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곳이 없고, 살 수가 없다
- 스페인 ‘세입자의 난’(亂)
2026년 10월 2일 / 글로벌 사회운동
글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
스페인, 주택시장, 강제퇴거, 월세(임대료)동결, 세입자 시위, 사회적 총파업, 사회적 연대, rentierism(자산소득주의) 철폐, 사회운동, 집합행위 레퍼투아르(collective action repertoire)
태양의 문(Puerta del Sol) 광장의 캠프촌
지난 9월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시의 레티고 구역에서 여든 일곱살 난 노인이 71년 동안 살던 집에서 쫒겨났다. Mericarmen Abascal이라는 이름의 이 노인은 열다섯 나던 해부터, 부모님과 함께 임대한 이 집에서 살았다, 월세로. 2017년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임대업 사모펀드가 이 집을 인수한 뒤에 월세를 기존의 500유로(한화 76만원)에서 2,600유로(400만원)로 인상했다. 사정 끝에 월세는 1650유로(253만원)으로 깎았지만, 감당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한 달 수입은 연금 1,500유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월세가 밀리자 퇴거 조치가 진행됐다. 법원으로부터 퇴거 명령서를 받은 용역이 동원되었고, 경찰이 동행했다. 그리고 집에서 쫒겨났다. 이 과정에서 Mericarmen은 탈진하여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 사건은 돌발적인 사건은 아니다. Mericarmen은 퇴거에 앞서 세입자유니온(tenant’s union)에 도움을 요청했고, 수백 명의 시위대가 그의 집 앞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생생하게 SNS로 중계되었다.
대중의 반응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너무나도 비인도적이었으며, 그들 모두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시위를 시작하자 많은 수가 연대 시위에 몰려들었으며, 이들은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의 ‘태양의 문’(puerta del sol) 광장에 텐트를 치고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수십 개의 텐트에 불과했지만, 일주일 만에 그다지 넓지 않은 ‘광장’이 미어터질 정도로 텐트가 1,200개로 늘어났다. 수천 명의 연대자들이 광장을 자신들의 집으로 선언하고 눌러 앉은 것이다.
9월 26일 사회주의자당 소수 연립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응하여 주택임대차 안정법을 제안했다. 임대료를 2030년까지 동결하고 대체 거주 시설이 없는 임차인(세입자)들에 대한 강제 퇴거를 금지하는 안이었다. 그러나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의 후예인 인민의힘 당과 신 파시스트 정당인 VOX가 이에 반대하고 있어 통과 여부는 불확실하다.
단지 이 사건만이 아니다. 나흘뒤인 9월 27일 시위대는 예순일곱 살의 암 환자인 세입자가 강제 퇴거되는 것을 힘으로 저지했다. 그리고 28일 광장의 시위대는 자체적으로 평의회(assembly)를 설립하고 임대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총파업(general strike)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0일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임대료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세비야와 바르셀로나 등 다른 도시에서도 세입자들의 집단 캠프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세입자 시위는 처음에는 인도주의적 공감과 연대 시위로 시작하여 이제 사회경제적 요구 투쟁으로, 나아가 현 경제체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운동으로 진화 중이다.

월급의 97%가 월세 – 스페인의 월세난
이 사건 직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은 극우들의 놀이터였다. 한국의 다소 엉성한 극우들과는 달리, 스페인의 극우는 확실한 역사적 근원과 자산을 가지고 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서구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군부가 공화정을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40여 년간 노골적인 파시스트 정치를 실행했다. 이웃 나라인 포르투갈과 더불어 20세기 파시즘이 마지막까지 남은 성채였다. 2016년 이후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신 파시스트 정당인 VOX가 급격하게 세를 확장했다.
집권당인 사회주의당은 여론조사에서 기껏해야 25% 내외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게다가 집권당은 최근 세우타 섬에서 일어난 모로코 주민들의 대거 국경 진입 사태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사회주의당에게는 국면을 전환시킬 중대한 모멘텀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집단 농성 캠프촌을 구성하고 있는 시위대는 정부가 제시한 월세 개혁안- 즉 2030년까지 임대료 동결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월세 동결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주택 소유권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즉 주택을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닌 공공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개혁안조차도 의회 통과는 지난 2일 의회에서 의회에서 저지되었다. 시위대는 조만간 의회 해산 및 총선거와 총파업을 결의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태가 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금 시위대는 평의회를 만들어 스스로 광장을 ‘쿄뮌’으로 만들면서 최종적으로는 사회적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즉 노동현장에서의 임금/고용 조건에 대한 총파업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 총파업(social solidarity general strike)를 추진 중이다. 이미 2012년 유럽 부채 위기 시에 스페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총파업이 시도된 바 있다. 12년 만이다.
