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권의 성장 전략(1)
- 자본의 대약진 운동(Great Leap Forward)
2025년 7월 4일 / 이슈 리포트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국정기획위원회, 한국형 발전모델, 잠재성장률, 지대계급(rentier class), 자산버블, 주택대출 규제, 상법 개정, 총수요정책, 공급관리
진짜로 ‘진짜’
이재명이 선거유세 과정에서 내세운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적 과정 속에서 모순 없이 구체화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실체’가 없는 것이다. 반면, 이재명과 민주당의 ‘진짜’ 집권전략인 ‘진짜 성장론’은 분명한 실체가 있으며, 해방 이후 80여 년간 지속되어온 남한이라는 국가의 모델을 다시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것이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내걸었던 슬로건 ‘진짜 대한민국 만들기의 실체다 (”이재명의 대선 슬로건 “진짜 대한민국”이 의미하는 것: 21대 대선 당선 유력 후보 이재명의 공약, 정책, 이념 평가, 2025년 5월 22일 참조)
지난 6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의 정권인수위원회에 해당하는 국정기획위원회(위원장 이한주)이 내놓은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이라는 보고서는 향후 5년 동안 이재명 정권이 기획하고 있는 국가 모델, 그리고 그 근거를 엿볼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국정기획위원회가 내놓은 이 보고서를 분석 해부하면서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진짜 대한민국 만들기’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보이려고 한다.
많은 연구자, 관료, 정치인들이 이제는 대체로 인정하고 있듯이, 이재명의 국정기획위원회 역시 지난 60년대 이후 지속되어온 한국형 발전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인정한다. 이 보고서는 “무엇보다 발전단계와 대내외 경제환경의 변화로 인해 기존 성장방식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한계점에 봉착했”으며 이에 따라 저성장이 고착화되었고, “이뿐만 아니라 기존 방식이 작동하는 데 유리했던 경제환경이 변화하는 것도 큰 문제다. 특히 미중 무역갈등 등으로 세계화가 후퇴하고 있어 기존의 수출주도 전략이 잘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고 분석한다. (이 문제에 대해선 필자가 계엄탄핵국면에 쓴 ”경제노동 지표로 본 한국의 자화상: 한계에 봉착한 한국형 발전모델”, 2024년 12월 30일자 참조)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고착화된 저성장, 또는 장기적인 잠재성장률의 하락이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에 대한 국정기획위원회의 해석의 방향이다. “성장이 어려워질수록 창조와 혁신을 가로막는 기득권 지키기와 약자의 몫을 빼앗는 지대추구가 성행하게 된다. 높은 장벽이 신산업과 신기술의 진입을 막고, 기술 탈취와 착취 때문에 공정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성장의 유인은 약해지고 성장(참여)영역은 더욱 위축되어 다시 저성장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즉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지금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줄어드는 성장의 과실을 놓고 서로 간에 다투는 제로썸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같은 제로썸 게임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으로서 ‘지대 추구’를 지목한다. 이를 사회학 용어로 옮기자면 ‘지대계급’(rentier class)의 과잉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대계급은 토지자본, 혹은 금융불로소득에 기대어 생활하는 사회계급이다(이자,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차액, 전월세 및 토지 임대 수익에 의존하는 기생계급).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수출주도 성장을 추구하면서, 자본가들의 노동에 대한 우위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국가가 노동을 억압함으로써 잉여의 분배를 일방적으로 자본에 유리하게 조절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잉여(자본)가 임금의 형태로 국내 경제 부문에 투입되지 않고 자산, 특히 토지(및 아파트)에 투입되는 형태의 발전 경로를 가졌다. 그 결과로 토지 및 주택 시장의 자산 가격 상승률은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고 이는 다시 은행의 주택 자금 대출 증가를 유도했다.
