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의 현재성
엥겔스판을 넘어서
2026년 3월 30일 / 연구자의 시선
글 정성진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연구석좌교수)
머리말
주지하듯이 마르크스(1818-1883)는 모두 세 권으로 기획했던 『자본론』 중 제1권만을 생전에 출판했고 (1867년 초판),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의 사후 엥겔스(1820-1895)가 마르크스가 남긴 초고들을 편집하여 각각 1885년과 1894년에 출판했다. 엥겔스가 편집·출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2권과 제3권 (이후 ‘엥겔스판’으로 줄임)은 오랫동안 마르크스의 원래 텍스트를 정확하게 재현한 것으로서, 즉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의 ‘正典’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출판된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은 거의 다 엥겔스판을 번역한 것들이다.[1]
그러나 『자본론』 제3권의 경우 1992년 그 주요 초고가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제Ⅱ부문 4.2권, 즉 MEGA(Marx Engels Gesammtausgabe) Ⅱ/4.2 (Marx, 1992)로 간행되면서, 엥겔스판이 마르크스의 초고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초고를 편집하면서 많은 부분을 첨삭하고 변경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Heinrich 1996-97; Vollgraf and Jungnickel 2002). 이로부터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원래 초고, 특히 그 주요 부분인 Marx(1992)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동안 『자본론』 제3권이 여러 역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해서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엥겔스판을 수록한 MEW(Marx Engels Werke) 제25권, 즉 Marx(1964)의 번역을 되풀이했을 뿐이며,[2] 1992년 공간된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주요 초고는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최근 출판된 사사키 류지佐々木隆治(1974- )의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사사키 류지, 2026)은 『자본론』 제3권 초고의 주요 부분들을 수록하고 해설했다는 점에서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자본론』 읽기와 연구의 중요한 공백을 메울 것으로 기대된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자본론』 해설서는 제1권을 해설한 것들이거나,[3] 제2권 혹은 제3권의 내용 일부를 요약한 것들이며,[4] 제2권 혹은 제3권을 별도 단행본으로 다룬 책은 전무하다시피 하기에,[5] 사사키 류지(2026)는 『자본론』 제3권 해설서로도 의미가 있다. 물론 『자본론』 출판과 연구의 역사가 한 세기가 넘는 일본의 경우, 제3권에 대한 단행본 분량의 해설서들도 다수 출판되어 있다.[6] 하지만 사사키 류지(2026)는 『자본론』 제3권 초고 자체를 해설했다는 점에서 엥겔스판을 해설한 기존의 해설서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며, 『자본론』 제3권 초고 전체를 해설한 단행본으로는 사상 최초이다.[7]
이하에서는 사사키 류지(2026)를 중심으로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를 어떻게 첨삭·변경했는지, 그 결과 엥겔스판 『자본론』 제3권이 마르크스의 초고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겠다.
물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가 1992년 Marx(1992)로 공간된 이후에도 ‘마르크스=엥겔스 일심동체설’, ‘무오류설’을 믿는 일부 논자들은 엥겔스의 첨삭·변경은 사소한 것들이며 오히려 난삽한 마르크스의 초고를 ‘마르크스의 정신’을 살릴 수 있도록 잘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모슬리(Moseley 2015: 4)는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 주요 초고 영어판 서문에서 “엥겔스의 개선된 편집은 마르크스의 초고의 전체적인 논리적 구조를 변경하지 않았으며 (장절의 순서는 똑같다) 마르크스의 강조점이나 특정한 문단의 의미를 변화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 발로메노스(Balomenos 2025; 2026)는 『자본론』 제3권 중에서 엥겔스에 의한 초고 첨삭·변경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과 제5편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의 이윤의 분열. 이자 낳는 자본’ (이하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으로 줄임)에서도 엥겔스의 편집본은 마르크스의 초고를 충실하고 정확하게 구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엥겔스에 의한 『자본론』 제3권의 변경은 제목에서 시작하여 전체 내용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며, 이것들은 대부분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었고, 그 중에는 의도적인 것들도 있음을 보일 것이다. 아울러 엥겔스의 개악으로 인해,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의 독해와 적용에서 적지 않은 오류와 이론적·정치적 편향들이 야기되었음도 보일 것이다.
<그림 1> 『자본론』 제3권의 제목 변경: 주요 초고 첫 페이지와 엥겔스판 표지 출처: 사사키 류지(2026)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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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4-65년 『자본론』 제3권 주요 초고 첫 페이지 | 1894년 엥겔스판 『자본론』 제3권 표지 |
자본론』 제3권의 제목 변경과 형상화론의 주변화
<그림 1>에서 보듯이 엥겔스는 1894년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을 출판하면서 제목을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Der Gesammtprozess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이라고 달았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 첫 번째 페이지 첫 번째 줄에는 “제3부 총과정의 형상화(Drittes Buch. Die Gestaltungen des Gesammtprozesses)”라고 쓰여있다.[8]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붙인 『자본론』 제3권 제목에서 형상화라는 개념을 뺀 것이다.
하지만 아래 인용문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3권의 과제는 다름 아닌 형상화에 관한 연구라고 밝힌 것을 보면, 엥겔스의 제목 변경은 부적절하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전체로서 보인 생산과정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통일이다. 이 점은 유통과정을 재생산과정으로 고찰했을 때 …… 상세히 논의했다. 이 〔제3〕부에서 해야 할 것은 이 ‘통일’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것저것 반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전체로서 고찰된 자본의 [운동Bewegung] [9]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구체적인 형태들Formen을 찾아내어 서술하는 것이다. <{>자본들은 그들의 현실적 운동에서는 그러한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여 상호 대립하며, 이러한 형태들에게는 직접적 생산과정에서의 자본의 자태Gestalt도 유통과정에서의 자본의 자태도 특수한 계기로서만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3〕부에서 전개해 나가는 자본의 형상화Gestaltungen는 그것들이 사회의 표면에서 생산당사자들 자신의 일상의식 속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자본이 서로에 대해 행하는 행동 속에서, 즉 경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의 형태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10]
마르크스가 “총과정의 형상화”라고 했을 때 형상화란 “본질적 메커니즘이 현상적 메커니즘으로 전화할 때 새로운 경제적 형태규정을 두르고 나타나는 것을 의미”(사사키 류지 2026: 51)한다. 『자본론』 제3권은 형상화 개념을 핵심축으로 하여 『자본론』 제1권과 제2권에서 전개된 본질적 메커니즘의 물상화Versachlichung가 현상적 메커니즘을 통해 심화되는 과정을 서술한 것으로서, 『자본론』 제1권과 제2권에서 전개된 물상화는 『자본론』 제3권에서 형상화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사사키 류지 2026: 53-57). 『자본론』 제3권에서 “형상화에 의한 물상화의 심화”란 『자본론』 제1권 및 제2권에서 전개된 “근원적 물상화” – 이는 “직접생산자와 생산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도, 주체와 객체 간의 직접적인 전도로서 생산자가 산출하는 생산물이 생산자를 지배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형태규정을 수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 에 의해 생성된 경제적 형태규정이 다시 생산자로부터 자립화하고 그 자체로서 경제적 수익을 획득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는 사태를 의미”한다(佐々木隆治 2025: 29).