이번 사건이 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스페인의 주택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주택시장 연구에 따르면, 스페인의 가계는 월 소득의 약 36-50%를 월세로 지불한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개인소득이 아니라, 가구 소득이라는 점이다. 개인소득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미혼 청년들의 경우, 개인소득의 97%를 월세로 지불해야 스페인의 대도시에 살 수 있다. 즉 대도시에서 혼자 월세를 내면서 살 수 있는 젊은이는 금수저이거나, 강도 짓으로 추가 소득을 올리는 경우에나 가능할 정도다.
게다가 주택 소유 구조도 월세 상승을 부른다. 스페인 월세 주택 가운데 39%는 개인이 보유한 단독주택이지만, 나머지 61%는 다가구주택자, 주택임대사업체, 투자펀드 등이 소유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해서, 임대 사업으로 수익을 올리는 지대자본가들이 월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시위대의 깃발들중 중에 ‘rentierism 철폐’(자산소득주의, 즉 불로소득, 금융소득주의 철폐)가 나부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스페인의 주택난/월세난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나은 편이다. 프랑스나 독일보다도 훨씬 호조건이다. 프랑스나 독일은 스페인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며, 지난달 말 독일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독일 좌파당(Linke)의 공약 중의 하나는 ‘주택 20만호를 징발’해서 세입자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심각하다(‘계급과 세대 사이 청년; 특권, 분노투표, 그리고 읍소’, 2026년 6월 15일자 참조)
유럽 전체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낫다는 스페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서 세입자 시위가 이렇게 대중적 호응을 얻은 것은 역설적으로, 스페인 사회에 아직도 공동체 연대 의식이 강력하게 남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각자도생의 사회라면 87년세의 할머니가 강제 퇴거조처를 당해서 쓰러지는 상황에서 뛰어들고, 그것이 시위로 비화되고, 광장 점거농성으로 확대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운동과 집합행위를 결행하는 것이 현상적으로 ‘순간적’으로 보이겠지만, 그것은 긴 시간동안의 공유된 기억과 공통의 경험들, 그것들의 축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집합행위는 일종의 ‘레파토리'(repertoire)라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왜 스페인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한가? 아니 왜 대중은 사회적 연대를 이런 집단적인 ‘폭력시위’(공안의 관점에 따르면 이것은 폭력시위다)와 광장 점거시위를 할까? 왜 스페인에서는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못하면 집주인에게 쫒겨나가거나 스스로 제 발로 나가지 않고 저항하며, 그리하여 ‘세입자의 난‘이 가능한가?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
한국에서 80년 광주항쟁을 기린 <5월의 노래>의 원곡은 프랑스 가수인 미셸 뽈나레프(Michel Polnareff)가 1971년 발표한 “Qui a tué Grand-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이라는 곡이다. 원곡의 가사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노래의 가사는 재개발 과정에서 죽은 할머니에 대한 얘기다.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에,
정원에는 꽃들이 피어올랐지.
세월은 흐르고. 기억들만이 남았네.
그리고 네 손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
…..
불도저가 할머니를 죽였네.
그리고 꽃들을 굴착기로 바꿔놓았지.
노래하던 새들에겐 공사장만이.
이것이 네 맘에 들기 위함인가?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세월인가, 아니면
더 이상 여가를 보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인가?
한국에서 이 노래가 ’ 5월의 노래‘라는 번안가요로 바뀌어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으로만 기억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더 넓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주거를 향한 민중의 투쟁사에 대한 기억 말이다.
1980년대 초 대학생들은 철거민들과 함께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건설에 반대하는 격렬한 가투를 벌였다. 오목교는 매일이 일진일퇴의 전쟁터였다. 주로 서울대 중심- 대학생들은 매일 목동으로 진입하는 오목교로 가서 밤이 될 때까지 투석전을 벌이고 꽃병을 던지며 한 달 이상을 싸웠다. 거기서 피 흘리고 머리 깨지고, 실명한 학생들이 여럿이었다.
지금도 오목교는 있고, 나는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때를 생각한다.
그 시위가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철거민-세입자들의 주거지 연대 가두 투쟁이었다 (이후 상계동 시위와 함께- 이는 이후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영화로 제작됨).
그때는 이것이 시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의 투쟁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조차 잊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시작된 비극에 대한 기억의 조각도 함께 붙여야 ‘역사적인 기억’이 된다. 1989년 3저 호황의 여파로 한국경제에 유동성이 폭발했다. 그리고 이미 가뜩이나 인구과밀이었던 서울의 집값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오르자,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올렸다. 이른바 ‘전세대란’의 시작이었다.
