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이 증명하는 현실

민노연 창립식_087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이 증명하는 현실

2024년 9월 26일  / 현장쟁점 민노의 창 Window from the Field
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

2016년 세계적인 조선업 위기 때, 대우조선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이 드러나고 분식회계까지 터져 나오며 경영권까지 채권단인 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을 살리기위해 경영진에게 강력한 자구책(구조조정)을 요구하고 그 자구책에 따라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대상은 다름 아닌 하청노동자들이었다.

조선소 구조조정 대상은 하청노동자

당시 2016년 한 해에만 대우조선내, 하청업체 35곳이 문을 닫았고 조선업 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대우조선을 떠난 하청노동자는 자그만치 2만명이 넘는다. 왜 정부와 산업은행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하청노동자를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규직보다 하청노동자를 구조조정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대우조선 주변은 하청노동자들이 사는 빌라들이 많다. 구조조정 당시 빌라 주변에는 하청노동자가 입던 작업복과 신다 버린 안전화들이 곳곳에 수북히 쌓여 있었고 매일같이 빌라촌을 떠나는 하청노동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불 꺼진 원룸촌으로 인해 마치 죽음의 도시처럼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제시는 전국 자살율 1위, 인구대비 실업률 1위의 도시가 되었다.

정부와 자본은 언제나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일을 요구하고 가장 많은 양보를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와 잘못을 덮고, 남겨진 노동자들에겐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것이 자본의 본성이고 자본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피바람 불던 2017년 2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조선하청지회)는 설립되었다.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작은 희망과 비빌 언덕이라도 되어 주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한다고 목숨 걸어야 하는 시절은 아니었지만, 노동조합 한다고 하면 가족들이 먼저 앞장서서 말리던 때였다. 저항하기로 마음먹은 몇몇은 죽고 살기로 싸웠고,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자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 그들을 만났고, 그렇게 우리는 현장의 희망이 되기 위해 버티고 싸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2019년 5월, 산업은행이 2018년 정규직노동조합과 합의해 2019년 5월 하청노동자에게 지급하기로 한 성과금을 법률적 이유를 들며, 정규직노동자에게만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내자. 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년 동안 쌓였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조선하청지회가 주최한 총궐기에 200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모였다. 원청 대우조선 사무실을 찾아가 지급하기로 약속한 성과금을 요구했고 결국 대우조선은 다음 날 지급하겠다 약속했다. 결국 법률적 문제가 아님이 드러났고 힘없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성과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저열한 자본의 속내였음을 노동자들은 알게 되었다.

이후 그 분노들은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며 쌓여 갔고 조선업이 부흥할 것이라는 언론보도들이 나오자. 빼앗겼던 권리들을 찾아야 한다는 현장의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조선하청지회의 입지가 올라가고 구조조정의 트라우마와 코로나19 펜데믹을 넘어서자, 빼앗긴 임금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져 갔다.

2022년 대우조선 파업 이후 : 자본의 문패 바꾸기

2021년 겨울, 조선하청지회의 현장노동자들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30% 정도의 임금 인상 요구가 다수였고, 그 요구는 나름 이유와 근거가 있는 요구임이 확인되었다. 2022년 새해가 되자 임금 30% 인상 쟁취를 위해 현장 선전전과 매달 1회 총궐기를 진행하고 거제 시민들과 함께하는 선전전도 진행했다.

2022년 4월, 8일간의 1차 파업후, 임금인상 30% 인상과 노조 인정(원청 대상)을 요구하는 51일 간의 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마지막까지 200여명의 조합원이 끝까지 싸웠지만 정부의 개입(공권력 투입 협박)과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현장 분위기로 인해 여름 휴가를 앞두고 파업은 종료되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는 되었지만, 성과없이 종료된 파업으로 인해 실망한 조합원들이 일부 탈퇴하고, 정부는 책임회피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을 재벌기업인 한화에 팔아넘겨 버렸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오션은 공적자금 11조 8000억이 투입된 대우조선을 고작 2조 3000억에 매입하였고, 이 인수 덕분에 모기업인 한화는 현재 재계 순위 6위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 51일 파업 이후, 하청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지고 희망적으로 변했는지 봐야 한다. 2022년 한화가 대우조선 인수를 발표한 후에 조선하청지회는 노동자들이 한화오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장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60% 가까운 노동자들이 한화오션이 경영하면 산업은행(채권단)이 경영할 때보다 더 나아질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당시 재벌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이 대우조선을 인수한 지 1년이 지난 올해 다시 현장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번에는 한화오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90%가 넘었다. 2022년 파업이후 정부는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상생협의체를 만들어 하청업체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한화오션은 5년 내 하청노동자 임금을 정규직 노동자의 80%까지 올리겠다고 공헌했었다. 그러나 인수가 완료되고 난 뒤 그 약속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장 공정은 뒤죽박죽이 되었고, 생산 안정을 위해 고정 인력을 늘리겠다고 하고선 하청업체 단기계약 노동자 물량팀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만 늘리고 있다. 그리고, 돈에 눈먼 귀신(한화자본) 때문에 하청노동자는 죽어 나가고 있다.

