 80%인 9조 9천억원에 달한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적어도 이들 집단에서만 1조의 세금이 감소한다. 결국 초부자 감세란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외 집단의 사정은 어떤가? 정부안을 살펴보면 자녀 공제액이 5억원으로 늘었으므로 자녀가 두명이면 상속액 10억원까지 공제가 된다. 배우자 공제 5억원을 더하면 15억원이 되고 기초공제 2억원을 합치면 최종적으로 17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앞서 상속세가 24년만에 바뀌었으니 피할 수 없는 조정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현재 13억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다. 두 명의 자녀가 있고 아파트 가격이 17억원이 이하라면 세금 한푼 내지 않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다. 현재는 일괄공제 5억원과 배우제 공제 5억원을 합해 10억원을 공제받아 7억원(아파트가 17억원이라면)에 대해 상속세 1억 5천만원을 내야한다. 그러면 또다른 정책승자는 아마도 이들일 것이다(이들이 누구인지는 뒤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자). 17억 미만의 아파트를 상속할 수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번 세법 개정안에 대해 대놓고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야당이 이번 세법개정안을 강경하게 반대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어떨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복지국가는 세금을 자원으로 자본 축적을 위한 생산관계의 재생산, 혹은 노동의 재생산을 주요 목적 중 하나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세금을 밑천으로 하는 국가의 재분배 전략이 마련되고 이를 통해 노동자의 복지, 혹은 안정적인 노동 공급을 꾀하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비용이 안정화되거나 절감되는 효과가 있고 결과적으로는 자본의 재생산을 쉽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20세기에 다양한 전략들이 경쟁한 가운데 개별 국가들은 각각의 복지국가 형태를 갖추었다.

한국의 경우는 포괄적인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나 사회안전망의 발전 없이 개인들의 소득에 기초한 복지구조를 만들어 왔다. 개인 혹은 가족 단위의 자산 축적을 통해 노후와 질병 뿐 아니라 실업과 같은 사회적 위험에 대비해 왔다. 다시 말해 자산 축적이 사회보험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국가가 하는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세금만 가져간다’,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인다’ 류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소득을 통해 자산을 축적해야 하는데 소득세를 포함한 세금이 자산축적, 나아가 자기자산 기반의 복지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유럽의 경우처럼 국가가 포괄적인 공적 복지제도를 만들고 다양한 사회안정망으로 빈틈없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어서 조세에 대한 정당성 역시 약하다.

한발 더 나가보자. 한국에서 자산축적 기반의 자기(사적)복지는 낮은 소득세와 소비세를 통해 자연스럽게 구축되었다. 국가가 사회보장이나 사회안정망을 확대·발전 시키는 전략이 아니라 낮은 소득세를 통해 노동의 시장소득 보전을 해왔다. 자산 기반 복지를 유도한 것이다. 알다시피 가장 각광 받아온 자산축적 방법은 부동산이다. IMF 이전에는 자산축적으로 내집마련을 했다면, 이후에는 대출을 통한 내 집 마련이 확산되었다. IMF 이후로 노동시장의 개편에 따라 노동자 지위가 다양해지고 자산축적에도 다른 양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산축적의 기회로부터 소외된 노동자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자산축적의 불평등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대안적 방법은 대출이다. 결국 지금의 중산층이란 가계대출을 짊어지고 있거나 짊어졌던, 내 집 마련한 사람들이 다수를 형성할 것이다(가계대출액의 급격한 증가를 보라. 부동산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해도 올해 7월 기준, 전금융권 주택담보 대출은 전월 대비 5.4조가 증가했다). 이제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른바 중산층은 증세에 찬성할까? 아니 찬성할 수 있는 구조인가?