그 시절에는 전세가 더 일반적이었고, 월세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거나 혹은 일시적인 이유, 또는 정말 극빈 판자촌이 아니면 월세는 가지 않는다는 사회적 압력이 극심했다. 더구나 가족을 이루고 있는 가구로서는 월세는 가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세값이 폭등하자 돈 없는 서민들은 길바닥에 나앉았다. 그리고 자살이 시작됐다. 폭등한 전세 가격을 못맞춰 집에서 쫒겨나(제발로 나와), 길바닥에 나앉은 가족들을 보면서 처참한 심경을 붙잡고 가장들이 자살했다. 전세난에 이은 연쇄자살 사건이었다.
당시 1989년의 여름, 신문 1면과 사회면은, 그리고 사회부 기자들은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가장들이 자살했나’를 탐문하며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이동하고 경찰서 기록을 쫓아다녔다. 당시 공식적인- 신문에 보도된 기록으로만 약 40여명이 자살했다. 대부분이 30-40대 가장들이었다. 자살한 이들이 남긴 아이들은 고작해야 코흘리개들이었고, 남편의 주검 앞에 넋나간 아내들의 모습이 남겨졌다. 그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성공한’ 가장으로 자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들이 다시 37년 만에, 자신들의 가족을 파괴한 그 전세난으로 인해 몰리고 있다. 지금의 해결책은 그렇다면 이제는 89년말이후 지독했던 겨울처럼 그래도 어찌 가족을 월셋방에서 거주하게 하냐는 식의, 월세에 대한 스티그마(낙인)는 없어졌으니, 이제 얼마든지 ‘떳떳하게’ 가족들을 이끌고 고시원으로 들어가라는 것일까?

목동과 상계동의 철거반대투쟁, 세입자와 철거민등의 공동투쟁, 대학생등의 연대가두 시위는 이후 벌어지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90년대 중반이후 도시 개발과 부동산정책에서 철거민, 세입자들도 지워져갔다. 대신 한국, 특히 서울의 부동산과 주거정책은 아파트 자가 소유와 공급의 문제로 협애화되었다.
한국 사회와 국가와 정당들의 부동산 정책과 담론의 초점은 줄곧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할 골간이 되는 ‘중산층the middle class’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가였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서울등 도시개발과 부동산정책은 도시 중산층 형성의 계급적 수단이 되고, 계급 재생산의 통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계급 ‘세습’의 수단이 되고 있다.
청년 주거문제등은 이런 계급적 물질적 기제의 전개 속에서 단면일 뿐이다. 그리고 그 방식 역시 문제적이다.
최근의 상황은 어떤가? 삼성과 하이닉스등이 글로벌 AI산업 버블 속에서 폭발적인 이윤 증가를 기록하고, 수출액이 200%이상씩 증가하고, 이 가운데 유동성 증가 압력이 폭발적으로 강화된다. 유동성 증가 압력 하에서 수도권의 주택 가격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지 주택 가격만이 아니라, 주택 소유로 인한 수익률(전월세 가격) 상승을 유도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전세난, 월세난이 발생하면 그것이 정치적 변동이 될 수 있을까? 체제를 전복하는 ‘전쟁’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아니 소박하게(그러나 전혀 소박하지 않은 현실인데- 한국 사회에서 상상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스페인처럼 어떤 세입자의 강제퇴거 조처 앞에서 이른바 시민들이 공분하고 연대하면서 시위에 나서서 강제퇴거를 물리적으로 막아서고 연대시위를 벌이고 총파업을 기획할 수 있을까?
결국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 소유에 대한 법, 이념, 정치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과 하이닉스의 이윤에 횡재세를 매기는 것조차 ‘어딜 사유재산을 건드리느냐’는 자본가의 목소리를 정치적 구호로 삼는 이재명 정권에게서 그것이 가능할까? 그를 인정하면서 삼성과 하이닉스 노동자의 ‘계급투쟁’을 잘한다라고만 하는 사회에서 혹은 일방적으로 비난 매도만 하는 사회에서, 이 지점까지 사회적 시야가 나아가거나 확대할 수 있을까?
반문이 필요하다. 서울의 집 값은 왜 비싼가? 그것은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빚을 낸 사람들, 그리고 결국은 세상의 끝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핏값이기 때문이다. 이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를 부르는 ‘서울의 찬가’는 일부의 그들만의 서울이며, 그들만의 해방구 즉 그들로부터 인민을 분리하는 낙원을 노래하는 찬송가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낙원을 가능케하는 것이 바로 1987년의 헌법, 즉 우리가 지금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는 그 헌법, 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철옹성이자 사유재산 수호를 사명으로 하고 있는 그 헌법이다. 이 헌법 하에서는 어떻게 해도 자본가가 이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구조적 다수’다. 구조적 다수는 숫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게임을 해도 이미 승자가 정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 승자는 전월세난으로 죽어갈 사람들은 아니며, 고작 이 집 한 채만이라도 부여잡고 노후를 도모하는 소심한 중산층들도 아닐 것이다.
