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격변의 Global South: 파산과 정변 사이에서

격변의 Global South : 파산과 정변 사이에서

- 방글라데시, 케냐, 스리랑카 등 시위의 물결 분석

2024년 8월 8일 / 글로벌 리포트 Global Report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제3세계, Global South, IMF 구제금융(bailout), 민주화 이행, 쿠데타, 부채 위기. 시위(demonstration)

정치적 실패와 경제적 파산

지난 6일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해외로 도피하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아시아 언론들은 가장 먼저 “왜 그토록 노련한 하시나 총리가 이렇게 미숙하게 대응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대답은 그가 속한 정당인 Awami League(AL)가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대승하여 정권을 장악한 이후 대중의 요구를 무시해왔으며 제대로 민주주의도 이행하지 않았고 부패한데다 최근의 시위 사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것이었다. 

실제 야당 탄압을 이유로 지난 1월 총선에서는 주요 야당인 BNP(Bangladesh Nationalist Party)은 선거에 불참했으며, 이번 사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청년층을 기반으로 한 급진적 장외 정치조직인 Jamat-e-Islami(Jel)는 대중의 불만에 호응하여 급격히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마치 ‘집권층의 정치적 실패’(political failure)처럼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사실이다; 애당초 이번 방글라데시 시위는 공무원 쿼터제(공무원 선발 시험에서 1971년 독립전쟁 참전자 후손에게 30%, 여성 및 소수민족에게 26%의 정원을 사전 배정)에서 비롯되었고, 공정과 정의를 무시한 특권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청년층에게 먹혀들었으며, 하시나 총리는 시위대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청년 세대의 공정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반부패를 향한 시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거기에 있지 않다. 애초에 공무원 쿼터제를 정부가 ‘복원’한 것도 아니었다. 공무원 쿼터제는 지난 2018년에 이미 대규모 시위의 결과로 대부분 폐기되었다. 이를 되살린 것은 정부가 아니라, ‘법원’이었다. 지난 6월에 상급법원이 쿼터제를 인용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시위의 도화선이 된 사안 자체는 정부(정치권)을 향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요인들이 존재한다. 이 쿼터제에는 다른 ‘정치적’ 혹은 ‘국가의 정당성에 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방글라데시의 ‘정권’이 아닌, 국가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 차이이기도 하며, 아마도 하시나 총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도피한 이유 증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방글라데시 시위대가 공무원 임용 쿼터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The Free Press Journal>” width=”971″ height=”548″> <br><span style=방글라데시 시위대가 공무원 임용 쿼터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The Free Press Journal>

하시나 총리는 지난 1971년 유혈 내전을 통해 방글라데시를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시켜 독립시킨 건국의 아버지 Sheikh Mujirbur Rahman의 딸이다. Rahman은 독립 과정에서 파키스탄과 거리를 두고 친인도 노선을 걸었으며, 당시 인도의 대외정책이었던 비동맹 노선을 추종했다. 동시에 이슬람 원리주의를 배척하고 세속이슬람주의를 천명했다. 그는 1975년 군부 쿠데타로 살해되었지만 대중의 지지는 여전했으며,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완전히 복권되었고 그동안 방글라데시의 대외정책은 친인도/반파키스탄 및 이슬람 세속주의를 유지해왔다. 

독립 저널리스트인 Andrew Korybko는 이번 시위 과정에서 그동안 거의 절대적 성역으로 간주되었던 Rahman의 기념물과 기념관이 친파키스탄/이슬람 원리주의 신봉자들인 Jel 시위대에 의해 불타고 훼손되었음을 지적하면서 ‘혁명적 상황’(revolutionary situation)이라고 지적한다. 즉 이번 사태는 단지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방글라데시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인도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방글라데시에는 인도계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물론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야당인 BNP와 손을 잡고 사태를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이 또한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시나 정권이 물러선 근본적인 이유가 앞길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사태를 보도하면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누락하고 있다; IMF 구제금융이다. 지난 6월 말, 방글라데시 정부는 IMF와 47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면서 그 조건으로 33개 조치를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방글라데시는 독립 이후 자본 부족으로 끊임없이 외환 위기에 시달려 왔다. 특히 코로나 이후 세계적 공급 충격과 금리 인상으로 방글라데시는 하루 1달러 짜리 저임금 섬유 노동으로도 외환 부족을 막지 못하고 국가 도산 위기에 빠졌으며 방글라데시 통화인 Crore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결국 IMF에게서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다. 문제는 그 조건이다(bailout conditions).  

