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민주주의에 대항한 제헌주체의 저항

- 미국 뒷마당의 '붉은 판쵸들‘, 볼리비아 민중의 반제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2026년 5월 29일 / 글로벌 사회운동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볼리비아,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capitalism for all), 몬로주의, 붉은판쵸들(red ponchos), 신자유주의, 민영화, 제헌권력, 바리케이드

북반구와는 반대로 겨울로 접어 들어가는 5월초의 볼리비아, 전국 각지의 농민들과 광업노동자들, 교사와 학생들은 수도 라파즈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5월 15일 시위대는 전국의 모든 도로를 봉쇄하기 시작했으며, 5월 20일 시위행렬은 라파즈에 무리를 지어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시위대 규모는 약 50만 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한다. 볼리비아 국민 총수가 1050만명이니 약 5%가 직접 시위에 가담한 셈이다. 한국으로 치면, 전국적으로 250만명이 시위행진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로드리고 파즈 현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 시위 구호 첫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이들의 목표는 단순한 ‘정권 교체’ 또는 ‘반정부 투쟁’이 아니다. 이들은 주요 광산기업 민영화 반대, 토지 집중 반대, 생필품에 대한 국가 보조금 중단 반대, 외국군(미군) 기지 허용 반대 등 ‘반신자유주의’ 요구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그리고 이는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주장들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 개정된 볼리비아 헌법(pluri-national constitution)은,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신자유주의’를 명문화하고 있기도 하다. 볼리비아 민중은 자신들이 주권자로서 새로 만든 헌법을 정부와 국가가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붉은 판쵸들(the red ponchos). 볼리비아 사회주의 대중운동의 핵심조직들 가운데 하나로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1. 선거에서 혁명으로: 투표함에서 바리케이드로

볼리비아의 시위 구호만큼이나,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시위 방식과 그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현 파즈 정권은 출범한지 고작 6개월 남짓이다(지난해 11월 출범). 게다가 파즈 대통령은 그나마 ‘온건 중도파’에 속하는 인물이며 선거에서 45%의 지지를 얻었던 호르헤 퀴로가는 극우파로 꼽히는 정치인이었다. 즉 중도우파와 극우파가 맞붙어서 간신히 중도 우파가 승리한 것이다(그나마 부통령 후보가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거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MAGA의 전가보도인 ‘부정선거’라고 할 수는 없다. 즉 적어도 ‘선거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파즈 대통령은 하자가 없다. 그런데도 볼리비아 인민들은 들고 나섰다. 부정선거도 하지 않았고 계엄이나 쿠데타를 시도하지도 않은 대통령의 즉각 사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이 ‘시위’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인가? 이 시위는 ‘내란’인가?

지난해 10월의 대통령 선거는 매우 복잡한 정치적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었다. 지난 2006년부터 집권했던 ‘좌익’정권‘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4선 연임을 둘러싸고 안팎의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여 일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결국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대통령직에 취임하지 못했다. 이후 여전히 모랄레스가 이끄는 MAS(볼리비아 사회주의당)의 인물들이 집권하기는 했지만 내부의 권력 다툼과 노선 차이로 사실상 통제력을 거의 상실해버린다.

24년 4월에는 친위군부쿠데타가 발생했으나 곧 진압되었고 이 과정에서 모랄레스와 주요 사회주의당 인물들은 법원에서 선거 출마를 금지당했다. 즉 25년 10월의 대통령 선거는 과거 20년 가까이 집권했던 사회주의자당이 참여하지 못한 선거였다. 이에 따라 모랄레스가 이끄는 사회주의당은 단지 행정부 뿐만 아니라, 의회 선거에서도 거의 모든 의석을 상실했다(하원에서 기존 75석에서 2석으로 축소).

모랄레스의 실각에서 군부 쿠데타에 이르는 지난 6년여의 정치적 과정들은 형식적으로는 합법적 절차를 따른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을 제거하는 정치 공작적 성격도 동시에 띄고 있었다. 따라서 볼리비아 인민들, 특히 원주민들은 기존 선거가 민주적이지 않다고 간주할 요인들이 충분했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경제난이었다. 볼리비아 성장률은 지난해 4/4분기에는 마이너스 1.5%를 기록했으며, 올해 1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폭이 3%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즉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찾아온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즈 정권은 보조금 삭감, 농업 민영화 및 광산 민영화를 추진했고, 친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부르조아가 완전 장악한 의회는 이를 저지할 방도도 없었고 반대 의지도 없었다. 볼리비아의 5월 시위는 바로 이같은 정치 경제적 배경 하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민중시위는 근본적으로 ‘합법적이고 정당성을 가진 선거 민주주의 결과로서의 정권’에 대한 ‘헌법적 반란’으로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볼리비아의 헌법 전문은 식민주의, 신자유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을 볼리비아 국가 성립의 역사적 전제로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좁은 의미에서는 볼리비아 헌정 위기는 ‘선거 민주주의’(제도화된 민주주의)와 ‘제헌주의’(인민의 의지) 사이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시위대의 구호 중의 하나가 “우리가 민주주의다”라는 것도 바로 이를 지칭한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헌법이 다르다)

