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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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우스의 현실과 미래- 다극화, 파편화, 이념없는 세계에서 살 길 찾기

60년대 비동맹국가들 사이에는 최소한의 이념적 공통점, 즉 반제국주의 친사회주의라는 성향이 존재했다. 지금의 글로벌 사우스에서 결여된 것은 바로 이 이념이며 이들은 굳이 공통된 이념을 형성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글로벌 사우스 자체의 비이념성 비개입성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며 이들이 다극화를 추구하면 할수록 기존의 헤게머니 국가들(미국 유럽)은 이를 기화로 삼아 국제 질서를 분산화 파편화시킬 기회가 오히려 커진다… 그 때까지는 위기가 지역적으로 중첩되는 지엽적 혼란들이 계속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이념 없이도, 불가피하게 외부적 필요성에 의해, 동맹적 성격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지정학적인 틈에 한국이란 나라가 있다. 한국은 멕시코와 함께 선진국이 아니면서도 글로벌 사우스에 포함되지 않는 유이한 국가다. 한국은 G8의 꿈을 꾸며 무너져가는 서구 헤게머니에 편승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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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 모두에게 공평한 버블은 없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재명 정부의 ‘먹사니즘’하에서 우리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자금(예금, 현금 보유)이 가장 많은 인구집단은 50대다. 그리고 이들은 이재명 정권의 가장 열렬한 지지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좀 더 좁혀보면, 50대 중에서도 강남 거주자들이다. 다만 이들의 수익률은 주택 상승으로 인한 기대 수익률보다는 좀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증시버블이 주택버블보다는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결국 최종 승자는 이들 50대 강남 거주 가구, 즉 사회 엘리트들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권이 중도-보수를 내건 것은 레토릭이 아니라, 현실을 지칭한 것이다.
이 ‘환상적’ 금융자본주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진짜 복병은 증시 버블을 지속할 수 있는 한국 기업들의 이윤율이나, 민간가계의 여유자금이 얼마나 동원될 수 있을까 따위에 있지 않다. 한국 금융시장의 버블을 결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글로벌 유동성 동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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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학복합체’ (Financial-Academic Complex; 金學複合體)- 트럼프 관세정책의 배후에 있는 ‘30인위원회’, 그들은 누구인가?

분명히 G30은 글로벌 최상위 엘리트들 사이의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다. 록펠러 재단이 만든 또 다른 국제 민간기구인 3자위원회(미국, 유럽, 일본의 정치인 유력 기업가 모임)가 정계와 재계의 유착을 위한 국제적 모임이었다면, G30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금융가와 학자들의 회의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금학 공동체’라고 이름 지을 수 있겠다… 2024년의 G30 리포트는 금융 위기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리포트에 제시된 개선안들은 이미 미 재무부와 연준에서 논의 중이다. 뒤집어 말하면, 조만간 금융 위기에 준하는 상당한 정도의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때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구세주로 다시 나타나기는 할 가능성이 높다…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옛날처럼 무식하게 무기들고 싸우는 걸로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다.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며, 그 언어를 이론화하는 초능력자들이 세계의 지배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G30은 지난 50년대 탄생한 미국의 괴물인 군산복합체(MIC: 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국제화된, 현대적이며 우아한, 그리고 ‘문과적인’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Miran 은 그런 배경 하에서 튀어나왔다. 아마도 그는 ‘머리’라기 보다는, ‘입’ 혹은 ‘통로’에 더 가까워 보이며, 그게 자본주의 하의 지식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초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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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숙정, 혹은 정화 : 미국의 soft power의 자진 해소, 그리고 전지구 시민사회의 허상

