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후기]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창립1주년 심포지엄

민노연 창립식_087

“체제전환과 이중전환” – 자본주의의 위기이자 기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일체화로서 '체제'"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창립1주년 심포지엄

87년 체제를 넘는 비판적 이론(과 실천) 모색

2024년 5월 23일 / 교육선전 
글 <전망과 실천> 편집부

체제전환, 이중전환, 노동운동, 87년체제, 민주주의, 이행,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자본의 위기와 체제 전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1970년대 이후 전세계를 뒤덮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를 지나면서 자본가들은 더 이상 과거의 체제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즉 자본주의에 ‘위기’가 발생했으며 이를 과거의 방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다. 2016년의 브렉시트와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의 수립은 자본가들이 모색하던 새로운 ‘통치방식’이 지정학적, 정치적으로 드러난 것이었으며, 여기에 기후위기에 대한 ‘담론’과 실천이 대두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새롭게 통제할 수 있는 IT 기술의 발전이 공진화적으로 가세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위기는 동시에 기회였다. 1970년대 다국적기업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던 전지구적 자본가계급이 스스로 냉전 구조를 해체하고 다극화와 globalization를 국가마다 전파(그리고 강요)하며 전세계를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질서로 일원화했던 것처럼(권영숙 발제자의 발표에 따르면 ‘이중전환’의 의미), 그 후예인 신자유주의적 자본 분파는 지금의 위기에 당면해서 인류세, ‘전지구적 위기’(기후 위기)라는 인류 공통의 위기를 통해 한편으로 전세계적으로는 서구적 민주주의의 가치동맹과 지역블록(regional bloc) 동맹, 다른 한편으로 일국 차원에서는 주권과 민족주의를 다시 강조하며 국민국가(nation state) 체제로의 회귀를 갈파하는 이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즉 자본가계급 자체가 체제 전환의 선구자이자 지도자이며, 또한 그 후원자로 자신들을 재탄생시켰다. 동시에 전지구적 차원에서 불가피하게도 아직 과거의 유제에서의 모순들은 채 해결되지 못한 채, 새로운 체제 전환의 파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역사의 지점이다. 

민주주의와 노동의 동학,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2024년 5월 10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주최로 “체제전환과 이중전환: 87년 체제를 넘는 비판적 이론(과 실천) 모색”이라는 주제로 연구소 창립 1주년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은 위에서 언급한 세계적 거시 변동에 발맞추어 한국 사회와 87년 민주화이행 이후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이론적으로 진단하고 좌파적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첫 번째 발표에 나선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체제론의 개념적, 이론적 쟁점과 한국 사회 성격 규명” 발표문에서 ‘체제’(regime)과 ‘체계’(system)에 대한 구분을 시도했다. 그는 “체제(regime)는 ‘구조화의 정도’라는 기준에서 어떤 체계(system)가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형태를 뜻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체제론의 관점에서는 “논리를 생산하고 관철하는 중심부 집단의 헤게모니적 지위가 공고하게 구조화되었는지 여부”가 중요하며, 만일 “어떤 체제의 제도적 논리와 중심부 세력이 정당성을 잃고 그와 다른 논리와 행위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체제가 형성되었을 때 이를 ‘체제 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한국 사회는 제한적이고 불안정한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87년 정치 헌법 체제,  신자유주의적 시장 소유권 지상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97년 경제 체제, 잔여적 복지체제의 유산 위에 제한적으로 보편주의 원리가 도입된 97년 복지체제 등이 모순적으로 결합된 구조”라고 그는 평가한다.

두 번째 발표자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은 “체제이행(레짐 체인지)와 이중전환; 87년 체제의 체제 규정과 87년 체제의 전환 가능성”이라는 발표에서 동일한 체제 내에서의 부분적인 성격 변화로서의 이행(transition)과 체제 자체의 변동으로서의 전환(transformation)을 구분하면서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는 독립적으로 구분되거나 별개의 체제이거나, 정치체제에서 경제체제로 ‘체제 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87년 민주화이행은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체제적으로 형성하는 출발점이었고, 그 과정은 정확히 경제적 자유주의의 길을 열기 위한 정치적 이행”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는 이행(transition)이 아니라 전환(transformation)”의 시작이었으며, “정치적 자유화(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 정치적 이행과 경제적 이행은 두 체제 간의 대체나 전환이 아니라”, 상호 연동되어 변화하는 이중전환(double transformation)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논지를 제시했다.

