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주년 특별기획_이슈리포트(1)
사회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안전사회 속에서 안으로 곪아가는 폭발압력
2024년 10월 24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
범죄, 감옥, 사적폭력, 강력범죄, 안전사회, 사회이동, 부동산, 자살율, 고소고발, 소송사회, 법만능주의
사람은 태어나서, 발버둥치다 늙고 병들며 결국 죽는다. 생로병사의 삶과 죽음의 과정은 만인에게 동일하지만, 그러나 그 굴곡이 만인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이 모인 것을 우리는 ‘사회’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국의 그 ‘사회’는 조용하며, 무기력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그러나 그 안에서 특정 인구 집단에 대한 공격은 늘어가고 있다. 즉 확장이 아니라, 내파(內破)되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의 지표들은 언어상으로 시끄러웠던 온갖 사회적 정치적 동요들과는 대조적일 정도로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매우 안정적이다. 수명은 증가하고 있고, 범죄도 감소하고 있다. 개인들 사이의 분쟁도 줄고 있다. 사적 폭력이나 사적 제재에 대한 폭증하는 담론들과 실재하는 현실은 달랐다. 살인도 사고도 감소 중이다. 그러나 범죄대상으로서 여성과 노년층은 ‘안전화’와 거리가 멀다.
그리고 고여있다. 사회 이동은 줄고 있으며, 계층 이동의 ‘전망’도 부정적이다.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일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소멸해 가고 있다. 점점 적은 수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죽음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를 ‘인구 감소’나 ‘고령화’와 같은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거나 혹은 이 추세를 작동시키는 진정한 힘을 왜곡시키는 역할을 할 우려가 있다. 하나씩 살펴보겠다. 사회지표로 살펴보는 현대 한국의 자화상이다.
1. 안전사회: 사회안전의 불균등
지난 2008년의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일시적으로 증가했던 한국의 범죄 건수는 2017년을 기점으로 상당한 감소 추세를 보인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경찰백서>), 2009년의 전체 범죄 건수는 202만 여건이었는데, 2023년에는 152만건으로 감소했다. 범죄 발생건수가 무려 25% 가량 감소한 것이다. 사회 통계, 특히 범죄 통계는 통계상의 난점들(과소 리포팅 등)이 존재하지만, 이같은 오류가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과잉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범죄 건수의 감소는 매우 뚜렷한 현상이다. 즉 한국 사회는 매우 안전해졌다. 그리고 범죄 추세 감소의 결절점은 대략 2017년 무렵이다. 왜 이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범죄유형별 범죄 건수(2009-2023). 출처: 경찰청 <경찰백서>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이동 및 접촉 제한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범죄 감소를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난 2022년 이후에도 비록 2023년도에 다소 범죄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코로나 이전(2019년)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범죄 발생 건수를 보여주고 있다.
범죄 유형별 추세
하지만 세부 내역별로 들어가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강력범죄(살인, 강간, 특수강도 등) 발생 건수는 지난 2010년 이후 거의 감소하지 않았다. 2010년에 2만 5천 8백여건이었던 강력범죄 발생건수는 2023년에는 2만 4천 9백여건을 기록했다. 즉 전체 범죄 발생건수는 25% 가량 감소했지만, 강력범죄는 고작 3% 남짓 감소하는데 그쳤다. 전체 범죄 건수의 감소폭에 비해 강력범죄의 감소 폭이 작다는 것이 정확한 요약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사회가 마치 ‘흉폭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 사회가 더 ‘흉폭화’되었다기 보다는 전반적인 사회적 안정화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력하게 비법적 수단을 통해서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사회의 특정 부분들은 사회 변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일한 비율로, 심지어는 더 확대되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지난 15년 동안의 사회변화는 사회의 특정 영역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기간의 사회적 변화는 여전히 동일한 사회적 결과물을 동일한 비율로 생산해내는 체제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범죄 유형별 항목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감소한 것은 ‘폭력범죄’다. 폭력범죄 발생건수는 지난 2010년 29만 2천건에서 2023년에는 23만 4천건으로 감소했다(폭력범죄와 교통범죄 발생건수 감소가 전체 범죄발생 건수 감소를 주도했다).
