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Uncommitted(지지후보 없음)

민노연 창립식_087

Uncommitted (지지후보 없음)

2024년 4월 4일  / 한마디의 세상 Word of the World
<전망과실천> 편집부

4.10총선, 미국 대선, Uncommitted, primary, 가자 위기, 선거민주주의

지난 3월 미국 미시간주 민주당 예비경선장 앞에서 투표 참가자가 Uncommitted 투표를 호소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출처 AP 통신.

흔히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차악’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고답적인 표현을 직설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옮기자면, ‘나쁜 애 옆에 또 나쁜 애’ 중에서 고르라는 말이다. 하지만 둘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다 나쁘면 어떻게 하나?

이런 난감한 상황에 대비하여 미국 선거제도에는 ‘Uncommitted’라는 것이 있다. ‘Uncommitted’는 문자 그대로는 ‘지정 후보 없음’이다. 통상적으로는 ‘지지후보 없음’으로 옮긴다. 민주/공화당에서 당 후보를 결정하는 예비선거에서 존재하는 제도이며, 일부 주에서만 시행한다.

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지에는 “‘Uncommitted(지지후보 없음)이라는 선택지가 함께 놓이게 된다. 유권자들은 예비경선 과정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후보들 중에서 선택하고 싶은 후보가 없을 경우에 ‘지지후보 없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가 선거법에 이런 제도의 도입은.

올해 미국 민주당에서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이 시작되었을 때, 아무도 죠셉 바이든 현 대통령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다른 군소 후보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고작해야 1-2%를 얻을 뿐이고 바이든을 제치고 선택할만큼 그리 알려진 인물들도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에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Uncommitted”(지지후보 없음)이라는 후보. 그리고 “Uncommitted” 후보는 돈(선거자금)도 없고 민주당내 조직도 변변찮은데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 결과:  

미시간주 민주당 예비경선 : 10만 1,623표. 득표율 13%
미네소타주 민주당 예비경선 : 4만 5,914표. 득표율 19%
하와이주 민주당 예비경선 : 455표. 득표율 29%
워싱턴주 민주당 예비경선 : 8만 9.753표. 득표율 10%.

득표율에서 보다시피 하와이주에서는 만약 장난삼아서라도 몇 사람만 더 투표장에 가서 “Uncommitted”를 선택했다가는, 이 “지지없음” 후보가 바이든을 제치고 1등을 할뻔 했다. 투표지에서 Uncommitted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주들은 당원만이 투표 가능한 caucus가 아니라, 일반인도 등록하면 투표 가능한 open primary 방식을 택한 주들이다. 심지어 Uncommitted 득표율에 따라서 대의원(delegates)를 파견토록 규정한 주도 있다. 현재 Uncommitted는 26명의 대의원을 확보했다(이들 대의원의 의사는 당 지도부가 대리 결정한다). 이는 현재 3,027명을 확보한 바이든에 이어 2위다.

물론 Uncommitted는 바이든의 민주당내 경선 승리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아무리 open primary라고 해도, 민주당 예비경선 투표자는 대부분 민주당원들이다. 이들은 ‘Uncommitted’를 기표함으로써 자신들이 본선에서 트럼프를 뽑지는 않겠지만, 마찬가지로 바이든도 선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중에서 미시간주는 이른바 대표적인 swing state (판세를 결정하는 주)다. 즉 대선 본선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가 바로 미시간주다. 지난 2016, 2020년 대선에서 미시간주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들 간의 표 차이는 단지 10만표 미만이었다(각기 5만여표 정도). 따라서 만일 Uncommitted 투표가 정말로 대선 본선에 참여하지 않고 두 후보 모두 선택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미시간주 여기에서는 공화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팔레스타인의 ‘가자 사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노골적인 이스라엘 지원에 반대하는 민주당원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경고하는 수단을 Uncommitted에서 찾은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주류와 언론들은 처음에는 이를 주도하는 세력을 ‘팔레스타인계 이민자’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초로 Uncommitted 투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미네소타 주에는 고작해야 8만 7천여명의 팔레스타인계 이민자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 다음 찾아낸 이유는 이 이례적인 투표 결과는 중동계 이민자들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중동계 이민자들을 다 합쳐도 각 주마다 고작해야 5%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이것은 일반 민주당원들이 Uncommitted(지지후보 없음)에 대거 참여한 결과라고 봐야한다. 

현재 미국 민주당 내에서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 선거 전략가들은 바이든 정부가 이스라엘 지지 정책을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이 기존의 반대 입장에서 한 발 후퇴하여 기권함으로써 가자 즉각 휴전 결의안이 통과된 것도 이런 기류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앞질러 갈 필요는 없다. 엄밀하게 말해서 현재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나타나고 있는 Uncommitted는 미국의 정치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의 표현은 아니다.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라는 특정 정책에 대한 반대 표시에 가깝게 보인다. 

또한 동시에 이같은 반대 의사는 결정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1월 대선에서 현재 유력한 3명의 후보자(바이든, 트럼프,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모두 한결같이 유사한 중동 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원). 게다가 정치적 위력으로 따지자면 미국내 유태인 조직이 훨씬 막강하다. 아니나 다를까, 바이든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에서 기권하는 대신, 바로 다음날 2억 달러가 넘는 이스라엘 무기 지원안을 발표했다. Uncommitted 투표로는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을 막지는 못한다. 

결론적으로 Uncommitted는 인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반영시킬 수 있는 흥미로운 제도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정치적인 변화를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같이 보수 양당에 끝없이 유리한 선거제도, 제 3당의 등장이나 대항마로의 성장을 극구 막는 선거제도에서 Uncommitted (지지후보 없음)이란 선택지는 흥미롭기도 하고, 미국 스스로 자신의 선거제도가 가진 약점을 인정하면서 나온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미국 유권자들 일부가 committed하건 uncommitted하건 상관없이 정치의 귀결점은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지후보 없는’ 대중들은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11월이면, ‘나쁜 애 옆에 또 나쁜 애’ 중에서 누굴 골라야할지 다시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참 딱하지만, 당장 4월10일 총선이 코 앞에 닥친 한국을 보니 사돈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한국은 87년 민주화 이행이후 미국과 똑같이 보수양당의 담합적 독점이라는 정치체제와 선거제도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으면서, 양당에 ‘지지후보 없음’을 주장하는 이들을 대변할 그나마의 선거제도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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