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의 실패와 자산계급정치의 좌초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베이스 형성과 정책 전개 과정
2026년 7월 30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영리국가(for-profit state), 신자본주의, 자본시장, 하이퍼 스케일러, 인공지능, 버블, ETF, 부동산 보유세, 총통화량(M2), 87년체제, 개헌
New Kids on the Capital Market (자본시장의 ‘뉴 키즈’)
이재명 정권은 한국에서 이제껏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성격의 권력이다. 이는 단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 정치철학(그런 것이 있다면), 정책, 그리고 그것들을 수행하는 방식에 있어서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는 물론이고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그 전례를 발견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이재명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추구하는 국가는 ‘영리국가’(for-profit state)라고 부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미국에서 유행했던 기업국가(corporate state)가 국가 운영에 있어서 기업적 방식을 도입하는데 그친 것에 비해(즉 국가 운영에 있어서 governance의 변화가 주목적이었다), 이들은 아예 국가를 영리 단위로 사고한다.
그런 점에서는 중상주의 국가의 전통 하에 서 있지만, 중상주의 국가가 군주와 상업자본의 부를 목적으로 했던 것에 비해, 이 새로운 영리국가는 국가가 돈을 벌어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보다 야심찬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재명 정권의 성장 전략(2)– 자본과 노동: 한미 글로벌 자본가동맹과 국내 계급투쟁의 봉쇄”. 2025년 7월, 8월 <전망과실천> 참조).
그리고 이처럼 국가가 돈을 벌어 신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국내’ 자본가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나올 수 있는 ‘돈의 양’(잉여가치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 200년간의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부채(크레딧)을 통한 화폐 발행으로 생기는 수익은 이미 다 뽑아 먹었고 그 최종적인 바닥을 드러낸 것이 2008년의 금융위기였다. 그래서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의 세계를 사고한다. 평행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가상(phenomenon)인 현실을 복제한 이차, 삼차의 가상 세계를 창조한다. 이곳에서는 화폐는 무한하며, 이윤도 무한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은 기존의 자본주의적 질곡을 타파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유의 투사가 되며, 새로운 세계의 건설자로 자신을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전통적인 금융자본과는 다르며 불로소득으로 세계를 착취하는 귀족적이고 폐쇄된 성곽에서 은폐된 삶을 누리고 궁정음모극을 기획하지만, 맑스가 <브뤼메르 18일>에서 조롱했던, 그리고 베블렌이 <유한계급론>에서 비판했던 것과 같이, 정작 그 행동 양식은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상동적이었던 금융자본가들과는 달리 이들은 대중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천명하며 자신들을 스스로 ‘실용적 철학자’로 간주한다.
물론 이들의 기원은 한국이 아니다. 미국에 있다. 팔란티어의 자칭 비판철학자 알렉스 카프나 케타민에 절어 살지만 꿈은 화성을 노니고 있는 일론 머스크, 그리고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온갖 크립토 코인 명사들이 이들의 대표자들이다 (머스크는 마약 문제 때문에 한국에 못 오겠지만, 카프는 한국에 와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이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언론에 자세하게 나오지 않아서 유감스럽기는 한데, 매우 익살맞았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들은 전통적 은행자본과는 대비되는, 심지어 그에 대립하는 자본시장(capital market)의 주인공들이자 ‘새로운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인물들이다.
한국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들과 동일한 세계관을 가졌는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그는 이미 성남시장 재직 시절부터 LG나 두산 4세들과 정기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는 있다.