즉 마르크스가 형상화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려 했던 것은 단지 잉여가치라는 본질이 이윤이나 이자라는 현상적 카테고리에 의해 은폐되는 사태가 아니라, 오히려 임금노동이 산출하는 근원적 물상화를 기초로 하여 이윤이나 이자, 지대 등이 경제적 형태규정으로서 자립화하고 그것에 의해 부의 취득과 수탈이 가능하게 되는 사태이다(佐々木隆治 2025: 30). 형상화는 『자본론』 제3권의 핵심 테마로서 『자본론』 제3권 전체를 경제적 형태규정의 비판적 분석, 즉 경제학비판으로 총괄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의 제목을 “총과정의 형상화”라고 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엥겔스는 어처구니 없게도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제목에서 형상화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이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라는 경제학적 용어로 대체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자본론』 제3권 전체의 핵심 테마가 형상화임을 알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핵심이 경제학비판, 즉 경제적 형태규정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모종의 경제학 책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갖게 되었다.
자본론』 제3권의 방법론의 변경과 ‘자본일반’의 폐기
엥겔스는 또 위 인용문, 즉 『자본론』 제3권의 방법론에 관한 마르크스의 서술 부분에 대해서도 변경 부분 표시에서 보듯이 중요한 첨삭을 가했다.[11] 마르크스의 원래 초고에는 “자본들은 그들의 현실적 운동에서는”에서 시작되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까지 이어지는 후반부 문장들이 { } 괄호로 묶여져 전반부와 구별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인용문 전반부에서는 『자본론』 제3권의 대상과 과제를 제1권 및 제2권 특히 제2권과의 관련에서 서술했지만, 후반부에서는 이를 제3권 이후 “자본들의 현실적 운동”과의 관련에서 서술했다. 즉, 전반부에서는 제3권 “총과정”을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 및 제2권 “자본의 유통과정”과의 관련에서 자리매김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제3권 “총과정”의 위상을 “자본들의 현실적 운동” 또는 “경쟁”과의 관련에서 설정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인용문 후반부를 묶었던 { } 괄호 표시를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엥겔스는 이 문단 전반부에 있는 “자본의 과정”이라는 문구에 “운동Bewegungs”이라는 단어를 삽입하고 이탤릭체로 강조하여 “자본의 운동과정Bewegungsprozeß des Kapital”이라고 변경했다.
이런 변경은 얼핏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이후 『자본론』 플랜 논쟁에서 ‘플랜 변경설’[12]을 지지하는 논거가 되었다. 예컨대 ‘플랜 변경설’을 주장하는 대표적 논자인 로스돌스키(R. Rosdolsky 1898-1967)는 논거를 바로 이 문단, 특히 원래 { } 괄호로 묶여 있던 후반부에서 찾았다.[13] 로스돌스키는 이 인용문 전반부에서 마르크스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통일”이라고 지칭한 것은 『자본론』 제3권이 아니라, 『자본론』 제2권 제3편 “사회적 재생산과정”이며, 『자본론』 제3권의 대상으로 인용문 전반부에 언급된 “전체로서 고찰된 자본의 운동과정”은 후반부에 언급된 “자본들의 현실적 운동” 과정과 동일하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인용문에서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통일”은 『자본론』 제2권 제3편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전체로서 고찰된 생산과정” 혹은 “전체로서 고찰된 자본의 과정”으로서 『자본론』 제3권을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자본론』 제3권은 이 “‘통일’에 대해 일반적인 반성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고찰된 자본의 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구체적인 형태들”을 “찾아내어 서술하는 것”을 과제로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구체적인 형태들”을 “자본들의 현실적 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형태, 즉 “사회의 표면에서 생산당사자들 자신의 일상의식 속에서 그리고 최후에 여러 가지 자본들의 상호활동인 경쟁 가운데 나타나는 형태”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자본론』 제3권의 과제는 어디까지나 전자, 즉 “구체적인 형태들”에 한정된 것으로서, 후자, 즉 “자본들의 현실적 운동”에 다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게 되는 것”일 뿐이다(佐藤金三郞, 1992: 181). 위 인용문 마르크스의 초고에서는 이와 같은 구별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엥겔스의 첨삭·변경, 즉 “운동”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고(인용문 전반부) { } 괄호 표시를 제거한(인용문 후반부) 결과 이와 같은 구별이 사라졌다. 이는 마르크스가 1864-65년 『자본론』 제3권을 집필하면서 1857-58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제시했던 ‘자본일반’의 문제설정을 폐기했다는 ‘플랜 변경설’의 유력한 논거가 되었다. 하지만 첨삭·변경된 텍스트가 정당한 의미의 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14]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파편화 및 공황론으로부터의 분리
<표 1> 『자본론』 제3권 제3편의 편제: 마르크스의 초고와 엥겔스의 변경
|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 | 엥겔스판 『자본론』 제3권 |
| 제3장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전에 있어서 일반적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 | 제3편 이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 |
| 제13장 법칙 그 자체 | |
제14장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 제1절 노동의 착취도 증가 제2절 임금의 가치 이하로의 인하 제3절 불변자본 요소들의 저렴화 제4절 상대적 과잉인구 제5절 무역 제6절 주식자본의 증가 | |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 제1절 개설 제2절 생산의 확장과 가치증식의 충돌 제3절 인구과잉 상태에서의 자본과잉 제4절 보유 |
출처: 사사키 류지(2026: 259. 표 3.1)
엥겔스판 『자본론』 제3권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제13장 ‘법칙 그 자체’, 제14장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라는 제목의 세 개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표 1>에서 보듯이 마르크스의 초고를 보면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한 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즉 엥겔스판에서와 같은 장 구분 자체가 없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없던 장 구분을 도입하고 장 제목을 달았으며, 제14장과 제15장을 다시 여러 개의 절들로 세분했다.
엥겔스는 이처럼 원래 한 개의 통 글이었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제목으로 한 마르크스의 초고를 여러 개의 장절들로 조각조각 나누어 놓고도, 이에 대해 ‘서문’ 등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제3편의 장절 구분은, 1992년 마르크스의 초고가 공간되기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마르크스 자신의 구분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엥겔스에 의한 제3편의 3개 장으로의 구분에 근거하여 지난 세기 동안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과 공황의 관련에 대한 수많은 연구와 논쟁이 진행되었다.
