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사회주의 정치 실험의 시작과 끝은 어딜까?

: DSA made in the USA, 그리고 미국 진보정치 실험의 한계적 재연

2026년 9월 16일 / 글로벌 사회운동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IS(International Socialists), 통일사회당, the radical, 민주주의, 사회주의 당선가능성, 진보정치, 계급, Woke, Populist Left(좌익 포플리즘)

1. Populist Left(좌익 포플리즘)

지난 8월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위스콘신 주지사 예비경선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프란체스카 홍(한국명 홍윤정) 민주당 후보는 공화당 예비경선 후보와의 TV 토론에서 자신의 정책이 ‘급진적’(radical)이라는 비난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정말 급진적인 것은 위스콘신주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7.25 달러밖에 안된다는 사실이며, 팀 티파니(상대 후보)가 선거부정론자라는 사실이며, 여기 위스콘신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조차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받아쳤다.

물론 홍은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승리한 후보는 위스콘신주 민주당 지역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데이빗 크롤리 후보(밀워키시 행정관)였다.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데이터센터 건설 문제에 있어서 홍은 ‘1년간 유예’를 주장했지만, 크롤리는 “지역주민 의사에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위스콘신주 전체로 보면 민주/공화당원 할 것 없이 데이터센터 건설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으며 동시에 물가와 임금에 이어 세번째로 중요한 이슈라고 유권자들이 꼽은 사안이지만, 정작 예비경선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크롤리의 주장대로 하면 소규모 카운티(한국식으로는 군)에서는 지역 유지들이 얼마든지 여론을 만들 수 있고, 결국 데이터센터 건설을 막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난 8월 미국 위스콘신주 민주당 주지사 예비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미국민주사회주의자 소속의 프란체스카 홍이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 WUWM

홍의 선거는 여러모로 흥미로왔다. 왜냐하면, 홍은 미국민주사회주의자(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부인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르 오카시오-코르테즈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난 모르는 사람”이라고 지지(endorse)를 거부했으며, 오카시오-코르테즈는 “Woke 1 is bit crazy”(소수자주의는 좀 미쳤지요) 라고 비웃었다. 그런데 홍은 강고한 그리고 급진적인 woke 주의자(LGBTQ 권리 운동)였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LGBTQ와 같은 아이덴티티 운동 전체를 싸잡아서 ‘제 정신이 아닌 듯’이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오카시오-코르테즈가 대안으로 제시한 woke 2에는 ‘계급’이 들어가 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생존권’에 대한 인정도 들어있다. 이스라엘 이슈, 즉 가자 학살 문제는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중간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는 이견이 거의 없는, ‘인종청소’, ‘전쟁범죄’의 문제로 치부되었었다. 근데 그것을 처음에 비튼 인물이 샌더스였고, 곧이어 오카시오-코르테즈가 따랐다. 그리고 이같은 ‘전향’은 당연히 미국 국내 정치에 파급효과가 있다. 현재 오카시오-코르테즈의 폴리마켓(정치도박판)에서의 2028년 대통령 당선 확률은 캘리포니아주의 개빈 뉴섬 주지사보다도 높다. 그렇게 오카시오-코르테즈와 샌더즈는 미국의 제도정치권의 담합구조- 혹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반유대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는-에 한발 더 다가간 것이다. DSA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들은, 훗날 이 전환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홍이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민주당의 기득권 지도부가 미는 후보에게 패배한 이유 중의 하나는 DSA 중앙의 지도부로부터 마치 ‘듣보잡’인양 폄훼되는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DSA는 미국 민주당원들에게는 나아갈 수 있는 ‘최대경계’였는데, 홍은 그 선을 훌쩍 넘어버린 적색지대의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즉 샌더스가 ‘난 그를 모르오‘하고,
오카시오-코르테즈가 ’홍(Woke1)은 제정신이 아니에요‘는 결정적인 선을 긋는 신호였다. 따라서 공화당과 맞서는 본선에서 ‘당선가능성’(electability)에 대한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고(민주당원들이 ‘이반’할것이므로), 소위 ‘급진적인 것’에 대한 경계가 결국 근소한 차이의 패배를 가져왔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홍의 ‘급진적인 것’에 대한 정의를 기억하자. 그리고 그 정의와 자세와 DSA 주류의 발언들을 비교해보자.