그러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서 적어도 이들 대 자본가계급과 손을 잡은 것은 확실하다. 그 증거가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기도 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김실장님’의 능력
김용범 실장은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이다. 흔히 말하는 ‘모피아’(재경부 마피아) 출신이기는 한데 로열 로드를 걸은 인물은 아니다. 재경부의 엘리트 코스는 대략 기획 예산 재정 부서인데 김용범 실장은 주로 외곽에서 맴돌았다. 당시만 해도 별 영향력 없는 자본시장을 주로 담당했다. 정작 특이한 것은 퇴임 이후의 행보다. 지난 2022년 문재인 정권 만료와 함께 그는 재경부 차관으로 퇴직하면서 ‘해쉬드 리서치’라는 업체 대표로 재직했다. 그리고 2025년 6월 이재명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기용되었다. 해쉬드 리서치는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업체다. 해쉬드라는 사모 펀드의 외곽 씽크탱크(라기 보다는 research firm)인데, 김용범실장이 이 회사 대표 재직 당시 업무를 보면, 크립토 코인과 관련된 연구 업무와 해외 크립토 네트웍 및 스타트업 투자 네트웍 컨퍼런스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시사적이다.
최근 K주식이 1만을 찍었다가 다시 곤두박질을 치는 가운데., 우리 ‘김실장’의 주도로 이루어진, 그리고 지금에 와선 한국 증시를 ‘말아먹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레버리지 종목 ETF’는 지난 1월 13일 김실장과 증권사 대표 및 자산운용사 대표들 사이의 간담회에서 합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실장이 이 상품의 출시를 밀어붙인 것은 ‘자본 유출 방지’라는 명분이었다. 매우 괴상하게 들리지만, 실은 명분 자체로는 타당성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김실장은 홍콩에 이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식에 대한 개별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있는데 한국에는 왜 안되느냐고 주장했다.
해서 홍콩 언론을 뒤져보면, 홍콩에 상장된 삼성전자, 하이닉스 개별 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실물 거래 상품이 아니다. 미국의 스테이블 코인으로 결제되는, 즉 가상화폐로 결제되는 ‘평행 금융상품’이다. 규제도 없으며 만기도 없다, 오직 가격 변동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한 선물’(perpetual futures)라고 불린다. 실제로 주식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거래되는 주식에 대해 베팅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김실장은 이에 대해 ‘자본 유출’을 거론했을까? 크립토 코인의 규제망을 회피하는 사적거래 성격 때문에 이같은 상품은 외부의 자본을 빨아들인다. 이같은 금융 시장은 과거 금융 위기 이전의 그림자 은행(shadow banking)에 상응하는 그림자 자본시장(shadow capital market)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 달러화 지위 유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창조하고 암묵적으로 육성한 시장이다. 중국이 지난해에만 수천억 달러가 넘는 자본 유출을 겪었는데 그 대부분이 이같은 크립토 코인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 5월에는 중국 당국은 이같은 크립토 코인을 매개로 한 평행 금융상품을 개설한 증권사에 대해 제재들 가하기도 했다.
한국은 지난 2024년 이후 원화 약세로 골치를 앓았는데, 한국은행의 판단으로는 ‘해외 주식 투자’라고 포장된, 사실은 대규모 자본 유출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당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홍콩에 상장된 개별 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한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이것이 다시 해당 종목의 주식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악영향을 막아야 한다는 실장님의 갸륵한 애국심에는 나름 실물적인 근거가 있다.
다만 김실장이 간과했던 것은 너무 급하게 한국 증시가 상승하면서 일반 투자자들의 레버리지가 커졌고 게다가 국민연금이 포트폴리오 조정을 회피하면서 대중이 미친듯이 증시로 몰리는 ‘마니아’(광풍)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일반 투자자의 레버리지가 얼마나 컸느냐면 코스피가 9300에서 6500선까지 급락했을 때조차 JPM이 보고서에서 “일반 투자자의 레버리지는 75% 해소, 헤지펀드의 레버리지는 약 50% 해소”된데 불과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즉 한국 증시 투자자들의 포지션이 가격 변동에 대단히 취약한 상태였다는 점을 간과했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에 대한 그의 판단, 나아가 정권 전체의 ‘자기 도취’에 있었다. 이미 당선전 대선 캠페인 시절부터 현 이재명정권은 인공지능이 현재의 한국 경제 문제를 해결해줄 ‘구원자’라고 간주하고 선포하고 있었다. 이게 대중정치인의 시류에 편승한 정치적 수사로 끝나면 그나마 좋은데,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었고 이를 위한 정책을 수행한 것은 중대한 실책이었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 기술에 대한 환상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거룩한 세력이자, 여전히 ‘내란세력 대 민주 세력’이라는 구도속에서 잔뜩 자기도취와 오만을 부리는 집권자라면 근거가 박약한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인공지능은 매우 그럴듯한 청사진이지만 국가 경제 나아가 국가 체제 전체를 오로지 인공지능에 모두 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다만 인공지능은 이들
‘신자본주의 주체들’에게는 매혹적인 유혹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장기적인 잠재성장률을 높이며, 이는 계급투쟁을 회피하게 해주는 유력한 물질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나아가 기존의 비생산적 투자로 간주된 죽은 자본들(특히 부동산에 매몰된 자본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자본가들에게 권력을 양도하는 계기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개별종목 레버리지는 5월 27일 상장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좋았다. 증시는 약진을 거듭하여 지방선거 직후인 6월 19일 코스피 지수는 9288을 기록했다. 2025년 6월 집권 이후 3배로 뛴 것이다. 딱 짜두었던 판 그대로이고 설계했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었다.