이미 이같은 현상은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관찰된다. 지금은 다 잊혀졌지만, 한국 사회에서 ‘전세 파동’이 최초로 발생했던 것은 지난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엔저 호황기(동아시아 과잉 유동성 버블기)였다. 당시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앉았던 수십명이 연쇄적으로 자살하는 사회적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같은 사회적 사건은 노태우 정권 하에서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분당과 일산이라는 신도시 개발책)으로 일단락되었으며 그 뒤에도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공급 정책’과 ‘규제정책’이 교대로 나타났지만, 한번도 근본적으로 해결된 적은 없었다(IMF 구제금융기의 극심한 디레버레징 시기에만 이 문제는 잠잠했다). 특히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정부가 저금리의 대규모 주택 대출을 오히려 조장하면서 급기야는 지대계급이 상당한 정도로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토자자산계급정치’에 대해서는 “제 22대 총선 분석: 선거와 계급: 누구의 승리인가?”
2024년 4월 18일 참조)
물론 이는 단순히 박근혜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를 겪으면서 이제까지의 민간은행 신용창출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자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선진 6개국 중앙은행들은 중앙은행들이 직접 은행의 수익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양적완화(QE) 정책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은행들은 안전한 담보 자산(주택)에 대출을 늘렸고 이는 다시 주택 가격 상승과 월세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대계급이 형성, 확장되었다. 그리고 정책 결정자들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2013년 무렵부터 월가에서는 지대계급의 문제를 제기한 베블렌의 저서 <유한계급론>이나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이 단편적 형태로 펀드 매니저들 사이에서 읽혀졌으며 이 문제에 대한 경고도 이미 당시에 다 나왔다. 즉, 주택 버블과 지대계급 형성은 이미 알려진 사안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의도된(또는 은행 부실화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정책이었다는 점이다(이 정책의 대표적인 지지자가 2014-20년 연준 의장을 지냈고 그뒤 바이든 정권 하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재닛 옐런이다). 즉 지대계급의 정책적 형성은 전지구적 현상이었으며, 한국은 지리적 조건의 차이(국토면적의 협소, 상대적 과밀인구)에도 불구하고 그 트렌드를 지역적으로 추종한 것에 불과하다.
국정기획위원회 보고서, “진짜 성장 구조도”
이같은 정책이 산업 차원에서 보이는 경제적 부작용 혹은 어쩌면 의도한 작용은 ‘독점화’와 ‘부실기업(한계기업)의 잔존’이다. 왜냐하면, 금융정책을 통한 자산가격 부양을 통한 경기 부양책(QE, 또는 초저금리, 또는 국채 수익률 조작)은 인위적인 과잉 유동성 정책이기 때문에 부실기업도 자금 조달이 용이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이를 통해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을 저지),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경쟁력이 강하고 시장 지배력이 높은 기업들이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이 용이한데다 초과 유동성을 활용한 기업간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해져 산업내 독점기업들의 지위가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실기업의 잔존은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이윤율을 하락시킨다. 뿐만 아니라, 독점기업도 경향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한다. 왜냐하면 독점이윤율(초과착취)는 다시 사회 전체에서는 소비의 감소로 이어져 자산 버블이 형성될 뿐, 생산의 실현(소비)은 정체되기 때문이다(고작해야 인구증가율을 뒤따라갈 뿐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보고서가 “높은 장벽이 신산업과 신기술의 진입을 막고, 기술 탈취와 착취 때문에 공정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을 때”라고 쓴 대목은, 바로 이같은 ‘독점화’ 현상을 주류 경제학 용어로 풀어쓴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 보고서는 그래서 “성장의 유인은 약해지고 성장(참여)영역은 더욱 위축되어 다시 저성장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고 지적한다. 이를 정치경제학 비판의 언어로 바꿔쓰면, ‘독점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이다. 이를 다시 보고서의 용어로 옮기면, ‘저성장,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이 된다. 즉 현재 한국 경제 모델의 위기는 독점자본의 위기이며 그에 따라 경제의 다른 제반 부분들에서 문제점이 증폭되어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독점자본의 위기(독점이윤율의 경향적 하락)는 두 가지 방식을 통해 해결되었다. 하나는 정치(국가)가 인위적으로 독점자본을 해체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스탠다드 오일 해체나 70년대 AT&T의 해체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같은 인위적 해체가 근본적으로 독점 위기를 해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독점자본의 위기를 궁극적으로 해소한 것은 2차 대전으로 인한 유럽과 일본의 산업자본의 파괴(그리고 자신의 땅에서 전쟁을 하지 않은 미국 산업자본의 완전한 지배)나 1980년대 본격화된 세계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공간적, 양적 확대(비자본주의 지역을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 편입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시장 규모 자체를 확대한 것)였다.