폭력범죄는 ‘사인간의 분쟁’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범죄형태다. 그러므로 폭력범죄가 감소했다는 것은 사인간의 분쟁이 감소했거나, 혹은 사인간의 분쟁을 사적인 형태(폭력)가 아닌 다른 방법(예컨대 공권력에의 호소)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폭력범죄의 감소는 사회가 덜 폭력적이게, 즉 덜 흉폭화되어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생긴다. 이는 강력범죄 발생건수의 유지와는 반대방향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한국 사회는 안전하다’는 담론과 ‘범죄가 흉폭화했다’는 담론이 동시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는 사회의 각기 다른 측면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위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폭력범죄 발생건수의 감소에 ‘공권력에의 호소’는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답을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요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인간의 분쟁에 경찰에 신고하여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경우 경찰 출동건수를 항목별로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통계를 구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고소고발로 법적인 수단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놀랍게도 지난 15년 사이에 개인들 사이의 고소고발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한국 사회는 갈수록 ‘법 만능주의의 확산’되고 있다는 통속적인 혹은 학술적인 인식과는 정반대되는 현실이다.
반면 범죄 유형에서 발생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범죄가 있다. 지능범죄, 즉 사기 횡령 등 이른바 화이트칼러 범죄다. 지능범죄는 지난 2009년 28만 2천건 발생했는데, 2018년에는 34만 7천건으로 늘어났으며, 코로나 국면 때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 2023년에는 무려 43만 2천건으로 증가했다. 즉 지난 15년 사이에 무려 60%나 증가한 것이다.
따라서 지난 15년 사이의 범죄를 통해서 본 한국 사회의 변화는 ‘주먹으로는 덜 싸우고 대신에 말로 속인다’라고 요약할 수도 있다. 강력범죄 건수가 줄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 ‘말’로 속은 것에 대한 단순한 주먹을 넘어서는 사적 분노의 표출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즉 보복성 강력범죄의 발생).
전반적으로 범죄가 감소하기는 하지만 개개 범죄는 흉폭화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확인은 법무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감옥 정원과 수용인원(2014-2023), 출처: 법무부 <법무백서>
한국의 감옥 수용 정원(구치소 포함)은 지난 2014년 46,430명에서 2023년에는 49,922명으로 증가했는데 1일 평균 수용인원은 2014년의 50,128명에서 2023년에는 56,577명으로 증가했다. 강력범죄의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일일 평균 수용인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개별 범죄의 형량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즉 격리 기간의 장기화).
따라서 한국 사회지표에서 나타나는 표면적인 안정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한국 사회 내부는 흉폭화, 또는 예각적으로 분화되고 있으며 그 경향은 아직은 국가를 향해서도 사인들을 향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고 잠정 평가할 수 있다.
범죄 피해자 분석: 젠더, 연령
범죄 발생과는 별개로, 범죄가 누구를 대상으로 행해졌는가(범죄 피해자 현황)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이 관찰된다. 살인 범죄의 경우, 남녀 성비는 코로나 사태 때의 일시적인 변동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55:4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이는 ‘살인’만으로 한정했을 경우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 통계에 따르면 외압에 의한 죽음(타살)으로 그 범위를 넓힐 때(이 경우에는 살인만이 아니라, 상해치사 등의 결과적 죽음까지도 포함된다),
지난 2023년 처음으로 타살된 여성의 숫자가 남자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즉 사고를 제외한 외인(外因)에 의한 죽음은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특히 20-40대 사이의 여성의 타살이 증가 추세에 있다. 이는 사회적 여성 혐오가 실제 범죄로도 표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매우 역설적으로, 범죄의 측면에서 사회 전체로는 ‘안전’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또한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 전체 범죄 피해자 161만 2천여명 가운데 남성은 73만 6천여명(45.7%), 여성은 45만 8천여명(28.4%), 미상은 41만 8천여명(25.9%)이었다. 2023년에는 전체 152만여명 가운데 남성은 66만 1천여명(43.5%), 여성은 44만여명(29%), 미상은 41만 8천여명(27.5%)이었다. 범죄 감소 속도보다도 여성 피해자 감소 속도가 한참 뒤쳐진다. 따라서 여성들에게는 한국 사회가 ‘안전’하다고 믿을 근거가 사라진다.