물론 반대 측면에서의 중요성도 있다. 애당초 지난해 가을 홍이 예비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소수의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승리’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았었다. 홍의 선거운동본부에 따르면 그들은 스스로를 ‘wild card’로 간주했다. 즉 선거에서의 승리보다는 존재 자체를 알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중들에게 선전하는 계기로 선거를 활용하려고 했었다. 이같은 선거 전술이 당사자들도 뜻밖일 정도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전국적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비록 선거에서는 패배했더라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목표 면에선 성공한 선거 캠페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선거’에 대한 의회주의, 선거주의가 팽배한 미국 DSA의 주류와도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나아가 한국 진보정당정치에 시사적이다. 선거에서 ‘당선’에 목매는게 아니라 선거에서 ‘연단’을 중시하는 것- 그것이 의회주의와 의회전술을 가르는 선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DSA의 ‘한계’에 대한 시험대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홍의 정책이나 정치 이념으로 본다면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사회주의의 미국식 변형판인 ‘민주사회주의자’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정치 방식의 ‘래디컬’함을 제외한다면 그의 정치의식과 이념 자체로 보면 사회주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난 1950년대 매카시즘 시절 탄압받고 사라졌던 ‘populist left’(좌익 포플리스트)가 70여년만에 부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홍 스스로도 “인민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홍은 분명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아직 ’계급적‘이거나 ’혁명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지난 예비경선은 이 정도의 ’급진성‘, ‘사회주의성’조차도 미국 민주당 정당정치는 물론 DSA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극단적’인 것으로 취급받았음을 보여준다.

2. DSA made in USA

매우 역설적이지만, DSA의 신세대 선두주자로 떠오른 인물들, 오카시오-코르테즈, 죠란 맘다니 뉴욕시장, 케이티 윌슨 시애틀 시장 등은 그 누구도 ‘혁명’이나 ‘체제 전환’을 말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사회주의 비난 결의안’에 대한 반박에서 DSA 이데올로그 벤 버지스가 <쟈코뱅>에서 주장했듯이 DSA는 ‘사회주의를 민주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이들은 ‘제도 속의’ 민주주의자들이지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유럽식으로 우경화된 사회민주주의의 21세기 미국 버전이다. 단지 유럽의 계급투쟁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가 부재한 미국에서 보수 양당정치 안에서 ‘사회주의’를 어느정도라도 흉내내려는 민주주의자들이다.

이같은 정치적 스탠스는 애초 DSA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DSA는 지난 1970년대 초반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갈라져 나왔다. 반전과 사회개혁을 주요 이념으로 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유럽의 사민주의보다 훨씬 우파적 경향이었으며, 다만 유럽의 사민주의가 이미 조직화된 노동과 제도적 결합을 거쳤기 때문에 훨씬 덜 포퓰리스트적이었던데 반해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자들을 기존 노동조직들과의 연계가 희박했기 때문에 인민대중들 그 자체에 집중했고 그 결과 포퓰리스트 성향이 훨씬 강했다.

올해 초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이 뉴욕에서 트럼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DSA

DSA는 2010년대 중반까지도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거의 영향력이 없었다. 게다가 독자적인 정치세력이라기보다는 민주당 내에서 ‘프로그레시브’의 역할을 하는 소수 분파에 더 가까웠다. 이들의 변화는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을 거치면서 세력을 확대하고 급진화 과정을 겪기 시작했다.

2016년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를 지지했던 DSA는 선거 과정에서의 민주당 기득권의 부정과 비민주성에 실망하면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추구했다. 2017년 당원회의에서 민주당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계급’(노동)을 강조하는 정강이 채택되었고, 이후 트럼프 정권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세력을 넓혔다. 2016년 당시 2만 5천여명에 불과하던 회원은 지난해 말에는 12만명으로 늘었다. 2017년 당대회에서는 창설 이후 계속 멤버쉽을 유지해왔던 IS(international Socialist; 국제사회주의연맹)에서 탈퇴할 것도 결의했는데, 그 이유가 IS가 일부 회원국에서 제국주의를 대변하고 노동계급 억압에 동조했다는 이유였다.

IS는 지난 1951년 서유럽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결성된 사민주의자들의 국제조직이었다. 이 조직은 독일의 사민당이나 프랑스의 공산당조차도 지나치게 사회주의적이라고 여기는, 문자 그대로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적 색채를 가미해보겠다는 국제기구였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2000년 대 초반에는 거의 세력이 쪼그라들었고, 지난 2010년대 중반 유럽을 뒤흔들었던 그리스 국채 위기 당시 PASOK(헬레네 민주사회주의자당)의 파판드레우 총리가 IS 의장을 맡고 있었다.

IS의 성격이나, IS에 가입했던 DSA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이다. 놀랍게도, 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게도 한국도 IS에 가입했던 경력이 있다. 1980년대 한국의 통일사회당이 IS에 가입했었다. 1950년대부터 ‘혁신’ 정당 운동을 했으며 1960년대 통일사회당을 창설했던 김철과 당이 IS 멤버였다. 1970년대 후반 유신 시절에 김철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을 때 IS는 구명운동을 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김철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으로 참여했으며 전두환의 정치행사에 주요 인사로 참여했었다. 즉 한 때는 전두환의 ‘외곽 정치조직’과 DSA가 한 배를 타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가장 파시스트적인 군사정권조차도, 대외적 체면상, 혹은 국내적으로 예방주사용으로 혁신혹은 조금 더 물을 타서 개혁적인 위성정당을 용인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직접 만든다. 즉 자본주의 하에서 개혁’, ‘좌파정당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당정치에서 ‘혁신계’인 김철은 중요한 정치적 유산을 남겼는데, 그의 아들이 바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오가면서 양쪽 대표를 지냈던 김한길이다. DSA의 노선도 실은 한국의 ‘혁신’계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2017년 IS에서 탈퇴하고 민주당에서 벗어난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부터는 편차를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2기를 거치면서 DSA는 독자적인 정치운동, 사회운동에서 민주당 내의 분파로서의 지위 확보로 다시 노선을 변경했다. 그 성과와 한계가 이번 민주당 예비경선에 드러나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3. 당선 가능성, 그리고 당선 이후