자본주의의 일반적 발전 단계(축적 고도화 경로)는 경쟁 – 독점화 – 위기(리셋) – 경쟁의 순환으로 요약된다. 독점은 경쟁의 결과이며(따라서 브로델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반경쟁적이지 않다), 독점으로 인한 위기가 발생하여 국가가 이 독점을 인위적으로 떠받치려 할 때 중상주의적 국가로 전화하며 종종 중상주의 국가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로 귀결된다(즉 전쟁). 물론 이같은 방식은 현재의 글로벌 환경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대신에 이재명 정권은 다른 카드를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진짜 성장론’이다.
무엇이 진짜 성장인가?
보고서는 ‘진짜’와 ‘가짜’ 성장을 구별한다. 이들이 말하는 ‘가짜’는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이다. 그리고 이는 ‘총수요 관리 정책’에 해당한다. 즉, 일시적인 재정 지출 확대, 소득 상승 유도 정책, 특정 집단에 대한 대출 증액 및 금리 인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이를 ‘가짜’라고 말한다. 이는 매우 신기한 일이다. 왜냐하면 당연히 이같은 총수요 관리 정책에는 ‘기본소득’(전국민 25만원 지급을 포함하여), ‘소득 주도 성장’이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바로 이재명이 지난 20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주장했고, 이전에 문재인 정권이 수행했던 민주당의 핵심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이같은 총수요 관리책에 대해서 일시적 효과만 있을 뿐 경제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공급관리책’이다. 국가가 재원을 계획적으로 조정하여 전략적 성장 부문을 선택 육성하며 여기에 국가 재원을 집중한다.
뿐만 아니라, 낙후된 경제 부문(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즉 성장률의 장기적 하락(독점 강화)에 대응하여 독점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 부문의 국제적 경쟁력을 오히려 강화하고 반면 연관관계가 멀어 낙후된 한계 산업들은 구조조정을 수행하여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이재명 정권이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 대도약과 진짜 성장의 길. 이재명 정권의 성장전략 보고서는 장기적 저성장 추이를 뒤집는 자본 투자 효율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출처 : 국정기획위원회 보고서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 하락은 주로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벌어진다. 하나는 노동력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고 조만간 감소 추세에 접어들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자본투자(또는 총요소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국이 아직 경쟁력이 있는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상승중이며(미국의 85% 수준까지 높아졌다), 또한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성장 기여율도 아직은 크게 감소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 전체로서의 성장율 하락의 주범은 어디일까? 그것은 민간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미국의 40% 수준에 불과하며, 성장세도 극히 낮다. 즉 한국의 잠재 성장률을 깎아먹는 가장 큰 요인은 현재로서는 서비스부문의 낮은 생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서비스업의 과잉 성장과 낮은 생산성을 지목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한국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의 핵심 요인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민간 서비스업(대부분 소상공인)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여기에 역설이 있다. 이 보고서는 이들을 ‘노동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기존의 중견기업들이 프랜차이즈 방식 등으로 소상공인 영역에 진입하여 이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다. 실은 이건 전례가 있다. 산업재해로 악명높은 SPC(파리바께뜨, 삼립)가 전형적으로 그같은 형태의 프랜차이즈다. 지난 십여년 동안 동네 빵집을 모두 몰락시키고 직영화하여 과거 빵집 주인들이던 제빵사들을 노동자화했다.
놀랍게도 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직영 노동자화는 현실에서는 바로 이런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보고서에는 한국에서 자영업자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원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의 자영업자의 형성은 기존 노동시장에 있던 노동자들이 중간에 실직/퇴직한 결과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이들이 아예 서비스업(자영업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같은 민간 서비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5% 포인트에 이른다. 이재명 정권은 이 분야를 ‘효율화’ 또는 구조조정할 예정이다.
