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종속이론의 역사

민노연 창립식_087

종속이론의 역사

: 루이 마우로 마리니의 제국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기여

2023년 11월 2일 / Review & Preview
번역 및 편집자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종속이론, 제국주의, 불평등교환, 제3세계, 정치경제학

1995년 Fernando Henrique Cardoso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은 한 시대의 마감, 혹은 최소한 하나의 이론적 경향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Cardoso는 1950-1980년대 제3세계의 혁명적 지식인들과 서구의 신좌파들 사이에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 이론가들 중 마지막 세대였다. 그러므로 그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혁명적’ 혹은 ‘반제국주의적’ 제3세계 운동이 서구 자본주의의 새로운 확장(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완전히 편입되었다는 증표였다. 이후 더 이상 ‘종속’이란 말은 국제 무대에서 들리지 않았다. ‘종속’의 자리에는 ‘상호의존’(interdependency)이란 개념이 들어섰고, 반제국주의라는 말은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대체되었다.

종속이론가 Cardoso가 변절한 것일까? 혹은 종속이론은 자체적인 결함으로 이론적 현실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둘 다 아니다. 종속이론은 역사적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종속이론이 배태된 역사적 조건들을 적확하게 반영하고 있기도 했다. Cardoso는 처음부터 ‘혁명적’ 이론가가 아니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8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종속’의 대명사격인 국가들, 즉 브라질 이집트 멕시코 케냐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인도와 같은 국가들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발전(development)’의 가능성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천으로서의 종속이론의 효용은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8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구식민지이면서도 자본주의적 성장을 보여준’ 사례들이 탄생하면서, 이론은 현실에 의해 부정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종속이론은 왜 제3세계는 서구에 비해 ‘저발전(underdevelopmet)’을 보이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따라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제3세계에서도 마치 ‘정상적인 (자본주의적) 성장’이 가능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게되자, 지식인들과 실천가들 사이에서 종속이론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속류 종속이론가들이 ‘현실적으로’ 원했던 것은 기실 ‘발전’이었다. 그리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발전의 기회를 준다면, Cardoso는, 그리고 다른 정치인들과 운동가들은, 기꺼이 자본주의에 영혼을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집권 첫해인 1996년 만들어진 브라질 영화 ‘중앙역’(central station)은 고속성장의 장미빛 미래와 역동성 아래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 환상은 아주 짧게 끝났다. Cardoso 가 두번째 임기를 채 마치기도 전인 2002년 나온 영화 ‘신의 도성’(City of God)은 이 장미빛 미래가 현실을 개선시키기는 커녕, 더 처참한 도시빈민을 양산하고 말았다는 것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의 종속이론의 운명은 보다 더 희극적이다. 남한에서는 종속이론이, 학계에서도 그리고 80년대의 운동권에서도 한 번도 ‘주류’ 이론이었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거의 ‘마이너’ 이론의 자리조차도 차지한 적이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학계에서 거론되거나 논문들이 나온 것도 많지 않았고, 운동권 내에서 일부 종속 이론 저작들이 번역 출간되는데 그쳤다. 문제는, 이 번역마저도 거의 일어로  번역된 저작의 중역이었던 탓인지, 오역이 심각했다. 한 예로, 종속 이론의 핵심 저작인 안데르 군더 프랭크의 ‘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는 남한에서는 ‘저개발의 개발’ 혹은 ‘저성장의 성장’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거나 인용되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역이다. Development는 ‘발전’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전개’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프랭크의 저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 일종의 ‘언어 꼬으기’였다. 제대로 번역한다면, 이 책의 제목은 ‘상대적 저발전의 전개’라고 해야 옳다. 이 ‘오해’는 일어 번역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역이든 제대로 된 번역이든 그것조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속이론은 그 자체로 변방의 이론이었지만, 남한에서는 변방에서도 변방에 속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남한 학계에서 종속이론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은 이수훈 박사(경남대 극동연구소 전 교수)가 유일하다(그리고 이미 서구에서도 저물어가는 이론이었기 때문에 그 후대 유학파 학자들이 종속이론을 전공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그는 귀국 뒤에는 종속이론에 관한 논문은 거의 쓰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그가 문재인 정권 시절에 주일대사를 지냈는지는 알듯 말듯 오리무중이지만, 종속 이론이 그가 그 고급관리의 지위에 오르는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에서의 종속이론은 ‘어디선가 들어는 봤는데, 낯선’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종속’이 ‘상호의존’으로 격상되면서,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헤게모니는 강화되어 가는데도, ‘반제국주의 이론’의 명맥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도 근근히 연명하는데 그쳤다.

