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자본가들과 권력자들 : 미국 트럼프 정권의 성격과 새로운 자본가집단의 출현

자본가들과 권력자들

: 미국 트럼프 정권의 성격과 새로운 자본가집단의 출현

2024년 12월 22일 / 글로벌 리포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세계화, G2, 미국 예외주의, 윤석열 탄핵, 한미일동맹, 미중관계, 글로벌사우스, 금융자본, 비트코인, 신세계질서 

1. 미중관계: 트럼프의 G2 선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지난 2021년 3월 알래스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사이에 회담이 열렸다. 글로벌 열강 사이에 서열을 정하고 영역을 확정하는 자리였다. 이 회담은 순탄치 못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은 강자의 위치에서 다른 나라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못된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블링컨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지난 3년 9개월 사이에 벌어진 세계의 수많은 사건들은 그 날 회담의 후폭풍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온세계에 확인시켜주려 했으며, 이에 맞서 중국을 위시한 다른 나라들은 자신들의 독자성을 천명하며 미국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글로벌 동맹정치를 추구했다. 이처럼 양국이 대립적 대외노선을 추구하자 세계 도처에서 분쟁이 폭발했다. 동시에 이 대립은 각 국의 국내정치에도 변동을 초래했다.

마침내 이 싸움은 지난 12월 17일 끝난 듯하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예정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 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중국과 함께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G2(글로벌 열강으로서의 미국과 중국 공존 체제)의 수립을 알리는 선언임과 동시에 지난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노선이었던 “American Exceptionalism”(미국 예외주의, 정확히는 미국 일방주의)의 종식을 고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양자간의 대립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신사협정 혹은 싸움의 룰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트럼프의 이같은 발언은 동시에 그동안 중국이 주장해왔던 “이 세계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있을만큼 충분히 넓다”는 제안을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트럼프의 선언은 지난 4년간의 바이든 정권의 대외노선(힘의 과시)이 실패했다는 미국의 자인이자  새로운 세계질서를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선거와 자본가계급 : 새로운 자본가 집단의 출현

트럼프의 발언은 선거 과정 동안 의문을 자아냈던 미국의 일부 자본가들의 태도, 즉 중국과의 교역에 이해관계를 가진 자본가들이 왜 가장 반중국적인 레토릭을 구사하는 트럼프를 지지했는가(대표적으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에 대한 해답을 던져준다. 표면적으로는 대중들의 불만을 중국을 향하도록 유도하는 포풀리스트 레토릭을 구사했지만, 실제 트럼프로 대표되는 정치집단의 정책 방향은 중국과의 공존을 처음부터 전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중국에 공장을 둔 머스크가 트럼프 유세장에서 팔짝팔짝 뛴 이유이며, 중국에서 가장 많은 소비재를 수입하여 판매하는 아마존의 베조스가 자신이 소유한 <Washington Post>의 논설진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칼럼을 게재하려 했을 때, 노골적인 친민주당 편집 경향에 대한 점잖은 온당한 비판인양 제스춰를 취하면서, 이를 저지한 속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역사상 가장 많은 돈(선거 자금)을 쏟아부은 선거로 기록되기도 했다. 민주당의 카말라 해리스 후보 진영은 무려 15억 달러(약 2조원)이 넘는 선거 자금을 썼다. 자본가계급의 ‘화신’ 그 자체로 자주 그려지는 트럼프는 오히려 해리스에 못미치는 약 5억 달러(7천억원)를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구 규모를 감안해 비교해 봤을 때, 해리스 후보는 한국 선거로 환산하면 약 3천억원을 쓴 셈이다(지난 대선 한국의 공식 선거비용은 약 340억원).

민주당의 대선 ‘전비’를 댄 대표적인 자본가들을 보자면, 민주당을 지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약 1억 2천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냈으며, 트럼프를 지지한 머스크는 약 4천만 달러(간접 선거 비용까지 합치면 약 7천만 달러)를 쓴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돈다발을 안길 듯이 요란법석을 떨며 트럼프를 지지한 머스크보다 민주당을 지지한 빌 게이츠가 조용하게 민주당의 더 큰 돈줄이 되었던 것이다.