그런데 피해자 세부 내역으로 들어가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범죄 피해자 성별 분류. 출처: 경찰청 <경찰백서>
살인범죄가 아닌 다른 강력 범죄들, 강도의 경우 여성 피해자의 비율과 절대 숫자는 2019년 대비 2023년에 오히려 감소했다.
여성혐오의 대표적 범죄라고 할 수 있는 강간이나 강제 추행도 2019년 사회적으로 미투(#metoo) 폭로가 연이어지면서 이에 대한 경각심이 가장 확산되었던 때에 비해서 2023년 여혐이 극심했다는 연도에 거의 동일했거나 혹은 오히려 감소했다. 단, 성범죄의 경우에는 항상 신고의 문제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또한 폭력범죄의 경우에도 피해자 숫자는 남성과 여성 모두 감소했으며, 여성의 감소폭이 남성보다 더 크다. 즉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범죄는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절도범죄 피해자는 남성은 거의 변화가 없었던 반면에 여성은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사회 전체로 절도범죄가 증가하는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절도범죄가 증가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삶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절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진다는 것은 기회구조의 문제(범죄의 용이성)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범죄 피해자 통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사기 범죄의 여성 피해자 숫자가 남성 피해자 숫자에 비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기 범죄 자체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을 상대로 한 사기 범죄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019년 대비 2023년에는 남성 사기 피해자는 약 10%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여성 사기 피해자는 약 20% 이상 증가했다.
피해자 측면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61세 이상의 노년층의 피해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전체 피해자 가운데 14.7%가 노년층이었는데 2023년에는 15.4%로 늘어났다. 21-30세 피해자도 18.5%에서 19.2%로 늘어났다. 노년층의 범죄 피해자 숫자 증가와 마찬가지로 노년층에 의한 범죄도 증가 추세에 있다.
사기와 절도범죄의 증가, 그리고 강력범죄와 폭력범죄의 감소추세는 사회가 안정화되어 가는 반면에 내부적으로 빈곤이 증가하고 일확천금의 욕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압력이 누적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따라서 향후 한국 사회에서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범죄의 관점에서는 한국 사회는 분명히 ‘안전화’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같은 안전화, 또는 안정화가 고령화 혹은 인구 감소의 효과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양자 사이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는 고리들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다가, 해외의 사례를 보더라도 반드시 양자는 동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지난 60년대 말부터 범죄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80년대 말까지 약 30년간 범죄의 시대를 이뤘다. 90년대 후반부터 범죄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흔히 미국의 총기 사건이나 인종 폭동 등으로 인해 미국 사회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담론들은 많지만, 실제 범죄 통계에서는 미국의 사적 폭력은 여전히 감소추세에 놓여 있다. 또한 미국 당국의 대처도 지난 1930년대 이후 70년대까지는 사회적 일탈 행위를 ‘정신병화’했으며, 1980년대부터는 이를 ‘범죄화’하여 대감금의 시대로 진입했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처리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랐지만, 지난 100여년 간 미국에서 감금 인구의 비율은 거의 일정했다. 동시에 이 기간 중에 미국의 인구 증가율은 평균 5%에서 3%대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구는 증가 추세에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의 범죄는 인구적 변동 또는 정치적 변동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처리방식이나 경제문제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사회적 갈등이라는 담론틀로 사회를 분석하기보다는 그 근저에 놓인 경제적 조건들의 변화 및 이로 인한 강제된 인식의 변화로 사회 변동을 추적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사회의 실패’로 여겨지는, 혹은 대표적인 ‘사회병리현상’으로 꼽는 범죄와 수형인구의 시대적인 추이와 변동 역시 사회적인 갈등의 직접적인 결과라기보다는 경제적 조건의 변화와 ‘죄와 처벌’에 대한 강제된 인식의 변화 즉 사회 통제의 측면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동시에 이같은 사회의 안녕과 ‘안전화’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범죄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노년층의 취약성은 여전하며, 가장 크고 강력한 범죄인 살인의 경우에는 여성은 ‘안전화’와는 거리가 멀다. 즉, 한국 사회는 전반적인 안전화 속에서 특정 인구 집단(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심화된 강력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 전체에서 범죄가 ‘흉폭화’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여성에 대한 범죄가 ‘흉폭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2. ‘고인물’ 사회: 이동성의 저하