그렇다면 현재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주춤하고, 미국의 헤게머니가 위협을 받으면서 종속 이론은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살릴까? 종속이론의 핵심 테제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불평등 교환이나, 그로 인한 중심부 노동자 계급의 상대적 지위 향상(이것이 이른바 ‘가든(garden)’의 실체다)에 대한 논의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종속’에 대한 주장들이 다시 빛을 볼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는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23년 4월Monthly Review online에 실린 Torkil Lauesen의 종속이론의 역사에 대한 리뷰 에세이다. 종속이론의 마지막 세대인 루이 마우로 마리니의 논문 ‘Dialectics of Dependency’가 브라질어 출판 48년만인 지난 2021년 영어로 번역 출간된 것을 기념하여 쓰여진 글이다. 마리니는 종속이론가의 대표주자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의 이름마저 낯설 것이다. 그의 대표저작은 1973년에 출간되어 2021년에야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니 종속이론은 다시 전성기를 누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지금 21세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에 한번 다시 음미해봐야할 이론과 입장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아래는 리뷰 전문 번역이다.

– 편집자 글

원문 링크 : https://mronline.org/2023/04/26/marinis-contribution-to-the-political-economy-of-imperialism/

루이 마우로 마리니 Ruy Mauro Marini (1932-1997)

루이 마우로 마리니의 제국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기여

Ruy Mauro Marini’s Contribution to the Political Economy of Imperialism

By Torkil Lauesen (Posted Apr 26, 2023)

역사적 맥락들

마오쩌둥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아니다, 그것들은 사회적 실천, 생산을 위한 투쟁, 계급투쟁, 과학적 작업에서 비롯된다.1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역사적 발전, 계급과 국가의 기획, 그리고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논쟁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불평등 교환 이론을 탄생시킨 장기적인 1960년대(1955~75)의 역사적 발전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일까?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탈식민지화 과정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대영제국이 쇠퇴한 후 곧 새로운 패권국이 될 미국에게 꼭 필요한 사건이었다. 대영제국의 쇠퇴와 미국의 부상에 맞서 균형을 맞추는 소련의 부상은 제3세계가 된 식민지에서 해방 운동을 위한 기회의 창을 만들었다.

전후 미국은 미국의 투자와 무역을 위해 이전 유럽 식민지를 개방하기 위해 탈식민지화를 추진했다. 이는 식민주의에서 신식민지주의로의 전환이었다. 한편, 소련은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국가의 창설을 서구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동맹으로 여겼다. 1차 탈식민지화 물결 속에서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은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 회의에 참가하여 동서양으로부터의 독립과 국가 경제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둥회의는 1919년 코민테른(COMINTERN)과 같은 사회주의 세계혁명을 위해 노력한 새로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식민주의에 맞서는 민족해방투쟁의 표현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공산주의가 앞장섰다.

새로운 글로벌 헤게모니인 미국은 탈식민화 과정이 사회주의 블록과 연결된 사회주의 지향 국가가 아닌 미국 자본을 위한 “자유 기업”(free enterprise)으로 귀결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1965년경부터 1975년까지 세계의 주요 모순은 미국과 서로 다른 반제해방운동, 사회주의 지향 국가들 사이에 있었다. 이 투쟁에서 베트남전쟁은 이러한 모순의 상징이 되었다. 동쪽의 중국과 베트남, 서쪽의 쿠바와 칠레에 이르기까지 제3세계 혁명가들 사이에서 제3세계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프로젝트의 부상은 마오주의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중국의 해석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론적,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는 쿠바의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알제리의 프란츠 파농, 베트남의 호치민과 응우옌 지압, 기니비사우의 아밀카르 카브랄, 모잠비크의 에두아르도 몬들라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 베트남, 쿠바 등 나라들의 혁명정신은 반제이론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이전에 제국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는 거의 독점적으로 1차 세계대전 전후의 V. I. 레닌의 글, 특히 1914년의 “자본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 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3세계 혁명가들과 학계 모두에서 새로운 관점이 등장했다. 후자는 대부분 신좌파와 연결되어 있었고 자본주의 세계 체제와 기존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모두 비판했다.

이 경향의 중요한 대표자는 스탠포드 대학교 교수이자 1949년에 창간된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저널의 주요 인물인 폴 바란(Paul Baran)이었다. 바란은 독점 자본주의를 국가적 현상이 아닌 초국가적 현상으로 정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반영했다. 초국적 독점 자본주의의 특별한 특징은 제3세계의 저개발이었다. 1957년 바란의 저서 <성장의 정치경제학>이 출판되었다. 1966년 Baran이 Monthly Review 편집자 폴 스위지(Paul Sweezy)와 함께 쓴 Monopoly Capital이 출간되었다. 바란은 불평등한 교환이나 의존에 관해 글을 쓰지 않았다. 그의 주요 관심은 독점 자본, 투자, 이윤이었지만, 글로벌 자본주의의 결과로 인한 저개발을 강조하는 것은 제3세계 국가들이 서구 세계의 사례를 추종하면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제기했다.