게다가 이같은 시위에 직접적인 불을 당긴 것은 파즈 정권의 민영화 추진이었다. 이는 이미 대통령선거 캠페인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대선 당시 파즈의 선거 운동 구호는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capitalism for all)였다 (근데 묘하게도 이 구호는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공약과도 맥이 닿는다. (권영숙, “이재명의 대선 슬로건 ‘진짜 대한민국’이 의미하는 것, 2025년 5월 22일  참조)

파즈의 구호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빈부격차나 불평등을 가져오는 것을 ‘저지하는 역할을 할 정부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의 심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볼리비아 시위대가 거부한 것은 바로 그 자본주의 자체였다.

그리고 ’붉은 판초들‘이 앞선 시위대는 볼리비아 전국 각지에서 10일 이상의 시위 행진을 지속하면서 수도까지 지칠 줄 모르고 도착하여 대통령 궁을 중심으로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민중의 저력과 원동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어떻게 이들은 오체투지도 아니고 수도를 향한 길걷기도 아닌, 길목마다 차단을 풀고 스스로 도로를 봉쇄하고 물리적인 시위를 하면서 수도까지 이르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수많은 시위대를 지탱할 식량과 물등 물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이는 지난 20여년간 볼리비아에서 사회주의적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확대/강화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볼리비아 농촌 지역의 원주민들은 중앙권력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하는 강고한 자체적인 통치, 즉 자치기구를 가지고 있다. 즉 수천개의 코뮨이 존재한다.

볼리비아는 산업화에는 뒤처져 있지만, 21세기 들어 가장 중요한 광물 자원으로 간주되는 리듐 등 희귀원소가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다. 파즈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실리카 동맹’(silica alliance)에 참여하면서 기존 광산기업들을 해외에 매각하거나 개발권을 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광부 노동조합이 반대하고 나섰댜. 이 광부들의 파업이 이번 시위의 첫 출발이었다. 즉 광산등 노동자 파업과 농촌 공동체 민중의 시위가 결합되어 거대한 5월시위가 되었다.

 

광산 광부들의 시위행진

 

따라서 볼리비아 시위는 민주냐 반민주의 관점에서 전혀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다. 민주적 선거로(비록 그 과정이 의심스러울지라도) 집권한 정치세력이 추진하는 제도적 변화를 ‘제헌적 정신’에 입각한 인민들이 거부하면서 기존의 사회주의적 체제의 존속을 요구하는 일종의 ‘헌법적 충돌’ 사건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이는 우선 파즈 현 대통령의 임기 중단과 사임 요구로 대표된다. 이것이 이번 시위가 ‘민주화 운동’ 혹은 ‘반정부 운동’이 아닌, ‘혁명적’ 성격을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이번 볼리비아 민중의 시위는 형식적 민주주의, 선거 민주주의에 대항한 헌법적 주체의 집단저항이다. 그러므로 아민자드가 19세기 유럽의 시위가 1871년 파리코뮨을 마지막으로 20세기 들어 ‘바리케이드에서 투표함으로’라고 말한 것에 견줘서 표현하면, ‘투표함에서 바리케이드로’의 역전환이다.

 

2. 사회적 총파업이란 무엇인가?

또 하나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점은 시위-총파업-의 방식이다. 볼리비아 시위대는 문자 그대로 총파업(general strike)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단지 공장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체를 완전 중단시키는 ‘파(罷)업’이다. 즉 사회적 총파업이다. 전국에서 약 45개 이상의 주요 도로를 완전 차단했으며 이로 인해 물류 이동이 중단되었다.

파즈 정권이 최근 주장하는 ‘인도주의적 위기’는 바로 이같은 파업으로 인해 의료시설의 기능이 중단되고 심각한 생필품 위기가 생긴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시위대의 관점에서는 어차피 파즈 정부의 정책이 추진되면 자신들이 그같은 굶주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이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지금 시위대는 어느 지역을 점령해 ‘해방구’를 만드는 대신에 국가 기능을 중단시키고 수도 라파즈를 포위해(라파즈에서 정부 건물과 라파즈 남부의 부촌을 제외한 전지역이 시위대 수중에 들어갔다) 현재 ‘공성전’을 벌이고 있다. 즉 해방구 전략 대신에 ‘포위/공성’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이같은 방식은 봉기의 사령부(지도부)가 존재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전략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생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결과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동시에 정부쪽에서는 진압하기가 훨씬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낸다.

