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시선

연구자의 시선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의 현재성: 엥겔스판을 넘어서

마르크스(1818-1883)는 모두 세 권으로 기획했던 『자본론』 중 제1권만을 생전에 출판했고 (1867년 초판),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의 사후 엥겔스(1820-1895)가 마르크스가 남긴 초고들을 편집하여 각각 1885년과 1894년에 출판했다. 엥겔스가 편집·출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2권과 제3권 (이후 ‘엥겔스판’으로 줄임)은 오랫동안 마르크스의 원래 텍스트를 정확하게 재현한 것으로서, 즉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의 ‘正典’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출판된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은 거의 다 엥겔스판을 번역한 것들이다.

연구자의 시선

노동자들의 죽음과 기억

소설가 김남일이 1989년 11월호 월간 <<말>>에 쓴 ‘노동운동의 성지 모란공원’을 보면 그때는 ‘민주, 노동열사묘역’이라고 불렀다…그 뒤 언제부터 민주노동열사묘역에서 노동이 사라졌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전노협의 정신이라 일컬어지던 ‘노동해방’은 100년이 넘는 노동자 투쟁의 경험과 기억이 만들어 온 역사의 산물이었다. 민주노총의 건설과정에서 노동해방은 노동운동의 사상과 지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밀려났다. 민주노총의 창립선언문, 선언, 강령 어디에도 ‘노동해방’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 속에 빛바랜 깃발로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해방’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노동해방 세상은 가능할까? 그보다 앞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라 여기지 않고 노동자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노동운동이 가능할까?

연구자의 시선

노동의 대륙 : 아시아 노동운동을 위한 새로운 역사 서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시아 자본주의 경제, 더 나아가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 속에서 아시아 노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이다. 이 오랫동안 지체되어온 전환은 아시아를 ‘세계의 공장(global factory)’이 아니라 ‘노동의 대륙’으로 다시 상상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이는 유럽의 부상 이래 지속되어 온 기존의 아시아 발전사 서술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아시아 노동, 따라서 아시아 자본주의를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총체성의 중심에 두는 새로운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아시아를 자본주의의 외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성적 요소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을 마련한다. 마르크스가 완성하지 못했지만 중용한 인식론적 전환을 보여준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나는 아시아 노동을 글로벌 자본주의 속 아시아의 위치에 대한 19세기적 인식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제안한다. 우리는 아시아 노동을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 주변이 아니라 중심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새로운 전략의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의 노동이 아니라 바로 아시아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시선

나는 왜 <자본주의와 행정법>을 썼는가

행정법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19세기 프랑스혁명사와 행정법의 관계 규명이 중요하지만,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가 보여준 통찰 – 1848년 6월 봉기의 실패후 프롤레타리아트는 철저히 고립되고 무력화(無力化)되었고, 그 결과 두 주요 계급의 나머지 한 축인 부르주아지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 계급은 누구하고 대립하고 투쟁하는가? 자기 자신이다. 곧, 상이한 생산 조건과 이해관계로 분열된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 분파 간의 내부 투쟁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부르주아-자유주의 행정법의 기초를 파악하고, 그것을 변혁하는 데 필요한 인식을 제공한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은 부르주아 분파 간의 대립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이 내부투쟁(여기에는 당연히 법해석투쟁이 포함된다)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구체화하고 연대와 투쟁의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나가야 한다.

연구자의 시선

자본주의 의료체제의 모순과 ‘의정 갈등’

역설적으로, 국가도 의사 권력도 아닌, 노동계급과 민중을 포함한 사회권력이 가장 큰 실패의 짐을 졌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사태가 진행되는 경과 내내 환자와 의료 이용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 불편, 불안을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
보건의료와 국가 통치의 관계 역시 새롭게 분석하고 인식해야 하지만, 나는 자본제적 의료체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과제가 더 시급하다고 본다. 국가 통치의 주변부 영역일수록 경제의 우선성이 관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제적 의료체제(부분)은 총체성(totality)으로서의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와 공동-결정, 공동-진화한다는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의사 권력의 경제적 이해관계 표출을 단지 개인의 탐욕이나 윤리의식 부재로 이해하면, 교육이나 전문직 직업의식 제고라는 개인적 해결 방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와 비교해 자본제적 의료체제라는 시각에서는, 의사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의 동력과 그 메커니즘에 개입하고 이를 반-자본주의적으로 재조직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연구자의 시선

