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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아프리카에서는 왜 군사 쿠데타가 빈번할까?

2023년 10월 4일 / 글로벌 리포트 Global Report
<전망과실천> 편집부

사헬지역, 군사쿠데타, 민주주의, 반제국주의, 우라늄 수출

프랑스의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월 27일 외교갈등을 빚어왔던 아프리카 니제르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니제르 군사정부가 요구한 니제르 주재 프랑스 대사도 본국으로 소환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프랑스의 태도 변화는 아프리카 사헬지역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크게 약화되었음을 시사한다.

지난 7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니제르 군부는 자국에 주둔 중인 약 1500명 규모의 프랑스군에 대한 철수를 요구했으나, 프랑스는 니제르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철군을 거부해왔다. 아프리카 서부해안 국가들로 구성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TWAS)도 니제르 민간정부의 복원을 요구하면서 군사적 개입을 경고한 바 있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서는 지난 2021년 이후 챠드, 말리, 부르키나파소에 이어 니제르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최근에는 가봉에서도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두가지 흥미로운 해석들이 존재한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북쪽 사헬 지역 지도

하나는 지난 80년대 후반 이후의 글로벌 ‘민주화’ 물결이 퇴조하고 ‘군부 독재’가 다시 득세한다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global south’, 특히 아프리카에서 ‘반제국주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으며, 이른바 서구의 지원을 받는 ‘민선 정부’는 이같은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자세히 관찰해 본다면 이 두가지 해석 모두 단편적이거나, 혹은 피상적이다.

사하라사막 북쪽 사헬지역에서 쿠데타의 첫 포문을 연 챠드의 예를 본다면, 이 쿠데타는 프랑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이루어졌다. 지난 21년 봄, 30년 넘게 챠드를 지배하고 있던 군부 출신의 데비 대통령이 반군과의 전쟁 중에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군 사령관인 그의 아들이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를 해산한 뒤 군사평의회를 설치해 정권을 장악했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거의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실은 그것보다도 훨씬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챠드 정부에 반발해 봉기한 반군은 리비아의 군벌이자 러시아 용병부대인 와그너그룹과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는 하프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었다. 지난 4월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수단 내전도 와그너그룹의 영역 확대를 둘러싼 친서방 군부 세력과 친러시아 군부 세력 사이의 갈등이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  

둘째로, 이 전쟁은 단지 내전이 아니라, 프랑스와 니제르가 참가한 일종의 준국제전 혹은 대리전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전투기를 동원해 반군 기지를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반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또 지난 7월 쿠데타로 실각한 니제르의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은 챠드에 군대를 파병해 반군 진압을 도왔다.

챠드의 데비 대통령이 사망한 뒤 권력을 장악한 그의 아들에 대해서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따라서 프랑스로서는 이미 자신들이 군부 쿠데타 정권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니제르 군사 정권이 민선 정부를 무너뜨려서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니제르 쿠데타 역시 이같은 맥락을 고려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쿠데타 직후 니제르 주민들이 러시아 깃발을 흔들고 친러시아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쿠데타의 성격을 친러적, 혹은 반제국주의적 투쟁으로 보는 시각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쿠데타 주도 세력들의 상당수는 미군 아프리카군관구(AFRICOM)에서 훈련받은 친미적 성향의 군 장교들이라는 점이다(이 때문에 미 상원에서는 왜 미군이 훈련시킨 아프리카 군부 인사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군사평의회 의장인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은 ‘권력 외부’의 인사가 아니라, 바줌 대통령의 경호부대 사령관 출신이며, UN 평화유지군의 일원이었고, 심지어는 나이지리아, 챠드, 니제르, 카메룬군등이 참여하여 나이지리아 보코하람의 반군을 진압하기 위한 다국적군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이야말로(챠드는 제외) ETWAS를 통해 니제르에 군사 개입을 하겠다고 경고한 바로 그 국가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니제르 군사 정권은 프랑스군에 대한 철수는 요구했지만, 니제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약 1500명)에 대해서는 한번도 철수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달 초 미국의 빅토리아 눌란드 국무차관 직무대행이 니제르를 방문했을 때,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정확하게 외부에 유출된 적은 없지만, 프랑스 외무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의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미국은 자국의 이익 보장을 조건으로 니제르 군사 정권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한편으로 니제르 쿠데타는 프랑스에 대해서 ‘반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다른한편으로 ‘유사 제국’인 프랑스의 이권은 손상되는 대신 ‘제국’인 미국의 영향력이나 이해관계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니제르의 군부 쿠데타의 이른바 ‘명분’에 관한 것이다. 치아니는 “점진적이고 불가피한 국가의 쇠락”을 막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말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국가의 쇠락’을 야기하는지는 밝힌 바 없다. 쿠데타의 명분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쿠데타 직후 프랑스군에 대한 철수를 요구하면서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했고, 이어 프랑스와의 우라늄 공급 계약을 폐기하면서 어느 정도 명분을 쌓았을 뿐이다.

