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학복합체’ (Financial-Academic Complex; 金學複合體)
- 트럼프 관세정책의 배후에 있는 ‘30인위원회’, 그들은 누구인가?
2025년 4월 25일 / 글로벌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금학복합체’(Financial-Academic Complex), 30인위원회(G30: Group of Thirty), 록펠러재단, 마이런보고서, 마이런-루비니, 세계화, 관세, 국채, 금융위기
트럼프 관세 전쟁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Stephen Miran의 ‘가이드’(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에 기초하고 있다.
Miran은 지난 3월부터는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사람의 경력이 재미있다. 그는 일반적 의미의 경제학자는 아니다. Miran이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한 적이 없으며, 강단에 선 적도 없다. 그는 Hudson Bay Capital Management라는 헤지펀드에서 ‘전략가’(Strategist)로 일했다. 미국에서는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 컨설팅펌 등에서 일하는 ‘분석가’들을 통칭 ‘이코노미스트’(economist)라고 부른다(한국으로 치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이해하면 쉽다).
Miran의 ‘관세 및 국제무역’ 이론은 아마도 경제학이라는 분과 학문이 생긴 이래 이번처럼 학파에 상관없이 모두가 의견일치를 본 적이 없을 것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신고전파, 행태이론, 케인즈주의자, 맑시스트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의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력에 있다. 그는 말하자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다. 지난해 11월 난데없이 가이드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그는 완전히 무명인사였다. 단 한 번도 언론에 나온 적조차 없다(그는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취임한 뒤에도 단 한 번도 언론과 접촉한 적이 없다).
경력도 불확실하다. 2010년에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다음 행적은 년표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학위를 딴 뒤에 ‘맨하탄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재직했는데,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려지지 않는다. 연구소에서 자체 발간한 주요 인사 행적에 그의 이름은 없다. 게다가 맨하탄 연구소는 관세나 국제무역, 국채 시장, 금융 등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다. 맨하탄 연구소는 미 국내 경제/사회 문제, 특히 복지 및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곳이다.
그러다가 지난 2020-21년 트럼프 1기 내각의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밑에서 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그 뒤에 Amberwave Partners라는 헤지펀드를 공동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작 2022년 한 해 동안 운영하고는 문을 닫았다(망해서 닫았는지는 불확실하다). 이후 Hudson Bay Capital에는 언제 몸을 담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2024년 초 무렵인 듯하다.
트럼프 정권 하에서 국제교역은 치명적인 교란에 직면했다. 이는 단지 무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 체제 전체를 재편한다.
그런데 이처럼 아무 경력이 없는 사람이 2008년 금융 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그래서 일명 “Dr. Doom”으로도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와 갑자기 2024년 7월에 리포트를 썼다. 그것도 미국 국채 시장의 수익률 곡선을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에 대한 매우 심도있는 논의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관세론을 썼다. 4개월 만에 국채시장 분석과 국제무역 체제론을 쓸 정도로 ’천재‘가 여태껏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었다는 건 놀라운 얘기다. 왜냐면, 국채 시장 분석론은 실증 분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년간 해당 분야를 연구해 온 전공자가 아니라면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국제 무역 체제론까지 불과 몇 개월만에 썼다는 것은 그가 천재이거나, 아니면 실은 배후에서 이뤄진 집합적 연구를 그저 발표하는데 불과한 ’통로‘, 즉 대변인에 불과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말하자면 공동으로 조별과제하고 대표 발제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라는 혐의가 짙다.
또 다른 수수께끼가 있다. 루비니는 ’학문적‘(실은 대중적) 성가로도 유명하지만 성격도 유명하다. 2008년 금융 위기 예측으로 뜻밖의 출세를 한 이후에는 전세계의 억만장자들과 뉴욕시의 펜트하우스에서 파티에 절어 살고 있다는 보도(Financial Times)도 지난 2016년 무렵에 나온 바 있다.