집회의 자유, 어디까지 왔나?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이 글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정/개정 역사와 기술적 성격들을 검토하면서 집시법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거나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집회와 시위의 목적인 정치적 항의의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임의적이고 비헌법적인 규제에 맞춰져 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집시법의 폐기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서 규제의 대상이 되는 행위들을 입법 과정에서 명백하게 적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연구자의 시선

디지털 시대, 평생학습은 공공의 약속인가 개인의 의무인가

평생학습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 실현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자원 개발의 전략으로 간주된다. 결국 유네스코의 교육 담론은 인간 중심에서 점차 경제 중심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평생학습 역시 그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평생학습은 보편적 권리로서 강조되기보다는, 경제적 가치 창출과 고용 가능성 향상을 위한 책임 있는 자기관리 행위로 재정의되고 있다. 이는 평생학습이 점점 더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자의 시선

의료대란의 시기에 한국의료의 무상화전략은 가능한가?

이번 의료대란은 거대 대형병원들을 소유하고 있는 의료자본들이 이윤 창출을 위해 더 많은 대형병원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면서 의료인력의 공급원이 필요했던 문제와 맞물려 있어서 단순히 정부와 의사들의 표면적인 갈등만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의료민영화 문제가 깊숙하게 내재된 것이다…
정부의 의사인력 증대는 의료 자본주의화를 더욱 촉진할 것이며 한국의 한국의료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한국의 의료제도가 무너지고 있다. 무너지고 있는 낡은 자본주의적 의료 제도는 이제 새로 세울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의료대란에 대한 대안으로 “의료 공공화”가 모색되어야한다.

연구자의 시선

중국의 심각한 청년실업, 그리고 동아시아의 청년들

현재 한중 양국의 청년 세대 사이에는 차이점보다는 오히려 유사점이나 기시감이 드는 것들이 많다. 두 나라에서 최근 몇 년간 청년 담론과 관련한 유행어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양국의 청년들의 삶은 무척 닮아있다. … 결국 중국이나 한국, 혹은 대만 등 동아시아의 청년들은 온라인에서 서로가 충돌하고 적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갈등과는 무관하게 지구화된 자본주의 속에서 거의 유사한 구조적 위치에 처해있는 동시대적 상황이다.

연구자의 시선

자산기반 자기복지구조를 바꿔야한다

모든 정책은 정책승자와 정책패자를 동시에 만들어 낸다. 이번 상속세 개정안에서 정책승자는 누가 될까? 다시말해 상속세 조정을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
한국에서 자산축적 기반의 자기(사적)복지는 낮은 소득세와 소비세를 통해 자연스럽게 구축되었다. 국가가 사회보장이나 사회안정망을 확대·발전 시키는 전략이 아니라 낮은 소득세를 통해 노동의 시장소득 보전을 해왔다. 자산 기반 복지를 유도한 것이다. 이른바 중산층은 증세에 찬성할까? 아니 찬성할 수 있는 구조인가?

연구자의 시선

노동조합운동과 법률투쟁 – 그 다음 또는 그것과 함께

노동조합운동은 법률투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노동조합운동이 법률투쟁으로 쉽게 축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사분규 소송 하나하나에서의 승패 자체가 운동의 최종적인 목적지일 수는 없다. 판결이 내려진 그 다음 또는 그것과 함께 노동조합운동이 채워나가고자 하는 바를 고민할 수 있어야 법률투쟁에 의존하거나 종속되지 않는 경로를 모색할 수 있다.

연구자의 시선

‘민생회복지원금’이 아니라 대대적인 ‘K-민생’이 필요하다

모두 알다시피 총선은 범야권의 압승으로 끝났고, 바야흐로 야권의 시간이 왔다. 민생에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권이 대답할 차례다. 무엇이 나올까. 야권의 선두에서 민주당이 내놓은 카드는 ‘민생회복지원금’이었다.
민주당이 마치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이 현 상황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는 이유는, 직접적으로는 그것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들을 조직해내고 그것을 대체할 정책을 내놓을 정치세력-민주당의 왼쪽이든 오른쪽이든-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