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중국에도 노동운동이 있는가?

중국에도 노동운동이 있는가?

2024년 3월 21일  / 연구자의 시선
글 하남석 연구위원 (서울시립대 중국학)

들어가며

중국의 사회성격이나 체제성격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들이 벌어진다. 일각에서는 중국을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권위주의적인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중국 내 여러 사회운동에 대해서 연대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있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화평연변 전략에 놀아나는 세력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하지만 중국에서는 심지어 마오쩌둥 시기 때에도 끊임없이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가치를 묻고 기층에서 저항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 현대사 속에서는 끊임없이 단속적으로 사회운동이 일어났고 그 때마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그 운동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현재의 중국의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은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의 수용 속에서 전개되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보편적 모순과 더불어 현대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왔던 기층으로부터의 저항운동이라는 중국적 혁명 전통이 착종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시진핑 시기 중국에서는 어떤 노동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도록 하자.

시진핑 시기 국가노동관계의 변화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은 경제발전이라는 성과를 창출하여 그 체제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을 확보해왔지만, 그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관계들이 해체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어 사회 안정성이 흔들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지속적인 체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후진타오 집권 시기인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사회건설’과 ‘사회관리’를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중국의 사회관리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바로 노동부문의 문제였다. 도시로 이주해온 농민공들의 대량출현, 노동자들의 집단 저항의 증가, 기존의 관리 조직이었던 공식적인 노동조합인 공회(工會) 외부에서의 집단 저항 조직,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노동NGO의 출현 등은 당-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관계와 노동정책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후진타오 시기에 노동계약법의 제정과 같은 노동관계에서의 법적, 제도적 조치들은 고용주와 지방 정부 당국으로부터 노동자들이 일정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성장하면서 노동NGO들도 조심스레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 영역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반면, 시진핑 시기에는 노동관계의 개혁 방식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개혁 조치들을 당의 통제하에 두려고 하며 시민사회의 개입은 여러 제약을 받게 되었다. 후진타오 시기 입법된 노동자 보호 조치들은 시진핑 시기에 폐지되지는 않았고 노동NGO들의 활동도 여러 제한에도 불구하고 파업이나 시위 같은 노동자들의 행동주의를 통해서 지속되지만 이 모든 것들을 통제하려는 당의 규율이 더 강해졌다.

후진타오 시기와 시진핑 시기의 국가-노동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관리의 방식을 비교하자면, 사회의 안정유지(維穩)를 목표로 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후진타오 시기에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시장화와 상품화로 많은 타격을 입은 사회에 대한 보호적 조치들이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라는 슬로건 속에서 행해졌다. 대중들의 불만 속에서 다양한 탄원이나 군체성 사건 등이 많이 발생하자 인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갈등을 협상과 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시진핑 시기 들어서는 사회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 하고 치안과 관련된 공안 기구들의 힘을 늘리고 이에 대한 당의 통제 역시 강화했다. 시진핑 시기 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공안 부문에 더 무게를 두는 사회적 통제가 강화되면서 기층에서 체제의 내부와 외부의 선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활동하면서 그 영향력을 점차 넓혀나가던 노동NGO에 대한 탄압이 거세졌다.

노동 NGO들에 대한 대대적 탄압

2010년대 들어서 노동운동이 활발해지고 파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에는 작업장에서 점차 각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역량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광동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지원하는 자생적 노동NGO와 활동가들의 성장도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의 유일한 공식적인 노동조합인 공회는 후진타오 시기 들어 노동자들을 대변하려고 여러 제도적 변화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주의 속에서 국가를 위해 노동자를 생산에 동원해야 하는 국가기구로서의 성격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체제 내부와 외부의 경계선에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지원하고 집단 쟁의에 여러 형태로 큰 도움을 주는 풀뿌리 노동NGO들은 지역에서 점차 넒은 공감대를 형성해나가게 되었다. 이 가운데 세계의 공장인 광둥성을 중심으로 기존의 서비스지향형 노동NGO에서 운동지향형 노동NGO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운동지향적 노동 NGO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른 NGO들이 중산층 엘리트 출신들이 이끄는 경우가 많다면, 운동지향적 노동NGO들은 고용주들과의 분쟁 속에서 자발적으로 퇴직하거나 혹은 강제로 퇴직당했던 노동자 출신의 리더나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뛰어난 활동가들은 노동자들이 목표와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고 운동의 외연을 넓혀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노동NGO 활동가들의 역할은 다큐멘터리인 <凶年之畔>(We the workers)에 잘 나타난다.