버블과 바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금융 시장은 인공지능의 ‘이윤’에 대해 줄곧 회의적이었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점을 기록한 지 일주일만인 6월 27일 중국의 대규모 헤지펀드들이 ‘인공지능 버블’론을 선언했다. 이들의 주장은 인공지능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공지능이 지금 그 주창자들이 꿈꾸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윤을 내지는 못하며, 따라서 현재의 주식가격은 과대평가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이렇게 ‘인공지능 버블’론을 제기한 이유는,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들(막대한 이윤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관련 투자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서 보유 현금을 다 소진했기 때문에 추가로 채권을 발행했다)의 수익률 스프레드(최우량등급 채권과의 금리차)가 졍크 본드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채권시장에서는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의 채권을 ‘투기적 등급’ 채권으로 간주한다. 하이퍼 스케일러 기업들은 막대한 흑자를 내는 세계 최고의 최우량기업들임에도 불구하고 채권시장에서 이들이 발행한 채권이 투기등급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이들이 인공지능 투자가 기대한 이윤을 내지 못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독자적 반도체 생산장비 개발 뉴스까지 겹쳐서 반도체 관련 주가가 전세계적으로 하락중이다. 물론 한국 반도체 주식 하락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크다. 이는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취약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증시 부양의 구호 중 하나였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중국산 인공지능인 키미3가 완전히 ‘open-weighted’ 스탠스를 취한 것은 기존의 미국의 인공지능 개발업체(Open AI, Anthropic, Google)의 ‘독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건이었다. 중국의 태도는 분명하다; 인공지능은 유효하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독점적 지위를 가능케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2026년 국내정세 전망, 자본과 인공지능의 태평성대와 궁핍의 시대”. 2026년 2월 <전망과실천> 참조)
그런 점에서 지난 7월 24일의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의’는 매우 괴상한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했고, 엔비디아를 비롯한 관련 인공지능 개발업체 및 반도체업체 대표들이 자리를 같이 했는데, 이들은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엔비디아와 인공지능 업체는 과거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 수요를 창조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확대를 위한 제반비용이 ‘싸야’ 유리하다. 반면 반도체 업체로서는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수요가 생겨 공급 능력을 초과했기 때문에 가격결정력에서 우위를 갖고 있다. 즉 얼마든지 비싸게 부를 수 있다.
이들이 실리콘 밸리 옆 샌프란시스에서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서구 중심의 인공지능 시장 창조를 위한 가격 담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삼성 하이닉스의 일방적인 가격 결정력 우위가 약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문제는 왜 이런 사기업들의 카르텔 형성 자리애 일국의 대통령이, 그것도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했느냐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의문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그런 자리에 가면 안된다.

