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권 1년, 자본과 정치

- ‘개혁’에서 버블로 가는 길: 한국 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진화

2026년 6월 30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민주주의, 중도파, 중도주의(centrism),  미국 정치체제, 한국 발전전략, 성장우선, 메가프로젝트, 인공지능, 반도체, 버블, 금산분리, 국가독점자본주의, 실질임금, 양극화, 파시즘


1. 귀신을 쫓는 사람들


한국 정치에는 이상한 신화가 있다. ‘중도’라는 환상이다. 언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중도’는 이도저도 아닌 집단들이다. 또는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다는 집단들이다. 물론 세상 어디에나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역사의 어느 순간에서도 빼놓지 않고 존재한다. 그런데 다시 묻자.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정말로 ‘중도’라는 인구 집단이 존재하는가?

다당제, 의원내각제가 일반적인 유럽 정치권에서는 centrism(중도주의)이라는 개념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중심제하의 양당제 체제인 미국에서는 ‘centrism’이라는 표현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에 ‘independent’라는 용어를 쓴다. 민주당도 아니고 공화당도 아닌, 무당파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당파는 ‘중도’가 아니다. 그저 민주당원도 아닌, 공화당원도 아닌 집단을 통채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단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양당은 이 independent의 정치적 의사를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영하는가? 안한다. 자당의 당원들의 의사도 반영하지 않는데 무슨 당 밖의 ‘무당파’들의 의사를 반영하겠나. 물론, 당 밖의 상당한 규모의 유권자들을 포함하지 못하는 이런 식의 행태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 그래서 미국 정치권은 다른 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유럽의 ‘중도’에 해당하는 ‘초당파적’(by-partisan)이라는 명칭이다. 말은 그럴듯한데, 실은 두 당이 ‘합의’, 즉 담합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초당파 위원회가 제도화되어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의 ‘초당파적’인 합의 혹은 담합을 결정하는 의회내 비공식 기구가 흔히 ‘Gang of Eight’이라고 불리는 기구인데, 민주/공화 양당 상하원에서 각기 두 명씩으로 선발한 8명의 의원들로 구성된다. 대통령도 원내 대표도 아닌 이들이 실제 미국의 정치적 ‘실권자’들이다. 모든 정책은 이들을 통해 결정된다. ‘초당적’이라는 미명하에 이들은 무당파는 물론이고 자당의 당원들의 의사조차도 무시한다.(죽은 자들의 민주주의 : 미국 정치체제의 진퇴양난, 2024년 7월 18일)

게다가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미국은 당내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는다. 그것도 아예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에서는 당 지도부가 임의로 결정하는 선거인단의 비율이 전체의 약 15%에 달한다. 그러니까 미국 정당정치는 당내도, 당외도 민주적이지 않다. 그러면 미국에서 ‘무당파’ 또는 민주/공화 양당과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를 가진 정당 혹은 정치인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 양당제가 고착된 나라에서, 게다가 super Pac이라는 무한정의 정치자금 모집이 가능한 나라에서는 제3의 정치(세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참조, 권영숙, “자본가들과 권력자들:미국 트럼프 정권의 성격과 새로운 자본가집단의 출현”, 2024년 12월 22일).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 1권. 공자는 가다가(中道) 멈추는 것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에서 ‘중도’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미국처럼 기존의 고착된 양당 즉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아닌 집단을 의미한다. 두번째 의미는 이념적으로 좌/우가 아닌 집단을 의미한다. 흔히 ‘실용주의자’로 통칭되기도 한다(엄밀하게 말하자면 같은 뜻은 아니다). 이 집단은 ‘실제로’ 존재하는 집단일까?

아니다. 두번째 의미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도’를 도출해내기 위한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제도권에 진출한 이념적인 ‘좌/우’라고 불릴 수 있는 정당은 없다. 모두가 우파 정당이며 단지 그들 내부에서 서로를 좌니 우니 부를 뿐이다.