바란의 작업은 196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제국주의 이론가들, 즉 안드레 군더 프랭크, 사미르 아민(Samir Amin), 임마누엘 월러스타인(Immanuel Wallerstein), 아르기리 엠마뉴엘(Arghiri Emmamuel)에게 중요했다. 1964년 바란과의 만남 후 프랭크는 자본주의 발전과 저개발에 대한 바란의 체계적인 조사가 세계사, 현재, 미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문을 열었다고 썼다.3  체 게바라는 바란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1960년에 그는 저개발 및 관련 경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바란을 쿠바로 초대했다.4

스위지, 해리 맥도프 등 이론가들을 비롯해 먼슬리 리뷰를 중심으로 미국계에서 제국주의 이론이 부활하면서, 바란의 작업이 이어지며 이를 미제국주의에 적용하게 됐다. 나중에 아프리카에서 해방 운동을 연구하던 월러스타인은 자신의 세계체제 이론을 발전시켰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프랭크와 나중에 루이 마우로 마리니와 같은 몇몇 학자들이 종속이론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종속이론은 제국주의를 북미, 서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메트로폴리스’와 착취된 주변부인 제3세계를 가진 체제로 묘사했다. 제3세계 국가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된 원자재와 열대 농산물을 대도시에 공급했고, 대도시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힘과 통제권을 가졌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주변부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제3세계 국가의 발전은 그들을 대도시와 연결하는 공급망을 차단하는 혁명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아프리카 출신 이집트인 사미르 아민은 1957년 ‘저개발의 기원: 세계 규모의 자본주의 축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칠레에 거주하던 프랭크는 1963년 발전과 저개발의 연관성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1957년 콩고에 있었던 엠마뉴엘은 1963년 파리에서 불평등 교환 이론을 발표했다. 이들 종속이론가들은 모두 제국주의가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불평등 교환 개념을 사용했다. 불평등한 교환이 제국주의의 일부라는 생각은 거의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나타났는데, 이는 아이디어가 개인 천재의 마음의 산물이 아니라 어떻게 역사적으로 결정되는지를 보여준다.

엠마뉴엘의 불평등 교환 이론

대외무역과 불평등 교환에 대한 엠마뉴엘의 연구는 칼 마르크스의 작업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4권에서 대외무역을 더 자세히 조사할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끝내 글을 쓰지는 못했다.5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엠마뉴엘의 국제무역 이론은 고전정치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 특히 비교 우위에 관한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테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엠마뉴엘에 따르면, 불평등 교환의 역사적 기초는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의 식민주의에 의해 마련되었다. 유럽의 식민주의는 원자재와 농산물을 수입하고 산업재를 수출함으로써 국제 무역을 확대하고 노동 가치의 불평등한 교환을 발전시키면서 지구를 휩쓸었다. 1880년대에는 중심과 주변부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가 굳어졌다. 후자에서는 최저임금만 지급되는 반면, 전자에서는 임금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는 더 나은 임금과 생활 조건을 위한 중심부 노동계급의 투쟁과 주변부 사람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라는 두 가지 동시적 과정의 결과였다.6

불평등 교환 이론에 따르면 임금은 노동계급의 핵심이다. 제국주의 질서에서 국가의 위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가치는 임금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임금 수준이 높은 국가로 이전된다. 국제상품시장과 자본시장을 통해 고임금 제국주의 국가들은 불평등한 무역교환을 통해 저임금 국가들과의 무역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식민지 형태는 선진국에서 더 높은 임금과 추가 이윤을 가져왔다.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은 의회와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피착취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임금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수준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착취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것이든, 한 국가가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것이든 마찬가지다. 인간 노동의 생산물은 상품 또는 서비스이므로 인간 노동의 전유는 이러한 상품과 서비스의 전유다. 결과적으로, 국가 간의 모든 착취는 궁극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불평등한 교환에 기초한다. 이는 무역수지 적자, 즉 제국주의 국가가 현재 세계 시장 가격에 따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수입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실제 가격 형성의 불평등으로 반영될 수 있다. 엠마뉴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더 단순화하자면, 한 국가는 자신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가져오거나, 얻은 상품을 너무 싸게 사고, 제공한 상품을 너무 높은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다른 국가를 희생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7

엠마뉴엘의 불평등 교환 이론은 상품 유통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생산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이론은 단순한 무역 그 이상에 관한 것이다. 이 이론은 임금의 글로벌 차이와, 착취 정도의 차이에 반영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의 핵심을 지적한다. 엠마뉴엘은 가치의 기반이 생산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교환 과정을 통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착취는 생산과 유통을 모두 포함하는 자본 축적의 완전한 순환의 결과다.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에 대한 어떤 해석도 가치 이전에서 시장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자본 사이,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가치가 획득되고 분배되는 것은 바로 시장을 통해서다. 엠마뉴엘은 가치 이론을 국제 무역에 적용했는데, 이는 그를 비판하는 이론가들 대부분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이었다.