최근의 반도체 가격 하락은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응전 과정에서 벌어진 반도체 업체의 지위 약화를 반영하며, 따라서 어디가 적정 가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가에 하락 압력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타이밍상, 김용범 실장이 이같은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소한 정치적 욕심을 버리고 코스피 지수가 7000 부근에 왔을 때(정권에서도 이미 코스피의 적정 수준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기획위원장을 지낸 이한주는 지난 3월 코스피가 7000까지 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더 이상의 증시 부양을 멈추고 국민연금의 리밸런싱을 추진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정권 내의 다른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꿈을 진지하게 믿은 것으로 보인다. 증시는 9300까지 천정부지인양 제어되지 않은채 overshooting을 했고, 그러므로 내려갈 때는 올라간 만큼 undershooting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삼성과 하이닉스의 이윤은 무한하다고 믿었으며, 그에 따른 초과세수(또는 초과이윤)을 어디에다 써야할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몰두햇다. 그 댓가는 크다. 그리고 그 댓가를 누가 치르게 될 것인가? 이제야 이 지점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미 레버리지가 높은 증시에 레버리지 상품을 공급했기 때문에 변동성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아무 투자은행 보고서를 펼쳐봐도 변동성은 특히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수익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나와있다. 미국이 본격적인 자본시장 금융자본주의를 시작한 1982년 이후의 금융 시장을 보면, 지난 2022년까지 무려 40여년 이상 변동성이 감소하는 장기적 추세가 지속되었다. 이른바 주가의 ‘ 장기적 우상향’ 론(이른바 워렌 버핏 투자법)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변동성이 폭발하면 주가가 몇배를 뛰든, 개인 투자자는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장기화되거나, 반복되면 아예 쪽박을 차게 되고 증시를 떠난다. 그때부터 정치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도 ‘사회적인 것’이 된다.
전략의 실패, 정치의 무산, 사회의 수난
이재명 정권의 증시 부양은 크게 두 가지 전략적 목표 하에서 수립된 것이었다. 하나는 한국 자본주의의 도약, 또는 부흥(재생-revitalizing) 프로젝트였다. 이 차원에서는 신흥 금융자본가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자본가와 은행 자본가들을 대체한다. 두번째는 이를 위한 정치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국가는 ‘영리’ 사업체가 되며, 최대한 자본시장의 이해관계에 종속된 인구집단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용범의 실패는 이같은 전략을 모두 무화시킬 위험을 야기했다. 이재명이 대선후보일 때부터 내세운 복안, 그리고 당선되자마자 내세운 ‘국정과제123’ 보고서에서 방안이었기도 한, 기존의 가계 자산 구성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전환하는데는 이미 실패했다. 이제 아무도 증시의 ‘장기적’ 상승을 믿고 돈을 집어 넣지는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대중들은, 즉 이른바 ‘개미’들은 이제 더 이상 증시에 집어넣을 돈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지수가 6000을 넘어섰을 때 주식 투자를 시작했으며, 그나마도 레버리지를 썼기 때문에 현재 수준에서는 코스피 지수가 3000에서 두배로 뛴 6000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손실을 보고 있거나 심한 경우에는 이미 투자 전액을 날렸을 것이다.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 증시에서 청산을 목전에 둔 레버리지를 쓴 개인 계좌가 120만 계좌에 달하며, 이미 강제 청산된 계좌가 30만개에 달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강제청산된 가운데 60%가 20-30대 청년들의 증권 계좌다. 20-30대의 계좌니 그 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그 돈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모은 전재산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불과 몇달만에 그들은 전재산을 날렸다. 수십만명의 알거지가 탄생한 것이다. 그 사회적 파장은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유사한 사례가 지난 2003년 노무현 정권 때의 이른바 카드대란이었다. 김대중정권 하에서 내수 진작이라는 명분으로 신용과 무관하게 카드를 남발했다가 개인 채무불이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십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고 이는 자살과 범죄의 폭증의 경제적 기초가 되었다. 정부가 최근 자살 관련 보도르 통제하고 자살대응센터를 운용키로 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재명의 자본시장은 여기서 끝은 아니다. 어찌됐든 인공지능 자체의 유효성이 부인된 것은 아니며, 글로벌 인공지능 카르텔이 구원해주기로 했으니(엔비디아의 제이슨 황은 “주가가 하락 조정 중‘이라는 이재명의 말에 ’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시 ’적정 수준‘까지는 갈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길에는 너무 많은 시체들이 쌓였다. 코스피 지수가 다시 10,000을 간들 청산된 계좌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며 오직 ’믿는 자들‘만의 잔치가 될 뿐이다.
