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미국의 봄’ (American Spring)

민노연 창립식_087

‘미국의 봄’(American Spring)

: 미국 4월 대학 시위의 배경과 성격

2024년 5월 2일 / 국제 노동/운동 동향 Intl Labor & Resistance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미국 대학생시위, divest movement (결연 해지운동), 해밀턴홀, 컬럼비아대학, 68년 시위, 가자 위기

2024년 1월 29일, 여섯 살 소녀가 죽었다. 아이는 죽기 전에 세시간 반 동안 구조대와 통화를 했다. 소녀와 함께 피난가던 여섯명의 친척은 이미 모두 총격에 쓰러진 뒤였다. “무서워요, 도와주러 오실 수 있나요?”. 두 명의 구조대원이 앰블런스를 타고 현장으로 떠났다. 가자의 민간구조대는 이스라엘 군에게 소녀의 위치와 구조를 위해 그 곳으로 간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그들의 소식은 영영 끊겼다. 엿새 뒤, 소녀와 구조대는 불 탄 차량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소녀의 이름은 힌드 라자브(Hind Rajab)였다. 
그리고 4월 30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학내의 한 건물을 점거하면서 명패를 바꿔 달았다. “Hind Hall”로.

2024년 1월29일 가자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죽임당한 여서살 힌드 라자브(Hind Rajab)
2024년 1월29일 가자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죽임 당한 여섯살 힌드 라자브(Hind Rajab)


Hind Rajab의 통화 내역은 녹음되어 전세계에 퍼졌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잔인하고 야만적인 학살극 중에서도, 이 목소리가 갖는 울림은 컸다.

고작 여섯 살 꼬맹이의 ‘살려주세요’ 호소를 듣고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는 없으며, 결국은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현실을 용인하기는 힘들다. 그 총알이 미국에서 지원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념도 아니고, 범주를 따져야하는 인권조차도 아니었다. 아주 기초적인 ‘인간적인’ 공감이 출발점이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컬럼비아대학 교수 죠셉 스티글리츠가 이를 ‘대학생들의 공감’(student’s empathy)이라고 인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4월 30일 미국 컬럼비아 대학 반이스라엘 시위대들이 해밀턴홀을 점거하고 가자 지구에서 희생된 6살 소녀 Hind Rajab을 기념하여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다. 출처; Rolling Stones.
지난 4월 30일 미국 컬럼비아 대학 반이스라엘 시위대들이 해밀턴홀을 점거하고 가자 지구에서 희생된 6살 소녀 Hind Rajab을 기념하여 “힌드 홀”이라고 명명한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다. 출처; Rolling Stones.


4월 17일 컬럼비아 대학생들이 천막농성(encampment)에 들어갔다. 중앙도서관 앞 잔디밭에 100여개에 달하는 천막을 쳤다. 이들의 요구는 ‘Divest Movement'(결연 해지 운동)로 요약된다. 컬럼비아 대학이 이스라엘과 경제적, 학문적, 인적 교류를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컬럼비아대학의 교내 천막농성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대학시위의 확산 분포도를 보면, 처음에는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시작된 시위가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중임을 알 수 있다(아래 지도 참조). 흥미로운 것은, 지난 60년대 반전 시위의 중심에 섰던 캘리포니아주 등 서부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직 학생시위가 미약한 반면에, 가장 시위가 격렬한 곳은 이른바 ‘보수적’인 중부의 주립대학들이라는 점이다. 이번 미국 대학시위가 단순히 가자지구 학살에 대한 반대를 넘어선 맥락이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부 인디애나대학(University of Indiana, 인디애나주 블루밍턴 소재) 사례는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학생들의 천막농성 시위 규모가 크고 격렬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진압하는 경찰의 대응이 매우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천막농성을 진압하면서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1970년 반전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켄트대학 학살사건(켄트대학에서 시위 중이던 학생들에게 주 방위군이 발포하여 4명이 사망했다) 때문에 경찰의 저격수 배치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매우 좋지 않다.  