이 점에서는 한국은 미국과 유사한데, 그리고 미국의 경우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서로를 좌/우라고 부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의 민주당은 전혀 좌파정당이 아니며, 공화당은 우파 정당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는 좌/우라고 불릴만한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80년대 들어서면 민주/공화당은 이미 그런 의미의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대신에 미국의 정치적 이념적 지형은 한국에서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민주당은 ‘네오리버럴’(신자유주의자), 공화당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다. 자유주의는 우파의 ‘정통’이며 보수주의는 우파의 ‘골간’이다. 남의 나라 일이니까 이 정도는 한국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자, 이런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이념적 대립이 극심하니 ‘초당파적으로’, ‘이념을 떠나서’, ‘실용주의적’으로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자고 주장한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미국인들 내부에서도 씨알도 안 먹히고,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도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미국의 민주/공화당) 사이의 대립은 사실은 이념적인 것도 아니며, ‘실용주의’를 둘러싼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념을 절충하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세력은 각기 (최소한 1980-2016년까지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 지배를 어떤 방식으로 관철할 것인가를 두고 대립하고 그에 따른 각 당의 포지션에 따른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존재했던 것이긴 하지만, 이들 양대 정당이 ‘미국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두고 대립한 적은 없으며 대립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기껏해야 미국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둘러싸고 ‘이상주의’(idealism)와 ‘현실주의’(realism)라는 노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공화당 정권의 중동 침략 전쟁에 민주당이 반대한 적도 없고 민주당의 동구권 전복 정책에 공화당이 반대한 적도 없다. 금융자본의 성장에 반대한 정당도 없었으며, 군사력 증강에 이견이 있었던 정당도 없다.

한국 정치사에서 ‘중도’ 또는 ‘다당제’가 성립했던 기간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약 7-8년간, 그리고 2012년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초반의 7-8년간의 두 시기에 불과하다. 이 두 시기의 공통된 특징은 기존 정당들이 대중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해서, 혹은 기존 정당들의 이념적 색채에 거부감을 느낀 ‘중간집단’들이 존재하여 이들이 정치적으로 진출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 구조와 권력 집단의 힘이 약화되어 내부적으로 분열할 때였다. 즉 존재한 것은 ‘중도’가 아니라 ‘정치적 기회 구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정치적 기회 구조가 닫히고 나면 중도도 함께 사라진다.

예컨대 이번 지방선거를 보자.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자체 단체장 선거 득표율은 각기 약52%와 45%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3당의 진출이 없었다는 점이 아니라, ‘내란’과 같은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 벌어진 뒤 열린 첫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두 당의 득표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지난 25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은 정치적 사건의 성격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해를 투표에 반영했으며, 그 ‘이해’에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중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재명 대통령은 ‘중도’를 들고 나왔을까? 그것은 중도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중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양당 대립 구도 하에서는 민주당의 주류 이념은 ‘민주대연합’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유권자들이 비민주적 사건(계엄/내란)에도 불구하고지지 정당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민주적 사건에 대응한 민주연합의 정당성과 정통성은 보장된다. 이것이 민주당의 지난 87년 이후의 성격이었다.

따라서 민주당을 장악하려면, 또는 민주대연합의 민주당이 가지게 되는 불가피한 유사 ‘진보적’ 성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아니라 이념 vs 중도, 또는 이념 vs 실용과 같은, 이전과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갑자기 존재하지도 않는 중도가 정치적 구호가 된다. 이재명 집권 1년의 귀결은 중도가 필요한 정치 지형으로 요약할 수 있다.


2. 정치를
먹고 사는 문제로 치환하기

 

왜 중도가 필요해졌는가?
이재명 정권의 정체성은, 아마도 그다지 슬로건이 우아하지 못해서 대놓고 널리 선전하기가 난처한 듯 보이는, ‘먹사니즘’이다. 내용도 아주 쉽다 ; “잘 먹고 잘 살게 해줄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지난 2024년 7월에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바 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데, 핵심은 성장 우선 노선이며 구체적 달성 방식은 인공지능 투자 및 활용으로 생산성을 높인다는데 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그 과실을 골고루 나눠준다는 것이다.(“이재명 정권의 ‘123 국정과제한국 부르조아의 자신감과 발전노선의 수정, 2025년 9월 25일)

지난 40여년간 세계화 신자유주의 시절에 유행했던 공급주의 성장 우선 정책의 아류작이라는 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다만 인간적으로 ‘분배’를 더 강조한 정도다(다른 나라도 분배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역분배, 즉 자산 및 소득 양극화 심화만 발생했다).