한국은 복지 태도와 증세 태도에 있어서 구조적으로 일관적이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복지 확대는 찬성하면서도 증세에 있어서는 반대하는 것이다. 소득수준이나 사회적 계급에 따라서도 증세에 대한 인식이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

WVS(World Value Survey, 세계가치조사)의 2022년 데이터를 사용해서 최근의 동향을 확인해보았다. 아래 첫 번째 그림은 ‘국가가 부자에게 세금을 걷고 가난한 사람들은 지원해 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국가별 평균점수(박스 안 굵은 가로선)와 점수의 분포다. 10점에 가까울수록 긍정(‘그렇다고 생각한다’)이고 0점에 가까울수록 부정 응답을 한 경우다. 16개 국가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전체 평균이 5.83이다. 한국은 독일(DEU) 다음으로 6.81의 높은 평균점수를 보여준다. 분포(박스의 위 아래 길이)도 적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응답이 일률적이다. 두 번째 그림은 ‘사람들의 소득을 평등하게 해야하는 것인 민주주의 국가의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16개 국가 평균은 4.80이고, 한국은 6.01의 평균을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국가의 역할로서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와 재분배를 통한 소득 평등성을 강하게 지향하고 있고, 이는 조사 대상 국가들 중 오스트리아, 영국, 일본,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등과 같은 선진산업국가들에서 보이는 것보다 월등하다.

여기서 주의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한국의 응답 양상이다. 한국 사람들은 소득수준(계층), 혹은 계급마다 어떻게 다른 응답을 했을까? 첫 번째 질문(부자에게 세금, 가난한 사람은 지원)에 대해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주관적 계급 인식에서 중하계급(lower middle class), 노동자계급(working class), 하위 계급(lower class)으로 갈수록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긍정 응답을 보였다. 그런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평균보다 낮은 긍정 응답(6.67)을 보였고, 소득 수준으로는 상-중-하 세 계층 중에 중간계층의 긍정 응답이 가장 낮았다(6.77. 오히려 상위 소득 계층에서 7.03의 긍정 응답이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두 번째 질문(민주주의 국가는 소득을 평등하게 해야한다)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 소득 평등이 민주주의 국가의 역할이라는 데에 대해 노동자 계급과 하위 계급이 오히려 평균에 못미치는 긍정 응답을 보였으며(각각 5.82와 5.75, 평균 6.01), 중간 소득 계층이 5.95로 상-중-하 세 개의 소득 집단 중 가장 낮은 긍정 응답을 보였다.

두 질문을 통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다. 그러나 재차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중간 계층(이글에서 소위 중산층이라 부르는 집단으로 일반화해서 정의하기 어렵지만)은 다른 소득 계층에 비해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나 재분배를 통한 소득 평등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은 세금 내기 싫어한다. 그중에서 증세에 대해 가장 큰 저항을 보이는 집단은 중간계층의 임금노동자일 것이다. 국가가 시장소득을 보전해 주면서 자기 자산 기반의 복지가 자리매김하고 국가의 공적 복지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자산 축적 기회를 저해할 수 있는 세금에 대한 부정 인식이 강한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금융시장의 확대에 따른 자산기반 복지가 더욱 강화될 수 있는 조건이다.

복지, 민생이나 서민 안정화 등은 조세정책, 사회정책, 금융정책 모두의 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초부자나 고소득 자산가에게 법인세나 재산세 인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부자 증세가 복지나 민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자본은 노동비용을 축소하거나 상품 가격을 상승시키는 방법을 통해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유럽 국가들처럼 사회적 안정망을 확장하고 포괄적 복지제도를 마련한다고 해서 자본주의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복지국가들 역시 최종적으로는 자본이 아닌 노동을 통제하는데서 체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공유부문과 사회적 연대경제 등을 성장시키면서 노동의 힘을 키우고 자본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끝으로 WVS 데이터를 살펴보다가 한 가지 더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성공은 열심히 일한 댓가일까, 아니면 운이나 사회적 배경에 따른 결과일까? ‘열심히 일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운과 배경이 성공하는데 더 중요한 요소다’ 라고 생각한다면 10점이고, ‘열심히 일하면 결국엔 성공한다’ 가 0점이다. 위의 자료를 보면 조사국가들 평균은 4.67인 가운데 한국은 5.54로 조사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한국은 운과 배경이 성공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다. 더욱이, 연령별로 보면 젊을수록 운과 배경이 중요하다고 대답했고,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상위 계급일수록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운과 배경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대단히 암울해지는 대목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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