방글라데시 영자지인 <The Daily Stars>에 따르면 IMF 구제금융 조건은 내년 6월까지 외환보유고를 194억 달러로 늘리고(올해 6월 목표치는 147억 달러였다), 정부 예산 적자를 올해보다 8% 가량 줄이며 세입도 올해보다 무려 21%나 늘리도록 되어 있다. 이같은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금을 대폭 줄이고, 무차별적으로 세금을 늘려야 한다. 방글라데시의 경제 상태나 대중들의 가계 상태를 고려했을 때,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설사 가능하더라도 대중들은 극도의 궁핍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폭동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치다. 

지난 10여 년간의 권력 장악으로 사실상 방글라데시의 정치 경제 사회를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하시나 정권이 고작 공무원 임용의 ‘공정성’ 문제 하나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하시나 정권은 IMF 구제금융 조건 이행에 따라 차후에 생겨날 저항들을 사전에 분쇄하기 위해서라도 ‘대중 봉기’를 용인할 수는 없었으며 시위대와 유화적인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쿼터 문제 하나조차 막지 못했을 때, 하시나 정권에게는 더 이상 미래는 없었다.  

하시나 정권이 대외적으로는 친인도 노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들은 자연스럽게 반인도 노선,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요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저항의 지도부들은 ‘이슬람’을 자신의 노선으로 선택했고 그것이 국부의 초상을 불태우게된 진정한 이유가 된 것이다. 

정치적 격변의 미래- 두 가지 경로 

방글라데시의 정치적 격변의 미래는 두 가지로 그려볼 수 있다. 하나는 이란식 경로이며, 다른 하나는 스리랑카식 경로이다. 지금은 거의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지만, 이란은 지난 70년대 말 미 제국주의의 수행자인 팔레비 왕정을 민중 봉기로 붕괴시켰을 때에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작했었다. 이것이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을 거치면서 급진 이슬람 민족주의로 전화되었고, 80년대 내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과 전쟁을 치루면서 신정국가로 변모해갔다. 
마찬가지로 방글라데시도 자국 내의 인도계 소수 민족들에 대한 이슬람 시위대들의 공격이 시작된다면 이는 인도의 개입을 불러올 것이며, 국지전에 이은 고립된 이슬람 신정국가의 길을 겪게 될 것이다(파키스탄 노선). 

다른 예상 가능한 경로는 스리랑카 사례이다. 스리랑카도 IMF 구제 금융 이행 과정에서 대중들의 저항으로 정권이 붕괴했다. 그러나 곧 군부와 기존 여당 일부와 야당들이 담합하여 이른바 ‘질서’를 회복했으며 정국은 다시 시위 이전의 상태, 즉 지배자들의 자유로운 착취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방글라데시도 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미 군부가 정권 장악을 자임한 것은 그같은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대중들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질 것이며, 만일 IMF의 구제 금융 조건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역설적이게도,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하시나 총리가 해외로 도피한 뒤 이틀만에 학생 시위대는 노벨상 수상자인 무하메드 유누스를 과도 정부 수반으로 추천했고, 모하메드 샤하부딘 대통령이 군부, 정치인들, 그리고 시민사회 지도자들과 상의 끝에 이를 승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최소한 방글라데시가 ‘이슬람화의 길’을 가지는 않겠다는 지배층의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매우 논란을 빚을 수 있는 상황의 전개이기도 하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유누스는 흔히 ‘micro-lending’이라고 불리는 공동체내 소액 자급 대출제를 만들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노벨상도 이것으로 수상했다). 이 대출 방식은 방글라데시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에서 소액 대출을 통해 자영업자 및 자영농을 육성하면서 이를 은행 대출이 아니라 상호 부조 방식으로 하도록 네트웍을 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심지어는 해외로 도망간 하시나 총리는 유누스를  ‘흡혈귀‘(bloodsucker)라고 비난하기도 했다(한국 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얼굴을 한 새마을금고 혹은 산와머니‘로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은행 대출이 불가능한 방글라데시 대중들에게는 솔깃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하시나 도피 직후 시위대가 부정부패라고 비난해 온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이사 4명이 사임한 것만 봐도 기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대중들의 적개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마이크로은행은 매크로 은행과 무엇이 다를까? 혹은 그것은 방글라데시 빈곤층의 문제,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해소할 대안일 수 있을까? 아니라는 증거자료는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용병으로서의 경찰, 국가를 팔아먹는 새로운 방법