마리니의 공헌: 종속의 변증법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다양한 관점과 지리적 위치에서 불평등한 교환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다음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불평등 교환 이론을 시작으로 이 버전이 엠마뉴엘의 해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여기서 불평등 교환은 프랭크와 마리니와 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종속 이론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1955년 마리니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58년에 그는 프랑스로 가서 18개월 동안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는 계속되는 마르크스주의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고, 마르크스와 레닌을 공부하고, 프랑스 식민지에서 망명한 사람들을 만났다. 1960년에 그는 브라질로 돌아와 행정부에서 일하고 쿠바에 새로 설립된 언론사인 Prensa Latina의 기자로 일했다. 1962년에 그는 브라질리아 대학교의 부교수가 되었다. 1964년 4월, 브라질 우익 군사 쿠데타 이후 마리니는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그는 1964년 12월 석방된 후 멕시코 망명 허가를 받을 때까지 3개월 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다. 이후 그는 멕시코시티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1968년 멕시코 반란에 휩싸였다. 1968년 10월 멕시코군은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해 멕시코의 대중적인 좌익 운동에 대한 탄압을 알렸다.

마리니는 1969년 11월에는 다시 칠레로 망명해야 했다. 마리니가 그의 유명한 저서 “종속의 변증법”(The Dialectics of Dependency)을 출판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칠레에서 마리니는 도착 직후 혁명좌파운동(MIR)에 합류하여 이 운동의 지적 동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MIR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당에 반대하는 주요 좌파 야당으로 구성된 혁명 단체였다. 1973년 9월 11일 아옌데 정부에 맞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후, 마리니는 10월에 파나마로, 그 다음 1974년 1월에 멕시코로 떠나야 했다. 그는 멕시코에 1984년까지 머물렀고,이후 브라질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살다가 마리니는 1997년 암으로 사망하였다. 이렇듯 마리니의 삶은 이론적 학문적 연구와 혁명적 실천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중요한 논문(거의 짧은 책 길이)인 “종속의 변증법”은 1973년에 저술되었으며 2021년에 처음 영어로 번역되었다.8  마리니의 글에는 엠마뉴엘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엠마뉴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프랭크는 자신의 저서에서 엠마뉴엘과 마리니를 모두 언급하므로써 두 이론가 사이의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9  프랭크는 마리니와 동시대에 칠레에 살았고, 1973년 쿠데타 이후에는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엠마뉴엘을 만났다. 아민 또한 학술회의에서 엠마뉴엘과 마리니를 모두 언급했다.10 여러 면에서 엠마뉴엘과 마리니의 아이디어는 서로 겹치고 보완적이다.

첫째 불평등 교환의 기원은 동일하다. “종속의 변증법”에서 마리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조업의 교환물로서 먼저 금과 은, 그 다음 원자재와 농산물의 흐름이 어떻게 후자의 경제 발전을 향한 요구를 유럽과 연결했는지 설명한다. 마리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로 이 순간부터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 자본주의 중심지와의 관계가 정의된 구조, 즉 국제적 노동 분업에 삽입되어 이 지역의 후속 발전 과정을 결정하게 된다. 즉, 종속의 확대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종속국가의 생산관계가 수정되거나 확대 재생산되는 틀 안에서 형식적으로 독립된 국가들 사이의 종속관계로 파악되는 종속이 형성되는 것은 그때부터이다. … 앙드레 군더 프랭크(Andre Gunder Frank)의 “저개발의 전개”(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에 관한 잘 알려진 공식은 흠잡을 데가 없으며, 그것이 이끄는 정치적 결론도 마찬가지다.11
식민주의에 의해 이루어진 국제적인 노동 분업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 사이에 자본 축적의 순환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재생산에서는 두 가지 형태가 함께 연결되었다. 원자재 및 식품 수출국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의 자본 축적 내부 순환체제는 세계 경제와 연결되어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는 유럽과 북미 산업 국가의 자본주의 순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했다.
종속적 축적에서는 자본 순환의 두 가지 기본 계기인 상품 생산과 소비가 지리적으로 두 영역으로 분리된다. 생산은 종속 국가에서 이루어진다. 소비는 제국주의 중심지에서 일어난다. 수출 지향적이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자본 순환은 국내 소비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생산 확대에 대한 자본의 필요성과 축적의 순환을 완성하여 이윤을 실현하기 위한 소비의 필요성 사이의 모순은 유럽과 북미의 소비에 의해 해결된다. 이러한 모순은 노동력의 판매자이자 상품의 구매자인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에서도 표현된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모순: 상품 구매자인 노동자는 시장에게 있어서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상품인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를 최저 가격으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12