이렇듯 상류사회의 단물에 빠져 사는 사람이 생판 무명의 ’이코노미스트‘와 공저로, 그것도 기껏해야 중소규모의, 이름도 없는 헤지펀드에서 ’공동 리포트‘를 쓴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Miran의 ’노작‘이 발간된 Hudson Bay Capital은 전체 자산(AUM)이 200억 달러에 불과한, 월가 기준으로는 중소 규모 펀드다).
루비니가 이런 수준에서 놀 인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Miran 리포트가 나오기 전에는 이 펀드는 매크로 투자와는 거리가 먼, 기껏해야 투자 최적화 기법 따위나 논하는 곳이었다.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지방에서 떴다방하던 중소 시행업자가 갑자기 심도있는 국토균형발전 계획을 발표하는 것 정도에 해당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트럼프가 Miran이 작성한 ‘관세 가이드’를 현실 정책으로 발표하자 경제학자들이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났다.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이론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이었으며, 당장 “누가 Miran에게 학위줬냐”고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사람이 그토록 중용되었을까?
그런데 Miran에게 경제학 학위를 준 사람을 보면, Miran의 출세가도를 수긍할 수 있다. Miran은 지난 2010년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유명한 사람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 고문을 맡았던 Martin Feldstein이다. Feldstein은 작은 정부, 재정 적자 축소론 주장자이며, 그런 점에서 Miran의 견해는 Feldstein의 주장을 현재의 조건에서 정책적으로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Feldstein의 경력에는 거의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는 ‘Group of Thirty’의 멤버였다. 흔히 G30이라고 불리는 모임이다. 선진국 모임인 G7, 중진국까지 포함하는 G20과 같은 국제기구에 스스로 비견하려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체는 전세계의 최정상에 있는 금융가와 학자들 사이의 느슨한 연대체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은 30명으로 한정돼 있다.
현재 멤버는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인도중앙은행장을 지낸 라구람 라잔(의장), MIT 경제학과 교수인 Daron Acemoglu, 알리앙쯔그룹 수석자문위원인 모하메드 엘-에리안, 전 미국 재무장관인 티모시 가이트너, 재닛 옐런,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인 Niall Ferguson, 현 코트디브아르 대통령인 티쟌 티암(크레딧스위스 은행 CEO였다가 거하게 말아먹고 UBS에 합병되었다), 중국인민은행 총재 판공셍, 그리고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케빈 와쉬(부인이 화장품 재벌인 에스티로더 상속녀다. 그는 금 본위주의자로 그가 연준 의장이 되면 미국 통화체제는 준금본위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제 금 시세가 들썩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등이 있다.
Group of Thirty(G30) 회원들. 명망있는 은행가들과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전 회원으로는 좀 놀랍게도(성향상) 노벨 경제학상을 탄 폴 크룩만을 비롯하여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뒤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한 마리오 드라기,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등이 있으며, 특히 이스라엘 중앙은행장 출신으로 JP Morgan International의 의장을 지낸 쟈콥 프렌켈은 이 모임의 운영에 지난 20여 년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드라기와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장 출신으로 갑자기 정계에 데뷔하여 현재 캐나다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크 카니 전 영란은행 총재도 정계 진출 직전까지 회원이었다.
분명히 G30은 글로벌 최상위 엘리트들 사이의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다. 지난 1978년 록펠러 재단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뿌리는 지난 1963년 록펠러 재단이 만들었던 벨라지오그룹(Bellagio Group)이었는데, 70년대 중반 록펠러 재단이 Globalization 체제를 기획하면서 확대 개편한 것이다.
이전에 <전망과실천>에서 소개했듯이 록펠러 재단이 만든 또 다른 국제 민간기구인 3자위원회(미국, 유럽, 일본의 정치인 유력 기업가 모임)가 정계와 재계의 유착을 위한 국제적 모임이었다면, G30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금융가와 학자들의 회의체였다고 할 수 있다.
