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자본의 정치와 궁핍의 정치 – MAGA와 DSA의 최대공약수

자본의 정치와 궁핍의 정치: MAGA와 DSA의 최대공약수

- 미국 뉴욕시장 맘다니의 당선과 정치지형의 변화?

2025년 11월 27일 / 이슈 리포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대항정치, 자본가정치, 민주적사회주의자(DSA), MAGA, 월세안정법(rent stabilization law), 세입자파업, 인공지능(AI), 신용카드연체율, 금산복합체, 포플리즘, 민주당 프로그레시브

1. 대항정치의 미래?

최근 미국 정치권은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 당선인의 등장으로 떠들썩하다. 한국에서조차 그의 승리를 ‘새로운 좌파 정치의 가능성’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맘다니는 뉴욕시에서조차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있던 제도들이 더 후퇴하는 것을 막는 것이 고작일 가능성이 높으며, 심지어 이마저도 제대로 수행할 재원도 조직도 없다.

하지만 이같은 정치적/행정적 어려움이 당선 이후의 맘다니의 행보, 즉 민주당 주류와 야합하고 사회주의적 경향의 지지자들을 통째로 민주당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넘긴다는 비난을 모면할 수 있는 핑계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선거에 출마하기전에 그는 이미 이것을 알고 출마했어야하기 때문이다. 맘다니 식의 새로운 정치, 즉 ‘대항정치’는 여하튼 기존 체제와 현존 질서(the establishment)에 대한 ‘저항’ 혹은 ‘대항’이 그 정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작 ‘대항’이 아니라 ‘대안’이 되기 전에 지켜내야할 지점이기도 하다.

맘다니가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미국 연방하원은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를 배격’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맘다니는 이 결의안에 찬성한 민주당내의 우파인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의 연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제프리스의 지역구에 도전하는 좌파 후보를 지지하지 말라고 동료 민주사회주의자들에게 요구했다. 한국에서 맘다니를 지지하고 추앙한 이들로선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는 그의 당선이후 엄연히 벌어진 일이다.

단지 변화는 민주당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필자가 분석했듯이 트럼프 정권 초기 국가운영의 최전선, 전면에 나섰던 대자본가들은 지난 7월 이후 목소리를 낮추기 시작하였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가 급격히 낮아지던 시간대와 일치한다. 동시에 트럼프 지지기반인 MAGA 내부에서도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미국 정치 구도는 민주당은 중도층과 급진화한 프로그레시브(민주사회주의자)들을 새롭게 포섭할 기회를 맞았고, 공화당은 내부 분열 속에서 내년 중간선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트럼프 정권이 추구한 초기 정책들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실패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작 10개월 만의 이같은 정치적 변동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기는 악화하고 있으며, 대중들의 생활조건은 더욱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정치세력들로는 메울 수 없는 정치적 공백이 발생했으며, 기존 정치세력들은 어떻게 이들을 순치하고 흡수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트럼프/맘다니 회동은 이같은 정세를 적확하게 표현한다. 트럼프는 맘다니 승리로 대표되는 ‘포퓰리스트적’ 정치적 의미를 자기가 가지려 하고 있으며, 같은 시간 반사회주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의회는 대중 지도자들(정치인)를 포섭하면서도 대중의 ‘급진화’, ‘좌경화는 초기에 제거하려 했고, 반면 조란 맘다니는 정치적 승리를 행정적으로 현실화할 재원 및 제도권 정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이 삼자가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에 일어난 일이 바로 트럼프/맘다니 회동이었다.

이는 동시에 그것이 아무리 낮은 수준의 좌파적 성향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에서 기존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양대 정당에서 벗어나는 경로는 사실상 봉쇄되어 있으며,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입은 이같은 위험을 항상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로자 룩셈버그가 말했듯이, “사회주의자의 부르조아 정부 진출은 사회주의자들의 국가 정복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사회주의들에 대한 정복”이다.