자본가는 가능한 한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 임금을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임금은 제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구매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즉, 자본주의적 축적 형태는 자체 시장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가들이 임금을 인상하면 그들의 이윤은 감소한다. 임금을 줄이면 시장도 줄어든다. 두 경우 모두 자본가들은 생산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생산한 것이 팔릴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13

마리니는 이렇게 표현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개별 소비는 생산된 상품에 대한 수요 창출의 결정적인 요소를 나타내며, 생산과정이 유통과정에서 적절하게 해소되는 조건 중 하나다.”14  이것은 단지 자본주의의 추상적인 모순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19세기 전반기에 영국에서 표면화되었다. 자본가들이 이윤율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임금 인상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것은 당시 자본주의의 존재 전체를 위협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1848년에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다.“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유령이.”15

19세기 첫 10년 동안의 산업 혁명으로 인해 생산력은 방직 기계, 증기 기관, 철도의 도입으로 혁명을 겪었다. 생산성은 몇 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계급에게 더 나은 조건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1840년대는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면서 ‘배고픈 40년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지속된 아일랜드 대기근 동안 대략 100만 명이 기아와 관련 질병으로 사망했다. 기근 기간 동안 아일랜드는 옥수수, 밀, 보리, 귀리를 영국으로 수출하여 약 200만 명에게 식량을 공급했다. 아일랜드는 인도, 카리브해 및 라틴 아메리카의 설탕 섬과 마찬가지로 식량 생산 식민지였으며 그 결과로 인해 인구가 고통을 겪었다.16

불행은 식민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845년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프레데릭 엥겔스(Frederick Engels)는 산업 도시의 끔찍한 상황을 묘사했다.17 많은 영국 프롤레타리아는 북미, 호주, 뉴질랜드 또는 기타 영국 식민지 중 하나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의 프롤레타리아트도 마찬가지였다. 대기근 기간에만 백만 명 이상이 아일랜드를 떠났다. 스웨덴에서도 동일한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 19세기 전반에 영국의 노동자 임금은 라틴 아메리카와 마찬가지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을 충당했다.18 이로 인해 국내 시장이 약화되었고 계속 팽창하는 소비에 비해 반복되는 소비 정체 문제가 발생했다. 생산으로 인해 영국 산업가들의 이윤율이 하락했다.

자본주의 국가가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할수록 즉각적인 수요와는 관계가 없고 세계 시장의 지속적인 팽창에 의존하는 규모로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출 흑자가 국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구매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무역 수지가 건전한 국가 경제에 매우 중요했다. 영국 자본은 새로운 시장과 외국인 투자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세계화를 향한 초기 경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끊임없이 확장되는 제품 시장의 필요성이 전 세계의 부르주아지를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 도구의 급속한 개선과 엄청나게 촉진된 통신 수단을 통해 모든 국가, 심지어 가장 야만적인 국가까지 문명으로 끌어들인다. 상품의 값싼 가격은 중국의 모든 성벽을 무너뜨리는 중포이며, 이 무기로 외국인에 대한 야만인들의 극도로 완강한 증오심을 굴복시킨다. 그것은 절멸 위기에 처한 모든 국가에게 부르주아 생산 방식을 채택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그들이 소위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들 가운데로 도입하도록, 즉 스스로 부르주아가 되도록 강요한다. 한 마디로 그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20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원심력 과정으로 보았다.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수익성 있는 투자의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식민지와 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수익성 있는 투자가 더 중요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새로운 시장 개방과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자본 수출은 자본주의의 임박한 붕괴를 일시적으로 연기할 것을 약속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자본주의는 19세기 중반에 정기적인 위기로 인해 파괴되었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의 힘과 저항도 커졌다. “공산주의의 유령”은 1871년 파리 코뮌으로 구체화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전세계적인 혁명을 몹시 두려워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결국 세계 자본주의를 활성화시킬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축적을 촉발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식민주의는 원심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양극화 현상이기도 했다. 세계를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것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수명 연장의 기초를 마련한다.