그 방식은 단지 중견기업의 진출/확대만이 아니라 플랫폼화 등을 통한 ‘선진화’가 동반될 것이다. 왜 네이버 CEO 출신인 한성숙을 중소벤쳐부 장관으로 지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전통적인 자영업 시장의 전면적인 해체/구조조정이 이들의 목표다.
이 보고서대로 시행된다면, 지난해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중소 자영업자들은 뒷통수를 맞을 것이며, 그 때 그들이 급진화할지 아니면 역으로 극보수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 일부 급진화한 소상공인들이 조국혁신당의 주요 지지세력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재명 정권은 구조조정을 맞은 소상공인들이 다른 당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변심 혹은 급진화하지 못하도록 조국혁신당을 견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자본으로서의 국가
위에 언급한 해법은 단지 ‘성장’의 문제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저성장이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저성장은 기회를 줄이며 기득권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기획위는 과거 흔한 비유로 말하자면, 전체 ‘파이’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 파이를 국가가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주어질 ‘기회’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목표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는 서구 복지국가 (그리고 87년 체제 하에서 소위 ‘진보’ 계열이 암묵적으로 추구해왔던 ‘한국식 복지국가’) 이념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이들은 한국 경제는 위기이기는 한데, 그 위기의 원인은 자본의 비효율적 분배 때문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국가가 나서서 자본 배치의 비효율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40여 년 간 한국 경제의 주 이념이었던 신자유주의(시장이 결정하며, 시장은 옳다)를 기각하고, 국가가 직접 ‘결정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신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정권은 ‘반시장적’이다. 반면 이재명 정권이 보기에는 시장이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국가의 위치와 역할을 과거 정권들과는 다르게 설정한다. 이 보고서는 ‘진짜 성장의 국가 거버넌스’라는 항목에서 “과거 고도성장기 ‘주식회사 한국’은 기업부채를 기반으로 한 종신고용으로 사회의 위험을 관리했으나 외환위기로 붕괴했다. 이를 대체한 위험관리 시스템은 ‘빚내서 각자도생’이라 할 수 있다“면서, 이제 새로운 통합적 위험 관리 및 성장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국정위 보고서는 마치 ‘반시장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국가가 개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반시장적이 아니라, 시장자유주의의 여전한 신봉자이며, 다만 국가가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시장자유주의자일 뿐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서 국가가 다음과 같은 4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조정자 국가(coordinator state), 보험국가(insurer state), 투자자 국가(investor state)혹은 기업가 국가(enterpreneual state), 역량강화 국가(enabling state)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투자자 국가나 기업가 국가는 국가가 시장에서 직접 행위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인공지능 및 첨단산업 투자 100조 국가 펀드 형성 등이다. 다른 말로 해서, 여기서 국가는 중립적 행정기구가 아니다. 국가는 기업이며, 기업처럼 운영되며, 기업을 육성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즉, 국가 자체를 기업화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를 금융펀드화하는 것이다.
6월 3일 서대문 시장 상인들이 이재명 기자회견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출처 : 네이트뉴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재명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주장했던 기본소득론에서 180도 뒤바뀐 공급관리론으로 입장을 선회했을까? 심지어는 지난해 11월에도 이재명은 증시 거래 및 수익에 과세하는 금융투자 소득세(금투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즉 이익 있는 곳에 과세하겠다는 것이었다.