그 영화 속에서 선전의 노동운동 지원단체인 춘평(春風)을 이끄는 장즈루(張治儒)*가 후난 출신의 한 농민공과 다음날 있을 쟁의 결의대회에서 할 연설을 다듬는 장면이 나온다. 그 농민공이 연습하던 연설의 일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중국 방방곡곡에서 이곳 선전으로 왔습니다. 우리가 뭘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됐었나요?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곳에 왔죠….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소홀히 했습니다. 종종 우리는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치는 나라의 정책이고 제도입니다. 때때로 어떤 정책들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아주 불리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는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하기 시작해야 할까요? 바로 노동조합입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함으로써 우리는 행동을 할 수 있죠. 저는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깨어있는 노동자는 실패하지 않는다.’ 노동자 여러분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고개를 들어 일어나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아니면 시원하게 울음을 한바탕 터뜨리십시오.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우리는 동료들이 눈물을 닦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동료가 슬퍼서 울고 있을 때 그를 다시 한 번 포옹해 주세요. 고개 들고 일어섭시다. 우리에게 실패란 없어요.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겁니다. 당신이 고작 돈 몇 푼만 원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포기해 잠들지 않는다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나서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든 평생 개고생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연설에서도 전적으로 잘 나타나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히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에만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정치화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정치화 경향과 급증하는 파업은 바로 당국의 거센 탄압으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가장 많았던 2015년 12월 3일 공안 당국은 광동 지역 노동NGO에 대한 침탈과 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조치에 들어갔다. 당시 적어도 4개의 노동단체가 표적이 되었는데 25명의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구금, 심문을 받았으며 그 중 7명이 구류상태에 있거나 접견이 금지된 상태였다. 물론 이 활동가들이 평소에도 마음껏 자유롭게 활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로 지방정부의 공안 조직들이 그들을 상시적으로 감시했고 때때로 폭력이나 협박 등 강제적인 억압이 가해지기도 했지만 중앙 당국에 의한 대대적인 검거는 처음이었다. 여러 해외 노동 단체들이 이들의 탄압에 항의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글로벌 연대활동을 펼쳤지만 큰 소용은 없었고 이후 이 지역에서의 활동은 큰 타격을 입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자스커지 기업 노학연대 투쟁에서 ‘자스커지노동자지원단’의 모습

한편, 2018년에 자스커지(Jasic Technology, 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라는 기업에서 노조를 세우려는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이에 연대하던 대학생 활동가들이 당국에 잡혀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선전 공장에서 평소 휴식 시간에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에게 강제 구보, 폭언, 구타 등 비인간적인 처우가 계속되었고, 이에 항의했던 노동자들이 관리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해고 통보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스커지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려고 지역의 공회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도리어 사측은 어용노조를 만들어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지역의 상급 공회도 급진적인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는 것을 꺼리며 처음 저항했던 노동자들의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사측의 어용노조의 손을 들어줬으며 지역 경찰들은 이에 격렬하게 항의하던 노동자들을 연행해간다. 상황에 절망한 노동자들은 지역 파출소 앞에서 이들을 석방하라는 항의 집회를 열었지만 이마저도 진압당했다. 이들이 당시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에 억울한 사연들을 실어 중국의 SNS 상에 올리자 이에 호응하여 연대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단순히 온라인상의 탄원서 발표나 연대 서명에 그치지 않고 ‘자스커지노동자지원단’을 조직하여 직접 현장에 내려와 적극적인 지원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의 여러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학회를 만들어 중국의 불평등과 사회문제와 관련해 여러 활동을 하던 대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대적인 탄압을 받았고 대부분 연행되고 억류되었다. 몇 해의 시간이 지나 고향으로 돌려보내졌지만 이후 공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당국의 감시 속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면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주인인 노동계급을 사회주의 국가가 탄압하고 사회주의를 학습하던 학생들을 연행하는 모순되고 환멸적인 상황이 여러 차례 벌어지고 있다.

나가며

이렇듯 사회주의없는 사회주의, 마르크스없는 마르크스주의를 풍자하여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 ‘록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의 중국어 표현이 ‘馬’克思라는 것을 이용해 지금 상황이 사슴을 말이라고 했던, 즉 남을 속이려고 진실과 거짓을 바꿔치기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빗대어 풍자하는 표현이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조직하려 했던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동시에 어용노조를 만들고,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지원하던 각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는 폐쇄하고 어용 동아리를 만들어버린 중국의 아이러니한 현실은 이런 풍자를 불러오고 있다. 즉, 인민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국가정체성을 의심하고 다시 질문하는 중이다.

현재 중국은 분기점에 서있음이 분명하다. 시진핑 체제는 이를 ‘신시대’라고 명명하는 동시에, 현재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빈부격차, 부정부패, 생태 위기, 부채 증가, 경제성장 둔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의 갈등 등 여러 산적한 국내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당으로 일원화된 강력한 권력 집중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이 과정에서 당 중앙은 다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강조하고 강력한 이데올로기 단속에 나섰지만, 기층에서는 조금씩 그 본질적 성격이 무엇인지, 과연 누구를 위한 사회주의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사 속에서 몇 번이나 갈등을 반복했던 권력 유지를 위한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와 해방을 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다시 한번 충돌을 시작했다.

*장즈루는 후난 출신으로 1993년 19살에 광둥 동관에서 농민공 생활을 시작해 1995년부터 여러 외자기업에서 노조를 만드려는 시도를 하다 동료 노동자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2004년부터 노동NGO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5년에 춘펑 노동분쟁 서비스 센터를 설립하고 이후 광동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조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주요 활동가이다.(Feng Chen, Xuehui Yang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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