그리고 지난 4월 25일 미 의회에서 이스라엘 및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이 통과되면서 일제히 대학시위에 대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이 점에서 미국 대학들이 자율적으로가 아니라, 정부와의 협의하에 공동보조를 취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대학 내 시위 농성은 대학본부 측의 요청이 있을 때만 경찰 혹은 군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특별한 폭력 사태 혹은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는 시위가 벌어지지 않는 한, 외부의 공권력이 대학에 투입될 수 없다. 미국은 지난 60년대 중반 흑인 시민권 지지시위 과정에서 대학 내 정치활동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대학내 시위나 정치운동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은 금지돼있다. 그 점에서 대학교 교내 경찰력 투입은 향후 위법 여부를 다투며 법적 쟁송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Divest movement (결연해지 운동) 전략은 매우 흥미롭다. 원래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작된 운동 전략이다. 이 전략은 ‘민간 제재’(people’s sanction)캠페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이 전쟁과 함께 구사하는 ‘제재(sanction)’ 전략을 역으로 국가 정책에 도전하는 운동세력이 채택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자신들이 겨냥하는 대상과의 ‘거래’를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심지어는 제3자 제재까지도 구사한다. 이 전략은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하나는 국가 전체를 상대로 하는 운동이 주체 역량상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혹은 대중적 호응을 얻기 어려울 때다. 따라서 미시적인 행위자(학교나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이 전략을 구사한다(보이콧-구매 거부도 넓은 의미에서는 여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이 전략은 정치적 부담이 적다. 즉, 전면적인 정치적 도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때문에 ‘극단주의자’(extremist)으로 몰릴 위험성이 적다.  그러나 동시에 이같은 전략은 여전히 주체의 힘이 미약하며, 전면적인 투쟁이 불가능하고 또한 절대적으로 ‘도덕적 우위’가 요구되며, 향후 발전/확산 과정에서 ‘인간주의적 감정’이 소모되는 시점에 도달하면 운동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컬럼비아대학을 비롯한 미국 여러 대학들의 학생시위는 이같은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학생 시위대는 극단적인 정치적 압력하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특히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이스라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칫하면 ‘인종주의 함정’(race trap)에 걸려들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가자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것이 미국 정치권과 자본의 기본 전략이기도 했다. 즉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규정하는 프로파갠더가 주종을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의회 정치세력은 노골적으로 반이스라엘 운동을 탄압했다. 예컨대 미 하원은 대학가에서 널리 불리는 ”요르단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가자 봉기 운동가요를 ‘불법화’하는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이같은 정치권의 조치는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명분을 제공하며, 현재 운동의 수준이나 성격과는 별개로 향후 다른 방향으로 운동이 전개될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가자 학살에 항의하는 미국 학생 시위대가 divest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출처 : Business Insider
가자 학살에 항의하는 미국 컬럼비아대 학생 시위대가 divest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출처 : Business Insider


컬럼비아대학내 이 건물의 원래 이름은 ‘해밀턴홀’이다. 학생시위대가 홀을 점거하자마자 했던 첫번째 행위는 이 홀의 이름을 ‘힌드의 홀’로 바꾼 것이다. 이 건물은 미국 건국 헌법의 기초자이자 최초의 중앙은행 및 뉴욕은행의 창립자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해밀턴 홀에는 긴 역사가 있다. 1907년 이 건물을 지어 컬럼비아대학에 기증한 사람은 존 스튜어트 케네디였다. 그는 J.P. Morgan, William Rockefeller와 함께 이른바 ”지킬 아일랜드 클럽“(20세기 초 미국 금융재벌들의 회의체)의 핵심 인물이었고, 이들은 훗날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Board of Federal Reserve)를 만들었다.

1968년 4월 27일, 미국을 휩쓸고 있던 반전운동의 물결 속에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이 해밀턴 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다. 켄트대학의 시위대 학살 사건과 더불어 60년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중의 하나였다. 당시 점거농성에 참여했던 사회학과 교수 임마뉴엘 월러스타인은 결국 이 사태로 해직당한다. 그리고 영영 컬럼비아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56년전 해밀턴홀 점거 시점에 맞춰 2024년 4월30일  컬럼비아 대학생들은 교내 텐트시위의 여세를 몰아 해밀턴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이번에 해밀턴홀의 개명된 이름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게 희생된 힌드 라자브의 이름을 딴 ‘힌드 홀’이다.

이것 역시 68년에 대한 ‘오마쥬(헌정)’인 면이 강하다. 또한 사회운동론 연구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역사적인 기억(legacy)을 집합행위 레퍼투아르 collective action repertoire 로 ‘동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68년에 대학생들은 컬럼비아대학을 ‘말콤 엑스 대학’이라고 개칭하고, 해밀턴홀을 ‘말콤 엑스 대학의 냇 터너 홀’이라고 지은 현수막을 말콤 엑스, 냇 터너의 사진과 함께 걸었었다. 56년뒤인 2024년 컬럼비아 학생들은 컬럼비아대학의 이름을 ‘팔레스타인 인민을 위한 대학’이라고 개명한 문패를 부착하고 교내점거농성을 하다가, 4월30일 해밀턴홀을 점거하면서 ‘힌드홀’이라고 내걸었다.*(하단 미주 참조)

56년전 4월30일. 컬럼비아대학의 해밀턴 홀은 "말콤 엑스 대학 냇 터너 홀"로 건물 명패를 바꿨었다. 당시 이 홀을 점거한 학생들의 역사적인 68년 사건이다. 그리고 오늘 4월30일 같은 날에 컬럼비아대학생들은 이 홀을 점거하고 "힌드의 홀"로 명명했다.
 우측은 56년전 4월30일 컬럼비아대학의 해밀턴 홀. 시위대들은 “말콤 엑스 대학 냇 터너 홀”로 건물 명패를 바꿨었다. 그리고 2024년 4월30일 컬럼비아대학생들은 이 홀을 점거하고 “힌드 홀”로 명명했다.