1850년대에 들면서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 조건은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자본가들은 생활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직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결과가 아니었다. 노동자 운동은 특히 분열과 부패로 인해 여전히 취약했다. 대신 임금 인상은 지배계급 자체 내부의 모순으로 인한 것이었다. 영국의 지주들은 영국 의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804년에 영국은 곡물과 기타 농산물을 영국으로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19세기 전반에 걸쳐 식료품 가격이 여전히 높은 이유를 설명하며, 이는 산업가들이 지불해야 하는 최저임금에 영향을 미쳤다. 본질적으로 지주들은 영국 산업의 독점으로 얻은 추가 이윤에서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 1840년대에 산업가들은 수입 금지를 해제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노동자 계급의 지원을 받아 그들은 1846년에 (곡물법 폐지에) 성공했다. 1872년까지 밀 수입은 두 배, 육류 수입은 8배 증가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설탕과 기타 농산물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이 훨씬 저렴해졌다. 영국에서 식료품 가격과 그에 따른 생계 비용이 하락하자 산업가들은 임금을 낮추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제 이는 막 시작된 노동자 운동에 의해 막혔고,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약 7천만 명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노동 예비군이 감소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실질임금이 증가했다.

계급투쟁은 경제법칙에 구체적인 역사적 틀을 제공했다. 이러한 틀이 취하는 형태는 역사가 만들어낸 구조적 가능성과 한계에 의해 결정된다. 식민주의의 전성기였던 19세기 후반 유럽의 계급투쟁은 자본주의에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 글로벌 시장이 확대되고 있었다. 원자재 및 식품의 저렴한 수입으로 고수익률을 달성하고 지속적인 축적을 확보했다. 이는 마스터 플랜의 결과가 아니라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과 가능한 최고 임금을 받으려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의 결과였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주변부에서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전혀 다른 해결책을 찾았다. 마리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라틴 아메리카 수출 경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유통은 생산과 분리되어 기본적으로 외부 시장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개별 소비는 잉여가치의 몫을 결정하더라도 제품의 실현을 방해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노동자가 생산 과정에 새로운 무기를 통합함으로써 대체될 수 있는 한 노동자를 대체할 조건을 만드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21

노동예비군의 존재는 노동자 수의 지속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고, 이윤율을 높여 노동자의 개별 소비를 압축했다. 이는 주변부에서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렇다면 수출경제는 생산적 전문화에 기초한 국제경제의 산물 이상의 어떤 것이다. 수출경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기초한 사회구성체로서, 수출경제에 내재된 모순을 극한까지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자신의 기반이 되는 착취 관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국제 경제에 대해 자신이 발견한 의존성을 확대된 규모로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는 자본의 순환을 생성한다”. 22

수출산업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 소비가 위축되고, 사치품의 자본주의적 소비는 중심부로부터의 수입으로 충족된다.23 

“따라서 세계 시장으로의 수출을 위해 노동자의 개별 소비를 희생하는 것은 국내 수요 수준을 저하시키고 세계 시장을 유일한 생산 출구로 만든다. 동시에, 그에 따른 이윤의 증가는 자본가로 하여금 국내 생산의 대응물 없이(세계 시장을 지향하는) 소비 기대, 즉 수입을 통해 충족되어야 하는 기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만든다. 임금에 기초한 개인 소비와 누적되지 않은 잉여가치에 의해 생성된 개인 소비 사이의 분리는 내부 시장의 계층화를 야기하며, 이는 또한 유통 영역의 차별화이기도 하다. 시스템은 제한하려고 노력하며 내부 생산, 비노동자에게 고유한 “높은” 유통 영역(시스템이 확대되는 경향)을 수입 무역을 통해 외부 생산과 연결한다”.24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생산의 성장과 국내 시장의 확장이 일치하는 제국주의 핵심과는 다르게 발전한다. 산업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필요한 식량을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에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임금 수준의 하락을 수반하지 않고 노동계급이 다른 공산품을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제국주의 핵심국가에서는 산업생산이 대중소비를 위한 상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임금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노동 과정을 효과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윤을 늘리는 방법은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유통과 생산

생산이 아닌 자본주의 분석의 출발점으로 시장에서의 교환(유통)을 취하는 것은 불평등 교환 이론의 결정적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실제로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제시한 것과 일치한다. 『자본』의 첫 번째 책 제목은 『자본 생산 과정』이었다. 자본생산에는 재화의 생산과 판매가 모두 포함된다. 자본론의 처음 두 부분은 유통 분야의 문제를 분석하여 상품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전념한다. 100페이지가 넘는 세 번째 섹션에서야 상품 생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상업 생산이 자본주의적 상업 생산으로의 전환을 설명하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그 역사적 발전과 일치하도록 만든다.25

순환(유통) 영역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의 교환과 관련하여 핵심의 역동적인 축적 순환과 기능 장애가 있는 국가 축적 순환 사이의 불평등 교환의 제국주의를 연구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 주변부의 종속 경제는 산업 국가의 축적에 종속된다. 그 기능은 이윤율과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축적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전의 동인으로서 소비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 즉 생산 실현의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상품 생산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석하는 것을 희생하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종속 경제에서 생산 위치와 소비 위치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는 생산 영역에서 노동 착취를 위한 독특한 조건을 생성하며, 이를 마리니는 “초착취”(super-exploitation)라고 부른다. 이러한 과잉 착취는 생산 영역의 중심에서 국가 생산과 국내 소비 사이의 분열을 악화시킨다.26