선거자금을 얼마나 끌어모으는가가 곧 선거 승리의 지표가 되는 미국 선거정치에서 자본가 큰 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지난 90년대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이른바 ‘superpac’에 대한 선거자금 기부가 합법화되면서부터였다. superpac은 개인 후보자가 아닌, 사용처를 특정하지 않은 독립적 차원의 선거자금을 무제한적으로 기부받을 수 있는 선거자금 모금 채널을 말한다(주로 중앙당을 활용한다).

따라서 부자들은 superpac이라는 간접적 채널을 통해 자신이 지원하는 후보에게 사실상 무제한적 자금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지난해 파산해서 큰 파문을 일으킨 FTX(크립토커런시 교환소)의 샘 뱅크만-프라이드는 2020년 대선과 2022년 의회선거에서 민주당에 무려 7천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superpac을 통해 지원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공공연한 합법적인 정치자금인 셈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이 미국식 선거민주주의이고 정당정치이다. 자본가계급과 선거의 추악한 관계, 그러나 합법적인 민낯이기도 하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가 무려 15억 달러나 되는 기록적인 선거 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이나 당원들의 기부 때문이 아니었다. 아직 공식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상당 부분은 부자들의 거액 기부에 의한 것이었다. 트럼프도 머스크를 위시한 실리콘밸리의 IT 투자자 피터 티엘 등 대자본가들의 선거 자금 기부로 선거자금 금고를 채웠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와 트럼프 두 후보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선거 자금 규모는 이번 선거야말로 미국 자본가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각기의 후보를 지지한 ‘역사적인 자본가들 사이의 투쟁’이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한국 정치도 그러하지만, 대부분의 자본가들은 선거정치를 통해서 ‘보험’을 든다, 특히나 미국처럼 양당정치 구조라면 두 대선 후보 모두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그 액수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며, 그 차이는 자본가 개인의 이해관계 및 정치적 성향을 반영한다. 무려 1억 달러 이상을 민주당에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의 행보는 단지 게이츠 개인의  ‘정치적 소신’ 때문 아니다. 

지금 미국 공화당이 추진하고 있는 ‘독점 해체’에서 대표적인 타겟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알파벳)이다. 트럼프 정권이 본격적으로 반독점법을 적용하면 이 두 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게이츠는 다른 한편으로 농생명 및 의약품 스타트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백신 분야에 대거 투자했으며, 이는 트럼프의 왼팔격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추진하는 반백신 운동으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의 또다른 주요 자금 지원자 중의 한 사람인 메타(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의 주커버그는 검열 체제와 관련하여 트럼프 정권의 정책에 배치된다.

이렇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미국 자본가들의 직접적인 산업적 경제적 이해관계는 나눠졌고 이에 따라 자신의 산업적 분파로서 이해관계를 산업정책으로 제시하는 민주당과 공화당 두 편으로 나뉘어 선거자금이라는 통로를 통해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물론 과거에도 이같은 일은 비일비재했다(닉슨은 선거자금 기부가 적다는 이유로 일부 자본가들을 콕 집어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처럼 자본가들이 대규모로 선거자금을 대며  두 패로 갈리거나, 심지어는 아예 자본가들이 선거운동원으로 나서는 경우(머스크)는 매우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국 대선은 자본가들이 정치 일선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선거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자본가들의 등장은 이제까지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해왔던 민주 공화 양당 정치세력에 대한 자본가들의 불신 혹은 불만을 시사한다. 또한 이런 ‘금권정치’ 추구에 대한 대중들의 저항(부자들에 대한 서민들의 반발)이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근저에 깔려 있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이같은 자본가들의 노골적 등장은 이번 미국 대선은, 최소한 ‘계급의식’이라는 관점 하에서는, 노동자 대중의 저항이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했음을 반증한다. 