한국의 멋들어진 신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자본시장이 어떤 것인지조차도 제대로 모른채, 이를 국가 정책화했고 그에 따른 사회적 폐해는 ‘투자는 개인 책임’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틀어막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과거의 발전 노선(수출을 겨냥한 제조업 산업화)이 한계에 봉착했다면, 이를 타파하겠다고 나선 신흥 금융자본가들의 자본시장 육성책도 이미 그 한계를 드러냈다. 그것이 설사 성공했다고 해서, 한국의 모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본시장 육성은 필연적으로 제조업 공동화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자본은 더 높은 이윤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해외로 나가며 내수 산업은 금융자본으로의 전화를 시도한다. ‘제국’으로서 자신의 모순을 타자에게 전가하던 미국조차도 이미 허덕이고 있는데 고작해야 제국주의 하위 파트너에 불과한 한국이 ‘자본주의 정상화’를 외치며 금융자본주의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며, 그 댓가는 비싸게 치르게 될 것이다.
동시에 자본시장의 정치적 기초도 함께 약화되거나, 혹은 아예 무산되었다. 이재명 정권은 이제 자신들이 해체하려고 했던 기존의 정치 세력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계 개편도 개헌도 물건너 갔다.
그래서 다시 부동산
증시가 몰락하면 부동산이 다시 뜬다. 결국 ‘똘똘한 한 채’라는 신화가 부활하는 것이다. 원래 이재명의 대선 공약에 따르면, 그리고 집권 이후 ‘부동산을 잡는 것은 계곡 정비보다도 쉽다’는 호언장담에 따르면,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은 조세 정책을 통하지 않고 금융적 수단과 규제정책을 통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었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7월 들어 진행된 두 번의 청와대 기획 부동산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들은 (1) 고급 주택에 대한 세금 강화 (2) 부동산 가격 억제가 아닌, 거래 정상화 (3) 비아파트 공급 확대에 맞춰져 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같은 정책들은 절충적인 것들이고 미봉적이며 근시안적이다. 부동산이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낮춘다는 것은 가구 소득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용이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함의한다. 즉, 노동소득 증가를 통해서든 혹은 증시 상승으로 인한 자산 소득 증가를 통해서든 가구 소득이 증가하여 대출 레버리지 없이도 주택 구입이 용이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게 가능할까부터 보자.
이재명 정권은 지난 22일 부동산 토론회에서 대선 공약과는 달리 ‘세금’을 수단으로 한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을 펼칠 뜻을 분명히 했다. 아직 전체 부동산 정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하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것을 중심으로 본다면 현 정부가 기획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주거’를 위한 정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주택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오히려 주택 총량 규제를 도입할 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부동산(아파트) 가격 하락 유도 정책도 아니다. 그렇다고 재정 수입을 늘리려는 조세 정책도 아니다. 고가주택에 대한 보유세를 신설한다고 하지만, 이는 기존의 종합부동산세의 연장에 불과하다. 당연히 자산 보유가능성이 없는 ‘세입자’ 주거자들을 정책대안에 포함시키겠다는 고민도 의지도 엿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당당하게 ‘아파트’ 보유를 중심으로 한 토론회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같은 주택 정책이 무능하거나 혹은 기존의 ‘주택 자산가 계급’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 역시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전체적인 주택 정책 청사진이 다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이고, 지금까지 공표된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그 근저에는 분명한 정책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약하면 기존 주택 보유자들을 새로운 집단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즉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넓히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나아가 이들을 차후의 새로운 정치 권력으로 육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일환으로서 주택 정책이 수행된다.( “한국 가계자산의 딜레마-주식 대 부동산”, 2025년 10월 <전망과실천> 참조)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의제 자체에 대한 질문, 먼저 한국에서 주택(부동산)이 무엇이 문제인가부터 살펴보자.