예컨대 1970년대 서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계에서는 제13장 ‘법칙 그 자체’, 즉 자본축적 과정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따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이론적·실증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와 같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부터 공황을 설명하는 ‘근본주의적 해석(Fundamentalist)’과 이에 맞서 제14장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의 위상을 제13장 ‘법칙 그 자체’와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논증될 수 없는 것으로 기각하고 임금 상승에 기인한 이윤 압박으로 공황을 설명하는 오키시오(N. Okishio) 등의 ‘네오리카도주의적 해석(Neo-Ricardian)’ 간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15] 이 논쟁은 공황을 설명함에 있어서 제3편에서 제13장과 제14장 중 어느 장에 설명의 우위를 부여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하면서도, 공황론에서 제15장의 의의는 주변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반면,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의 양대 입장인 상품과잉론(과소소비설)과 우노 코조(宇野弘藏)류의 자본과잉론은 상호 대립하면서도, 공황을 『자본론』 제3권 제3편 제13장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아니라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제3편 제13장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자본주의의 장기 추세에 관한 법칙이기 때문에 주기적 산업순환의 한 국면인 공황을 설명하는 법칙이 될 수 없으며,[16] 자본주의에서 공황은 그것이 상품과잉이든 혹은 자본과잉이든 제3편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를 중심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지 그 ‘법칙의 내적 모순’의 핵심이 상품과잉인지, 자본과잉인지를 놓고 논쟁할 뿐이다.[17]
하지만 공황을 설명하는 데서 『자본론』 제3권 제3편 3개 장들 중 어느 장이 더 설명력이 있는지를 다투어 온 그 동안의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논쟁은 존재하지도 않는 ‘허위 문제(false problem)’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했던 무의미한 불모한 논쟁이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3개 장으로의 구분 자체가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제13장을 ‘법칙 그 자체’로 명명한 것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주요 내용이 제13장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는 오해를 조장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또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이윤율의 저하를 “경향적”이게 하는 이윤율 상승요인들, 즉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을 포함하는 법칙이기 때문에, 이를 엥겔스처럼 제13장 ‘법칙 그 자체’와 제14장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로 이분법적으로 분리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사사키 류지 2026: 259; 宮田惟史 2019, 669).
게다가 엥겔스는 이러한 장 구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러한 구분과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문장들, 즉 마르크스 초고 기준으로 제14장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 끝 부분 (즉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 서두 부분)에 있던 4 쪽에 달하는 이윤율의 저하에 관한 문장들을 제13장 ‘법칙 그 자체’ 말미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 제13장 ‘법칙 그 자체’가 원래 초고보다 과대 확장되었으며,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가 실은 이윤율의 저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가려지고 말았다. 엥겔스의 자의적 장 구분과 편집으로부터 초래된 혼란과 불모한 훈고학적 논쟁이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의 발전을 지체시켰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의 양대 흐름인 상품과잉설과 자본과잉설은 그 동안 상호 대립하면서도 엥겔스판 제3편의 장 구분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공황론을 제13장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아니라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전제는 마르크스의 초고에서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가 제13장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 및 제14장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과 긴밀한 관련 하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근본적으로 의문시된다. 초고 중 제15장의 다음 문장에서 보듯이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공황과 명시적으로 연결시켰다: “노동생산력 발전은 이윤율 저하라는 하나의 법칙을 낳으며, 이 법칙은 생산력 발전이 일정 지점에 도달하면 생산력 자체의 발전에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따라서 끊임없이 공황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마르크스 2015: 322. 강조는 필자)[18]
엥겔스는 하나의 통 글이었던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장을 여러 개의 장절들로 조각조각 파편화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몇 가지 부적절한 첨삭·변경을 가했는데, 이는 이후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에서 상품과잉론, 실물공황론, 붕괴론과 같은 편향들을 낳았다. 제3편 제15장 초고에 제시된 마르크스의 공황론이 상품과잉론인지 혹은 자본과잉론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되고 있지만, 아래와 같은 엥겔스의 첨삭·변경은 마르크스의 공황론을 상품과잉론으로 읽도록 조장했다:
“<현실적인 자본의 과잉생산die wirkliche Ueberproduction von Capital은 여기에서 고찰된 것과는 결코 동일하지 않으며 그것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자본의 과잉생산은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는, 즉 주어진 착취도에서 노동 착취에 사용될 수 있는 생산수단 …… 의 과잉생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이 착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정체Stockungen, 교란Störungen,>[교란, 정체,][19] 공황, 자본의 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의 과잉생산이 다소 큰 상대적 과잉인구를 동반한다는 것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이 상대적 과잉인구의 감소는 그 자체로 이미 공황의 한 계기이다. 이는 지금 고찰한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absoluten Ueberproduction von Capital이라는 사태를 더 가까이 끌어오기 때문이다.)> 노동의 생산력을 높이고, 생산물(상품)의 양을 늘리고, 시장을 확대하고, 자본의 축적(그 물질적 양과 가치량 모두에서)을 촉진하고, 이윤율을 저하시킨 사정, 그 동일한 사정이 상대적 과잉인구를 만들어 냈으며, 또한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 과잉인구가 과잉자본에 의해 사용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낮은 노동 착취도로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며, 혹은 적어도 착취도가 일정한 경우 낮은 이윤율로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20]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엥겔스는 자본 과잉 관련 부분 (< > 괄호 부분)을 삭제했다. 삭제된 초고 부분에서 마르크스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감소에 의한 임금 상승이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이라는 사태를 더 가까이 끌어”온다고 하면서,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호황 말기 임금 급등으로 인한 이윤율의 급락)이 “공황의 한 계기”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상품과잉론(과소소비설)이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을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극단적 가정”으로 치부하여 기각하는 것과 상반된다(宮田惟史 2019: 676). 하지만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초고에서 자본 과잉 관련 부분을 삭제한 결과 이후 마르크스의 공황론 해석에서 상품과잉론(과소소비설)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초고에서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을 언급했다고 해서 이를 우노 코조류의 자본과잉설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을 “공황의 한 계기”라고 말하면서도, 이는 그것이 여러가지 계기들 중 “한 계기”라고 말한 것일 뿐이며, 상품과잉(과소소비)도 복수의 계기들 중 하나로 열거하고 있기 때문이다(宮田惟史 2019: 677). 또 우노 코조류의 자본과잉설은 공황의 원인으로 제3편 제15장 부분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으로 언급한 사태, 즉 호황 말기의 임금 급등에 기인한 이윤율의 급락을 중시하면서도, 이때의 이윤율 급락은 제13장 ‘법칙 그 자체’ 부분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 정식화된 생산력 발전에 따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부터 비롯된 이윤율 저하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제3편을 세 개의 장으로 자의적으로 구분한 엥겔스판으로 읽은 결과이다.
장 구분이 없는 마르크스의 제3편 초고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생산력 발전에 수반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부터 비롯된 이윤율의 저하 경향과 이를 이윤량 증대, 축적 증대로 상쇄하려는 과정에서 격화되는 자본들간의 競爭戰Konkurrenzkampf, 이로부터 초래되는 임금의 일시적 급등과 이윤율의 급락 (즉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 및 “자본의 플레토라(Plethora)”가 공황의 발발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명확하다. 위 인용문에서 마르크스의 초고에 대한 엥겔스의 부적절한 변경은 공황의 원인이 상품과잉인가 자본과잉인가를 둘러싼 불모한 당파적 논쟁을 조장하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과 공황을 분리하는 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전혀 사소하지 않다.