3. 트럼프 2기 내각과 정책 방향

미국에서는 정권, 즉 대통령이 바뀌면 수만명의 관료 및 권력 엘리트들이 교체된다. 중하위직은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았지만, 트럼프 2기 내각은 대략적인 인선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는 국무장관, 재무장관 그리고 안보보좌관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이들을 인선할 때는 단지 ‘측근’과 ‘충성도’의 관점에서만 고려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근본적으로 미국 사회를 재편하려고 하기 때문에 기존의 미국의 권력 엘리트들의 이념에 대항하여 새로운 인물들을 충원하려고 한다.

트럼프 2기 내각 인선 중에서 가장 이례적인 인물은 가장 중요한 자리인 국무장관에 내정된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연방상원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인선에 대해 미국내에서 가장 조용했다. 즉 별 말이 없었다. 다른 요직 인선에 온갖 논란이 뒤따랐던 것을 고려할 때, 루비오의 내정이야말로 가장 이례적이며 트럼프의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선이다.

마르코 루비오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구태’ 정치인이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일찌감치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로 구성된 의회내 협치 조직인 Gang of Eight(양당의 상하원 지도부로 구성된 밀실 협의체)의 일원이었고, 국제 문제에 대해서 두드러진 입장도 없었다. 말하자면 루비오의 내정은 트럼프의 칼러와는 달리, 미국의 대외정책은 그동안 해왔던 대로 계속한다는 사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입장일 때로만 한정된다. 전례가 있다. 트럼프 1기 내각에서 첫 국무장관이 누구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1기 내각 첫 국무장관은 렉스 틸러슨이라는 엑슨모빌(석유 메이저) CEO 출신 인사였다. 그는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않았으며, 기억도 해주지 않는다(그의 유일한 ‘주목할만한’ 정책은 대러시아 제재에 반대한 것이었다. 참고로 틸러슨의 보좌관이 바이든 정권의 안보보좌관인 존 설리번이었다). 틸러슨은 1년만에 경질되고 그 자리를 CIA 국장 출신의 마이크 폼페오가 이었다. 폼페오는 CIA 국장 당시 “우리는 거짓말하고 빼앗고 속인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인물이었다(그런데도 아직도 CIA의 발표를 믿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여전히 수두룩하다. CIA 국장이 자신들은 거짓말장이라고 고백했는데도 안 믿어준다).

국무장관 내정자 루비오는 트럼프가 대외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마치 이전 정권들과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그리고 이건 트럼프의 스타일이 아니다. 실제 정책은 그 배후에서 안보보좌관 내정자인 마이크 월츠가 지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월츠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외교 안보 전문가’는 아니다. 군 특수부대 출신이며 아프간전에 참전했고 대테러 전문가로 자처하고 있지만, 그를 대국적인 안보 전문가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월츠는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하는 인물이다. ‘힘’이라는 점에서는 바이든 정권과 동일하지만, 동시에 목표가 ‘평화’라는 점에서는 바이든 정권과 다르다. 월츠가 말하는 ‘평화’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평화는 ‘상대하지 않음’으로서 얻어지는 동결 상태(freezing)일 뿐이다. 그는 미 하원에서 가장 강경한 대중국 매파로 꼽히는데(지난 22년 북경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하기도 했다), 스스로 밝히길 그 이유는 ‘중국이 공산주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월츠는 요즘 다시 기세를 얻고 있는 ‘반공주의자’에 속한다.

다만 ‘힘을 통한 평화’를 수행하는 방식은 ‘전쟁’은 아니다. 그는 지난 9월 한국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발언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윤석렬 정권의 친위쿠데타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거나 혹은 최소한 유혈 사태를 야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역설적으로 이같은 향후 예견되는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가 한국의 내부 변동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월츠는 자신이 복무했던 아프간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는 바이든 정권의 아프간 철군을 반대하면서 탈레반에 대한 공중폭격을 주장한 바 있으며 향후 미군이 아프간에 재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다. 그는 미 국방성과 계약을 맺고 있는 아프간 관련 무기회사에 투자했으며 이로 인해 약 5백만 달러에서 최대 2500만 달러에 달하는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월츠의 대외노선은 그 방향이라기보다는 수행방식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프간의 예를 들면서, “100년이 걸리는 사업”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2017년 <National Interest> 인터뷰). 즉 그는 과거와 같이 일부 ‘선도적’인 집단(정치인이든 NGO든)에 의한 급진적 사회 변화(해당 국가들 미국과 동형-colony-화하는 것, 흔히 color revolution)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변화 방식을 추구한다.