어느 쪽이든 한국 사회가 안정화 혹은 시셋말을 빌리자면, ‘고인물’이 되어 가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이동 통계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 사회 이동. 출처: 통계청
사회 이동율의 둔화와 부동산: 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한국 사회의 이동율(인구 100명당 이동자수)은 6.25 전쟁 이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초반 정점을 이룬다. 이 시기는 이른바 ‘이촌향도’(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기)에 해당한다. 농촌 인구가 더 이상 감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2000년 대 이후 사회 이동율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2023년에는 12.0으로 1970년의 12.6 수준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사회이동율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산업화가 한계에 이른 것, 혹은 잉여인구(농촌 프롤레타리아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로의 전화)의 감소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의 사회 이동율 감소는 다른 요인들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예컨대 부동산 가격의 변동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인구 감소와 노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년층의 이동이 적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사회 이동은 감소하고 있지만, 지역별 전출입 현황을 보면 서울에서 수도권(경기도)으로의 전출 현상이 나타나면서 동시에 지방에서 서울 및 수도권으로의 전입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서울에서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된 계층이 수도권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사회이동율은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평균 연령이 한국보다 낮은 미국보다 아직은 한국 사회의 이동율이 높다는 것은 수도권으로의 진입 압력이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지역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입 사유를 보면 전체의 34%가 주택 때문이라고 답하고 있는데(가족 사유는 24.1%, 직업은 22.8%), 결국 부동산이 사회이동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뜻이다. 직업보다도 부동산이 더 큰 사유를 차지한다. 부동산을 따라 인간이 움직인다면,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순간(거래 감소), 인간도 부동산에 고착이 된다. 이는 사회적 이동을 더 크게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며,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활력을 감소시킬 것이다. 엔클로져 시대에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였다면, 부동산 버블의 시대에는 “집이 인간을 잡아먹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의 안정화의 또 다른, 부정적인 이면은 바로 ‘자살’이다. 한국 사회 자살률이 전세계적으로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수많은 대책들이 제시됐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으며, 심지어는 2017년 이후에는 오히려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자살자 수 및 자살률 추이. 출처: 통계청
한국의 자살률 추이를 살펴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완만하게 감소해오다가 2017년 이후 다시 반등하기 시작하여 2023년에는 지난 2013년 이래 최고 수준(인구 10만명당 27.3명)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23년은 전년 대비 무려 8.5%나 증가했다. 자살률은 특히 경제적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23년도에 삶의 조건이 극히 악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60대의 자살률이 13.6%나 증가했다(노인 빈곤). 그리고 흥미롭게도 10대의 자살율도 10.4%나 증가했다.
자살율 2023년 최고조 증가: 여성, 10대 여성 자살 폭증
10대의 자살률은 단지 증가한 것만이 아니다. 10대 자살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10대 여성들의 자살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10대 여성의 자살률은 2013년에는 4.1%였다가 2022년에는 6.7%로 증가했고, 2023년에는 8.8%로 늘었다. 2017년 이후 전체 자살률이 높아졌고 10대 남성들의 자살률도 증가했지만, 1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 추세는 다른 인구 집단에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빠르게 높아졌다. 그렇다고 이 시기에 학교 폭력이 특별히 증가하지 않았다 (학교 폭력은 2013년에 비해 2023년은 오히려 감소했다, 교육청 집계 기준).
10대 여성만이 아니라, 20대 여성들의 자살률도 2013년에 비해 높아졌으며 20대 남성들의 자살률도 증가했지만, 그 속도는 20대 여성들이 훨씬 빠르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는 젊은 세대 일반의 삶의 조건이 악화되었고 또한 미래에 대한 전망도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 이외에도, 특히 젊은 여성들의 자살이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월등히 빠른 속도로 높아진다는 것은 젠더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 사회에서 ‘여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범죄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가장 흔히 말해지는 노인 자살률은 비록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가장 높은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특히 70대 남성), 지난 2013년에 비하면 감소한 상태다.