게다가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엥겔스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 초고에서 ‘자본의 플레토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삭제했으며, 또 이것과 “이자 낳는 자본이나 신용 등이 한층 더 전개되는 자본의 현상적인 운동”과의 관련을 언급한 부분도 삭제했다:
“그러나 개별 상품의 과잉생산이 아니라 자본의 과잉생산Ueberproduction<(=자본의 플레토라Plethora)>(이라고 하더라도 자본의 과잉생산은 항상 상품의 과잉생산을 포함하는 것이지만)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자본의 과잉축적Ueberaccumulation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이에 관한 보다 상세한 연구는 <이자 낳는 자본이나 신용 등이 한층 더 전개되는 자본의 현상적인 운동erscheinenden Bewegung des Capitals에 속한다>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다].”[21]
위 인용문에서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관한 이 제3편에서의 논의가 이후 제5편에서 전개되는 이자 낳는 자본과 신용의 현상적인 운동과 연결될 것이며, 그 연결 고리는 ‘자본의 플레토라’임을 분명히 했다.[22] 하지만 엥겔스가 관련 부분을 삭제한 결과 이 점을 알기 어렵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초고에서 이윤율의 저하가 ‘자본의 플레토라’로 이어진다고 언급했음에도 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플레토라’가 현실자본의 축적에서의 제한, 즉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기인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배경으로 형성된다고 보았다.[23] 또 ‘자본의 플레토라’는 다시 이윤율 저하라는 제한을 돌파하기 위해 금융 부문 등에서 새로운 자본 투하 대상을 찾으면서 갈수록 “모험적으로 되고 투기, 신용사기, 주식사기, 공황으로 내몰리게 된다”(마르크스 2015: 313)고 썼다. 마르크스의 초고는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에서 분석되는 ‘화폐적 자본(monied capital)’[24]의 과잉과 투기로부터 촉발되는 공황이 제3편에서 논의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서 비롯된 현실자본의 축적 제한, 유리한 현실자본 투하 부문의 부족으로 인해 형성된 ‘자본의 플레토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공황을 촉진· 격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서 신용제도 하에서 ‘화폐적 자본’의 과다를 강조하면서도, 그 발생 근거를 이윤율의 저하를 수반하는 현실자본의 축적의 제한과 ‘자본의 플레토라’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윤율의 저하에서 비롯된 ‘자본의 플레토라’가 공황을 촉진하고 격화시킨다는 것, 이것이 마르크스의 공황론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엥겔스는 『자본론』 제3권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관한 마르크스의 초고에서 ‘자본의 플레토라’라는 개념을 삭제했다. 이는 『자본론』 제3권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과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핵심 고리를 제거한 것이며, 이로부터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에서 구체적으로 분석되는 ‘화폐적 자본’의 과잉과 그로부터 촉발된 공황이 제3편에서 전개된 현실자본 축적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의 결과임을 파악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경험적 법칙 및 붕괴 법칙으로의 곡해
엥겔스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 관한 마르크스의 초고를 임의로 변경하여 이 법칙을 경험적 법칙 혹은 붕괴의 법칙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조장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원래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 부분에 있었지만 이를 제13장 ‘법칙 그 자체’ 부분으로 옮긴 부분에 “그러나 실제로는 이윤율은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장기적으로 저하할 것이다”(마르크스 2015: 286)라는 자신이 쓴 문장을 달리 언급하지 않고 슬쩍 끼워 넣어 마치 마르크스가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실제로 저하할 것이라는 경험적 예측을 제시한 것처럼 읽히게 했다. 이 문장은 이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경험적 법칙으로 간주하는 해석의 ‘마르크스적 논거’가 되었지만, 이 문장의 저자가 엥겔스로 밝혀진만큼 이는 근거가 없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오히려 “이윤율의 직접적 운동을 예측”하는 경험적 법칙이라기보다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과정들을 포착”하는 “추상적 경향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법칙이다(파인·새드-필호 2006: 143).
엥겔스는 또 마르크스의 초고 중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 부분에 있는 아래 문장 중 마르크스가 “멈추게 할Klappen”이라는 쓴 것을 역시 달리 언급함이 없이 “붕괴시킬Zusammenbruch”이라고 바꿔썼다. 즉 아래 인용문 마지막 문장에서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과 함께 상쇄요인이 제도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작동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썼지만, 엥겔스는 이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단어로 변경했다:
“생산자로부터 노동조건의 분리가 …… 자본과 원시적 축적의 개념을 형성하고, 이어서 자본축적의 항구적인 과정으로 나타나며, 여기서 마지막으로 소수의 손에 기존 자본들의 집적과 다수의 사람들로부터의 자본 박탈(이제 수탈은 이러한 방향으로 변화해 간다)로 나타난다. 이 과정은, 만약 이런 구심력과 나란히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이 집중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을 곧 <멈추게 할Klappen> [붕괴시킬Zusammenbruch] 것이다.”[25]
이와 같은 엥겔스의 변경으로부터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증명한 법칙이라는 곡해가 만연하게 되었다(Vollgraf and Jungnickel 2002: 62). 실제로 20세기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간주되는 그로스만Henryk Grossman(1881-1950)은 『자본주의의 축적과 붕괴의 법칙』(1929)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붕괴의 법칙”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마르크스는 축적 경향과 아울러 반대 경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축적의 구심력이 자본주의적 생산을 붕괴시킬Zusammenbruch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으로 작용하는 반대 경향들은 원초적 붕괴 경향Zusammenbruchstendenz을 없애지는 않는다. 이로써 왜 붕괴 경향이 ‘곧’ 관철되지 않는지만 해명될 뿐이다. 이런 사실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한 말의 명확한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그로스만 2022: 104. 강조는 그로스만)
한편 그로스만(2022)은 “붕괴의 법칙”을 도출하기 위해 제13장 ‘법칙 그 자체’와 제14장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의 비교하는 접근을 특권한 반면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는 무시했는데, 이런 편향된 접근은 앞서 언급한 1970년대 서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계의 공황론 논쟁에서 재현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윤소영(2009) 등에서 반복되었다.