트럼프가 대북담당 특사로 내정한 릭 그레넬 전 주독일 미국대사. 독일에서 총독 행세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출처 <ABC>.

4. 미국 정권 교체와 지정학 정치: 한국 계엄-탄핵국면의 배경  

루비오와 월츠 조합을 보면 트럼프 출범 첫 해의 대외정책은 공식적인 측면에서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트럼프가 주장하는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는 어디에서 오는가? 단지 구호에 불과한가? 트럼프의 통치 방식은 이 점에서 이전 정권들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챙기거나 혹은 주변의 비공식 참모 또는 채널을 통해 수행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물러나는 바이든 정권의 ‘힘의 과시’는 지난 4년 여 동안 숱한 인적, 물적 피해를 낳았으며 정상적인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하이브리드’ 현상들을 만들어냈다. 그 마지막 사례는 아마도 바로 여기 한국일 것이다. 12월 3일 윤석렬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계엄령 선포)와 이후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트럼프 대선 당선이라는 변수 속에서 최근 미-중 관계의 변화 기조를 둘러싸고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역내 국가 기득권 엘리트들의 대외노선 갈등 및 그에 따른 국내적 정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만 이해 가능하다.

예컨대 트럼프가 지난 16일 대북담당 특명전권대사로 임명한 릭 그레넬은 단지 북미대화 담당자 역할만 할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레넬은 매우 골치아픈 인물이다. 지난 2018년 주독일 미국 대사로 임명되자마자 독일 내정에 공공연하게 간섭했으며(메르켈 당시 총리의 이민 문호 개방 정책을 대놓고 비난했다), 심지어는 독일대안당(AfD)을 지지하는 발언도 했다. 그래서 독일 내에서 ‘총독’이냐는 반발도 있었고 외교상 기피인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레넬은 그같은 비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트럼프로부터 추가적인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내전 상태에 있던 세르비아와 코소보를 중재하여 2019년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한국의 조태열 외무장관이 그레넬의 대북 특사 임명 직후에 북미간 대화를 예상한 것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과 같은 ‘남한 패싱’이 아니다. 트럼프는 아예 북미 대화에서 남한의 역할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북미간 관계 정상화가 이뤄졌을 때, 남한이 어찌할지는 남한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남한과의 관계 속에서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세계 분할(G2)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렬이 2차 탄핵 투표를 앞두고 발표한 담화에서 난데없이 민주당의 간첩법 개정과 중국인 사례를 언급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윤석렬은 자신이 미국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즉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읍소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친미 호소인이며, 계엄령 선포이후 상황 전개를 보면 미국은 그에게 기회를 준 듯이 보이지만, 그를 옹립한 우익 정당세력들이라도 잔존하는 것 이상의 행운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양당 정치구도에서 우익정당의 해산은 미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보수 양당을 두고 흔드는 꽃놀이패를 버릴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1차 탄핵소추안과 2차 소추안의 차이를 주목해야한다. 1차 투표에서 민주당의 탄핵소추안에 포함되어 있던 ‘외교 정책의 실패’ 사례로서 ‘한미일 동맹 강화’가 들어있던 때에는 국민의힘은 투표에 불참하여 탄핵을 무산시켰지만, 2차 탄핵 투표에서 민주당이 이같은 정책적 측면들을 모두 배제하고 오직 내란죄로만 소추하자 국민의힘 의원들 전원이 투표에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민주당의 1차 탄핵소추안은 단지 내란만이 아니라, 경제 및 안보 정책에 있어서 윤석렬 정권의 실패와 오류 자체를 문제 삼았다). 2차 소추안에서는 민주당은 미국에게 불온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반미적인’ 요인을 제거했고, 국민의힘은 여기에 호응하여 투표에는 참여했다.