문제는 그래서 먹고 살만해졌나다. 지난 1년간의 이재명 정권의 먹사니즘 성적표를 보면 노동자 대중은 오히려 먹고 살기 더 힘들어졌다. OECD의 지난 2025년 평가 보고서를 보면, 25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시간당 실질 임금은 0.5% 하락했다. 시간당 실질 임금은 시간당 명목 임금 상승률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제한 것인데, 지난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3%, 명목 임금 상승률은 1.8%였다. 지난 22년부터 4년째 연속으로 시간당 실질 임금이 하락했다.

게다가 실제 생활비에 영향을 주는 식품, 에너지 물가는 24년 대비 4% 이상 상승했다. 즉 통계표에 나온 것보다 실제 삶은 훨씬 더 힘들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4때 보험료와 소득세 공제 증가로 실수령액은 명목 임금 인상분보다 더 낮은 구조가 고착화되었고, 비정규직 및 자영업 종사자는 그나마의 낮은 명목 임금 인상 혜택에서 배제되었다. 그 결과로 비정규직 일용노동자(전체 노동자의 38.2%)의 상대 소득은 더욱 낮아졌다. 즉 노동시장 양극화가 오히려 더 급진전되었다.

임시 일용 근로자의 상대 임금 비율, 고용노동부

챠트를 보면 상대 임금 격차는 문재인 정권 때 비정규직 축소 정책은 어느 정도 힘을 발휘했지만, 그러나 윤석열 정권 때부터는 다시 악화되기 시작해서 이재명 정권 때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임금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상승한 반면에, 저소득 노동자의 임금은 더 하락했다. 그러므로 지난 1년간의 이재명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효능감’은 임금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즉 고소득 노동자는 이재명 정권의 ‘성과’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저소득노동자 또는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윤석열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심지어는 오히려 더 삶이 고달팠을 뿐이다.

물론 이보다 더 큰 혜택을 본 것은 기업들이다. 실질 임금이 감소하는 동안에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은 개선되었다. 노자 관계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재명 정권의 먹사니즘은 기업은 먹고 살기 좋고,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는 먹고 살 도리가 없는 정책이다.

만일 다른 정치적 사건들이 없다면, 이 경제 성적표 하나만으로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를 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재명 정권/민주당은 무엇으로 지난 1년을 버텼을까?

그것은 ‘정치적 사건들’, 즉 ‘내란 청산’, ‘검찰 개혁’, ‘행정효율화’와 같은 민주주의 강화 또는 국가 기구의 합리화 정책이었다. 따라서 지난 1년은 노동자 대중이나 심지어 자영업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개혁을 기대하면서 경제적 악화를 감내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가 모호하면서도 중첩적이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재 추세가 변화없이 지속된다면, 이재명 정권은 당에 주도권을 넘겨준 채 끌려가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이재명 정권의 정체성, 그리고 역사와는 양립할 수 없다. 이미 2025년 초에 이재명 정권은 기존의 ‘민주’연합과는 다른, 선진적 자본가들과 손잡는 새로운 정치를 내부적으로 확립하고 표방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는 내란/계엄을 앞에 내세우느라 이같은 성격이 덜 도드라져 보였지만, 집권 뒤 내각 구성 및 집권 계획을 수립하는데 있어서는 자본과 제휴한 정치세력이라는 성격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집권 1년의 부진을 돌파하는데 있어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전면화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것이 먼 얘기였던, 또는 주식시장의 ‘재료’에 불과했던 자본투자 계획의 천명이다. 즉 인공지능과 반도체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그런데 이 명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험부터 볼 필요가 있다.

 

3. 태평성대의 위기

 

지난 6월 27일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는 인공지능 버블이 터질 위험을 경고하면서 이것이 금융 안정에 미칠 파급을 우려하고 있다.