‘새로운 물건’으로 거듭 난 제5편 ‘이자 낳는 자본’
주지하듯이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제5편 ‘이자 낳는 자본’ 부분은 초고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낮았다. 엥겔스가 『자본론』 제3권을 편집할 때 가장 고심했던 부분도 바로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이었다. 엥겔스는 『자본론』 제3권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편집 작업을 회고했다:
“주요한 어려움을 초래한 것은, 제3권 전체 중에서 실제로 가장 복잡한 대상을 다루고 있는 제5편이었다. ······ 여기에는 완성된 초고가 없고, 완성을 위한 개요의 윤곽조차도 없으며, 있는 것은 단지 논술의 첫머리뿐이며, 그것은 결국 한 무더기의 무질서한 메모나 논평, 발췌로 되어 있다.”(마르크스 2015: 7)
엥겔스는 이러한 미완성의 초고를 읽기 쉽게 편집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마르크스의 본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사사키 류지(2026: 402-404)에 따르면 제5편 마르크스의 초고에 대한 엥겔스의 편집과 첨삭 ·변경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26]
<표 2> 『자본론』 제3권 제5편의 편제: 마르크스의 초고와 엥겔스의 변경
|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 | 엥겔스판 『자본론』 제3권 |
| 제5장 이자와 기업이득 (산업이윤 및 상업이윤)으로의 이윤의 분열. 이자 낳는 자본 | 제5편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의 이윤의 분열. 이자 낳는 자본 |
| 1) [제목 없음] | 제21장 이자 낳는 자본 |
| 2) 이윤의 분할. 이자율. 이자의 자연적인 비율 | 제22장 이윤의 분할, 이자율, 이자율의 ‘자연’율 |
| 3) [제목 없음] | 제23장 이자와 기업가이득 |
| 4)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로의 잉여가치 및 자본관계 일반의 외면화 | 제24장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로의 자본관계의 외면화 |
| 5) 신용. 가공자본 | 제25장 신용과 가공자본 |
| 제26장 화폐자본의 축적. 그것이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 | |
|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 |
| Ⅰ)〔제목 없음〕 | 제28장 유통수단과 자본. 투크와 풀라턴 |
| Ⅱ) 〔제목 없음〕 | 제29장 은행자본의 구성부분 |
| Ⅲ) 〔제목 없음〕 | 제30장 화폐자본과 현실자본 Ⅰ |
| 제31장 화폐자본과 현실자본 Ⅱ | |
| 제32장 화폐자본과 현실자본 Ⅲ | |
| 제33장 신용제도 하의 유통수단 | |
| 제34장 통화주의와 1844년의 영국 은행입법 | |
| 제35장 귀금속과 환율 | |
| 6) 전前부르주아적인 것 | 제36장 자본주의 이전 |
출처: 사사키 류지(2026: 405. 표 5.1)
첫째, 위의 <표 2>에서 보듯이 엥겔스는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을 편집하면서 장들을 더 만들고 장 제목도 추가했는데, 이는 마르크스의 초고와 많이 다르다. 마르크스의 초고는 원래 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엥겔스는 이 중 제5장 ‘신용. 가공자본’을 11개 장으로 세분하여 모두 16개 장으로 재구성했다. 제24장까지의 구분 방식은 초고를 그대로 따르고 있고, 마르크스가 절 제목을 붙이지 않은 부분의 장 제목도 대체로 적절하지만, 제25장 이후는 초고와 크게 다르며, 장을 나누는 방식이나 장 제목도 적절하지 않다. 『자본론』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에 대한 엥겔스의 장절 구분과 제목 추가로부터, 제5편은 전반부 ‘이자 낳는 자본론’ (제21-24장)과 후반부 ‘신용제도론’(제25-35장)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통념이 정착했다(Heinrich 1996-7: 461).
하지만 마르크스의 제5편 초고는 그 동안 ‘신용제도론’으로 간주되어온 후반부의 주제가 실은 신용제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초고 1)-4)절 (엥겔스판 제21-24장)에서 이자 낳는 자본의 개념에 대해 검토한 다음, 5)절 (엥겔스판 제25-35장) 서두 부분에서 신용제도를 개관했지만, 5)절 전체의 주제가 신용제도인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신용제도의 개설적 파악을 전제로 하여 5)절의 본론, 즉 5)절 I)항 (엥겔스판 제28장 해당), II)항 (엥겔스판 29장 해당), 및 III)항 (엥겔스판 제30-35장 해당)에서는 신용제도 속에서 운동하는 이자 낳는 자본, 즉 “화폐적 자본”을 검토하고 있다(宮田惟史 2019b: 708). 마르크스의 초고에서 제5편 5)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신용제도가 아니라 “이자 낳는 자본 그 자체의 고찰” 즉 “신용제도 하에서 운동하는 화폐적 자본의 분석”이다. 또 엥겔스는 ‘신용. 가공자본’이라는 제목을 제25장에만 붙였는데, 실제로 제25장에서 가공자본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반면, 마르크스의 초고는 제25장에서 제35장까지 전체에 대한 제목을 ‘신용. 가공자본’이라고 붙였다. 이상과 같은 제5편에서 엥겔스의 부적절한 장 구분과 장 제목 명칭 부여로 인해 마르크스가 애초에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되었다.
둘째, 엥겔스는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에 관한 마르크스의 초고를 편집하면서 초고에서 본문과는 구별되어야 할, 초고 집필에 사용한 자료도 그대로 본문에 통합했으며, 그 결과 초고 집필에 사용한 자료가 초고 본문과 뒤섞이고 말았다. 마르크스는 초고를 집필할 때는 용지의 위 절반에 본문, 아래 절반에 주석이나 추가 서술을 집필하는 용지 사용법을 썼지만, 초고 집필에 사용한 자료인 발췌나 메모의 경우에는 이러한 용지 사용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육필 초고를 보면, 어떤 것이 초고의 원고, 즉 본문과 주석 및 추가 서술이고 어떤 것이 집필을 위한 자료였던 발췌나 메모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육필 초고의 구술 필기본을 이용하여 편집 작업을 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초고에서는 지켜졌던 본문과 집필에 사용한 자료의 구별을 보지 못했고, 그 결과 이들이 모두 본문에 통합되었다(사사키 류지 2026: 403). 이로 인해 엥겔스의 편집본에서는 마르크스의 논지를 추적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초고보다 오히려 더 어렵게 되었다.
셋째, 제5편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초고를 수정함으로써, 다른 내용이 되어 버린 부분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마르크스의 초고 5)절에는 “<이제 우리는 이자 낳는 자본 그 자체 {신용제도에 의한 이자 낳는 자본에 대한 영향, 아울러 이자 낳는 자본이 취하는 형태}의 고찰로 넘어간다>”라고 쓰여 있는데, 엥겔스는 이 문장을 삭제하고 이를 다음과 같이 전혀 다른 내용의 문장으로 대체했다: “[이하의 장들에서 우리는 신용을 이자 낳는 자본과의 관련 속에서, 즉 신용이 이자 낳는 자본에 미치는 영향, 및 그때 신용이 취하는 형태를 고찰한다.]”[27] 즉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고찰 대상이 이자 낳는 자본이며, 이자 낳는 자본이 신용제도 하에서 취하는 형태라고 명기되어 있지만, 엥겔스판에는 고찰 대상이 신용이며, 신용이 이자 낳는 자본에 영향을 미칠 때 취하는 형태라고 되어 버렸다(Heinrich 1996-97: 461-63; Vollgraf and Jungnickel 2002: 46; 사사키 류지, 2026: 403-404).