2. 자본의 정치

트럼프 정권과 자본의 관계는 단순한 ’정경 유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분명 자본가들은 ’정치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지만, 트럼프 정권의 경우에는 단지 이해보장만이 아니라, 정부도 자원을 선택적으로 자본들에게 배분하는 과정에서 그 일부를 ’주식‘의 형태로 보전하여 정부와 자본이 아예 하나가 되는 길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트럼프는 경쟁에 뒤져 허덕이는 인텔을 지원하면서 인텔 지분 10%를 정부가 무상으로 기부받는 방식을 택했다. 정부가 민간기업 주식을 소유한다는 것은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국시인 미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의외로 시장에 죽고 못사는 자유주의자들에게서조차 아무런 반발이 없었다(실은 정부의 민간 기업 지분 소유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흔한 일이다. 아예 국영기업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경우 GDP의 50%가 국영 부문에서 발생한다. 사회주의 중국보다도 높은 수치다). 단순한 인적 결합, 혹은 인적 유착을 넘어서는 구조적, 물적인 결합은 국가와 자본의 관계가 미국에서 점차로, 그리고 불가피하게(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도화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bull) 조각상. 출처 : NYT

이같은 국가-자본 밀착 고도화의 또 다른 형태는 최근 들어 은행산업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연준)은 최근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과 회동하고 지난 2008년 이후 엄격하게 규제해왔던 레버리지 비율을 완화해 주는 조치를 시행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은행 신용 확대를 유도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 국채 시장에 은행자본이 더 적극적으로 유입되도록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대신에 이같은 은행자본의 국채 매수 확대는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와 부채가 커져가는 현재의 조건에서는 미국 정부가 은행자본의 요구에 더 취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지난 2008년 이후 중앙은행의 엄격한 규제 하에 놓여있던 은행자본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우위에 올라설 계기가 되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을 지지한 자본 분파는 주로 인공지능과 관련된 IT 산업과 크립토코인을 중심으로 한 사모펀드들, 그리고 유태인 자본과 관련된 군수산업, 그리고 석유 및 에너지 산업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사회 및 정치 문제에 개입하거나(Palantir의 알렉스 카프, 피터 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또는 이스라엘-가자 문제와 관련하여 미 국내에서 여론전 및 지식인 계층에 대한 숙청 작업을 하거나(헤지펀드인 Purshing Square의 빌 애크만) 등의 형태로 직접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적 활동’을 수행했으며, 스티브 베센트 재무장관,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처럼 아예 트럼프 행정부에 관료로 참여했다.

미국 정치에서 기업인, 금융가 출신의 장관들은 흔한 일이지만, 그러나 이들은 과거와는 달리 보다 노골적이고 선전적인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과거에는 자본의 정치 개입은 주로 ‘로비회사’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졌다. 즉 자본가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부 정책에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로비스트라는 매개자를 두었으며, 의회 내에서의 정치적 대리인들(의원)들을 통해 이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정치와 자본, 정부의 관계는 과거와는 다르다. ‘매개자’로서의 로비스트와 정치인은 소실되고, 자본가들이 직접 대중을 설득하거나 혹은 현혹하며, 정부를 상대로 자신이 스스로 로비한다.

이같은 자본가의 활동 방식은 단지 정치적 영역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으로까지 이어졌다. 예컨대 올해 2월에 빌 애크만은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에서 가자 인종학살을 계기로 반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지자 억만장자들을 동원하여 대학 본부에 압력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을 탄압하는 기업차원의 조직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아마도 19세기 말의 guilded age나 barron 시대 이후로는, 특히 대공황 이후로는 이같은 방식의 자본가의 정치 개입은 처음이었을 것이다(“자본가들과 권력자들 : 미국 트럼프 정권의 성격과 새로운 자본가집단의 출현”, 2024년 12월 22일.https://dem-labor.org/?p=15006 참조)..

문제는 이같은 자본가의 정치 개입이 모든 자본가들을 포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었던 은행자본은 물론이고 IT 산업 내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포장하는 방식은 유사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PR의 수준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트럼프의 ‘America First’와는 다른, 글로벌하고 보편적인 사고를 선호했다.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강력할 때, 즉 지지도가 높을 때는 이같은 자본가들의 차이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권력에 눌려있던 차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의회에서 출발한다.

두 달 가까이 끈 미국 연방정부 폐쇄는 집권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는 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일한 핑계거리는 상원에서 의안에 반대가 있을 때의 의사진행 정족수(60명)를 공화당 단독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단순 과반수만으로도 신속의사진행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연방정부 폐쇄는 사실상 공화당 상원의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사보타지라고 보아야 한다.