불만의 겨울
스페인 ‘세입자의 난’은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자 해방구를 만들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바로 역사적 집단 기억, 그리고 사회운동과 집합행위는 축적된 공동의 레퍼투아르라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사회운동은 그 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특색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체제에 도전하는 시위자들의 이념적 정치적 성향도 동시에 보여준다. 예컨대 해방구는 비록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조차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전쟁’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해방구를 설치하는 것은 기존의 정치적 질서에서 분리된 공간을 설정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질서에 대해 바리케이드를 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해방구는 반체제적이며, 정치에 수렴되지 않는 전쟁의 관념을 반영한다. 여전히 프랑스 혁명의 역사가 무의식적으로나마 남아있는 프랑스의 시위에서 ‘방화’가 거의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것도 방화선이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시위들에서는 최근 흥미로운 사례들이 관찰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교사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시위 중이다. 여기에서도 진압 경찰을 막기 위한 방화가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지난 28일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 중이다(약 400여개 학교에서 수업 거부 시위가 발생했으며, 학생 600명이 체포되었다). 근데 고등학생들도 불을 지른다(교내 쓰레기통을 모아 불을 질렀다). 시위가 격화되고 경찰 폭력이 극심해지면서 이번에는 노조 조합원들과 일반 시민, 노인층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사슬을 만들어 시위대를 감쌌다. 세대 통합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다.
프랑스의 소방관들도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전국적인 시위 행진을 벌이고 있다. 과연 소방관들도 불을 지를까가 개인적인 관심거리였는데, 어쩌나, 프랑스의 소방관들도 불을 지른다. 이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기 위해 폐타이어를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방화하는 소방관이라니, 이 형용모순을 가능케하는 것이 바로 ‘시위’다.
소방관 시위에서는 길거리 소화전을 열어 물대포 대용으로 쓴다거나, 소화기를 진압 경찰 기동대에 분사하여 격퇴하는 직업적 전문성도 발휘된다. 무엇보다도 소방관들이 진압 장비를 착장하면 진압 기동대에 못지않은 방호 장비를 갖추는 셈이 되기 때문에 경찰이 시위를 막지를 못하고 후퇴한다. 프랑스의 소방관 시위는 시위 방식의 관점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시위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반면 북구나 남미에서 농민 혹은 지역 공동체 시위가 벌어질 때는, 도로를 봉쇄하는 시위 방식이 주로 나타난다. 이는 과거 봉건시대부터 내려오는 영주들이 지배하는 도시를 차단하는 내전의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선 “선거민주주의에 대항한 제헌주체의 저항 – 미국 뒷마당의 ‘붉은 판쵸들‘, 볼리비아 민중의 반제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2026년 05월 29일) 참조.

반면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폭력적’ 시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시위대가 체제 저항적이라기보다는, 제도화된 정치적 관행을 통해서 요구를 관철하려는 보다 순치된 대립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대규모 시위는 존재하지만, 인종문제 시위를 제외하고는 폭력적인 시위는 거의 없다(오히려 경찰 폭력이 훨씬 일상적이다). 미국 인종시위(예컨대 Black Lives Matter 시위)에서 약탈이 종종 관찰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흑인시위는 게토 시위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이나 인도의 경우에는 종종 폭력적 방식이 동반되지만, 파키스탄은 정파들 사이의 내전적 성격이 강하고 인도는 지역적 종교적 인종적 충돌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전자는 내전적 성격이지만, 후자(인도)는 국가의 중앙집중적 권력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폭력적 성격을 수반한다고 할지라도 양자는 근본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각국별로 시위의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단지 폭력을 수반하느냐의 여부로 시위의 특징을 구분해서는 안된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 시위가 기존의 정치적 제도 내에서 진행되는가 아니면, 기존 정치 제도 외부의 비정치적, 즉 대부분의 경우 ‘전쟁’의 개념을 바탕에 깔고 진행되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의 세입자의 난은 인도주의적 공감에서 출발해서 자율적으로 이 체제 하에서는 살 수 없다는 반체제적 성격을 띌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해방구를 설정했다는 점에서 전쟁의 과정으로 이행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스페인 세입자 난은 현체제로부터 다소간의 개혁적 조치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난이 보여주는 바는, 이제는 인민들이 너무나도 살기 어려워졌으며, 더 이상 방구석에서 트위터로 말장난만 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스페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럽은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리고 겨울이 오고 있다. 불만의 겨울이(winter of discontent)
* ‘불만의 겨울’: 1978-79년 겨울 정부의 임금 상한제에 반발한 영국 노동자 대규모 시위. 원래는 셰익스피어의 <Richard III>에 나오는 장미전쟁을 가리키는 구절. 흔히 civil war를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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