마르크스의 초고 제5편에서는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자본의 플레토라’가 신용제도 하에서 ‘이자 낳는 자본’, 즉 ‘화폐적 자본’의 운동으로 나타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검토된다. 하지만 엥겔스는 앞서 언급했듯이 ‘자본의 플레토라’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화폐적 자본’과 ‘화폐자본’의 차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엥겔스가 제5편 제28장 ‘유통수단과 자본. 투크와 풀라턴의 견해’에 해당하는 초고에서 마르크스가 “<주화Münze로서의> 유통수단과 화폐, 화폐자본, 이자 낳는 자본(영어 의미에서의 moneyed Capital〔화폐적 자본〕)의 구별”이라고 쓴 것을 “[화폐Geld로서의] 유통수단, 화폐자본Geldkapital [일반으로서의 유통수단], 이자 낳는 자본(영어 의미에서의 moneyed Capital〔화폐적 자본〕)[으로서의 유통수단]의 구별”이라고 임의로 수정해서 옮긴 것에서도 드러난다.[28]
‘단순상품생산’의 창조
1904년 간행된 재판 이후 간행된 모든 『자본론』 제3권 ‘正典’, 즉 엥겔스판의 말미에는 ‘보유Ergänzung und Nachtrag’로 「가치법칙과 이윤율」이라는 제목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글의 저자는 마르크스가 아니라 엥겔스이다. 이 글은 엥겔스 사망 직후 1895년 『신시대』 창간호에 처음 발표되었던 것을 1904년 간행된 『자본론』 제3권 재판부터 말미에 ‘보유’로 수록한 것이다. 이 글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1권에서 상품–>화폐–>자본으로의 논리 전개가 시장경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조응한다는 ‘논리=역사주의’를 주장하면서 『자본론』 제1권 첫머리의 상품은 자본주의적 상품이 아니라 “단순상품생산”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은 단순상품생산einfachen Warenproduktion의 시기 전체를 통해 – 즉 자본주의적 생산형태의 출현에 의해 단순상품생산이 변화할 때까지 – (어떤 경제법칙이 타당한 만큼이나) 일반적으로 타당하다. …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은 생산물을 상품으로 전화하는 교환의 단초로부터 기원 15세기까지의 기간에 걸쳐 경제적 일반적인 타당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교환은 일체의 쓰여진 역사 이전에 가로 놓인 시대 … 부터의 것이다. 그 때문에 가치법칙은 5000년 내지 6000년의 기간에 걸쳐 지배적으로 행해졌다.”(마르크스 2015: 1138. 강조는 필자)
사실 엥겔스는 이보다 한 해 전 1894년 자신이 편집하여 출간한 『자본론』 제3권 초판에 붙인 서문에서, 또 같은 책 제3편 제15장에 자신의 명의로 추가한 설명에서 자신의 지론인 ‘논리=역사주의’와 ‘단순상품생산설’을 주장했다:
“사물들과 그들의 상호관계가 고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라고 파악하게 되는 경우, 그것들의 정신적 표상, 즉 개념도 또한 변화와 변형을 받게 된다는 것, 그리고 사물들과 그들의 상호관계는 경직된 정의 안에 틀어 박혀서는 안되며 그들의 역사적 또는 논리적 형성과정에 따라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므로 『자본론』 제1권의 첫머리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단순상품생산을 역사적 전제로 삼고 이 기초에서 출발하여 뒤에 자본에 도달하고 있다]에서 왜 마르크스는 개념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제2차적인 형태 (즉 이미 자본주의적으로 변형된 상품)에서 출발하지 않고 단순한 상품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가가 명백하게 될 것이다.”(마르크스 2015: 17. 강조는 필자)
“이리하여 상품에 들어가는 노동총량의 감축은,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생산이 진행된더라도 노동생산성 증가의 기본 특징인 것처럼 보인다. 생산자들이 미리 세운 계획에 따라 자기들의 생산을 규제하는 사회에서나 단순상품생산에서까지도, 노동생산성은 사실상 변함없이 이 기준에 의해 측정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어떠한가?”(마르크스 2015: 327. 강조는 필자)
게다가 엥겔스는 같은 책 제7편 ‘수입들과 그들의 원천’ 초고에서는 “그리고 상품생산에서조차도”라는 문구를 별도 언급도 없이 은밀하게 삽입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그리고 상품생산에서조차도und selbst der Warenproduktion, bei] 가장 단순한 범주, 즉 상품과 화폐에 대해 서술한 곳에서, 신비화되는 성격을 보았다. 이 성격은 부의 소재적 요소가 생산에서 그것의 담당자로서 역할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이들 사물 그 자체의 여러 속성으로 전화시키고(상품), 또한 더 분명하게 생산관계 그 자체를 하나의 사물로 전화시킨다(화폐).”[29]
엥겔스판 『자본론』 제3권에 어디에도 이 삽입구가 엥겔스가 추가한 것이라는 점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독자들은 사실은 엥겔스가 변경한 문장을 마르크스 자신의 문장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초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가장 단순한 범주”가 상품이라고 분명하게 썼으며, 엥겔스판에서 읽히듯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구별되는 “상품생산”에서도 상품이 “가장 단순한 범주”가 된다고 쓰지는 않았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권 첫머리의 상품, 즉 모두 상품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범주임을 달리 해석할 여지 없이 분명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엥겔스는 이것이 “상품생산 일반” 혹은 “단순상품생산”의 범주라고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마르크스 자신의 텍스트로 근거지우기 위해 마르크스의 초고 관련 부분을 편집하면서 “상품생산”이라는 단어를 슬쩍 끼워 넣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엥겔스의 마르크스의 초고 변경은 우연이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사실 『자본론』 제3권에서는 물론 그 어떤 텍스트에서도 “단순상품생산”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적이 없다(Arthur 1997). ‘논리=역사주의’의 입장에서 “단순상품생산”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가치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특수역사적 법칙이 아니라 역사상 모든 시기에 존재했던 “단순상품생산”, 혹은 “상품생산 일반”에 통용되는 법칙이라고 초역사화한 사람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엥겔스이다. 엥겔스의 “단순상품생산” 개념과 ‘논리=역사주의’는 당시 독일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제2인터내셔널의 정치경제학과 이후 스탈린주의 정치경제학 교과서의 ‘사회주의적 가치법칙론’의 원조가 되었다.[30]
엥겔스의 위 텍스트가 ‘보유’로 추가된 『자본론』 제3권 제2쇄의 출판을 주도한 것이 다름 아닌 당시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으로 간주되었던 독일사회민주당의 카우츠키였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출판된 1904년이 독일사회민주당의 전성기였다는 사실 역시 우연이 아니다.
