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으로 말하기
- 사기꾼의 언어와 외교 언어는 얼마나 다를까
2026년 3월 30일 / 한마디의 세상 Word of the World
글 <전망과실천> 편집부
최근 이란 사태와 관련하여 러시아를 방문했던 프랑스 특사가 러시아 관료에게 “fuck you”라는 말을 들었다고 보도가 되어 프랑스가 떠들썩해지자, 러시아의 크레믈린궁 대변인인 페스코프는 “우리는 그런 험한 말은 쓰지 않는다”면서 “외교란 만일 당신에게 ”지옥에나 가버려(go the hell)“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상대방이 지옥을 찾게 만드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당히 러시아식 죠크가 섞인 말이지만, 페스코프의 이 발언은 “러시아는 프랑스를 실제로 지옥으로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정말로 그런 말을 했다면, 우리는 (프랑스를) 정말로 지옥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쨌든 외교적 언어 표현은 어렵다. 특히 외교는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천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특정한 방식으로 말하기’ 기술이 고도로 발전되어 왔다.
외교적 언어는 무엇보다도 ‘돌려말하기’다. 대표적으로 정상회담 뒤 흔히 “건설적인 대화가 오갔다”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이는 사실은“이 회담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를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으로 읽으면 된다. 사실을 곧이곧대로, 있는 그대로 말하면 외교관들의 목숨은 부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들은) 알아들을 수 없게 돌려말하는 기술이 곧 외교이기도 하며, 실은 사기꾼들의 전문용어와 언어학적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jargon(직업적 전문용어)들을 언론이 알아서 본 뜻을 잘 해석해주면 좋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언론은 오히려 이런 ‘건설적’ 언어들에 쉽게 놀아난다(이게 외교용어가 돌리고 돌리는 기술에 기술을 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교 언어가 표현 너머 가리키는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에 대한 유물론적인 인식과 해석틀이 필요하고 그렇게 스스로 훈련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 DiploFoundation.
관련해서 최근 아주 흥미로운 글이 있었다. 인도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Sushant Singh이 자신의 트위터에서 인도의 비루한 외교 정책을 비판하면서 인도 외무부의 ‘언어’들을 대중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해설했다. 한국에도 이는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관료들이 외교관계를 두고 외교적 관용구인양 자주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외교적 표현의 실제 의미는 이렇게 해석된다.
-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 알기 쉬운 인도식 영어로는 ”허락을 구하다“라는 뜻이다. 이를 일부에서 ‘strategic automoney’와 혼동하기도 한다(외교정책이 관료 정치인들의 사적 이익에 봉사한다는 조롱).
결국 전략적 자율성이란, 표면적인 표현과 달리, ”언제라도 강대국의 으름짱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그래서 ‘전략적’이다.
예컨대, 만일 미국이 인도에게 이란산 원유 구입을 금지시키면, 그것이 비록 인도의 이익에 반하는 일일지라도 전략적 자율성은 미국의 말을 따를 것을 지시한다. 만일 다음날에는 중국이 인도에게 ”과거는 잊자. 우리 사이는 그렇고 그런거 아니냐“고 말하면, 전략적 자율성은 ”우리 사이에 과거가 어딨어“라고 말한다. - 전략적 자동화폐(Strategic Automoney) : 인도의 금융재벌들의 금융적 이해를 지칭한다.
- 다층적 배치 (Multi-Alignment) : 동시에 여러나라로부터 필수품을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미국으로부터는 콩을 그리고 중국으로부터는 그밖의 모든 것을 사들인다. 다층적 배치의 가장 큰 이점은, 당신은 모두를 친구로 삼고 있지만, 그 모두는 아무도 당신의 친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 실용적 현실주의(pragmatic realism) : 도널드 트럼프 기쁨조(make Trump happy).
-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 안전모드(safe mode)에서의 외교 정책. 무지, 무능력, 비겁 그리고 두려움이 만성적 결정 장애로 이어지고, 남은 옵션은 그냥 주저앉아서 전 정권을 비난하기.
- 건설적 개입(constructive engagement) : 해외 순방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고백하기에는 너무 쪽팔리고 외교 회담은 멍청한 시간 낭비에 불과할 때 쓰는 표현.
- 상황을 면밀히 주시(closely monitoring the situation) : 미국, 이스라엘, 중국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
-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 진지한 양국 관계는 아니지만, ‘친선우호 관계’보다는 조금 더 깊은 상호 관계
- 규칙에 근거한 국제 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 : LOL(laugh out loud; 웃기고 있네)
물론 이같은 해설은 이 글의 저자가 인도의 정치적 외교적 상황을 배경으로 설명한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고? L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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