정확하게 트럼프의 어떤 정책이 공화당 내부의 반발을 불러왔는지는 현재로서는 불명확하다. 그러나 극적인 잠정 정부 예산안 통과가 이틀만 늦었더라도 미국 내에서 무려 4,500만 명에 달하는 빈곤층에 대한 식료품비 보조 프로그램이 중단되었을 것이고 그 여파는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크다는 점에서 어쨌든 민주, 공화, 그리고 백악관은 억지로라도 합의했다. 최종적으로 가장 큰 이슈였던 오바마케어(의료보험 지원)를 트럼프가 2년 연장키로 함으로써 사실상 트럼프의 정치적 패배로 귀결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군부 및 정보기관 고위직 출신의 상원의원 6명이 미 군부에 대해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은 거부하라”고 촉구한 사실이다. 미 해군과 해병대 수천명이 베네주엘라 앞바다에 진을 치고 마약 밀매를 핑계로 침공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상원의원들의 발언은 ‘힘을 통한 평화’라는 트럼프 독트린을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MAGA는 이에 대해 ‘반역의 6인’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 에피소드들이 말해주는 것은 트럼프의 권력은 여전히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작 출범 1년도 못돼서,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이미 lame duck에 접어들었다.
물론 트럼프 권력의 퇴조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국가-자본 관계의 고도화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금융자본과 IT 자본과의 공생을 거부하거나 힘 관계를 역전시킬 도리는 없으며, 다만 아직까지는 이같은 유착의 최종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금학복합체’ (Financial-Academic Complex; 金學複合體)- 트럼프 관세정책의 배후에 있는 ‘30인위원회’, 그들은 누구인가?”, 2025년 04월 25일)

3. 궁핍의 정치

트럼프 지지율(현재 평균적으로 40%를 하회한다)이 무너진 결정적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트럼프의 정책 실패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난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삶의 궁핍함’은 경제지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정부 폐쇄를 핑계로 두 달간 경제 통계들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들의 눈과 귀는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피부로는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 소비자의 신용카드와 자동차 할부 대출 연체율 추이 (연체 30일 이상, %)
** 적색 점선은 저신용자(subprime), 검은 실선은 중간신용자(near prime), 주황색 실선은 신용우량자(prime).
츨처 : FEDS Notes, “A Note on Recent Dynamics of Consumer Deliquency Rate”

지난 11월 24일 발표된 연준 리포트를 보면 저신용자와 중간신용자들의 크레딧 카드 연체율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래 최고 수준이며, 자동차 할부 대출 연체율은 이미 2008년 수준을 넘어섰다. 저신용자와 중간신용자는 대부분 저소득층이다. 이들(신용평가 점수 720점 미만)의 연체율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경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 소비의 50%가 상위 10% 소득 계층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합산 통계에서는 소비 위축과 같은 불황 지표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이미 고용지표도 꺾이기 시작했으며 산업활동도 둔화되고 있다.

연체자들은 저신용자이면서 동시에 저소득층, 세입자들이기도 하다.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이 아닌데도 이처럼 저소득층이 경제적 궁핍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이 인플레이션은 상품 인플레이션 아니라, 서비스 인플레이션이며 트럼프 정권의 관세 정책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월세, 교육비, 의료보험 비용, child care 비용 등은 공식 통계와는 상관없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심지어는 저소득층의 주식인 햄버거 판매체인 맥도널드에서 저소득층 고객이 감소한 대신에 중산층 고객이 증가했다고 분기 실적을 발표할 정도다. 이는 저소득층은 이제 햄버거를 사먹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가 되었으며, 과거였으면 그럴듯한 dinning에서 외식하던 중산층들이 소비 수준을 낮추어 맥도널드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 잘못이 트럼프 정책에 있다고 평가하기에는 집권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트럼프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트럼프 집권 이후 특히 MAGA가 기대했던 생활의 개선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정치적 책임은 트럼프가 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지지율은 하락하고, 그러면 의회 권력이 동요한다. 지난 11월의 지방선거 결과는 대선에서 트럼프가 10% 이상 격차를 벌리며 승리했던 지역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민주당 후보들보다 득표율이 뒤쳐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민심 이반(지지율 하락)은 다음과 같은 정치적 결과들을 가져왔다. 첫째는 MAGA의 분열이며, 두번째는 자본가들의 무대에서의 퇴장이다. 세번째는 미국에서 지난 60년대 반전/민권 운동 이래 사실상 소멸되었던 ‘좌파’ 정치가 제도권에 진입한 것이며, 이에 따라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4. 때 이른 퇴장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성위원회(DOGE)가 지난 11월 24일 조용히 문을 닫았다. 해산 예정일인 26년 4월보다 6개월 앞당겨졌다. 실은 지난 7월 이후에는, DOGE는 유명무실했다. 트럼프 정권 초기의 열광은 사라지고, 이제는 무엇을 했던 조직인지, 그 성과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모르며, DOGE 스태프들은 이제는 정부의 기소에 떨고 있다는 보도만이 무성하다. DOGE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규정을 무시한 월권행위였기 때문에 당연히 떨만 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DOGE의 운명은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의 정치적 흥망과 정확히 일치한다. 머스크가 권력에서 밀려나자 ‘정부 효율성’도 사라졌다. 실제 DOGE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행정부가 더 효율적이 된 것도 아니었으며, 재정적자를 줄이지도 못했다. 다만 매우 요란했을 뿐이다. 유일한 업적이 미 국제개발처(USAID)를 해체한 것인데, 또 다른 대외‘민주화’ 지원기관인 NED(민주화지원재단)은 하나도 손대지 않았다(참고 : 제국의 숙정, 혹은 정화. https://dem-labor.org/?p=16159). 결국 DOGE가 한 일은 일부 지역(대부분 동구, 중앙아시아)에 대한 미국 정부의 해외공작(NGO를 통한 정권 전복)을 중단시킨 것이 전부였다.