“과도한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지출과 불투명하고 부채로 유지되는 금융활동이 지난 2008년의 금융 위기와 유사한 금융 불안정을 야기할 위험이 있”으며 “인공지능 거대 기업, 새도우뱅크, 데이터센터 건설자들 사이의 복잡한 금융 연계로 인한 금융 시장 위험이 커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는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인공지능 버블을 경고했다. 출처 : BIS website

즉 현재의 인공지능 버블이 터진다면 그 후폭풍은 지난 2008년에 못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면 언제 이 버블이 터질까?

“만일 하이퍼스케일러(인공지능 관련 IT 대기업)들이 공격적인 자본 투자를 늦추거나 중단한다면, 공급망 속의 수많은 채무자들은 상실된 매출을 보전하거나 부채를 차환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BIS가 보기에 버블 붕괴 시점은 IT 대기업의 투자 축소 시점이다. BIS 보고서는 언제 IT 대기업들이 인공지능 투자를 축소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추측하기 어렵지는 않다. 지난 25년까지의 인공지능 투자는 하이퍼 스케일러들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사내잉여금에서 지출했다. 그러나 26년, 그리고 27년에는 이들은 잉여현금이 고갈되어 부채를 내어 투자할 것으로 시장은 예측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부채로 투자한 자금이 언제 이윤으로 돌아오느냐이다. 즉 최소한 28년부터는 인공지능 투자가 가시적인 이윤이 될 ‘조짐’이 보여야 한다. 만일 그같은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이퍼 스케일러들조차도 재무제표상의 압력 때문에 급격하게 인공지능 투자를 축소해야 한다. 그러면 버블은 터진다.

인공지능 투자/활용이 ‘이윤’이 된다는 신뢰가 쌓이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경험적 증거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론적 예측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장기적으로는 기존 생산성 추세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인공지능에 대한 온갖 장미빛 담론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저그런 기술들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1950년대의 CNC(선반 등 자동공작기계)의 도입보다도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적고, 당연히 19세기 산업혁명기의 증기기관, 철도, 전기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그런데 왜 인공지능을 하냐고? 이거 아니면 할 것이 없다. 지난 1분기 미국 GDP 성적표를 보면 GDP 증가분의 80%가 인공지능 관련 투자에서 나온다.

BIS의 보고서는 또 이같은 인공지능 버블 붕괴가 어떤 금융섹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지 진단하고 있다; 보험(insurance) 부문. BIS는 특히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부채를 보험사들이 매입하지 말도록 경고했다.

BIS 보고서는 향후 한국의 국가와 자본의 행동을 예측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먼저 타임 스케쥴을 보자. 28년 이후, 아마도 인공지능 버블의 연속편으로서의 반도체 버블을 예측했던 모건스탠리의 지난해 7월 보고서에 따르면 29년 쯤까지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지속되며, 따라서 반도체 기업의 수익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공급 부족에 따른 증설 및 인공지능 버블 붕괴로 인한 수요 감소가 나타나 과잉 생산(과잉 투자) 싸이클로 접어들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때는 반도체 관련 주가가 하락하며, 관련 산업들(이른바 소재 부품 장비 산업)도 동반 침체에 들어가고 동시에 과잉 투자를 떠받친 금융자본의 신용 위기가 발생하며 따라서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장기적이고 심각한 공황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BIS 보고서에 이같은 위험이 제시되어 있을 정도면, 당연히 정책 당국이나 민간 금융 자본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이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1) 최대한 인공지능 버블 붕괴 시점을 지연시킨다

(2) 과잉 투자를 담당할 기관을 민간이 아닌 공적 기관(연기금) 또는 민관 합작 금융기구로 만든다. 즉 위험의 전가를 모색한다.

(3) 또한 이같은 버블 붕괴를 지연시킬 국제적 공조를 모색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5년의 플라자합의가 현재와 유사한 조건 하에서 탄생했었다. 당시 글로벌 IT 투자의 본격화 단계에서 선진국들은 환율 조작을 통해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크레딧(엔화 자산 버블)을 생산해냈다. 지난 6월 25일 독일의 메르쯔 총리가 천문학적인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위안화 환율 30% 절상을 요구하며 이를 위한 ‘제2의 플라자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이미 이같은 논의가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공지능 투자(버블) 문제는 단기적인 사안이 아니며, 단지 몇개 대기업의 투자 사안도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조차도 ‘국가적’ 사업이며, 한국과 같이 자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에서는 더더구나 그렇다.