잉여가치와 발전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핵심과 주변부의 착취 형태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잉여가치 이론으로 우회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본이 잉여가치율을 증가시켜 잠재적 이윤액을 증가시킬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노동력의 가치를 형성하는 “상품 바구니”(basket of goods)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과 관련하여 노동 시간 연장 및/또는 작업 강도를 통해 절대 잉여 가치를 높인다.
  2.  새로운 기술이나 보다 효과적인 관리 형태의 결과로 생산성이 증가하여 상대적 잉여 가치가 증가한다. 이는 총노동 시간에서 “필요 노동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인다.
  3.  재생산 비용의 실제 수준을 낮추고 그로 인해 총노동 시간 중 ‘필요 노동 시간’을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어 초과잉여가치를 추출한다.

마리니는 초착취를 “노동의 강화, 노동일의 연장,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일부를 수용하는 것”으로 정의한다.27 “노동일의 강화와 연장”은 마르크스의 절대 잉여가치 주장과 동일하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마지막에 언급된 형식이다. 마리니는 “필요 노동의 일부를 전유”함으로써 노동자의 노동력의 일부를 대체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노동력의 가치 하에서 식민지 지체로 인한 임금 하락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은…노동(권력)이 그 가치 이하로 지불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노동의 과잉 착취에 해당한다.”28

마리니는 19세기 후반 산업자본주의의 역동적 발전으로 인한 잉여가치(생산성 증대) 때문에, 주변부 노동력의 과잉 착취가 절대적 잉여가치(더 길고 더 강화된 노동)에 의존하는 것부터 상대적 잉여가치에 의존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 체제 핵심의 잉여가치 추출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린다.  값싼 식량과 원자재 형태의 주변부로부터의 불평등한 교환에 의한 가치 이전은 더 높은 임금을 위해 제국주의 중심부에서 노동계급의 성공적인 계급투쟁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창출한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에 내재된 소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축적을 가속화한다. 임금 수준의 상승은 상대적 잉여가치 증가, 즉 새로운 기술과 관리 시스템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려는 자극이기도 하다. 이는 노동자의 개인 소비를 구성하는 상품의 가격이 저렴해짐을 의미한다. 생산성의 증가와 임금의 증가, 그리고 이에 따른 생활수준의 증가 사이에는 반드시 내재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심부의 노동계급은 임금인상을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생산성 향상으로부터 자신의 몫을 얻을 수 있었다.

마리니의 식민지 초착취 개념과 중앙과 주변부 사이의 불평등한 교환의 원동력인 제국주의 중앙의 임금 인상에 대한 엠마뉴엘의 설명은 서로를 훌륭하게 보완한다. 마리니와 엠마뉴엘은 둘 다 임금이 노동력 가치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평등 교환의 원인으로 본다. 마리니는 또한 엠마뉴엘이 저서 <이윤과 위기>(Profit and Crisis)에서 했던 것처럼 역동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적절한 소비력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임금 수준 차이는 불평등 교환이라는 형태의 가치 이전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소비력의 차이는 또한 두 가지 유형의 서로 연결된 자본주의적 축적 형태를 창출한다. 이러한 차이는 20세기까지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양극화시켰다. 발전과 저개발은 동일한 과정의 양면이다. 자본주의가 취하는 다양한 형태의 통일성을 고려함으로써 제3세계의 종속 자본주의와 유럽 북서부 및 북미 일부 지역의 복지 자본주의를 동일한 시스템의 일부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리니에 따르면, 종속국의 자본주의적 착취는 절대 잉여 가치(강도가 높은 긴 노동 시간, 피땀과 눈물)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20세기 마지막 분기에 남반구의 신자유주의적 산업화에 의해 창출된 국제적인 노동 분업의 변화와 함께 상대적 잉여 가치(신기술 및 노동 조직)가 착취 방법에 추가되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제국주의 중심지로의 수출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절대적 잉여 가치는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윤을 현실화하는데 필요한 소비력이 북반구에 위치했기 때문에 자본축적을 확보하기 위한 국내시장의 발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낮은 임금은 산업 생산을 남반구로 아웃소싱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2007년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은 자본 축적의 순환을 세계 시장 중심에서 국내 순환 의존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임금 수준을 3배로 올리고 수백만 명을 빈곤에서 구해낸 대규모 내부 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은 불평등한 교환을 줄이고 150년 이상 자본주의를 지배해 온 양극화 경향을 깨뜨렸다.