왜, 어떻게해서 머스크가 권력 다툼에서 패배했는지, 그리고 누구와 싸운 것인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루머로는 스티브 베센트 재무장관과의 갈등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마저도 무엇을 둘러싼 갈등이었는지 확인이 안된다. 다만 이 무렵 의회에서 Genious Act(크립토코인 사용 확대법)이 통과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코인 관련 이권다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일론 머스크가 전기톱을 들고 전미보수행동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 : SBS

전기톱 흔들고 옆에서 재롱 춤까지 추어가면서 트럼프 선거 운동에 헌신했던 머스크의 퇴진은 단지 머스크 한 사람의 일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머스크의 퇴조와 더불어 집권 초기 몇 달간 트럼프의 ‘입’ 역할을 했던 다수의 대자본가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관련 시위의 중심지였던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을 도륙냈던 억만장자 빌 애크먼도 눈에 띄게 발언이 수그러들었고 주커버그(메타),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제프 베조스(아마존)도 목소리를 낮췄다.

트럼프 집권 초기 자본가들은 직접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리고 자신들을 세련된 ‘스타’의 이미지로 제시하면서 그동안 ‘정치’라는 공간에서 ‘대리인’(계급적 이해를 수행하는 정치인)을 제치고 정치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그 역할까지 시도했었다(참고 : 자본가들과 권력자들: 미국 트럼프 정권의 성격과 새로운 자본가 집단의 출현. https://dem-labor.org/?p=15006). 그러나 지난 9월의 갤럽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하거나, 심지어는 오히려 자본가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만을 부추겼다. 최근 발표된 흥미로운 조사를 보자.

미국인들의 대자본가 인식. 출처: 로이터통신
* 황색 공간은 억만장자에 대한 우호적 견해, 청색 공간은 부정적 견해, 회색 및 검은색 공간은 모름/무응답

이 조사는 트럼프 정권이 막 출범한 지난 2월 실시된 것이기는 하지만, 자본가들의 PR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이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자본가들의 예술적 데뷔는 흥행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무대 뒷 전에 있다고 해서 이들의 ‘이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이들이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하기 직전에 두개의 중대한 선물을 내려주었다.
첫째는 미 정부 내 17개 기관에 보관되어 있는 정부 데이타를 인공지능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키로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상이냐 유료냐 여부가 아니다. 미국 정부 데이타는 그 양이 막대할 뿐만 아니라 가장 신뢰도가 높은, 따라서 인공지능 학습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자료에 속한다.

5. MAGA의 분열

트럼프 출범 이후 10개월 만에 벌어진 가장 큰 정치적 변화는 실은 공화당 내부에 있다. 트럼프 사조직이자, 지난 10년간 미국 정계를 뒤흔든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트럼프 정권이 미국 인민들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훨씬 복잡한 이데올로기적인 분열상을 보여준다.

먼저 MAGA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대외정책에 있어서나, 대내적으로 특히 민주당계 정치인들에 대해 미온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왜냐하면 10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권은 민주당의 ‘선거부정’이나 ‘러시아 게이트 유포자’, ‘불법 이민문제’, 그리고 온갖 음모이론 상의 부정부패들을 전혀 손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너무나도 기소 처벌이 가능해 보였던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에 대한 기소가 특별검사의 임명 절차 상의 문제로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그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 내각 개각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팸 본디 법무장관 경질설이 퍼지고 있다. 또 트럼프의 심복인 수잔 와일즈 비서실장 경질설도 나오는데, 만일 와일즈가 경질된다면 트럼프에게는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2025년 국제정세 전망, 누구나 처음엔 창대하리라”, 2025년 02월 01일).