어소시에이션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자본주의 기획의 주변화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 초고 여러 곳에서 자신의 포스트자본주의 구상을 어소시에이션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했다. 하지만 엥겔스는 이 중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 부분에서 개진된 마르크스의 포스트자본주의 구상을 아래와 같이 뜯어 고쳤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문들> 내부에서는 [개개 생산부문의] 균형은 [단지] 불균형으로부터 벗어나는 부단한 과정으로서만 자신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총]생산의 관련은 맹목적 법칙으로서 생산 당사자들<에 작용하고>[의 위에서 자신을 강제하고], <그들이> [그들의] 어소시에이트한 지성assoziierter Verstand[에 의해 파악되고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법칙]으로서, <그 관련을> [생산과정을] 그들의 공동의 통제 하에 복속시키지 않기 때문이다.”[31]
위 인용문에서 마르크스는 포스트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당사자들”의 “어소시에이트한 지성”의 역할을 강조했다.[32] 마르크스는 포스트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상화된 시장을 대신하여, 각 개인들이 소비주체로서 또 생산주체로서 사회 전체의 조정 과정에 관여하고, 이를 통해 생산의 총사회적 관련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타바타 미노루(田畑稔 2015)가 검토했듯이, 어소시에이션이 포스트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은 엥겔스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엥겔스가 관련 부분을 대폭 뜯어 고쳤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초고 해당 부분에는 “생산 당사자들”이 “어소시에이트한 지성”으로서 생산관계를 자신들의 공동의 통제하에 복속시킨다는 점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반면, 엥겔스판에는 생산 당사자들의 생산관계가 그들의 어소시에트한 지성에 의해 파악되고,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법칙을 적용하여 생산과정을 그들의 공동 통제하에 복속시킨다는 식으로, 다시 말해 법칙의 인식과 조작 기능 쪽으로 강조점이 이동했다(田畑稔 2015: 32, 123-24).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3권 초고에서 자신의 포스트자본주의 구상을 자연과의 물질대사와 관련하여 제시한 부분에도 아래와 같이 첨삭을 가해 의미를 변질시켰다:
“대토지소유는 농업 인구를 끊임없이 감소시켜 최저한까지 축소하고, 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증대하며 대도시에 집중하는 공업 인구를 대치시킨다. 이리하여 대토지소유는 사회적인 물질대사와 <자연적인natürlichen 토지Bodens> [생명Lebens(생명)]의 자연법칙에 의해 규정된 물질대사의 연관 속에 복구 불가능한 균열unheilbaren Riß을 야기하는 조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로 인해 지력은 황폐화되고, 또 이 황폐화는 상업을 통해 자국의 경계를 넘어 멀리까지 확산되는 것이다.”[33]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자연적인, 토지의 자연법칙에 의해 규정된 물질대사”라고 쓰여있지만, 엥겔스는 이 중 “자연적인”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토지”를 “생명”으로 대체하여, “생명의 자연법칙들에 의해 규정된 물질대사”라고 변경했다. 이와 같은 엥겔스의 변경으로 인해 마르크스의 생태사상에 핵심적인 물질대사 개념은 초역사적인 “생명의 자연법칙”으로 환원되고 말았다(Sasaki 2017: 238-245).
맺음말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에 대해 엥겔스가 가했던 첨삭·변경들 중 주요한 것들과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엥겔스는 원래 초고에는 “총과정의 형상화”라고 쓰여 있던 『자본론』 제3권의 제목을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라고 변경했는데, 이로부터 『자본론』 제3권에서 마르크스의 중심적 문제설정이 형상화론을 중심으로 한 경제학비판임을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둘째, 엥겔스는 『자본론』 제3권의 방법론 부분 서술도 자의적으로 첨삭·변경했는데, 이는 이후 ‘플랜 변경설’의 주요 ‘논거’가 되었다.
셋째, 엥겔스는 장절 구별 없이 한 개의 장으로 되어 있던 『자본론』 제3권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세 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각 ‘법칙 그 자체’, ‘반대로 작용하는 원인들’,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로부터 마르크스가 “모든 점에서 근대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맑스 2000: 15)이라고 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이론적 위상과 공황 및 붕괴와의 관련에 대한 불모한 논쟁이 초래되었다.
넷째, 『자본론』 제3권 제5편 ‘이자 및 가공자본’에 해당하는 마르크스의 초고에 대한 엥겔스의 첨삭·변경은 매우 광범위했으며, 자의적인 장 구별과 부적합한 제목 추가 등으로 인해 제5편은 아예 ‘새로운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마르크스가 제5편에서 ‘이자 낳는 자본’의 운동을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 기초하여 서술하려 했던 것, 또 ‘화폐자본’과 ‘화폐적 자본’을 구별했던 것 등은 읽어내기 어렵게 되었다.
다섯째,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 초고에서 자신의 포스트자본주의 구상을 어소시에이션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했지만, 이 역시 엥겔스의 첨삭·변경으로 인해 볼 수 없게 되었다.
여섯째, 엥겔스판 『자본론』 제3권에는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없는, 엥겔스가 지어낸 “단순상품생산” 개념이 삽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단순상품생산”에서 가치법칙의 작용을 주장하는 엥겔스의 논문이 ‘보유’로 추가되어 있는데, 이는 『자본론』 제1권 첫머리 상품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부정하고 『자본론』의 방법을 ‘논리=역사주의’로 환원하는 스탈린주의 경제학교과서의 사회주의 가치법칙론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에 대한 엥겔스의 자의적인 첨삭·변경의 후과는 이처럼 심각했다.[34] 이는 21세기 오늘 우리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 및 모순과 위기에 관한 마르크스의 사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포스트자본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본론』 제3권을 엥겔스판이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의 초고로 읽을 필요가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 전체를 정밀한 문헌고증을 통해 원상태로 복원하고, 이에 근거하여 마르크스가 애초에 전개했던 논리를 충실하게 해설한 사사키 류지(2026)는 이를 위한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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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까지 유일한 예외는 『자본론』 제3권 주요 초고를 수록한 Marx(1992)의 영역본인 Marx(2015)이다.↩
2) 예컨대 강신준 옮김(마르크스, 2010), 김수행 옮김(마르크스, 2015), 황선길·김진희 옮김(맑스, 2025) 등이 그것들이다.↩
3) 예컨대 박승호(2016), 성두현(2020), 고병권(2022), 하비(2011) 등이 그것들이다.↩
4) 예컨대 김수행(2014), 하비(2016), 김성구(2025), 채만수(2025) 등.↩
5) 사사키(2026) 이전에 단행본 분량으로 간행된 『자본론』 제3권 해설서로는 1987년 간행된 宮川實(1987)이 있다.↩
6) 예컨대 平田淸明(1983), 久留島陽三•保志恂•山田喜志夫 編(1984), 浜野俊一郞•深町郁彌 編(1985), 本間要一郞•富塚良三 編(1994), 宮川彰(2001), 不破哲三(2018) 등.↩