만일 현재 의회나 파즈 정부가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경우에는 볼리비아 사태는 즉각적인 내전으로 돌입할 것이다. 이미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붉은 판쵸들’(red ponchos)은 총을 든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외부에 노출하며 무장을 과시하고 있으며, 이와는 별개의 민병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표함은 바리케이드를 거쳐 무장 게릴라 운동으로 다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기억하고 있다면, 볼리비아는 투표함이 무의미한 군부독재 속에서 대중 학살과 탄압을 경험하면서 무장혁명운동조직들이 강력했던 곳이다. 미국 제국주의 군대와 국내 매판자본가 권력에 맞서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 농민군을 규합하며 파르티잔 투쟁을 벌였다. 그 이후 80년대를 경유하면서 그들은 국가와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 ‘무장해제’를 하고 산에서 내려와 정당이나 사회운동조직으로 전환하였다. 80년대 ‘민주화’ 파고의 일부였던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이제 투표함이 아니라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에서 총을 든 파르티잔으로 나아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

3. 볼리비아 정권 위기의 국제적 성격

국제적으로도 이 시위의 타이밍은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은 ‘몬로주의’를 공식화했다(이른바 도날드 트럼파의 ‘돈로주의’). 즉 중미와 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며 절대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중남미 정책의 첫 실현은 올해 1월 초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하고 정부를 사실상 신탁통치하에 둠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때만해도 미국의 기세는 적어도 중남미에서는 아무도 막지 못할 것으로 평가되었다.

볼리비아의 시위는 이같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건이었다. 볼리비아와 칠레를 정리(극우화)하고 콜롬비아를 거쳐 최종적으로 쿠바를 진압해 완전한 중남미 지배를 달성하려는 미국의 목표는 볼리비아에서 난관에 부닥친 것이다. 이같은 전세 역전은 불과 6개월도 안되는 짧은 시간 내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물론 미국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지난 21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볼리비아 시위대를 ‘민주주의 파괴 약탈자’라고 비난하는 트윗을 올렸고, 그동안 시위에 대해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던 볼리비아 정부는 이 트윗을 그대로 정부 사이트에 올렸다. 이후 볼리비아 의회에서 비상사태 선포를 위한 절차를 밟았다.

또한 볼리비아는 남미 역사에서 식민지 해방운동의 선구자였다는 역사 때문에, 동시에 내륙국가라는 특징 때문에 주변국들의 협조 없이는 정부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주변국들의 동향이 매우 중요했다. 남미 국가들이 볼리비아 시위를 어떻게 대처하고 볼리비아 파즈 정권과 협조여부를 할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이들은 속속 입장을 밝히고 있다.

루비오의 트윗 직전에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남미 7개국은 볼리비아 시위대를 비난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천명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도 동참했는데, 시위대는 이스라엘이 보낸 물자가 구호물품이 아닌 최루탄 등 시위 진압 용품이라고 주장하며 운송을 저지하기도 했다. 유일하게 시위대에 지지를 보낸 것은 구스타프 페드로 콜롬비아 대통령 뿐이었다. 그는 임기 종료를 눈 앞에 두고 있는데, 페드로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이반 세페다가 5월 31일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남미의 종주국이라고 일컫는 브라질의 행보가 가장 흥미로왔다. 노동자당 (PT)의, 노동자출신 대통령 룰라 다 실바는 지난 25일 파즈 볼리비아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 트윗을 통해서 볼리비아 시위 사태와 관련 ‘민주적 제도와 법치에 대한 완전한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부와 사회 운동이 폭력에 의존하는 것을 피하고, 대화를 통해 의견 차이를 극복하고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는 길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볼리비아 로드리고 파즈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볼리비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 물자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브라질 노동자당의 노동자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한편으로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에 반대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볼리비아 인민의 저항(과 저항의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는 볼리비아 민중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나 다름없다.