또 다른 분열은 MAGA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자유방임주의자’(libertarian) 그룹이 트럼프에 비판적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이들 집단은 특히 닉 푸엔테스라는 인플루언서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흔히 ‘groyper’라고도 불린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를 저격했던 암살범도 groyper로 알려져 있다. 이들 그룹이 돌아선데에는 이스라엘 문제가 결정적이었다. 푸엔테스는 이스라엘의 가자 주민 학살을 비난하면서, 미국 정치가 이스라엘 로비에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그룹은 특히 젊은 층들에게 영향력이 크다.

MAGA에서 떨어져 나온 주요 인물로는 터커 칼슨도 있다. 그는 FOX 뉴스 진행자 출신으로 대선 캠페인 중에는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였지만 앱스타인 파일 및 이스라엘 문제를 둘러싸고 사실상 반트럼프로 돌아섰다. 여론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유투버인 알렉스 존스는 최근 “트럼프 지지를 철회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경고를 날렸다.

트럼프의 여론조사 지지도는 40%를 밑도는 정도로까지 떨어졌는데, 이런 지지도로는 내년 11월의 중간선거(하원 전체와 상원 1/3 선출)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록 게리멘더링(선거구 왜곡)으로 공화당이 최소한 8석 가량 추가 확보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감안할지라도, 여론조사 상으로는 공화당의 패배가 유력하다. 따라서 현역 의원들에게는 ‘밥 줄’과 관련된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들은 ‘합치’를 트럼프에게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로 오바마캐어(의료보험 지원)는 약 2년간 잠정 연장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MAGA의 불만으로 이어진다.

트럼프 정책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대외, 대내 정책 할 것 없이 모두 부정적인 견해가 훨씬 우세하며, 위험할 정도로 큰 격차가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연방이민국(ICE)이 온나라를 뒤집고 다니는 이민자 단속 문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가 20%가량 더 많다. 인플레이션, 고용, 주택, 관세 문제 모두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이는 트럼프 정책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미국인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회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초기에는 MAGA의 파괴력을 우려한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를 추종했지만, 트럼프의 득표율이 낮아진다면 굳이 충성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 결과, 트럼프 정권 내에서 초기의 ‘자본가 목소리’는 사라지고 의회 내 세력을 대변하는 마이크 루비오 국무장관의 입지가 강화되었다. 반면 MAGA 세력을 대변하는 다른 한 축인 JD 밴스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이는 자본가들 내부에서도 분열을 야기했다. 지난 7월 머스크를 축출할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세력(Plantir의 알렉스 카프, 피터 틸 등)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대신에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단지 한국에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지난 10월 트럼프가 샌프란시스코시에 대해 주방위군을 투입하여 이민자 단속을 하겠다고 협박했을 때, 이를 중간에서 중재한 인물이 젠슨 황이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트럼프 사이를 중재해서 방위군 투입을 막았다.

최근의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금융 자본 내부의 분열, 대립에 관한 것이다. 전통적인 은행자본(old money)과 신흥자본(private equity fund; new money) 사이에 향후 화폐체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으며, 최근의 비트코인 급락 사태도 이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구체적으로 지난 10월 10일 모건스탠리가 비트코인 투자업체인 Strategy를 투자적합군에서 배제할지 여부를 내년 1월까지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것). 물론 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크립토코인을 둘러싸고 은행자본과 사모펀드 사이에 이권 다툼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며, IMF와 BIS 같은 국제금융기구에서 사모펀드업계의 과잉레버리지에 대한 경고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이같은 자본가들 내부의 이해관계 대립을 얼마나 조정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데, 집권 초기에는 정치적 지지도를 배경으로 일방적인 결정이 가능했지만, 이미 여론 향배가 뒤집혔다고 인식되는 순간에는 정반대의 과정이 펼쳐진다. 즉 아주 빠르게 레임덕(lame duck)을 향해 가는 것이다. 게다가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의 일방적인 관세 결정에 대한 위헌 결정 가능성이 유력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혼란도 감수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통화정책(금리 인하를 미루는 것)으로 돌리고, 이를 강제하지 못하는 베센트 재무장관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 이상의 수단은 없다. 최근 물에 물 탄 듯한 온건파 크립토코인 주창자인 케빈 하셋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이 파웰 연준 의장 후임으로 유력하게 물망에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셋은 트럼프 추종자이기는 하지만, 카리스마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연준을 장악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향후의 금융통화정책은 연준 이사들 사이의 의견 통일이 어려울 것이다. 이는 연준의 독립성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연준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즉 통화정책 예측 가능성의 저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트럼프 정권의 경제 정책을 크게 제약할 것이다.