4. 국가와 자본의 융합


그런 점에서 지난 6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대동하고 발표한 인공지능 투자 계획은 국가적 사업이다. 단기적인 투자가 아니라 국가의 발전 모델과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반도체 팹(생산공장) 뿐만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발전소 소부장 산업까지 포괄하는 이 새로운 로드맵은 총 투자 규모가 무려 1350조 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800조 원이 투자되고 데이터센터 발전설비 등에 나머지 500여조 원이 투자된다.

이같은 인공지능/반도체 투자 전략은 집권 초기 성장전략에 이미 그 윤곽이 제시되어 있던 것이다 (이재명 정권의 성장 전략(1) 자본의 대약진운동(Great Leap Forward)”, 2025년 07월 04일: 이재명 정권의 성장 전략(2) 자본과 노동 : 한미 글로벌 자본가동맹과 국내 계급투쟁의 봉쇄.2025년 08월 08일)

그러나 발표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닌데, 주요하게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정확한 투자 계획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재명 정권 임기 내에 광주 지역에 1개 팹을 건설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SK는 신규 투자계획 시점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SK가 현재 용인지역에 건설 중인 공장들이 완공되는 것은 2027년 무렵이다. 신규 공장은 그 이후 건설될 예정인데, 2030년 중반에야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발표회’는 문자 그대로 아직까지는 ‘발표회’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이재명 정권 임기 내에 약 2개 가량의 팹을 건설할 예정인 것으로 보인다.

2)단기적으로 정작 중요한 것은 발전소와 송전망, 데이터센터다. 그리고 이는 지역적으로 단지 호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강원도에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이 진행 중이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소요되는데 정부가 밝힌 추가 소요량은 약 18GW다. 이는 현재 발전용량보다 약 15% 가량이 추가로 증설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만 해도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LNG 발전소나 석탄(혹은 열병합) 발전소는 단기간 내에 그리고 입지에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건설할 수 있지만, 서구의 RE100(재생에너지 사용 기준)을 만족시키는 신에너지 전력 설비나 원자력발전의 경우에는 입지 및 건설 기간 비용, 효율성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3)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환경 오염 요인이자 전력 소모 애물단지지만, 고용 유발 효과는 거의 없다. 문제는 데이터센터를 핑계로 토지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 전경. 출처 : MS official blog

4) 공장 및 설비 건설 과정에서 단기적인 고용증가는 발생한다. 건설 및 토목 부문의 호황으로 인한 내수 경기 진작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이재명 정권 임기 내에 ‘실제로’ 건설될 수 있는 반도체 팹은 최대로 봐줘도 3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팹 1기당 건설 비용이 약 20조 원 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이정도의 투자만으로도 지역 경제는 상당한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5) 가장 큰 문제는 투자 재원이다. 무려 130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투자한다고 큰소리친 삼성과 하이닉스? 천만의 말씀이다. 이들 두 기업의 영업이익이 27년까지 약 5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그 돈으로 신규 설비를 짓기 위해 투자한다면 발표 당일날 당장 주가가 폭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 대출로? 한국의 상업은행들은 그럴 여력도 없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 부실대출, 배임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디서 돈이 나오는가? 돈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면 돈은 생긴다. 금산분리를 완화 혹은 아예 폐기하면 된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말한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삼성은행을 설립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이 금산분리다. 이를 허용해주면 은행 자금은 기업의 쌈짓돈이 된다. 미국이 지난 1999년 금산분리를 폐기했다가 불과 10년도 안지나서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이미 지난해 12월에 이재명 대통령은 “금산분리를 완화해달라는 SK의 요구는 일리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역사적 사명 앞에서 금산분리 같은 도덕적 언명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것이 바로 이번 ‘발표회’의 ‘정치적 효과’ 중의 하나다. 즉 앞으로 진행될 일들의 정치적 장애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바로 아직 제대로 익지도 않은 발표회의 진짜 목적이다.