주변부의 과잉 착취와 중심부의 임금 수준 상승은 불평등 교환, 즉 가치 이전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서 주변부와 중심부에서 서로 연결된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지역 자본 축적을 담당한다. 주변부에서는 자본 축적이 주로 중심부로의 수출에 기반을 두었다. 중심부에서는 자본축적은 국가·지역적 소비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주변부에서는 낮은 임금으로 인해 더 높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절대적 잉여 가치(더 길고 더 강렬한 노동)의 사용이 장려되었다. 중심부에서 자본은 주로 이윤을 늘리기 위해 상대적 잉여를 사용했다. 잉여가치 형태의 이러한 차이는 중심부의 생산력의 더 빠른 발전을 이끌었다. 임금의 차이와 이에 따른 소비력의 차이는 또 다른 유사한 결과를 가져왔다. 중심부의 더 높은 소비력(주변부로부터의 가치 이전으로 가능해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고유한 과잉생산/과소소비 문제를 해결했고, 그에 따라 중심부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주변부의 낮은 소비력은 자본주의의 국가적 발전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다.

Notes
  • 1. ↩Mao Tse-tung, “Where Do Correct Ideas Come From?” in Mao: Four Essays on Philosophy (Peking: Foreign Languages Press, 1963), 134.
  • 2. ↩ I. Lenin, Imperialism as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in Lenin: Selected Works, vol. 1(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3).
  • 3. ↩Paul Sweezy and Leo Huberman, eds., Paul Alexander Baran (1910–1964): A Collective Portrait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5), 99.
  • 4. ↩Sweezy and Huberman, eds., Paul Alexander Baran (1910–1964), 107–8.
  • 5. ↩In the Introduction to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Marx wrote: “I examine the system of bourgeois economy in the following order: capital, landed property, wage-labor; the State, foreign trade, world market.” Karl Marx, Introduction to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7).
  • 6. ↩Arghiri Emmanuel, Unequal Exchange: A Study of the Imperialism of Trade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2); Christopher Chase-Dunn, Global Formation: Structures of the Global Economy (Cambridge: Basil Blackwell, 1989), 59.
  • 7. ↩Arghiri Emmanuel, “Unequal Exchange Revisited,” Institute of Development Studies, University of Sussex, Discussion Paper No. 77, August 1975, 56.
  • 8. ↩Jorge M., “Dialectics of Dependency by Ruy Mauro Marini,” Cosmonaut, December 4, 2021. Another translation was published as a book by Monthly Review Press: Ruy Mauro Marini, The Dialectics of Dependency, ed. Amanda Latimer and Jaime Osorio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22).
  • 9. ↩See, for example, Andre Gunder Frank, Dependent Accumulation and Underdevelopment (London: MacMillan, 1978).
  • 10. ↩Samir Amin, “The End of a Debate,” in Imperialism and Unequal Development: Essays by Samir Ami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7).
  • 11. ↩Marini, The Dialectics of Dependency, 117.
  • 12. ↩Karl Marx, chap. 16, note 32, in Capital, vol. 2; (London: Penguin Books, 1978), 391.
  • 13. ↩Arghiri Emmanuel, Profit and Crisis (London: Heinemann, 1984), 217–18.
  • 14. ↩Marini, The Dialectics of Dependency, 138.
  • 15. ↩Karl Marx, ch. 4, “Position of the Communists in Relation to the Various Existing Opposition Parties,” in The Communist Manifesto, in Marx/Engels Selected Works, vol. 1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9), 98.
  • 16. ↩James Vernon, chap. 1–3, in Hunger: A Modern History (Cambridge: Belknap Press, 2007).
  • 17. ↩Frederick Engels,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Panther Books, 1969).
  • 18. ↩Eric J. Hobsbawm, “The British Standard of Living 1790–1850,” Economic History Review 10, no. 1: 76–78.
  • 19. ↩Karl Marx, Economic Manuscripts, 1861–63: Theories of Surplus Value, in Karl Marx & Frederick Engels: Collected Works, vol. 32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5), 101.
  • 20. ↩Karl Marx, ch. 4, “Position of the Communists in Relation to the Various Existing Opposition Parties,” 12–13.
  • 21.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139.
  • 22.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139.
  • 23.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139–40.
  • 24.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 25.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156.
  • 26.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157.
  • 27.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131.
  • 28. ↩ Marini, The Dialects of Dependency, 132.

“종속이론의 역사”의 2개의 댓글

  1.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23/11/04/50-years-of-dependency-theory/

    저 글을 연구소 홈피에 게시한 11월1일이후인 11월4일 마이클 로버츠가 “종속이론 50주년”이란 글을 그의 유명한 블로그에 올렸다(위 URL).
    신기하게도 약속이나 한듯이. 이 글에서도 마리니가 등장한다. 마이클 로버츠는 그에 대한 동의와 비판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글에는 여러 흥미롭고 진지한 댓글들이 응수하고 있다. 논쟁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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