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eral Trap‘(자유주의의 함정)
“미래를 흥정하지 말고, 현재를 해방하라”
- 미국 컬럼비아대학 학생운동이 유럽 시위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2026년 10월 30일 / 한마디의 세상 Word of the World
글 <전망과실천> 편집부


우리는 무엇을 실패했는가?
“우리의 시위가 2주차에 접어들었을 때, 리버럴들은 가자 학살에 대한 시위대들의 요구를 ”우리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담론으로 바꾸었다”.
-2026년 10월 21일 콜롬비아대학 인종주의 철폐 반투자 운동(Columbia University Apartheid Divest-CUDA) 그룹이 프랑스의 학생 시위자들에게 보낸 편지, “프랑스의 용감한 젊은이들에게, 콜롬비아대학 인티파다 학생 그룹의 경험자들” 제하의 글 중에서
지난 2024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주민에 대한 학살에 분노하여 미국 대학들에서 항의시위가 이어졌다. 1968년 반전 시위로 유명했던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이 이중 선도적이었고, 수백명의 학생들이 중앙도서관 앞 광장에 텐트를 치고 항의 농성에 들어갔다. 이어 일부는 바로 68년 미국의 반전시위 물결 속에서 당시 컬럼비아 대학생들과 교수들이 해밀턴 홀을 점거했던 그날 4월30일 2024년의 그 건물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해밀턴 홀을 점거하자마자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당시 6세 소녀 ‘힌드 라자브’의 이름을 딴 ‘힌드 홀(HIND’S HAll)’로 개명한 현수막을 건물 전면에 부착했다.
하지만 미국 대학가의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 항의시위는 오래 가지 못했다. 학생들의 천막농성 시위 규모가 크고 격렬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를 진압하는 경찰의 대응도 매우 이례적으로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68년과 달리 이례적으로 보수적인 중부 주립대학들에서 가장 격렬한 특징을 보였다. 중부 인디애나대학-블루밍턴-에서 경찰의 진압은 매우 거칠었고, 천막농성들을 진압하면서 저격수를 캠퍼스 옥상에 배치하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컬럼비아대학 학생들의 가자학살 전쟁반대 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과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주목되었다. 일부는 다시 ‘68년의 재연’이 될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컬럼비아 시위와 다른 대학들의 시위는 바로 6월에 시작하는 대학가 여름방학을 넘어서 계속 확산될 수 있을지 여부가 중요하였다. 나는 낙관론을 배제한채 4월의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가 계속 지속되어 과연 ‘미국의 봄’(American Spring)이 될지 주목하면서 “‘미국의 봄’(American Spring): 미국 4월 대학 시위의 배경과 성격:를 2024년 5월2일 연구소 홈페이지와 <전망과실천> 8호에 게재했다 (권영숙, ‘미국의 봄’(American Spring) : 미국 4월 대학 시위의 배경과 성격,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2024년 5월 2일. <전망과실천> 8호 참조. 링크 https://dem-labor.org/praxis/global-movements/791)
5월 들어 시위가 조금씩 잦아들면서 반격이 시작되었다. 외부적으로는 대자본가들이 대학에 대한 지원금 중단을 선언하며 학내 시위를 차단할 것을 요구했고, 일부 대학에서는 이사회에 압력을 넣어 시위에 유화적인 총장 교수들을 해임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시위 참여 학생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공공연히 작성했다.
더 큰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시위대의 일부는 외부의 시각을 우려하며, 자신들이 극단주의자 반유태인주의자로 비치는 것을 우려하여 ‘대중의 인식’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외부의 시선’이 고려대상이 되는 순간, 운동은 급격히 그 자생성의 힘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급진적인 구호도 사라졌다.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컬럼비아 대학생 조직이 10월21일 이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그같은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에서 투쟁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글이다. 트윗을 통해서 공개했다.
“우리는 파리, 리용, 마르세이유에서 우리 또래이거나 우리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학교문을 막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영상들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의 투쟁을 너희들의 투쟁 속에서 보았다”….
이같은 투쟁의 ‘동질성’에서 그들은 프랑스의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경험을 전한다:
“인프라스트럭쳐를 추적하여 가자 학살을 가능케하는 자금을 차단하고, 테크노크라트들과 돈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자들을 경계하고, 끊임없이 활동반경을 넓혀라. 또한 국제주의를 수용하고 자유주의 함정(liberal trap)을 벗어나라. 투쟁이 적절한 반대의 수준에 대한 논쟁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의 투쟁은 나중에는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우리의 시위가 2주차에 접어들었을 때, 리버럴들은 가자 학살에 대한 시위대들의 요구를 ‘우리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담론으로 바뀌었다…”
자신들의 그같은 과오와 실패를 프랑스에서 지금 ‘불만의 가을’을 주도하면서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 청년학생들이 부디 되풀이하지 않도록 당부한다 : “보편적인 투쟁을 ‘외부’와 ‘내부’로 나누어 인식하는 프레임이 출현하는 순간, 운동은 힘을 잃고 만다”.
그러면서 콜롬비아 가자 학살 항의 시위 그룹은 프랑스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격려한다.
“이 지구를 불태우며 너희의 몰락을 꾀하는 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요구하지 말라. 우리가 프랑스 학생들에게 권하는 것은 지구를 불태우고 너희의 몰락을 꾀하는 자들이 살 수 없는 현재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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