물론 트럼프를 향한 자본가들의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의 수탁은행인 뉴욕멜론 은행의 대주주인 티모시 멜론은 지난 9월 미 정부 폐쇄에 따른 연방군대 급료에 보태쓰라고 1억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당시 군인들에 대한 급료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트럼프에게는 고마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여론은 “미군이 부자들 기부받아서 운용되는 사병이냐”라는 비아냥이 더 많았다.

트럼프는 지난 9월에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을 비롯한 일련의 투자자들에게 중국의 Tiktok 미국지사 지분을 넘기면서 동시에 CBS 방송국의 모기업인 파라마운트를 비롯한 언론그룹도 함께 넘겼다. 이로 인해 엘리슨은 수십개의 지역 TV와 수백개의 라디오 방송국 채널을 포함한 언론미디어그룹의 소유주가 되었고 오라클의 주가는 폭등했었다. 즉 자본과 정부가 유착하여 직접적인 혜택을 준 사례가 되었다. 래리 엘리슨은 이로 인해 한때 세계 최대 자산가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직후 오라클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오라클의 CDS(파산에 대비한 옵션)은 세배나 뛰었다.

오라클의 재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도 이처럼 기업 존립에 대한 금융시장의 경고신호가 울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이것이 트럼프와 손을 잡은 대재벌들에 대한 우려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단지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미국 자본가들 사이의 세력 균형도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6. 맘다니, 강남좌파?

뉴욕 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가 당선되자 MAGA는 ‘공산주의자’가 당선되었다고 아우성을 쳤지만, 실은 맘다니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차적인 문제였다. 뉴욕 시민들이 맘다니를 뽑은 것은 너무나도 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집세는 너무 높고, 물가는 너무 치솟았으며, 치안은 엉망이었고 부패는 너무 심했고 대중교통은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비쌌다. 아마 이번 뉴욕 선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한마디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을 것이다.

맘다니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극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미국에서는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지만, 미국 풍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도 극좌파 공산주의자로 불린다.
맘다니는 자칭, 타칭, 그리고 조직적으로도 ‘민주적 사회주의자’다.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라는 ‘좌파’ 조직 멤버다. 힐러리 클린턴마저 공산주의자가 되는 미국의 정치풍토에서 민주사회주의자란 ‘민주당 멤버쉽이 확고하지 않은 프로그레시브’ 정도의 의미다. 이런 점에서는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를 희석한 유럽식 민주사회주의자들과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유럽의 대표적인 민주사회주의 정당은 지난 2014년 그리스 국채 위기 과정에서 완전히 궤멸한 PASOK이다). 대략적인 이념적 성향은 한국의 정의당(내 개량파)과 별 차이 없다(심지어 강령은 정의당보다 좌파 성향이 짙다).

뉴욕시 맨하탄 전경

어떻게 해서 맘다니가 당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신묘한 바가 있다. 왜냐하면, 맘다니의 부친(무하메드 맘다니)의 말에 따르면, “(출마할 적에)당선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다만 (기존 정치권에) 흠집을 내는 정도의 의미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맘다니는 거의 정치적 경력이 없는 무명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이후 커뮤니티 활동가(한국식으로 옮기자면 지역활동가, 주민운동가)로 주택 문제를 다룬게 경력의 전부다. 조직도 없고, 선거자금도 없었다. 게다가 맘다니가 민주당 예비경선에 참여할 때만 해도, 뉴욕시장 선거의 주요 이슈는 ‘치안’(public safety) 문제였다.

그런데 맘다니가 들어오면서 선거 의제가 ‘주택(월세), 가자 인종학살, 물가’ 이슈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맘다니의 능력 때문은 아니다. 사회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이같은 이슈가 전면에 부각되기 딱 좋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비정치권 출신의,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인물에게 급속하게 쏠렸다. SNS 활용이라든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주민들과의 직접 접촉과 같은 ‘새로운 선거 캠페인 방식’은 부대 조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는 ‘포퓰리스트’인가? 그의 경력이나 출신 성분으로 보면, 그리고 선거 운동 방식이나 구호를 보아도, ‘아니다’.
맘다니의 승리에는 먼저 뉴욕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뉴욕은 미국 내 도시 중에서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도시다. 이건 뉴요커도 다른 지역 시민들도 모두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민자 비중이 매우 높다. 역사적으로 뉴욕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이건 당연한 일이다. 대략 현 뉴욕 거주자의 1/3은 해외 출생자 이민자들이다. 그러나 해외 출생자 절대숫자는 지난 2016년을 고비로 점점 감소하고 있다(다만 뉴욕시 인구 자체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비율은 거의 동일하다).