머스크가 이끄는 행정개혁위원회(DOGE)가 단행한 것은 단지 ‘행정 효율화’가 아니다.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제국의 재구성이다. 그것은 과연 제국의 숙정일까 정화일까? 엠파이어의 숙정은 뱀파이어이길 멈추는 첫걸음일까?.
그동안 미국은 ‘미국적 가치’를 외부에 이식하는 대외전략을 구사해왔다. 그것은 LGBTQ나 DEI와 같은 도덕적, 사회적 가치에서부터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제도, 이를 위한 ‘컬러 혁명’ 및 ‘시민사회’의 형성 등의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방법이 soft power를 통한 체제 전환이었다. USAID와 NED는 이같은 활동의 중심부에 있었다… 이른바 민주당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가치들’(LGBTQ, 인권, 페미니즘, 기후 및 환경, 민주주의 등)을 전파하고 공유하던 각국의 정부기구 및 시민단체들은 트럼프 정권의 이번 조치로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선도적인 자본가들은 무너져 가는 제국인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바닥부터 다시 쌓아올리기로 작정했으며 세계는 이제 그 첫걸음을 보고 있는 중이다….분명한 것은 앞으로 많은 것들이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와 외연들을 갖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민사회, 제국, NGO, 민주주의, 체제전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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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들과 권력자들 : 미국 트럼프 정권의 성격과 새로운 자본가집단의 출현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와 트럼프 후보의 어마어마한 선거 자금 규모는 이번 선거야말로 미국 자본가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각기의 후보를 지지한 ‘역사적인 자본가들 사이의 투쟁이었음을 말해준다… 과거 정치에 진출한 자본가들은 상층부 협상에 자리를 차지했다면, 지금 출현한 자본가들은 글로벌 금융에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정치인에 버금가는 ‘대중적 스타’로 자신을 내세운다. 이들은 스스로 어젠다를 만들 뿐만 아니라, 이를 정치적으로 수행하고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SNS)까지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과거 자본가와 지금의 트럼프지지 자본가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다…
윤석열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의 1차 탄핵소추안과 2차 소추안의 차이를 주목해야한다… 한국의 시민들은 12월 7일 1차 탄핵 투표 때나, 12월 14일 2차 투표 때나 같은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실은 그 두 표결의 의미는 지정학적으로 전혀 달랐으며 정치 엘리트 집단 내에서 판단이 달라졌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 중국은 당근을 던졌고, 미국의 일부 선도적인 자본가들은 이에 호응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1차 세계화와 같이 미국이 손해보는 짓은 안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이것이 G2의 성립 선언이며, ‘포풀리스트’ 트럼프의 계급적 본질이기도 하다; 더 많은 이윤의 추구와 이를 위해 세계를 농단하고 분할하는 것. 그리고 이 한 편의 허황한 무대 주인공의 교체를 세상은 흔히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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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미래, 오지 않을 과거, 제국의 망령: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과 전세계 질서

해리스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대중에게 ‘차악’은 트럼프였으며, ‘최악’이 해리스였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길게는 지난 50여년간 미국을 이끌어왔던 노선, 즉 세계화에 대한 거부였으며 그 세계화의 최종적인 이념적 버전인 민주주의 가치 동맹에 대한 기각이었으며, 가치 동맹의 절대 수호에 대한 기각이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기각이고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각이었다. … 대중은 현재가 지속되는 미래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과거의 일원론적(unilateral) 미국 제국과는 다른, 지역 맹주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세계 전략을 구축하고 그 중의 약한 고리는 매우 강하게 압박하려 할 것이다. 거기가 우크라이나가 될지, 이란이 될지, 혹은 대만(또는 한반도)가 될지는 각 지역의 세력들의 대응 여부에 달렸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하여 전쟁을 원한다면, 트럼프는 ‘평화의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전쟁에 동참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화는 기각하더라도 세계화의 결과로서 축적된 미국의 힘을 유지하는 것만이 미국 내에서도 자신들이 세력을 확대하고 계급투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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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봉기 1년, 광기의 전쟁과 전쟁의 이성