금투세를 둘러싸고 민주당 내부에서 노선 대립이 있었고, 12월 계엄사태 이후에 이재명은 금투세를 포기하고 올 2월에 증권사 사장 출신의 홍성국 전 의원을 영입한다(만일 금투세가 통과되었더라면 코스피5,000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즉, 이재명의 변신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고작해야 반년 남짓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또 하나 지목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정기획위원회의 이 보고서의 기본 분석은 대부분 내용이 한국은행이 지난 2023년 이후 제시했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부동산 관련 정책 및 레버리지 관련 분석은 지난 6월 5일자 한국은행의 일본과 한국의 주택시장 비교 리포트(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에 제시된 것이다. 또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혹은 구조조정론의 경로는 지난 2023년 한국은행 리포트 ‘한국경제 80년 및 미래 성장 전략’에 제시된 분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국정위 보고서는 지난 수년간 금융자본 이론가들과 국제기구(IMF, OECD, BIS)에서 주장해왔던 한국경제 체질 개선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이재명(민주당)의 노선이 내부 투쟁을 거쳐 금융자본의 인식에 동의하는 쪽으로 기울어졌음을 시사한다. 이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재명 정권은 금융자본이 가진 한국 경제 인식을 수용했으며, 그 해결책에도 대체로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재명 정권은 금융자본의 대리인(agent)이며, 아마도 그것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시에 이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국가는 개별적인 자본가들 혹은 자본가집단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것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지대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정권의 금융정책(주택 대출 레버리지 규제)은 그들의 이해에 반한다. 반면 기존 국내 독점자본의 소유자들(주로 재벌 등 대자본가)에게는 이재명 정부가 입법 시도한 상법 개정(이사회의 주주 이익 충실 반영 조항)이야말로 그들 자신의 이해에 반한다.
예컨대 최근 절찬리에 ‘상영’중인 주택 시장 규제책을 보자.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에는 주택시장 정책이 ‘공정과 상생의 시장 질서 구축 –상법 개정, 부동산 금융 및 가계 대출 관리‘ 항목으로 제시되어 있다. 즉 이들은 주택시장 문제를 주거 문제가 아니라, 금융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가계 대출 규제 방안으로 두 가지를 모색한다. 하나는 이번에 발표된 주택 담보 대출 규제다. 보고서는 이를 통해 은행이 주택담보 대출보다는 기업 대출에 더 주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방안은 “부동산 부문으로 인한 금융 시스템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금융회사에 완충자본(SLR)을 부과하는 자본 규제“를 거론한다. 이 방안은 금융기관이 주택 대출을 늘리는 만큼 자기자본 비율을 확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 주가는 하락하며, 수익성이 하락하고 실질 금리는 상승한다. 물론 이런 조건 하에서도 은행은 주택 대출을 늘릴 수 있으며, 그 때는 극단적인 주택 버블이 생기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재명 정권이 전자(주택 대출 총량 규제)를 선택한 것은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금융적 수단’을 통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정책이 ‘공정, 상생’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이제까지는 부동산 대책은 토지공유제 이념에 기초한 행정적 규제(토지허가제 등)나 조세적 방식(종합부동산세)를 택했던데 반해, 이재명 정권은 부동산 문제를 철저히 ‘금융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부동산을 통한 초과 수익 환수나 혹은 부동산 가격 하락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으며, 정책의 목표도 아니다. 이 보고서에서 이 정권의 부동산 혹은 주택문제에 대한 인식은, 국가가 한정된 금융 자원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어디에 투입하는가의 관점에서 볼 뿐이며, 부동산 가격의 상승/하락은 그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현재 은행권 등의 민간자금이 부동산 및 가계대출 부문에 과도하게 몰려 있어 기술발전이나 생산 부문으로의 자금 공급이 제한되고 있다. 진짜 성장은 부동산 재테크가 아니라 AI, 에너지, 딥테크와 같은 미래 기술, K-문화 등에 대한 투자에서 시작한다. 또한 부동산 및 가계대출으로의 자금 집중은 금융시스템 위험으로도 작용하면서 소비 침체로 연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안정적 관리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부동산 가격 자체나 이로 인한 세대간 갈등이나 자산 양극화가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편중’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재명 정권이 반드시 집값 하락을 의도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유휴 자본이 부동산 자산 시장으로 과도하게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할 뿐이며,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일정 시간이 지나서 증시에서의 수익이 목표치(예컨대 코스피 5,000)에 도달하면 여기서 발생한 ‘수익’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을, 혹은 그런 상황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이들에게는 주택 시장문제는 자본의 효율성, 생산성에 종속되는 것이지 주거 문제로 푸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주택 문제는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택 대출규제 정책을 보면, 이재명 정권은 기존 지대계급의 상당한 저항을 예상하면서도 이를 밀어부쳤다. 이는 이재명 정권이 계급 분파의 저항을 분쇄할 수 있을 만큼의 지지(유권자의 지지가 아니라, 총자본의 지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시에 이재명 정권은 각 계급 분파의 개별적인 자산 구성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을만큼 힘이 있다는 것도 시사한다.