부동산 문제와 서울 문제

한국의 주택 구입 부담 지수(housing affordability index). 출처 : 한국부동산정보원
한국에서 주택, 특히 아파트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두는 ‘비싸다’이다. 주택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판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위에 제시한 주택 구입 부담 지수(housing affordability index)다. 이 지수는 한 지역(또는 국가)에서 중위권 소득을 갖는 가구가 그 지역 내의 중위 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치뤄야 하는 비용(주택 대출 원금 및 이자)을 표시한 것이다. 이 지수에서 100은 가구 월 소득의 25%를 주택 대출 원금 및 이자를 상환하는데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의 챠트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의 경우에는 이 지수는 무려 179에 달한다. 이는 월 소득의 46%를 주택 비용에 쓴다는 것을 뜻한다. 월 소득이 500만원이라면 이 중에서 230만원이 주택 관련 대출 원리금과 이자에 충당한다는 것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월 소득의 30% 이상을 주택 비용에 지불하게 되면, 이 때는 소득으로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간주된다(주택 구입 부담 지수로 환산하면 120). 간단히 말해서, 서울에서는 중위 소득 가구는 중위 주택을 사지 못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무주택 가구는 주택을 구매하려고 하면 중위급 주택은 포기하고 그보다 낮은 등급의, 즉 보다 저가의 주택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만일 주거 조건이 좋은 주택에서 살고 싶다면 전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중위 소득 무주택 가구가 주택을 구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은 보다 저가의 즉 보다 주거 조건이 열악한 주택을 산다. 그러면 서울 내에서는 변두리가 되거나, 혹은 이보다는 좋은 조건의 주거 조건을 위해서는 서울 외곽, 이른바 수도권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이것이 주택 가격 풍선 효과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울 외곽의 도시에까지 주택 가격이 상승하며, 지금은 그 경계가 거의 평택에까지 이르렀다. 경기도의 주택 구입 부담 지수는 81.1에 달한다. 한달 소득의 20%를 주거 비용에 쓴다는 뜻이다. 서울보다는 덜 하지만, 경기도도 마찬가지로 자기 소득에 대응하는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지역이다.
그런데 위의 주택 구입 부담 지수를 다시 보자. 서울은 179지만, 전남은 28.5에 불과하다(전남이 한국에서 가장 주택 구입 부담 지수가 낮은 지역이다). 경북은 29.2이며, 도 단위에서는 가장 높은 강원은 37.7이다(제주도가 70.7로 도 단위 최고 지역이지만 제주도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제외했다). 대도시 중에서는 인천이 65.6, 부산이 61.3, 대구 54.9, 광주가 50.3이다. 즉 서울과 경기만이 예외적으로 높다(세종도 98에 달하지만, 행정수도 특별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주택 문제(아파트 문제)는 실은 서울의 문제이며, 수도권의 문제이다.
그런데 서울의 인구는 지난 1992년 1090만명을 최고점으로 그 뒤 계속 감소하여 지난해 말에는 약 930만명으로 추계되고 있다. 즉 지난 25년 사이에 인구가 160만명이나 감소했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소득 대비 상대적 주택 가격은 치솟았다. 따라서 단지 인구 문제만으로 주택 문제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울의 주택 가격이 상승하자, 서울의 인구들은 서울 외곽의 수도권으로 빠져 나갔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현상도 전혀 줄지 않았다. 지난 1992년의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인구는 약 1960만명이었는데 지난해 말에는 2650만명으로 늘었다. 무려 700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동시에 이처럼 즈증가한 수도권 인구, 특히 경기도 인구는 잠재적으로 ‘서울인구’이기도 하다. 즉 조건만 구비된다면 언제든지 서울로 이주할 의향이 있는 인구 집단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서울에서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서울 주택 공급을 늘려도 외곽에 포진하고 있는 서울에서 밀려난 집단이 다시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일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늘려 주택 부담 비용이 감소한다면, 그나마 생활비 문제로 억제되고 있는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공급이 주택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니다.