니제르가 프랑스와 맺은 우라늄 공급 계약은 불공평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니제르는 우라늄을 kg당 0.8달러에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반면 프랑스는 캐나다로부터는 kg당 200달러에 수입하고 있었다. 따라서 거의 공짜로 가져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고, 실각한 이른바 ‘민주주의자’ 바줌 전 대통령은 이같은 프랑스와의 관계를 옹호하는 세력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니제르 군사정권이 프랑스와의 우라늄 계약을 폐기하고 프랑스 주군군 철수를 요구한 것은 실제 의도가 어떻든 간에,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프랑스가 니제르 주둔 프랑스 군 철수를 거부한 것은 단지 우라늄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우라늄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다. 니제르는 프랑스의 제 4위 우라늄 수입국이며, 장기적으로도 니제르의 우라늄 매장량은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하는 프랑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게다가 프랑스의 제 1위, 2위 우라늄 수입국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이들 두 국가의 대프랑스 우라늄 수출이 전체 프랑스 수입의 절반을 차지한다), 둘다 러시아의 영향권 하에 있는 국가들이다. 게다가 프랑스 원자로 연료봉 재처리는 전적으로 러시아가 독점하고 있는 사업이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프랑스로서는 에너지 안보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현재 프랑스의 우라늄 재고는 2년치 이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당장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취약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40% 가량은 독일로 수출된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거부하고 원유 수입도 금지시키면서 당장 부족한 에너지를 미국과 중동으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과 프랑스로부터의 전기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 프랑스의 전력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 곳은 프랑스보다도 독일이 될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수입 금지 조처로 산업공동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독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라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천연가스다.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데, 첫째, 슬쩍 형식만 바꿔서 실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터키를 통한 파이프라인(이는 러시아와 터키가 합의한 사안이다),  둘째, 미국과 중동(특히 카타르)로부터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그러나 이는 파이프라인보다는 경제성이 훨씬 떨어진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은 셋째,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모로코-알제리 접경의 영토분쟁 지역으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이다.

마지막 대비책의 경우,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천연가스 매장량도 풍부하기 때문에 나이지리아에서 출발하여 알제리(혹은 모로코)를 통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로 통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 파이프라인이 지나야만 하는 길목에 니제르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니제르가 이 구상을 비틀어버린다면, 유럽 전체가 곤란한 처지가 된다.