가자 봉기 1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절멸을 향한 대학살극이 벌어진 1년후, 지금 여기서 차라리 질문되어야 할 것은, 왜 지난 2차 대전 이후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공식적으로 ‘인권’과 ‘국제협력’, ‘전쟁방지’를 외치던 미국을 축으로 한 글로벌체제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대량학살을 찬양하며 심지어는 핵전쟁의 위협까지도 ‘게임’의 한 부분으로 농단하게 되었는가, 왜 인류의 양심과 ‘천부인권’은 학살과 전쟁과 심지어는 ‘비인간화’를 막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봉기를 통해 서구는 지난 2차 대전 이후 수립된 글로벌체제, 그리고 그 체제의 보편화된 가치들, 소위 ‘글로벌 시민사회’의 규범과 상식을 폐기하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수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시험대에 오른 종목들이 인권과 전쟁에 대한 국제 규약들이다. 따라서 과거의 인권적 성과들에 기초한 호소와 비난, 항의는 이제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같은 ‘인간적 가치’를 만들어낸 토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미친 전쟁의 광기, 그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 인간적 비극, 인권의 무력함과 같은 광기의 뒤안에는 냉정한 이성적 계산이 자리잡고 있다. 다만 그들은 서로 가진 무기가 다르며 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겹게도 많이 죽이고, 아주 오래 갈 것이며, 인간적인 호소들은 위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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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Global South: 파산과 정변 사이에서

방글라데시와 케냐(그리고 이미 스리랑카)는 이제 겨우 서막을 알리는 전세계적 현상의 징조일 뿐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연쇄 부도가 나거나, 혹은 부도를 피하기 위해 채권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더 심한 착취를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부채 싸이클을 보면 부채를 낼 수 있을 만큼은 이 세계는 민주적이며 평화롭다가,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폭압과 전쟁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화폐’는 오직 부채(신용)를 통해서만 창조된다. 자본이 증식되는 동안에만 자본주의의 관대함은 유지된다. 그리고 증식의 시대는 끝났다. 좋은 시절도 다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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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민주주의 : 미국 정치체제의 진퇴양난

system works라는 말은 미국에서 매우 흔하게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로 번역되고 오해된다. 하지만 포드가 말한 system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 때 시스템이란 상층부에서, 즉 권력 엘리트들이 자신들끼리 권력을 주고 받으며 기득권을 수호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담합’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즉 권력 카르텔의 작동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다른 미국의 정치가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트럼프는 지난 50년간의 ‘초당적’(bi-partisan) 전통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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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선거결과2 (프랑스 영국 선거) – 폭탄 돌리기: 출구(Exit) 없는 유럽의 도박

영국과 프랑스의 집권 엘리트들은 다가오는 위기의 냄새를 맡고 정권을 떠넘겼다. 또는 최소한 자신들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는 자리로 퇴각했다. 떠넘겨진 폭탄을 들어올리며 승리를 외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며 끝이 좋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 노동계급정치가 자신의 정치를 제대로 구사하지 않는 한 선거는 스윙 게임이고, 유권자는 한 순간 ’주권‘의 행사자로 만족하며 체제를 견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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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선거 결과 분석

더 이상 세계화가 통하지 않는 세계, 즉 자본주의의 외형적 확대가 불가능한 세계에서는 이제 자신의 사지를 잘라내서 팔아먹는 내향적 신자유주의화, 말하자면 선진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의 강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6월 10일 유럽 의회 선거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우경화가 아니다. ‘중앙’은 유지(center holds)되고 있지만(유럽 통합은 더 이상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중앙은 이미 자본의 압력 하에 굴복(center folds)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center holds, but center f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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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emerging market)의 선진시장(developed market) 추월:

그렇다면 왜 글로벌리즘의 끝에는 역사적으로 대규모 지정학적 위기(19세기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의 양차 대전)가 발생했는가? 이는 평화시의 통화 헤게모니(파운드 헤게모니, 달러 헤게모니)를 통한 착취가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때 강제적 폭력적 수단을 통해 이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비극이었던 첫 번째도 겪었고 소극이었던 두 번째도 겪었는데, 무려 세 번째인 이번에는 웃을 것인가 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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