따라서 자살률의 관점에서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불안정하며, 특히 젊은 여성 인구들에게는 전혀 안정적인 삶의 조건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소송 사회 혹은 법 만능주의 사회?
앞서 분석했던 범죄 감소의 경우, 예컨대 폭력범죄의 감소 추세를 한국 사회에서 사적 폭력의 감소로 해석할 수 있을까, 혹은 사적 분쟁의 공적 위탁(공권력에의 의존)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우선 법무부의 법무백서 통계를 보면 공권력에의 의존은 윤석렬 정권 출범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소 고발 추이. 출처: 법무부 <법무백서>
고소 고발은 오히려 30% 감소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고소 고발은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21년부터 급격하게 감소한다. 그리고 2023년에는 다소 증가했지만 여전히 지난 10년간의 추이에 비해서는 30% 가량 감소한 상태다.
따라서 ‘법 만능주의’ 또는 ‘법 담론’의 폭발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사인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법에 의한 해결, 혹은 국가를 상대로 한 법에 의한 해결이라는 법률주의의 확산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관찰되지 않고 있다.
또한 법무부 통계로는 주요 범죄(살인 등 강력범죄)의 기소 건수는 2015년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경찰 통계보다 2015년이라는 변곡점이 뚜렷한데 이는 경찰 통계는 사건 발생을 다루는 반면에, 법무부(검찰)은 기소 여부로 통계를 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통계에는 또한가지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것은 불기소 처분에 대한 불복건수이다.
불기소 불복 건수 (2014-2023), 출처: 법무부 <법무백서>
법집행 불복 건수: 극적인 변화
검찰의 재량행위인 불기소에 대한 민간의 불복 신청 건수는 2017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코로나 첫해인 2020년에도 이같은 추세는 유지되었지만, 2021년부터 갑자기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한다. 2021년에는 무려 전년 대비 45%나 감소했으며 2022년도에도 감소추세가 지속되다가 2023년에는 다시 크게 증가한다.
이는 개인들이 사적 분규를 공권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공권력에 대한 신뢰의 정도에 비례한다기 보다는 개인들이 시스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 공간이 존재하느냐, 그리고 그 정도가 얼마나 관대하냐에 달려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기에는 민간이 정부에 대해 ‘항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보장되었다. 이는 정권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수립이 시민들의 시위에서 출발한 탄핵의 결과로 출범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은 국가 기구가 민간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혹은 대변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국가 기구의 결정(검찰)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권 말기부터 윤석렬 정권 집권 이후의 불기소 처분 항고 건수의 감소는 국가기구가 억압적 내지는 권위적 성격으로 어필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시기에는 시민들은 국가기구가 시민들의 통제를 벗어난 기득권의 것이라고 인식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크게 증가했다. 2014년의 3만 3천건에서 2023년에는 4만6천건으로 늘어났다. 이는 국가의 행위에 대한 민간의 법률적 반발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것이 일개 개인의 불만 제기인 것인지 아니면 기업과 같이 힘과 자원이 있는 집단의 행위인지는 법무부 통계만으로는 판별할 수 없다.
어쨌든 행정소송의 증가는 국가의 행위가 철저하게 법에 의존해야 한다거나 혹은 그 법의 해석에 대해 민간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을 말해주며, 따라서 국가의 행정 행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국가의 사법적 행위에 대한 민간의 이의는 2021년 이후 크게 감소하지만, 국가의 행정 행위에 대한 민간의 이의는 지난 10여년 동안, 특히 2015-17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범죄와 법의 관점에서는 지난 15년의 한국 사회 변화는 범죄적 측면에서는 매우 안정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 즉 안전사회이지만, 동시에 이 사회 내적으로는 폭발압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거나 혹은 오히려 누적되어가고 있는 상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이같은 추세가 고령화나 인구감소와 같은 인구적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2부에서는 이같은 사회 변화를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들을 알아보기 위해 경제와 노동(고용)을 중심으로 사회지표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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