맘다니의 선거 공약은 월세 안정과 대중교통 무료화, 치안 강화, 물가 안정이었는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왜 맘다니가 당선되었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조사 대상자의 85%가 주거 비용(월세)이 심각한 문제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투표 비율은 맘다니(53%), 쿠오모(39%)를 나타냈다. 즉, 월세가 선거를 가른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또 지역적으로는 맘다니가 활동가로 일했던 브룩클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에 흑인 밀집 거주 지역인 브롱크스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그동안 민주당 득표 베이스였던 뉴욕 흑인 그룹이 상대적으로 이번에는 미온적이었음을 시사한다.

출구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젊은 층의 투표 성향이었다. 18-29세 여성의 무려 82%가 맘다니를 지지했다. 동년령대 남성들의 지지도도 높아서 65%였다. 전체적으로 18-44세 인구 집단에서 69%가 맘다니를 지지했다. 이는 그동안 젊은 층, 특히 젊은 층 남성은 트럼프 지지자라는 통념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18-29세 백인의 62%, 30-44세 백인의 65%가 맘다니에게 투표했다. 다만 45세 이상의 백인들은 압도적으로 쿠오모를 지지했다. 또 전체 조사 대상자의 25%가 자신들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대답했다(MAGA라는 대답은 11%). 물론 미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비율은 이보다는 훨씬 낮게 나올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 전체에서 사회주의적 경향, 혹은 사회주의에 대한 우호적 견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대중의 자본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 출처: 갤럽

지난 9월 발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에 비해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적 견해는 61%에서 54%로 하락한 반면에,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 견해는 36%에서 39%로 소폭 상승했다. 특히 민주당 당원들은 66%가 사회주의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지난 5월 공개된 보수주의 씽크탱크인 카토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 가운데 43%는 사회주의에 대해 우호적인(favorable)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18-29세 사이의 청년층에서는 그 비율은 62%에 달한다. 또 14%의 청년층은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또 대기업(big business)에 대한 긍정적 견해는 지난 2012년 60%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그 뒤 계속 하락해 이번 조사에서는 37%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같은 미국 청년층의 ‘좌경화’는 이들이 처한 경제적 조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 청년층(18-34세)의 경제 상황 인식

미국 청년층(18-34세)들이 자신이 처한 경제적 조건(소비자 심리 지수, 주택 구매 조건 지수)는 지난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최악이다. 즉 지난 50년래 최악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 폐쇄 탓에 경제 통계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리고 인공지능 관련 투자로 일부 부문만 과열 경기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생활 경기는 극악의 수준이다. 그리고 특히 젊은 층은 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이처럼 살기 어려워졌는가를 묻고 있는 중이다.

이 챠트는 왜 미국 청년층이 처음에는 트럼프에 열광했다가 지금은 돌아서고 좌경화되는지를 말해준다. 처음에는 기존 양당 외부에 있는 인물(트럼프)에게 기대했다가 그마저도 무산되자 이제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념’에 경도되고 있는 중이다. 즉 먹고 살기 어려워서 좌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좌파’ 혹은 ‘사회주의’라는 인식은 매우 얄팍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이념적 성향은 차라리 ‘급진적’(그게 무엇이 되었든)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동시에 이는 맘다니의 승리는 분명 뉴욕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미국 사회의 변화, 즉 사회주의에 대한 수용적 태도로의 전환이라는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비록 선거에 승리하기는 했지만, 실은 그의 선거 공약은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유권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다. 그의 핵심 공약인 월세 안정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뉴욕시는 전통적으로 월세 문제가 심각했고, 이에 따라 ‘세입자 파업 (rent strike)’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도시다. 지난 192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차 대전 귀환병사들이 뉴욕으로 몰리면서 집값이 폭등하자 세입자들은 월세 납부를 집단적으로 거부했다. 결국 집 주인들은 부분적으로 양보해서 일부 월세 제한 조치를 취했다.

월세 납부 거부는 2차 대전 중이던 1943년에도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최초의 월세 안정법은 이 때 만들어졌다. 1963년과 1968년에도 세입자 스트라이크가 있었고, 그 결과 1971년 현재 형태의 월세 안정법(rent stabilization law)가 만들어졌다. 이 법은 기존 주택 세입자들에게는 연간 월세 인상비율을 제한해 적용하도록 했으며, 최대 인상 액수도 함께 규정하고 있다. 그 뒤 몇차례 법안수정을 통해 현재는 약 50%의 뉴욕 월세 주택이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비수혜자들에게는 뉴욕의 월세는 엄청나게 비싸지만(올해 10월 기준 부동산 조사업체인 Zillow의 통계로는 뉴욕시의 one bed room의 평균 월세 가격은 월 4,500달러에 달한다), 월세 안정법 대상자들은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만을 지불한다. 매년 월세 인상률은 뉴욕시 주택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문제는 전임 에릭 아담스 시장이 월세 안정법 대상 주택에도 월세 인상액을 높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서 도저히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월세가격이 폭등했다.