상술하면, 지난 12월 7일 표결에 부쳐진 야6당 공동으로 발의된 1차 탄핵소추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소위 가치외교라는 미명 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된 인사를 정부 주요직위에 임명하는 등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의 위기를 촉발시켜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의무를 내팽개쳐 왔다”. 즉 윤석렬 탄핵의 이유로 친일 외교정책 및 반북 반중 반러시아 정책을 든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절대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2차 소추안에서는 이같은 외교 정책에 관한 것은 모조리 빠졌다. 또 12월 11일에는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와 우원식 국회의장의 회담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 1,2차 탄핵표결 기간 중에 언론이 갈팡질팡했던 보도, 즉 AUKUS를 중심으로 한 5개국(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이 내년 가을로 예정된 APEC 회담 보이콧을 운운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윤석열을 제거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반미적, 혹은 반서구동맹적 정권이 남한에 들어서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시민들은 12월 7일의 1차 탄핵 투표 때나, 12월 14일의 2차 투표 때에나 같은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그러나 실은 그 두 표결의 의미는 지정학적으로 전혀 달랐으며 정치 엘리트 집단 내에서 판단이 달라졌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리하면, 한국의 국내정치정세는 지정학적 변동, 그리고 미국의 정권 교체 및 대외정책의 변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니 그것에 종속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정치권력의 주체가 세워지지 않는 한 말이다. 남한으로서는 미-중 간의 지역 분할에 따른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단지 정치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수많은 법적 제도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남한은 북한과 휴전협정 조인조차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헌법상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영토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법적으로는 북한과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남한으로서는 불가능하다. 또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북한은 ‘반국가단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북 관계와 한반도 정책을 변경하려면 개헌을 하거나, 아니면 미국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든간에 남한은 독자적인 대북전략을 갖는다고 대외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전시작전권도 없는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며 미국으로서는 성가신 장애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미중간에 첫 데땅트가 이뤄졌을 때에는 남북한은 상호관계에 있어서는 ‘민족자결 3대 원칙’으로 무장충돌을 중단하는 대신에 각기 내부적으로는 유신과 주체사상으로 내부 정화를 했다. 그것만이 미국과 일본에 의존했던 기득권 세력들(북한의 경우 중국과 구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하던 세력들)이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역사는 되풀이된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히틀러의 1924년 맥주홀 쿠데타에 버금가는 이번 ‘롯데리아 (모의) 쿠데타’는 1979년 12.12에서 1980년 5월로 이어지는 신군부의 쿠데타가 원본이 아니라, 1972년의 10월 유신 계엄이 원본이다(80년은 부본에 불과하다). 당연히 첫 번째는 비극이었고 두 번째는 개그인데, 심지어는 차마 웃기지도 않는다.

어쨌든 이 촌극의 귀결도 정해져 있다. 트럼프 정권의 정책 운용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다음달 중반까지는 정국은 ‘격화’되지만, 그 이후로는 ‘정리’될 것이다. 그러니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너무 맘 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냉정하게,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 이 사태를 보면서 어떻게 이 지정학적- 국내정치적인 정세속에서 한걸음 더 내딛고 다음을 열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할 때다.

5. 트럼프의 자본가들, 또는 자본가들의 트럼프

트럼프 2기 내각의 다른 인물들, 예컨대 법무장관 내정자인 팸 본디의 경우는 트럼프 집권 하에서 일부에서 흘러나오는 바이든 정권 인물들에 대한 숙청(purge)은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만일 애초 내정자였던 맷 게이츠가 법무장관 자리에 올랐다면, 문자 그대로 피의 숙청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트럼프는 일주일만에 게이츠 내정을 취소했으며(트럼프 인사 방식을 감안하면 이조차도 일종의 위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적에 대해서도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할 것이다. 이는 동시에 트럼프의 권력 기반이 아직은 그다지 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외교안보라인 만큼이나, 실은 더 중요한 자리는 재무장관 인선이었다. 재무장관 자리는 몇차례 혼선이 있었다. 처음 물망에 올랐던 Marc Rowan은 80-90년대 풍미했던 Drexel 투자은행 출신으로 초특급 투기 자본가에 속한다(Drexel은 90년대 초 파산했는데 거의 2008년 레만브라더스급이었다). 두번째 물망에 오른 인사는 헷지펀드인 Cantor Fitzerald의 CEO인 Howard Lutnick이었다. 그 역시 월가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비트코인 찬양자였기 때문이었다.