하지만 4월 컬럼비아대학 교내 시위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인 2023년 11월부터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먼저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 벌어졌었다. 하버드대에서는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반대하며 학생들이 농성에 들어갔다. 학생시위에 대한 미국 권력자들의 대응은 더욱 심각했다.

처음에는, 의외로 여겨지겠지만 당연하게도, 자본가들이 노골적으로 나섰다. Pershing Square Capital Management의 펀드 매니저인 억만장자 빌 액커만(Bill Ackermann)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당국에 즉시 시위 학생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만일 하버드 대학 본부가 이 요구를 거부한다면, 앞으로는 그 누구도 하버드대에 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시위 학생들을 향해서는 명단을 작성하여 절대로 어느 회사에도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을러댔다. 노골적으로 Black List를 작성하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하버드대 총장인 끌로딘 게이는 처음에는 자본가들과 정치권의 압력을 거부했으나, 30년전 논문까지 들춰내며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하자 결국 사임했다. 아이비대학을 일컬어 ‘헤지펀드 부설 대학’이라는 말은 이전에만 해도 그저 비아냥 수준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세상이 분명히 알게 되었다.

미국의 ‘아이비 리그’ 사학들은 그들이 만든 대학기금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손 행세를 한다. 단지 사립대학들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대학자본이 손을 잡는- 즉 ‘결연'(invest)하는 투자처에는 당연히 헤지펀드들도 있다. 이런 유착 관계속에서, 자본가들은 나아가 대학의 이사회와 동문회에도 손을 뻗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워싱턴의 하버드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큰 대학펀드를 보유한 부자대학이고(그것으로 전세계 대학랭킹 톱을 차지할 수 있다),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의 이사회는 월스트리트의 유태계 뱅커들이 장악하고 있다. 

총장이 사임한 이후 하버드대학은 반이스라엘 시위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하버드대학은 학내에서 정치적 유인물을 배포하는 일을 전면 중단시켰다.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대자보가 금지된 것이다. 동부 보스턴의 에머리 대학은 옥외캠퍼스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대학건물 통로 끝에 천막을 차렸는데, 여기가 외부 공공장소와 연결되는 곳이었다. 이를 빌미로 경찰은 지난해 시 의회를 통과한 홈리스금지법을 원용하여 시위대를 체포하고 천막을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던 경제학과 교수를 내동댕이치고 체포했다. 이 때문에 에머리대학에서는 현재 교수들이 농성에 가담하고 있다.
 
지난 4월 30일 현재, 미국 전역에서 약 1천여명의 시위대가 체포되었으며, 미국 내에서는  50여개 대학, 전세계적으로는 100개 대학에서 천막농성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대학 천막 농성 현황. 출처 : Naked Capitalism
미국 대학 천막 농성 현황. 출처 : Naked Capitalism


학생 시위대의 요구 수준은 매우 낮으며 아직 대중적 결합도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 이에 대한 정치권과 자본가의 탄압은 비대칭적으로 강력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학생시위사태는 일부에서 언급하듯이 지난 60년대 반전 시위를 떠올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의 미국,즉 50년대 맥카시즘에 더 가깝고 현재의 미국 상황을 묘사하는데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학생 시위 세력이 매우 효율적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점진적 확산을 겨냥하며, 운동의 수위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진행하면서도 역사적 상징들을 건드리고 있다. 4월30일 해밀턴홀을 점거한 것도 그같은 운동 전략의 하나이며, 또한 밤이 되어 경찰이 해밀턴홀 점거 시위대를 진압하러 진입했을 때도 굳이 공권력에 맞서지 않고 일순간에 ‘시위대’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모습을 바꿔 체포를 모면했다.

이 모든 것이 학생들의 체계적이고 준비된 행동으로 보여진다. 아마도 처음부터 대학본부, 경찰과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진입 경찰들의 무장 정도는 소요진압부대치고는 매우 가벼웠고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으며, 해밀턴홀에 있던 학생들 전부를 체포하지도 않았다(진입 시각이 밤 9시경인데다가, 해밀턴홀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시위대가 공부 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만일 정말로 시위대를 해산/체포하려 했다면 경찰은 당연히 새벽에 들어가 건물 내에 있던 학생 전원을 체포했을 것이다).

즉 ’68혁명’의 중요한 장소인 해밀턴홀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두고 시위대는 68년을 반복하는 척 했으며, 대학본부와 경찰도 68년을 반복하는 척 했고, 그래서 다소 싱겁게 양자간에 적당한 타협으로 끝냈다. 양쪽 다 정치적 효과는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의 봄(American Spring)’은 과연 올 것인가.


말콤 엑스는 급진적인 흑인해방운동가로 1965년 자택에서 괴한들(?)이 쏜 총탄 세례에 죽임당함. 
냇 터너는 미국 노예로 1831년 버지니아 노예 봉기를 이끈 지도자.  터너 반란은 미국 남부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으며 이는 남북전쟁때까지 이어짐(1861년 시작하여 1865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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