DSA가 민주당 내 ‘좌파’ 분파로 자신들의 위치를 이동하면서 중요하게 대두된 것이 이른바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이다.

홍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DSA는 급진적, 또는 미국 사회에서는 터부시되는 사회주의자 딱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늘 기존 민주당 기득권 세력들에게 ‘본선 경쟁력’, 즉 당선 가능성 문제를 제기받는다. 여기서부터 이른바 ‘이념의 물타기’가 시작된다. 흥미롭게도 대중적으로 여전히 호응이 있는 인공지능 과잉 투자나 데이타센터 건립 반대의 경우에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 대량 학살이나 이란 전쟁 등의 대외 정책, 그리고 미국의 독점 기업 문제나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노선 수정을 강요받으며 거의 대부분 이를 커다란 저항없이 받아들인다 (한국은 어떤가? 어떤 이슈가 더 급진적이고 비토대상인가? 한국은 미국과 반대로, 해외 문제에 대해선 ‘파병’에는 다 함께 반대한다 – 물론 파병 반대이유는 대부분 매우 ‘국가주의’ 나아가 ‘국수주의적’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투자나 데이터센터에 대한 반대는 약하다. 그 이유는 국민경제와 경제성장론과 개발국가 나아가 반자본 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 맘다니 뉴욕 시장이 뉴욕경찰청과 이스라엘 경찰청 사이의 대테러 공동 훈련 계획을 지속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같은 사례에 속한다(다만 그는 이 문제는 시 의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반면 맘다니가 시 정부 내에 ‘노동권력국’을 설립하여 노동쟁의를 비롯한 노동계급 이슈에 시 차원에서 개입하려는 것은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지만 실제 이 조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맘다니와 함께 주목을 받았던 DSA 소속 시애틀의 케이트 윌슨 시장은 아예 행정적 실무 처리에서부터 기존 지방 권력과 관료 조직의 거센 저항에 직면에 고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흔히 듣는 이른바 ‘현실’의 문제인데, 애당초 현실을 뒤집어 엎어서 그 현실이 존재할 근거를 뒤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현실을 ‘수정’하려는데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현실’에 먹혀버리고 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현재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연방 상하원 의원과 주 의회 민주당 후보 가운데 10%에 조금 못미치는 후보들이 DSA 소속이거나 이들과 친연관계에 있는 후보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중 절반만 당선되더라도 민주당이 지배할 것으로 예견되는 차기 미 연방의회에서 ‘레버리지 그룹’으로 상당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마도 현실은 딱 거기까지일 것이다. 트럼프라는 ‘광인’을 상대로 해야 한다는 핑계로 미국의 ‘진보’는 현실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온 몸으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반응은 우려된다. 미국의 DSA 만 나오면 ‘급진정치’와 사회주의의 미래인 것처럼, 한국에서 분별도 차별도 없이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 이들에게서 미래 정치를 향한 대안을 먼저 기대하는지 그 ‘사대주의적’인 자세도 문제다.

버니 샌더스의 주장 즉 데이터 센터와 연관있기도 한 AI 기업을 만들되 국유화하자는 주장을 급진적인 대안이라고 말하고 소개하고 지지한 이들은, 홍의 모라토리엄 선언 공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왜냐하면 둘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위험에 처해있는 인공지능 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구제작업이자 독점 유지책이고 홍의 모라토리엄은 아예 인공지능 성장 자체에 대한 정치적 재고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AOC를 미국 진보정치의 상징이라고, 민주당의 미 대선 후보가 되어 민주당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을 기대해보자고 하는 한국인들은, 과연 ‘현실정치’를 얼마나 가늠하고 있을까?

홍의 정치적 유효성은 그가 ‘급진적’이라는 것의 위치를 뒤집었다는데 있다. 홍의 발언은 현재가 이미 급진적으로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그 비정상이 너무나도 오래, 관행적으로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대중들과, 무엇보다도 ‘현실’을 얘기하는 정치인들부터가 그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급진적인 것이며, 극단적인 것이다.

한국은 ‘급진적’인 것에 대한 의미를 자의적으로 부여하기 이전에 ‘진보’가 무엇인가부터 이 나라의 ‘민주주의자들’에게 되물어야할 시간이다. 민주로부터 진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급진정치’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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