물론 니제르가 그게 이데올로기 때문이든, 아니면 뭔가 다른 외부적 요인의 개입이든 간에, 이같은 구상을 단지 자신들의 이해에만 종속시킨다면, ‘시리아의 재판’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하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시리아 내전의 근본 원인은 미국이 말하듯 ‘민주화’가 아니라, 또는 심지어는 이슬람 극단주의 때문이 아니라, 카타르에서 시작하여 중동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지중해 종착점이었던 시리아의 알아샤드 정권이 이 계획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카타르, UAE가 시리아 반군(심지어는 IS를 포함하여)들을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카타르는 세계 3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니제르는 또 다른 한편으로, 모로코와 알제리 사이의 영토 분쟁 지역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 최근 대규모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스페인은 지난 1980년대 이래의 외교정책을 수정하여 이 지역의 영유권이 모로코에게 있다고 인정했고(기존에는 알제리의 영유권을 인정했었다), 이로 인해 알제리가 스페인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만일 모로코-알제리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주변 국가인 말리와 니제르가 중요한 배후 기지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말리에는 이미 친러계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만일 니제르가 유럽의 편을 들어 모로코에 선다면, 그 때는 니제르 군부 내의 민족주의 파벌이나 친러 파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2018년에 바줌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에 이에 반대한 군사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며, 역설적이게도 치아니가 이를 진압한 인물이기도 했다. 물론 동시에 그는 이 쿠데타 시도에 동조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고로 니제르가 현재의 국제 정세 하에서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운다면, 내부에서의 갈등이 폭발할 위험이 매우 높은 조건에 놓여 있었다. 이같은 조건 하에서 프랑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바줌 민간 정권은 아마도 “점진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국가의 쇠락을 가져오는” 요인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니제르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는 민간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쪽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여 내부 갈등을 폭발시킬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는 조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반제국주의적 군사 쿠데타로만 보는 것은 일면적이고, 나아가 역설적이며, 심지어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여하튼 이 쿠데타 이후 구성한 정부가 일종의 ‘거국내각’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쿠데타이후 지역들을 분할한 장군들이 친미파까지 망라하고 있다는 점은 그를 반증하고있다).

지난 8월 말 발생한 가봉의 쿠데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가봉을 50여년 이상 통치해온 봉고 가문(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집권했다. ‘민주적’으로 선거를 통해서)을 무너뜨린 인물은 같은 봉고 가문인 브라이스 올리구이 은구에마 사령관이었다(봉고 대통령의 사촌). 대통령 선거 개표일 당일 밤에 발생한(개표 결과는 봉고 대통령의 승리가 확실했다) 이 쿠데타는 또 다른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한 ‘예방 쿠데타’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내전을 피하기 위한 군부의 단결이었던 것이다(가봉은 지난 수년 동안 세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이를 진압한 것도 역시 은구에마였다).

다만 가봉은 지정학적인 중요성(인접 콩고공화국과 민주콩고공화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들 두 국가는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외에는 특별한 자원적 중요성은 없었고, 따라서 외부에 의존한 이해관계의 갈등이라기 보다는 봉고 가문의 장기 통치와 부패 문제가 훨씬 심각한 사안이었다. 동시에 아프리카에서의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저지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군부 내에서도 별 다른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니제르의 쿠데타와 같이 이른바 ‘반제국주의’, 혹은 ‘민족주의’와 같은 구호는 나오지 않았다.

사헬(Sahel)지역 국가들의 군부가 이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시리아나 리비아 사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민주화를 명분으로 내전이 발생했으며, 이를 빌미로 외세가 개입했고 국가와 국민은 황폐화되었다. 그들은 내부의 갈등이 외부의 개입을 초래하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분명히 학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른바 ‘민주주의’가 그같은 위험을 제거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위험을 야기하는 요인이라고 판단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그것이 ‘자유 민주주의’냐 또는 ‘인민 민주주의’냐의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제도와는 독립적으로 그같은 제도들이 실제로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당면한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비판적 서구 언론에서는 학문적 용어는 아니지만, 이같은 현상을 빗대어 ‘매판 민주주의'(comprador democracy)라고 냉소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같은 ‘매판 민주주의’는 실은 매우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서구에서 ‘이식된 제도’이기도 하다. 남미와 아프리카는 역사적으로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이같은 현상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지역이었으며, 최근의 사례로는 파키스탄이나 한국도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군사 쿠데타라고 할지라도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의 경우는 위의 사례들과 매우 다르다. 말리는 확실히 친러계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으며, 부르키나파소는 처음에는 일종의 거국내각적 성격으로 시작했지만, 쿠데타 8개월만에 소장파 군인들이 2차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2차 쿠데타의 핵심 원인은 1차 쿠데타 이후 집권한 군 간부들이 프랑스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위가 주도한 2차 쿠데타 직후, 부르키나파소 군사 정부는 프랑스 주둔군에게 즉각 떠날 것을 요구했으나, 프랑스는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발뺌하다가, 나중에는 철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으나 결국 짐을 쌌다.