결국 한국의 주택 문제는 서울로의 집중, 즉 서울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단지 행정수도를 지방(세종)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 이상의 분권화 정책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완전히 서울을 깨버릴 정도의 급진적인 분권책이 나오거나, 아니면 서울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주택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이 경우에는 서울에 무제한적인 주택 공급으로 주택 가격을 훼손). 그러나 주택 공급 과잉으로 유되되는 주택 가격 하락은 금융 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의 자본 배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어느쪽으로 가더라도 ‘일반적인’ 또는 ‘정상적인’ 정책으로는 주택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주택 구입 부담 지수를 다시 보자. 코로나로 인한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집 값이 폭등했던 지난 2022년 3분기와 비교해 봤을 때, 전국에서 주택 구입 부담 지수가 상승한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그것도 아주 큰 폭으로 뛰었다. 다른 지역은 심지어는 경기도조차도 하락했다.

한국 전체로는 주택 구입 부담 지수는 지난 2022년 3분기에 무려 89.3을 기록했다. 이 시기는 한국 전체로 정상적인 수입을 가진 가구는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는 때이다. 흔히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데,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인은 전혀 다르다. 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막을 수가 업는 것을 정책으로 막을 수 있다고 허언했기 때문에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 쓴 것이다. 더불어 이 시기는 글로벌 과잉 유동성이 폭발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주택 가격이 상승한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각국의 대응정책은 다 달랐지만, 주택 가격 폭등은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미국 주택 가격 추이. 출처 : 미국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즉 주택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주택의 수요-공급도 아니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아니며, 미시적인 주택 소유/렌트 제도도 아니다. 주택 가격은 일차적으로,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화폐량’이 결정한다. 코로나를 핑계로 전세계가 무한정으로 화폐량을 늘리자, 주택 가격은 폭등했다. 경기가 좋아서도 아니고 인플레이션 심리가 자극되어서도 아니며, 인간의 탐욕 때문도 아니었다. 돈이 많이 풀려서 실물 자산이 자극된 것이다.
불가피한 상승, 불위(不爲의 無爲)
그래서 지난 25년 하반기 이후의 한국에서의 주택 구입 부담 지수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한국 전체로는 20년 코로나로 인한 과잉 유동성을 잡기 위한 긴축적 금융 정책의 결과 실물 경제가 위축되면서 주택 구입 부담 지수가 하락했지만, 유독 서울만은 25년 2분기의 153.4를 저점으로 반등하여 3개 분기 연속으로 상승, 179.3까지 치솟았다(코로나 reflation 이후의 저점은 24년 2분기로 147.9였다). 이와는 달리, 다른 지역들은, 심지어는 경기도조차도 지난해 3분기 이후 반등하기는 했지만, 그 폭은 매우 미약하다.
이는 (1) 서울로의 권력 집중화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으며 (2) 자산 양극화가 극단화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서울의 주택 구입 부담 지수 상승폭은 굉장히 크다. 이는 적어도 서울에서 ‘집을 사는 것이 가능한 인구 집단들’의 수준에서는 소득 증가가 굉장히 큰 폭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들의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 가치는 급등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같은 기간 동안에 노동 소득은 연간 고작해야 명목으로 3% 수준의 증가에 그쳤다. 따라서 서울에서 주택 가격이 상승한 것은 중위권 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한 주택 소유자들의 판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강남과 마용성과 같은 1급지 주택 가격이 상승한 것은 임금 소득 이외의 부외소득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하 수밖에 없다. 즉, 주식시장 상승에 따른 차익이 주택 시장으로 환입될 것이라는 기대다. 이것이 증시 상승을 국가적 목표로 제시한 이재명 정권 출범 직후부터 주택 자산시장이 다시 들썩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판단은 한국은행 연구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5년 12월 한국은행 금융안정연구팀과 서강대 이윤수 교수의 공동연구 ‘가계부채와 관련한 거시건전성 정책의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부동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거시경제적 요인은 광의의 총통화량(M2)로 분석되었다. 즉 통화량이 증가하면 집 값이 상승한다. 특히 수도권은 총통화량 증가분 이상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반면에 물가상승은 주택 가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금리가 차지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면 지난해 3분기 이후 한국의 M2 증가율 추이는 기존 추세보다 훨씬 큰 폭으로 뛰었을까?