또다른 예상 가능한 결과는, 특히 데이터센터의 경우에, 사모펀드에서 향후 예상되는 수익을 담보로 건설비 충당을 위한 부채를 발행하고 이를 국책기관, 즉 연기금이 인수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단지 환경 문제 및 주민 민원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밀어붙여 건설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원 조달도 용이해진다. 왜냐하면 연기금은 증시 상승으로 떼돈을 벌었기 때문에 이정도 투자는 해줄 수 있다. BIS가 이런 사태를 경고하고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이런 경고가 들릴 리가 없다.

6) 막대한 투자 자금 및 관련 인근 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산 버블 가능성이 생긴다. 금산분리까지 겹쳐지면 자산 버블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위안화 절상이 곁들여지면, 한국 경제는 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에 버금가는 내수 버블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 당국은 이미 이같은 가능성까지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일본 자산 버블의 경험 보고서는 시간이 남아서 취미로 보는 역사 연구가 아니다. 다가올 현실, 실은 만들고자 하는 현실의 부작용을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를 검토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부동산 버블은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공급 대책이나 조세 정책으로 억누를 수 있는 한계가 명백하다. 게다가 과잉 유동성 하의 부동산 억제책은 정치적으로 부담만 가중시킨다. 게다가 부동산 버블의 원인을 정책 당국이 제공한 것이기 때문에 기대 가수요를 막기 더욱 힘들다.

7) 단기적으로 반도체 분야에서의 초과 이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쟁점이 될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 초과 이윤은 외부적 요인, 즉 미국발 인공지능 버블의 후과로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가격’ 요인만 반영한다. 즉 생산 자체가 증가해서 생긴 이윤이 아니다. 이는 해당 기업의 주가를 부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경제적 효과를 가지기 어렵다. 동시에 이같은 반도체 가격 상승은 반도체가 산업 전반의 핵심 부품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 가격의 앙등을 유도한다. 즉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만일 해당 기업의 이윤을 적정하게 환수하지 않는다면, 이윤은 대외적 요인에 힘입은 기업만이 독점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전국민이 부담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이득은 우리가, 부담은 너희가: 한국의 1분기 GDI분석, 2026년 6월 15일)

여기서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이윤 분배이며 다른 하나는 초과 이윤 환수문제다.

삼성전자 노자 갈등의 이른바 ‘이윤 분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초과 이윤은 해당 기업 주주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예컨대 멕시코의 경우에는 아예 헌법상 기업 이윤의 10% 내에서 노동자에게 분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의 이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며, 동시에 이념적 문제이다. 이재명은 자신이 자본가의 편이라고 주장한 것뿐이다.
초과 이윤 환수 문제는 정부 내에서도 견해차가 발견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초과 세수 이슈라고 한정했지만(명목 성장율 증가에 따른 세수 증가), 해외의 사례를 보면 영국은 지난 22년 유가가 급등하면서 메이저 석유회사 이윤이 급증하자 이를 ‘횡재세’(windfall tax)라는 형식으로 국가가 환수했다. 미국도 유사한 논의가 진행됐었다. 한국에서는 이같은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8) 한국 경제 전체로 놓고 보면, 무려 1300조 원에 달하는 반도체 관련 투자는 전체 투자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다른 분야에의 투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 out) 효과가 발생한다. 동시에 이는 한국 경제 전체가 반도체(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단일한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공지능 경제 체제라는 전혀 새로운 경제 모델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분야에만 ‘몰빵’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게다가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발표회는 새로운 경제 모델로의 전환과 그에 따른 부정적 효과 등을 선제적으로 제압하는 정치적 효과를 우선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나 하이닉스는 과거 경기순환적이었던 반도체 산업이 인공지능 주도 경제 모델로 전환하면서 경기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고착산업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설사 반도체 과잉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경기 순환적인 산업이 아니라면 침체기에 과잉 설비가 오히려 경쟁업체들을 압살하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신들의 돈으로 투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위험성도 적다.
이처럼 과잉 투자를 통해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삼성과 하이닉스의 목표 중의 하나다. 발표회의 문구가 ‘대체 불가’인 것은 이들 두 기업의 지위가 경쟁을 통해 이길 수 없는 압도적 지위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같은 기업의 목표에 국가 체제 전체가 동원되며, 이를 따라 국가 정책 전체가 변화한다. 이를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부른다.