만일 Lutnick이 재무장관이 되었더라면, 트럼프는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를 아주 손쉽게 해결해버리려 했을 것이며(1조 달러짜리 코인 몇 개 발행하면 끝이다. 법적으로는 파산이 아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단위(unit)당 100만 달러를 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대신 달러화 가치는 폭락한다). 그는 결국 상무장관에 내정되었는데, 트럼프가 이 계획에 완전히 미련을 버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후보자는 세계적인 화장품 재벌인 로레알의 상속녀와 결혼한 케빈 월시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였는데, 그는 금본위제 주창자다. 만약 금 값은 폭등하고 달러화는 폭락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비트코인을 달러화의 기초 자산으로 선택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단위당 10만 달러를 돌파했다. 출처 : <알 자지라>

트럼프의 최종 결정은 헷지펀드인 Key Square Group의 설립자인 Scott Bessent에게 돌아갔다. 그는 90년대 초반 영란은행(BOE)을 굴복시킨 파운드화를 폭락시킨 죠지 소로스 사단의 일원이었다. 그는 월가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Bessent의 경력으로 본다면, 그의 재무장관 내정은 ‘글로벌 사우스’로서는 유쾌한 뉴스는 아닐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여파로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달러화 부채로 인한 심각한 압력에 직면해 있으며, 만일 Bessent가 역외달러시장(유로달러 마켓)에 압력이 가중되는 정책을 취한다면, 글로벌 연쇄 부도가 예견된다. 그리고 이는 중국이 막아주거나 혹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글로벌 달러 부채 연쇄 부도 사태는 아세안이나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킨다(예컨대 IMF가 구제금융해줄 때의 조건들을 상기해 보라). 

Bessent는 내정 직후 인터뷰(일본 중앙은행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지적하는 자리였다)에서 자신의 정책 수행 방식을 ‘escalate to de-escalate’라고 밝힌 바 있다.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 ‘(긴장)완화를 위한 (긴장) 격화’를 뜻한다. 즉 타협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상대방을 최대한 궁지에 몰아넣는다, 혹은 최대한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정권 초기의 금융, 재정 정책은 달러화 공급난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진행될 것이며(이른바 dollar crunch), 심지어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 혹은 부분적인 금융 위기를 촉발한다는 비명이 나올만큼 악화될 수도 있다.   

트럼프의 재무장관 인선 과정을 보면, 몇 가지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는 이전의 민주당 정권과는 달리, 학자들 혹은 중립적 인사들이 아닌 직접적으로 월가와 관계가 있는 또는 월가 출신의 인사들을 선택했으며, 둘째로는 이들은 모두 은행자본이 아닌 헷지펀드 또는 사모펀드 출신이며, 셋째로는 이들 모두 미국 국내의 금융적 이해관계보다는 글로벌 금융 사업에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지난 전통적으로 월가의 금융자본은 은행자본으로 대표되었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는 투자은행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들은 강압적으로 세계화를 추진한 빌 클린턴 정권 이후에는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로는 은행자본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새롭게 부상한 사모펀드, 헷지펀드로 채워졌다. BIS(국제결제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역외 부채 발행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글로벌 은행과 동일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들은 트럼프에게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권력을 찾았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전통적인 은행자본과 절연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22년 말 월가 은행자본의 황제인 제이미 다이먼(JP Morgan CEO)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패를 두고 “바이든도 트럼프도 안된다”고 격앙한 적이 있다. 즉 당시만 해도 월가는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를 반대했었다(원래 양자를 처음으로 모두 기각한 것은 죠지 소로스였다).