한국에서는 맘다니의 렌트 동결이 아주 ‘급진적’으로 보이겠지만, 이런 뉴욕의 ‘시티 폴릭티스 (city politics)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혹은 세입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뉴욕만큼 혹은 뉴욕보다 더욱 살인적인 주거환경과 임대 구조인 한국, 그리고 서울에서 상황을 대비해 볼 필요가 있다. 뉴요커들, 정확히는 뉴욕 시민들중 렌트 압박에 시달려온 기층민중, 이민자들, 소수 인종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뉴욕의 ’렌트 안정화‘를 위한 모든 계급적 민중적 사회적 투쟁을 해왔던 역사가 있다.

맘다니는 월세 안정법 대상 주택의 월세는 동결하고, 신규주택을 대규모로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난점이 따른다. 월세 안정에는 건물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대중교통 무료화와 신규 주택 건설은 개발업자의 협조와 증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증세 권한이 있는 뉴욕 주지사는 세금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못을 박았다. 따라서 맘다니는 구호는 있지만, ‘재원’은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이는 오히려 후퇴에 해당한다. 적어도 과거에는 미국의 서민들(세입자들)은 ‘rent strike’(임대파업)를 통해서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법을 관철시켰다. 심지어는 전쟁 중에도 그랬다. 이제는 그들은 ‘시장을 뽑아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며, 당연히 파업으로도 안되는데 시장으로 될 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뉴욕을 벗어나는 정치의 문제였다. 그는 민주당 하원 원내 대표인 하킴 제프리스가 내년 중간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원내 대표 자리를 계속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제프리스는 맘다니가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만나고 있던 그 순간에 하원에서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는 반미국적인 것이며, 용납할 수 없다”는 결의안에 찬성하고 있었다. 이 결의안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용상으로 거의 맥카시즘 시절을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맘다니가 트럼프를 만나는 시간에 맞추었다.

문제는 제프리스의 지역구가 바로 맘다니의 활동 본거지인 뉴욕시 브룩클린이라는데 있다. 즉, 이 두사람은 같은 동네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맘다니는 제프리스의 자유주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그의 지역구 민주당 예비경선에 도전장을 던진 좌파 후보 Chi Osse에 대해 DSA가 지지하지 말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맘다니의 ‘변절’은 민주당 안팎의 좌파 블록에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는데, 보다 강경한 사회주의자들로로부터 비난받을 일이다. 즉 “맘다니는 미국 혹은 민주당을 좌경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지지자들(민주사회주의자들)을 우경화시키고 있다”라는 말이 그 말이다.

7. 맺음말

맘다니의 향후 경로는 아마도 지난 2018년 혜성처럼 나타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AOC도 등장 초기에는 미국의 새로운 정치, 사회주의, 젊은 세대의 희망으로 칭송되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은 민주당으로 진보적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도수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뉴욕 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에 워낙 관심이 쏠렸지만, 나는 다른 지역의 선거 결과들도 주목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맘다니라는 논쟁적인 인물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주와 뉴저지주에서도 민주당 인사들이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공화당의 득표율이 현저하게 낮아져서 공화당에 충격을 던졌다. 아마도 트럼프가 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내년 중간선거는 공화당의 참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번에 당선된 민주당 인사들은 전형적인 민주당 신자유주의 노선 추종자일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CIA, 미 해군 정보장교 출신들, 즉 공안세력들이라는 점이다(둘 다 여성). 즉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라는 강경 외교정책에 전혀 반하지 않는다(다만 LGBTQ에 수용적일 뿐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번 선거가 ‘중도파’의 승리라고 주장할 근거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에서의 선거 결과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트럼프에 대한 반대 의사 표시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집권 10개월의 시간은 자본가의 전면 등장, 자본과 국가의 유착 관계의 고도화, 경제 악화, 지지율 하락, 의회 세력의 반발, 자본가들의 조기 퇴장, 실망한 (특히 젊은)유권자들 사이의 사회주의적 경향 확대, 이를 통제하고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략 모색 등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미국 밖의 정부와 자본가들은 이같은 미국의 변하에 따라 협조하거나 혹은 아예 같은 배를 타거나, 때로는 대립하면서 국제 질서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 내년 여름이 되기 전에 그 질서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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