9) 따라서 정작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반도체 입국’의 성장 모델은 다음과 같은 4대 노선을 야기할 것이다; 전자산의 버블화, 전산업의 반도체화, 전국토의 투기지역화, 전인민의 투기꾼화.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일본의 버블 시대를 상기해 보자. 당시 일본 국민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며 행복해했다. 먹고 사는 문제라는데 반대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을 것이다. 뒷감당은? 뒷사람이 할 것이다. 다만 법적인 문제를 피해가려면 검찰은 우리 편이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출처 <한겨레신문>

 

5.권력 투쟁인가, 노선 투쟁인가?

 

이재명 정권 1주년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직후에 터져나온 민주당 내부의 다툼은 표면적으로는 그 맥락을 이해하기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비록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라는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사안이 당 전체를 흔들 정도로, 그리고 이재명의 지지율을 급락시킬 정도로 파급력이 큰 사안인가, 또한 청와대와 당 사이에서 조율 불가능할 정도의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 불가 반도체 투자 발표회’의 내용을 감안한다면 민주당 내의 불협화음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이재명 정권의 정책은 명백히 버블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 버블은 심지어는 80년대의 3저 버블과는 달리 대다수의 국민에게 일시적이나마 그 혜택이 돌아가지도 않으며(80년대 중후반의 연간 평균 임금 상승률은 25%를 넘었으며, 업종별 학력별 임금 격차는 역사적으로 가장 적을 때였다), 국가 전체가 단일 산업에 과잉 의존하게될 위험이 상존한다.

뿐만 아니라, 금융 자본주의로의 본격적 전화가 예상되며 국가는 자본의 성장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이 버블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구(특히 대서양 동맹, 이른바 NATO 3.0)에 더 의존하게 되며 이는 한반도 북방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지난 87년 체제를 성립시켰으며 이른바 ‘진보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대연합 정치 세력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유시민이나 정청래의 거의 반이재명에 가까운 반기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의 다툼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재명 정권(그리고 김민석으로 대표되는 분파)은 아예 민주당을 기존의 87년 체제 유산에서 탈피시켜 새로운 정치집단으로 만들려는 기획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는 민주대연합파의 반발보다는 이재명 분파의 공세가 먼저 시작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즉 이재명 일파는 단지 국가와 자본을 일체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정당도 새로운 세력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즉 자본의 대도약만큼이나,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대담한 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6월 29일의 ‘반도체 발표회’도 광주/전라도 지역에 대한 반도체 투자가 대구경북 지역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지역감정을 유도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지역 민주당 당원들에게 이재명 대통령의 권력이 유지되어야 지역적 이해관계, 즉 호남에 대한 투자 증가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불어넣어 당대표 선거에서 이재명이 비호하는 후보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즉 아직 설익은 투자 계획이지만, 그 발표만으로도 정치적 효과는 아주 섬세하게 발생한다.

1934년 6월 30일, 히틀러는 히믈러 등을 동원하여 나치당 동지이자 당내 돌격대 지도자였던 에른스트 뵘 등 수백명을 살해하고 인민주의 분파를 완전 숙청한 뒤 대자본가 계급과 손을 잡았다. 당시 이 소식을 보도한 영국의 신문 1면. 출처 : Britannica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이와 매우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1934년 독일 나치당은 당내의 인민주의 분파였던 돌격대(SA)의 지도부와 정적들을 숙청한다. 이른바 ‘장도의 밤’(Night of Long Knives)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히틀러는 기존의 독일 지배층들, 즉 대자본가들과 제휴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급격화 파시즘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자당 내의 민주주의 분파를 제거한 뒤에 권위주의적 대자본분파 정당과 손을 잡으며 의회를 완전 장악했다.

만일 오는 8월의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서 민주대연합 분파가 패배한다면 한국도 이와 유사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왜 파시스트가 됐는지도 모른 채 타자를 절대적으로 적대화하면서 그것이 민주주의이며, 중도이며 실용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민주당의 분열이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노선 투쟁이었으며, 87년 체제가 아주 흉악한 방식으로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조종임이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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