7)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초고를 소개하거나 특정 주제를 연구한 논문으로는 Heinrich(1992; 2007), Müller et al(2002), Reuten(2009), Roth(2002), Sasaki(2017; 2019), Vollgraf and Jungnickel(2002) 등이 있다. 또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1992년 『자본론』 제3권 주요 초고가 Marx(1992)로 공간되기 전에도, 예컨대 佐藤金三郞(1992)에서 보듯이, 암스테르담 국제사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초고를 열람 복사하여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8) 마르크스가 붙인 『자본론』 제3권 제목에서 “Gestaltungen”은 자태(姿態) 혹은 형태라고도 번역되지만, 마르크스가 “총과정의 Gestaltungen”으로 지시했던 것은 총과정 그 자체의 자태, 혹은 형태라기보다는 총과정 중에서 잉여가치와 같은 경제적 형태규정ökonomischen Formbestimmtheilen이 이윤, 평균이윤과 같은 새로운 형태규정으로 전화하고, 다시 이자, 지대와 같은 새로운 형태들로 자립화하는 운동이므로, 이는 자태 혹은 형태보다는 형상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佐々木隆治 2024: 85).↩
9) 이하 마르크스의 인용문에서 [ ] 괄호 속의 이탤릭체 및 밑줄 표시 부분은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없음에도 엥겔스가 첨가한 부분이며, < > 괄호 속의 고딕체 부분은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있는데 엥겔스가 삭제한 부분이다.↩
10) Marx(1992: 7), Marx(1964: 33), 마르크스(2015: 31-32). 사사키 류지(2026: 50-51)에서 재인용.↩
11) 이하 『자본론』 제3권 서두의 방법론 부분의 마르크스 초고에 대한 엥겔스의 자의적 편집 및 그것이 『자본론』 플랜 논쟁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검토는 佐藤金三郞(1992: 168-187)을 참조했다.↩
12) ‘플랜 변경설’이란 마르크스가 1857-58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제시했던 경제학비판 서술 플랜에서는 ‘자본일반’과 경쟁 및 신용을 구별하고 『자본론』은 ‘자본일반’에 관한 서술로 국한하려 했지만, 1864-65년 『자본론』 제3권 집필 단계에서 이 플랜을 변경하여 ‘자본일반’의 문제설정을 폐기하고 『자본론』에 경쟁, 신용 항목까지 포함하게 되었다는 해석을 말한다. ‘플랜 논쟁’에 대한 필자의 논의로는 정성진(2012)을 참조할 수 있다.↩
13) 로스돌스키는 위 문단 후반부를 인용한 뒤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시점에서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파악한 개념에 기초한 ‘자본일반’의 경계가 무너진다“(로스돌스키 2003: 92).↩
14) Moseley(2015: 44)는 “마르크스는 1863년 이후에도 자본일반(잉여가치의 생산)과 경쟁(잉여가치의 분배)의 논리적 구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마르크스의 1864-65년 『자본론』 제3권 초고가 ‘플랜 변경설’의 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15)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논증 및 공황과의 관련을 둘러싼 ‘근본주의자들’과 ‘네오리카도주의자들’ 간의 논쟁에 대해서는 파인·해리스(1986)를 참고할 수 있다.↩
16) 예컨대 일본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에서 ‘상품과잉설’과 ‘자본과잉설’ 간의 논쟁을 나름대로 종합하는 김성구(2025: 407)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경기순환과 공황의 원인이 아니라 경기순환과 공황을 통해 경향적으로 관철되는 법칙입니다.” 반면, 채만수(2025: 503-4)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과 공황 간의 “경쟁전” 등으로 “매개된” 인과관계를 인정한다.↩
17) 우노 코조의 자본과잉설의 입장에서 마르크스의 공황론을 상품과잉설과 자본과잉설의 쟁점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으로는 伊藤誠(1988)을 참고할 수 있다.↩
18) Moseley(2015: 21)도 “제3절 (『자본론』 제3권 제3편 제15장)은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이론으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자본주의의 호황-공황 주기에 관한 선구적인 이론의 개요를 제공한다”고 해석한다.↩
19) 마르크스의 초고에는 “정체, 교란”으로 쓰여있지만, 엥겔스판 및 국역본들에는 어순이 “교란, 정체”로 바뀌어 있다. 이는 정체가 교란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란이 정체를 야기한다는 불비례설적 상품과잉론적 독해를 조장한다.↩
20) Marx(1992: 330), Marx(1964: 266), 마르크스(2015: 319). 사사키 류지(2026: 307-8)에서 재인용.↩
21) Marx(1992: 325), Marx(1964: 261), 마르크스(2015: 314).↩
22) 이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자본의 플레토라 및 공황의 연관에 관한 논의는 사사키 류지(2026)를 宮田惟史(2019a; 2019b; 2023)의 논의로 보충한 것이다.↩
23)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플레토라’란 이윤율의 저하에 의해 현실자본으로의 투하 부문을 상실한 화폐 형태의 과잉자본으로서 투자해도 기대 이윤을 가져올 수 없는 자본, 즉 현실자본의 축적의 견지에서 볼 때 과다하고 과잉한 자본을 가리킨다. ‘자본의 플레토라’는 다양한 계기들로부터 형성되지만, 본질적으로는 현실자본의 과잉생산의 표현, 즉 현실자본의 축적 제한(이윤율의 저하)에 의해 형성된 현실자본의 가치증식 욕구에 비해 과잉한 자본의 표현이다(宮田惟史 2023).↩
24) ‘화폐적 자본’은 ‘monied capital’이라는 영어 단어의 번역이다. monied capital을 ‘화폐자본’이 아니라 ‘화폐적 자본’으로 번역하는 이유는 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 ‘Geldkapital’을 그 동안 ‘화폐자본’이라고 번역해 왔기 때문이다. ‘화폐자본Geldkapital’은 자본순환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화폐를 의미함에 비해, ‘화폐적 자본monied capital’은 이자 낳는 자본으로서 운용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화폐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제 막 산업이나 상업에 투자하려는 화폐는 화폐자본이긴 하지만, 대부 가능한 상태에는 있지 않기 때문에 ‘화폐적 자본’은 아니다(사사키 류지 2026: 445).↩
25) Marx(1992: 315), Marx(1964: 256), 마르크스(2015; 308). 영어에서는 “Klappen”은 보통 “shake”로 “Zusammenbruch”는 “collapse”로 번역된다.↩
26)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제5편 ‘이자 낳는 자본’ 초고 전체에 대한 최상의 문헌고증학적·이론적 연구로는 大谷禎之介(2016)를 참조할 수 있다.↩
27) Marx(1992: 505), Marx(1964: 457), 마르크스(2015: 569). 사사키 류지(2016: 403)에서 재인용.↩
28) Marx(1992: 505), Marx(1964: 458), 마르크스(2015: 572). 사사키 류지(2026: 464)에서 재인용.↩
29) Marx(1992: 848), Marx(1964: 835), 마르크스(2015: 1048). 사사키 류지(2026: 628)에서 재인용.↩
30) ‘논리=역사주의’에 대한 필자의 비판으로는 정성진(1997)을 참조할 수 있다.↩
31) Marx(1992: 331), Marx(1964: 267), 마르크스(2015: 320-1). 田畑稔(2015: 124)에서 재인용.↩
32) 마르크스는 포스트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정의 제어 주체는 “생산 당사자들”의 “어소시에이트한 지성”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위 인용문의 국역본들은 “어소시에이트한 지성”을 “집단적 이성”(마르크스 2015: 321; 맑스 2025: 370), “공동의 이성”(마르크스 2010: 339)으로 번역했으며, 2015년 출판된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 주요 초고의 영역본조차 “combined reason”(Marx 2015: 365)이라고 번역했다. 어소시에이션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의 포스트자본주의 구상에 대한 필자의 논의로는 정성진(2015)을 참조할 수 있다.↩
33) Marx(1992: 753), Marx(1964: 821), 마르크스( 2015: 1030). 사사키 류지(2026: 612-3)에서 재인용.↩
34) 이 글에서는 『자본론』 제3권 초고에 대해 엥겔스가 가한 변경들 중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과 제5편 ‘이자 낳는 자본’ 부분에서의 변경을 중심으로 검토했는데, 나머지 부분들, 특히 제1편 이윤론, 제2편 생산가격 및 시장가치론, 제6편 지대론 부분 초고에 대해 엥겔스가 가한 변경들에 대해서는 별고에서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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