9월9일 한화오션 비정규노동자 산재사망 직전 원청 관리자와 하청업체간 문자대화 내용9월9일 한화오션 비정규노동자 산재사망 직전 원청 관리자와 하청업체간 문자대화 내용

한화오션이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한 올해 한화오션에서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가 무려 6명이다. 새해 시작하자마자 1월 12일 조립 공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로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다. 노동조합은 원인을 알 수 없기에 그 위험성이 더욱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가스라인 점검과 노동자 개인 장비의 교체를 요구하고 노동부의 전면 작업 중지를 요청했지만, 언제나처럼 회사도 노동부도 그 요구를 거절했다. 보름도 지나지 않아 허가도 받지 않은 무허가 잠수사를 투입해 사망케하고 올해 폭염속에서 작업을 강행하면서 온열질환으로 의심되는 하청노동자 사망이 3명에 이르렀다, 그중 한 노동자는 작업하고 있던 현장에서 죽은 채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발견되었다.

급기야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9월 9일에는 퇴근하는 노동자를 붙잡아 안전 난간도 없는 32m 높이에서 작업시키다 추락사하게 만들었다. 하청업체 관리자가 작업 현장의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계속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했지만, 원청 한화오션은 업체 관리자의 말을 외면하고 작업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쌍방 문자 대화를 통해 드러났다. 작업공간은 이동 통로가 성인남자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60cm정도)였고 야간작업인데도 현장에는 고작 작업등 하나만 달랑 걸려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채 흔들거리는 그물망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돈에 눈먼 귀신’과 하청노동자 산재 사망

2024년 한화오션이 들어오고 난 뒤 1년도 되지 않아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현장은 그야말로 죽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이 되었다. 그동안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한화오션은 9월 9일 하청노동자 죽음에는 언론을 통해 발 빠르게 사과 입장을 발표하고 9월 18일엔 선진 안전 문화 구축이라는 제목으로 2026년까지 무려 1조 9760억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들의 입장과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화오션이 이렇게 지난 9월9일 추락사에 대해서만 유독 발빠르게 대처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이번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나가지 못할 만큼 직접적인 관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렇게도 안전 난간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해도 나 몰라라 하고, 혹서기만이라도 오후 30분만 더 쉬게 해달라고 요청해도 묵묵부답이던 한화오션이 무려 2조 가까운 돈을 투자해 선진 안전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바로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해 사회적 면죄부를 얻기 위한 방편이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1조 9760억을 투자한다는 한화에 면죄부를 줄지 모르겠으나, 우리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한화의 거짓된 행보를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화오션은 2024년 올해 대우조선 정규직 안전요원(HSE요원)을 줄이고 안전업무를 외주화했다. 한화오션은 아마 외주화하면서 들인 자금도 안전을 위한 투자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올리기, 조삼모사와 같은 짓거리다. 그리고 한화가 산재예방 대책으로 발표한 내용 중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조선소 곳곳의 불안전한 상황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밀폐공간이나 안전 취약지역에 안전 모니터링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있다. 말인즉슨 현장을 실시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이 생각나게 하는 얘기다.

2024년 9월11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한화오션 공장 내에서 연 단체교섭 승리를 위한 하청노동자 총궐기대회. 이 집회에서 조합원들은 원청의 강요로 야간노동하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붉은 머리띠 대신 흰색 머리띠를 두르고 진행했다.

2024년 9월11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한화오션 공장 내에서 연 단체교섭 승리를 위한 하청노동자 총궐기대회. 이 집회에서 조합원들은 원청의  강요로 야간노동하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붉은 머리띠 대신 흰색 머리띠를 두르고 진행했다.

조선하청지회는 대우조선 당시부터 노동안전 사고와 관련한 현장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해 RCA(사고원인 분석 route cause analysis) 회의에 조선하청지회 참여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우조선 때도 현재 한화오션도 조선하청지회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참여를 불허했다. 조선소에서 산재사고로 죽음에 이른 노동자 태반이 사내하청노동자인데 그 노동자들의 대표조직인 조선하청지회가 ‘당사자가 아님’이라면 도대체 누가 당사자일 수 있나? 그리고, 과연 노동안전을 위해 2조 가까운 돈을 쓰겠다는 한화오션이 정말 조선하청지회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참여를 불허했을까? 한화오션이 조선하청지회의 회의 참여를 거부하는 이유는 아마도 산업재해 현장 조사를 통해서 드러날 자본의 치부와 역겨운 착취의 냄새를 드러내기 싫어서 일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조선하청지회가 현장 선전을 할 때 노동자들에게 늘 하는 마지막 인사가 있다.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투쟁!’
이 인사말이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삶이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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