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사회주의 정치 실험의 시작과 끝은 어딜까?: DSA made in the USA, 그리고 미국 진보정치 실험의 한계적 재연
홍 스스로도 “인민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홍은 분명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아직 ’계급적‘이거나 ’혁명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지난 예비경선은 이 정도의 ’급진성‘, ‘사회주의성’조차도 미국 민주당 정당정치는 물론 DSA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극단적’인 것으로 취급받았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제도 속의’ 민주주의자들이지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유럽식으로 우경화된 사회민주주의의 21세기 미국 버전이다…이같은 정치적 스탠스는 애초 DSA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DSA가 민주당 내 ‘좌파’ 분파로 자신들의 위치를 이동하면서 중요하게 대두된 것이 이른바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이다…
최근 맘다니 뉴욕 시장이 뉴욕경찰청과 이스라엘 경찰청 사이의 대테러 공동 훈련 계획을 용인하는 것도 이같은 사례에 속한다(다만 그는 이 문제는 시 의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반면 맘다니가 시 정부 내에 ‘노동권력국’을 설립하여 노동쟁의를 비롯한 노동계급 이슈에 시 차원에서 개입하려는 것은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지만 실제 이 조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홍의 정치적 유효성은 그가 ‘급진적’이라는 것의 위치를 뒤집었다는데 있다…한국은 ‘급진적’인 것에 대한 의미를 자의적으로 부여하기 이전에 ‘진보’가 무엇인가부터 이 나라의 ‘민주주의자들’에게 되물어야할 시간이다. 민주로부터 진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급진정치’는 더욱 요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