G30에서는 매년 특별보고서를 발행한다. 지난 2023년의 특별보고서의 내용은 “중앙은행은 보다 전통적인 과거의 업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떠맡았던 경제 부흥 임무는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이론적으로는 Financial Dominance의 종식).
지난 2024년 7월의 Miran과 루비니의 리포트는 financial dominance 종료에 따른 중앙은행이 빠진 자리를(즉 더 이상의 QE는 없다) 어떻게 미 정부가 국채 만기를 조작해서 국채 시장에서 큰 문제없이 금리 인하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제시한 것이었다 (Fiscal Dominance의 도입. 즉 경기 유지 업무가 금융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전환. 중앙은행 QE는 없는 대신에 재무부의 stealth QE가 대신한다).
실은, 서구 언론에서 이 마이런 & 루비니 리포트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는 것은 매우 의아하다. 지금 미 국채시장 및 증시, 외환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Miran-루비니 공동 리포트에 제시된 내용을 투자자들이 ‘선취’(front-running)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Miran-루비니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발행을 늘림으로써 장기 국채 금리가 구조적으로 약 50bps 증가하며, 그에 따라 다른 자산 가격이 재조정된다).
장기 국채 발행 계획(마라라고 협정)을 넌지시 흘린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발언을 감안하면 아마도 년말 쯤에는 이 리포트가 다시 화제가 될 것이다.
반면 지난 2024년의 G30 리포트는 금융 위기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로 어떻게 순조롭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금융 위기의 원인 중의 하나로 미국 은행들의 이윤율 하락을 언급한 것이 흥미롭다).
투자은행의 보충적 자기자본 비율(SLR)을 완화하고 청산 결제에 중앙은행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리포트에 제시된 개선안들은 이미 미 재무부와 연준에서 논의 중이다. 뒤집어 말하면, 조만간 금융 위기에 준하는 상당한 정도의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때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구세주로 다시 나타나기는 할 가능성이 높다.
G30은 친목 모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동일한/공통된’ 견해를 가진 집단인 것도 아니다. 회원 명단을 보면 다양한(모두 주류 내에서의 다양성이다) 이론과 이해관계를 가진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공개적인 발언을 한 적도 없다.
다만 서로 의견 교환을 하며, 그 정도 고수쯤 되면, ‘척하면 압니다’ 수준이기 때문에 글로벌 엘리트들의 동향 탐색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전세계 중앙은행장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 총회도 그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들은 눈 빛 교환만으로도, 그리고 이들 내에서도 ‘주도’하는 그룹의 관심사나 연구 내용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일들이 일어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며, 이같은 과정을 통해 ‘아젠다’는 형성되고 확산된다(2022-23년 사이에 금융 이론가나 금융자본가들 사이에 이뤄진 financial dominance의 종식에 대한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옛날처럼 무식하게 무기들고 싸우는 걸로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다.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며, 그 언어를 이론화하는 초능력자들이 세계의 지배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G30은 지난 50년대 탄생한 미국의 괴물인 군산복합체(MIC: 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국제화된, 현대적이며 우아한, 그리고 ‘문과적인’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금학 공동체’라고 이름지을 수 있겠다.
현재 G30의 운영을 보면, 설립자인 록펠러재단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운영기금 후원자들은 각국의 중앙은행과 대형 펀드들로 채워져 있다. 후원자나 회원 명부를 보면 한국보다 경제 발전 속도가 훨씬 뒤쳐진 브라질, 남아공, 폴란드, 루마니아 등도 포함되어 있는데, 한국의 금융계 기관이나 인사들은 이 글로벌 금융-지식 엘리트 모임에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금융자본의 독자적 성장이 상대적으로 뒤쳐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Miran은 갑툭튀지만,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이미 G30에서 제기되고 논의되었으며, 금융 엘리트들 사이에서 전파된 것이었다. Miran은 그런 배경 하에서 튀어나왔다. 아마도 그는 ‘머리’라기 보다는, ‘입’ 혹은 ‘통로’에 더 가까워 보이며, 그게 자본주의 하의 지식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초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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