자본가들은 적당한 저항을 구사하면서도 이재명 정권을 받아들였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선도적으로 보여주었듯이. 대한상의 의장이자 하이닉스의 최태원 회장도 명확하게 동의 입장을 선거 과정에서 보여주었다. 이는 이들 자본가들의 행보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들 대자본가들이 이전과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나선다는 점이다.(주: 최태원 “지금의 자본주의에 의구심…성공 방정식 바꿔야” https://www.yna.co.kr/view/AKR20250708086551003?input=1179m)
즉 이들은 자신들의 분파적 이해관계보다도 더 큰 이해관계를 보았으며, 그것을 이재명 정권을 통해 수행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다. 예컨대 인공지능 인프라는 삼성이나 하이닉스에게 직접 혜택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개별적인 민간자본들로서는 도저히 투자할 수 없는 정보기반 시설을 구축해준다. 말하자면 자기 돈 안 들이고 나라가 세금으로 도로 놓아주는 격이며, 그러면 결국 돈 버는 것은 도로변의 공장과 농장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권은 자본가계급(그것도 가장 선진적인 금융자본가들)을 대표하지만, 동시에 ‘총자본’으로서 개별 자본들의 이해를 규율하는 입장을 견지한다(동시에 자본가들 다수의 지지도 받았다). 여기서 이재명 정권(국가)는 한국 경제 전체를 구조조정하는 총자본으로 기능하며, 그러한 정치적 지지도 확보하고 있다(정치적 반대 세력은 거의 궤멸되었다).
이같은 이재명 정권의 ‘금융’ 정책은 지난 87년 이후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던 ‘경제 민주화’ 문제를 역설적으로 해소한다. 즉, 상법 개정 및 금융적 수단을 통해 ‘주주'(그리고 주주의 권리)를 확대함으로써 경제민주화를 우회한다. ‘공정, 공평, 공생’이지만, 이제는 아무도 예컨대 재벌해체를 말하지 않으며 더구나 이를 독점해체의 관점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재명 정권은 ‘너희에게도 나눠줄께’라고 말한다. 어떻게? 자본시장을 발전시켜서.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적인 또는 최소한 수정자본주의적인 독점해체는 키워서 나눠먹기(더 정확히는 이삭주어먹기)로 전환되었고, 자본은 한단계 더 나아갔으며(금융자본주의로의 본격적 진입), 국가는 이같은 자본시장 육성을 위한 자본 동원기제이자, 자본 분배 기제로 작동하고, 이는 ‘민주적'(공정한 나눠먹기)이기 때문에 사회적 저항도 최소화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는 과거 1960년대 경제 개발 계획 초기의 ‘개발 국가'(국가가 재원을 계획 분배하는 시스템)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의 수혜자들은 이를 억압적이라고 인식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들이 향후 한국 정치, 사회적 대립의 충돌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돌아온다. 왜 한국의 자본가들은 이같은 경로를 택했는가?
이 보고서에 대답이 있다:
첫째는 ‘각자도생’이다. 한국은 노동계급이 지난 수십년 동안 분쇄되어 집합적으로 ‘계급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분쟁의 방식으로 저항이 나타난다. 사회가 ‘각자도생’(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바로 전 단계다)에 진입하면,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동시에 ‘기율된 노동력’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자본의 재생산에 있어서 경제외적인 비용이 너무 커지는 것이다.
두번째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요인으로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기존의 왜곡된 자본 편중으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와 이로 인한 성장률의 장기적 하락 추세 때문이다. 이는 개별자본으로서는 돌파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이재명에게서 해답을 찾았다. 왜냐하면 이재명이야말로, ‘진보’ 혹은 ‘좌파’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넝쿨째 자본가들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쟁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영혼을 팔 태세가 되어있다.
이제부터 ‘자본의 대약진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 2부에서는 이재명 정권의 신산업 투자 및 노동동원 정책에 대해 기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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