룰라의 이같은 움직임은 양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는 볼리비아 정부의 군 투입이 기정사실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으로 보면 룰라가 군 투입과 무력 진압을 반대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하지만 동시에 ‘인도주의적 지원’은 현 파즈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룰라의 이같은 이중적 태도는 브라질 좌파 내부에서도 엇갈린 반응을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볼리비아로서는 룰라의 발언을 통해서 브라질이 적극적으로 군 투입을 반대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무력 진압과 민중시위대와의 유혈충돌은 예정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요인은 쿠바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0년대 이래 쿠바는 남미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배후에서 지원해왔다.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나 새로운 혁명을 위해 도착한 곳이 볼리비아였고, 전투중 포로로 잡혀 살해된 곳도 바로 볼리비아였다. 따라서 쿠바가 적극적으로 이후 구성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볼리비아 반군을 지원하게 될 가능성을 예상한다면, 볼리비아 정부로서는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다. 미국이 쿠바 침공 카드를 애드벌룬으로 띄우는 것도 이같은 볼리비아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쿠바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만일 쿠바가 미국의 공격을 감수하고라도 남미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적극 개입한다면, 세계는 제2의 쿠바 사태와 더불어 남미의 60년대 무장 투쟁을 다시 보게될 것이다.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의 승리이후 남미에서 또다른 혁명을 위해 볼리비아로 떠나 1967년 게릴라투쟁 중에 전사했다. 출처 : [Magnum Photos]

 

4. 역사는 반복하는가, 뒷걸음치는가, 또는 어디로 가는가?

지난 80년대부터 ‘저강도전쟁’이 마무리 되면서, 남미의 정글과 산에 있던 무장조직들은 도시로 내려왔으며 무기를 반납하고, 무장투쟁 아닌 사회운동과 제도정치 참여를 선택했다. 그이후 남미는 90년대 신자유주의 실험의 ‘온상’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은 조직들은 정당으로 전화했으나 제도정당으로 자리잡는데는 대부분 실패했다. 성공한 정당은 스스로 변절했다. 혁명적 구호를 내걸고 집권했다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끝난 칠레의 보리치 정권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핑크 타이드(좌파 득세)와 화이트 타이드(우파 득세)를 몇 번 거친 결과가 지금의 남미의 모습이다.

결국 사회운동과 도심지 집회와 시위의 한계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브라질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그들 대부분은 정치세력화를 도모했으나, 정치권력을 잡고 국가를 개혁하는데 있어서 실패했으며 배제와 새로운 형태의 통제와 탄압과 불평등의 심화를 저지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부르조아 정치인들이 자리를 채우면서 온건 기회주의적 자유주의 정치와 경쟁하는 구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볼리비아 민중시위는 동시에 남미의 선거민주주의의 앙상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혐오(disillusionment of democracy)’ 속에서 극우파든 뭐든 경제만 살리고 내 부를 쌓아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신자유주의 기업가 출신들에게 정권을 쥐어줬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는 조금이라도 급진적인 정치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받아 선거를 거쳐 정권을 잡으면 신자유주의 기업가들과 군부의 결탁으로 기존 정권에 대한 ‘탄핵’이라는 ‘법률적 수단’을 구사하거나, 아니면 뒤에 미국을 배후로 하고 앞에 신자유주의 기업가나 변호사 출신 정치인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옹립하는 군부의 쿠데타가 빈번했다. 이제 그 민주주의의 체제의 한계속에서 대중은 투표함을 넘어서려는 시위와 봉기의 초입에 들어섰다.

반면 이들과 다른 사례가 바로 멕시코 사파티스타 자치지역이다. 멕시코 치아파스주에서 사파티스타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일에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무장봉기를 농민군 중심으로 일으켰다. ‘사파티스타’라는 명칭은 멕시코혁명에서 판초 비야와 연합군을 구성해서 싸웠던 아나키스트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이름에서 연유했다(이는 남미 반제국주의 독립혁명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를 사회주의적으로 계승하는 ‘볼리바리안 혁명’의 거대한 흐름이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로 이어진 것과 함께한다). 사파티스타는 이후 멕시코 중앙정부와 협상으로 ‘자치구’를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남미의 해방운동은 과거의 ‘투표함에서 산으로’에서, 이후 ‘산에서 투표함으로’으로, 그리고 이제 ‘투포함에서 바리케이트로’로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총을 든 모습이다. 그렇다면 체 게베라가 죽었던 땅 볼리비아. 한때 무장 혁명조직운동이 활발했던 나라에서 스스로 무장해제했던 게릴라부대가 또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을까?

그리고 이는 역사의 퇴행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후자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역사 속 사회는 ‘퇴행’해도 역사의 시간은 앞으로 가는 것이기에.

demlabor1848@gmail.com 저작권자 ©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웹진 <전망과실천> 구독 신청
조직노동을 넘어 사회적 노동으로, 철학의 빈곤을 넘어 정치적 좌파로.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와 함께해주세요.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