부르키나파소의 2차 쿠데타를 주도한 트라오레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나이가 35세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의 MZ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카다피나 카스트로, 또는 낫세르를 연상시킨다. 최근에 금광을 국유화하면서  했던 연설은 아프리카 청년들을 열광시켰는데, 굉장히 선동적이다. 그러나 견해 자체는 소박한 민족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는 친러시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의외로 러시아에서는 그다지 명확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러시아는 트라오레의 노선 혹은 그의 집권 자체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 확신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트라오레 집권 이후 두차례의 역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며(가장 최근은 바로 9월 28일이다), 앞으로도 쿠데타 시도는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부르키나파소 쿠데타 지도자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위 / 출처: 부르키나파소 국영TV)

여기서 정리해보자면, 프랑스가 지난 1960년대 아프리카 구식민지들을 독립시켜 주면서 계속 지배권을 유지한 수단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프랑스군대의 현지 주둔, 둘째는 친프랑스계 정권의 창출 및 이를 위한 그리고 이를 통한 경제적 수탈의 제도화, 그리고 셋째는 아마도 가장 일반 대중들에게는 덜 알려진 특수한 기술적 수단인 ‘제도화된 금융적 지배’이다.

아프리카의 구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은 CFA Franc이라는 공용 화폐를 사용한다. 유로화처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공용 화폐이며,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장한다. 대신에 이 화폐를 쓰는 국가들은 자신의 외화보유고의 절반은 의무적으로 프랑스 국채를 매입하는데 써야 한다. 사실상 통화 주권이 없다. 이들 아프리카 국가들의 금융 통화정책은 프랑스가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구식민지 국가들이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하거나 혹은 공용화폐는 유지하더라도 프랑스와의 구속적 계약은 폐기한다면, 프랑스의 금융지배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 국채 가격의 하락(국채 수익률 상승)으로 나타난다. 마크롱이 엄청난 정치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지난 봄에 연금제도를 개혁한 것은 사실은, 기존에 누려왔던 프랑스 국채의 특권적 지위가 사라질 때를 대비한 사전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연금제도 개혁으로 노동시장 진입 인구를 늘리는 효과가 발생하며 이는 구조적으로 임금 하락에 기여한다).

아프리카의 ‘반민주적’ 쿠데타들은 그 속사정이 어쨌든 간에, 이같은 프랑스의 특권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며 지난 19세기 말(1885년 베를린 컨퍼런스) 유럽인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결정한 아프리카의 국경선(식민지 분할)을 벗어나는 두번째 시도가 될 것이다(첫번째는 지난 1950년대 후반 존재했다). 물론 그것은 민주주의는 아니며, 부분적으로는 군부 내부에서 각 파벌의 이해관계 분배(나눠먹기, 야합)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외적으로 ‘반제 민족주의’의 색채를 띌 수밖에 없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대중 동원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발적인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기도 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아직은 미지수다.

조셉 보렐 EU 외교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현재의 국제 정세를 ‘가든’과 ‘정글’에 비유했다. 유럽은 ‘가든’이고 그 밖은 ‘정글’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 이래 유구한 ‘문명’과 ‘야만’의 구분을 연상시키는 발언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진정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은,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사건들이 보여주듯이, 유럽의 ‘가든’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유럽은 자신들의 외부를 끊임없이 정글화했으며, 만일 정글이 스스로의 힘으로 가든이 된다면 유럽이야말로 정글이 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프랑스가 가게 되는 길이며(곧이어 독일이 뒤따를 것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남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스스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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