그 이후 바이든은 ‘광인 전략’(crazyman strategy; 바이든은 알려진 것 만큼의 치매는 아니다. 제 정신은 아닐지라도 판단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다만 그같은 연기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나 미국의 대외 정책 수행에 유리하다)로 돌아섰고, 트럼프는 소송의 홍수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다이먼의 역할이 알려진 것은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였는데, 지난 11월 미국 언론들은 다이먼이 실은 지난 7월 경부터 트럼프와 여러차례 만났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였던 다이먼은 이번 선거에서는 조용했다. 이는 최소한 다이먼이 트럼프를 비토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하며, 트럼프와 은행 자본 사이에 일정한 타협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세계 최대의 헷지펀드인 BlackRock의 CEO인 래리 핑크가 선거 직전에 “월가는 누가 되든 이득”이라고 발언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Washington Post>지의 민주당 지지 선언을 저지시킨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의 사례를 본다면 적어도 지난 7-8월 무렵에는 미국의 대자본가들 사이에서 트럼프를 밀기로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끝까지 반대한 자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의 마이클 주커버그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커버그는 트럼프 승리 직후 플로리다 마라라고로 찾아가 트럼프를 만났다. 용서를 비는 자리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자본가들 중에서 가장 첫번째로 트럼프를 지지했던 것은 지난 2016년의 1기 때에는 카지노 그룹인 샌즈그룹과 일단의 대중국 투자자들이었다. 북미 관계가 한참 무르익던 2018년 어간에는 이 무리의 일단인 짐 로저스가 한국에 들락거리며 대북투자를 역설하기도 했다(이 때문에 휴전선 접경지 땅 값이 올랐다. 당시 미국서 흘러나온 루머로는 원산에 샌즈 그룹이 카지노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전체 금융자본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사소한 하층민에 불과하다. 

2016년 당시에는 대부분의 금융자본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으며(그러기에는 자유주의 세계화에서 오는 이득이 더 컸다), 유일하게 ‘의미있는’ 지지자는 Paypal로 억만장자가 된 IT 투자자 피터 티엘 정도였다. 피터 티엘은 일론 머스크를 트럼프에게 소개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티엘과 머스크의 주요한 이해관계는 실리콘 밸리의 IT 관련 방산업체들(특히 스타트업 방산업체)이었으며, 트럼프는 우주군 창설로 이들에게 보답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비트코인 투자자들과도 관계를 형성했고(애초에 트럼프는 비트코인 반대론자였다), 무엇보다도 민주당 정권과는 달리 IT 산업 발전에 따라 새롭게 형성된 자본가 계급에게 정치적 무대를 제공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일론 머스크라고 할 수 있다. 머스크는 트럼프의 대중국 화해 발언에서도 보이듯이 자신의 사업적 이해관계(중국에 대규모 테슬라 공장)뿐만 아니라, 우주 산업 관련 이해 관계도 있으며, 동시에 비트코인 이해관계도 트럼프와 같이 한다.

그러나 이같은 이해관계의 일치만으로는 트럼프의 주요 기반으로 떠오른 자본가 세력을 설명하기 힘들다. 더 주요한 특징은 트럼프는 전통적으로 정치인들이 대행해 오던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아예 자본가들이 직접 나서서 수행할 수 있도록 자리를 열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머스크가 단지 선거운동의 금전적 후원자일 뿐만 아니라, 선거 유세 과정에서 ‘바람잡이’로 나서고 2기 내각에서 ‘행정개혁특위 위원장’ 자리까지 꿰어차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과거 미국 정치에서 경제인 출신이 정치 일선에 직접 나선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1970년대 록펠러는 부통령까지 올랐고 상하원 의원 중에서도 자본가 출신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포풀리스트’는 아니었다. 즉 대중적 동원에 직접 나서는 일은 없는 엘리트 정치인들이었다. 