그러나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통계상으로는 놀랍게도 M2 증가율은 기존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M1이나 M3보다 훨씬 낮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M2 집계 방식을 수정하여 기존에 포함되어 있던 수익증권을 M2 집계에서 제외했다. 이는 IMF의 권고 사항이기도 한데, 문제는 타이밍이다. 과거 M2의 수익증권은 거의 대부분이 ETF다. 즉 증권사(투자은행)에서 발행하는 채권 및 주식거래용 금융상품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수익증권은 약 408조원에 달했는데, 만일 수익증권을 M2에 포함시켰더라면 M2 증가율은 연간 8%에 달했을 것이다(집계 방식 수정 뒤에는 연간 5.8% 증가).
즉 M2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것은 집계상의 문제일 뿐이지 현실은 아니다. 수익증권이 포함된 M3(금융기관 유동성+국채, 지방채 + 회사채, 기업어음+기타금융상품)은 증가 추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M3 상으로 보면 지난해 3분기부터 통화량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 4,5월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왜냐하면, 자본시장 즉 증시를 기반으로 한 화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M2에서 수익증권(ETF)를 제외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나라(미국)의 통계와의 비교를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은 M2 증가율을 낮추어 원화 환율을 안정시키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난 1월 중순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증권사 대표 및 투자운용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레버리지 ETF 상품을 내놓기로 했다(<조선비즈>에 따르면 최초 제안자는 한국은행 인사라고 알려져 있다). 26년 5월 27일에 지금 한국 금융시장을 뒤집어놓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FT가 출시되었는데, 만일 한국은행이 기존의 M2 집계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이 ETF로 인해 M2 증가율은 폭등했을 것이며 원화 환율도 마찬가지로 폭락했을 것이다(원화 초약세). 즉 레버리지 ETF는 한국은행이 먼저 길을 놓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뒤집어 말한다면, 만일 한국은행이 M2 집계 방식을 수정하지 않고 있었다면 ETF 상품 출시는 아마도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화 환율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통계는 수정할 수 있지만, 통계의 근거가 된 현실을 수정할 수는 없다. 보유세 여부와 무관하게(보유세는 집 값 자체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소유할지를 결정할 뿐이다. 즉 기존 주택보유자들이 물러나고 대신 현금 창출 능력이 있는 새로운 고소득 집단이 주택을 보유하도록 만들 뿐이다), 총통화 증가율이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M2 집계 방식 변경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수도권에서의 주택 가격은 상승한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다액 현금 보유자들이 많기 때문에 보유세를 주택 매수 대기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이른바 1급지의 주택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현재 주택 정책은 전세 축소를 유도하기 때문에 풍선효과로 월세를 덩달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또 전세는 개인의 자산 형성에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로 인식되기 때문에 전세 공급이 감소하면 오히려 소득 대비 하급지라고 할지라도 주택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주택 가격은 상승하며 전월세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수요를 뒷받침해줄 대출만 제한된다. 이는 가계 소득에서 주거 비용 비중이 커지도록 만들며, 결국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주거 비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다른 말로 해서, 결론적으로 주택 보유자는 보유세에 불만을 갖게 되며, 무주택자는 상승한 전월세 가격에 불만을 갖게 되고 어렵사리 주택을 구매한 사람은 대출금/이자 상환에 허덕여 불만을 갖게 된다. 모두가 불만인 기적의 주택 정책이 탄생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택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일차적으로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이것만으로도 혁명적인 수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공급을 늘려야 하고, 소득을 늘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중에 어떤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증시에서 털린 대중은 다시 한번 지붕없는 하늘 아래 눕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등에 식칼을 꼽던 구자본주의만큼이나 나쁘며, 영생교주만큼이나 허황되다. 이재명 정부의 리버럴 헤게모니하에서 87년 체제는 이렇게 비열하게, 또는 추잡스럽게, 허무맹랑하게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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