미국의 제 28대 대통령인 우드로우 윌슨은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유명하다. 심지어는 한국의 3.1운동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된다. 윌슨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의 하나는 그의 재임 기간 중에 20세기 들어 처음으로(그리고 근대 들어 식민지 역사 중에서도 처음으로)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국가를 침공해 다시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곳이 아이티다. 

1912년 미국 해병대는 서구의 식민지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을 쟁취했던 아이티를 공격해  점령한다. 그리고 아이티를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었다(1950년대까지 식민지로 경영하다가 학살과 고문으로 악명높은 ‘통통마쿠트’라는 비밀경찰을 만든 뒤발리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독립시킨다). 아이티는 독립 이후에도 독재의 길을 걷다가 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민주주의로 이행하지만, 과거 식민지와 독재 시절의 기득권층은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개혁’이 추진될 때마다 미국의 개입으로 실패했으며, 결국 2008년 이후에는 완전히 국가 붕괴(failed state)의 길을 걷게 된다. 내전이 발발하자 UN 평화유지군이 파병되었지만, 이마저도 콜레라만 퍼뜨린채 아이티 주민들의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티는 현재는 완전히 무정부상태이다. 명목상 정부는 존재하지만, 아무런 행정력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실권은 ‘범죄조직의 수장들’이 가지고 있다고 언론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일단 명명(naming)이 잘못되었다. 아이티는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에 정부임을 자칭하는 세력들의 공권력이나 그에 대응하는 민간 무장력이나 ‘정당성’이나 ‘정통성’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아프리카라면 당연히 이런 경우에는 ‘군벌’(war lord)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티만은 유독 범죄조직 수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을 군벌이라고 인정했을 때는 이들의 준국가적 지위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놓아둔다면, 결국은 어느 한 세력이 전국을 통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독립적’인 정치 세력이 된다. 미국이 자신들의 뒷마당에 이런 세력을 놓아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미 실패한 평화유지군 카드를 다시 꺼낼 수도 없다. 그래서 미국(서방)측에서 내놓은 ‘신박한’ 방법이 다른 나라의 경찰을 아이티에 파병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군대가 아닌 ‘경찰 파병’으로 아이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내전’이 아니라, ‘범죄’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이 총대를 메느냐다. 그 어느 누구도 합법적이지도 않고 정당성도 없는 경찰 파병을 원할리가 없다. 

그리고 이 임무를 맡도록 케냐가 나섰다. 케냐가 아이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 전혀, 아무 상관이 없다. 아이티를 세운 노예들의 출신지가 아프리카였다는 것 이외에는 두 나라 사이에는, 그 어떤 관련성도 없다. 그걸 제외한다면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정도의 동질성밖에 없다(케냐는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가 널리 쓰이기는 하지만, 아이티는 심지어 언어도 프랑스어다). 케냐의 경찰이 아이티의 질서 재구축 임무를 맡는 것은 그만큼 탈제도적이고 비법적이고, 심지어 국제법적으로 이례적이다.