동시에 그에 따르면 ‘87년 체제’는 단지 정치적 체제(자유민주주의 체제)만이 아니라, 노동체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체제전환은 “노동배제적 민주화”였으며 91-93년 간의 ‘전환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완성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런 체제전환은 이후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그는 “민주화 이행 이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수출 주도 발전국가 전략을 수정하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경제적 전환을 감행”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빈부격차, 계급적 양극화 등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는 교정하거나 억제하기는커녕,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펼치는 정치적 외피나 통치의 정당성 장치로 기능”했고 “자유주의 정치는 범민주 세력내에 헤게모니를 관철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로 모든 것을 환원하고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온존시키면서 민주주의의 심화로 나아가는 문제의식과 대안을 봉쇄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를 87년 체제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위기적 증상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87년 체제의 이중전환을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 전환은 결국 현재의 체제로부터의 전환이어야 하며, 현재의 체제는 87년 정치적 이행과 신자유주의적 경제 이행의 이중전환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질서”이므로 “이 질서와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이 체제 전환의 주체는 누가될 것인가? 노동운동은 이같은 전환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노동운동은 이 전환을 위한 사회적 계급적 이해관계의 동맹을 구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이다. 

세 번째 발표자인 김공회 경상대 교수는 “전환의 문제의식 벼리기: 결국 문제는 체제다? – 디지털 전환, 녹색 전환, 그리고 체제 전환”에서 최근 대두되는 전환론들은 “20세기 후반기부터 시작되고 최근 20여년 사이에 가속화된 기업의 이윤 추구 환경 및 전략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이같은 전환은 좌파들을 위한 공간을 창출하기도 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흐름을 ‘급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또 그는 최근 한국에서 일련의 ‘전환론’을 평가하면서, 이들은 근본적인 변혁을 이야기하지만 “왜?라는 질문 앞에서는 각 운동 영역에서 포착된 현 체제의 모수들과 부작용들이 병렬적으로 열거되거나 또는 모두 뭉뚱그려 ‘불평등 심화’에 대한 규탄으로 귀결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체제론의 공백, 난점, 그리고 새로운 현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진태원(성공회대), 지주형(경남대), 미류(인권운동사랑방) 패널들이 위 세 개의 발표에 대한 지정토론자로 나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각 발제와 토론자의 지정토론, 다시 발제자들의 답변으로 연단 토론이 이어지면서 체제전환을 둘러싼 체제론의 이론적 검토와 비어있는 지점에 대한 답변, 그리고 체제전환론에서 동의의 지점과 이견들이 좀더 선명해졌다. 나아가 80년대 체제론이후 체제론의 공백, 난점, 그리고 새로운 현실에 대응한 이론적인 쟁점들이 더욱 부각되었다. 특히 민주주의의 위기 문제와 한국 87년체제의 한계를 ‘이중전환’으로 판단하는 권영숙 소장의 발표와 이에 대한 이견이 97년에 대한 해석 문제로 번졌으며, 최근 대두하고 있는 또다른 체제전환론이 system change라는 점에서 체제를 system으로 볼 것인가, regime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인 문제제기도 이뤄졌다.

또 청중석의 참석자들도 종합토론을 통해서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참석자들은 이론적이고 전문적인 토론 내용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분야에서 경험을 토대로 세계사적, 국내적 변화가 어떻게 이행이후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체제에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의견과 질문을 쏟아냈다. 노동조합운동, 사회단체등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나면서, 발제 토론자들의 학술적인 토론에 새로운 긴장감과 문제의식을 던지기도 했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 정세에 대한 이론적 개입을 표방하는 연구소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모두 의미있는 발언이었지만, 이들 중에서 흥미로왔던 것은 전교조 교사 참석자가 ”현재의 교육철학이 기존의 자본주의에서 ‘역할’하는 노동자의 양성에 초점이 맞춰졌던데 반해, 2050년을 겨냥해 새롭게 내려온 교육 지침은 완전히 새로운 인간형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지침이 OECD(경제협력기구; 자본가들의 글로벌 발전계획 수립 및 이행 감시 기구)에서 내려왔다”면서 곤혹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체제 전환은 단지 어느 ’한 부분‘의 변화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래서 체제의 요소들이 아닌 체제를 총체론적으로 봐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권영숙 발제자가 마지막에 말했듯이, 이 심포지엄의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론의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한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이고, 체제전환은 불가피하게 이 총체적인 사회, 즉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전환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각 분야에서 다양하지만 중층적으로 전개되는 수많은 대립과 투쟁을 거치면서 헤게모니가 관철되어가는, 또는 헤게모니가 파괴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는 이번 심포지엄의 성과를 바탕으로 연관된 작업들을 계속해서 펼쳐나갈 예정이다. 

토론회 앨범 보기 : http://dem-labor.org/?p=11537

심포지엄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com/live/kADuqzD8Qlw\
심포지엄 자료집 : 이후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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