과거 정치에 진출한 자본가들은 상층부 협상에 자리를 차지했다면, 지금 트럼프 정권에 출현한 자본가들은 한편으로는 글로벌 금융에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정치인에 버금가는 ‘대중적 스타’로서 자신을 내세운다. 즉 이들은 자신들이 어젠다를 만들 뿐만 아니라, 이를 정치적으로 수행하고 대중들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SNS)까지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과거 자본가와 지금의 트럼프 지지 자본가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문화적으로도 다르다. 예컨대, 세계화의 첫 단계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았던 IT 및 금융자본가 출신으로 구성된 여피족(이들은 대자본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신흥자본가들의 선조격에 해당한다)들은 문화적으로 미니멀리즘과 자연주의(건강식단의 효시는 이들이다. 이들은 담배와 커피를 사갈시했다. 다만 술과 마약에 대해서는 관대했다)를 표방했으며, 이들의 후예이자 후기 추종자였던 아시아의 신흥자본가들은 ‘포풀리즘’(1960년대 앤디 워홀의 귀족적 포풀리즘)을 추종하며 그림 값을 폭등시켰다.

경매에서 90억원에 팔린 바나나 설치미술. 벽에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여놓은 것이다. 져스틴 선이라는 크립토코인 투자자가 사들여 그자리에서 먹어버렸다. 

트럼프 정권의 전면에 등장한, 비트코인과 SNS로 대표되는 새로운 자본가들은 ‘밈’을 만들어내며, 따라서 문화적 취향 또한 단속적이고 데카당하다. 즉 이들의 삶에는 내일이 없다. 오늘이 세계의 전부이며, 오늘에 모든 것을 다 건다. 최근 무려 620(약 90억원)만 달러에 팔린 Maurizio Cattelan이라는 미술가의 바나나 작품(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인게 전부다)을 사서 그 자리에서 먹어버린 져스틴 선(크립토코인 투자자)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90억원을 그 자리에서 먹어서 끝냈다. 화폐가 무가치하며, 부(富)가 무가치하다. 결국 삶이 무가치해진다. 이들은 투기적일 뿐만 아니라, 말초적이고 또는 월가가 좋아하는 용어로 말한다면 risk taking(위험 선호)적이다. 역사는 이것을 버블(bubbl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결국은 물거품으로 끝날 것이다. 이들의 세계관은 위험하며 동시에 허무하다. 

6. 긴장 완화를 위한 긴장 강화, 평화를 위한 전쟁(Escalate to De-Escalate)

결국 경제와 안보의 nexus 이다. 트럼프 신정부 재무장관 내정자인 Bessent와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자인 왈츠의 입장에서 공통점은 “선압박, 후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Bessent의 전략 수행 방식은 기본적으로 안보보좌관인 왈츠의 ‘힘을 통한 평화’와 동일하다(분야가 다를 뿐이다). 미국이 달러화를 공급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글로벌 달러 부족 사태가 발생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극악스러울 정도로.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이같은 정책이 미국에게도 손해가 될지라도 상대방은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되며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미국에게 이득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글로벌 평화 전도사이자 해결사’로 찬란하게 등장하기 위해서도 이같은 ‘격화’는 필요하다. 트럼프가 자신이 취임 첫 날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노라고 큰소리치는 것은 그 이전에 사태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에게 너무나도 악화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마이크 왈츠 안보보좌관 내정자는 지난달 말 블링컨 현 국무장관과 회동한 뒤 ‘우리는 한 팀’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적어도 내년 1월 초까지는 현재의 바이든 정권의 대외노선(전략적 혼란 야기)이 유지되거나 심지어는 더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de-escalation을 위한 escalation 단계인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트럼프 정권의 성격은 아직 globalization의 ‘이윤’이 다 소진되지 않았다는 자본가들의 판단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말한 ‘두 마리 호랑이의 양립 가능성’도 바로 이것이다. 만일 중국이 세계화(글로벌 노동 분업 체제)에 편입되어 전세계 자본가들의 부를 채워주었다면, 아직도 남은 두 개의 중국(인도와 아프리카)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의 산업화(자본주의 고도화)는 지난 40여년간 중국이 산출했던 것만큼의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 중국은 당근을 던졌으며, 미국의 일부 선도적인 자본가들은 이에 호응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1차 세계화와 같이 미국이 손해보는 짓은 안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이것이 G2의 성립 선언이며, ‘포풀리스트’ 트럼프의 계급적 본질이기도 하다; 더 많은 이윤의 추구와 이를 위해 세계를 농단하고 분할하는 것. 그리고 이 한 편의 허황한 무대의 교체를 세상은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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