케냐의 반세금 시위. 출처: <BBC>” width=”898″ height=”505″><br><span style=케냐의 반조세 시위. 출처: < BBC>

그렇다면 케냐의 ‘경찰’들이 유능해서 아이티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현시점 케냐 내부를 보면 된다. 지난 6월부터 케냐에서는 ‘반조세 시위(anti-tax demonstration)’가 격렬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약 10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케냐 경찰 병력의 아이티 배치는 이미 시작되어, 흥미롭게도 케냐 내부에서 세금 인상 항의 시위가 터져나오던 지난 6월말부터 이뤄졌다. 현재 200여명이 파견되었다(모두 1,000명 규모 계획). 현재까지의 성과는 혁혁하다. 아이티 경찰과 함께 약 100여명의 아이티 갱들을 사살했다. 그러나 지난 7일자 미국 <Miami Herald>의 현지 르포 기사를 보면, 아이티 갱단들은 두 달여 동안은 잠잠하다가 지난달 말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최대 갱단 조직인 G9의 일파인 Mawozo가 이웃 자메이카와의 국경도시인 갠티어와 퐁-파리지엥을 공격했고 현지 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케냐 경찰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도망쳤다”. 갱단들은 케냐 경찰들을 ‘여행자‘(tourist)라고 조롱한다. 

한편 케냐 경찰이 아이티에 ’파병‘되는 가운데에도 케냐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던 대규모 시위는 우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에서 펼쳐지는 시위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나아가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심지어는 유럽 내부에서도 조만간 닥칠 사회적 동요들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반긴축, 반IMF 시위이며, 이를 대행하는 국내 정치 세력에 대한 저항이다. 

케냐의 윌리엄 루토(William Ruto) 대통령은 지난 21년 ‘포풀리스트’로서 당선되었다. 기득권층 출신이 아니며 따라서 케냐 대중들의 기대가 컸다. 애당초 루토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부터 의심해볼 필요가 있기는 하다. 케냐에서는 정적을 제거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는데 루토는 용케도 살아남아 권좌에까지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방글라데시의 하시나 총리와 마찬가지로 IMF의 구제금융 조건을 완수하기 위한 ‘대리인’이었다. 

그가 지난 6월 제시한 정부 재정 건전화를 위한 세금 인상안을 보면, 주식인 빵에 대한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 16%, 식용유에 대한 소비세 25% 인상안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 금융거래세와 자동차세 인상도 있으며, 의료비용에 대한 과세도 포함되어 있다. 영국의 BBC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들은 ‘루토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외치고 있다. 

지난 2021년 4월, 당시 대통령이던 케냐타와 부통령이던 루토는 IMF와 39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협약을 맺었다. 여기에는 이른바 ‘구조조정’과 더불어 세금 인상, 정부 재정 적자 축소라는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세금 인상은 그 일환이었다. ‘포풀리스트’ 루토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충실하게 IMF가 요구한 ‘개혁’을 국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행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그는 한국의 IMF 구제금융 당시 김대중이 수행했던 것과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루토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그는 일단 내각을 해산하고 야당을 포함한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시위를 잠재우지는 못한다. 따라서 <The African Persepective>의 아프리카 정치분석가인 켄 오팔로는 오는 27년 대선을 앞둔 루토가 채무 조정(부채 상환 기간 연장 및 IMF 이외의 국가를 통한 구제금융; 이 경우 미국과 중동 산유국이 유력시된다)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원하는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경찰이라도 팔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케냐 시위. 출처: <The African Perspective>” width=”746″ height=”498″><br><span style=케냐 시위대 모습. 출처: <The African Perspective> 

제3세계의 부채 폭탄

영국의 <The Guardian>지는 지난 7월 21일자 기사에서 Debt Relief for Norwegian Church Aid의 보고서를 인용해, 전세계적으로 약 100개 국가가 외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의료, 교육, 사회보장 등의 공공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부채 이자만으로도 예산의 41.5%가 소요되며, GDP의 8.4%에 해당한다. 그리고 지금의 제3세계 부채 사태는 지난 1982년과 1990년대의 중남미,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보다 더 심각하며 203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글라데시와 케냐(그리고 이미 스리랑카)는 이제 겨우 서막을 알리는 전세계적 현상의 징조일 뿐이다. 3세계 국가들은 연쇄 부도가 나거나, 혹은 부도를 피하기 위해 채권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더 심한 착취를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부채 싸이클을 보면 부채를 낼 수 있을 만큼은 이 세계는 민주적이며 평화롭다가,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폭압과 전쟁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화폐는 오직 부채(신용)를 통해서만 창조된다. 자본이 증식되는 동안에만 자본주의의 관대함은 유지된다. 그리고 증식의 시대는 끝났다. 좋은 시절도 다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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