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윤율 추이

: 줄어드는 이윤에 자지러지는 자본가들의 곡소리

2026년 4월 30일 / 오늘의 차트 Chart of the Day
글 <전망과실천> 편집부

지난 2005년 작고한 정운영 교수는 한국에서는 어쩌다보니 칼럼니스트로 더 알려져 있고, 그의 박사 학위논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을 것이다. 정운영은 1981년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미국의 이윤율 변동에 관한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해외 경제 학술지에도 실렸고 제법 소소한 논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런 주제가 화제가 될만큼 실물경제 이윤율에 관한 맑시스트적 분석은 서구에서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운영 사후에도 이윤율에 대한 맑스주의 관점에서의 경험적 분석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2016년에 출간된 안와르 샤이크(New School 경제학 교수)의 <Capitalism: Competition, Conflict, Crises>가 최근 맑시스트 이윤율 연구의 주목할만한 업적으로 볼 수 있다 (안와르 사이크는 뉴욕 뉴스쿨의 교수로 여전히 재직하고 있다. 세상사와 담을 쌓은 듯한 ‘강단 맑시스트’이지만, 미국에서, 미국의 노조지형과 운동지형에서, 맑스주의 학자가 학교에라도 살아남아서 계속 강의하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할 안정적인 위치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미국 교수들중에서 맑시스트는 거의 ‘멸종’하다시피했다. 한국은 더하다. 아예 진입 자체가 금지되는게 한국의 유수한 대학들이다. 그가 집필과 연구를 계속 유지하면서 2016년 이 책 <Capitalism: Competition, Conflict, Crises>을 낸 것을 축하한다. 언젠가 연구소 ‘리뷰앤프리뷰’에서 이 책의 리뷰가 나오길 바란다).

이윤율 연구가 어려운 것은, 단지 경험적인 난점들 때문만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데이타를 표준화하기 어렵고 데이타의 신뢰성도 의심스러우며, 시계열자료를 구하기도 힘든 것도 분명하지만, 더 큰 난점은 이론적인 지점에 있다. 즉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이윤율을 분석할 때에 그것은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적 노동(말하자면 제조업)에만 국한시킬 것인가, 아니면 서비스업을 포함한 전산업으로 확장시킬 것인가 하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남는다. 또 이윤율과 지대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도 난해하다.
Michael Roberts는 비제도권에서 독창적으로 이윤율을 연구해온 학자다. 지난 2010년대 이후 연속적으로 데이타를 업데이트해 가면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윤율을 분석한 글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가 지난 4월 초에 자신의 블로그에 발표한 “전지구적 이윤율 측정-재론 (Measuring a World Rate of Profit-Again)”은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라고 할 수 있다.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26/04/05/measuring-a-world-rate-of-profit-again/)

그는 기존의 제조업으로 한정했던 자신의 연구에 덧붙여 시드니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Pooyah Karambakhsh의 최근 연구를 검토하고 있다. 이 두 연구는 각기 방법론과 데이타가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즉, 글로벌 이윤율이 지난 1960년대를 고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지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일시적인 반등조차도 60년대의 이윤율 수준을 넘지 못했으며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다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 현상을 보여준다.

표1. 글로벌 이윤율과 미국 이윤율 추이. 실선은 세계 이윤율, 점선은 미국 이윤율

더 흥미로운 것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이윤율의 변동 추세다.

표2. 선진국 이윤율과 개발도상국 이윤율 추이. 가는 점선은 선진국 이윤율, 굵은 점선은 개발도상국 이윤율, 실선은 세계 이윤율
 

글로벌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 추세 속에서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윤율은 상당한 편차를 보여준다.
지난 1970년대 초반까지는 개발도상국의 이윤율이 선진국 이윤율보다 높았다. 이는 당연한 일인데, 자본주의가 비자본주의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자본이 증식되는 속도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높은 선진국보다는 구성도가 낮은 개발도상국에서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후 기묘한 현상이 발생한다. 개발도상국의 이윤율이 선진국보다도 낮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이윤율의 상대적 저하 상태는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된다.

세계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개발도상국의 이윤율은 다시 선진국 이윤율을 상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 금융 위기 직전에 고점을 찍고(그러나 1950년대의 고점에는 못미친다), 다시 하락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지난 1970년대에 이어 다시 한번 선진국 이윤율을 하회할 가능성이 높다.

왜 이같은 상대적 격차 변화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한두가지 요인으로 단순화시켜 말하기는 힘들다. 생산성의 제고(기술 발전)나 세계화, 금융체제의 변화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경험적으로 검증되어야할 대상이지 아직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설적으로 잠정적으로 말하면, 생산성이든 세계화든 간에 그 어떤 요인들도 이윤율 하락 추세를 저지시키지는 못했으며, 동시에 개발도상국의 이윤율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하되는 기간 동안에는 전세계적인 정치적(지정학적) 변동도 뒤따랐다는 점이다. 다가올 세계는 아마도 훨씬 충격적인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글로벌 이윤율의 추세로 본다면, 미래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인공지능이 이 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기대는 이미 출발부터 개꿈이며, 이 수많은 정치적, 전지구적 노이즈들은 사실은, 줄어드는 이윤에 자지러지는 자본가들의 곡소리라는 점도 분명하다.
좋은 시절은 갔으며, 이제는 이 자본주의의 민낯을 볼 차례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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